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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수필(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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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26회 작성일 04-11-1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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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유토피아를 꿈꾸며                   박성용

내겐 오래된 친구가 있다. 친구는 사실 내 남동생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쌍둥이라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자라 형, 동생이기보다는 다정한 친구사이로 아직까지 지내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생과 나는 어릴 적부터 같이 어울려 군대간 시절 빼고는 떨어져 본적도, 떨어지려던 적도 없을 만큼 붙어 다니기를 좋아했기에 친구처럼 우정도 생기고, 형제처럼 우애도 생겨 웬만한 친구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친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런 동생이 내 곁을 떠나 낯선 이국으로 간지도 벌써 횟수로만 3년이 되었다. 가깝지만 먼 나라라고 불리는 이웃 일본의 수도인 동경에서 학업을 완성하려고 힘겨운 유학생활을 견디며 살아가는 동생을 생각할 때마다 대견한 생각과 함께 알 수 없는 연민이 함께 밀려오는 것이다. 언젠가 동생이 일본에서 보내온 편지를 통해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동봉해 편지로 붙여달라는 부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동생에게 부칠 사진을 이리저리 뒤지다가 끝내 눈시울을 적혔던 기억이 난다. 동생과 내가 오래 전부터 소중히 모아온 사진첩 속에는 유치원시절부터 군복무시절 찍었던 사진까지 우리형제의 소중한 추억과 그리움이 소복이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유년시절 동생과 나는 부모님의 두손을 꼭 붙잡고 어린이공원이나, 남산타워, 6.3빌딩 같은 곳을 자주 갔었던 기억이 난다. 서울의 중심 가부터 변두리까지 사진첩 속에는 하얀 기억 속의 풍경들이 담겨져 있었고, 나는 그 당시 기억들을 회상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사진에 잡히지 않은 더 많은 부분들은 대부분 동생과 나, 그리고 유년의 친구들이 함께 어울렸던 시간들일 것이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들판이나 한강모래사장을 뛰어 놀며 물고기를 잡거나 잠자리를 잡으러 다녔던 기억, 술래잡기나 공놀이를 하다가 해가 어둑어둑 해질 무렵 동네 또래 친구녀석들과 머리를 휘날리며 강변을 뛰어가던 기억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동생과 내가 자란 곳은 한강이 근처였던 그리 크지 않은 주택가였다. 학교를 파하고 동생이 집에 없는 날이면 어머니는 늘 내게 동생을 찾아오라며 한강으로 보냈고, 나는 어김없이 동생을 하얀 모래가 빛나던 강변에서 찾아내 함께 뛰어 놀았다. 폴폴 날리던 꽃가루 사이로 낯선 아저씨들이 낚싯대를 뒤로 이만치 당겨 눈부시게 반짝이던 은빛물결사이로 낚싯줄을 던질 때마다 우리들은 조금이라도 멀리 낚시바늘이 나가면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었다.  날씨 좋았던 어느 날에는 동생과 친구들이 함께 나뭇가지를 꺾어서 만든 엉터리 낚싯대로 고기를 잡는다며 하루종일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온 적도 많았다. 우리가 낚싯줄을 놓은 반대편에는 잠실대교와 갖가지 빌딩들이 우리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 무수한 건물들을 바라보며 동생과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해가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바라본 도시의 야경들은 이미 찰흙같이 어두워진 강변을 밝혀주고 있었다. 미세하게 숨쉬며 흐르던 강물 끝자락으로 시선을 돌 릴쯤엔 언제나 남산타워 꼭대기에 걸려있던 노오란 보름달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 밤 동생과 나는 쏟아지는 별들을 맞으며 마음속 깊숙이 숨겨놓았던 푸르른 유년의 꿈들을 얘기하곤 했었다.
강물은 시간을 까마득히 흘러보내 그 날밤 어린 동생과 나를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시켰다. 동생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인보다 일어를 더 잘한다고 칭찬 받는 한국인이 되었고, 성공한 유학생활을 뽐내기라도 하듯이 혈색 좋고, 맵시난 정장차림으로 방학을 맞이해 귀국을 했다. 많은 동생의 친구들과 선, 후배들이 그를 반겼고 격려전화를 했지만, 나는 그런 동생을 바라보며 조금 어색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날 저녁이 됐을 무렵 동생과 함께 얘기를 나누며 찾아갔던 곳은 한강이었다. 이래저래 달라진 곳도 보이고, 시설들도 많이 들어서서 조금은 달라진 인상을 느꼈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멀리 빛나던 도시의 불빛들, 검은 물결위로 흐르는 고요함, 남산타워 꼭대기에 걸려있는 보름달까지......
나는 묵묵히 동생과 나란히 서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한 강바람도 숨쉬기가 달라 좋았다. 순간 동생과 유년시절 친구들의 모습들이 하나둘씩 떠올랐고, 어린 시절 희망과 꿈과 설레임들의 무수한 잔 영들이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동생은 옛날처럼 흐르는 강물위로 비치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유년의 노래들은 미세히 흐르는 물결을 타고 흘러가 옛 추억들을 싣고 다시 우리 마음속을 역류하고 있었다.
‘야! 일본에 있으니깐 공짜로 한국노래 부를 곳이 하나도 없더라. 일본이 살기 좋다해도 내 생각엔 이곳 만한 곳이 없어. ’
동생의 눈가에 물기가 고여있었다. 세월과 이국의 생활방식이 동생의 얼굴에 그늘을 지게하고, 동생이 살아가기 위해 배워야 했던 갖가지 모습으로 다른 얼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도 이국의 낯선 생활방식도 동생의 본모습은 어쩌지 못했던 모양으로 유년시절 그대로의 아름다운 마음을 빼앗지는 못했으리라.
이젠 내가 자라오고, 젊은 날의 꿈을 키워나갔던 이곳 서울도 개발과 공업화로 옛모습을 잃고 조금은 과장되고 위선된 듯한 인공의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하지만 동생의 모습처럼 사람이나 환경이나 모두 오염되지 않은 본래의 순수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앞모습은 꾸미고 가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본래의 모습만은 꾸밀 수도 가장할 수도 없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는 것이다. 천만의 인구가 들끓는 이 도시 위에서 아직 옛 모습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 있듯이 끊임없이 변모되어 가는 서울과 사람들의 모습에도 때묻지 않은 본래의 아름다움이 남아 있는 것이다. 아무도 더럽힐 수 없고, 변모시킬 수도 없으며, 빼앗을 수 없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마음의 위안인가.
비록 여러 선진국의 수도만큼 커다란 경제력과 부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유년의 푸른 꿈과 희망이 넘실대는 이곳, 동생의 맑은 눈물과 가족의 뜨거운 땀방울이 뭉쳐진 이곳,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숨어있는 이곳이야말로 내게 있어 진정한 유토피아(utopia)인 것이다.  


이름:박성용
생년월일:1977년 1월 15일생
주소: 서울시 광진구 자양1동 640-15
연락처:016-880-2085. 02)447-2085
소속: 경희대학교 국어국문3년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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