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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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성-시(2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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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매기처럼 꺼이꺼이 우는 시대의 초상
<사색하거나 일하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고독하니, 그가 있고 싶은 곳에 있도록 하라. 고독이란 자기와 벗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공간의 거리에 재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숲속의 생활”
눈물보다 영롱한 술잔을 앞에 놓고
사람들이 수족관에 물고기처럼 모여있었다.
가끔씩 누군가가 수족관 안으로 일용할 양식을 던져주었고
의욕을 잃은 물고기들은 물 위로 떠올랐다.
간이 음식점에서 떠도는 추문은 숯불 연기처럼
힘든 하루의 일상 속을 떠돈다
비전향 장기수를 감시하는 경찰관의 등장과
“건드리면 터져요' 의 아가씨 입술이
술잔에 빨갛게 번지며 반짝거렸다.
“어머 장미 백송이네”
아가씨는 부러운 듯 남자를 쳐다보고, 할머니는
비굴한 웃음으로 우리의 아픈 마음을 찔러대곤 했다.
꽃을 파는 할머니는 지나간 시절,
그녀 자신이 꽃이었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없이 소주나발을 불던 중년의 남자는
어깨 위에 각인된 자신의 납빛 상처를 드러내보이고 싶어했다.
한 때는 자신의 시대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멀리 보이는 고층빌딩 불빛 속의
나방처럼 이제는 더 이상 불빛이 다가갈 수 없다는 걸 안다.
세상에 스러져가는 모든 불빛들,
우리가 잃은 것은 별뿐 만이 아니었다.
2
제기랄 허튼 수작이야.아무 소용도 없는 에너지 낭비지
공적인 사무를 담당하는 감색 양복장이들의 막강한 식욕
IMF 차관을 갚은 것은
불황의 두려움에 대한 반어법 같은 것이었다.
그게 사람 사는 방식인 걸
어디에선가 수족관에서 꿈틀거리는 돌고래들을 본 것 같다.
돌고래는 연무처럼 피어 오르는 술집의 담배연기를 맡는다.
아니, 그것은 고작 숯불의 연기였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우리는 보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다.
“이 한 잔 술을 먹다가 난 죽을 지도 모른다.”
한 실연의 상처를 지닌 남자가 말했다.
그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말이었다.
각진 턱과 냉소적인 입술이 커다랗게 걸려있는 술집에
졸리운 눈을 가진 술집주인은 자꾸 채널을 바꾼다.
삽겹살은 프라이팬 위에서 거품을 빼물고 몸을 뒤척이며
이리저리 자신의 기름의 쏘아대고.
“ 여기 시원한 물 좀....”
가끔 술꾼들이 서로에게 욕을 해대고 질투를 하고
벡터의 화살로 하늘을 찔러대지만,
누구에게도 작은 상처 입히지 못하는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걸 우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정말 진실이란 우리 곁에서 멀리 떨어져야만 한다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그저 주저 앉는 것이 편안하다고 한다.
응고되어 바닥에 늘어붙어 있는 삼겹살의 기름덩어리가
우리의 인생에 그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가끔 벽 틈에서, 의자 위에서, 구두 밑창에서 짓이겨 지지만
결코 떨어지지 않을 우리의 원죄란 걸 알고 있다.
2. 서울, 분노와 권태가 잘 버무려진 샐러드 보울(BOWL)
*자아창조의 요구와 인간의 연대성의 요구를 똑같이 타당하지만 영원히 공약 불가능한 것으로
취급하고자 할 것이다.
-리차드 로티
시대의 여인들은 발전기처럼 강한
낯선 남자의 품에서 꿈을 접을 때,
“싫긴 뭐가 싫어, 좋지” 입에 발린 말에
처녀성을 고스란히 바친 채,
꿈틀거리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게 되었지.
이제 막 꿈을 가질 나이에
세상은 그녀의 입에 사탕을 물려주곤
병든 장미로 만들어 버렸지.
꿀처럼 달콤한 꿈꾸는 발전소 아래에서
미키마우스 인형과 붉은 장미 잎 몇 개가
그녀의 꿈 속에 곱게 끼워져 있었지.
이 모든 것이 꿈의 배신이라고 할까
초콜렛이 많이 붙은 환상 아이스크림이라고 할까
이젠 그녀를 기억하는 이 하나 없지만,
우리들의 새로운 정부의 벽에는
병든 장미의 추상화만이 걸려있었지
장밋빛 인생에서 풍겨 나오는 피의 냄새와
실제로 죽여야 성공하는 전쟁영화의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과
추체험 할 수 없는 가난한 시절의 노동쟁의와
서투르고 천박한 상상력의 또 다른 무정부주의,
뉴욕주립대학 출신의 영화감독이 제안한 변태적인 포르노 그라피
그 속에 서울과 동경과 리비아와 LA가 거대한 원안에서
빙빙 돌고 있는 가운데
병들고 시들은 장미 한 송이 보았지
이미 내 발에 밟혀버린 슬픈 장미 꽃잎
우울한 죽음의 기록은 계속되겠지
호텔 캘리포니아에서 흑인여성과의 섹스를 다룬,
권태와 분노와 함께하는 오늘 밤의 토크쇼를 보면서.
병든 장미 만이 가득찬 화원에
분노의 씨앗을 넣고 입구를 막아버린
꿈의 기록, 슬프지도 않은 시들은 장미들의 노래 소리를 들었지
그 노래는 여전히 귓가에서 맴돌고 있고
길가에 떨어진 꽃잎을 밟을 때마다
내가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지 않은가를 생각했지
얼마나 많은 꽃잎들이 떨어져야 할까
누군가 그 꽃잎을 위해 울어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지
3. 수줍음, 떠오른 해를 보며 그대가 떠난 텅빈 아침을 견뎌내다
*한 때는 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가 구원인 듯 생각되었습니다..... 또한 사랑도 구원이 될 수 없었죠. 구원이라는 화두를 풀기위해 인도로 떠났고 비로소 나의 한가운데로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강 석경, 한 신문 인터뷰에서
난 사랑,하지 않겠어!
그댄 떠났고, 차가운 새벽이슬이 눈물처럼 떨어질 때
온기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떠난 그대의 빈자리를 보며
텅 빈 침대 위에서 심장하나 툭툭 떨어진 나는
추위와 외로움으로 떨면서 홀로 잠들지 못했지.
