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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서-수필2(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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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파행 그리고
반가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그의 책상 위 부끄러운 듯 엎드린 틱낫한의 교훈서 한 권. <Anger> 라고 쓰인. 그러고보니 요 며칠 한결 편안해진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참으로 긴 표류였다. 서로에게 위배되지 않으려고 열심에 열심을 더했던 시간만큼 오래고 질긴 우리 사랑의 고단함. 쌓아논 제방이 터지듯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지금 우리의 자화상.
돌아본다. 결혼생활 18년. 타고난 천품과 뚝심으로 스턴트 맨 아닌 스턴트맨이 되어왔던 남편과 그가 설정해 놓은 틀 안에서 최소한의 크기로 구겨지고 접혀져야 했던 나의 세월. 살아야 한다는 것이 명제였다. 살아야 하는 그러나 죽어가는 나를 위해 언제나 튼튼한 말뚝을 박고 철조망을 치고 이음새를 조이고 아름답게 우아하게 대문을 꾸며왔던 그. 너무나 성실한, 너무나 도덕적인, 너무나 정의로운, 너무나 자기 통제가 잘 되는, 너무나 원리 원칙적인, 너무나, 너무나도 모범의 피가 뚝뚝 흐르는 그는. 나를 사랑하므로. 나를 사랑, 사랑, 사.랑……!
그런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 막역한 그 사랑 부응하기 위해 걸 수 있는 판돈을 다 걸었던 나. 그리고 그의 조종에 의해 수시로 내 목숨이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했던 날들. 사랑-, 그것은 대단한 구속력과 파괴력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참 잘했어요 당신, 참 잘했어요. 최근 잦아진 당신의 무단 외박. 내가 바가지 긁지 않았던 건 아니 긁는 척이라도 했던 건 당신의 그 파행(?)이 너무 아름다워보였기 때문이예요. 자신의 금기를 깨뜨릴 수 있다는 것. 오오, 나는 당신이 마법에라도 걸려버린 줄 알았다니까요-.
제작년 겨울이었다. 내가 치렁치렁 긴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건. 참 이상했다. 분명히 인간이 가진 언어였고 모국어였음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우리는 서로가 내뿜는 코드를 해독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그는 냉장고에 계란이 몇 개나 남았는지, 쌀이 언제 떨어지는지를 정확히 꿰고 그걸 채워 놓았으며 화장품도 손수 사줘야만 직성이 풀렸다. 아무리 말을 해도 ‘말‘ 이라는 도구로는 소통되지 않는 다시 말하면 철저한 자기 방식에 의한 일방 통행식의. 이제 와 생각해보건대 그것은 헌신을 가장한 또 다른 폭력이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화려한 장식보다 상대가 나에게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가 그것을 헤아려보는 일 또는 상대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아는 일 아닐까. 내가 상대의 욕망을 얼마나 이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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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헤아렸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나 또한 정도 차이일 뿐 할 말은 없다. 그 러나 이해와 용납의 폭이 자신의 경험과 비례하는 것이라고 볼 때 그저 열심히 열심히 나를 몰아가기만 하는 그에게는 내가 철철 피를 흘리는 것도 행복에 취해 흘리는 포도주인 줄 알았으리라.
연상임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나는 그의 월급봉투 한 번 만져볼 수 없었다 더구나 한 가정의 수입과 지출, 그 영역은 신성 불가침의 성역이었다 (애당초 어떤 주장을 안한 내 탓도 분명 있으리라) 당시는 몰랐다. 우리에게 언어 밖의 무언가가 항상 마려운 상태라는 걸. 그저 묵묵히 순종하고 살다보면 참한 날 오리니…….
삭발하던 날, 눈치를 슬슬 보는 이발사에게 통통 튀는 목소리로 오히려 그들을 안심시켜야 했던 그 날. 나는 여기가 연극 무대가 아닌가 했다. 그리고 나는 무언극이나 퍼포먼스를 하고 잇는 모노 배우.
“그냥, 머리 밑이 좀 가려워서_”
열쩍은 미소를 짓는 내게 그럴 수도 있겠군, 하는 표정의 그와, 절에 들어가도 가끔씩은 집에 올 수 있지요? 난데없이 절 운운하며 뚝뚝 굵은 눈물 떨구던 나를 닮은 아들과 당신 아들 신경쓰이게 한다고 꾸짖는 시어머니에게 당시 내 몸부림은 돌팔매를 맞아 싼 부정형 인간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때가 아마 내 삶의 비등점이 아니었을까. 치달아 오른 그 온도에서 다만 소모와 증발 밖에 도무지 다른 방식이라곤 없는-. 그러나 나는 나의 아픔에 당당하기로 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표현할 수 있어야 정신이 건강한 자이므로. 지나가는 바람에게라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선언해야 살 수, 살아낼 수 있으므로.
