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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단편/핸드폰 무덤/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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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12회 작성일 06-07-2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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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폰 무덤  

                                                            
  통근버스를 타고 퇴근 하는데 진동으로 해놓은 핸드폰이 바지주머니에서는 못살겠다는 듯이 부들부들 떨었다. 거의 3일 만에 처음 울리는 벨이다. 물론 그동안 “오빠 나 한가해!” 라든가 “당첨! 대박 지금 전화 하세요.”같은 불특정 다수인에게 보내는 광고성메일은 거의매일 한두 번씩 왔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만나 적이 있거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오는 경우는 드문 일이었다. 누굴까? 모두들 눈을 지그시 감고 퇴근하는 통근버스 안에서의 통화소리는 침묵의 균형을 깨뜨려 시선집중을 받을 수도 있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핸드폰은 진동을 멈추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뗐다. 받을 껄 그랬나. 조금 궁금해진다. 발신자표시를 본다. 기억에 없는 번호다.
  버스는 유령 같은 안개를 해치며 달리고 있다. 안개 속에 내리는 파뿌리 같은 가는 비가 널따란 차창에 부딪쳤다가 물방울이 모여 무거워질 때마다 힘겹게 흘러내렸다. 무성영화 같은 안개속의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또 핸드폰이 울린다. 부르르, 부르르 바지주머니가 떨렸다. 나란히 앉은 직원이 감고 있던 눈을 뜬다. 안받으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라도 떨어댈 것 같다.  
  “저 정숙인데요.”
  온 도시가 안개 속에 가라앉은 잠수함처럼 낮게 침묵하고 있는데 여자만 깨어있는 것 같았다. 단정하고 정숙한 여자의 목소리는 무선전파를 타고 잘린 나무의 밑둥에 남아있는 나이테처럼 퍼져가다 어느 순간 내 핸드폰 속으로 빠져 들어왔다.    
  “술 한 잔만 사주시면 안 될까요?”
  이름처럼 정숙한, 적어도 나를 만나기 전 까지는 그랬던, 오정숙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3년이 지났다. 한 남자가 병원으로 나를 찾아 왔었다. 그 남자는 오정숙의 친구와 함께 왔었다. 키가 헌칠한 남자는 내가 근무하는 부서 앞에 붙여놓은 좌석배치도에 있는 직원들 사진에 코를 박고 있었다. 그 좌석배치도에는 시쳇말로 커추리틱한 내 사진도 붙어있었다. 주간수지결산보고를 하느라 간부 방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에 나는 그 남자와 마주쳤다. 나는 그 건장한 남자가 오정숙의 남편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시치미를 뚝 떼고 사무실 문을 지나 1층 로비에 있는 직원휴게실로 내려갔다.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자꾸만 헛디뎌졌다. 휴게실에 앉아서 차 한 잔을 시켰다. 세상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한 것 같은 멍한 표정으로 찻잔에 입술을 댔다가 불에 덴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그 바람에 약간의 차를 대리석 바닥에 쏟았다. 차를 따라주는 종업원이 ‘좀 뜨거워요.’ 하는 말을 흘려들었던 것이다. 나는 편집증이 심한 사람처럼 구두 발로 대리석바닥을 비비며 한사코 그 자국을 지우려 하고 있었다. 바닥에 흘린 노르스름한 자국은 구두바닥에 이리저리 밀려다닐 뿐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관성적으로 같은 동작을 계속하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자국을 빨리 지워버려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만이 노랗게 차있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었다.
  “저 오정숙이 친군데요.”
  직원휴게실로 찾아와 나를 만난 정숙이의 친구는 함량 미달인 선물꾸미를 풀어본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갸우뚱 하며 엉덩이를 의자에 반쯤 걸터앉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턱을 쭉 내밀며 나를 바라보았다. 믿기지 않았던 것은 한때 나도 마찬 가지였다. 정숙이가 왜 하필이면 나와 연애를 하려 했을까.  정숙이 친구는 검정 바탕에 휜 줄기가 날렵하게 새겨진 손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내어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내 턱 아래로 밀어 넣었다. 정숙이의 핸드폰통화 명세서였다. 그것을 정숙이가 정숙하게 뽑아다 주지는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것이 정숙이 친구 손에 들어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지만, 하루에도 십 수회씩 통화한 내 핸드폰 번호가 백지위에 일렬종대로 줄을 맞춰 누워있었다. 그것은 마치 철로아래 숨죽이고 빼곡히 누워있는 받침목 같기도 하고, 총살을 기다리는 사형수들 같기도 했다. 대충 흩어보아도 퇴근 무렵이거나 새벽시간대가 대부분인 10여초 안팎의 짧은 통화들이었다.  