해는 더 이상 어제의 해가 아닌데,
그대가 텅 빈 발자국을 남긴 자리에
눈물 한 방울씩 뿌려두면 그댄 돌아올까
이 새벽은 골고다 언덕보다 더 가파르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인 것 같아
그대 없이 난 살 수 있을까
죽을 수조차 있을까
그대가 사랑 하지 않겠어 ! 침 뱉듯이
말하고 떠난
밤부터 텅 빈 아침까지
존 레넌과 에디뜨 삐아프
사랑을 하지 않겠어! 의 반항자들
이 슬픈 노래들은 왜 이렇게 끊이질 않는 걸까
누구를 위한 노래였는지 잘 알고 있어
한 때는 이 노래들이 날 비난한다고도 생각했었지
하지만 노래는 노래일 뿐
생명을 이루는 것은 이별을 필요로 한다는 것
남긴 발자국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슬픈 눈망울은 언젠가는 웃을 때도 있겠지
아무도 없었어
무겁게 내리 누르는 침묵 외엔
나는 없었어
그대가 없으므로
내 눈 속에 이슬방울은 새로운 생명을 틔울 수 있을까?
진정 한 방울의 눈물이 새로운 사랑의 싹을 틔울 수 있을까
그대 없이 살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침 해는 다시 떠오르고
생명은 저 밑바닥부터 삶의 싹의 틔우고 있었네
4.누군가 성 앞에서 울고 있다.
*그것은 부, 권력, 무관심, 청교도주의, 정신위생, 가난과 쓰레기, 기술적 무익성과 목적없는 폭력으로 완전히 썩은 세계다.
-쟝 보드리야르 “아메리카” 중에서---
성 위로 오래 전 그날부터
달빛이 호수를 노랗게 물들이고
새가 변덕스러운 날개 짓으로
변해가는 것을 변하는 대로 놓아두라고 조용히 속삭일 때
누군가 성 앞에서 울고 있었다
아픔의 시간들이 엉겅퀴 풀처럼 뒤엉켜 있고
붉은 색 의문부호처럼 굽어진 과거의 길을 되돌아 보면
유년의 강을 따라 흐르던 순수의 시절
수 많은 소녀들이 부연 안개에 발갛게 상기된 볼을 비벼댈 때
굳건한 성문은 열리지 않았고
구원을 찾던 순례자들이 그 길가에서 죽어갈 때
버림받은 영혼들의 비석 위로 한 무리의 까마귀가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심판하듯 모여있었다
우주는 정녕 불의 심판을 받고 말 것인가
과부들이 젖을 물릴 아이를 찾아 헤메이고
망명자는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전하려 하지만
우리들이 병든 새처럼 안고 있던
과거의 이상들은 더 이상 맥박이 뛰지 않는다.
어미의 젖은 어떤 이방인의 손에 의해 주물러질 것인가
밤나무 밑에서 시를 짓던 조숙한 아이에게
모국어가 외국어로 느껴지고
첫사랑의 소녀는 붉은 빛 아래 흥정을 하고
불덩이는 하늘로 부터 떨어져, 구원자도 없이
한국은 몰락하고 말 것인가
한 번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 말을 하기 전에 불행의 별이 다가온다
정녕 세상은 스스로를 죽이고 말 것인가
그렇다면 누구의 어깨를 기대고
소녀처럼 울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불안한 언더그라운드
그대에게 어깨를 빌려줄 이 찾아 헤메이다
“그래 이게 세상이야 난 더 이상 속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추억하고
낙원의 입구에서 울부짖으며
막다른 오솔길에서 만나게 된
오래 전부터
누군가 성 앞에서 울고 있다
제한된 시간이 째깍째깍 돌아가는 지금
당신인가 나인가
누군가 성 앞에서 울고있다
5. 오로지 모던 러브 칵테일
*내가 일리암에 있는 소유주 불명의 돌천사가 주는 수수깨기같은 정신적인 의미로 인해 머리속이 윙윙거리는 상태로 내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나는 내 아파트가 허무주의적인 주색연으로 인해 파괴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커트 보네것 “고양이 요람” 중에서----
어제 죽었던 고양이를 만났다
털이 복실하고 허리가 잘 빠진
동그란 눈 속에 담긴 의미가
“괜찮아요, 좋을 거에요”말하고 있었다.
카페 “오로지 모던 러브 칵테일” 에서
베르사체 향수의 쿨한 어지럼증은
페라가모 가죽핸드백 속의 로얄젤리를
건네주며 “ 이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거에요”
고양이는 능숙하게 손톱을 다듬을 동안
밖에는 노숙자가 얼어 죽어가고 있었다.
고양이는 다비도프 담배를 피웠고
스커트 안의 허리를 움직여가며
교태의 곁눈질로 시선을 끌기도 했다
‘과연 될까 될까‘
망설이던 남자는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네고
‘깨끗한 호텔, 샴페인, 장미꽃 한 다발, 정상 체위, 애프터는 사절’
고양이의 제안은 합리적인 것이었다.
남자는 요염한 고양이를 안고,
휘청거리듯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카페 밖의 노숙자는 얼어죽어 가고 있다
흘낏 고양이는 죽음을 외면하려 했다
깨끗한 호텔에서 영국산 그린스빌 향료에 목욕을 하는 동안
남자는 속옷을 전부 벗은 채로
자신의 남성을 유심히 보고
빌 에반스를 틀어 놓고
고양이를 안았다
“ 난 이것으로 만족 안 해, 뒤로 돌아봐”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뒤로 돌고
고양이의 신음 소리는 병든 아이소리처럼
공명과 박동을 계속했다
하룻밤을 지나고
온몸이 나른한 채로
사각사각거리는 실크 촉감을 느끼면서
고양이는 남자의 명함을 쥐어 들지만
서로의 이름도 주소도 알 필요 없이
콘돔을 사용한 것과
구강용 피임약을 먹은 것과
월경주기를 확인하고
허탈감도 미련도 없이 바람만 차가왔을 뿐
깨끗하고 완벽했다
먼지 하나 없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앰블런스가 한 죽음을 실어 날랐다.
호텔 안과 밖에서
두 가지 죽음이 있었다.
노숙자는 얼어 죽어 가고 있었고
고양이는 매일밤 마다 죽는다
과연 죽어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6. 늙은 수녀,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다
(수녀) 아! 형제님 (나) 의 눈에는 어딘가 반항기가 서려 있어요.
(신부) 아! 수녀님은 잘 생긴 총각만 보면 그러던데요, (웃음)
(수녀) 아니에요,정말 형제님의 눈에는 반항기가 가득하다구요
(난 움찔하면서 웃음)
-음성 꽃동네 전 발트로메어 수녀님과의 대화중에서---
오후의 카페에서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일기를 썼다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글을 읽은 후였나 그렇다
전날에 밤을 세운 덕분인지
목은 까끌했지만
날 끊임없이 깨우는 것이 있었다
향기도 좋았고 바스락거리는 책갈피 소리도 좋았다
그러나 그것때문 만이 아니었다
근원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 있었다
난 잠시 망설였고
좀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당신이 다가왔다
깨끗하고 좀 바랜 수녀복을 입은 당신은
진한 커피를 마시고 왜 그토록
혼자인가를 물었다
난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유는 설명할 순 없지만
빙긋 당신이 웃었다
이마에 깊이 패인 주름살을 보며
당신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뭘 읽고 있지요?”
