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리토피아 신인상

신인상
수상자
투고작

채유진-동화2(2003)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24회 작성일 04-11-16 10:17

본문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이었습니다.
해 뜨기 전의 하늘은 하양 빛으로 땅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산허리에 걸린 새벽 안개가 희미하게 밝아 왔습니다.
“아이참, 오늘도 늦었네.”
찬이는 잠에서 깨자마자 부리나케 문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할아버지는 벌써 나갔습니다.
찬이는 운동화를 꺾어 신고 헐레벌떡 뒤따라 나갔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가며 뒷산에 올랐습니다. 멀리, 소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할아버지 다녀오세요!”
찬이는 손을 말아 입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등뒤로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햇살의 떨림에 잠을 깨는 초록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무가 이파리를 흔들며 기지개를 켭니다.
하늘은 어느새 하양 빛을 거둬내고 붉은 나비 구름 날아들 듯, 빨강 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이 곳에서는 해돋이가 잘 보입니다. 마을도 한 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서해바다를 따라 펼쳐져 있는 간척지도 보입니다.
찬이네 마을은 바닷가에 둑을 쌓아 만든 간척 마을입니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바다에서 얻어지는 수확으로 살았지만, 간척 공사를 하여 농경지가 만들어진 뒤로는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간척 공사를 하기 전에는 생각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라에서 간척지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바다를 막아 논밭을 만든다고? 그럼, 우리나라 지도를 다시 그려야하는 건가?”
간척 공사를 하면 바다가 육지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라에서는 가뭄과 홍수 없는 땅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기대와 설렘을 안고 간척 공사가 진행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몇 해가 흘렀을까요.
사람들의 의문 속에 시작된 간척 공사는 드디어 마을의 해안지도를 바꾸어놓았습니다.
바다 한가운데 방파제가 세워졌습니다. 방파제를 따라 쭉 뻗은 길도 생겼습니다.
바다는 두 동강이 났습니다. 육지와 맞닿은 쪽의 바닷물이 서서히 빠져나갔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으로 변해갔습니다.  
나라에서는 간척지가 완성되면 마을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했습니다.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논밭을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람들은 기뻤습니다.  
“우리에게도 땅이 생겼어.”
“그러게. 농사를 짓고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마을 사람들은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새마을회관에 모여 마을의 발전을 의논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찬이네 할아버지도 있었습니다.
찬이의 할아버지는 육십 년이 넘게 농사를 지은, 이 마을에서는 가장 오래된 농사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해마다 논밭을 빌려 농사를 짓는 해 도지를 하였습니다.
할아버지의 평생 소원은 자신의 땅에 농사를 지은 곡식을 추수하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제 그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매일 밤 기쁜 마음으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간척 공사가 완성될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몇 해가 지났습니다. 드디어 간척지가 완성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마을 주민들의 기쁨은 컸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곳까지 모두 우리 땅이란 말이지? 몇 년 뒤에는 이곳에서도 황금물결을 볼 수 있겠군.”
사람들은 바다만큼 넓어진 땅을 보며 기뻐했습니다.
몇 일이 지났습니다.
나라에서는 약속대로 농사를 짓는 가구마다 두 필씩의 땅을 주었습니다.
땅을 받던 날, 할아버지는 논마지기 땅문서를 끌어안고 한참동안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찬이가 서 있는 뒷산 나무 아래 몇 번이고 절을 했습니다.
그때가 할아버지 나이 칠십이 조금 넘은 때였습니다.