  정숙이와 나는 그때 거의매일 퇴근 후에 만나 모텔에 들렸다. 그런데 유아원에서 어린 딸을 찾아 집으로 가야하는 정숙이에게 문제가 생겼다. 매일 그녀의 딸만 늦게까지 남아있어 유아원선생님 보기도 민망하고 아이도 늦게 온다고 보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숙이와 나는 저녁에 만나는 것의 절반을 새벽에 만나기로 했었다. 정숙이는 수영을 배운다며 새벽에 일찍 나오면 되었고, 나는 서울근교에서 시내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으므로 러시아워 시간을 피해 항상 일찍 출근하여 병원근처 사우나 같은 곳에서 시간을 죽였기 때문에 따로 핑계를 대야할 문제는 없었다. 새벽에 내가 먼저 모텔을 잡아 들어가 있으면 따로 도착한 정숙이가 방 번호를 확인하는 짧은 통화기록들 이었다. 우리의 만남은 모든 것이 자동화된 시스템처럼 완벽하고 간결했다. 그리고 밤보다 새벽의 만남은 더욱 상쾌했다.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짜낸 그 기발한 연애작전기록은 아직 보안을 유지해야할 기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해체된 암호문서처럼 맥없이 정숙이 남편 앞에 풀려져있었다. 그녀와 나의 가교였던 핸드폰이 그 만남의 일지를 쓰고, 그 기록이 쇠사슬이 되어 내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있었다. 난수표 같은 전화번호와 통화날짜만이 벌떼처럼 왱왱거리며 아무런 질서도 없이 흰 종이위에서 날아올랐다. 그 소리는 꼭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핸드폰소리 같았다. 그 소리들은 첩첩한 공간을 무한히 떠돌다 서로 부딪쳐서 깨어지기도 하고 융합하여 전혀 다른 소리를 만들기도 하고 더러는 흔적도 없이 소멸되기도 했다.
  그중에서 유난히 또렷하게 들려오는 핸드폰소리, 그것은 정숙이와 내가 처음 만나게 된 그날의 별소리였다. 퇴근 무렵 걸려온 정체불명의 전화를 받기위해 핸드폰 폴더를 열자 ‘술 한 잔만 사주시면 안 될까요?’ 하는 코맹맹이소리가 났다. 다짜고짜 흘러나온 그 소리가 처음에 나는 어느 성인광고회사에서 보낸 상업광고인줄 알았다. 내가 ‘누구.......?’ 하고 되물었을 때도 정숙이는 내가 치과의사인줄만 알았다고 했다. ‘저 오정숙 인데요.’라고 말하면서 생각하니 정숙이의 핸드폰 끝에 붙어있는 남자는 정숙이가 만나고 싶어 하는 그 젊은 치과의사가 아니더란 것이었다. ‘아차!’ 했지만 운명은 이미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깬 오르페우스처럼 돌아 올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만 때였더란다. 하지만 나는 한동안 그 사실을 모르고 지냈었다. 원래 정숙이는 술 한 잔 사달라는 전화를 나에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직원 비상연락망에 적혀있는 치과의사의 핸드폰 번호와 내번호가 바뀌어 있었던 것이었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그렇게 해서 만났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정숙이와 나사이가 한창 신이 났을 무렵 계룡산 금잔디 등선을 오르면서 그녀는 그 이야기를 -우연한 실수로 비틀어진 운명적 만남 이라는 제목을 붙여- 내게 털어놓았다. 나는 실소를 했다. 그러자 지금생각하면 나를 만난 것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양념까지 곁들이면서 정숙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크고 길게 웃었다. 허리가 끊어질듯이 깔깔대는 웃음은 불필요한 욕망처럼 조금 과장된 듯 했다. 그 바람에 숲속의 매미들이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쳤다. 그 정적이 좋아 우리는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서있자 못 볼 것을 봤다는 듯이, 혹은 그것을 소문내겠다는 듯이 매미들이 하나 둘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귓불에다 이런 것이 인연이다 는 말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그 때 그 순간 정숙이와 나는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정말 청하 두병을 먹고 음주단속에 걸리지 않을 만큼 알코올이 분해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하는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청하 두 병씩을 마신 상태였고, 모텔에서 약 한 시간만 더 머문 뒤면 서울로 돌아갈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나는 섹스를 할 때도 그랬다. 내가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를 때 그녀는 죽은 듯이 있다가 내허리가 나이키 상표처럼 휘고 나면 그때부터 그녀는 입장을 바꾸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나는 장작개비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별의별 노력과 상상을 다해야했다. 그 허망한 몸짓은 무엇을 위한 버둥거림일까. 만약 그 것이 그렇게도 진지한 것이라면 그 뼈가 으스러지도록 긴박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하다못해 귀볼 뒤에 빨간 반점이라도 남아서 하루 아니면 반나절이라도 흔적이 남아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텔 문을 나서는 순간 탄력 좋은 고무줄처럼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와 버리는 그 감쪽같은 복원력은 다행스럽기보다는 차라리 섭섭하고 씁쓸했다.    
