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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단편/도둑일기/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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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 김 경희
성 별 : 여
나 이 : 44세
경 력 : 강원대학교 졸업. 중등 교사, 현 학원 강사
주 소 : (200-881) 춘천시 동내면 거두리 974-10 3F
(joma86@hanmail.net)
전 화 : 016-686-6540 / 033-262-6540
부 문 : 단편소설 ‘도둑 일기’
도 둑 일 기
1. 실행 2주 전
아마 이런 현상 아닐까. 반코트를 사려고 마음먹으면 온통 반코트 입은 사람만 눈에 들어오고 머리를 짧게 자르겠다고 결심하면 그런 머리만 눈에 띄는 것 말이다. 이것은 정신 의학적으로도 분명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길거리를 지나면서 플라스틱의자와 둥근 탁자를 유심히 보는 요즘의 습관에 대해 당위성을 부여했다. 흰색, 빨간색, 파란색. 대체적으로 색은 3가지이며 주로 음료수나 맥주회사에서 만든 것으로 로고가 의자등받이에 붙어 있다.
그전에는 길에 널렸다고 생각했는데 관심을 갖고 보니 실상 그렇지 않았다. 많지도 않았지만 있다 해도 가게 앞에 한두 개 놓여 있는 것이 고작이었고 그나마 밤이 되면 어김없이 안에 들여놓고 문을 닫는다. 그깟 플라스틱 의자 따위를 누가 집어간다고 좁은 가게에 들여놓는가에 대해 순간적으로 반발했지만 이렇게 집어가려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것에 임자가 있다는 사실이 무섭게 느껴진다. 무섭다는 것은 나에겐 생소한 감정이므로 그것을 변환 시켜서 내 안에 인식시키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옷이나 머리 따위의 가벼운 예를 들어 당위성을 부여한 것은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우리 집에 필요한 것은 의자 네 개와 탁자 하나이다. 의자가 네 개여야 하는 까닭은 네 식구이기 때문이다.
2. 실행 네 달 전
귀양살이를 떠나 낯설고 척박한 유배지에 들어서던 선비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이사해주는 사람들에게 뭐라도 먹여야 할 것 같아서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오다가 멀리서 바라본 이사의 형태가 그런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저게 남의 집 이사라면 그저 관조할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허지만 저건 내 일이다. 꿈도 아니고 손바닥 뒤집듯 단번에 바뀔 리 없는 현재 내 삶의 가장 표면에 드러나 있는 현실이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이라도 쳐서 벗어나고 싶은 갈망이 날카롭게 가슴을 뚫는다. 집안에 있을 때는 제법 값나가는 살림살이로 사랑깨나 받았던 물건들이 길에 널브러져 있으니 어쩜 저리도 궁색하단 말인가.
이사를 진두지휘하느라 길에 서있던 남편이 나를 발견하고는 내 쪽으로 오는데 웃는 얼굴이 맑아 보인다. 에고, 속도 없지. 저렇게 속이 없으니 친구들 보증으로 재산을 다 날렸지. 아끼고 아껴서 이만하면 앞으로 큰 걱정 없이 살겠다 싶었는데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자 밑 빠진 독에 채워놓은 술 마냥 다 빠져나갔다. 겨우 보증금 넣고 월세 내는 집에 들면서 그래도 거리에 나앉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는 말로 나를 달랬지만 내 속은 이미 치유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균열이 가 있었다.
그러나 내색 한들 뭐하랴. 상한 속을 드러내 남편까지 더 상하게 한들 달라지는 것이 있겠는가.
망해나가는 이사라 일부러 애들이 학교 가는 평일을 택했다. 학교 끝나면 새집으로 오라고 말하니 환경의 변화에 대한 기대로 즐거워하는 것 아닌가. 그래,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나도 골치 아픈 것 다 날려 보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리라. 혹시 친구들이 잘 되면 우리 돈을 찾을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는 좋을 일만 남았다.
3. 실행 두 달 전
1층은 샤시 가게이고 2층은 원룸이 4개 있으며 3층 전체가 우리 집이다. 이사 오고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얼굴도 모른다. 모두들 쥐처럼 먹을 것 챙겨 제 구멍에만 열심히 드나들 뿐 이었다. 현관 앞에 휴지가 떨어져 있어도 문 닫으면 그만이니까 절대 줍지 않아서 그 휴지는 며칠이고 방치되어 있었다. 계단과 2층 복도는 늘 먼지가 뽀얗게 앉아 코를 맹맹하게 했다. 그것은 경제적 전락으로 이곳에 유폐 되어 있다는 느낌에 황폐함을 하나 더 첨가해주었다. 2층에서 3층과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만 청소하다가 1층부터 하기로 결심한 것은 깔끔을 떨기 위해서가 아니라 황폐함을 떨쳐내기 위함이었다.
나는 열심히 쓸고 닦았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은 조금만 닦아도 금새 윤이 났다. 잡티 없이 투명한 창문을 보면서 반들반들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기분이 좋다. 이 좋은 기분을 밑천삼아 이 집에 정이 붙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내 집이 아닌 집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생소한 일이던가. 신혼 시절 5년을 빼곤 늘 내 집이 있었다. 평수를 늘려가다가 50평까지 갔었다. 그러나 내 인생에 이런 복병이 숨어 있을 줄 내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신혼시절의 셋집은 오히려 달콤한 추억이었으나 중년으로 접어든 시기의 셋집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초라함을 훨씬 넘어서므로 어떤 것으로도 대치해서 스스로를 위로할 말이 없다. 내 집이 아닌 집에서 사는 것은 일상에서 내 존재를 살아나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실로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은 옥상에서 담배를 피운다.
남편이 담배 피울 때 따라 올라가 아직 완전히 모습을 갖추지 않아 전반적으로 어두운 신흥 상가단지를 둘러보는 것이 조금은 신선하다. 남편이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것에 대해 내가 관대한 것은 그 때문이다. 담배를 찾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려는 눈치가 보이면 나는 기를 쓰고 따라 올라갔다. 높이가 거의 같은 건물들이라 옥상은 사방이 트여 있다. 옥상 난간에 기대서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노라면 잃어버린 것에 대한 회한이 슬픔으로 바뀌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슬픔은 징조가 좋은 감정이다. 화가 난다거나 억울한 느낌들은 대상이 분명하고 되받아치기에 대한 욕망을 내포하고 있지만 슬픔은 순수하게 일어나는 내면의 소리일 뿐 대상을 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희망적인 느낌으로의 전환이 쉽다. 옥상에 올라와 남편이 담배를 한대 피우는 동안 나는 슬픔을 가슴가득 채우고 그것을 희망으로 바꾸는 작업을 재빨리 해치운다. 그러니까 어느 날 남편이 여기에 의자나 몇 개 갖다 놓을까 라고 이야기 했을 때 그 말이 유혹적으로 들렸던 것은 내가 옥상에서 체험하는 느낌의 전이 현상이었을 것이다.
의자를 갖다 놓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몇 가지 그림이 떠올랐다.
그것은 의자를 이용한 일상적인 행복의 모습이 아니라 인증 같은 거였다. 애들은 이 집이 셋집이라는 것을 모른다. 엄밀히 말하면 셋집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도 없다. 애들에게 집이라는 것은 항상 소유가 우리 것 이라는 정의가 서 있다. 얼마 전 작은애가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서를 가지고 왔는데 거기에는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소유를 밝히는 항목이 있었다. 자가, 전세 , 월세. 나는 약간 망설이다가 ‘자가’에 동그라미를 쳐서 보냈다. 단지 조사일 뿐 확인을 위한 무엇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괜히 담임선생님에게 궁색한 꼴을 보일 필요가 있으랴 싶었다. 나도 학교에 근무하므로 가정환경조사서가 어느 정도까지만 필요한 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편의 일이 잘 되고 친구들 일도 잘 되면 당장 다음 달이라도 다시 집을 사서 이사 갈 수 있는 일 아닌가. 내가 걸고 있는 희망이 허공에 부유하는 연기 같은 것일지라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러므로 내가‘자가’에 동그라미를 한 것은 약간의 미래적인 지향을 생각한 것일 뿐 앙큼한 거짓의 의사는 없다.
