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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근-단편소설1(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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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09회 작성일 04-11-16 09:58

본문

제목 : 거미






거미

-1-
7월 27일  짜증나게 맑은 날씨

컴퓨터가 갑자기 움직이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디로 갔지? 저 앞에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힘껏 쫓아가지만 거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컴퓨터를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써 보지만......
숨이 차서 도저히 뛸 수 가 없을 것 같다. 다리가 아파 앞으로 꼬꾸라질 것만 같다. 그래도 쫓아가야만 한다. 그 이유를 누가 물어보지 않았지만, 나 또한 대답해 줄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왜 이제서야 쉬지 않고 뛰어온 내 자신이 너무나도 궁금해 오는 건인지......
그리고 한가지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토록 오래 뛰었건만, 나와 컴퓨터는 고작 방안에서만 뛰고 있다는 것을...... 방안에서 계속 원을 돌고 있다. 고작 원 안에서 계속 컴퓨터와 내가 뛰고 있다.
그 모양새가 언뜻 보면 내가 잡으러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언뜻 보면 내가 컴퓨터에게 도망쳐 달리는 것 같기도 하고.......

-2-
마음이 불안하다. 무슨 일인지 잘 알 수 없지만, 내 안에서 이미 세밀한 공포가 시작된다.
“이런 모기 새끼.”
물린 부위가 참을 수 없이 모욕적이다. 마구 긁어내리다 보니 허벅지가 벌겋게 부어오른다. 이내 피가 송글송글 맺힌다. 저 모기. 죽이고 자야 하는데. 죽여놓고 자야하는데. 눈은 떠지지 않는다. 그저 눈을 뜨고 있다는 착각이다.
“저놈의 모기 주둥아리는 전기드릴도 아닐 테고, 어떻게 모기장을 뚫고 들어온 거지?”
한쪽 눈꺼풀 하나를 겨우 움직여 본다. 새벽에 불을 켜고 잠이 들었다는 것을, 눈가에 건조하게 꽂히는 빛을 보고 깨닫는다. 온갖 인상을 눈가에 모이게 해 눈꺼풀을 올린다. 그제 서야 몸이 말을 듣는다. 일어나 창문을 닫는다. 그렇지 않아도 되는데 가운데 달린 잠금 장치까지 신경 쓴다. 이제 방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
무섭도록 더운 여름날이다. 작은 공간은 선풍기의 모터소리와 바람의 압력으로 가득 메워져 있다. 모기는 잡았지만 아까 긁어내린 부분이 쓰라려 잠이 들지 않는다.
새벽은 언제나 나에게 그런 새벽이었다.

