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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웅-단편소설2(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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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40회 작성일 04-11-16 09:51

본문

  사중주 오케스트라
  
             1

윤중로의 벗꽃이 한강의 물결에서 뿜어내는 작은 바람에도 하얀 함박꽃 가루를 날리며 구경나온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토요일 늦은 오후였다.
사무실에서 마지막 원고를 점검하던 영애는 선율도 고운 핸드폰 신호음에 자신도 모르게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가까스로 핸드폰을 열었다.아들 채만의 전화였다.
"엄마! 엄마!"
채만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응,채만아.왜그래 응? 채만아!"
영애는 채만의 다급한 목소리에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채만으로 부터 가느다란 희망이라도 듣고 싶었다.
"아빠가 아빠가 돌아가셨어.엄마!어서와!"
"---,알았어 채만아.엄마 곧 갈게."
영애는 손목에 힘이 쭈욱 빠지면서 그만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남편 길태가 폐암선고를 받고 병상에 누운지 삼개월여였다.건장하기로 라면 그 누구도 당할 자가 없다고 자랑하던 길태였는데 어느날 문득 병원이라며 걸려온 전화에 영애는 설마 하고 한강성심병원으로 달려갔다.길태는 벌써 환자복을 입고 입원실에 누어 거미줄 같이 걸쳐진 주사관을 통해 의지하고 있었다.영애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확인하고 확인했지만 남편 길태가 확실했다.길태는 폐암 삼기였다.그것도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한다는 의사의 말에 영애는 통곡할 힘조차 없었다.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현실로 나타나자 영애는 머리 속이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았다.
지하 이층 영안실엔 큰 아들 채만과 둘째 채영이 그리고 영애만이 덩그러니 앉아 영정을 지키고 있었다.보내는 연습을 삼개월여간의 준비기간을 거쳤지만 어색하기만 했다.밤이 깊어지자 채영이 졸음에 겨워 벽을 기대고 졸고 있는 것을 영애는 베개를 만들어 눕혔다.
"엄마도 좀 주무세요."
채만은 큰 아들 답게 영애를 위로했다.
"오- 그래.채영아! 나는 괜찮아. 너도 눈 좀 부치렴."
"엄마!"
"응."
"이제 아빠가 떠나시는 것을 인정해야죠?"
"그래,그러자구나.인정해야지.아마도 아빠의 길은 저 세상에 있는 모양이니---."
"저 세상에서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영애는 채영의 말에 채영이 얼마나 저희 아빠를 사랑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 하는 마음이야 영애 자신만 하랴 하지만, 부모와 자식간의 끈끈한 정이야 또 다른 사랑이기에---.
"나도 그러기를 바래.유독 너희를 좋아하고 사랑했는데---.이제 떠나 보내자구나 너희 아빠의 빈자리를 인정하자구나."

벽제 장례식장을 향하여 영구를 실은 두대의 버스가 윤중로를 미끄러지자 벗꽃은 온몸으로 애도를 표하며 하얀꽃가루를 쉬임없이 뿌려주었다.
용미리 공원묘지에 있는 납골묘에 유골을 안치시키고 돌아서려는데 아까부터 줄곧 같은 길을 따라오고 있는 영정이 다가섰다.영애는 고개를 숙여 묵례를 했다.그리고는 별도로 마련된 젯상에다 제물을 차리고 고인을 보내는 예를 올리고 자리를 옮겨 음복을 하고 있었다.
아까의 뒤따라오던 그 가족들이 옆에 와서 자리를 깔고 앉았다.영애는 그저 넘길 수가 없어 인사를 했다.
"줄곧 저희들과 같이 하네요.아마도 애들 엄마를 잃어셨나보죠?"
"녜,차마 인사를 할 수 없는 사정이라 인사가 늦었네요.그러고 보니 병원에서 부터 줄곧 같은 행로를 거쳐 여기까지 같이 왔군요.같은 처지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녜, 감사합니다.애들 엄마의 명복을 빌어요.우리 큰 아들이에요 그리고 작은 아들."
