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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남/수필/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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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13회 작성일 06-07-20 14:31

본문

이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상한 사건 이야기이다. 그 사건이 일어난 나라의 이름은 도파쿠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만 미리 말해둔다. 그 나라에는 총 5개의 주가 있는데 아르도파쿠, 마르도파쿠, 바르도파쿠, 하르도파쿠, 가르도파쿠라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그중에서도 가장 더럽고 짜증날 정도로 더운 가르도파쿠에서 일어난 잔혹한 사건에 관한 것이다. 가르도파쿠에는 사립 고등학교와 공립 고등학교가 있었는데 공립 고등학교에는 어니번 고등학교, 머니번 고등학교, 버니번 고등학교, 허니번 고등학교, 거니번 고등학교가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살인자를 배출한 거니번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것이다. 어쨌든 거니번 고등학교 3학년에는 이름이 비슷한 아이가 여럿 있어 담임선생님을 헤어날 수 없는 혼란 속에 몰아넣곤 했는데 그들은 각각 에니, 메니, 베니, 헤니, 게니라는 기묘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지치도록 처절한 이 긴 이야기는 그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기괴하고, 이빨과 손톱이 날카로운 게니에 관한 이야기이다.

웰꼴

먼 미래에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앞마당이고 뒤뜰이고 옥상이고 입안이고 할 것없이 모두 쓰레기 천국이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바로 그런 시절에 일어난 별난 이야기이다. 어느 날 지력이 뛰어나고 적당히 미쳐있는 올곧은 과학자들이 떼로 뭉쳐 멍청하고 지루한 회의를 한 뒤에 웰꼴이란 괴수를 협동제작하기로 결론지었다. 웰꼴을 만드는 복잡한 과정 같은 건 여러분에게 가르쳐 줄 수 없다. 대책 없이 어렵고 지루한 문법 숙제 바로 뒷장에 적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절대로 그 문법 숙제를 건드리지 않으련다. 알다시피 나는 날 때부터 문법에 알레르기가 있었다. 여러분도 너그러이 이 지독한 사정을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문법이란 더럽고 치사하고 잔혹한 것이다.
어쨌든 괴수 웰꼴은 무엇이든 삼키는 데는 선수였다. 곧 그는 쓰레기 처리반으로 편입되어 잔뜩 쌓여있는 쓰레기더미를 먹어치웠다. 그로인해 소녀의 잇새에서 핵폐기물이 발견되는 일이 더 이상은 없게 되었고, 세상은 마치 새로 태어난 듯 뺀질뺀질하게 빛났다.
만약, 이 만약이라는 말을 쓸 때면 언제나 괴롭고 미안해진다. 만약이라는 말은 불행을 꼬리에 달고 나타나게 마련이다.
만약, 웰꼴이 거기서 멈춰 주었다면 세상은 정말 지독히도 살기 좋은 곳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웰꼴은 기특하게도 자신을 창조한 과학자들을 능가하는 도덕성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서는 그냥 간단하게 시스템 오류라고 부르자. 어쨌든 웰꼴은 왜소한 팔만 구천 삼백 마흔 세발을 나름대로 멋지게 쿵쿵 구르고 다니며 인간쓰레기마저 쩝쩝 맛나게 먹어치웠다. 인간쓰레기의 수는 대륙과 대륙을 이을 만큼 많았고, 바다를 넘치게 할 만큼 무지막지했다. 웰꼴은 먹고, 먹고 또 먹었다. 그리고 그는 오존층을 산산 조각내 부숴 버릴 정도로 크게 자랐다. 경악한 인간들은 인간쓰레기가 아님을 입증하기위해 억지로 선업을 쌓았지만 웰꼴은 신을 능가하는 투시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들의 시커먼 속을 한눈에 들여다보는 것이다. 웰꼴은 그들을 무참히 죽여 삼키고, 삼키고 죽였다. 결국 지구엔 오직 웰꼴만이 치마를 휘날리며 걸어 다니게 되었다.                