여기 원룸 사람들과 1층 샤시 가게는 옥상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옥상은 우리의 전유물인 셈이고 거기에 내 물건을 갖다 놓는 것은 확실한 공간 확보이며 이 집이 우리 집처럼 보이는 인증 같은 것이 되어줄 것이다. 물론 애들에게, 그리고 어느 정도는 나에게도.
그래, 옥상을 잘 써야겠다. 옥상이 있다는 것은 주택의 장점 아닌가. 의자를 갖다 놓는 것은 물론이고 빨래 줄도 매서 선선한 바람과 쨍쨍한 햇빛에 빨래를 청결히 말려야겠다. 그리고 이참에 야채도 키워 볼 것이다.
4. 실행 한 달 전
퇴근하면서 옥상으로 바로 올라가 빨래를 걷었다. 낮에 햇빛이 가득 쏟아지는 운동장을 내다보며 출근 전에 널어놓은 빨래를 생각하니 뿌듯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바짝 말라 있었다. 옥상엔 아직 빨래줄 이외에 가져다 놓은 것이 없다. 가능할만한 지인에게 의자와 탁자를 부탁했으나 요즘은 별로 여분이 없다면서 한 6만 원 정도 주면 새것을 살 수 있다는 말을 어제 들었다. 그까짓 플라스틱 의자야 사방에 널린 것이므로 그저 마음만 먹으면 당장 얻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거저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허탈하다. 6만원이면 보편적으로 생각할 때 큰돈은 아니지만 한 푼도 낭비할 수 없는 지금의 나에게는 큰돈이다. 6만원이면 남편과 애들을 데리고 약간의 근사한 외식을 할 수 있으며 딸애에게 제법 질 좋은 청바지를 사 줄 수 있다. 또한 냉장고에 과일을 가득 채워 놓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6만원을 허술하게 지출 할 수는 없다.
만져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돈에 대한 아쉬움이 아직도 가슴을 찢고 있는데 내 지갑에 있는 돈을 꺼내 가구의 근처에도 못 미치는 일회 용기 같은 것들을 살 수는 없다. 결코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허지만 그것만은 꼭 가져다 놓고 싶다. 아니, 갖다 놓고야 말겠다는 의욕이 지배적이다. 마치 원래 갖고 있었으나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는 것처럼 점차 집착 쪽에 가까워지고 있다.
5. 실행 10일 전 쯤
허술한 곳을 발견 했다.
허술하다는 것은 밤에 밖에 내 놓은 채 문 닫는 곳을 말하는 것이다. 구석에 밀어 두거나 어떤 곳은 그냥 그 자리에 놓아 둔 가게도 있다. 내가 눈독을 들인 곳은 우리 동네 입구에 있는 아구찜 가게이다. 그 가게는 앞에 어느 정도의 여유 공간이 있어서 바닥을 녹색 페인트로 칠해 색다른 분위기를 준다. 거기에 두개의 원탁과 의자들을 놓았는데 그것들이 빨간색이었으므로 아주 그럴듯해 보였다. 아구찜을 먹고 나서 커피 한잔을 뽑아 밖으로 나와 지독히 매운 것을 먹느라 온통 곤두 서있던 입안의 흥분을 가라 앉혀 뿌듯한 포만감으로 바꾸는 동안 앉아 있는 용도로 쓰이지 않을 까 싶다. 실제로 지나다니면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앉아있는 사람들을 목격한 적이 있다.
나는 늦은 밤 슈퍼에 다녀오다가 불 꺼진 아구찜 가게 밖 한 구석에 의자와 탁자가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다음 날 밤 일부러 늦은 시간에 나가 본 것은 어쩌다 한번만 안 들여 놓은 것이 아닌가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의자와 탁자는 어제처럼 그렇게 놓여 있다. 나는 가슴이 뛰었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한 것이 없고 실행한 것도 없는데 가슴은 뛰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 집의 재무구조가 나쁜 것은 아닐까에 생각이 미쳤지만 장사라도 잘 된다면 괜찮을 것이라고 답을 내렸다.
저녁에 퇴근하다가 일부러 손님이 얼마나 있는지 들여다보았는데 별로 없었다. 다음날이 토요일이어서 낮에 퇴근하다보니 역시 없었고 다시 저녁에 일부러 나가보았지만 가게는 한산했다. 나는 이 가게에서 하려고 했던 일을 접기로 했다. 장사도 안 되는데 다른 일로 손실을 입힐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 결심을 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결심을 하고 나니 이제 나와는 무관한 물건으로 보였다. 가져오면 안 되는 것은 내 것이 아니므로 그것은 이미 내 의식 안에서의 물건들은 아니다. 다음 날 출근하다 본 그것들은 내가 가르치지 않는 반 학생들을 볼 때처럼 신경이 가지 않았다.
그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다른 골목에 들여 놓지 않은 의자를 본 것은 아구찜 가게를 대상에서 제외한 다음날 밤 이었다. 내가 12시 넘어 밖으로 나온 이유는 다른 곳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그곳은 종묘상으로 도대체 이런 곳으로 누가 씨앗 따위를 사러 올까 싶은 생각을 했던 가게였는데 내가 찾는 의자가 있었다. 가게 출입구에 의자를 겹쳐서 쌓아 놓았는데 세어보니 4개이다. 주변은 칠흙같이 어두웠다. 나는 차를 가지고 나왔으며 조수석을 앞으로 완전히 당기면 뒷좌석에 겹쳐진 의자 4개 정도는 너끈히 들어갈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가슴은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져갈 생각을 하고 나온 것은 아니었으므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사실 그동안 탐색을 했을 뿐 집으로 가져오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지금 가져가면 이것이야말로 우발적 범행이 되는 것이다. 우발적 범행이라는 낱말을 떠올리니 가슴은 더 뛰었다. 그래도 지금 가져가면 쉬울 것 아닌가. 실행에 옮기겠다는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서는 단계를 뛰어 넘는 것 아닌가. 그래 지금하자. 망설이면 잃게 된다는 것은 이미 질리게 체험하지 않았던가.
나는 차의 시동을 끄고 조수석 의자를 한껏 잡아당겨 뒷 공간을 널찍하게 확보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시커먼 어둠을 향해, 의자를 향해 소리 내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하며 걸어갔다. 의자는 손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그때, 의자에 거의 다가섰을 때 갑자기 주변이 환해졌다. 주변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나는 차로 달려가 황급히 올라타고 문을 걸었다. 나를 둘러싼 공간을 외부와 완전히 차단했지만 내 가슴은 밖에서도 들릴 만큼 거세게 쿵쾅거렸다. 그 소리 때문에라도 들킬 것 같았다. 나는 가슴에 손을 대고 세게 눌렀다. 진정하자. 진정해야 한다. 만일 들켰더라도 나는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래. 요의가 급해 어두운 곳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노상 방뇨가 그리 큰 죄는 아니지 않는가. 위기에서 생각해낸 핑계가 참으로 그럴싸해서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이제는 왜 갑자기 환해 졌는지를 알아야 할 차례이다. 주변은 조용하고 아무 변화도 없었다. 다만 가게 앞 도로 건너편에 가로등이 켜져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 이 주변은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켜지고 꺼지는 시스템이었지.
잠깐의 혼란이 있었지만 잠시 후면 가로등이 꺼질 것이고 주변은 다시 어두워질 테니 나는 의자를 가지고 가면 된다. 그러나 나는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동시에 그만두어야 할 이유들이 선명히 떠오른다. 이곳은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너무 가까이 있다. 범행현장은 멀수록 좋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탁자가 없지 않은가. 의자만 갖다 놓으면 탁자를 구해야 할 텐데 짝을 맞추려면 같은 색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오히려 찾느라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시동을 걸고 그곳을 떠났다.
6. 실행 5일 전
아무런 변화가 없는 평범한 오후다.