영애가 인사를 시키자 채만과 채영은 이름을 대며 인사를 했다.
"아드님들이 아버지를 닮아선지 미남들이에요.저는 김 동규라고 합니다.그리고 여기 우리 큰 딸 수민이 그리고 여기 막내 수빈이."
"따님들이 한사코 엄마를 닮았네요.이렇게 훌륭히 키어놓고 가셨어요."
"제 엄마가 나는 재껴놓고 쟤들만 좋아해 가지고 엄마라고 하기 보다는 언니라고 할 정도였어요 그러니 제 엄마 그리움이 오죽하겠어요."
"그럼요,아마도 평생을 갈 걸요.우리 애들도 그래요.저희 아빠만 좋아하고 난 영 찬밥신세였죠.그러니 애들 마음이 오죽이나 하겠어요.걱정이에요.얼마나 오래도록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맬까 생각하니---. 한창 나이에---."
"저절로 아물어질 때 까지 기다려보는 거죠 뭐.별 수 있겠어요."
"물론 좀 더 시간을 두고 기다려봐야 하겠지만 전 이런생각을 해요."
"어떤 생각이요?"
"빈 자리를 채워 주는 거죠.그 사람이 되어서 말이에요.물론 일인이역이라는 게 어렵겠지만 애들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죠.우리가 인정해야할 것을 인정하게 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해요.서로가 그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쉬이 아물 것이라고 생각해요."
동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동규는 아래녘으로 시선을 돌려 수많은 사람들이 뭍혀 있는 무덤들을 보며 영애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인정'그렇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었다.그것만이 쉬이 상처를 아물게할 수 있는 처방 이었다.
"김여사님! 좋은 처방을 일러주셔서 고맙습니다.제가 그 답례로 그리고 작은 이웃이 된데 대한 고마움에 저녁초대를 하고싶습니다만 그럴 기회를 주실련지요?"
"작은 이웃. 참,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이제 김선생님댁과 우린 이웃이 됐네요.저녁초대는 애들하고 이야기 해봐서 연락 드릴게요."
"따님들이 엄마를 닮아선지 특히 큰딸은 지성미가 철철 넘쳐요.작은 딸은 깜찍하구요.나도 저런딸들이 있어면 얼마나 좋을까요. 굉장히 부러운데요."
"그럼, 결국 저는 그 두가지를 다 갖쳤다는 얘긴가요?"
"그렇게 되나요.야튼 보기 좋아요.모두들 나름대로의 향기를 지닌 파릇한 꽃망울인 것을요."
"고맙습니다.괜한 칭찬 같습니다만 듣기 싫지는 않네요."
자꾸만 밀려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자리를 걷고 일어나야만 했다.하루에도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것을 보며 영애는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생각 되었다.삶의 연장선상에 다가서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됐다.영애는 남편 강 길태의 그 다른세계에서의 생활이 외로울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얇은 벽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누워 있을 동규의 부인이 뇌리를 스쳤다.영애는 납골묘로 다가가 길태가 잠들고 있는 삼층아파트 납골당 문을 어루만졌다.
'여보 채만아버지!어차피 떠난 당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 만나 이승에서 못다한 삶 더 값지게 펴볼 수 있기를 바래요.여기 당신 옆에 외롭지않도록 신이 점지해 주신 것 같아요.사진으로 봤는데 꽤나 미인이든 걸요.당신이 좋아할 만한 사람 같았어요.내생각 같아서는 당신과 이분이 그곳에서 외롭지 않게 같이 살아가셨으면 해요.'
영애는 손길을 옆으로 옮겨 동규의 부인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부인! 작은 나의 소망입니다.옆에 있는 이사람 외롭지 않게 허허로운 길을 같이 걸어주셨으면 좋겠어요.이승을 떠나는 사람은 이승에서의 모든것을 잊어야만 한대요.부디 그곳에서 새로운 길 잘 열어나가시길 바래요.'
                