당시, 나는 지상에 사랑은 없다-는 결론 속의 사람이었고 가도가도 사랑이라곤 없는 이 세계는 모래바람 풀썩이는 사막일 뿐 나는 사막 가운데 한 마리 사슴벌레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때부터였다. 혼자 소주를 홀짝이게 된 것은. “With~" 란 메어쳐도 둘러쳐도 착각이나 위안 쯤의 것. 그의 그 지극(?)한 사랑을 두고 나는 왜 그토록 비애를 곱씹어야 했을까. 그 지극함이 무엇을 위한 지극함이었고 사랑? 대체 무엇을, 어떻게 사랑을 한단 말인가. 과연 사랑, 그것을 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썩어 문드러져 악취가 풀풀 나는 이 지상에서의 불완전한 사랑. 폐기처분된 화폐같은. 마치 선천성 불구같은-.
아직은 열심히 사랑할 꺼리가 남아있는 사람과 이미 그 끝을 보아버린 사람 사이의 괴리. 그 방식의 차이는 불협화음을 낳을 수 밖에 없었다. 누가 보아도 단정하고 모범생 중의 모범생인 그. 그러나 자신의 설정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
- 2 -
으면 괴물처럼 돌변하는 지독한 양면성. 사랑, 사랑이라고 했던가. 세상의 모든
것은 그의 편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다소곳이 순종하는 댓가로 주어지는 작은 평화 내지 어쩌면 비굴스럽기까지 한 어떤 포만감을 위하여 나는 단지 춤추는 전지 인형처럼 스위치를 넣으면 작동하고 스위치를 끄면 작동을 멈춰야 하는 수동형 인간 내지 애완용 동물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했다.
누른만큼 용수철은 튀어오른다 했던가 아니 궁지에 몰리면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그가 마련해 준 왕비의 자리도 차츰 역겨웠다. 도대체 이건 내 삶이 아니었다. 그렇게 각질이 두터워만 갈 무렵. 나는 힘겹게 홀로서기 아니 상황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소설 속 반전의 기법처럼. 그를 서서히 실망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되도록 그의 마음에 안 들게 처신해야 했다. 그래야 나를 체념 할 것이고 지치다보면 일정한 거리가 유지 될 것이며 독한 그의 소유개념으로부터 돕는 배필의 역할로 인식시킬 수 있겠으므로.
신념이 강한 한 완벽주의자 앞에 드러난 이 뜻밖의 궤도 이탈 그리고 그 충돌과 수난-. 인간의 기본권, 삶을 향한 본능이 전환 혹은 빅뱅의 이유였다면 너무 처참한가. 결혼생활-, 알고보면 그것도 경영문제였다. 가슴으로만 살면 충분하리라던 자부심은 어디가고 머리를 굴려야 하는 게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서서히 나는 지능화되어 가고 있었다. 지능, 그것은 내게 있어 당위이자 지속적 생채기에 대한 최후 방어였다. 하리라, 필요하다면.
그렇게 진행되어온 최근 몇 년. 어찌 사랑스럽지 않으랴. 그의 울화를 되비춰 줄 거울같은 잠언 한 권이, 그의 개선 의지가. 물론하고 나 역시 돌이킬 점 투성이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편해야 옆 사람도 편하다는 만고의 진리다. 여유! 모든 풍경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보아야 전체가 파악되는 것 아닐까. 결국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엄숙한 과제 앞에 사설은 낭비일 뿐. 시간이 흐르고 나면 조금은 지치리라, 지쳐야 하리라. 대쪽 선비도 지치다보면 저자거리에 어우러져 살 만큼쯤 체념하게도 되겠지.
이제 좀 더 성숙한 사랑을 위해 유보하고 반납해야 할 (지금)이라는 우리의 시간과 그의 파행 앞에 엎드려 나는 경배한다. 황홀하다 일탈을 향해 찢기는 그의 아픔이 고스란히 내게 전이되고 있는 날들이.