-3-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일까? 이미 오후일 것이다.
나는 지금 눈을 뜨고 있을 것이다. 아니, 뜨고 있다는 착각인가? 매일 그러한 착각의 연속이, 어쩌면 내가 죽지 않았다는 착각일지도. 잡념도 버릇이 되어간다. 오늘시작은 이만 접어 두고. 겨우 손가락 하나를 움직인다. 아직 잠과 현실 사이인지 몸이 무겁다. 방 한쪽 벽을 지탱해 겨우 몸을 일으킨다.
다행이 조심해서 잤는지 ‘제 3 도시건설’은 다치지 않았다. 그것을 다시 가운데로 끌어내어 계속계속 레고 조각을 올린다. 식사도 해결했다는 착각인가? 배가 고프지 않다. 나의 몸은 점점 상상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영적인 배고픔, 슬픔, 외로움 이외에 느끼는 현실감각은 없다. 잃어가고 있다.
갑자기 전화기가 울린다. ‘누굴까?’ 오랜만에 전화기를 울린 사람은.
“여보세요?”
왼손에는 레고 조각을 놓지 않은 체 수화기를 들었다.
“인섭이? 야. 어제 너 왜 연락 안했어?”
“창우?”
“어제 내 연락 받았어? 못 받았어? 애들 다 모였는데, 너만 빠지면 어떻게 하냐?”
“그래? 아....... 내가 요새 많이 바쁘잖아. 어.......정신이 하나도 없어. 음.....그래도 애들 다 모였는데 갈걸 그랬다.”
손에 든 레고 조각이 꼽힐 위치를 파악한다.
“그래. 바빠도 그렇지. 이게 몇 년 만인데...... 그나저나 너 그런데 그 여자랑은 어떻게 안됐냐?”
이내 조각을 꼽는다. 다시 다른 알맞은 조각을 물색해 본다.
“어? 여자? 왠 여자?”
“왜 있잖아. 그 우리 대학 다닐 때, 동아리 거......”
“아..... 그게 언제 적 얘긴데....... 그리고 그냥 내가 잠깐 좋아한 거지....... 뭐 어떻게 됐겠냐?”
이번엔 큰놈을 잡았다.
“그 때는 술 퍼마시고 고백한다 어쩐다 졸업하고도 끝까지 쫓아다니겠다 난리 치더니......”
괜히 큰놈을 집어낸 것 같다. 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
“여...... 여보세요? 전화 끊어진 거야?”
“아..... 아니 나 받고 있어.”
“뭐 하고 있는 거야? 딴 데 정신이 팔리고......”
“어...... 내가 좀 바빠. 오랜만에 통화하는데 미안하다. 다음에 통화하면 안될까?”
“야 너. 내 앞에서까지 돈 좀 번다고 바쁜 척 하는 거야?...... 너 혹시 귀찮아서 그런 거 아냐?”
손에 든 조각을 놓치고 말았다.
“무슨...... 나도 정말 반가워 임마. 하지만, 하지만 내가 얼마나 바쁜데......”
“농담이야. 흥분하기는....... 그래 바쁜 거 보니 다음에 통화해야겠다. 다음에 모일 때는 꼭 나오는 거다. 알았지?”
“어...... 어.”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 반갑다. 끊을게.....”
“어...... 어.”
수화기 안에서 작은 기계 음이 들린다. 수화기를 좀처럼 내려놓기가 힘들었다.
‘내가 바쁘긴 바쁜데....... 바쁜데......’
손에 쥔 수화기를 조심히 내려놓는다. 그리고 방금 떨어진 레고 조각 쥐고 힘껏 던진다. 내 방 한쪽구석 넓게 차지하고 있는 이 ‘도시건설’....... 내가 지금 이걸 왜 하는 거지? 내 잠자리까지 빼앗겨 가며, 어린애들이나 만지작거리는 것을 내가 지금 이것을 왜 하고 있는 거지? 열심히 문방구에서 하나 둘 낱개로 건물을 구입했을 때는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다. 그것들이 이렇게 모여지자 지금 너무나도 아프게 궁금하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만들고 있는 도시건설을 주저앉힌다. 그리고 그것으로는 화가 안 풀려 발로 한번 밟는다. 이어 광분이다. 정신없이 발로 밟고 손으로 분해하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간다.
‘야이, 미친놈아...... 너 도대체 이 따위 것을 왜 사 가지고 온 거야?’
이번에는 꽤 오랫동안 자학하는 듯 싶다.
‘자. 자. 이성을 되찾자’. 이러한 말이 퉁겨져 나온 걸 보니, 아직 버릴 용기가 없는 것 같다. 사실 머리가 아플 때 취미로 아주 잠깐만 할 수 있으면 버리기 아깝지 않은가. 잠시 후 그것을 한쪽으로 밀어 넣는다.
이제는 무엇을 하나?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밥을 안 먹고 있었다는 사실이 상기된다. 대충 자취방의 허름한 부엌찬장을 훑어보니 얼마 전에 사뒀던 컵라면이 뒹굴고 있었다. 그 전에 잘 씻지 않았는지 밥풀 끼가 냄비에 두드러기처럼 붙어 있다. 그대로 물을 담아 가스를 틀고 들어와 컴퓨터 본체를 쓰다듬는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의자에 앉아 기지개 한번 쭈욱 펴 본다. 시계를 흘겨보니 이미 오후 3시가 넘은 듯 하다. 이제야 하루가 시작되는 건가?......
왼손으로 식사를 하는 것은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다. 기억할 꺼리는 아닌데 남들은 그 시기를 묻곤 해서 귀찮다.
바쁜 가운데, 라면을 먹을 때 왼손으로 젓가락을 잡으면 평소에 많이 쓰는 오른손은 왼손과는 다른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남겨진 오른손은 주로 컴퓨터 마우스에 올려놓는다. 오늘도 컴퓨터에서 나는 기계음이 하루 시작을 맑게 한다.
화면이 뜨기 무섭게 인터넷 접속.
“띵! 투명 인간님에게 쪽지가 도착했......”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소음에 스피커의 동그란 손잡이를 급히 돌렸다. 어제 음악을 듣던 중 볼륨손잡이를 그대로 둔 모양이다. 한참 귀에서 멍멍한 잡음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쪽지를 열었다.
‘님이 만드신 홈페이지 ‘손가락여행’은 제 요즘 생활의 유일한 낙입니다.’
보낸 이의 아이디를 확인하니 거미였다.
‘거미?......’
“모르시나요? 설마 이름마저 들어보지 못한 건 아니겠지요? 네. 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거미입니다. 때로는 나뭇가지 사이에 집을 짓고 사냥감을 기다리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도 모르게 건너방 천장에 지어 잘못 비행하는 먹이를 기다리기도 하고, 때로는 당신의 우울한 마음에 예쁜 집을 지어지어 당신의 마음을 기다리기도 하죠. 어디에서 정착을 할까 고민 하다가 당신의 창 밖에서 집을 지으려고 해요. 쫓아내지 않을꺼죠? 저 아직 시집 안간 암놈이예요. 좀 더 흥미로운 소식은 당신을 유혹하고 싶은 제 마음이죠.”
피식 웃음이 삐져 나온다. 흥미롭다.
“하루 중 제일 매력 있는 시간이 새벽이죠. 새벽 2시, 당신의 홈페이지에서 기다릴게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홈페이지인데, 어떻게 들어온 것일까? 아무튼 거미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문득 머리를 지나간다. 쪽지를 되씹을수록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다.
방 천장을 멀뚱히 주시했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굽혔다 폈다 하며 허리를 가다듬는다. 왠지 멍한 상태다. 무의식적으로 창을 열었다.
눈앞에 거미가 있었다.

