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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봄이-단편소설1(2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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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07회 작성일 04-11-1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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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동기


유난히 독하게 하얗던 눈들이 이제야 자기 자리를 찾아 땅으로 돌아갔다. 온통 햐얗게 덮혀서 어디가 끝이고 시작인지 알 수 없었던 겨울의 방황, 유독 지난해 겨울의 방황은 길어서, 그 차갑고 시린 눈속에 덮여 모두들 숨죽이고 있었다. 정체된 연못쳐럼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겨울도 드디어 샘구멍이 터져 쿨럭쿨럭 기침을 했고, 그렇게 봄이왔다.
그렇지만 샘구멍이 아무 동기없이 기침이 터져 나오겠는가?
봄도 그렇다. 사람들은 봄이 겨울 끝에 당연히 오는 필연적인 단계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 역시, 지극히 고독한 겨울 동안 혼자서 봄에 대한 열망을 심었다. 그리고 그 끝없는 하얀 눈들의 방황을 보며, 그 씨를 더욱 더 뜨겁게 싹트였다.

나만이 아니었다. 봄에 대한 열망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 집 앞에 있는 목련화도 그랬고, 논두덩 옆 아슥아슥 얼어있는 실개천도 그랬고, 파릇한 냉이 뜯을 상상으로 가득찬 아랫목에 몸담근 우리 할머니도 그랬다. 이렇게 봄에 대한 열망들이 하나, 둘, 셋 모여 하얀 눈들을 땅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이런 열망들이 봄을 오게 하는 동기인 곳이다.

아버지를 변하게 한 것에도 동기가 있었다. 아버지는 굉장히 욕심이 많은 분이셨다. 아버지와 나와의 사이는 냉기가 감도는 휴전선과도 같은 시기가 있었다. 넘을 수 없는 몇겹의 철조망 사이로 감시의 눈을 떼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는 곳. 그러다 가끔씩 철조망을 넘어 올 때는 아버지의 욕심이 비수가 되어서 내 가슴에 꽃힌 적도 있었다. 분명 아버지의 침범에는 사랑과 관심이 뿌리깊게 박혀 있었음에 틀림없었지만 그 사랑의 표현들은 욕심이라는 탈을쓰고 서툴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고1 때로 기억된다. 어슴프레하게 어둠에 잠겨있는 새벽, 굵으면서도 숨넘어 갈 듯이 울리는 꺽꺽거리는 소리에 내눈이 떠졌다.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울고 있었다. 아버지는 말없이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손은 떨렸다. 손등에 떨어진 아버지의 눈물이 타는 듯 아팠다. 격한 숨을 몰아 쉬며 눈물을 토해냈다. 쉴새없이 떨어지는 눈물이 내 눈으로 번졌다. 부등켜 안고 한참을 그렇게 말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난 눈물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다녀오신 그 다음 날의 새벽일이었다. 어머니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고, 아버지는 그것을 마음 아파하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눈물! 그 사랑의 눈물은 나와 아버지의 냉기가 감도는 겨울을 녹여 끈끈하게 맺어 주었다.
그 후 아버지는 종교를 가지셨고, 그 때부터 변하셨다. 종교에 대한 믿음으로 가슴속에 있던 음울한 물들을 퍼내었고, 그곳엔 따뜻한 믿음의 희망으로 양지를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민들레가 피고, 오빠가 좋아하는 뻐꾸기가 우짖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느티나무가 시원스레 늘어져 있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우리 가족이 한 곳에 모두 모여 즐거운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작은 낙원의 공간이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변하셨다. 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의 눈물이 아버지를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한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내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또 하나의 자아이다. 이것은 나를 사정없이 외쳐주는 존재로서 살아있다. 이 형체 없이 살아 숨쉬는 존재가 처음으로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한 건, 9살 때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유치원이 끝나 가방을 훽 던져 놓고 시냇가로 행진했다. 소꿉놀이에 열중하다보면 어느새 해는 게슴츠레 산에 잠겼다. 불그데데한 하늘을 목젖이 튀나오도록 고개를 제치고 볼라시면, 그곳엔 하얀 달이 있었다. 시냇물에 젖어버린 바지자락이 천근만근 무거운건 한줄기 길에 혼자였기 때문이고, 저녁 노을에 젖어버린 붉은 달이 하얀건, 혼자라는 외로움에 하얗게 늙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 걷는 저달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친구다. 하얀 달과 나는 달리고 달렸다. 가슴이 부풀어 올라 터질 것만 같았다. 그 벅찬 감동들을 비뚤 비뚤 일기장에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됐고, 우리는 하나였다.