  아무튼 핸드폰이란 참 묘한 불청객이다. 이 얼굴 없는 방문자는 꼭 애매한 시간에 사람들을 찾아오거나 흔들어 깨웠다. 잠을 자거나 밥을 먹을 때, 또는 샤워를 하거나 화장실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숙이와 내가 한창 연애에 열중하고 있을 때도 불쑥불쑥 울렸다. 나는 정숙이가 그녀의 남편과 통화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몸을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 보이지 않는 문명의 편리한 거짓이고 음모였다.  
  정숙이 친구는 정숙이의 친구이자 정숙이 남편의 친구라고 했다. 두 사람이 결혼 하도록 소개 한 것도 자신이라고 했다. 지금 정숙이남편이 원무과에 갔다가 나를 못 만나자 병원장실로 가려는 것을 자신이 말려서 다시 내려와 주차장에 있다고 했다. 이대로 고소당하고 파멸할 것인가, 아니면 사표를 쓰고 병원을 떠날 것인가 중에서 택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적어도 그럴 때 우물쭈물하다가 허방에 빠져 벌릴 만큼 아둔하지는 않았다.
  구조금융시대라 집에다 변명하기는 편했다. 그렇게 해서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지만 두 가정이 다 파멸하는 것보다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때로는 화가 치밀어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아파트 주변을 몇 바퀴씩 돌았다.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면 왜 이별의 흔적이 여자에게만 남느냐는 항변의 정반대편에 나는 서있었던 것이다. 입대 전 송별주 끝에 있었던 직업여성과의 만남도 그랬다. 그녀들 속에 내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기억에 없을 그녀들의 기억은 군 생활 내내 내 가슴을 허전하게 했음은 물론 나의 일생 곳곳에서 불쑥불쑥 나타나 심기를 흩으러놓았다.  때로는 가을들판에 서서소변을 보다가도, 신혼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도, 직장의 회식 술자리에서도 그 기억은 술이 되고 숙취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문제였다.
  그녀와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나고 나는 실업자 생활에 충실했다. 실업자의 하루는 복잡한 생각에 비하면 의외로 단순했다. 늦잠은 오래 잘수록 좋았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라면에 찬밥을 말아먹으면 되었다. 찬밥신세라는 말이 싫어 하다못해 라면국물이라도 따뜻한 국물 없이는 절대 밥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는 5대 일간지와 벼룩시장과 생활정보지를 빠짐없이 읽었다. 물론 정치경제 사회 문화 란도 대충은 다 읽는다. 그런 다음 설거지며 집안 청소며 빨래를 얼렁뚱땅 해치운다. 그러고 나서 어둑해 지면 반찬거리 살 때 아낀 돈을 헤아리며 가까운 편의점으로 간다. 실업자와 소주와 새우깡은 아주 잘 어울리는 친구다. 소공원의 나무의자도 빼 놓을 수 없는 안식처다. 소주 한 두병을 비운 다음 깰 때까지 수도 없이 공원을 돈다. 그날 내가 개인 사정이라며 사표를 쓰고 사무실을 나서자 동료들은 맘에도 없는 위로를 한마디씩 던져 주었다. 그리고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제 일을 계속했다. 누구 한사람 붙잡고 속 시원하게 털어 놓을만한 흐트러짐을 보이는 직원은 없었다. 평생 동지라며 술집에서 노래방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돌아다니며 의리를 다짐했던 사람들 이었다. 그 무심한 얼굴들을 하나둘씩 발길로 차며 조그마한 공원을 돌고 또 돌았다.
  그 공원과 마주 붙은 곳에는 아주 오래된 성당하나가 있었다. 무심결에 지나다녔던 곳이지만 자세히 보니 ‘우리나라에 저런 곳이 있었나?’싶을 만큼 아담하고 예쁜 성당이었다. 그 성당은 너무 커서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하지도 않았고, 너무 작아서 한눈에 접어 볼 만한 것도 아니었다. 붉은 벽돌에 색이바랜 본당건물은 감옥 같기도 하고 고성 같기도 했다. 건물의 꼭대기에는 하얀 석고상을 장식물로 앉혀놓았는데 그것이 예수성심상이라는 것이었다. 하늘로 올라가려는 것인지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모호한 그 석고상이 무료해 보인다면, 고운 볕 발 아래 하얗게 고개 숙인 성모상이라는 석고상은 조금 슬퍼보였다. 성당 주변에는 질곡의 세월을 이겨낸 고목들이 서로 팔을 벌려 스크랩을 짜고 있고 그 사이로 쥐똥나무가 단정하게 줄을 서서 아슬아슬하게 세상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그날도 변함없이 성당이 바라다 보이는 공원입구에서 서성이다가 허리가 지팡이처럼 꼬부라진 할머니 한분이 그 길을 따라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소금을 뿌린 듯이 쨍쨍한 햇볕아래 꼬물꼬물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한없이 고요해보였다. 호기심 많은 새끼여우가 금기를 깨고 굴 밖의 세상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오듯이, 나도 세상이라는 곳에서 성당이라는 곳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몰래 들어갔다. 그때마침 성당지기가 성모상을 물로 닦고 있었다. 대리석에 세제를 뿌리고 물걸레질을 한 다음 호수로 물을 뿌리는데 성모상은 조금 슬픈 듯, 조금은 우울한 듯, 우는 듯, 웃는 듯 변화가 없었다. 그 표정은 나를 꼭 조롱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에 은근히 화가 났다.