-4-
“뭐야...... 계속 전화도 안 받고. 자고 있었어?”
“사장님이세요?”
“지금이 몇신데?.....”
“네...... 새벽에 잠을 못 자서......”
“주문한 건 잘 되가? 저번처럼 또 빵꾸 내는 건 아니지? 또 저번처럼 그러면.....”
“아..... 네...... 잘 돼갑니다.”
“아. 다름 아니고...... 나는 혹시 차질 없이 되어가나 해서......”
“자꾸 전화로 확인하시고 그러면 제가 가뜩이나 다른 복잡한 일이 있어서...... 힘들어 져요. 그러니까 이번 주 안으로 제가 알아서 끝내겠습니다.”
“이번에 대기업에서 주문한거라 신경써서 자네에게 부탁한거란 말야. 처음꺼는 참신해서 좋더니만 그 뒤로 성적이 안 좋아. 이번에 잘 해서 자네 명예 회복.......”
“네......네...... 작업은 잘 되 갑니다.”
“어허...... 어른이 말하는데.”
“이만 끊습니다.”
전화기를 조심히 내려놓는다. 내려놓는 가운데 수화기에선, 소리치는 사장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목소리를 완전히 덮어버린다. 사장이 끊었을까 확인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질 않는다.
‘젠장......’
사실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마음이 다시 급해진다.
내가 어디까지 했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마우스로 클릭 해 찾는 과정에 손끝에 경미한 떨림을 느낀다.
‘하나도 안 했구나.......설마 하나도?’
하나도 안 했다. 벌써 사흘이 지났는데...... 마음이 급해 진다. 또 생각을 마구 집어넣으려니 부담이 될 것 같다. 머리를 놓아줄 잠깐의 시간이 먼저 필요했다. 발을 이리저리 뒤척이다 밟히는 것이 있다. 레고 조각이다.
그리고 저녁 늦게 서야 시작한 작업에 미칠 듯이 달려들었다. 서 너 시간 그렇게 하여 대충 윤곽이 잡힌다. 만족이다. 팔을 쭈욱 하늘로 올려 기지개를 한다. 그러다 우연히 시계를 보니 2시다. 아니, 자세히 보니 1시였다. 왠일일까. 시계도 잘 못보고...... 그런 마음에 다시 작업을 하려니 잡히지 않는다. 다시 인터넷을 접속해 저번에 보다 만 만화를 찾았다. 만화를 보는 가운데에서도 내용은 잘 보이지 않고 틈틈이 시계를 보게된다.
그리고 겨우 2시를 확인한다.