“성경과 호밀밭의 파수꾼을 같이 읽고 있지요”
아마 쉰 살 정도 되었을까
근원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 있었다
난 잠시 망설였고
좀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늙은 수녀가 있었다
성경과 호밀밭의 파수꾼 같이 읽고 있는
좀 두려운 수녀가 있었다
6.희미함,그 사랑의 스타일
매일 눈이 내리기만 기다리는 여인,사랑의 여인, 가슴은 여전히 정열로 붉어지지만
피곤한 시대의 그림자는 바닷가 어귀에서 사라졌다. 사랑이 옛 세대의 어떤 일을 했는지 알고 있듯이 한 때 백조가 되어 숨을 죽이며 지켜 보았던 일을 기억한다
모든 사람으로서 나, 당신이 내가 되고 내가 당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
한 젊은이는 사랑의 제국이 몰락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사랑을 놓치지 않은 깃 밧줄을 쥐고,재즈를 들으며 술을 마신다
이 젊은이에게는 지나간 시대의 희미한 잔영이 보인다.
안개에 쌓여있는 녹슨 다리와 비에 젖은 망명국가의 국기라든가
이미 마른 시냇물 자국이 보인다.이별이 죽음보다 빨리 오기를......
시간의 상처가 새벽마다 눈 앞에 보이고 확신이 부족한 노년은 눈 길에 남은 시간과 추억의 무게가 실린 긴 발자국만 돌아본다.그녀와 사랑을 나눈 새벽, 잊을 수 없다고,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던 아침,겨울 아침의 반짝이는 눈의 아름다움을 곁에 두고,이별이 죽음보다 빨리 오기를 기도했다 사랑의 여인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떠났다
7. 은어 애인
그녀의 보드라운 배가 스펀지처럼 그의 사타구니를 눌렀다. 아냐, 아가씨
등으로 눕는 것이 더 안전하겠어. 그는 이렇게 생각하나 그 생각을 떨쳐버린다.
그녀는 공포에 질렸다. 촉촉하고 뜨거운 입술을 그의 입술에 비벼댄다.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는 그녀의 부드러운 궁둥이를 껴 앉고 달래듯 어루만져 본다.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아래로 떨어져 그들은 허공에 떠 있는 듯하다. 그녀는 스커트를 벗었다. 기분이 어떨까? 그는 궁금했다.
- 로버트 쿠버 "엘리베이터" 중에서
붉은 빛의 물 속에서 반짝거리며
물에 씻기운 몸을 드러내는
당신은 물보다 투명한 은어의 자태
반질한 비늘이 몸을 감기우고
힘차게 튀어 오르는 나의 은어
매끄럽게 젖어 있는 당신의 입술에서
숨소리가 멎을 때까지
아 당신은 날 미치게 만들어!
흔한 입맞춤도 없이
우리는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당신은 나의 시, 포도와 같은 나의 눈물
숨겨 졌던 모든 감각이 놀라 깨어나고
끝끝내 터져 나오는 사랑의 노래를
막을 수가 없다
좋아 당신은 날 지금 죽이고 있어
당신이 내 품안에 있을 때
세상은 검은 장막과 미끼로 유혹하는 환멸의 무대
사랑함으로써 지옥보다 더 지독한
삶의 구렁텅이를 깨닫는다
난 당신 품에 안겨서만 죽을 수 있어
은어는 싱싱한 몸을 뒤척이며
뜨거운 우리의 지옥에서 발버둥친다
8. 폐선, 혹은 사랑의 잔해
난 이따금 옛날 일을 꿈으로 꾸는데 어찌나 선명한 지 내가 지금 과연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 싶어서 내 몸을 흔들어 본다니까? 특히 내 곁에 있는 여자가 있을 때는 더 그래. 여자라는 속물은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몸에서 떼어놓는 힘이 있어. 여자에게 바라는 것은 그것 뿐이야. 내 자신을 잊는다는 것........
-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중에서
욕망이 한 차례 바람처럼 지나간 후
행복했을까
숨을 쉴 수 없던 절정이 끝나고
거듭되던 기쁨이 수증기처럼 날아가 버린 후
오히려 후회만이
텅 빈 거울 위에 남아있다
당연한 감정이었겠지,
아쉬웠어, 아니
사랑해?
글쎄, 우리가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게 있을까?
당신은 서둘러 옷을 입고 떠났다
난 당신에게 끌리면서도
오히려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아니다 이건 사랑이라 부를 수 없다
당신은 떠났고 난 남아서
시트를 빨고 온 몸에 묻어나는
당신의 냄새를 닦아낸다
그래, 거기에는 폐선의 냄새가 난다
누군가 나보다 더 당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랬다
짧은 당신의 웃음과 쾌락이 끝나면
당신의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랬다
그건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 누어있는 슬픈 배처럼
언제나 쓸쓸하고 외로워 보일 뿐
아무도 다가오려 하지 않는다
폐선은 언제나 폐선일 뿐
아무도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난 언제나 천정 아래에
발가벗은 채로 쓰러져 버린
내 사랑의 잔해를 쳐다본다
결코 당신의 사랑에는 이르지 못할
사랑의 폐선 혹은 그 잔해
9. Smell like teen spirit
총을 장전하고 친구들을 불러와, 정신을 잃어버리거나
거짓으로 꾸미는 건 재미있지. 그녀는 지나치게 권태롭고
자기 확신에 차 있어, 아니야, 알지, 그건 더러운 단어야.--
- 커트 코배인, 'Smells like teen spirit" -
신경쓰지마
회색머리를 쓸어 올리며 친구는 말을 꺼낸다
죽음보다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난 어부
물방울이 귀에서 퐁퐁 떨어진다
그는 시니컬한 프로스트의 말을 흉내낸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 빌어 붙어 살던 그늘이 깊고 습기 찬 방과
한 줄기의 빛도 인색하게만 보이던 지하카페를 상상한다
벙어리 같은 음성의 어눌함이 그곳에서
분열의 이끼를 자라게 했고
지나간 시대의 이념의 시체들을 방치해 놓았다.
그렇게 펑크의 시대는 가고
젊음의 혁명은 일찍 요절해 버렸다
우리가 젊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한 사내 녀석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어디에서 실날같은 희망 절망 같은 행운을 기대할 수 있을까
친구들 중 몇몇은 실연때문에 만나기 귀찮을 정도로-
존재의 껍데기만 옷 조각 속에 숨긴 채로 -영악하고 탐욕스러운 인간이 되어갔다
그런 인간들이 살아가는 데 명수다
신을 믿고 살아가던 한 명은 소식을 듣고 달려 갔을 때
그 어느 천보다 순결하고 차가운 백색의 천으로 덮여져 있었다
추억보다 먼저 땅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수녀를 기다리더니...