   “아저씨 제가 좀 도와줄까요.”
   나는 수압을 최고조로 하여 성모상 얼굴에 물을 뿌렸다. 사정없는 물총세례를 받고도 성모상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나는 반응 없는 그 모습이 싫었다. 희끄무레한 미소와 우유 빛 가슴과 연보라색치마가 펄렁이도록 있는 대로 수압을 올려 화염 방사기를 휘두르듯이 물대포를 쏘아댔다. 그럴수록 대리석에 찌든 때가 말끔하게 씻겨나가면서 미소는 더욱 맑아졌다.
  그때부터 나는 심심 할 때마다 성모동상 물청소를 했다. 성당 앞마당도 쓸고, 십자가도 닦고, 14처도 쓸었다. 더러는 성당지기 아저씨에게 점심을 얻어먹기도 했고, 바자회 같은 행사 때 푼돈을 슬쩍 하여 소주 값에 보태는 재미도 쏠쏠했다. 성당지기 아저씨가 한때 조직원이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의 등에는 예수의 등을 칼로 치르는 문신이 있었다. 성서에 없는 장면 이었다. 그것을 알기까지 정말 나는 많은 성서를 읽었다. 소설 읽듯이 읽었다. 실업자가 시간 죽이기에 그보다 더 좋은 장소와 방법은 없었다. 다행히 성모동상을 닦기 시작한지 3년이 조금 못되었을 무렵 성당의 알선으로 회사에 취직을 했다. 내가 하는 일은 그곳에서도 여전히 쓸고 닦는 일이었다.
  그 회사 통근버스가 간선도로로 들어서기 위해 막 지선도로 모퉁이를 빠져나올 때 기사에게 미안하지만 여기서 좀 내려야겠다고 말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안개가 입술위에 달라붙었다. 안개에 쌓인 거대한도시가 나를 훔쳐보는 것 같아 우산을 낮게 쓴 채 택시를 잡았다.
  “술 한 잔만 사주시면 안 될까요?”
  3년 만에 전화를 해서 느닷없이 술 한 잔 사달라고 하는 정숙이의 한마디가 체인이 끊어진 자전거 바퀴처럼 하염없이 머릿속을 돌고 돈다. 수화기 저쪽에서 잡을 수 없는 안개처럼 불확실하게 움직이고 있는 그녀, 지금 통근버스타고 퇴근중이라 곤란하다고 했는데도 정숙이의 태도는 분명하고 단호했다. ‘그럼 내려서 택시 타면 되잖아요.’ 정숙이는 늘 그런 식이었다.
  처음 만난 그날도 그랬었다. 퇴근시간이 다되어서 생뚱맞게 걸려온 핸드폰 자체만 해도 나를 어리둥절하게 하기에 충분했는데, ‘술 한 잔 사 주시면 안 될까요?’ 하며 음절 마디마다 맹맹함이 배어있는 정숙이의 목소리는 더욱 나를 황당하게 했었다. 그날 나는 얼떨결에 약속을 하고도 긴가민가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오자 여러 차례 화장실을 들락 거렸다. 머리에 물기름을 바르고, 넥타이도 바짝 당겨 맸다. 타석에 서기전 타자가 모자를 고쳐 쓰고 방망이를 휘둘러보듯이 몇 번이고 몸단속을 했다. 소변도 두 번 봤었다.  
  택시는 성수대교를 넘고 있다. 자욱한 안개는 성수대교의 상처를 감쪽같이 감추고 있다. 정숙이와 처음 모텔에 가던 날 밤처럼 도시는 물에 젖은 창호지 같다. 어디선가 무슨 연유로든 사람들의 만남이 축축하게 젖는 그런 날씨다. 안개에 궂은비가 내리는 탓인지 다리 양쪽에 차량이 꽉 막혀 거북이걸음을 했다. 택시 너머로 보이는 또 다른 자동차속의 얼굴들이 안개에 가려 코와 입이 분명하지 않다. 어디로들 가는 것일까? 지우개로 조금 지워버린 듯한 표정들을 하고 사람들은 도시에서 도시로 줄지어 사라지고 있었다.