# 투명 인간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거미     : 역시 오셨군요......
투명인간 : 기다리셨나요?
거미     : 지루하지 않은 기다림이죠.
투명인간 : 정말 반갑네요. 처음에는 좀 놀라기도 했지만...... 이렇게 대화해 보기는 처음이거든요. 나쁘지 않군요.
거미     : 당신은 참 신비로움으로 가득해요. 특히 대화명이요. 당신은 왜 스스로 투명인간이 되려 했지요?
투명인간 : 어느 날 거울에서 내 자신을 보니 옷만 보이는 겁니다. 설마 내 자신의 눈을 의심했죠. 나의 눈이 잠시 잘못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저희 착각이었습니다. 남들은 나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아무도 나를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더군요. 그녀 마저.
거미     : 그녀?
투명인간 : 상상 속에서 영원한 나의 수호 천사. 그녀마저 나를 볼 수 없어 그녀에게 마저 도움을 청할 수 없게 되었죠. 이제 아무도.
거미     : 수호천사라. 당신이 만들어낸 신념은 아닌 것 같은데.
투명인간 : 같이 영화도 보고, 얼굴을 부비며 성적인 교류도 했던 과거 여자예요. 지금은 추억 속에 간직되어 있죠.
거미     : 마음이 맞지 않아 심하게 다퉜나 보네요. 어쩌면······ 저는 당신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문득......
투명인간 : 기대되는데요. 무척이나. 그나저나 당신은 어쩌다가 거미가 되셨죠?
거미     : 그냥 별 뜻 아니예요. 어느 날이던가...... 컴퓨터와 인연을 가지면서 주위에서 붙여준 별명이지요. 지나치게 집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에만 매달려 있거든요. 사람들이 저를 만나는 것이 어렵다고들 하면서 집안에서만 먹이 사냥하는 거미 같다나?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은 별명이라 서요.
투명인간 : 그래요? 사실 잊고 있었는데, 저도 자주 들어요. 거미라는 말...... 학교 다닐 시절에는 안 그랬는데...... 근래 저도 모르는 사이 거미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거미     : 요즘 당신의 홈페이지에 푹 빠져있어요. 정말 없는 게 없더군요. ‘손가락 여행’이라는 제목이 너무 잘 어울립니다.
투명인간 : 이제는 정말 밖으로 나가서 할 일을 컴퓨터와 인터넷이 다 해주고 있죠. 쇼핑, 오락, 영화관람, 전자우편, 책읽기, 또 뭐가 있죠? 정말 인터넷이 할 수 있는 일을 말하면서 가슴이 떨리는 거 있죠? 제가 아는 것만 해도 너무 광범위해요. 그 중에 제가 모르는 것도 많고요. 이젠 밖에 나갈 필요가 없어요. 인터넷을 하다보면 이제 동안 내 인생이 좁아 터졌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하루 한시간이 아까워요. 지금 지나가는 1초 1초가 아까워요. 세상을 볼 시간이......
거미    : 인터넷을 말하면서 끊임이 없군요. 부지런한 당신이 부럽네요. 그런데 정확히 직업이?
투명인간 : 가정 직업이죠. 대기업 홈페이지 관리 해 주는 웹 디자이너예요.
거미     : 정말 부지런하세요. 배우고 싶네요. 당신의 모든 것을...... 저와 같이 여행하시겠어요? 저를 마음껏 구경시켜 주실래요?
투명인간 : 저도 당신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이제부터 같이 여행해요. 어디든. 어디로든.
거미     : 이제부터 당신의 삶에 제가 지겹도록 끼어 들어도 되죠?
투명인간 : 물론이죠. 그런데 저희 방 창 밖에 거미가 집을 짓고 있는 것은 어떻게 아셨죠?
거미     : 저는 당신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죠. 이만 접을게요. 투명인간님 날마다 밤늦게까지 주무셔서 오전 내내 자나요? 이제부터 제가 깨워드리죠. 일찍 일어나서 저 만나요.
투명인간 : 정말 당신이 신기해요. 저와 말투도 비슷한 것 같고......
거미     : 그럼 다음에 또 뵈요.
투명인간 : 당신이 정말 좋아지려고.......
# 거미님이 퇴실하였습니다. !!