지르흐의 거미와 곰팡이 친구들

옛날 옛적에 지르흐라는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그의 머리칼은 날 때부터 부모님을 질리게 할 정도로 끔찍스런 연두색이었다. 이 이야기를 읽는 여러분을 포함한 온 세상 모두가 알고 있다. 아무도, 그 누구도 연두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연히 지르흐는 그날로 쓰레기통 속에 들어갔다. 아, 그리고 생각나는 김에 덧붙이겠는데 더군다나 그의 머리칼은 야광 연두였다! 밤에도 번쩍번쩍 도깨비불처럼 빛을 뿜는 그 머리칼은 고아원에 들어간 뒤로 수많은 고아들의 잠을 설치게 했고, 결국 그는 계단 밑 거미와 곰팡이가 가득한 창고에서 웅크리고 잠이 들어야 했다.
그는 고아원의 애벌레 식단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은 그것이 지렁이가 아니냐는 결론을 내려 아침과 저녁을 굶게 되었다. 점심에는 스스로 썩은 나무 위로 올라가 바싹 마른 이끼를 뜯어 먹었다. 바로 그 이끼 식단으로 인해 그의 몸은 곧 성냥개비처럼 바싹 말라 비틀어졌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지긋지긋하게 살아남았고, 학교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몽상가였다. 그가 눈의 초점을 흐린 채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면 아이들은 그의 바지 주머니를 뒤져 동전이나 사탕을 슬쩍 빼내가곤 했다.
수업시간이 되어서도 그의 형이상학 수업은 끝나지 않아, 선생님은 그를 세 번 지적한 뒤 분필이며 지우개 등을 그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고, 그는 그제 서야 분필가루로 허옇게 변한 얼굴을 들어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수학시간이었고, 수학선생님은 마치 악귀처럼 변해 말발굽을 바닥에 세게 구르고, 뾰족한 꼬리를 학생들에게 휙휙 휘둘렀다. 그러나 지르흐는 그런 선생님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뿐이었다. 선생님이 소리를 질렀다.
“지르흐, 너는 왜 다른 아이들처럼 기초 루트나 함수, 고급 덧셈과 뺄셈을 배우지 않는 거니? 세상에 그것들보다 재미있는 게 또 있단 말이냐?”
지르흐는 입을 꾹 다물었다. 평소 그는 바람구멍처럼 입을 열고 다녔었다. 이것은 그가 무언가 생각하기로 다짐하는 징조였다! 그러나 지르흐는 말이 없었다. 선생님은 지르흐의 두 귀가 해면으로 꽉 막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귓구멍은 여보란 듯 뻥 뚫린 채 바람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수구에서 쉭 불어오는 바람, 뭐 그 비슷한 것이다. 결국 선생님은 매를 들고 지르흐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지르흐는 벼락같이 책상 위로 올라가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모두가 입에 물고 있던 파리시체들을 토해내고 숨을 잔뜩 들이 마신 채 “헉!”하고 소리쳤으나 모두가 바라던 재미나고 행복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지르흐는 공중에서 걷고 있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계단 밑 자신의 소중한 은신처로 천천히 걸어갔다. 거미와 곰팡이들과 함께 지렁이 시체를 먹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수학선생은 그를 비행소년이라 불렀고, 그날로 지르흐는 학생의 대표, 여학생들의 묘지순례 데이트 대상이 되었다.