그리고 나는 믿는다. 굴헝같이 컴컴한 이 밤 지나면 눈부신 새벽이 오리라는 것을. 미친 여자의 산발머리같은 이 혼돈의 시간들이 머지않아 아름답고 참한 질서로 다가와 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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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그의 책상 위 부끄러운 듯 엎드린 틱낫한의 교훈서 한 권. <Anger> 라고 쓰인. 그러고보니 요 며칠 한결 편안해진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참으로 긴 표류였다. 서로에게 위배되지 않으려고 열심에 열심을 더했던 시간만큼 오래고 질긴 우리 사랑의 고단함. 쌓아논 제방이 터지듯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지금 우리의 자화상.
돌아본다. 결혼생활 18년. 타고난 천품과 뚝심으로 스턴트 맨 아닌 스턴트맨이 되어왔던 남편과 그가 설정해 놓은 틀 안에서 최소한의 크기로 구겨지고 접혀져야 했던 나의 세월. 살아야 한다는 것이 명제였다. 살아야 하는 그러나 죽어가는 나를 위해 언제나 튼튼한 말뚝을 박고 철조망을 치고 이음새를 조이고 아름답게 우아하게 대문을 꾸며왔던 그. 너무나 성실한, 너무나 도덕적인, 너무나 정의로운, 너무나 자기 통제가 잘 되는, 너무나 원리 원칙적인, 너무나, 너무나도 모범의 피가 뚝뚝 흐르는 그는. 나를 사랑하므로. 나를 사랑, 사랑, 사.랑……!
그런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 막역한 그 사랑 부응하기 위해 걸 수 있는 판돈을 다 걸었던 나. 그리고 그의 조종에 의해 수시로 내 목숨이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했던 날들. 사랑-, 그것은 대단한 구속력과 파괴력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참 잘했어요 당신, 참 잘했어요. 최근 잦아진 당신의 무단 외박. 내가 바가지 긁지 않았던 건 아니 긁는 척이라도 했던 건 당신의 그 파행(?)이 너무 아름다워보였기 때문이예요. 자신의 금기를 깨뜨릴 수 있다는 것. 오오, 나는 당신이 마법에라도 걸려버린 줄 알았다니까요-.
제작년 겨울이었다. 내가 치렁치렁 긴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건. 참 이상했다. 분명히 인간이 가진 언어였고 모국어였음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우리는 서로가 내뿜는 코드를 해독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그는 냉장고에 계란이 몇 개나 남았는지, 쌀이 언제 떨어지는지를 정확히 꿰고 그걸 채워 놓았으며 화장품도 손수 사줘야만 직성이 풀렸다. 아무리 말을 해도 ‘말‘ 이라는 도구로는 소통되지 않는 다시 말하면 철저한 자기 방식에 의한 일방 통행식의. 이제 와 생각해보건대 그것은 헌신을 가장한 또 다른 폭력이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화려한 장식보다 상대가 나에게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가 그것을 헤아려보는 일 또는 상대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아는 일 아닐까. 내가 상대의 욕망을 얼마나 이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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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헤아렸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나 또한 정도 차이일 뿐 할 말은 없다. 그 러나 이해와 용납의 폭이 자신의 경험과 비례하는 것이라고 볼 때 그저 열심히 열심히 나를 몰아가기만 하는 그에게는 내가 철철 피를 흘리는 것도 행복에 취해 흘리는 포도주인 줄 알았으리라.
연상임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나는 그의 월급봉투 한 번 만져볼 수 없었다 더구나 한 가정의 수입과 지출, 그 영역은 신성 불가침의 성역이었다 (애당초 어떤 주장을 안한 내 탓도 분명 있으리라) 당시는 몰랐다. 우리에게 언어 밖의 무언가가 항상 마려운 상태라는 걸. 그저 묵묵히 순종하고 살다보면 참한 날 오리니…….
삭발하던 날, 눈치를 슬슬 보는 이발사에게 통통 튀는 목소리로 오히려 그들을 안심시켜야 했던 그 날. 나는 여기가 연극 무대가 아닌가 했다. 그리고 나는 무언극이나 퍼포먼스를 하고 잇는 모노 배우.
“그냥, 머리 밑이 좀 가려워서_”
열쩍은 미소를 짓는 내게 그럴 수도 있겠군, 하는 표정의 그와, 절에 들어가도 가끔씩은 집에 올 수 있지요? 난데없이 절 운운하며 뚝뚝 굵은 눈물 떨구던 나를 닮은 아들과 당신 아들 신경쓰이게 한다고 꾸짖는 시어머니에게 당시 내 몸부림은 돌팔매를 맞아 싼 부정형 인간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때가 아마 내 삶의 비등점이 아니었을까. 치달아 오른 그 온도에서 다만 소모와 증발 밖에 도무지 다른 방식이라곤 없는-. 그러나 나는 나의 아픔에 당당하기로 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표현할 수 있어야 정신이 건강한 자이므로. 지나가는 바람에게라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선언해야 살 수, 살아낼 수 있으므로.