회색머리는 눈물보다 많은 술잔을 물고기 지느러미 같은 손으로
잡고만 있었다. 한참동안
아집보다 두꺼운 기억의 페이지 속으로 망각의 잔을 끼얹는 것?
난 그에게서 변해갈 수 없다는 음울한 고백을 들었다
시간에 일찍 순응한 조로한 인생의 빛 바랜 한 장면.
그가 마지막 술잔을 깨끗이 입안으로 털어넣은 찰라
조로한 인생들의 귀착점
어디인가
정말 우린 쉽게 늙어버렸다
우리는 나이보다 너무 빨리 늙어버린다
10. 올더스 헉슬리의 목
당신은 시를 아주 친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시가 대다수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데 큰 곤란한 점이 있죠.
- 존 헤글리(John Hegley)
당신은 정오가 되기를 기다렸지.
상한 생선과 같은 도시의 정오
빈곤한 시대의 정오
늘어진 페니스 같은 정오
물이 떨어지는 옷가지들과
형식적이고 오만한 책들과
먼지가 내려 앉은 물잔을 쳐다보았지
그럼 자꾸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걸 느끼게 된단 말이야
너를 당황 시켰던 불의의 침입자들이 다가오고 있어.
언젠가 넌 커피숍에서 옛 혁명가와 얘기를 했지.
밀란 쿤데라의 `느림'이나 미셀 푸코이야기
상황이 거기에 부합되는지 자신도 모르면서
냉정한 독사처럼 정부를 물어뜯으면서
제기랄 퍽 유
우리가 원하는 꿈들은 도대체 누구의 대갈통에서부터 나오는 거야
빠져 나오지도 못하면서
뭐 정체성이나 상상력의 문제라구?
넌 죽는 걸 두려워 하지 않는 다고 했잖아
다만 짜증이 날 뿐, 새 목을 비틀 듯이 스스로 죽을 수 있다고 했잖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기다리고 있다고?
천만에 예를 하나 들지
하나의 계단이 있다고 생각해봐
그냥 삐그덕거리면서 황홀경에 빠져 있는 계단
넌 넘어지지 않게 그러나 좀 더 빠른 속력으로 내려오다가
발을 헛딛었지.
몸이 쑥 빠지고 머리털은 곤두서고 가슴은 철렁하겠지
그런데 넌 손을 뻗쳐서 무언가 지탱할 것을 잡은 거야
손아귀에 힘을 꽉 주고 몸을 일으켜 손에 잡은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지 그건 바로 올더스 헉슬리의 목이었으니까
문학에 진력이 나서 발을 헛디딜 때 쯤 잡을 수 있는 무엇
그게 올더스 헉슬리지.
11. 치마 속 어두운 그림자
내가 언제나 사랑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세가지 있다.
미술, 음악 그리고 여자이다.
- 폰타넬
음악 선생의 치마 속의 어두운 그림자
그 깊은 암흑 속에 아이들은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이들은 음악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음악공책 뒷면에 야한 그림이나 신체부분에 관련된
욕을 가득 채워 넣었다.
몇몇 성숙한 아이들은 바지 앞이 팽팽해 지기도 하였다.
그녀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한단 말인가
피아노 앞에 앉아 올드 블랙 죠/ 스와니강/ 선구자/ 성불사의 밤을 부르던
음악 선생은 학생들의 머리 속에서 언제나 사랑의 천사였다
새집의 머리 꽉 끼인 감색 치마 두꺼운 입술 늘어져 버린 가슴
아이들은 그녀가 여성의 전부인 줄 알았다.
싱그런 봄 내음/ 아름답고 몽롱한 아지랑이/ 그리고 햇빛에 반짝거리는 피아노
아이들은 일부러 음악시간에 앞에 앉으려고 경쟁을 했다.
그저 호기심에 그랬기 때문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공평하게 흐른다.
아이들은 이제 너나 할 것 없이 몽정을 했거나 사랑을 시작했다.
더 이상 음악 시간을 특별하게 기다린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은 하나의 육체에 지나지 않았단 것이다.
여름과 겨울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아이들은 지나가버린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호기심을 버렸다.
그저 음악 시간에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그래, 그래
그녀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했단 말인가
12. 깊은 고독
스피드는 순수 대상을 창조한다.
-쟝 보드리야르 '아메리카'
그녀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한층 어둡고 우울하며 냉소적인 사람이었고,
열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잃었고
동시에 애인을 잃었다.
그 후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후로 십년 동안 주변에는
말보로와 하이네켄과 두꺼운 상처와 구토와
틈나는 대로의 분노와 과식만이 남았다.
몰래 싸구려 철물점에서 산 본드와
부탄가스의 흡입. 난 환상을 느꼈고
그것이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상상 속에서 수많은 남자와 관계하고
어린아이를 임신했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남성과 자지 않았다.
단순한 아이러니 혹은 콤플렉스의 문제는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BC카드와 노트북과 청바지와 낡은 바바리를 걸치고
어디든 여행을 다녔다.
그 곳은 얼마간의 지상낙원 이내
곧 지옥, 금방 지옥으로 바뀐다.
옥서 한 철을 보낸 것이다.
어떤 사람의 영향도 거부했고 충고와 훈계도 거부했다.
누가 대체 그런 말을 귀담아 듣는단 말인가
명령과 관련된 모든 책임의 무시
마냥 머리는 길어지고
욕설이 터져 나오고
행복한 불결함이 고독의 물 위에 둥둥
떠 있다.
`히피와 밀크 쉐이크' 란 영화를 보고 나서
계속 입 속으로 히피 앤 밀크 쉐이크를 중얼거린다.
그건 무의미한 주문, 성경의 쓰여진 것 같은 주문
그런 날 중에 대부분을 물로 배를 채운다. 수도가나 되는 냥...
너무 배가 고프면 폭력을 휘두르고 싶어졌다
고독때문인가
더 배가 고프다.
거리를 거닐면서 신문에 난 정치범의 탈옥과
미국의 경제 협상과 콜롬비아의 쿠데타 소식을 가만히 읽었다.
모두들 고독하다.
배가 쓰리도록 허기를 느꼈다. 살의다 살의
꿈쩍도 안하던 그녀의 영혼이 하나로 모아진다.
그녀는 그 곳에서 지옥을 본다.