  정숙이와 나는 이 다리를 건너 장흥에 자주 가곤 했었다. 그리고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또 장흥에 갔다. 어떻게 그렇게 아늑한 카페며 음식메뉴와 가격들을 소상하게 아느냐며 아내가 신기해했다. 아내와 나는 장흥에서 점심을 먹고 정숙이와 잤던 모텔에 갔다. 아내가 색다른 맛이라고 했다. 나도 색다른 맛이라고 대답했다. 서로 색다른 이야기였다. 부부가 나란히 모텔을 나오는데도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했다. 본능적인 것이었을까 아니면 습관된 것이었을까.
  택시가 올림픽대로에 접어들자 차량흐름에 다소 숨통이 트인다. 택시기사 옆얼굴을 훔쳐보니 나이가 칠십은 되어 보인다. 작은 체구가 다소 나이보다 젊게 보이기는 해도 기사노릇 하기에는 아무래도 늙어 보인다. 그의 얼굴에는 생의 나른함이 배어 있다. 문득 권태라는 말이 생각난다. ‘권태……’ 정숙이는 또 권태로운 것일까? 어렵고 힘겨운 시간을 보낸 뒤의 나른한 평화, 그 평화에 깃드는 견딜 수 없는 생의 무료함, 한차례 큰 폭풍우가 지나가고 가정에서 남편에게서 어느 정도 신뢰를 회복하자 정숙이는 또 나른해 지기 시작한 것이다. ‘따뜻한 것이 난 싫어!’ 언젠가 가슴을 밀어내며 했던 그 말이야 말로 그녀의 진짜 속살일까.  
  「어디쯤 오시나용?」
  통근버스를 타고 퇴근길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 아내가 심심한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용하게도 내가 다른 길로 새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이 평소에는 보내지 않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택시는 올림픽대로를 잠깐 타다가 낙원파크호텔 쪽으로 빠져 약속장소인 삼릉공원길로 접어들고 있다. 그곳은 정숙이와 내가 새벽에 이용했던 모텔이 많은 곳이었다.
  「전에 근무 했던 직원들 하고 술 약속이 있어서.......」
  전에 없이 장황하게 답장을 보낸다.
  「절주!」
  그에 반해 아내의 메시지는 짧고 경쾌하다.  
  「^^*」
  그냥 할말이 없어서 웃어 보낸다.
  「절색!」
  심심 했던지 한 번 더 장난을 친다.  
  특별히 날을 잡아 나를 만나기 위해 준비 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정숙이는 변함없이 정숙했다. 간호 가운이 든 쇼핑백을 단정하게 세워놓고 마주앉아 있는 정숙이는 투명한 유리컵에서 자란 양파뿌리 같다. 고기를 굽느라 허리를 구부릴 때마다 깊게 파인 블라우스 사이로 가슴이 조금씩 들어나 보인다. 청하 네 병을 비운다. 아마 똑같이 두병씩 마셨을 것이다. 그사이 정숙이는 화장실에 한 번 다녀왔고, 전화가 두 번 왔다. 한번은 남편에게서 온 전화였다. 마주앉아 있어도 잘 들릴 거리에 있었지만 나는 술만 두잔 연거푸 따라 마셨다.
  “우리 노래방 안 갈래요?”
  정숙이의 목소리가 청하 두병에 꼬부라진 혀를 교묘하게 돌아 나온다. 갈래요? 해도 될 것을 꼭 안 갈래요? 하고 뭇는다. 그 말과 그 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그, 안 갈래요? 하면서 치켜뜨는 눈길을 항상 피하지 못했었다. 내가 그냥 맥주 한잔 더 하자고 했다.
   “맞아요. 순서를 바꾸면 안 되지요.”
   맥주 집으로 가는데 아직도 안개비가 내린다. 정숙이가 우산을 접고 내 우산 속으로 들어온다. 왼손에 핸드백과 쇼핑백 그리고 접은 우산을 모조리 들고 오른손으로 내 허리를 반 바퀴 감아 혁대를 단단히 움켜쥔다. 채포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채포하여 가는 것 같기도 하다. 한동안 그렇게 걸어서 전에 자주 가던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에선 촛불 타는 냄새가 난다. 김C의 천상재회가 촛불처럼 나풀대고 있었다. 조명은 예전처럼 어둡고 촛불은 사람들의 그림자를 턱없이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었다. 본체는 없고 형상만 있는 그림자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취기가 오를수록 이야기는 더욱 과장되고, 과장된 이야기가 촛불처럼 달아오르고, 달아오른 육체가 술을 마시고, 고, 고, 고,
  정숙이와 나는 전에 늘 앉았던 그 자리에 나란히 앉는다. 아니 처음부터 나란히 앉은 것은 아니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정숙이가 내 쪽 소파로 와서 바짝 다가앉았다. 내가 엉덩이를 조금 빼자 그녀가 엉덩이를 달싹하며 장난스레 밀착해 온다. 오늘따라 그녀는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그녀의 입술은 조금씩 붉어진다. 카페의 메뉴판에는 얼룩자국이 예전그대로 남아있다. 나는 공연히 그것에 생트집 잡았다.