역시 기분 나쁘지 않는 여자다. 벌써 3시가 넘었나? 무더운 여름에 창문이 꼬옥 닫혀있다. 어떤 호기심이 창문을 열었다. 눈앞의 거미는 이미 자리를 잡은 듯 계속 열심히 이삿짐을 꾸린다. 벌써 거미줄엔 한 두 개의 사냥감이 붙은 듯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젠 모기가 들어올 수 없구나. 창 밖에서 거미가 지켜주고 있다. 창문을 열어둔 채 이제 잠이 들어도 될 듯 맘이 편하다.
뒤돌아 책상 위를 보니 올려둔 노트북이 열려져 있는 것이 발견된다. 의아한 듯 쳐다보며 이내 노트북을 덮어버린다. 오늘도 역시 아무생각 없이 잠이 든다. 아니, 일기로 남기지 않았지만 분명 평소와는 다른 잠자리일 것이다.

-5-
“띵! 투명 인간님에게 쪽지가 도착하였습니다.”
“저예요. 암놈거미. 어제 저랑 헤어지고 잘 주무셨나요? 오늘 아침을 시작으로 이제 아침마다 쪽지로 당신의 마음을 깨우려 합니다. 오늘은 바쁘신 가요? 바쁘셔도 일어나는 대로 식사하시고 저에게 연락을 해 주세요. 저는 일이 바빠서 당신이 연락할 때까지만 기다릴 거예요.”
또 다시 웃음이 삐져 나온다. 이젠 이 여자의 쪽지신호음만 들어도 긴장하고,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 투명인간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거미     : 5분만 더 늦었으면 그냥 가려고 했는데......
투명인간 : 정말이요?
거미     : 아니 한시간 후에 오셨어도 같은 소릴 했을 거예요. 식사는 하셨어요?
투명인간 : 별로 생각이 없네요. 자주 거르거든요.
거미     : 그러다가 몸이 망가지겠어요. 다음부턴 아침 꼭 하세요. 아셨죠?
웃음이 나올 뻔하다가 그녀가 당황스러워 할까봐 목구멍으로 삼킨다.
투명인간 : 하하. 네...... 그런데 오늘 무슨 특별히 하는 일이라도.....
거미     : 짐을 꾸리고 있어요. 당신과 함께 떠날 여행준비.
투명인간 : 짐 꾸릴 필요 없이 어디든 가고 싶은 마음이면 충분하죠. 갑시다. 어디든......
거미     : 영화보고 싶어요.
투명인간 : ‘손가락 여행’에 영화상영 칸이 있습니다. 제가 들여온 영화가 꾀 많지요. 거기에서 뵙죠.....
거미     : 오늘은 좀 우울한 영화가 보고 싶어요.
투명인간 : 어쩌면 행동 하나하나가 저와 이토록 일치하죠?
거미     : 창 밖의 세상은 오랜만에 목욕하고 있나봐요.
투명인간 : 그러고 보니 정말 비가 오네요. 더없이 좋은 분위기.....
거미     : 당신 창밖에 있는 거미가 무사 하려나 모르겠네요. 바람도 부는데......
투명인간 : 좀 있다가 확인하고 알려 드릴께요. 그럼 저 먼저 극장에 갑니다.
거미     : 어머! 어머! 이렇게 매너 없는 남자가 다 있담. 같이 가야죠.
## 투명인간님이 퇴실하였습니다. !!
## 거미님이 퇴실하였습니다. !!

기대보다 영화는 나의 심금을 건드리지 않았다. 하마터면 그녀 앞에서 하품하는 모습을 보일 뻔했다. 그녀 몰래 의자에서 쭈욱 기지개를 핀다. 창문을 흘겨보니 거미는 아직 있었다.