성명 : 윤 성 (본명 : 전 훈)
성별 : 남
연령 : 33세
주소 :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대림아크로타운 C동 11F
전화번호 : 02-2193-1130,
016-791-7022
<사색하거나 일하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고독하니, 그가 있고 싶은 곳에 있도록 하라. 고독이란 자기와 벗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공간의 거리에 재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숲속의 생활”
눈물보다 영롱한 술잔을 앞에 놓고
사람들이 수족관에 물고기처럼 모여있었다.
가끔씩 누군가가 수족관 안으로 일용할 양식을 던져주었고
의욕을 잃은 물고기들은 물 위로 떠올랐다.
간이 음식점에서 떠도는 추문은 숯불 연기처럼
힘든 하루의 일상 속을 떠돈다
비전향 장기수를 감시하는 경찰관의 등장과
“건드리면 터져요' 의 아가씨 입술이
술잔에 빨갛게 번지며 반짝거렸다.
“어머 장미 백송이네”
아가씨는 부러운 듯 남자를 쳐다보고, 할머니는
비굴한 웃음으로 우리의 아픈 마음을 찔러대곤 했다.
꽃을 파는 할머니는 지나간 시절,
그녀 자신이 꽃이었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없이 소주나발을 불던 중년의 남자는
어깨 위에 각인된 자신의 납빛 상처를 드러내보이고 싶어했다.
한 때는 자신의 시대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멀리 보이는 고층빌딩 불빛 속의
나방처럼 이제는 더 이상 불빛이 다가갈 수 없다는 걸 안다.
세상에 스러져가는 모든 불빛들,
우리가 잃은 것은 별뿐 만이 아니었다.
2
제기랄 허튼 수작이야.아무 소용도 없는 에너지 낭비지
공적인 사무를 담당하는 감색 양복장이들의 막강한 식욕
IMF 차관을 갚은 것은
불황의 두려움에 대한 반어법 같은 것이었다.
그게 사람 사는 방식인 걸
어디에선가 수족관에서 꿈틀거리는 돌고래들을 본 것 같다.
돌고래는 연무처럼 피어 오르는 술집의 담배연기를 맡는다.
아니, 그것은 고작 숯불의 연기였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우리는 보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다.
“이 한 잔 술을 먹다가 난 죽을 지도 모른다.”
한 실연의 상처를 지닌 남자가 말했다.
그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말이었다.
각진 턱과 냉소적인 입술이 커다랗게 걸려있는 술집에
졸리운 눈을 가진 술집주인은 자꾸 채널을 바꾼다.
삽겹살은 프라이팬 위에서 거품을 빼물고 몸을 뒤척이며
이리저리 자신의 기름의 쏘아대고.
“ 여기 시원한 물 좀....”
가끔 술꾼들이 서로에게 욕을 해대고 질투를 하고
벡터의 화살로 하늘을 찔러대지만,
누구에게도 작은 상처 입히지 못하는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걸 우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정말 진실이란 우리 곁에서 멀리 떨어져야만 한다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그저 주저 앉는 것이 편안하다고 한다.
응고되어 바닥에 늘어붙어 있는 삼겹살의 기름덩어리가
우리의 인생에 그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가끔 벽 틈에서, 의자 위에서, 구두 밑창에서 짓이겨 지지만
결코 떨어지지 않을 우리의 원죄란 걸 알고 있다.
2. 서울, 분노와 권태가 잘 버무려진 샐러드 보울(BOWL)
*자아창조의 요구와 인간의 연대성의 요구를 똑같이 타당하지만 영원히 공약 불가능한 것으로
취급하고자 할 것이다.
-리차드 로티
시대의 여인들은 발전기처럼 강한
낯선 남자의 품에서 꿈을 접을 때,
“싫긴 뭐가 싫어, 좋지” 입에 발린 말에
처녀성을 고스란히 바친 채,
꿈틀거리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게 되었지.
이제 막 꿈을 가질 나이에
세상은 그녀의 입에 사탕을 물려주곤
병든 장미로 만들어 버렸지.
꿀처럼 달콤한 꿈꾸는 발전소 아래에서
미키마우스 인형과 붉은 장미 잎 몇 개가
그녀의 꿈 속에 곱게 끼워져 있었지.
이 모든 것이 꿈의 배신이라고 할까
초콜렛이 많이 붙은 환상 아이스크림이라고 할까
이젠 그녀를 기억하는 이 하나 없지만,
우리들의 새로운 정부의 벽에는
병든 장미의 추상화만이 걸려있었지
장밋빛 인생에서 풍겨 나오는 피의 냄새와
실제로 죽여야 성공하는 전쟁영화의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과
추체험 할 수 없는 가난한 시절의 노동쟁의와
서투르고 천박한 상상력의 또 다른 무정부주의,
뉴욕주립대학 출신의 영화감독이 제안한 변태적인 포르노 그라피
그 속에 서울과 동경과 리비아와 LA가 거대한 원안에서
빙빙 돌고 있는 가운데
병들고 시들은 장미 한 송이 보았지
이미 내 발에 밟혀버린 슬픈 장미 꽃잎
우울한 죽음의 기록은 계속되겠지
호텔 캘리포니아에서 흑인여성과의 섹스를 다룬,
권태와 분노와 함께하는 오늘 밤의 토크쇼를 보면서.
병든 장미 만이 가득찬 화원에
분노의 씨앗을 넣고 입구를 막아버린
꿈의 기록, 슬프지도 않은 시들은 장미들의 노래 소리를 들었지
그 노래는 여전히 귓가에서 맴돌고 있고
길가에 떨어진 꽃잎을 밟을 때마다
내가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지 않은가를 생각했지
얼마나 많은 꽃잎들이 떨어져야 할까
누군가 그 꽃잎을 위해 울어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지
3. 수줍음, 떠오른 해를 보며 그대가 떠난 텅빈 아침을 견뎌내다
*한 때는 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가 구원인 듯 생각되었습니다..... 또한 사랑도 구원이 될 수 없었죠. 구원이라는 화두를 풀기위해 인도로 떠났고 비로소 나의 한가운데로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강 석경, 한 신문 인터뷰에서
난 사랑,하지 않겠어!
그댄 떠났고, 차가운 새벽이슬이 눈물처럼 떨어질 때
온기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떠난 그대의 빈자리를 보며
텅 빈 침대 위에서 심장하나 툭툭 떨어진 나는
추위와 외로움으로 떨면서 홀로 잠들지 못했지.