나는 요 며칠 매사에 미진한 느낌을 갖고 있다. 청소를 다 마쳐도, 설거지를 말끔히 끝내도 아직 정리할 것이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싱크대 속의 그릇정리를 미루고 있으므로 문을 열어보지 않았을 뿐 엉켜있는 그릇들의 잔상이 떠나지 않는 것처럼, 또는 계절이 바뀌었는데 철 지난 옷을 아직 맨 윗 서랍에 그대로 두고 있을 때의 은근한 조바심 같은 것이다. 그것은 그리 크지도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느낌의 정체를 조금씩 알아채면서부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괜히 시작했다는 것과 빨리 일을 마쳐야겠다는 것이다.
남편에게는 나의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남편이 고지식해서 그런 짓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내가 남편을 위해 헌신적인 내조를 하는 마누라여서도 아니다. 다만 남편의 선량함으로는 갈등 없이 일을 해치울 것 같지 않아서이다. 남편은 내가 하자면 할 것이다. 그러나 옥상에 놓인 우리의 노획물을 볼 때마다 양심의 가책으로 늘 불편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져다 놓아도 마찬가지 겠으나 남편은 실제상황에 대한 체험이 없으면 심각하지 않은 낙천적 성격을 가졌다. 그러므로 내가 체험을 다소 가볍게 전해주면 된다. 아니면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시작에 대한 후회와 빨리 일을 마치고 싶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두 가지 중 하나는 욕망이 아니므로 동등한 것은 아니다. 차라리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그만두기엔 너무 멀리 왔음을 알고 있다. 이미 옥상에 물건이 와 있는 상상을 마쳤기 때문에 이제 그만둔다는 것은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그 상실감은 견디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현재 가진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마트를 생각해 낸 것은 학생들이 제출한 사진 때문이었다. 이번 달이 ‘문화의 달’로 선정되어 있어서 학교에서는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전시회의 주제는 ‘문화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로 글짓기, 사진, 포스터를 전시하기로 되어있다. 나는 도덕을 가르치기 때문에 과목과의 연관이 많다는 이유로 사진부문을 맡았다. 학생들에게 주제와 관련이 있는 사진을 찍어서 제출하라고 했으며 지금 내 책상 위에는 많은 사진이 올라와 있다. 그중에서 내 눈을 한순간에 잡아당긴 것은 대형마트의 옥외행사장을 찍은 사진으로 거기엔 파란 의자와 테이블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파란 색은 눈이 부시도록 선명했으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무런 로고가 없는 것이 세파에 물들지 않은 천연물처럼 청초해보이기까지 했다. 사진을 찍은 학생의 의도는 옥외행사장에 함부로 버린 쓰레기를 통해 문화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되새기자는 것이었지만 나는 몇 개 정도 없어져봤자 티도 안날 것 같은 풍족함을 마음속에 새겨 넣었다.
퇴근을 하면서 마트에 들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건물을 돌아 옥외 행사장으로 갔다. 전체적으로 마트는 붐비고 있다. 저녁시간이기도 했지만 5월이라 나름대로의 행사를 하느라 사방에 걸려있는 현수막 때문에 더욱 붐벼 보였다. 마트의 문화교실에서 하는 각가지 전시회를 비롯해 가족이 참여하는 이벤트까지 다양했다. 5월은 이래저래 풍성한 달이다. 허지만 그 외양적인 풍성함은 나와는 무관한 것이다. 나는 다만 내가 보고자 하는 것에 온통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아웃 포커스로 찍은 사진처럼 의자와 탁자를 뺀 나머지는 그저 간신히 형체만 갖고 있는 비현실적인 것들일 뿐 이다. 과연 사진과 똑같은 배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아까 보았던 사진은 평면적인 느낌이 강해 그저 많을 뿐 이었는데 직접 현장에서 보니 많긴 하지만 나름대로 질서가 있어보였다. 질서가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무질서하게 방치되고 임자에게서 애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좋다.
나는 그날 새벽 한시에 집을 나섰다. 가장 중요한 것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마트까지 이 시간에는 20분이면 갈 수 있다. 집을 나서자마자 거리가 밝은 것이 당황스러웠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거리에 가로등이 켜져 있는 것을 납득 할 수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사람을 위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는데 나만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억울하다. 게다가 지금 가로등은 도시의 한사람인 나를 가장 배려해주지 않고 있음이 아닌가. 당황함을, 억울함을 용기로 바꾸기 위해 핸들 잡은 손에 잔뜩 힘을 넣는다.
드디어 눈앞에 거대한 밤의 마트가 들어왔다. 마트는 내 쪽을 향해 큰 등치를 돌려 세우고 있다. 차의 미등만 켜고 주차장을 돌아 옥외행사장으로 갔다.
옥외행사장은 어두웠으나 안쪽의 매장엔 불이 환하게 켜있고 올려다보니 3층의 창문에도 불이 켜져 있다. 매장엔 사람이 없어도 불을 켜 놓은 것일 테고 3층엔 당직자가 있을 것이다. 옥외 행사장은 건물의 바로 앞에 있고 3층 창문은 약간 옆으로 돌아서 있으니 누군가 내려다본다 해도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자판기 쪽으로 걸어갔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났지만 그것은 명분 있는 소리이므로 더 크다 한들 상관할 것이 없다. 어떤 일을 하건 명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는 상황인가 하는 생각이 짧게 떠올랐다가 사라졌지만 가슴에 희미한 균열의 자국을 남긴다.
사방은 조용하고 외로웠다. 이 시간에 이런 독립된 공간에서 대상이 없는 느낌을 접하니 기분이 괜찮았으므로 다음에 아무런 목적 없이 다시 와서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허지만 그렇게 세워 놓은 계획을 실천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식구들과 유럽여행 가는 것, 침대를 청소하기 쉽도록 평상 형으로 다 바꾸는 것, 하다못해 버튼이 헐거워 사용 할 때마다 위험을 느끼던 오븐조차 못 바꾸지 않았던가. 아무 일도 없었다면 할 수 있었는데 못하고 말았다. 계획보다 앞서는 것은 나쁜 우연이다. 그 우연은 주체적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다. 할 수 있을 때 얼른 하는 것이 최선인 것을 이제 다소 늦었지만 알았다. 그러니 지금 커피를 천천히 마시면서 느낌을 음미해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생각은 나를 어느 정도 편하게 해준다.
탁자와 의자는 무질서하게 있다. 개중에 의자를 포개어 벽에 기대어 놓은 것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앉았다 간 후 정리를 한 흔적은 없다. 그렇다면 이곳은 가장 적당한 장소이다. 무질서한 보관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든든한 것은 이곳의 규모이다. 이렇게 큰 마트에서, 하루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곳에서 그깟 플라스틱 의자 몇 개 잃어버린들 무슨 티가 나겠는가.
나는 마음을 정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오늘은 별이 총총하고 게다가 보름이라 달빛이 너무 밝다. 또한 내가 준비한 것은 살펴보는 것 까지였으므로 오늘 하지는 않을 것이다.
7. 실행 당일
오늘을 실행일로 잡은 것은 집이 비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출장 갔고 두 아이가 우연히 같은 날짜에 수학여행을 떠났다. 그러니까 집에는 나만 있으므로 나의 모든 시간은 자유롭다. 어떤 짓을 하건 나 혼자만 알고 꿀꺽 삼켜버릴 수 있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혼자 먹는 저녁이라 차림도 부실했지만 식욕이 일지 않는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니 겨우 7시 밖에 안 되었다. 시간이 더디게 간다. 이렇게 혼자 있게 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조금은 고독하고 품위 있게 보낼 수 있는 기회에 나는 전혀 감미롭지 않다. 지금부터 새벽 두시정도까지의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잠이라도 잘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시간을 뚝 잘라먹고 싶다.
