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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봄이-단편소설2(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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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도화지
하얀 도화지를 접어 꺼내려 하지도 않았던 내 어린 시절, 그 도화지를 펼쳐 처음으로 선을 긋게 해주신 분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커져 버린 걸상에 앉느라 힘겨웠지만 그것마저도 내게 더 어른이 된다는 기쁨으로 다가왔다. 모두들 쉴 틈 없이 재잘재잘 작은 입을 오물거린다. 선생님은 언제나 오시려나 하는 찰나에 ‘드르륵’ 문이 열린다. 차가운 세모난 안경을 쓴 선생님이 천천히 들어오셨다. 아이들의 입은 모두 쩡쩡 얼어붙었는지 난로 소리만 윙윙거렸다. 선생님은 우리들의 마음을 아셨는지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셨다. 난 차가운 세모 안경 뒤에 겨울을 녹일 너그러운 인자함을 보았다. 그렇게 2학년의 시작은 순탄했다.
그 다음 날 난 선생님의 따스한 미소를 보기위해 맨 앞자리에 앉았다. 선생님께선 여전히 무표정이셨지만 선생님의 눈가에 주름은 내가 제일 잘 그리는 갈매기 마냥 너풀너풀 춤을 추듯 움직이는 것 같았다. 선생님께서 출석을 부르려고 목청을 가다듬자 교실은 조용했다. 아이들의 힘찬 목소리가 귓가에 웽웽거렸다. 드디어 내 차례! 너무 긴장해서 목소리가 꺽여서 나오는 바람에 웃음 바다가 되었다. “이연아! 음..........이여름?” 선생님께서 망설이다 부른 이름, 이여름!......... 내 이름은 봄이, 그 얘 이름은 여름이었다. 선생님의 부름에 정적만이 대답했다. 얘들이 여름이란 아이가 누구인지 알려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웅성거렸다. 선생님께선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가 다시 아무일 없는 듯이 출석부를 보고 아이들 이름을 부르셨다. 차가운 안경 뒤편으로 인자하게 웃으시는 얼굴을 난 부처님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부처님은 안경을 안 쓰셨지만 말이다. 그렇게 난 그 분을 만났다.
초등학교 2학년 봄은 목련이 지듯 빠르게 갔다. 하지만 내 생활은 그날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여름이는 정신지체아였다. 덧셈 뺄셈도 못했고, 양치질도 못했으며 어느 땐 그냥 오줌을 내 갈길 때도 있었다. 가끔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발작 비슷한 걸 일으킬 때도 있어서 얘들이 가까이 하지 않았고, 놀림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얘와 이름을 공유한단 이유만으로 나는 놀림 대상이 되어버렸다. ‘우와! 여름이 언니 봄이다. 얼레리꼴레리 봄이는 여름이 언니레요’ 난 정말 그 아이가 싫었다. 헤벌쭉 헤헤거리는 것도 싫었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건 더더욱 사양이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한달이 지났고, 아이들의 놀림이 태풍처럼 휩쓸고 간 후, 조용히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문이 조용히 드르륵 열렸고 선생님 안경이 햇빛을 받아 눈이 부셔 눈을 가늘게 떴다. 선생님께서 내 옆에 의자를 슬며시 들어 앉더니 내 손을 잡으셨다. 나는 전율을 느겼다. 내가 좋아 하는 눈가의 주름이 한껏 돋보였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망설이다가 말씀하셨다.
“봄이야, 여름이가 머리가 많이 아파서 그런거란다. 그런 여름이가 밉니?”
난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한테 거짓말을 하긴 싫지만 내가 그 여름이를 놀려대던 아이들처럼 나쁜 아이라는 걸 선생님께 들키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봄이야. 니가 여름이의 짝이 되어보지 않겠니? 봄이 마음 속에는 넓은 도화지가 있단다. 그 도화지에 꽃도 그리고, 나무도 그릴 수 있지. 그 도화지는 다른 아이들보다 넓어서 많을 걸 그릴 수 있어. 그 넓은 도화지에 여름이를 그려주지 않겠니?”
나는 그렇게 넓은 도화지를 얻게 되었다. 물론 그 곳에 여름이도 또한 그려 넣었다.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 나는 먼 미래가 두렵고, 홀로라는 생각에 고독할 때도 있지만 선생님이 펼쳐 주신 넓은 도화지에 난 한 조각의 따스한 햇볕을 넣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그려 넣었다. 4년을 여름이와 짝을 했고, 그 후 6학년에 전학을 갔다. 그런 후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전에 추억을 심었던 이곳으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전학으로 방황하고 침체됐던 때, 여름이를 이 학교에서 또 만나게 되었다. 여름이는 밝게 웃으며 말을 건네 주었다. 비록 어눌한 목소리였지만 여름이에게서 하얀 도화지가 보였다.
어른은 각박한 현실 속에 지쳐 가는 어두운 그늘이 아니라 그 분같이 자신의 길을 찾아 주는 등대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난 이제 영원히 그분이 말씀한 넓은 하얀 도화지를 내 안에 한껏 펴보이고 싶다.