                    2

영해는 아가씨의 입술 같이 탐스런 딸기를 들고 채만의 방문을 노크했다.채만은 짧게 '녜'라고 대답했다.수능을 앞둔 채만은 꽤나 공부에 열중하는 척 했다.
"힘들지?"
"전 괜찮아요.오히려 엄마가 더 힘드는 것 같아요.좀 쉬셔야 할텐데 그러지 말고 엄마! 여행이나 좀 다녀오세요."
채만은 어른스런 말로 영애를 위로 해주려 했다.그러는 채만이 영애는 너무나 흐뭇했다.
"채영인 좀 어떤 것 같니?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라 물론 나도 챙기겠지만 네가 자주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그럴게요.채영인 고집이 세어서 저 하고싶은 것이 아니면 안하잖아요."
"그것이 문제지,세상이 어디 자기 하고싶은 대로만 할 수 있니.차츰 성격을 좀 바꿔나가야 할텐데---."
"너무 걱정마세요.좀 더 커면 달라지겠죠."
"그건 그렇고,넌 어떠니? 공부는 잘돼? 묻는 내가 바보겠지? 어쩌겠니,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잖니.이제 아빠의 빈공간을 인정하면 어떻겠니? 인정할 건 하루라도 빨리 인정하는 것이 최상의 길이라고 생각하는데.그래야 아빠도 저 세상에서 편히 다른 길을 가실 것 아니겠니."
"아빠가 너무 외로울 것 같아요.우린 그래도 이렇게 셋이서 많은 사람들 틈에서 살잖아요."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넌 어떡하겠니?"
"그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드리고 싶어요."
"채영이도 그렇게 생각할까?"
"아마도 그럴 거에요.채영이가 아빠를 최고로 사랑했잖아요."
"그랬지.그래서 더욱 못놓아줄지도 모르지."
"제가 한번 채영이를 은근슬쩍 떠 볼게요."
"왜 그 수빈인가 하는 아빠하고 같이 있는 그 아줌마의 딸말이야."
"녜,수빈이라고 했어요.참 깜찍하던데요."
"너도 그렇게 보이던 그 수빈이 가족하고 우리들 하고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해서 엉겁결에 너희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엄마가 그러자고 대답을 해버렸어.어떠니? 너 웬만하면 이 엄마 한입에 두말하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그렇게 하세요."
"그럼 이번주 토요일로 날 잡는다.틀림없어야 돼."
영애는 채만의 듬직한 목소리에도 숨어있는 그림자를 엿볼 수 있어서 짠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두살 터울인 채영인 남편 길태와 만나기만 하면 몸을 부대끼며 놀았다.그래서인지 유독 채영은 남편하고만 놀며 영애에게 돌려주는 시간은 겨우 잠자리에 들 때 쯤에나 였다.영애는 채영의 문을 노크했다.
"엄만데 들어가도 되니?"
"잠시만요."
채영은 화들짝 놀라는 목소리로 영애의 출입을 잠시 저지했다.순간 영애는 별이별 생각이 다 떠 올랐다.무엇을 하다가 저렇게 놀라며 호들갑을 떨까, 혹시? 하는 생각에 미치자 영애는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엄마! 들어오세요."
"너 아주 중요한 것을 하고 있었나 보구나.엄마 좀 보여주면 안돼?"
채영은 대답 대신 얼굴을 붏히며 빙그레 웃기만 했다.
"채영이 꼬추가 다 컸나 보네."
채영은 영애의 그 말에 동공이 더욱 커게 열리며 입 속에 담아두었던 침을 '꼴깍'하고 넘겼다.
"엄마는 안보고 어떻게 알아요?"
"그래 아빠 한테는 다 보여주고 이 엄마 한테는 감추려고 해.안보여줘도 다 알지 얼마나 컸는지.그래 여자친구는 있니?"
"아빠가 다 말했구나.그러니까 알지.친구는 있는데 애인은 없어요."
"너 지난 번에 아빠랑 같이 뭍힌 그 아줌마 딸 수민이와 수빈이 알지?"
"녜,알아요.수빈이가 중학교 이학년이래지."
"그런데요?"
"응,그 수빈이 아빠가 우리를 저녁초대를 한다구나.아빠랑 나란히 계시는 것이 어쩜 남 같지 않으시다며 다 같이 만나서 아빠 이야기 수빈엄마 이야기를 하면서 작은 이웃이 된데 대한 저녁을 같이 하자는구나 그래서 엄마가 너희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먼저 그만 승낙을 하고 말았는데 어쩌겠니 이 엄마 체면 좀 살려주라.응? 채영아?"
"형은 뭐래요? 형은 간대요?"
"응,형은 엄마더러 잘 했다고 하더구나."
"그래요,그럼 나도 오우케이에요.대신 이이야기 절대로 하기 없기야요."
"좋아.그럼 엄마에게 네 꼬추 한번만 보여주라."
채영은 두손으로 앞을 가리며'엄마는'하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영애는 첫말에 거절당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쉽게 승낙을 받아내자 조금은 싱겁게 느껴졌다.영애는 채영의 사춘기를 받아주던 길태의 빈 자리가 마냥 커게만 느껴졌다.엄마로서 다가갈 수 있는 한계를 실감하고 나니 더욱 가정에는 남자가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다가섰다.