나는 리모콘을 들고 TV를 켰다. 그리고 64개의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연결하면서 64개의 TV채널을 볼 수 있으며 매달 저렴한 요금을 낸다는 말에 이사 오면서 개통했다. 모든 것은 사실이었다. 또한 약간의 이상이 있어서 연락하면 지체 없이 달려와 AS도 마음에 들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채널이 있어서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채널이 아무리 많아도 보는 것은 몇 개의 채널만 볼 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소 쓸쓸한 일이다. 형편이 좋았을 때와 최악의 경제사정으로 살고 있는 지금을 비교해보면 실상 내가 쓰는 것에 그리 많은 차이는 없다. 나는 늘 절약했으며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소비보다는 절약이 미덕이라는 말을 굳게 믿었다. 가진 것이 많을 때의 절약은 대단한 미덕이지만 없을 때의 절약은 초라하다. 내가 64개의 채널에 대한 자율권을 갖고도다 보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결국 많이 가지고 많이 쓸 수 있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적게 쓰도록 예정된 운명 아니었을까. TV채널을 돌리는 손에 힘이 들어가고 그 속에서 진득하니 땀이 배어난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바로 잘 수 있도록 방과 거실을 정리했다. 나는 원래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집안을 정리했었다. 그것은 나의 오랜 습관으로 집에 들어왔을 때 상쾌함을 느끼기 위해서였지만 그로인해 나의 아침은 늘 분주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잠들기 전 말끔한 집안을 유지하고 상쾌하게 잠들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면 잠들기 전과 잠에서 깬 후가 다 상쾌하지 않을까. 출근 준비하는 아침은 또한 얼마나 홀가분할 것인가. 습관은 운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이제부턴 그렇게 해야겠다. 샤워까지 마쳤다. 이제 일을 하고 돌아와 그대로 잠자리에 들면 된다.
시간은 더디지만 그래도 계속 가고 있다.
2시에 집을 나섰다. 몇 일전과 모든 것이 똑 같다. 마트에 도착 했을 때 내 가슴은 심하게 뛰고 있었다. 커피를 한잔 뽑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3층의 창문 두개에 불이 켜져 있다. 당직자가 있을 테고 사무실 불이 켜져 있는 것일 테지만 이 시간이면 잠을 자거나 졸고 있을 것이다. 의자와 탁자들은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었으며 더러 포개어진 채 벽에 쌓여 있는 것도 그날 과 마찬가지다. 나는 종이컵을 구겨 휴지통에 던지고 자판기 옆에 있는 포개진 의자를 눈으로 세어 보았다.
4개가 있는 것을 찾았지만 휠씬 많은 의자들이 포개어져 있어서 그것을 빼는 것이 더 오래 걸릴 것 같다.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와 탁자를 겨냥 했다. 어떤 탁자는 파라솔이 꽂혀 있는 것도 있었는데 파라솔은 계획에 없었고 그리 소용에 닿을 것 같지 않았으므로 바로 앞에 있는 것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나는 의자를 천천히 포갰다. 천천히 한 이유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이다. 포갠 의자를 들고 차 있는 데로 왔다. 차 문을 열다가 내가 앞좌석을 당겨 놓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잊다니. 가슴이 다시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의자를 내려놓고 앞문을 열어 좌석을 앞으로 당겼다. 뒷문으로 가서 의자를 넣었다. 한 번에 잘 들어간다. 다시 돌아가 이번에는 탁자를 들었다. 탁자는 생각보다 훨씬 가벼웠으므로 번쩍 들어졌고 이내 다리가 옆으로 접혀졌다. 접혀진 탁자는 얇은 것이 둥근 쟁반 같았으므로 의자와 조수석 사이에 충분히 세워서 들어갔다. 탁자가 접혀진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었다. 만일 접히지 않았다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허술한 준비를 하다니 다시 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운전석까지 가는데 마지막 긴장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미등만 켜고 마트를 빠져 나왔다. 누가 따라 오는 것 같아 백미러를 보면서 악셀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따라 오더라도 이렇게 빨리는 아닐 텐데 자꾸 뒤가 당긴다. 마트에서 빠져 나오는 직선길이 끝나고 커브를 돌자 가슴은 조금씩 진정되고 대신 그 자리에 다른 감정이 스며든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아마 성취감 같은 것 아닐까 싶다. 차안 가득 노획물을 싣고 내 집으로 가는 것이 점점 현실감 있게 느껴지면서 내안의 느낌이 정체를 드러낸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소득의 기쁨인가. 잃지 않고 얻는 것에 대한 뿌듯함이 전신에 번지고 있다.
8. 실행 다음날
식구들이 돌아왔다.
자랑할 것이 있었으므로 기다림은 간절하고 만남은 설렌다. 옥상에 자리 잡은 의자와 탁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산뜻한 한편의 그림처럼 근사해 보인다. 그 윤기 나는 재질을 보면서 평소 내가 갖고 있던 플라스틱에 대한 편견을 말끔히 없애버리기로 했다. 물건은 제대로 가지고 온 것 같다. 흠집이 별로 없는 새것이다. 그동안 내가 찜해 두었던 다른 어느 것보다 더 좋은 물건이었으므로 나는 아주 만족스럽다. 물론 남편과 애들에게는 친구네서 얻었다고 출처를 밝혔다. 그런데, 의자에 앉아 있던 딸애가 파라솔이 없어서 멋이 없다고 말하는 것 아닌가.
파라솔, 그렇구나. 그 풍파를 겪으면서 야금야금 내 감성의 테두리는 깎여 나갔으므로 그저 실질적인 것에 마음이 급했는데 딸애는 아직 모든 것을 온전히 갖고 있었구나.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렇다면 파라솔 가져오는 것을 망설여서는 안 된다. 나는 친구에게 이야기해서 가져오겠노라고 약속했다.
남편은 그날 밤 옥상 난간에 기대 피우던 담배를 의자에 편히 앉아 여유 있게 피웠으나 나는 미처 끝내지 못한 조바심을 다시 느끼고 있다. 빨리 마무리 하리라. 이제는 망설이거나 떨면서 일을 더디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9. 실행 10일 후
새벽녘에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려 잠에서 깼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길에 경찰차가 서있고 앞 건물에 불이 환하게 켜있다.
저녁에 퇴근하면서 샤시 가게에 들러 물으니 도둑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3층에 두 집이 살고 있는데 보안 경보시스템을 갖춘 집은 괜찮았고 그 옆집만 털렸다고 한다. 요즘은 보안 시스템 스티커가 붙어 있으면 도둑이 들어갈 생각을 않는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다시 약간의 조바심이 마음속에서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스티커라도 얻어다 현관에 붙여놓을까. 아니면 다른 상점에 붙어 있는 것을 떼어 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새벽에 나가면 그까짓 것 떼는 것은 일도 아닐 텐데. 거기까지 생각하자 갑자기 울컥한 서러움의 뭉텅이가 가슴을 한차례 쓸고 지나간다. 그 느낌이 익숙하다.
얼마 전 새벽 두시에 마트로 가서 파라솔을 가져 왔다. 그날은 비가 왔으므로 빗소리가 모든 소리를 가려 주어서 수월했다. 나는 망설이거나 주위를 살피는 순서를 생략하고 가자마자 냉큼 집어 차에 싣고 속도를 내서 달려왔다. 파라솔을 탁자에서 빼낼 때 길이가 생각보다 길어 당황했지만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당황함이었을 뿐이다. 집 앞에 차를 세우는데 갑자기 빗줄기가 세졌다. 마치 한여름의 폭우처럼 퍼붓듯이 쏟아졌다. 파라솔을 꺼내 현관까지 오는 잠깐 동안 내 몸은 흠뻑 젖었다. 파라솔을 옥상에 두고 모두가 잠든 조용한 집안으로 들어왔다.