해는 더 이상 어제의 해가 아닌데,
그대가 텅 빈 발자국을 남긴 자리에
눈물 한 방울씩 뿌려두면 그댄 돌아올까
이 새벽은 골고다 언덕보다 더 가파르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인 것 같아
그대 없이 난 살 수 있을까
죽을 수조차 있을까
그대가 사랑 하지 않겠어 ! 침 뱉듯이
말하고 떠난
밤부터 텅 빈 아침까지
존 레넌과 에디뜨 삐아프
사랑을 하지 않겠어! 의 반항자들
이 슬픈 노래들은 왜 이렇게 끊이질 않는 걸까
누구를 위한 노래였는지 잘 알고 있어
한 때는 이 노래들이 날 비난한다고도 생각했었지
하지만 노래는 노래일 뿐
생명을 이루는 것은 이별을 필요로 한다는 것
남긴 발자국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슬픈 눈망울은 언젠가는 웃을 때도 있겠지
아무도 없었어
무겁게 내리 누르는 침묵 외엔
나는 없었어
그대가 없으므로
내 눈 속에 이슬방울은 새로운 생명을 틔울 수 있을까?
진정 한 방울의 눈물이 새로운 사랑의 싹을 틔울 수 있을까
그대 없이 살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침 해는 다시 떠오르고
생명은 저 밑바닥부터 삶의 싹의 틔우고 있었네
4.누군가 성 앞에서 울고 있다.
*그것은 부, 권력, 무관심, 청교도주의, 정신위생, 가난과 쓰레기, 기술적 무익성과 목적없는 폭력으로 완전히 썩은 세계다.
-쟝 보드리야르 “아메리카” 중에서---
성 위로 오래 전 그날부터
달빛이 호수를 노랗게 물들이고
새가 변덕스러운 날개 짓으로
변해가는 것을 변하는 대로 놓아두라고 조용히 속삭일 때
누군가 성 앞에서 울고 있었다
아픔의 시간들이 엉겅퀴 풀처럼 뒤엉켜 있고
붉은 색 의문부호처럼 굽어진 과거의 길을 되돌아 보면
유년의 강을 따라 흐르던 순수의 시절
수 많은 소녀들이 부연 안개에 발갛게 상기된 볼을 비벼댈 때
굳건한 성문은 열리지 않았고
구원을 찾던 순례자들이 그 길가에서 죽어갈 때
버림받은 영혼들의 비석 위로 한 무리의 까마귀가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심판하듯 모여있었다
우주는 정녕 불의 심판을 받고 말 것인가
과부들이 젖을 물릴 아이를 찾아 헤메이고
망명자는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전하려 하지만
우리들이 병든 새처럼 안고 있던
과거의 이상들은 더 이상 맥박이 뛰지 않는다.
어미의 젖은 어떤 이방인의 손에 의해 주물러질 것인가
밤나무 밑에서 시를 짓던 조숙한 아이에게
모국어가 외국어로 느껴지고
첫사랑의 소녀는 붉은 빛 아래 흥정을 하고
불덩이는 하늘로 부터 떨어져, 구원자도 없이
한국은 몰락하고 말 것인가
한 번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 말을 하기 전에 불행의 별이 다가온다
정녕 세상은 스스로를 죽이고 말 것인가
그렇다면 누구의 어깨를 기대고
소녀처럼 울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불안한 언더그라운드
그대에게 어깨를 빌려줄 이 찾아 헤메이다
“그래 이게 세상이야 난 더 이상 속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추억하고
낙원의 입구에서 울부짖으며
막다른 오솔길에서 만나게 된
오래 전부터
누군가 성 앞에서 울고 있다
제한된 시간이 째깍째깍 돌아가는 지금
당신인가 나인가
누군가 성 앞에서 울고있다
5. 오로지 모던 러브 칵테일
*내가 일리암에 있는 소유주 불명의 돌천사가 주는 수수깨기같은 정신적인 의미로 인해 머리속이 윙윙거리는 상태로 내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나는 내 아파트가 허무주의적인 주색연으로 인해 파괴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커트 보네것 “고양이 요람” 중에서----
어제 죽었던 고양이를 만났다
털이 복실하고 허리가 잘 빠진
동그란 눈 속에 담긴 의미가
“괜찮아요, 좋을 거에요”말하고 있었다.
카페 “오로지 모던 러브 칵테일” 에서
베르사체 향수의 쿨한 어지럼증은
페라가모 가죽핸드백 속의 로얄젤리를
건네주며 “ 이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거에요”
고양이는 능숙하게 손톱을 다듬을 동안
밖에는 노숙자가 얼어 죽어가고 있었다.
고양이는 다비도프 담배를 피웠고
스커트 안의 허리를 움직여가며
교태의 곁눈질로 시선을 끌기도 했다
‘과연 될까 될까‘
망설이던 남자는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네고
‘깨끗한 호텔, 샴페인, 장미꽃 한 다발, 정상 체위, 애프터는 사절’
고양이의 제안은 합리적인 것이었다.
남자는 요염한 고양이를 안고,
휘청거리듯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카페 밖의 노숙자는 얼어죽어 가고 있다
흘낏 고양이는 죽음을 외면하려 했다
깨끗한 호텔에서 영국산 그린스빌 향료에 목욕을 하는 동안
남자는 속옷을 전부 벗은 채로
자신의 남성을 유심히 보고
빌 에반스를 틀어 놓고
고양이를 안았다
“ 난 이것으로 만족 안 해, 뒤로 돌아봐”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뒤로 돌고
고양이의 신음 소리는 병든 아이소리처럼
공명과 박동을 계속했다
하룻밤을 지나고
온몸이 나른한 채로
사각사각거리는 실크 촉감을 느끼면서
고양이는 남자의 명함을 쥐어 들지만
서로의 이름도 주소도 알 필요 없이
콘돔을 사용한 것과
구강용 피임약을 먹은 것과
월경주기를 확인하고
허탈감도 미련도 없이 바람만 차가왔을 뿐
깨끗하고 완벽했다
먼지 하나 없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앰블런스가 한 죽음을 실어 날랐다.
호텔 안과 밖에서
두 가지 죽음이 있었다.
노숙자는 얼어 죽어 가고 있었고
고양이는 매일밤 마다 죽는다
과연 죽어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6. 늙은 수녀,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다
(수녀) 아! 형제님 (나) 의 눈에는 어딘가 반항기가 서려 있어요.
(신부) 아! 수녀님은 잘 생긴 총각만 보면 그러던데요, (웃음)
(수녀) 아니에요,정말 형제님의 눈에는 반항기가 가득하다구요
(난 움찔하면서 웃음)
-음성 꽃동네 전 발트로메어 수녀님과의 대화중에서---
오후의 카페에서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일기를 썼다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글을 읽은 후였나 그렇다
전날에 밤을 세운 덕분인지
목은 까끌했지만
날 끊임없이 깨우는 것이 있었다
향기도 좋았고 바스락거리는 책갈피 소리도 좋았다
그러나 그것때문 만이 아니었다
근원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 있었다
난 잠시 망설였고
좀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당신이 다가왔다
깨끗하고 좀 바랜 수녀복을 입은 당신은
진한 커피를 마시고 왜 그토록
혼자인가를 물었다
난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유는 설명할 순 없지만
빙긋 당신이 웃었다
이마에 깊이 패인 주름살을 보며
당신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뭘 읽고 있지요?”