                        3

동규는 수민이 참으로 고마웠다.그러니까 작년 수민이 수능준비로 가장 힘들어할 때 아내 민주는 덜커덩 들어눕고 말았다.공무원으로서 이제 서기관으로 승진하여 다소 경제적인 안정과 여유로움을 펼쳐보려할 때였다.줄곧 박봉의 공무원봉급으로 허리를 졸라매며 수민이와 수빈이 뒷바라지를 한다고 그 흔히 가는 제주도 구경 한번 못가보았었다.수민이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꽃피는 춘삼월에 제주도 구경시켜주마고 하자 그렇게도 좋아하던 민주였다.끝내 제주도 구경은 메아리로 남아 동규의 가슴에 울려지고 있었다.그러는 동안 내내 수민이 살림을 도맡아 해주었던 것이었다.동규는 수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민아! 아빠가 오늘은 술친구가 필요한데 네가 되어주지 않을래?"
수민이는 기꺼이 해주마며 시간과 장소를 물어왔다.
저녁 일곱시 동규는 부하직원들과 함께 퇴근을 서둘렀다.부하직원들의 술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계를 들여다 보며 수민과의 약속에 늦을라 발걸음을 보챘다.
동규는 수민이 먼저와 기다리고 있는 종각의 한 카페로 들어섰다.
"아빠! 여기!"
수민은 동규가 들어서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반겼다.
"응, 일찍 왔나 보네."
"아니 나도 금방 왔어."
"응, 우리 뭐 마실까.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것으로 마시자."
수민은 동규의 말에 약간은 의아해 하면서도 쾌히 그렇게 하자고 했다.흑맥주 두병이 올려졌다.수민은 병뚜껑을 따서 내프킨으로 주둥이를 잘 딱아서 동규에게 주었다.
"이거 딸하고 마시니까 술맛이 한맛 더 나는 것을 이제껏 별맛도 없는 데서 변죽만 울렸네.야! 앞으로 아빠 술친구 좀 자주 해줄 수 없겠니? 너무 좋다."
"좋아 그럼 일주일에 한번만이야.수빈이가 아빠가 나랑 밖에서 만나는 줄 알면 아마 엄마 한테 간다고 할지도 몰라."
"그래,한창 엄마가 필요할 때 엄마를 잃었으니 오죽하겠니.아빠가 다가설 수 없는 부분들이 한없이 안타깝기만 하구나.네가 공부하고 살림사느라 바쁘고 고단하겠지만 자주 좀 챙겨주어야 겠다."
"그렇기는 하겠지만 어디 엄마만 하겠어.요즘들어 도통 말수도 적어지고 기분이 착 가라앉은 것이 측은해 죽겠어.아무리 그래도 돌아가신 엄마만 하겠어.혼자서 얼마나 외롭겠어.엄마 생각하면 수빈이도 달라져야 하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차차 나아지겠지.이제 엄마가 없다는 것을 인정 부터 해야 하지않겠니?"
"그럴려고는 해.그러나 그렇게 쉽사리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걸.아직 모든것이 엄마의 손때가 그대로 묻어 있잖아."
"그건 그렇구나.이 아빠가 너희들 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일 하나를 저질렀어."
"무슨일인데 그래?"
동규는 술병을 들어 한모금을 마셨다.차가운 액체가 찌릿한 전율로 속내를 파고 들었다.
"응,왜 엄마랑 나란히 뭍힌 그 아저씨네 있잖아?"
"응,그래.그 채만인가 하는---."
"그래.그집 사람들과 저녁을 먹자고 내가 초대를 했어.서로를 잃어버린 허전함 보다도 너희 엄마하고 그 채만이 아빠가 저세상에서 나란히 길동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그래서 너희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만 약속을 해버렸는데 어렵사리 그쪽에서도 승낙을 해왔는데 지금에 와서 너희들이 안된다고 하면 큰일인데."
"아빠는! 그래 그렇게 큰일을 혼자서 저질러.엄마에게 일러야 겠네.후후 걱정마! 만일 수빈이가 안나간다 해도 내가 업어서라도 데려 갈테니---.이제보니 우리 아빠 짱이네! 내 아빠 같은 남자만 나타나면 한사코 꼬실건데, 요즘 남자애들 가슴이 한쪽 손바닥만 해가지고 사내대장부라는 말은 이미 고어가 돼버렸어.그러고 보면 우리아빤 정말로 멋진 사람이야. 정말로 사내대장부야.잘했어! 정말로 잘했어! 그집도 아빠를 잃고 얼마나 가슴아프겠어.이럴때 누군가가 곁에 있어준다면 그 얼마나 든든하겠어.사심이 없다면 말이야."
"애는 잘나가다가 와 한강물로 뛰어드노.사심은 무슨 사심."
"그러니까 아빠가 멋쟁이라잖아."
동규는 수빈과의 대화에서 옹졸해져 가는 세태의 변화에 술맛이 씁쓰럼하게 느껴졌다.
"수빈이 좋아하는 게 뭐냐? 왠지 너랑의 데이트가 수빈이에게 좀 걸리네."
"응, 수빈이 피자면 죽을 못써."
"그럼 우리 가다가 수빈이 좋아하는 피자나 하나 사가지고 가자.집에 전화해봐.혹시 들어왔나."
동규는 수민이가 껴주는 팔장걸이를 하고 종로의 휘황찬란한 밤거리를 밀물처럼 흘러들어갔다.수민이 하고 처음으로 해보는 데이트는 동규를 적잖게 놀라게 했다.우선 모든 메뉴가 달랐다.듣지도 보지도 못한 메뉴들에 동규는 새삼 세태의 변화를 느낄 수가 있었다.수민의 말로는 하루가 바쁘게 메뉴들이 새로이 등장한다고 했다.또 하나는 남의 눈치를 보지않는 것이었다.남을 의식하지 않고 저 하고 싶어면 하는 것이었다.이제 겸손이란 말은 국어사전에서 사라져가리라 동규는 생각 되었다.동규는 수민이 끌고가는 대로 끌려들어간 곳에는 꽉찬 사람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수민이는 섞어찌개를 주문했다.동규는 육이오 전쟁후에 미군들의 짬밥통에서 꺼내 다시 끓여 먹었다는 꿀꿀이 죽과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 올랐다.
"아니 이게 그렇게도 맛이 있단 말이지?"
동규는 혀를 껄껄 찼다.
"왜 그래 아빠? 먹어보지도 않고선---. 한번 먹어봐 얼마나 맛있는데."
"알았어.그래 먹자꾸나.먹어 너희들이 맛있어면 나도 맛있겠지."
동규는 이제 변하여야만 하겠다고 마음을 다졌다.애들의 엄마가 없는 공간을 다소나마 채워 줄려면 우선 애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럴려면 애들의 문화에 한발자욱이라도 더 가까이다가서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동규는 커다란 피자 하나를 들고 수민의 팔장걸이를 받으며 수빈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4