새해를 맞아 일곱 살이 된 찬이는 삼 년째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있습니다.
엄마 아빠는 서울에서 맞벌이를 하십니다.
엄마 아빠는 찬이가 열 살이 되면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몇 년 후면 정든 집과도 작별입니다.  
찬이네 집은 마을 길이 끝나는 골목 제일 위쪽 끝, 산비탈 아래 있습니다.
빨간 지붕 위에 잘 여물은 박이 두 개 올라앉아 있습니다. 대문에는 울타리가 쳐져있습니다. 그 사이로 고추가 드문드문 걸려있습니다.
집 뒤에는 나지막한 산이 있습니다.  
이 산의 이름은 빛동산입니다.
봄이면 살구꽃이 피고 아카시아 꽃이 피고, 밤꽃이 핀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이 이름지은 것입니다.
찬이는 매일 아침 이 곳에 오릅니다. 때로는 할아버지와 함께 오릅니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저 멀리 보이는 논밭을 가리키며 말씀하십니다.  
“저기 보리밭이 보이지. 보리는 다 익어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있지만, 벼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단다. 사람은 벼이삭과 같이 되어야한다.”  
찬이는 할아버지의 손끝이 닿는 곳을 한참동안 바라봅니다. 하지만, 어린 찬이의 눈에는 보리와 벼이삭 모두가 똑같은 황금물결일 뿐입니다.
찬이는 낮 동안 빛동산 중허리에 있는 은행나무 아래 앉아 놉니다.
나무 아래서 흙장난도 하고 곤충도 잡습니다.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에는 꽃잎도 따먹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벌에 쏘인 손가락을 된장독에 찔러 넣어 할아버지께 혼이 난적도 있습니다.
이후부터는 아카시아 꽃잎대신 나무 아래 돌멩이를 쌓으며 놀았습니다. 마을 입구로 차가 한 대 들어올 때마다 돌멩이를 쌓았습니다.
찬이는 돌멩이 하나에 소원을 한가지씩 적었습니다.
돌멩이 하나에 ‘엄마’를 적었습니다. 또 다른 돌멩이에는 ‘아빠’를 적었습니다. 그렇게 모아진 돌이 어느새 종아리에 닿을 정도였습니다.
빛동산 산허리에 있는 은행나무는 마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어른 열네 명이 팔을 벌려 안아야 할 정도로 굵고 커다랬습니다.  
할아버지 말에 따르면 나무 아래는 오랜 옛날 조상이 잠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나무 아래는 언제나 귀매미가 울었습니다.
“사람들은 예부터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아래 앉아 하늘을 향해 소원을 빌었단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나무 아래 고개를 숙입니다. 나라에서 땅을 받던 날도 그랬던 것처럼 두 손을 모으고 여러 번 허리를 구부립니다.  
찬이는 할아버지가 일터에 나가신 낮 시간 동안 은행나무 아래 누워 풀피리를 불었습니다.
바람을 타고 퍼진 피리소리에 새들이 지저귀고 나뭇잎들이 짝짝짝, 손뼉을 칩니다.
나무는 뿌리만큼 키운 줄기로, 뿌리만큼 퍼진 가지를 늘어뜨려 그늘을 만듭니다. 어느새 나무 아래는 풀벌레도 쉬어가고 바람도 놀다갑니다.
나무는 그렇게 태양 아래 이 땅의 생명체를 팔 안에 끌어안습니다.  
태양이 대지와 작별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늘과 땅은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동안 하양 빛으로 희미하게 밝아있었습니다.
이 시간 즘이면 걸음마다 따라오는 아카시아 꽃 내음이 향기롭습니다. 나뭇잎이 손을 흔들 때마다 꽃향기가 퍼집니다.  
“안녕, 내일 또 올게.”
찬이가 휘파람을 불며 뛰어내려옵니다. 멀리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할아버지!”
밀짚모자에 반쯤 가려진 새하얀 눈썹, 하얀 모시 저고리를 입은 할아버지가 들고 있던 수건으로 땀을 닦습니다. 할아버지 뒤를 황소가 따라오며 “음매” 하고 반깁니다.    
어느새 어두워진 밤하늘 위로 집집마다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연기에 묻어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웃음소리도 퍼져옵니다.
산자락에 걸린 달님이 찬이네 집을 환히 비추고 있습니다.
지붕 위, 달빛을 받은 박이 점점 커지는 듯합니다. 금세 라도 지붕이 내려앉을 것만 같습니다.
달님은 찬이네 집안까지 환히 비춰옵니다
늦은 밤까지 텔레비전을 보던 찬이가 방문턱에 앉아 새우잠을 자고 있습니다. 꾸벅꾸벅 방아를 찧어가며 잘도 잡니다.
옆에는 할아버지가 지푸라기를 다듬고 있습니다.  