당시, 나는 지상에 사랑은 없다-는 결론 속의 사람이었고 가도가도 사랑이라곤 없는 이 세계는 모래바람 풀썩이는 사막일 뿐 나는 사막 가운데 한 마리 사슴벌레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때부터였다. 혼자 소주를 홀짝이게 된 것은. “With~" 란 메어쳐도 둘러쳐도 착각이나 위안 쯤의 것. 그의 그 지극(?)한 사랑을 두고 나는 왜 그토록 비애를 곱씹어야 했을까. 그 지극함이 무엇을 위한 지극함이었고 사랑? 대체 무엇을, 어떻게 사랑을 한단 말인가. 과연 사랑, 그것을 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썩어 문드러져 악취가 풀풀 나는 이 지상에서의 불완전한 사랑. 폐기처분된 화폐같은. 마치 선천성 불구같은-.
아직은 열심히 사랑할 꺼리가 남아있는 사람과 이미 그 끝을 보아버린 사람 사이의 괴리. 그 방식의 차이는 불협화음을 낳을 수 밖에 없었다. 누가 보아도 단정하고 모범생 중의 모범생인 그. 그러나 자신의 설정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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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면 괴물처럼 돌변하는 지독한 양면성. 사랑, 사랑이라고 했던가. 세상의 모든
것은 그의 편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다소곳이 순종하는 댓가로 주어지는 작은 평화 내지 어쩌면 비굴스럽기까지 한 어떤 포만감을 위하여 나는 단지 춤추는 전지 인형처럼 스위치를 넣으면 작동하고 스위치를 끄면 작동을 멈춰야 하는 수동형 인간 내지 애완용 동물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했다.
누른만큼 용수철은 튀어오른다 했던가 아니 궁지에 몰리면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그가 마련해 준 왕비의 자리도 차츰 역겨웠다. 도대체 이건 내 삶이 아니었다. 그렇게 각질이 두터워만 갈 무렵. 나는 힘겹게 홀로서기 아니 상황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소설 속 반전의 기법처럼. 그를 서서히 실망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되도록 그의 마음에 안 들게 처신해야 했다. 그래야 나를 체념 할 것이고 지치다보면 일정한 거리가 유지 될 것이며 독한 그의 소유개념으로부터 돕는 배필의 역할로 인식시킬 수 있겠으므로.
신념이 강한 한 완벽주의자 앞에 드러난 이 뜻밖의 궤도 이탈 그리고 그 충돌과 수난-. 인간의 기본권, 삶을 향한 본능이 전환 혹은 빅뱅의 이유였다면 너무 처참한가. 결혼생활-, 알고보면 그것도 경영문제였다. 가슴으로만 살면 충분하리라던 자부심은 어디가고 머리를 굴려야 하는 게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서서히 나는 지능화되어 가고 있었다. 지능, 그것은 내게 있어 당위이자 지속적 생채기에 대한 최후 방어였다. 하리라, 필요하다면.
그렇게 진행되어온 최근 몇 년. 어찌 사랑스럽지 않으랴. 그의 울화를 되비춰 줄 거울같은 잠언 한 권이, 그의 개선 의지가. 물론하고 나 역시 돌이킬 점 투성이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편해야 옆 사람도 편하다는 만고의 진리다. 여유! 모든 풍경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보아야 전체가 파악되는 것 아닐까. 결국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엄숙한 과제 앞에 사설은 낭비일 뿐. 시간이 흐르고 나면 조금은 지치리라, 지쳐야 하리라. 대쪽 선비도 지치다보면 저자거리에 어우러져 살 만큼쯤 체념하게도 되겠지.
이제 좀 더 성숙한 사랑을 위해 유보하고 반납해야 할 (지금)이라는 우리의 시간과 그의 파행 앞에 엎드려 나는 경배한다. 황홀하다 일탈을 향해 찢기는 그의 아픔이 고스란히 내게 전이되고 있는 날들이.
그리고 나는 믿는다. 굴헝같이 컴컴한 이 밤 지나면 눈부신 새벽이 오리라는 것을. 미친 여자의 산발머리같은 이 혼돈의 시간들이 머지않아 아름답고 참한 질서로 다가와 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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