  “메뉴판이나 좀 바꾸시오.”
   3년 전, 정숙이는 이 자리에 앉아서 나보다 훨씬 빠르게 취해가고 있었다. 정숙이는 약간 취한 것이, 조금은 흐트러진 듯 한 것이 더 매력인 여자였다.  그녀는 왠지 아무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애잔한 가슴 하나를 따로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여자였다. 어쩌면 누구나 그런 작은 가슴하나쯤은 따로 간직하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막상 열어보면 으레 하찮고 대수롭잖은 잡동사니들만 잔뜩 들어있을 것이지만 그녀의 가슴 속에는 누구에게도 보여 줄 수 없는 비밀스런 사연하나가 들어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는 그랬다.
  그래서 나는 그때 그 소중하고 애틋한 비밀의 흔적을 더듬어보고 싶어 달아올랐다. 취기가 오를수록 그 생각은 더욱 간절해졌다. 왜 약간은 취하고 흐트러진 여자를 보면 그 안에 숨겨진 뭔가가 있다고 궁금해서 못 견뎌 하는 것이 남자들의 속성일까. 정말 그녀의 가슴 주머니를 열어보고 싶어 발가락이다 꼿꼿해 졌다. 우리는 오래된 친구처럼 취했을 때 카페를 나왔다. 비틀거리지 않으려고 사람인(人)자 형태로 서로를 맞대었다.
  “이제 그만 갈까요?”
  한쪽팔로 정숙이를 부축하며 물었다. 정숙이가 손사래를 치고 나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 올렸다. 그리고는 쪽빛 같은 눈썹을 추겨 세우며 내게 물었다.
  “우리 노래방 한번 안 갈래요?”
  그때 왜 그녀의 추겨 뜬 눈썹이 어머니의 얼레빗을 닮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다녀가신 날에는 짙은 암갈색 대나무 얼레빗으로 하염없이 머리를 빗어 내렸다. 그런 날은 으레 비가 오거나 눈이 몹시 내리거나 철없이 낙엽이 많이 떨어지는 날이었다. 어머니는 마루 끝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노래라기보다 흥얼거렸다. 노래방 기계에다 번호를 입력하며 정숙이가 말했다. 이 세상에서 술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민족은 체코인과 한국인뿐래요. 배타적인 사람도 술에 취하면 다른 사람과도 금방 친해져서 얼싸안고 춤을 춘대요. 우리는 노래대신 춤을 추었다. 춤이 아니라 그냥 엉켜 있었다. 이산가족처럼 엉켜서 비틀거렸다. 우는지 웃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울었다. 왜 그런 때가 있지 않은가, 이유 없이 울고 싶을 때가. 술가 음악은 그럼 복잡 미묘한 감정에 상승작용을 했다. 풀잎처럼 누워있던 솜털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그랬었다. 그래서 그날 밤 어머니의 머리카락처럼 그녀가 흘러내렸다. ‘하늘로 가는 궁전’ 이라는 곳에서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때로는 하루걸러, 때로는 3일 걸러, 더러는 한두 가지 절차를 생략하기도 했지만 결론은 모두 ‘궁전’에서 끝났다. 그러다가 그녀가 아이를 가졌고, 아이를 지웠다. 누구의 아인가를 알 수 없다는 것이 그 아이가 지워진 이유였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수도 없이 사랑한고 말했다. 삼겹살을 구우면서, 청하 잔을 부딪치면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서는 길모퉁이에서, 궁전에서, 그린파크에서, 아비숑에서 전화에다 대고, 귓불에다 대고, 때로는 손을 흔들며, 때로는 손을 잡으며……서로가 믿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마치 그 말의 소멸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폴란드망명정부의 지폐처럼 무차별 남발했다. 그러나 참 이상한 일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정숙이를 만날수록 아내가 더 좋아졌다. 좋다. 그립다. 사랑한다. 그런 것 보다는 그 뭔가가 다른 뭐라고 해야 할까 물속에 들어난 조약돌처럼 선명하지만 손에는 잡히지 않는 그런 믿음이었다.