목욕탕 거울에 비친 화장기 없는 내 모습은 비에 젖어 추레했으며 나는 울고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샤워를 하면 괜찮아 질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보일러를 올렸다. 온수를 세게 틀고 그 뜨거움에 추레함을 씻었다. 나의 고운 자태, 고운 심성이 다시 드러나도록 열심히 씻었다. 그러면서 추레했던 내 모습을 절대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끝 -
성 별 : 여
나 이 : 44세
경 력 : 강원대학교 졸업. 중등 교사, 현 학원 강사
주 소 : (200-881) 춘천시 동내면 거두리 974-10 3F
(joma86@hanmail.net)
전 화 : 016-686-6540 / 033-262-6540
부 문 : 단편소설 ‘도둑 일기’
도 둑 일 기
1. 실행 2주 전
아마 이런 현상 아닐까. 반코트를 사려고 마음먹으면 온통 반코트 입은 사람만 눈에 들어오고 머리를 짧게 자르겠다고 결심하면 그런 머리만 눈에 띄는 것 말이다. 이것은 정신 의학적으로도 분명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길거리를 지나면서 플라스틱의자와 둥근 탁자를 유심히 보는 요즘의 습관에 대해 당위성을 부여했다. 흰색, 빨간색, 파란색. 대체적으로 색은 3가지이며 주로 음료수나 맥주회사에서 만든 것으로 로고가 의자등받이에 붙어 있다.
그전에는 길에 널렸다고 생각했는데 관심을 갖고 보니 실상 그렇지 않았다. 많지도 않았지만 있다 해도 가게 앞에 한두 개 놓여 있는 것이 고작이었고 그나마 밤이 되면 어김없이 안에 들여놓고 문을 닫는다. 그깟 플라스틱 의자 따위를 누가 집어간다고 좁은 가게에 들여놓는가에 대해 순간적으로 반발했지만 이렇게 집어가려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것에 임자가 있다는 사실이 무섭게 느껴진다. 무섭다는 것은 나에겐 생소한 감정이므로 그것을 변환 시켜서 내 안에 인식시키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옷이나 머리 따위의 가벼운 예를 들어 당위성을 부여한 것은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우리 집에 필요한 것은 의자 네 개와 탁자 하나이다. 의자가 네 개여야 하는 까닭은 네 식구이기 때문이다.
2. 실행 네 달 전
귀양살이를 떠나 낯설고 척박한 유배지에 들어서던 선비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이사해주는 사람들에게 뭐라도 먹여야 할 것 같아서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오다가 멀리서 바라본 이사의 형태가 그런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저게 남의 집 이사라면 그저 관조할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허지만 저건 내 일이다. 꿈도 아니고 손바닥 뒤집듯 단번에 바뀔 리 없는 현재 내 삶의 가장 표면에 드러나 있는 현실이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이라도 쳐서 벗어나고 싶은 갈망이 날카롭게 가슴을 뚫는다. 집안에 있을 때는 제법 값나가는 살림살이로 사랑깨나 받았던 물건들이 길에 널브러져 있으니 어쩜 저리도 궁색하단 말인가.
이사를 진두지휘하느라 길에 서있던 남편이 나를 발견하고는 내 쪽으로 오는데 웃는 얼굴이 맑아 보인다. 에고, 속도 없지. 저렇게 속이 없으니 친구들 보증으로 재산을 다 날렸지. 아끼고 아껴서 이만하면 앞으로 큰 걱정 없이 살겠다 싶었는데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자 밑 빠진 독에 채워놓은 술 마냥 다 빠져나갔다. 겨우 보증금 넣고 월세 내는 집에 들면서 그래도 거리에 나앉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는 말로 나를 달랬지만 내 속은 이미 치유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균열이 가 있었다.
그러나 내색 한들 뭐하랴. 상한 속을 드러내 남편까지 더 상하게 한들 달라지는 것이 있겠는가.
망해나가는 이사라 일부러 애들이 학교 가는 평일을 택했다. 학교 끝나면 새집으로 오라고 말하니 환경의 변화에 대한 기대로 즐거워하는 것 아닌가. 그래,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나도 골치 아픈 것 다 날려 보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리라. 혹시 친구들이 잘 되면 우리 돈을 찾을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는 좋을 일만 남았다.
3. 실행 두 달 전
1층은 샤시 가게이고 2층은 원룸이 4개 있으며 3층 전체가 우리 집이다. 이사 오고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얼굴도 모른다. 모두들 쥐처럼 먹을 것 챙겨 제 구멍에만 열심히 드나들 뿐 이었다. 현관 앞에 휴지가 떨어져 있어도 문 닫으면 그만이니까 절대 줍지 않아서 그 휴지는 며칠이고 방치되어 있었다. 계단과 2층 복도는 늘 먼지가 뽀얗게 앉아 코를 맹맹하게 했다. 그것은 경제적 전락으로 이곳에 유폐 되어 있다는 느낌에 황폐함을 하나 더 첨가해주었다. 2층에서 3층과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만 청소하다가 1층부터 하기로 결심한 것은 깔끔을 떨기 위해서가 아니라 황폐함을 떨쳐내기 위함이었다.
나는 열심히 쓸고 닦았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은 조금만 닦아도 금새 윤이 났다. 잡티 없이 투명한 창문을 보면서 반들반들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기분이 좋다. 이 좋은 기분을 밑천삼아 이 집에 정이 붙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내 집이 아닌 집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생소한 일이던가. 신혼 시절 5년을 빼곤 늘 내 집이 있었다. 평수를 늘려가다가 50평까지 갔었다. 그러나 내 인생에 이런 복병이 숨어 있을 줄 내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신혼시절의 셋집은 오히려 달콤한 추억이었으나 중년으로 접어든 시기의 셋집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초라함을 훨씬 넘어서므로 어떤 것으로도 대치해서 스스로를 위로할 말이 없다. 내 집이 아닌 집에서 사는 것은 일상에서 내 존재를 살아나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실로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은 옥상에서 담배를 피운다.
남편이 담배 피울 때 따라 올라가 아직 완전히 모습을 갖추지 않아 전반적으로 어두운 신흥 상가단지를 둘러보는 것이 조금은 신선하다. 남편이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것에 대해 내가 관대한 것은 그 때문이다. 담배를 찾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려는 눈치가 보이면 나는 기를 쓰고 따라 올라갔다. 높이가 거의 같은 건물들이라 옥상은 사방이 트여 있다. 옥상 난간에 기대서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노라면 잃어버린 것에 대한 회한이 슬픔으로 바뀌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슬픔은 징조가 좋은 감정이다. 화가 난다거나 억울한 느낌들은 대상이 분명하고 되받아치기에 대한 욕망을 내포하고 있지만 슬픔은 순수하게 일어나는 내면의 소리일 뿐 대상을 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희망적인 느낌으로의 전환이 쉽다. 옥상에 올라와 남편이 담배를 한대 피우는 동안 나는 슬픔을 가슴가득 채우고 그것을 희망으로 바꾸는 작업을 재빨리 해치운다. 그러니까 어느 날 남편이 여기에 의자나 몇 개 갖다 놓을까 라고 이야기 했을 때 그 말이 유혹적으로 들렸던 것은 내가 옥상에서 체험하는 느낌의 전이 현상이었을 것이다.
의자를 갖다 놓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몇 가지 그림이 떠올랐다.
그것은 의자를 이용한 일상적인 행복의 모습이 아니라 인증 같은 거였다. 애들은 이 집이 셋집이라는 것을 모른다. 엄밀히 말하면 셋집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도 없다. 애들에게 집이라는 것은 항상 소유가 우리 것 이라는 정의가 서 있다. 얼마 전 작은애가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서를 가지고 왔는데 거기에는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소유를 밝히는 항목이 있었다. 자가, 전세 , 월세. 나는 약간 망설이다가 ‘자가’에 동그라미를 쳐서 보냈다. 단지 조사일 뿐 확인을 위한 무엇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괜히 담임선생님에게 궁색한 꼴을 보일 필요가 있으랴 싶었다. 나도 학교에 근무하므로 가정환경조사서가 어느 정도까지만 필요한 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편의 일이 잘 되고 친구들 일도 잘 되면 당장 다음 달이라도 다시 집을 사서 이사 갈 수 있는 일 아닌가. 내가 걸고 있는 희망이 허공에 부유하는 연기 같은 것일지라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러므로 내가‘자가’에 동그라미를 한 것은 약간의 미래적인 지향을 생각한 것일 뿐 앙큼한 거짓의 의사는 없다.