“성경과 호밀밭의 파수꾼을 같이 읽고 있지요”
아마 쉰 살 정도 되었을까
근원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 있었다
난 잠시 망설였고
좀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늙은 수녀가 있었다
성경과 호밀밭의 파수꾼 같이 읽고 있는
좀 두려운 수녀가 있었다
6.희미함,그 사랑의 스타일
매일 눈이 내리기만 기다리는 여인,사랑의 여인, 가슴은 여전히 정열로 붉어지지만
피곤한 시대의 그림자는 바닷가 어귀에서 사라졌다. 사랑이 옛 세대의 어떤 일을 했는지 알고 있듯이 한 때 백조가 되어 숨을 죽이며 지켜 보았던 일을 기억한다
모든 사람으로서 나, 당신이 내가 되고 내가 당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
한 젊은이는 사랑의 제국이 몰락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사랑을 놓치지 않은 깃 밧줄을 쥐고,재즈를 들으며 술을 마신다
이 젊은이에게는 지나간 시대의 희미한 잔영이 보인다.
안개에 쌓여있는 녹슨 다리와 비에 젖은 망명국가의 국기라든가
이미 마른 시냇물 자국이 보인다.이별이 죽음보다 빨리 오기를......
시간의 상처가 새벽마다 눈 앞에 보이고 확신이 부족한 노년은 눈 길에 남은 시간과 추억의 무게가 실린 긴 발자국만 돌아본다.그녀와 사랑을 나눈 새벽, 잊을 수 없다고,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던 아침,겨울 아침의 반짝이는 눈의 아름다움을 곁에 두고,이별이 죽음보다 빨리 오기를 기도했다 사랑의 여인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떠났다
7. 은어 애인
그녀의 보드라운 배가 스펀지처럼 그의 사타구니를 눌렀다. 아냐, 아가씨
등으로 눕는 것이 더 안전하겠어. 그는 이렇게 생각하나 그 생각을 떨쳐버린다.
그녀는 공포에 질렸다. 촉촉하고 뜨거운 입술을 그의 입술에 비벼댄다.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는 그녀의 부드러운 궁둥이를 껴 앉고 달래듯 어루만져 본다.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아래로 떨어져 그들은 허공에 떠 있는 듯하다. 그녀는 스커트를 벗었다. 기분이 어떨까? 그는 궁금했다.
- 로버트 쿠버 "엘리베이터" 중에서
붉은 빛의 물 속에서 반짝거리며
물에 씻기운 몸을 드러내는
당신은 물보다 투명한 은어의 자태
반질한 비늘이 몸을 감기우고
힘차게 튀어 오르는 나의 은어
매끄럽게 젖어 있는 당신의 입술에서
숨소리가 멎을 때까지
아 당신은 날 미치게 만들어!
흔한 입맞춤도 없이
우리는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당신은 나의 시, 포도와 같은 나의 눈물
숨겨 졌던 모든 감각이 놀라 깨어나고
끝끝내 터져 나오는 사랑의 노래를
막을 수가 없다
좋아 당신은 날 지금 죽이고 있어
당신이 내 품안에 있을 때
세상은 검은 장막과 미끼로 유혹하는 환멸의 무대
사랑함으로써 지옥보다 더 지독한
삶의 구렁텅이를 깨닫는다
난 당신 품에 안겨서만 죽을 수 있어
은어는 싱싱한 몸을 뒤척이며
뜨거운 우리의 지옥에서 발버둥친다
8. 폐선, 혹은 사랑의 잔해
난 이따금 옛날 일을 꿈으로 꾸는데 어찌나 선명한 지 내가 지금 과연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 싶어서 내 몸을 흔들어 본다니까? 특히 내 곁에 있는 여자가 있을 때는 더 그래. 여자라는 속물은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몸에서 떼어놓는 힘이 있어. 여자에게 바라는 것은 그것 뿐이야. 내 자신을 잊는다는 것........
-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중에서
욕망이 한 차례 바람처럼 지나간 후
행복했을까
숨을 쉴 수 없던 절정이 끝나고
거듭되던 기쁨이 수증기처럼 날아가 버린 후
오히려 후회만이
텅 빈 거울 위에 남아있다
당연한 감정이었겠지,
아쉬웠어, 아니
사랑해?
글쎄, 우리가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게 있을까?
당신은 서둘러 옷을 입고 떠났다
난 당신에게 끌리면서도
오히려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아니다 이건 사랑이라 부를 수 없다
당신은 떠났고 난 남아서
시트를 빨고 온 몸에 묻어나는
당신의 냄새를 닦아낸다
그래, 거기에는 폐선의 냄새가 난다
누군가 나보다 더 당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랬다
짧은 당신의 웃음과 쾌락이 끝나면
당신의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랬다
그건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 누어있는 슬픈 배처럼
언제나 쓸쓸하고 외로워 보일 뿐
아무도 다가오려 하지 않는다
폐선은 언제나 폐선일 뿐
아무도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난 언제나 천정 아래에
발가벗은 채로 쓰러져 버린
내 사랑의 잔해를 쳐다본다
결코 당신의 사랑에는 이르지 못할
사랑의 폐선 혹은 그 잔해
9. Smell like teen spirit
총을 장전하고 친구들을 불러와, 정신을 잃어버리거나
거짓으로 꾸미는 건 재미있지. 그녀는 지나치게 권태롭고
자기 확신에 차 있어, 아니야, 알지, 그건 더러운 단어야.--
- 커트 코배인, 'Smells like teen spirit" -
신경쓰지마
회색머리를 쓸어 올리며 친구는 말을 꺼낸다
죽음보다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난 어부
물방울이 귀에서 퐁퐁 떨어진다
그는 시니컬한 프로스트의 말을 흉내낸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 빌어 붙어 살던 그늘이 깊고 습기 찬 방과
한 줄기의 빛도 인색하게만 보이던 지하카페를 상상한다
벙어리 같은 음성의 어눌함이 그곳에서
분열의 이끼를 자라게 했고
지나간 시대의 이념의 시체들을 방치해 놓았다.
그렇게 펑크의 시대는 가고
젊음의 혁명은 일찍 요절해 버렸다
우리가 젊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한 사내 녀석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어디에서 실날같은 희망 절망 같은 행운을 기대할 수 있을까
친구들 중 몇몇은 실연때문에 만나기 귀찮을 정도로-
존재의 껍데기만 옷 조각 속에 숨긴 채로 -영악하고 탐욕스러운 인간이 되어갔다
그런 인간들이 살아가는 데 명수다
신을 믿고 살아가던 한 명은 소식을 듣고 달려 갔을 때
그 어느 천보다 순결하고 차가운 백색의 천으로 덮여져 있었다
추억보다 먼저 땅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수녀를 기다리더니...