-6-
또 다시 아침인가?......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닌 것 같지만 어떤 현실 속의 소리가 내 꿈에서 숨박꼭질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일까? 전화...... 전화벨소리인 것 같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소리였다.
‘혹시...... 그녀일까?’
눈이 떠졌다. 착각 속에서 방황하지 않고 살아있는 눈동자로 전화기를 주시했다. 손도 빠르게 움직인다.
“여보세요?”
“어 난데......”
가래끼가 묻어 나오는 어느 남자의 목소리에 초점은 다시 힘을 상실한다.
“사장님이세요?”
“자네 저번에 전화 받는 예절이 그게 뭔가? 그저께는 좀 기분 나쁘더만..... 전화 예절 다시 배워야 쓰겠어.”
“네. 죄송합니다.”
“내일까지인 거 알지?”
“네? 뭐를......”
“뭐야? 자네 미쳤어? H에서 주문 받은 거 하기로 한 거? 그저께 통화까지 했으면서...... 설마 아예 신경도 안 쓴 거야?”
“네. 안하고 있었어요.”
“뭐야. 자네 그러면 우리 회사 손실이 얼마인 줄 알아? 자네 왜 그래? 미쳤어? 영 사람 못 쓰겠네.”
“그냥. 짤러. 짜르면 될 거 아냐? 이 짓 안 하면 되잖아...... 이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줄 알아? 다음부턴 연락하지마......”
수화기를 덮고 전화기체 들어 올렸다. 억지로 들어 올려, 선 중간이 끊어지고 만다. 방 한쪽 어디엔 가 던져 버리고 싶었다. 차마 던져 내지는 못한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켜 창 밖을 본다.
다시 창 밖이 궁금해진다. 창 밖을 보는 것은 눈물 없이 울고 싶을 때, 생긴 버릇이었다. 그것이 어떤 위로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창 밖을 보게 된다. 반 지하 연립주택이라, 창문이 작다. 그 창문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은 연립주택을 둘러싼 담...... 그래도 무언가를 볼 수 있다는 착각에 창문에 기대고 서 있다.
그러다 다시 줄이 끊긴 전화기를 본다. 다시 연결하려 이리저리 맞추어보다가 손톱으로 끊겨진 부분 끝을 긁어내기 시작한다. 마구 긁어내리다 보니 손톱이 아려온다. 입김으로 훅 훅 불어가며 손가락은 멈추지 않는다. 엄지손톱 한쪽이 뜯겨나가 벌겋게 달아오른다. 그러면서 양 끝 부분을 겨우 벗겨내어 연결에 성공하지만 손가락이 너무 쓰라려 온다.
수화기를 들어올리니 ‘뚜우’하는 반가운 신호음이 울린다.
“띵! 투명 인간님에게 쪽지가 도착하였습니다.”
“오늘은 왠지 투명 인간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아요. 정말 그런가요? 당신이 걱정돼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계속 뺏기는 듯한 예감이요.”
계속 쪽지가 오갔다.
“저의 노력으로 그 부족함을 채워 줄 순 없나요?”
“하루하루 사막을 여행하는 갈증 이예요. 아무도 이유를 가르쳐 주지 않아요. 내가 왜 여행을 하는지. 내가 왜 어지럼증과, 목마름에 신음하는지. 지금 저에게는 당신이 절실히 필요해요. 한 순간도 저를 잊어서는 안돼요. 우선...... 당분간이라도.......”
“뭐 신나는 일 없을까요? 투명인간님의 힘내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럼 게임 할 줄 아나요? 저와 같이 인터넷 게임을.......”
“좋아요. 그런데 할 줄은 몰라요. 아마 투명인간님과 한편이 되면 저 때문에 고전하실 텐데......”
“걱정 말아요. 제가 스타그래프트에선 거의 1등급이죠. 저 혼자 둘 정도는 간단히 맞설 수 있어요. 걱정 말고 저희 편이 되어 주세요.”
“그럼요. 저는 언제나 투명 인간님 편이죠. 오늘은 게임을 신나게 해봐요. 해 본적은 없지만 정말 재미있겠는데요?”
역시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일꾼하나 움직일 줄 모르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게임도중 응원의 메시지를 계속 띄어주었고, 우리는 만나는 상대마다 가볍게 승리하였다.
“당신과 한편이 되니 정말 다 이기게 되는군요?”
“정말, 제가 하나도 도움되지 않았는데요.”
“당신은 제 곁에 있는 것으로도 큰 도움이 되어주고 있어요. 언제나 저의 편이 되어 주시는 거죠?”
“제가 당신을 너무 아끼듯이, 당신도 이제 저 없이는 힘들잖아요. 당연히 우리 둘은 이제부터 계속 같이 있어야해요. 당신이 외롭고, 힘들어 할 때, 당신이 혼자라고 생각할 때 주위에는 언제나 제가 있어요.”
“앗......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네요. 귀찮게 누가 전화를 하고 그러나? 잠시 전화 좀 받고요......”
“여보세요?”
“나다. 창우. 뭐하고 있었냐?”
“무슨 일이야? 왜 또 걸었어.”
“야...... 너의 안부가 궁금해서 친구에게 무슨 말버릇이 그래...... 친구한테 전화하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겠냐? 마구 섭섭할려고 하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중요한 무슨 할말 있는 거야?”
언성이 높아지려 했다.
“야...... 인섭이 너 왜 그래? 나는 그냥......”
“전화 좀 하지마. 전화 받기 귀찮아. 바쁘단 말이야...... 왜 자꾸 전화로 사람 귀찮게 하는 거야. 제발 다신 전화하지마.”
“인.....”
전화 줄은 또 다시 잘려나가는 수모를 당한다. 진정 내가 왜 그러는 것일까? 무엇이 그렇게 급하기에 창우가 그토록 싫었을까? 이런 바보 같은 것...... 이런 등신 같은 것......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나려 한다. 눈에 보이는 창문이 두 개로 분리되어 보이더니, 방 자체가 분리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쓰러져 가는 몸을 오른팔로 겨우 지탱했다. 눈앞에 붙은 거울을 보았다. 내가 두 개로 보인다. 분리되어 가고 있는 것인가? 내 영혼이......
나는 누구지? 거울속에 힘들어하는 저 사람은 누구지?