여기 원룸 사람들과 1층 샤시 가게는 옥상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옥상은 우리의 전유물인 셈이고 거기에 내 물건을 갖다 놓는 것은 확실한 공간 확보이며 이 집이 우리 집처럼 보이는 인증 같은 것이 되어줄 것이다. 물론 애들에게, 그리고 어느 정도는 나에게도.
그래, 옥상을 잘 써야겠다. 옥상이 있다는 것은 주택의 장점 아닌가. 의자를 갖다 놓는 것은 물론이고 빨래 줄도 매서 선선한 바람과 쨍쨍한 햇빛에 빨래를 청결히 말려야겠다. 그리고 이참에 야채도 키워 볼 것이다.
4. 실행 한 달 전
퇴근하면서 옥상으로 바로 올라가 빨래를 걷었다. 낮에 햇빛이 가득 쏟아지는 운동장을 내다보며 출근 전에 널어놓은 빨래를 생각하니 뿌듯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바짝 말라 있었다. 옥상엔 아직 빨래줄 이외에 가져다 놓은 것이 없다. 가능할만한 지인에게 의자와 탁자를 부탁했으나 요즘은 별로 여분이 없다면서 한 6만 원 정도 주면 새것을 살 수 있다는 말을 어제 들었다. 그까짓 플라스틱 의자야 사방에 널린 것이므로 그저 마음만 먹으면 당장 얻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거저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허탈하다. 6만원이면 보편적으로 생각할 때 큰돈은 아니지만 한 푼도 낭비할 수 없는 지금의 나에게는 큰돈이다. 6만원이면 남편과 애들을 데리고 약간의 근사한 외식을 할 수 있으며 딸애에게 제법 질 좋은 청바지를 사 줄 수 있다. 또한 냉장고에 과일을 가득 채워 놓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6만원을 허술하게 지출 할 수는 없다.
만져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돈에 대한 아쉬움이 아직도 가슴을 찢고 있는데 내 지갑에 있는 돈을 꺼내 가구의 근처에도 못 미치는 일회 용기 같은 것들을 살 수는 없다. 결코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허지만 그것만은 꼭 가져다 놓고 싶다. 아니, 갖다 놓고야 말겠다는 의욕이 지배적이다. 마치 원래 갖고 있었으나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는 것처럼 점차 집착 쪽에 가까워지고 있다.
5. 실행 10일 전 쯤
허술한 곳을 발견 했다.
허술하다는 것은 밤에 밖에 내 놓은 채 문 닫는 곳을 말하는 것이다. 구석에 밀어 두거나 어떤 곳은 그냥 그 자리에 놓아 둔 가게도 있다. 내가 눈독을 들인 곳은 우리 동네 입구에 있는 아구찜 가게이다. 그 가게는 앞에 어느 정도의 여유 공간이 있어서 바닥을 녹색 페인트로 칠해 색다른 분위기를 준다. 거기에 두개의 원탁과 의자들을 놓았는데 그것들이 빨간색이었으므로 아주 그럴듯해 보였다. 아구찜을 먹고 나서 커피 한잔을 뽑아 밖으로 나와 지독히 매운 것을 먹느라 온통 곤두 서있던 입안의 흥분을 가라 앉혀 뿌듯한 포만감으로 바꾸는 동안 앉아 있는 용도로 쓰이지 않을 까 싶다. 실제로 지나다니면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앉아있는 사람들을 목격한 적이 있다.
나는 늦은 밤 슈퍼에 다녀오다가 불 꺼진 아구찜 가게 밖 한 구석에 의자와 탁자가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다음 날 밤 일부러 늦은 시간에 나가 본 것은 어쩌다 한번만 안 들여 놓은 것이 아닌가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의자와 탁자는 어제처럼 그렇게 놓여 있다. 나는 가슴이 뛰었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한 것이 없고 실행한 것도 없는데 가슴은 뛰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 집의 재무구조가 나쁜 것은 아닐까에 생각이 미쳤지만 장사라도 잘 된다면 괜찮을 것이라고 답을 내렸다.
저녁에 퇴근하다가 일부러 손님이 얼마나 있는지 들여다보았는데 별로 없었다. 다음날이 토요일이어서 낮에 퇴근하다보니 역시 없었고 다시 저녁에 일부러 나가보았지만 가게는 한산했다. 나는 이 가게에서 하려고 했던 일을 접기로 했다. 장사도 안 되는데 다른 일로 손실을 입힐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 결심을 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결심을 하고 나니 이제 나와는 무관한 물건으로 보였다. 가져오면 안 되는 것은 내 것이 아니므로 그것은 이미 내 의식 안에서의 물건들은 아니다. 다음 날 출근하다 본 그것들은 내가 가르치지 않는 반 학생들을 볼 때처럼 신경이 가지 않았다.
그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다른 골목에 들여 놓지 않은 의자를 본 것은 아구찜 가게를 대상에서 제외한 다음날 밤 이었다. 내가 12시 넘어 밖으로 나온 이유는 다른 곳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그곳은 종묘상으로 도대체 이런 곳으로 누가 씨앗 따위를 사러 올까 싶은 생각을 했던 가게였는데 내가 찾는 의자가 있었다. 가게 출입구에 의자를 겹쳐서 쌓아 놓았는데 세어보니 4개이다. 주변은 칠흙같이 어두웠다. 나는 차를 가지고 나왔으며 조수석을 앞으로 완전히 당기면 뒷좌석에 겹쳐진 의자 4개 정도는 너끈히 들어갈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가슴은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져갈 생각을 하고 나온 것은 아니었으므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사실 그동안 탐색을 했을 뿐 집으로 가져오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지금 가져가면 이것이야말로 우발적 범행이 되는 것이다. 우발적 범행이라는 낱말을 떠올리니 가슴은 더 뛰었다. 그래도 지금 가져가면 쉬울 것 아닌가. 실행에 옮기겠다는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서는 단계를 뛰어 넘는 것 아닌가. 그래 지금하자. 망설이면 잃게 된다는 것은 이미 질리게 체험하지 않았던가.
나는 차의 시동을 끄고 조수석 의자를 한껏 잡아당겨 뒷 공간을 널찍하게 확보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시커먼 어둠을 향해, 의자를 향해 소리 내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하며 걸어갔다. 의자는 손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그때, 의자에 거의 다가섰을 때 갑자기 주변이 환해졌다. 주변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나는 차로 달려가 황급히 올라타고 문을 걸었다. 나를 둘러싼 공간을 외부와 완전히 차단했지만 내 가슴은 밖에서도 들릴 만큼 거세게 쿵쾅거렸다. 그 소리 때문에라도 들킬 것 같았다. 나는 가슴에 손을 대고 세게 눌렀다. 진정하자. 진정해야 한다. 만일 들켰더라도 나는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래. 요의가 급해 어두운 곳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노상 방뇨가 그리 큰 죄는 아니지 않는가. 위기에서 생각해낸 핑계가 참으로 그럴싸해서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이제는 왜 갑자기 환해 졌는지를 알아야 할 차례이다. 주변은 조용하고 아무 변화도 없었다. 다만 가게 앞 도로 건너편에 가로등이 켜져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 이 주변은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켜지고 꺼지는 시스템이었지.
잠깐의 혼란이 있었지만 잠시 후면 가로등이 꺼질 것이고 주변은 다시 어두워질 테니 나는 의자를 가지고 가면 된다. 그러나 나는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동시에 그만두어야 할 이유들이 선명히 떠오른다. 이곳은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너무 가까이 있다. 범행현장은 멀수록 좋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탁자가 없지 않은가. 의자만 갖다 놓으면 탁자를 구해야 할 텐데 짝을 맞추려면 같은 색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오히려 찾느라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시동을 걸고 그곳을 떠났다.
6. 실행 5일 전
아무런 변화가 없는 평범한 오후다.