  정숙이가 두 번째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 아내에게서 또 메시지가 온다. 오늘따라 정숙이가 자주 화장실을 다녀오듯이 아내에게서도 자주 메시지가 온다.
「왜 아직 안와?」
「아줌마 먼저 잔다.」
  대답이 없자 아내가 연이어 두통의 메시지를 보낸다. 아내는 스스로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을 즐겼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별건 아니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다. 한때 아내는 집에서 가까운 25시편의점에는 절대로 가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거리도 멀고 가격도 비싼 훼미리마트를 이용했었다. 25시 편의점 아줌마가 꼬박 꼬박 아내를 아줌마라고 부른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것은 정숙이도 똑같았다. 단골로 이용했던 ‘자아도취 노래방’점원이 딱 한번 아줌마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그 노래방과 이연을 끓었다. 그 덕분에 가까이에 있던 ‘하늘로 가는 궁전’과도 결별했었다.
  그러나 요즘 내 아내는 아줌마라는 말을 스스로가 즐겨 썼다. 즐겨 쓸 뿐만 아니라 ‘아줌마!’ 하고 부르면, 구두로 벌레 으깬 표정을 짓고 있던 얼굴이 햇볕좋은날 양산처럼 활짝 펴진다. 그것이 내가 사무실에 앉아서 심심풀이로 보낸 어줍지도 않은 한통의 메일 덕분 이라니, 아줌마란 참으로 단순한 존재다.
  ‘아줌마, 아름다운 그대! 당신은 사랑 때문에 이름이 없고 오직 누구누구의 아내라는 추상어로만 살았었소. 그러나 나는 이제 사랑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이름을 돌려주고 싶소. 사랑과 희생의 대명사였던 당신의 이름은 이제 당당한 오현숙오. -아내의 이름은 오현숙 이었다. 그리고 애인의 이름은 오정숙 이었다. 세상에는 참 이상한 인연도 많다.-  오현숙, 당당한 이름을 가진 현숙도 아름답지만, 식품코너에서 몇 번이고 두부의 신선도를 따져보던 당신, 아줌마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웠소. 아내로써 아줌마로써 살았던 세월이 당신에게서 이자를 받아가듯이 꼬박꼬박 젊음도 챙겨갔지만 나와 아이들은 당신의 그 젊고 싱싱한 이슬을 먹으며 행복했었소.
  사랑하는 아줌마 우리에게도 솔잎처럼 푸르고 날카롭던 젊음이 있었소. 그때가 그렇게도 좋았소?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불평,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젊음은 그런 것 이었소. 그래서 우리는 지금보다 이십년이나 십년을 더 젊게 해 준다고 해도 싫소. 그 허망한 삶들에 대한 실망들을 다시 격고 싶지 않기 때문이오.
  어린시절 학교 앞 이발소의 낡은 액자에 걸려있던 프쉬킨의 시처럼 삶은 늘 우리를 속였소. 어느 소설가에게처럼 인생은 우리에게 술 한 잔 사주지도 않았소. 비 오는 포장마차에서 촛불이 간들거리는 카페에서 우리는 인생에게 수도 없이 술을 사주었소.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과 같이 생긴 아줌마, 아줌마의 몸을 거쳐 간 아름다웠던 세월과 그 세월이 품었을 서글픈 사연들까지 추억할 수 있는 나는 당신을 아줌마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오. 사랑하는 아줌마! 당신은 아줌마로 살았기 때문에 아름다웠소……’ 나는 이 편지를 정숙이와의 관계가 한창일 때 아내에게 보냈다. 반은 은폐를 위한 쇼였고 반은 진심이었다.
  그러던 중 핸드폰 때문에 정숙이와 나 사이가 들통이 나고 내가 병원을 그만 둠으로써 불륜인지 사랑인지 명확하지 않은 우리사이는 부러진 성수대교처럼 뚝 끊어졌다. 그러다가 수련이 피고 동아일보가 오지 않은 오늘,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오늘, 핸드폰이라는 친절한 문명이 겹겹한 허공에 구멍을 뚫고 아득한 공간의 끊김을 느닷없이 이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쉽게 끊기고 쉽게 이어지고 끊긴 흔적도 이어진 흔적도 남지 않는 아슬아슬한 가교에서 또 한번 만났다. 의도되었건 의도되지 않았건 말이다.    
  우리는 그때처럼 또 노래방에 갔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 볼 수 있다면~~ ’  휴일 아침 생수를 뜨러 간다고 나가 핸드폰에다 대고 정숙이에게 불러 주었던 노래다. 노래방기계가 이 노래를 혼자 부르고 있다. 정숙이가 선곡을 한 모양이다. 블루스를 추며 정숙이가 몸을 밀착해온다. 동그란 사이키 등에서 오색조명이 빈틈없이 새어나와 관계와 관계의 모호한 경계를 자르듯이 노래방 가득한 어둠을 잘게 저며 내고 있다.