벽에는 하얀 모시저고리가 걸려 있습니다. 낮 동안 배인 땀 내음이 방 안 가득 퍼집니다. 마시다 남은 막걸리의 시큼함도, 하얀 고무신의 찌릿함도 묻어납니다.  
낮 동안 태양 아래 타 들어간 뼈가 하얀 재가 되어 흩날리듯, 방 안 구석구석, 할아버지의 힘겨운 삶이 달빛 아래 숨을 쉽니다.
간척지가 만들어지고 몇 해가 지났습니다.
해마다 농사가 풍년을 이루었습니다. 추수에 일손이 바빴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마을에 고속도로가 생긴다는 말이 전해졌습니다. 서울에서 이 곳까지 바다를 따라 길이 이어진다고 했습니다.  
“고속도로가 생기다니 마을의 발전이군.”
“해안도로가 생기면 땅값도 오르겠지? 서울 길도 가까워지잖아.”
사람들은 마을이 발전하고 있다며 기뻐했습니다.
찬이는 서울이 가까워진다는 말에 기뻤습니다. 나무 아래 쌓아놓은 돌탑이 무릎에 닿기 전에 엄마 아빠를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얼마가 지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고속도로 건설로 할아버지의 땅이 사라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땅은 도로가 만들어지는 곳과는 삼 리가 떨어진 밭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공사에 필요한 땅이라며, 그 곳에 모래를 쌓아놓는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정신이 얼얼했습니다.
얼마가 지났습니다.
할아버지 앞으로 나라가 땅을 매입하게 됐다는 통지가 도착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땅문서를 가슴에 품은 채 아무 말씀도 없었습니다.
이듬해 봄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 ‘고속도로 착공 기념 축하 행사’가 열리는 고향 마을이 나왔습니다.    
한 줄로 늘어선 사람들이 손으로 연결하여 잡은 긴 테이프를 끊고 짝짝짝, 손뼉을 쳤습니다. 기뻐하는 마을 사람들 사이로 무표정한 할아버지의 얼굴이 스쳤습니다.  
드디어 공사는 시작되었습니다.
하늘에서 구름다리가 떨어졌을까요? 도로는 어느새 마을 한쪽을 뚫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몇 해가 흘렀습니다.
오늘은 고속도로 개통 기념식이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침부터 분주했습니다.
그 사이 서울로 갔던 찬이는 부모님과 함께 할아버지를 찾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찬이의 손을 잡고 빛동산을 올랐습니다.
언제나처럼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올 해 따라 보리가 풍년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찬이야, 저기 보리밭이 보이지?”
찬이의 눈이 할아버지의 손끝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보리는 다 익어도 ‘나 잘났소.’하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단다. 하지만 벼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지. 사람도 마찬가지란다. 때문에 보리처럼 자란 사람은 세상을 살기 힘든 보릿고개로 만들고, 벼이삭으로 익은 사람은 이 땅에 풍년을 이룬단다.”
할아버지는 잠시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그루갈이 삼아 심은 보리는 거둬내야지.”
하며 모래성으로 변한 논마지기 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옆 은행나무를 쳐다보았습니다.
“나무도 제가 뿌리내린 만큼의 땅은 차지하고 살아가건만, 하물며 사람이….”  
할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시며 나무를 매만졌습니다. 나무 껍질처럼 주름살이 깊게 패인 할아버지의 손이 거칠게 느껴졌습니다.  
할아버지는 나무 아래 떨어진 은행을 주워 찬이의 손에 담아주었습니다.
“그만 가자.”
하며 할아버지가 산을 내려갔습니다. 찬이가 뒤따라 내려왔습니다.
찬이는 바지 주머니 속에 가득 채워진 은행을 조몰락거리며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등뒤로 목숨 끝이 빨간 태양이 지고 있었습니다.


-끝-








성        명 :  채  유  진
성        별 :  女
주        소 :  서울 송파구 잠실동 304-10
                (writer98@netian.com)
전 화  번 호 :  02)419-7247(H․P : 011-9134-7247)
원 고  매 수 :  31.6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