"아빠가 웬일이야? 피자를 다 사들고 오고.아빠 사람됐네."
"그래 이제 아빠 사람됐다.엄마가 있을 땐 워낙에 엄마가 척척 알아서 다 해주니 내가 뭐 신경쓸 일이 없다 보니 자연적으로 너희들에게 등한시 했던 것 같아.수빈아!이제 엄마가 없으니까 엄마가 하듯 그렇게 잘할 수는 없겠지만 내 너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할게."
"아빠! ---."
수빈이는 동규를 불러놓고 말을 잊지 못했다.
"수빈아! 이제 우리 엄마의 빈공간을 인정하자! 아마 엄마도 우리가 그러기를 바랄 거야.지난 번 왜, 그 엄마하고 나란히 있는 그 아저씨네 있잖아 아들 이름이 채영이라고 했지.그 채영이 엄마가 그러더구나 현실을 하루 빨리 인정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좋은 것이라고. 아빠는 그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그 말이 정말로 맞는 것 같아.그렇다고 엄마를 잊자는 것이 아냐 다만,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현실을 구분하자는 것이지.엄마는 엄마의 길이 있다고 봐.이제 엄마는 그길을 또 열심히 걷고 있을 거야.그러니 우리도 이제 우리의 길을 더욱 열심히 나아가야 하지않겠니."
"엄마가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그래."
"아빠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데."
"어떻게?"
"엄마 옆에 맘씨 고운 아저씨가 있잖아.사진에 보니까 굉장히 듬직하고 잘생겼더라."
수빈이는 동규의 그말에 한참을 묵묵히 무슨생각을 하는지 포크만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아저씨 엄마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수빈이는 동규를 쳐다보며 물어왔다.
"아빠는 그렇게 생각해.수민이는 어떻게 생각해?"
"응,아빠.나도 그렇게 생각해."
"언니도?"
"응,그 아저씨 나도 사진 봤어.참 인자하게 보이던데."
"수빈아! 그래서 말인데,우리만 그렇게 생각할게 아니고 그 아저씨네 가족하고 같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아빠가 채영이네 가족하고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어.네한테 먼저 물어보고 하는 것인데 아빠가 실수를 했네."
수빈이는 수민이를 쳐다봤다.수민이 빙그레 웃자 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토요일 오후 다섯시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마포의 한 갈비집에는 동규가족을 비롯해 영애가족이 서로 마주하고 엷은 연기를 피어올리며 생갈비를 굽너라 연신 뒤적거리고 있었다.창 너머 한강둔치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여유를 즐기는 모습들이 봄의 향연을 보는 듯 했다.
"저 지배인 000 입니다.너무 다란한 가족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우리 가든이 환해지는 것 같아요.그래서 저희 가든에서는 오늘의 최고 가족으로 선정하고 일회에 한하여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이 티켓을 드립니다."
뜻하지 않은 지배인의 말에 모두들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를 힐끗힐끗 쳐다보기만 하고 있다가 지배인의 마지막 인사에 동규와 영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저'녜,감사합니다'대답을 하고는 얼굴을 붉혔다.맛있게 먹어대던 분위기가 잠시 서먹해 졌다.
"좋게 보였다니 기분 좋네 뭐.안그래요 아줌마?"
수민이 분위기가 서먹해지자 모두를 둘러보며 한마디 불쑥 내뱉었다.
"으-응,그래.그렇게 생각하니 그렇네.그래 그래, 볼상사납게 보인다는 것 보다야 백배천배 낫지."
"쨩이네!이 맛 좋은 갈비를 공짜로 또 한번 먹을 수 있으니 채영오빠는 기분 안좋아?"
수빈이 물어오자 채영은 대답 대신 희죽거리기만 했다.
"오늘 아저씨 덕분에 맛있게 먹었는데 또 한번 먹을 수 있다니 이거 또 감사해야 겠는데요."
"채만이를 비롯해 채영이 그리고 수민이와 수빈이 모두가 좋아한다면 자주는 못해도 한달에 한두번 정도는 이집을 단골로 삼을 수도 있는데---."
"정말요?"
희죽거리고 있던 채영이 동규의 말이 솔깃한지 바짝 다가앉았다.
"그럼,이 아저씨 그 정도야 충분히 할 수 있어.채영이 팔뚝 보니 힘깨나 쓰겠는데 이 아저씨랑 팔씨름 한번 할래?"
채영은 동규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빙긋이 웃었다.
"좋아요.해요.대신에 내기 해요 우리."
"내기? 좋아 그래 무슨내기로 할까?"
"내가 이기면 내일 우리 야구장에 가요 그리고 아저씨가 이기면 담에 한번 더하고요."
영애는 채영의 말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어떻게 저렇게 대담하게 나올 수가 있을까 놀라웠다.
"좋아!네가 자신있는 모양인데 그렇게 쉽지않을 텐데--.네가 이기면 야구장이 아니라 그 이상도 해주지 그런데, 혹시라도 네가 이기더라도 너하고 나 둘이만 가는 거다."
"아이! 아빠는, 나도 갈래."
수빈이 발을 구르는 시늉을 하며 동규의 말을 받았다.
"안돼! 이건 사나이들의 내기야.수빈이는 다음에 끼워주지."
그러자 수빈이는 그만 시무룩해져 버렸다.
"수빈아!"
영애는 다정한 목소리로 수빈을 불렀다.
"녜,아줌마."
"그럼 우리 여자들 끼리 내일 다른데 갈래?"
"정말로 그래도 돼요?"
"그럼,남자들도 그러는데 우리라고 못그러라는 법이 없지."
수빈이는 팔딱팔딱 뛰면서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채영오빠 봤지.매-롱."