  나는 정숙이를 끌어안으며 뭇는다. 남편을 사랑하느냐고. 정숙이가 그렇다고 대답 한다. 나를 사랑하는가 하고 또 뭇는다. 그도 그렇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남편에 대하여 몇 가지 더 물어 본다. 잠자리는 며칠에 한번 하는지, 그리고 남편과의 잠자리에서도 내게 하듯이 그렇게 하는지, 그냥 그런 것들을 물어 보고 싶지만 참는다. 그녀는 그녀의 부부생활에 무슨 문제 있을 것이라는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말라고 한다. 너무 문제가 없어서 문제란다. 갑자기 탄산가스가 빠져버린 콜라 같은 그것이 문제란다. 그렇다. 그녀 에게는 나도 있고 남편도 있다. 나에게도 그녀가 있고 아내도 있다. 우리는 무슨 연유로 그저 아는 사람, 그냥 좋은 동료라는 그런 위치에서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너는 너로 나는 나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살지 못하고 왜  x와 y의 위치를 바꾼 역함수 관계를 만들고 사정거리 안에서 서로에게 흙탕물을 튀겨주며 살려고 하는 것일까.  폐 그물처럼 얽혀버린 관계와 관계를 컴퓨터게임을 종료하듯이 그렇게 간단하게 로그아웃 시킬 수는 없을까. 어지럽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이키조명 때문에,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관계 때문에……  이 화면을 이제는 암전 시키고 싶다. 그때 바지주머니가 부르르 떨었다. 반사적으로 정숙이와 나의 몸이 떨어졌다.
  「진짜 아줌마 먼저 잔다.」
  오늘따라 아내가 아주 자주 메시지를 보낸다.
  「기다렷!」
  아내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무슨 좋은 일 있느냐고 내가 물었다. 한 개에 만원하는 브래지어를 세 개 만원에 샀다며 아이보라색 브래지어를 꺼내 보여준다.
  그리고 며칠 후 정숙이에게서 또 핸드폰이 왔다.
  “술 한 잔만 사주시면 안 될까요?”
  누가가 그랬다. 남녀관계란 환불이 매우 까다로운 쇼핑이라고. 퇴근 후 나는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저무는 길에 삽을 메고 나섰다. 차 트렁크 안에 실려 있는 낚시자리 다듬을 때 사용하던 삽이었다. 다른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고봉산으로 갔다. 이름은 고봉이지만 높이는 저봉이였다. 등산은 힘들고 산책은 우스운 중늙은이 맞춤 산이었다. 검붉은 석양이 얼룩얼룩 산등성이를 물어뜯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뜸해지기를 기다리며 천천히 산을 올랐다. 나무숲이 우거진 중간쯤 오르자 해가 완전히 저물어 산책을 겸한 등산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저녁 매미가 악을 쓰며 울어댈 뿐 숲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8부 능선쯤에서 오르던 거름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적당하게 어울린 틈새마다 어둠이 점령군처럼 내려와 있었다. ‘여기쯤이 좋겠군!’ 나는 등산로라고 할 수도 있고 산책로라고 할 수도 있는 길 한복판을 가능한 한 깊이 팠다. 반길 정도를 팠을 때는 매미마저 입을 다물고 숲은 고래 뱃속처럼 고요했다. 마지막으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폴더를 열었다.  통화기록을 살펴보았다. 부재중 몇 통화의 전화가 왔었다는 기록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재 발신을 누르기만하면 바로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이었다. 폴더를 닫았다. 숲속과 빌딩사이를 어지럽게 오고가며 지상의 누구와도 순식간에 교접할 수 있었던 그것이 입을 다물자 세상은 갑자기 조용해 졌다.
  핸드폰을 구덩이 한가운데에 내려놓고 봉분 없는 무덤을 만들었다. 왼발로 버티고 서서 오른발로 오랫동안 흔적도 없이 땅을 다졌다. 그리고  아버님의 영정에 절을 했던 것처럼 무릎을 모으고 두 번 절을 했다.  뭇별 중에 하나가 산 너머 저쪽으로 비스듬히 사라졌다. 세상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별들이 더욱 선명해졌다. 별, 별, 별, 또 별, 그것들 서로 무수하게 통화를 시도하고 있다. 어디선가 어지러운 전화벨소리가 들렸다.  
  길을 가다가도 황급히 주머니를 뒤진다.
  “내 핸드폰!”
  아내가 헛소리를 듣는다고 핀잔을 준다.
  가끔은 내 핸드폰에다가 내가 전화를 건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 샘으로 연결 합니다. 연결 후에는 통화료가 부과 됩니다. 음성녹음은 1번 ......”
  나는 언제나 부재중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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