회색머리는 눈물보다 많은 술잔을 물고기 지느러미 같은 손으로
잡고만 있었다. 한참동안
아집보다 두꺼운 기억의 페이지 속으로 망각의 잔을 끼얹는 것?
난 그에게서 변해갈 수 없다는 음울한 고백을 들었다
시간에 일찍 순응한 조로한 인생의 빛 바랜 한 장면.
그가 마지막 술잔을 깨끗이 입안으로 털어넣은 찰라
조로한 인생들의 귀착점
어디인가
정말 우린 쉽게 늙어버렸다
우리는 나이보다 너무 빨리 늙어버린다
10. 올더스 헉슬리의 목
당신은 시를 아주 친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시가 대다수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데 큰 곤란한 점이 있죠.
- 존 헤글리(John Hegley)
당신은 정오가 되기를 기다렸지.
상한 생선과 같은 도시의 정오
빈곤한 시대의 정오
늘어진 페니스 같은 정오
물이 떨어지는 옷가지들과
형식적이고 오만한 책들과
먼지가 내려 앉은 물잔을 쳐다보았지
그럼 자꾸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걸 느끼게 된단 말이야
너를 당황 시켰던 불의의 침입자들이 다가오고 있어.
언젠가 넌 커피숍에서 옛 혁명가와 얘기를 했지.
밀란 쿤데라의 `느림'이나 미셀 푸코이야기
상황이 거기에 부합되는지 자신도 모르면서
냉정한 독사처럼 정부를 물어뜯으면서
제기랄 퍽 유
우리가 원하는 꿈들은 도대체 누구의 대갈통에서부터 나오는 거야
빠져 나오지도 못하면서
뭐 정체성이나 상상력의 문제라구?
넌 죽는 걸 두려워 하지 않는 다고 했잖아
다만 짜증이 날 뿐, 새 목을 비틀 듯이 스스로 죽을 수 있다고 했잖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기다리고 있다고?
천만에 예를 하나 들지
하나의 계단이 있다고 생각해봐
그냥 삐그덕거리면서 황홀경에 빠져 있는 계단
넌 넘어지지 않게 그러나 좀 더 빠른 속력으로 내려오다가
발을 헛딛었지.
몸이 쑥 빠지고 머리털은 곤두서고 가슴은 철렁하겠지
그런데 넌 손을 뻗쳐서 무언가 지탱할 것을 잡은 거야
손아귀에 힘을 꽉 주고 몸을 일으켜 손에 잡은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지 그건 바로 올더스 헉슬리의 목이었으니까
문학에 진력이 나서 발을 헛디딜 때 쯤 잡을 수 있는 무엇
그게 올더스 헉슬리지.
11. 치마 속 어두운 그림자
내가 언제나 사랑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세가지 있다.
미술, 음악 그리고 여자이다.
- 폰타넬
음악 선생의 치마 속의 어두운 그림자
그 깊은 암흑 속에 아이들은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이들은 음악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음악공책 뒷면에 야한 그림이나 신체부분에 관련된
욕을 가득 채워 넣었다.
몇몇 성숙한 아이들은 바지 앞이 팽팽해 지기도 하였다.
그녀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한단 말인가
피아노 앞에 앉아 올드 블랙 죠/ 스와니강/ 선구자/ 성불사의 밤을 부르던
음악 선생은 학생들의 머리 속에서 언제나 사랑의 천사였다
새집의 머리 꽉 끼인 감색 치마 두꺼운 입술 늘어져 버린 가슴
아이들은 그녀가 여성의 전부인 줄 알았다.
싱그런 봄 내음/ 아름답고 몽롱한 아지랑이/ 그리고 햇빛에 반짝거리는 피아노
아이들은 일부러 음악시간에 앞에 앉으려고 경쟁을 했다.
그저 호기심에 그랬기 때문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공평하게 흐른다.
아이들은 이제 너나 할 것 없이 몽정을 했거나 사랑을 시작했다.
더 이상 음악 시간을 특별하게 기다린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은 하나의 육체에 지나지 않았단 것이다.
여름과 겨울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아이들은 지나가버린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호기심을 버렸다.
그저 음악 시간에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그래, 그래
그녀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했단 말인가
12. 깊은 고독
스피드는 순수 대상을 창조한다.
-쟝 보드리야르 '아메리카'
그녀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한층 어둡고 우울하며 냉소적인 사람이었고,
열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잃었고
동시에 애인을 잃었다.
그 후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후로 십년 동안 주변에는
말보로와 하이네켄과 두꺼운 상처와 구토와
틈나는 대로의 분노와 과식만이 남았다.
몰래 싸구려 철물점에서 산 본드와
부탄가스의 흡입. 난 환상을 느꼈고
그것이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상상 속에서 수많은 남자와 관계하고
어린아이를 임신했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남성과 자지 않았다.
단순한 아이러니 혹은 콤플렉스의 문제는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BC카드와 노트북과 청바지와 낡은 바바리를 걸치고
어디든 여행을 다녔다.
그 곳은 얼마간의 지상낙원 이내
곧 지옥, 금방 지옥으로 바뀐다.
옥서 한 철을 보낸 것이다.
어떤 사람의 영향도 거부했고 충고와 훈계도 거부했다.
누가 대체 그런 말을 귀담아 듣는단 말인가
명령과 관련된 모든 책임의 무시
마냥 머리는 길어지고
욕설이 터져 나오고
행복한 불결함이 고독의 물 위에 둥둥
떠 있다.
`히피와 밀크 쉐이크' 란 영화를 보고 나서
계속 입 속으로 히피 앤 밀크 쉐이크를 중얼거린다.
그건 무의미한 주문, 성경의 쓰여진 것 같은 주문
그런 날 중에 대부분을 물로 배를 채운다. 수도가나 되는 냥...
너무 배가 고프면 폭력을 휘두르고 싶어졌다
고독때문인가
더 배가 고프다.
거리를 거닐면서 신문에 난 정치범의 탈옥과
미국의 경제 협상과 콜롬비아의 쿠데타 소식을 가만히 읽었다.
모두들 고독하다.
배가 쓰리도록 허기를 느꼈다. 살의다 살의
꿈쩍도 안하던 그녀의 영혼이 하나로 모아진다.
그녀는 그 곳에서 지옥을 본다.
성명 : 윤 성 (본명 : 전 훈)
성별 : 남
연령 : 33세
주소 :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대림아크로타운 C동 11F
전화번호 : 02-2193-1130,
016-791-7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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