                5

"채영오빠! 화이팅!"
수빈은 채영의 편을 들고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영애는 흐뭇했다.남자애만 둘 키워 여자애의 재롱을 못받아 본 영애는 그러는 딸들을 부러워 했었다.영애도 은근히 채영이 이겨주기를 바랬다.팔씨름은 대단했다.설마하고 덤볐던 동규는 채영의 만만찮은 힘에 곤혹을 치러야만 했다.결국 동규의 승리.채영의 아쉬어 하는 표정이 역역했다.
"와! 채영이 센데! 갈비 한번만 더 먹어면 내가 못이기겠어."
채영은 팔을 빙빙 돌리며 굳었던 근육을 풀며 다가섰다.
"삼 세번으로 해요."
"삼 세번? 허허, 이거 큰일 났는 걸,밑천 다 떨어졌는데---."
동규는 채영의 도전에 비겁자가 될 수 없었다.나머지 두번은 스트레이트로 채영의 승리로 끝이 났다.채영은 주먹을 불끈 쥐고 두팔을 앞으로 휘휘 저으며 승리를 만끽하며 좋아했다.그러자 수빈도 역시 손뼉을 치며 덩달아 좋아했다.
"그렇게도 좋아? 아빠가 졌는데도."
"그럼,내일 아줌마랑 놀러갈 수 있잖아."
"수빈아! 너무 큰 기대는 하지마.이 아줌마가 너희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기대에 만족히는 못해 줄 거야."
"그래도 괜찮아요.같이 가는 것 만으로도 좋아요."
붉게 노을지던 햇살은 이미 한강으로 빠져들어 쉽게 감을 수 없는 여운만이 붉은 숨을 활딱거리며 강물이 접힐 때 마다 점점 야위어 가고 있었다.
일요일 마다 돌아오는 칠제를 지내고 채만은 수능을 핑계로 집 가까이서 내리고 영애와 수민 그리고 수빈은 연극을 보기로 했다며 대학로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일행을 내려준 동규는 채영과 같이 바베큐 한마리랑 커다란 패트병에 담겨있는 음료수 한병과 팩으로 된 소주 두개를 들고 잠실야구장으로 갔다.채영이 1루쪽 중간에 자리를 잡고는 동규를 불렀다.야구장의 열기는 3회 말이 되자 서서히 불이 붙기 시작했다.동규는 가져온 바베큐를 풀어헤쳐 채영이 앞으로 내어밀었다.그리곤 소주팩 하나를 뜯어 컵도 없이 한모금 입안에 털어넣었다.그러자 채영이 날개깃 하나를 집어 동규에게 내어밀었다.
"응, 고맙다.채영아! 너도 술 한번 마셔보련? 괜찮아 어른들과 같이 마시는 것은---."
"전에 아빠랑 같이 오면 아빠께서도 자주 그랬어요."
"그랬었구나.채영이 아빠는 채영일 무척 사랑했었구나.자! 한모금 마시렴."
채영은 동규가 내민 소주팩을 받아 한모금 마셨다.동규는 채영이 그러하듯 다리 하나를 집어 채영에게 내어밀었다.채영은 대답 대신 빙그레 웃어 보였다.경기는 점점 무르익고 동구와 채영은 팩 두개를 모두 비어버렸다.홈팀에서 홈런 한방을 날리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손바닥을 마주쳤다.
영애는 수민과 수빈과 함께 관중을 울리며 열정을 다하는 연극속으로 몰입하고 있었다.극이 클라이막스에 달하자 수빈은 영애의 손을 꼬옥 잡았다.영애가 손수건을 꺼내 수빈 앞으로 내밀자 수빈은 싱긋이 웃으며 받아 눈물을 훔쳐냈다.연극이 끝나고 셋은 동대문시장을 향하여 걷고 있었다.영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 우리 방금 본 연극에서 감명 받은 대목을 하나씩 이야기 해볼까. 수빈이 먼저 할래?"
수빈은 주저하지 않고 영애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극중의 대사를 소롯이 토해냈다.
"이 대목이에요.'네가 나에게 사랑을 받았으니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건네줘야지'너무 좋았어요."
"그렇구나,다음 수민이는?"
"전 이 대목이 아마도 평생 잊혀지지 않을 거에요.'울타리를 넘어 별을 바라보라구---.평생 껍질 속에서만 살지말구---.'아직도 그목소리가 생생해요."
"오늘의 연극은 본전을 뽑고도 남았네. 난 이 대목이 좋았어.'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해보라 단지,선한 일을 하려고만 말고 선한 사람이 되라' 아주 뜻 있는 말이었어."
영애가 가운데 서고 왼쪽에 수빈이 오른쪽에 수민이 셋은 손을 꼬옥 잡고 십대들이 우글거리는 빌딩으로 들어갔다.
"오늘 연극은 본전을 뽑고도 남았으니 수민이와 수빈에게 이아줌마가 비싸지 않은 걸로 옷 한벌씩 사려고 하는데 그냥 받아주면 안될까?"
수빈은 '와'하고 소리를 치다가 수민의 눈치를 살폈다.수민은 수빈이 오랜만에 밝은 모습을 하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떡였다.늘비하게 진열된 옷가지들 사이로 몸과 몸이 부딪치는 좁은 통로는 세사람을 더욱 밀착시켜 주었다.이제 중하교 이학년인 수빈이 젖무덤이 제법 탄력있게 영애의 어깨에 와 닿아 지긋이 눌러주었다.영애는 어느새 딸 둘을 데리고 옷가지들을 사러온 착각 속에 서 있었다.그것은 영애뿐만이 아니었다.수빈과 수민이도 마찬가지였다.극도로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은 역시 몸과 몸의 마찰이었다.옷봉투 하나씩을 들고 빌딩을 빠져나온 셋은 빌딩 앞 벤치에 앉았다.
"우리 저녁 먹고 가자! 수빈이 뭘 좋아하지? 수민이는?"
"아줌마 돈 너무 많이 쓰는 것 아니에요?"
"야아! 수빈이가 이아줌마 주머니 사정도 걱정해주고 너무 좋은데---. 괜찮아, 이아줌마 그 정도 돈은 있어."
"애는 피자면 사죽을 못쓰요."
"그-래!그럼 수민이는?"
"저야 뭐 아무거나 잘먹지만---."
"언니는 스파게티면 오케이에요."
그 시간 동규와 채영은 사우나에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동규는 생애 처음으로 받아보는 아들 같은 채영의 때밀이는 너무나 감미롭고 살가웠다.채영은 어느샌가 잊혀져가는 아빠의 살내음을 맡고 있었다.
"채영이 힘들지?"
"아니에요,언제나 목욕땐 아빠랑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했는 걸요."
"그랬구나.채영아!세상에 무엇이든 제 것은 없단다.비록 아빠라 할지라도 네 것은 아니란다 다만,네가 가지려 한다면 잠시 네곁에 머무를 뿐이지---."
"그럼,잠시지만 사람도 그렇게 가질 수가 있다는 얘기네요"
"그럼! 가질 수 있고말고 다만,그러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내가 그 사람을 가지려 한다면 내 자신 먼저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하지.거짖의 몸짓이 아닌 채영이 이아저씨의 등을 밀듯 사랑의 몸짓으로 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은 점차 네 곁으로 다가서 너의 사람이 되는 게지."
채영은 동규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6
          