나는 요 며칠 매사에 미진한 느낌을 갖고 있다. 청소를 다 마쳐도, 설거지를 말끔히 끝내도 아직 정리할 것이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싱크대 속의 그릇정리를 미루고 있으므로 문을 열어보지 않았을 뿐 엉켜있는 그릇들의 잔상이 떠나지 않는 것처럼, 또는 계절이 바뀌었는데 철 지난 옷을 아직 맨 윗 서랍에 그대로 두고 있을 때의 은근한 조바심 같은 것이다. 그것은 그리 크지도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느낌의 정체를 조금씩 알아채면서부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괜히 시작했다는 것과 빨리 일을 마쳐야겠다는 것이다.
남편에게는 나의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남편이 고지식해서 그런 짓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내가 남편을 위해 헌신적인 내조를 하는 마누라여서도 아니다. 다만 남편의 선량함으로는 갈등 없이 일을 해치울 것 같지 않아서이다. 남편은 내가 하자면 할 것이다. 그러나 옥상에 놓인 우리의 노획물을 볼 때마다 양심의 가책으로 늘 불편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져다 놓아도 마찬가지 겠으나 남편은 실제상황에 대한 체험이 없으면 심각하지 않은 낙천적 성격을 가졌다. 그러므로 내가 체험을 다소 가볍게 전해주면 된다. 아니면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시작에 대한 후회와 빨리 일을 마치고 싶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두 가지 중 하나는 욕망이 아니므로 동등한 것은 아니다. 차라리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그만두기엔 너무 멀리 왔음을 알고 있다. 이미 옥상에 물건이 와 있는 상상을 마쳤기 때문에 이제 그만둔다는 것은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그 상실감은 견디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현재 가진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마트를 생각해 낸 것은 학생들이 제출한 사진 때문이었다. 이번 달이 ‘문화의 달’로 선정되어 있어서 학교에서는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전시회의 주제는 ‘문화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로 글짓기, 사진, 포스터를 전시하기로 되어있다. 나는 도덕을 가르치기 때문에 과목과의 연관이 많다는 이유로 사진부문을 맡았다. 학생들에게 주제와 관련이 있는 사진을 찍어서 제출하라고 했으며 지금 내 책상 위에는 많은 사진이 올라와 있다. 그중에서 내 눈을 한순간에 잡아당긴 것은 대형마트의 옥외행사장을 찍은 사진으로 거기엔 파란 의자와 테이블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파란 색은 눈이 부시도록 선명했으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무런 로고가 없는 것이 세파에 물들지 않은 천연물처럼 청초해보이기까지 했다. 사진을 찍은 학생의 의도는 옥외행사장에 함부로 버린 쓰레기를 통해 문화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되새기자는 것이었지만 나는 몇 개 정도 없어져봤자 티도 안날 것 같은 풍족함을 마음속에 새겨 넣었다.
퇴근을 하면서 마트에 들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건물을 돌아 옥외 행사장으로 갔다. 전체적으로 마트는 붐비고 있다. 저녁시간이기도 했지만 5월이라 나름대로의 행사를 하느라 사방에 걸려있는 현수막 때문에 더욱 붐벼 보였다. 마트의 문화교실에서 하는 각가지 전시회를 비롯해 가족이 참여하는 이벤트까지 다양했다. 5월은 이래저래 풍성한 달이다. 허지만 그 외양적인 풍성함은 나와는 무관한 것이다. 나는 다만 내가 보고자 하는 것에 온통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아웃 포커스로 찍은 사진처럼 의자와 탁자를 뺀 나머지는 그저 간신히 형체만 갖고 있는 비현실적인 것들일 뿐 이다. 과연 사진과 똑같은 배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아까 보았던 사진은 평면적인 느낌이 강해 그저 많을 뿐 이었는데 직접 현장에서 보니 많긴 하지만 나름대로 질서가 있어보였다. 질서가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무질서하게 방치되고 임자에게서 애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좋다.
나는 그날 새벽 한시에 집을 나섰다. 가장 중요한 것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마트까지 이 시간에는 20분이면 갈 수 있다. 집을 나서자마자 거리가 밝은 것이 당황스러웠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거리에 가로등이 켜져 있는 것을 납득 할 수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사람을 위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는데 나만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억울하다. 게다가 지금 가로등은 도시의 한사람인 나를 가장 배려해주지 않고 있음이 아닌가. 당황함을, 억울함을 용기로 바꾸기 위해 핸들 잡은 손에 잔뜩 힘을 넣는다.
드디어 눈앞에 거대한 밤의 마트가 들어왔다. 마트는 내 쪽을 향해 큰 등치를 돌려 세우고 있다. 차의 미등만 켜고 주차장을 돌아 옥외행사장으로 갔다.
옥외행사장은 어두웠으나 안쪽의 매장엔 불이 환하게 켜있고 올려다보니 3층의 창문에도 불이 켜져 있다. 매장엔 사람이 없어도 불을 켜 놓은 것일 테고 3층엔 당직자가 있을 것이다. 옥외 행사장은 건물의 바로 앞에 있고 3층 창문은 약간 옆으로 돌아서 있으니 누군가 내려다본다 해도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자판기 쪽으로 걸어갔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났지만 그것은 명분 있는 소리이므로 더 크다 한들 상관할 것이 없다. 어떤 일을 하건 명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는 상황인가 하는 생각이 짧게 떠올랐다가 사라졌지만 가슴에 희미한 균열의 자국을 남긴다.
사방은 조용하고 외로웠다. 이 시간에 이런 독립된 공간에서 대상이 없는 느낌을 접하니 기분이 괜찮았으므로 다음에 아무런 목적 없이 다시 와서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허지만 그렇게 세워 놓은 계획을 실천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식구들과 유럽여행 가는 것, 침대를 청소하기 쉽도록 평상 형으로 다 바꾸는 것, 하다못해 버튼이 헐거워 사용 할 때마다 위험을 느끼던 오븐조차 못 바꾸지 않았던가. 아무 일도 없었다면 할 수 있었는데 못하고 말았다. 계획보다 앞서는 것은 나쁜 우연이다. 그 우연은 주체적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다. 할 수 있을 때 얼른 하는 것이 최선인 것을 이제 다소 늦었지만 알았다. 그러니 지금 커피를 천천히 마시면서 느낌을 음미해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생각은 나를 어느 정도 편하게 해준다.
탁자와 의자는 무질서하게 있다. 개중에 의자를 포개어 벽에 기대어 놓은 것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앉았다 간 후 정리를 한 흔적은 없다. 그렇다면 이곳은 가장 적당한 장소이다. 무질서한 보관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든든한 것은 이곳의 규모이다. 이렇게 큰 마트에서, 하루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곳에서 그깟 플라스틱 의자 몇 개 잃어버린들 무슨 티가 나겠는가.
나는 마음을 정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오늘은 별이 총총하고 게다가 보름이라 달빛이 너무 밝다. 또한 내가 준비한 것은 살펴보는 것 까지였으므로 오늘 하지는 않을 것이다.
7. 실행 당일
오늘을 실행일로 잡은 것은 집이 비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출장 갔고 두 아이가 우연히 같은 날짜에 수학여행을 떠났다. 그러니까 집에는 나만 있으므로 나의 모든 시간은 자유롭다. 어떤 짓을 하건 나 혼자만 알고 꿀꺽 삼켜버릴 수 있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혼자 먹는 저녁이라 차림도 부실했지만 식욕이 일지 않는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니 겨우 7시 밖에 안 되었다. 시간이 더디게 간다. 이렇게 혼자 있게 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조금은 고독하고 품위 있게 보낼 수 있는 기회에 나는 전혀 감미롭지 않다. 지금부터 새벽 두시정도까지의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잠이라도 잘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시간을 뚝 잘라먹고 싶다.