    
            



소년이 열일곱이었을 때 어머니가 죽었다.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소년은 그저 평소에 앓고 있던 천식이 문제가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쌕쌕거리는 숨소리와 숨이 넘어갈 듯한 기침소리, 잘 움직이지도, 몸을 활짝 펴지도 못하는 병약한 사람. 그것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었다. 소년은 점점 안으로만 자라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년은 표정이 없어졌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어머니의 노란 얼굴, 바싹 마른 팔다리, 하얗게 센 머리칼, 거친 목소리, 휑한 눈가, 까칠까칠한 피부, 축 늘어진 젖가슴, 생기 없는 웃음. 소년은 그런 어머니가 무서웠다. 잔뜩 쉰 목소리로 소년을 부를 때면 어머니의 눈길을 피하려 고개를 숙였다. 소년의 누이는 하루 종일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었다. 습기 찬 방안에서, 곰팡내 나는 낡은 이불을 둘러쓰고 둘은 꼭 끌어안고 잠을 잤다. 굳게 닫힌 방문 너머에서, 곧잘 모녀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럴 때면 소년은 고독감에 장롱 안에 틀어박혀, 몇 시간이고 어둠 속에 자신을 놓아두고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광부 일을 하는 아버지는 늘 술을 마셨고 틈만 나면 소년을 들볶았다. 소년은 혼자였다. 백치인 누이와 난폭한 아버지, 앓는 어머니 사이에서 소년은 갈 곳을 몰라 슬퍼했다. 가슴이 답답해져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소년은 홀로 집을 나서 걸었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나면 마음은 훨씬 가벼워 졌다. 소년은 아스팔트 위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점점이 박혀있는 별들과 하얀 달. 바람이 풀잎을 쓸어가는 소리. 소년은 푸른 보리밭을 가로질러 달렸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소년은 쓰러져 흑흑 눈물을 흘린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슬프게 만드는지 알 수없다. 소년은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달빛 아래에서 모든 것은 은빛이었으며, 소쩍새가 나뭇가지 위에 올라 앉아 조용히 울고 있었다. 소년은 그때서야 눈물을 거뒀다.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소년은 꿈꾸는 듯 했고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그 날도 소년은 달빛 아래 집으로 돌아왔다.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소년은 두려움을 느끼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거실에서 어둠 속에 아버지가 담배를 물고 앉아 있었다. 빨간 불씨가 소년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은 그림자가 소년의 앞에서 침묵했다. 소년은 엉겁결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곧 심한 매질이 이어졌다. 벌겋게 부어오른 볼을 문지르고 있던 소년의 얼굴에 기다랗게 불빛이 드리워졌다. 어머니의 방문이 열린 것이다. 어머니는 수척한 얼굴로 소년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더니, 곧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소년은 가슴이 무너지는 듯 했다. 모든 것이 끝장이다. 오늘밤 그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아버지의 큰 그림자는 소년을 압도했다. 소년은 빌었다. 그만 매질을 거두어 달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허나 아버지는 소년을 용서하지 않았다. 어두운 밤이 지나고 여명이 밝아오자, 소년은 장롱 안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우쳤다. 결국 어떤 것도 믿을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소년은 서서히 꺼져가는 희망을 바라보았다. 깊은 한숨에 천지가 무너지는 듯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누이가 대문간에 서있었다. 소년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아버지가 돌아왔을 시간은 아닌데. 소년은 가방을 던져놓고 어머니의 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너무나도 조용했다. 모든 것이 죽어버린 것 같았다. 소년은 문을 열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조용히 잠이 들어 있었다. 죽어버린 것이다. 시끄러운 숨소리도, 슬픈 눈도 이제는 그만이다. 소년은 그대로 방에서 나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례식장에서도 소년은 울지 않았다. 무엇이 슬프단 말인가. 소년은 아무 말 없이 영정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내려놓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뒤 소년의 아버지는 술에 취한 시간이 더 길어졌다. 일하러 나가지도 않았다. 친척들로부터 돈을 빌려 생계를 유지했고 소년의 학교 등록금도 구하려 하지 않았다. 소년은 학교에 나가지 않고 쭉 집에서 지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는 산책하러 나가지도 않았다. 비가 내렸다. 축축한 공기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소년은 우비를 입고 오랜만에 밖으로 나갔다. 지렁이가 길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군데군데 빗물이 괴어 있었고 그것들이 모여 시내를 만들기도 했다.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소진해 사라져 버렸다.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두려움도 초조함도 공포도 느껴지지 않았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소년은 혼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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