일요일이면 으례히 두가족은 동규의 차로 용미리로 제를 올리려 갔다.동규의 제의로 어차피 같은 곳 같은 날이니 여섯명이 함께 탈 수 있는 동규의 차 한대로 다니기로 했다.동규는 일요일이면 사람 사는 것 같았다.얼김에 아들 둘을 얻은 것처럼 참으로 하루가 신났다.이제 제법 스스럼없이 채영은 장난을 걸어오곤 했다.동규가 운전석 옆자리는 으례히 채영이 차지였다.그다음이 영애와 수빈이가 나란히 앉았고 맨 뒷자리는 당연히 수민과 채만의 차지였다.다섯번째 제를 올리러 가는 길이었다.채만이 수민에게 물었다.
"수민누나! 나 말이야,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내 생각인데,누나 엄마하고 우리 아빠하고 저세상에서 외롭지 않도록 해 줬으면 하는데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
"그게 가능 할까?"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우리 넷이 마음만 합하면 그렇게 해드릴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영혼결혼식이 되겠네."
"영혼결혼식! 그렇지! 영혼결혼식.어때? 누나 우리가 해 드리자."
"어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가 먼저 나서서 그러면 우리의 생각이 그러지않다는 것을 알 거야.그 다음 우리 모두 한가족이 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봤어."
"뭐!! 그럼 너 그기까지나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야."
수민은 채만의 말에 놀라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혔다.모두들 고개를 돌려 수민과 채만을 쳐다보자 수민은 별일 아니라며 얼버무렸다.
7인승 카니발은 용미리 공원묘원을 기어오르고 있었다.일찌기 나온 사람들은 벌써 자리를 펴고 잊혀져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듯 군데군데 꽃처럼 둘러앉아 있었다.
제를 올리고 나서 채만은 동규에게 다가섰다.
"저-,아저씨!"
"응, 채만아.왜? 무슨할 이야기라도---?"
"녜, 지난번 그 티켓 말이에요.그 티켓 오늘 가면 안될까요?"
"나야 뭐 상관없다만 모두들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하자구나.채만이 요즘 힘들지? 공부가 안될 때는 바람도 쏘여가면서 해.모든것이 마찬가지로 억지로 하는 것은 힘만 들뿐 능률이 오르질 않거든.가끔씩 나가서 운동도 하고---. 채만인 무슨운동을 좋아해?"
"녜,아저씨.가끔 농구를 해요.혼자서도 할 수 있어서 좋아요.그러면서도 많은 운동량이어서 한바탕 땀을 흘리는데는 그저 그만이거든요."
"그럼, 오늘 우리 농구 한번 할까? 나도 좋아하는데 안해본지 오래돼서 해보고 싶네."
"그 갈비집에 농구대가 있던걸요.나중에 가보고 공이 있어면 그렇게 해요."
"그러지 말고 가다가 공 하나 사자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민이 끼어 들었다.
"그러지 말고 우리 모두 같이 해요."
모두들 얼굴엔 환한 미소를 피어올리고 있었다.수민은 엄마 민주의 유골이 들어 있는 삼층아파트 납골당 앞으로 다가섰다.
"엄마! 지금 엄마 외롭지 않게 해 줄려고 반란을 일으키려고 해요.엄마는 그저 모르는 체 저희들이 하는 대로 따라와주면 돼요.보시다시피 지금 우린 모두들 행복해 하고 있잖아요.옆에 계신 아저씨가 잘 해주실 거에요."
마포의 그 갈비집에는 불경기라는 말을 무색케 했다.번듯번듯한 자가용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고 고기 굽는 냄새는 들어서는 입구까지 진동을 하고 있었다.지배인은 두가족을 극진히 맞아 주었다.지배인이 나가고 나자 채만이 벙긋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양심이 좀 찔리는데."
"그러면 나중에 농구 한게임 하고 배 꺼지거든 아에 저녁까지 먹고가지 뭐."
동규의 그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채만은 카운터를 향하여 달려갔다.채만은 지배인과 무슨이야기를 주고 받드니 싱글거리며 돌아왔다.
"농구장 사용 승낙을 받았어요."
"우리 어떻게 편먹기 할까?"
"이렇게 하면 어떻겠어요.아저씨랑 채영이랑 수빈이가 한편이 되고 엄마랑 나랑 수민이누나가 한편이 되고.그러면 우리가 좀 딸릴 것 같은데---."
"좋아! 형!그렇게 해."
채영은 동규와 한편이 되는 것이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그럼 그냥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무슨내기라도 해야할 것 아냐.무엇으로 할까?"
"냉면 내기 어때요?"
채영이 제의했다.
"좋아! 지금 소갈비를 먹으니 저녁엔 돼지갈비에 냉면이다 지는 편이 내기야요."
동규는 영애를 쳐다보며 내기약속을 다짐하는 것이었다.
"알았어요.우리편은 제가 책임지죠.이기기나 하세요.괜히 지고 저녁까지 사시지 말고--."
모두들 농구장에 둘러앉았다.채만이 나서서 간단한 룰을 설명했다.코트의 반만을 사용하기로 하고 슛을 성공시킨 편이 다음은 방어를 하고 시간은 이십분 한게임으로 하기로 했다.밀고 밀리며 몸과 몸이 부댓끼며 어느새 몸은 송글송글 땀방울에 절어가기 시작했다.동규와 채영의 호흡은 척척 맞아들어 갔다.승리는 동규와 채영의 호흡으로 완승을 거뒀다.모두들 잔디밭에 퍼질고 앉아 심호흡을 하며 젖은 땀을 식히면서 서로들 상기된 얼굴에서 살가운 정을 느끼고 있었다.
채만과 수민은 시원한 것을 사러간다는 핑께로 채영과 수빈도 같이 가자고 꼬실겨서 동규와 영애만을 남겨둔 채 자리를 떴다.
"애들이 어느새 오누이 같아졌어요."
영애는 단둘이 남자 동규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래요,다행히 상처가 빨리 아물어지는 것 같아요.채영이 어머니는 어떤지 모르겠읍니다만 미쳐 나의 상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애들의 상처는 적어도 지금 겉보기에는 아물어 가는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에요."
"저도 그래요.아직 잠자리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을 빼고는 별로 모르겠어요.아마도 보내는 연습을 많이 한 탓인지도 모르겠어요.비록 삼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보내는 연습엔 충분히 긴 시간이었어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이런것을 두고 동병상련이라고 하겠지요."