고성고등학교
3 학 년
권 봄 이
1. 성명 : 권 봄 이
2. 성별 : 여
3. 연령 : 19세(만18세)
4. 주소 :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상2리 2반 484-2번지
(ksj4112@hanmail.net)
5. 전화번호 : 집(033-681-7377)
핸드폰(019-557-8377)
하얀 도화지를 접어 꺼내려 하지도 않았던 내 어린 시절, 그 도화지를 펼쳐 처음으로 선을 긋게 해주신 분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커져 버린 걸상에 앉느라 힘겨웠지만 그것마저도 내게 더 어른이 된다는 기쁨으로 다가왔다. 모두들 쉴 틈 없이 재잘재잘 작은 입을 오물거린다. 선생님은 언제나 오시려나 하는 찰나에 ‘드르륵’ 문이 열린다. 차가운 세모난 안경을 쓴 선생님이 천천히 들어오셨다. 아이들의 입은 모두 쩡쩡 얼어붙었는지 난로 소리만 윙윙거렸다. 선생님은 우리들의 마음을 아셨는지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셨다. 난 차가운 세모 안경 뒤에 겨울을 녹일 너그러운 인자함을 보았다. 그렇게 2학년의 시작은 순탄했다.
그 다음 날 난 선생님의 따스한 미소를 보기위해 맨 앞자리에 앉았다. 선생님께선 여전히 무표정이셨지만 선생님의 눈가에 주름은 내가 제일 잘 그리는 갈매기 마냥 너풀너풀 춤을 추듯 움직이는 것 같았다. 선생님께서 출석을 부르려고 목청을 가다듬자 교실은 조용했다. 아이들의 힘찬 목소리가 귓가에 웽웽거렸다. 드디어 내 차례! 너무 긴장해서 목소리가 꺽여서 나오는 바람에 웃음 바다가 되었다. “이연아! 음..........이여름?” 선생님께서 망설이다 부른 이름, 이여름!......... 내 이름은 봄이, 그 얘 이름은 여름이었다. 선생님의 부름에 정적만이 대답했다. 얘들이 여름이란 아이가 누구인지 알려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웅성거렸다. 선생님께선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가 다시 아무일 없는 듯이 출석부를 보고 아이들 이름을 부르셨다. 차가운 안경 뒤편으로 인자하게 웃으시는 얼굴을 난 부처님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부처님은 안경을 안 쓰셨지만 말이다. 그렇게 난 그 분을 만났다.
초등학교 2학년 봄은 목련이 지듯 빠르게 갔다. 하지만 내 생활은 그날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여름이는 정신지체아였다. 덧셈 뺄셈도 못했고, 양치질도 못했으며 어느 땐 그냥 오줌을 내 갈길 때도 있었다. 가끔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발작 비슷한 걸 일으킬 때도 있어서 얘들이 가까이 하지 않았고, 놀림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얘와 이름을 공유한단 이유만으로 나는 놀림 대상이 되어버렸다. ‘우와! 여름이 언니 봄이다. 얼레리꼴레리 봄이는 여름이 언니레요’ 난 정말 그 아이가 싫었다. 헤벌쭉 헤헤거리는 것도 싫었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건 더더욱 사양이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한달이 지났고, 아이들의 놀림이 태풍처럼 휩쓸고 간 후, 조용히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문이 조용히 드르륵 열렸고 선생님 안경이 햇빛을 받아 눈이 부셔 눈을 가늘게 떴다. 선생님께서 내 옆에 의자를 슬며시 들어 앉더니 내 손을 잡으셨다. 나는 전율을 느겼다. 내가 좋아 하는 눈가의 주름이 한껏 돋보였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망설이다가 말씀하셨다.
“봄이야, 여름이가 머리가 많이 아파서 그런거란다. 그런 여름이가 밉니?”
난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한테 거짓말을 하긴 싫지만 내가 그 여름이를 놀려대던 아이들처럼 나쁜 아이라는 걸 선생님께 들키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봄이야. 니가 여름이의 짝이 되어보지 않겠니? 봄이 마음 속에는 넓은 도화지가 있단다. 그 도화지에 꽃도 그리고, 나무도 그릴 수 있지. 그 도화지는 다른 아이들보다 넓어서 많을 걸 그릴 수 있어. 그 넓은 도화지에 여름이를 그려주지 않겠니?”
나는 그렇게 넓은 도화지를 얻게 되었다. 물론 그 곳에 여름이도 또한 그려 넣었다.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 나는 먼 미래가 두렵고, 홀로라는 생각에 고독할 때도 있지만 선생님이 펼쳐 주신 넓은 도화지에 난 한 조각의 따스한 햇볕을 넣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그려 넣었다. 4년을 여름이와 짝을 했고, 그 후 6학년에 전학을 갔다. 그런 후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전에 추억을 심었던 이곳으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전학으로 방황하고 침체됐던 때, 여름이를 이 학교에서 또 만나게 되었다. 여름이는 밝게 웃으며 말을 건네 주었다. 비록 어눌한 목소리였지만 여름이에게서 하얀 도화지가 보였다.
어른은 각박한 현실 속에 지쳐 가는 어두운 그늘이 아니라 그 분같이 자신의 길을 찾아 주는 등대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난 이제 영원히 그분이 말씀한 넓은 하얀 도화지를 내 안에 한껏 펴보이고 싶다.
고성고등학교
3 학 년
권 봄 이
1. 성명 : 권 봄 이
2. 성별 : 여
3. 연령 : 19세(만18세)
4. 주소 :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상2리 2반 484-2번지
(ksj4112@hanmail.net)
5. 전화번호 : 집(033-681-7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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