나는 리모콘을 들고 TV를 켰다. 그리고 64개의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연결하면서 64개의 TV채널을 볼 수 있으며 매달 저렴한 요금을 낸다는 말에 이사 오면서 개통했다. 모든 것은 사실이었다. 또한 약간의 이상이 있어서 연락하면 지체 없이 달려와 AS도 마음에 들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채널이 있어서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채널이 아무리 많아도 보는 것은 몇 개의 채널만 볼 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소 쓸쓸한 일이다. 형편이 좋았을 때와 최악의 경제사정으로 살고 있는 지금을 비교해보면 실상 내가 쓰는 것에 그리 많은 차이는 없다. 나는 늘 절약했으며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소비보다는 절약이 미덕이라는 말을 굳게 믿었다. 가진 것이 많을 때의 절약은 대단한 미덕이지만 없을 때의 절약은 초라하다. 내가 64개의 채널에 대한 자율권을 갖고도다 보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결국 많이 가지고 많이 쓸 수 있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적게 쓰도록 예정된 운명 아니었을까. TV채널을 돌리는 손에 힘이 들어가고 그 속에서 진득하니 땀이 배어난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바로 잘 수 있도록 방과 거실을 정리했다. 나는 원래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집안을 정리했었다. 그것은 나의 오랜 습관으로 집에 들어왔을 때 상쾌함을 느끼기 위해서였지만 그로인해 나의 아침은 늘 분주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잠들기 전 말끔한 집안을 유지하고 상쾌하게 잠들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면 잠들기 전과 잠에서 깬 후가 다 상쾌하지 않을까. 출근 준비하는 아침은 또한 얼마나 홀가분할 것인가. 습관은 운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이제부턴 그렇게 해야겠다. 샤워까지 마쳤다. 이제 일을 하고 돌아와 그대로 잠자리에 들면 된다.
시간은 더디지만 그래도 계속 가고 있다.
2시에 집을 나섰다. 몇 일전과 모든 것이 똑 같다. 마트에 도착 했을 때 내 가슴은 심하게 뛰고 있었다. 커피를 한잔 뽑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3층의 창문 두개에 불이 켜져 있다. 당직자가 있을 테고 사무실 불이 켜져 있는 것일 테지만 이 시간이면 잠을 자거나 졸고 있을 것이다. 의자와 탁자들은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었으며 더러 포개어진 채 벽에 쌓여 있는 것도 그날 과 마찬가지다. 나는 종이컵을 구겨 휴지통에 던지고 자판기 옆에 있는 포개진 의자를 눈으로 세어 보았다.
4개가 있는 것을 찾았지만 휠씬 많은 의자들이 포개어져 있어서 그것을 빼는 것이 더 오래 걸릴 것 같다.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와 탁자를 겨냥 했다. 어떤 탁자는 파라솔이 꽂혀 있는 것도 있었는데 파라솔은 계획에 없었고 그리 소용에 닿을 것 같지 않았으므로 바로 앞에 있는 것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나는 의자를 천천히 포갰다. 천천히 한 이유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이다. 포갠 의자를 들고 차 있는 데로 왔다. 차 문을 열다가 내가 앞좌석을 당겨 놓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잊다니. 가슴이 다시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의자를 내려놓고 앞문을 열어 좌석을 앞으로 당겼다. 뒷문으로 가서 의자를 넣었다. 한 번에 잘 들어간다. 다시 돌아가 이번에는 탁자를 들었다. 탁자는 생각보다 훨씬 가벼웠으므로 번쩍 들어졌고 이내 다리가 옆으로 접혀졌다. 접혀진 탁자는 얇은 것이 둥근 쟁반 같았으므로 의자와 조수석 사이에 충분히 세워서 들어갔다. 탁자가 접혀진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었다. 만일 접히지 않았다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허술한 준비를 하다니 다시 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운전석까지 가는데 마지막 긴장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미등만 켜고 마트를 빠져 나왔다. 누가 따라 오는 것 같아 백미러를 보면서 악셀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따라 오더라도 이렇게 빨리는 아닐 텐데 자꾸 뒤가 당긴다. 마트에서 빠져 나오는 직선길이 끝나고 커브를 돌자 가슴은 조금씩 진정되고 대신 그 자리에 다른 감정이 스며든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아마 성취감 같은 것 아닐까 싶다. 차안 가득 노획물을 싣고 내 집으로 가는 것이 점점 현실감 있게 느껴지면서 내안의 느낌이 정체를 드러낸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소득의 기쁨인가. 잃지 않고 얻는 것에 대한 뿌듯함이 전신에 번지고 있다.
8. 실행 다음날
식구들이 돌아왔다.
자랑할 것이 있었으므로 기다림은 간절하고 만남은 설렌다. 옥상에 자리 잡은 의자와 탁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산뜻한 한편의 그림처럼 근사해 보인다. 그 윤기 나는 재질을 보면서 평소 내가 갖고 있던 플라스틱에 대한 편견을 말끔히 없애버리기로 했다. 물건은 제대로 가지고 온 것 같다. 흠집이 별로 없는 새것이다. 그동안 내가 찜해 두었던 다른 어느 것보다 더 좋은 물건이었으므로 나는 아주 만족스럽다. 물론 남편과 애들에게는 친구네서 얻었다고 출처를 밝혔다. 그런데, 의자에 앉아 있던 딸애가 파라솔이 없어서 멋이 없다고 말하는 것 아닌가.
파라솔, 그렇구나. 그 풍파를 겪으면서 야금야금 내 감성의 테두리는 깎여 나갔으므로 그저 실질적인 것에 마음이 급했는데 딸애는 아직 모든 것을 온전히 갖고 있었구나.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렇다면 파라솔 가져오는 것을 망설여서는 안 된다. 나는 친구에게 이야기해서 가져오겠노라고 약속했다.
남편은 그날 밤 옥상 난간에 기대 피우던 담배를 의자에 편히 앉아 여유 있게 피웠으나 나는 미처 끝내지 못한 조바심을 다시 느끼고 있다. 빨리 마무리 하리라. 이제는 망설이거나 떨면서 일을 더디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9. 실행 10일 후
새벽녘에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려 잠에서 깼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길에 경찰차가 서있고 앞 건물에 불이 환하게 켜있다.
저녁에 퇴근하면서 샤시 가게에 들러 물으니 도둑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3층에 두 집이 살고 있는데 보안 경보시스템을 갖춘 집은 괜찮았고 그 옆집만 털렸다고 한다. 요즘은 보안 시스템 스티커가 붙어 있으면 도둑이 들어갈 생각을 않는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다시 약간의 조바심이 마음속에서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스티커라도 얻어다 현관에 붙여놓을까. 아니면 다른 상점에 붙어 있는 것을 떼어 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새벽에 나가면 그까짓 것 떼는 것은 일도 아닐 텐데. 거기까지 생각하자 갑자기 울컥한 서러움의 뭉텅이가 가슴을 한차례 쓸고 지나간다. 그 느낌이 익숙하다.
얼마 전 새벽 두시에 마트로 가서 파라솔을 가져 왔다. 그날은 비가 왔으므로 빗소리가 모든 소리를 가려 주어서 수월했다. 나는 망설이거나 주위를 살피는 순서를 생략하고 가자마자 냉큼 집어 차에 싣고 속도를 내서 달려왔다. 파라솔을 탁자에서 빼낼 때 길이가 생각보다 길어 당황했지만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당황함이었을 뿐이다. 집 앞에 차를 세우는데 갑자기 빗줄기가 세졌다. 마치 한여름의 폭우처럼 퍼붓듯이 쏟아졌다. 파라솔을 꺼내 현관까지 오는 잠깐 동안 내 몸은 흠뻑 젖었다. 파라솔을 옥상에 두고 모두가 잠든 조용한 집안으로 들어왔다.
목욕탕 거울에 비친 화장기 없는 내 모습은 비에 젖어 추레했으며 나는 울고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샤워를 하면 괜찮아 질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보일러를 올렸다. 온수를 세게 틀고 그 뜨거움에 추레함을 씻었다. 나의 고운 자태, 고운 심성이 다시 드러나도록 열심히 씻었다. 그러면서 추레했던 내 모습을 절대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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