                 7

채만과 수민 그리고 채영과 수빈은 음료수 캔 하나씩을 들고 한자리에 둘어앉았다.채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희들 용미리에 계시는 아빠 엄마가 싸늘한 밤하늘에 혼자 있다는 생각을 해 봤어?"
채만의 말을 듣고 채영과 수빈의 얼굴이 금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자자! 그렇다고 그렇게까지나 풀 죽을 필요없고.너희들 어떻게 생각해? 수민이 누나랑 난 두분 영혼결혼식을 올려줘 저세상에서 외롭지 않게 살아가길 원해.여기 우리는 이렇게 즐겁게 잘 살고 있잖아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저세상으로 간 엄마와 아빠도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오빠!정말 그러면 엄마가 외롭지 않을까?"
"그럼,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의 길이 있는 거야.채영이는 어때?"
"나도 형 이야기가 맞는 것 같아.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뭘 어떻게 돼.그냥 이렇게 살면 되지."
채만의 말이 끝나자 수민이 의아한 눈초리로 채만을 쏘아보았다.채만은 그러는 수민을 질근 눈을 감아보이며 눈짓을 줬다.수민이 그때사 알았다는 듯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우리도 같이 살면 좋겠다 그지 수빈아!"
"응,오빠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그 문제는 나중에 어른들과 상의하고 우선 영혼결혼식 부터 매듭을 짖자.다들 승낙하는 거야? 수민누나? 채영이? 수빈이?"
"좋아! 오빠 그렇게 하자.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난 엄마를 위해서 해 줄 거야."
수빈이 먼저 깃발을 들자 채영이 따라 나섰다.
"그래,그것이 아빠를 위하는 길이라면 기꺼이 하겠어."
"다들 쟝이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이야기 해보자."
수민이 활짝 웃으며 채영과 수빈의 등을 쓰다 듬어 주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막제날이 좋겠어."
채만이 그 시기를 정했다.
"그래 나도 그 날이 좋겠다고 생각해.너희들은?"
수빈은 채영과 수빈에게 물었다.채영과 수빈은 동시에 좋다고 대답을 했다.
"우리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쉽게 할 수 있도록 하자.물론 이 모든것은 어른들의 승낙이 있어야 하는 만큼 그 승낙을 받아내는 것도 중요해.그러고 나면 우린 다같이 모여 인형을 만들자.수빈이와 난 엄마의 인형을 그리고 채만이와 채영인 아빠의 인형을---."
"왜 이렇게들 늦게 와?"
영애는 걱정했다는듯 수빈의 손을 잡으며 반가워 했다.
채만이 캔맥주를 두개 꺼내 동규에게 하나 건네고 영애에게는 캔을 따서 건네며 두사람의 눈치를 살폈다.두사람의 얼굴로 봐서 그렇게 냉냉하게 있지만은 안한듯 했다.채만이 입을 열었다.
"저-,엄마 아빠!"
영애는 입속에 머금었던 맥주를 왈칵 쏟아내었다.채만의 아빠라는 말에 그만 살에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쾍쾍거리자 수민과 수빈이 달려들어 등을 두드려 주었다.
"엄마!괜찮아요?"
수빈이 조심스럽게 영애의 얼굴을 살폈다.영애는 수빈의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에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고 가슴이 벌컹벌컹 뛰었다.영애는 수빈을 가만히 안았다.수빈은 기다렸다는 듯이 안기며 가녀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그러자 수민이 다가와 영애를 파고들었다.영애는 흥분했다.수민과 수빈의 볼을 맞추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너희들이 엄마가 얼마나 그리웠어면 이러겠니.그래 그렇게 부르고 싶을 때 엄마라고 불러.언제라도 찾아와---."
동규는 흐뭇했다.채만과 채영도 흐뭇한 표정으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채영아! 팔씨름 한번 해야지?"
"좋죠! 우리 내기해요?"
"그래,이번엔 무슨내기로 할까?"
"내가 이기면 나의 소원 들어주고 아빠가 아니 아저씨가 이기면 제가 들어 주기로 하면 어때요?"
채영은 아빠라는 말의 번복에 미안한지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었다.
"좋아,그렇게 하자.이번에도 삼 세번이다."
채영은 자신만만했다.한번을 이기고 한번을 지고 마지막을 이겼다.채영 본인은 물론 수빈과 수민 그리고 채만은 손뼉을 치면서 펄쩍펄쩍 뛰었다.아우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와-우,도저히 채영이 한테 못이기겠는데---.그래 소원이 뭐냐?"
"그래도 명색이 소원인데 그렇게 무게없이 이야기 할 수 있나요.뜸을 좀 들여야지요."
모두들 채영의 말에 또 한번 배를 웅켜잡고 웃으재쳤다.
수빈이 채영의 소원을 빨리 듣고 싶다며 채근댔다.채영은 제법 의젖하게 무게를 잡고 모두를 번갈아 쳐다 보고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의 소원이자 여기에 있는 우리 네사람의 소원은 곧 법이니 꼭 지켜주셔야만 해요."
동규는 네사람의 소원이라는 말에 어리둥절하면서 영애를 쳐다보았다.영애 역시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채영은 네명이서 합의한 이야기를 틀어 놓았다.가만히 듣고 있던 동규와 영애는 입이 떡 벌어지며 서로를 쳐다 보았다.그러면서도 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이 그런생각을 했단 말이야?"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이 우리 어른들 보다 낫구나.정말 너희들 쟝이다.쟝이야!"
"그럼 승낙하는 거야 아빠?"
"엄마한테 물어 봐야지? 수빈아!"
"엄마! 승낙해?"
영애는 수빈을 끌어 안으며 눈물을 주루루 흘리고 말았다.이제 기꺼이 보낼 수 있음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마지막 칠제를 올리는 날 유난히도 철쭉은 지천으로 붉게 피어 영혼결혼식을 축하해 주었다.
"우리는 어떡해?"
수빈이 모두를 둘러보며 물었다.
"응? 응,우리는---.우리는 그냥 뭉쳐 살까?"
용미리 공원묘원을 내려오는 차 안에는 웃음꽃이 만발하기 시작했다.

                  -끝-

김 종웅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신양복리139-1
홍익아파트 105-401
031-673-2460
011-9346-7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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