하지만 오지말아야 할 이별은 찾아왔다. 언제나 나와 함께였던 자아들은 산산히 흩어지고 말았다. 길옆 작은 민들레가 다가오지 않았고, 거룩하게 부서지는 햇살들을 조소했다. 내가 발붙일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넓고 풍만했던 자연의 품을 나는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가족들과도 팽팽한 고무줄을 잡고 있었다. 사랑과 관심들을 배타적으로 밀어내어 가족과 내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다. 글을 쓰는 것, 그것 마저도 내 손을 놓아버렸기에 내 심장은 뛸수 없었다.

하지만 내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었다. 나에게도 변화는 찾아왔다.

두꺼운 커튼 틈으로 빼꼼히 내민 봄볕은 도마 위에서 풍악이라도 울리는 걸까? 10분이나 일찍 준비를 했다. 현관문은 열렸다. 내면의 문도 열렸다. 그 햇살들 속에서 헤엄치는 길옆 푸른 잎들, 금방이라도 푸드득 속고라칠 것 같은 풀잎, 그 풀잎에 탄력을 받은 내 발걸음도 하늘로 하늘로 치솟는다. 하늘을 볼때는 영화를 찍는다. 엄지와 검지를 두손으로 이어서 이어서 스크린을 만들고,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을 가늘게 뜬다. 파르르하고 떨리는 오른쪽 눈 앞에는 눈부신 하늘이 스크린 안에 깜박거린다. 스크린은 윙하고 돌아가고, 눈꽃이 내린다. 분홍빛 향근한 눈꽃들, 모든 것이 멈췄다. 시간도.....하늘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오직 스크린 속 벚꽃만 내린다. 벚꽃을 향해, 학교를 향해 스크린 속에 뛰어 들어갔다. 구름도 달렸고, 바람도, 내 머리카락도 달렸다. 달리고 달려서 헐떡거리는 숨이 목구멍까지 달려왔다. 양지바른 창가 쪽 내 걸상까지......
영화는 끝났다. 하지만 이런 날이면 봄이 기지개를 펴는 날이면, 진짜 영화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나의 진정한 영화는 ‘스크린’ 속에서 다시 상연된다. ‘스크린’은 내 습작 노트이다. 별반 다른 노트들과 다를 바 없지만, 그 무엇보다 가치가 있는 ‘스크린’이다.

고1, 아버지의 황홀한 변화는 나에게도 변화를 가져왔다. 어느 일요일 아침 조용히 ‘스크린’을 꺼내시는 아버지의 눈은 이미 나에게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안타까움, 사랑 그리고 자긍심......7살 때 딸에 대한 순수한 자긍심으로 가득찼던 눈, 바로 그 눈이었다. ‘스크린’ 속에 내 우주를 키우라는 말씀을 했다. 난 정말 혼자가 아니었나 보다. 아버지가 구름 속에 숨어있었나 보다. 어버지가 지닌 사랑의 낙원 속에 우주를 넓혔다. 아버지의 변화는 내 커다란 우주를 가지는 것에 큰 동기가 된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열망적인 사랑,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 아버지의 내리 사랑, 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하게 하는 동기인가 보다.


(전화번호 : 자택 681 - 7377, 핸트폰 019 - 557 - 8377)
고성고등학교
3 학 년
권  봄  이
1. 성명 : 권 봄 이
2. 성별 : 여
3. 연령 : 19세(만1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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