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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미/수필/선생님과 선생님/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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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13회 작성일 06-07-2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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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선생님과 선생님
            박 혜 미

오윤주 선생님 댁에 다녀왔다. 이제 막 한 발짝 떼려 하는 병아리 선생님의 모습, 가장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다.

안양고등학교 1학년, 나는 비뚤어진 자존심과 인정할 수 없는 열등감으로 가득찬 부적응아였다. 갑작스런 이사로 인해 죽고못살던 친구 여럿과 헤어지게 되고, 서울에서 과학고 입시니 외고 입시니 해가며 어깨 힘주고 다니던 일상도 사라지고,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꼬이는 걸까 불만만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경기과학고에 보기좋게 불합격하면서 철저히 뭉개졌고, 결국 입학하게 된 안양고는 내게 과학고 떨어지고 들어온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저 그런 의미였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했던 안양고에서 내가 있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들 잘난 아이들 틈에서 난 그저 떠들고 산만하고 시끄러울 뿐이었다. 존재 가치가 숫자로 가늠되는 현실 속에서 난 점점 작아졌다.

중학생이 알아봐야 얼마나 알고, 고등학생이 똑똑해봐야 얼마나 똑똑할까 싶지만, 여튼 그때는 내가 꽤나 특별하다고 믿었던 터, 치명적인 자존심의 상처였던 것 같다. 반동형성이라고나할까. 방문을 걸어잠그기 시작했고, 내 행동 반경은 점점 넓어졌다. 그다지 밝히고 싶지 않은,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배우고, 더불어 가족과의 대화는 철저히 단절되었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다고 했던가. 내가 얻은 건 성격의 변화였다. 주어진 스케쥴대로 움직였던 말 잘 듣는 아이가, 자기 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뭐든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반항 내지는 욕구불만의 표출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나는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자칫 비뚤어질 수 있는 위태위태한 시기.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평촌 곳곳에 흔히 설치되어 있는 구름다리는 전부 올라갔다. 어디서 떨어져야 제일 높은가..하면서.ㅋ 실행에 옮길만한 용기도 없었지만 여튼 내 일탈(?)을 재생 내지는 부활의 의미로 승화시켜 준 분이 바로 내가 3년 내내 주변을 맴돌았던 오윤주 선생님.

지금 생각하면 그게 무슨 일탈이고 반항인가, 발버둥 칠 이유나 되는가 싶기도 하지만 열일곱 조악하고 건방진 아가씨에겐 고비라면 고비였다.

선생님은 내게 엄마 같은 존재였다.
집에서 엄마에게 해야 할 모든 이야기를 난 선생님께 모두 했다. 엄마와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내 이야기가 얼마나 시시콜콜 조잡하고 재잘재잘 시끄러웠을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죄송하기도 하다. 내 목소리가 또 좀 크나. 매일을 교무실에 출근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유명인사였고.

내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으셨던 1학년 담임선생님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지만, 틈만 나면 난 오윤주 선생님을 찾아갔다. 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가며 선생님을 만나고, 내 존재를 확인했다.
내게 필요한 건 누군가 날 믿어준다는 믿음이었다. 나를 잡아달라고 발버둥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내가 지금 이렇게 보잘것 없지만 제발 날 좀 봐주세요. 봐주세요.

어느 순간, 선생님처럼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나는 욱, 하는 성질을 버리지 못했고 감정 기복 심하고 촐랑거리고 시끄럽게 떠들기도 하지만, 힘에 부치고 절망적인 느낌이 들 때마다 선생님을 떠올리곤 한다. 위기 상황이다 싶으면 난 무조건 선생님 홈피를 찾고, 선생님께서 주신 편지를 꺼내어 다시 읽고 또 읽는다. 이럴 때 선생님은 이렇게 하실거야, 내가 이렇게 하길 바라실거야.

여튼, 그랬던 아이가 이렇게 자라나서 이제 선생님이 된다.
누군가는 꼭 나와 같이 내 주변을 맴돌지 모를 일이다. 솔직히 정이 그리운 아이, 사랑에 목마른 아이,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아이를 보듬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힘든 일이다. 젊은 여교사는 바쁘다. 허둥지둥 헤매고 부딪히고 깨질 뿐더러, 가르치는 일 이외의 일이 너무도 많다. 선배 교사와의 관계, 학부모와의 관계,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사회 초년생의 두려움, 게다가 머릿속엔 온통 순진무구한 소녀도 날긋하게 닳은 여자도 아닌 한 존재로서의 불안함이 가득하다. 돈도 벌어야지, 연애도 해야지, 결혼도 해야지. 그러나.

내게 선생님이 계셨듯
아니, 그것만큼은 안 되더라도, 또 그것만큼 될 수도 없지만.
내가 어떤 영혼에게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있다면, 누구보다 우리 선생님께서 기뻐하시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전히 나는 부족하다.
그러나 내겐 앞으로도 영원히 날 믿어주시고 이끌어주시는 분이 계시기에 또 어떤 긍정적 변화가 내게 생길 것임을 믿는다.

선생님,
7년 전, 제 손을 잡아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부끄럽지 않은 제자, 선생님이 될게요.
첫 월급 타서 가장 먼저 찾아뵐게요. 기다려주세요.
(끝)


주소: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죽현마을 동원로얄듀크 313동 202호
전화번호: 011-9172-6133
본명: 박 혜 미
약력: 1983년 9월 2일 생
    을지초-신기중-안양고-
    서울교대 영어교육과 졸업
    현, 서울토성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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