-7-
“띵! 투명 인간님에게 메시지가 도착하였습니다.”
어지럼증에서 깨어나는 신호음이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구나. 나를 구제해줄......
“당신은 죽어가고 있어. 거미에게 죽어가고 있으니 정신차리란 말이야.......”
갑자기 전신에 소름이 소리 없이 퍼져간다. 발톱 끝까지 소름이 갔다. 이어 약간의 경련까지 일어나려 한다. 어떤 놈이야?
보낸 이의 아이디를 확인했다. 분명 거미일 리가 없다. 소나기. 소나기?
“당신은 누구죠? 누구길래 저에게 갑자기 겁을 주는 거죠?”
“창밖에 있던 거미는 이제 당신의 방안까지 들어 올 꺼야. 당신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어서. 그 방을 빠져 나오란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거미줄에 걸려 꼼짝도 못하게 돼. 이내 죽어.”
“당신 도대체 누구야? 누구야...... 이 자식아.”
“인섭 그 방을 나와야 해.”
“당신은 도대체 누구지? 인섭은 또 누구고?”
“정말 자신의 이름마저 잊었나? 정말 사라져 버린 작자군. 자신이 왜 힘들어하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나? 정말 모르는 거야?
“누구야? 어떻게 내 홈페이지로 들어온 거지?”
“나를 잊었어? 대학 다닐 때 그토록 아끼던 시 제목을? 사람들 다이어리 속에 손수 끼어준 시 제목을?”
“그 딴거 기억안나.”
“왜...... 백일장 나가서 상도 받았잖아?. 그래서 여자친구까지 얻었잖아? 읽어줄까?
“당신.....”
“울먹이는 구름을 보았나요? 금방 쏟아낼 듯한 얼굴을 가지고, 여기저기......”
“집어치워. 시 제목 따위가 갑자기 나타나서 왜 내 인생을 참견하는 거지?”
“당신 인생이 죽어가고 있어서. 계속 보고 있기가 딱해서. 정말 당신이 죽어 가는 것을 차마 계속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꺼져. 시를 쓴다고 대학시절 시간 낭비한 걸 후회하고 있어.”
“니가 그렇게 쫓아다니며,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죽겠노라고 고백한 여자도 결국 낭비였어? 그래서 바쁘다는 핑계로 헤어지자고 했어?”
“왜 여기 나타난 거야? 나를 조롱하고 싶어서?”
“그리워서 지금 나를 부른 거 아냐?”
“널 불러?”
“나는 네가 불러서 온 거야. 아무튼 다시 가라고 하니 다시 가야지 뭐. 가기 전 한마디만...... 어서 그 방을 나와 인섭. 그 방에는 이미 창 밖에 있던 거미가 집을 넓히려 들어오고 있어. 꼼짝없이 걸려서 거미밥 되고 싶어? 아직도 거미가 너의 외로움을 달래 줄 친구로 보이나? 거미는 밖에 나뒹굴기 귀찮아서 안달이 난 너의 게으름이야. 너의 나태라고...... 어서 빠져나와. 그 방을 빠져나와 야 해.......”
“제발 다시는 나타나지마.....”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너무나 오랫동안 쉬지 않고 일한 듯이 주저앉았다.
“띵! 투명 인간님에게 쪽지가 도착하였습니다.”
“투명인간님. 무슨일이 있나요? 왜 계속 연락이 없죠?”
“아..... 죄송해요. 이상한 쪽지를 받아서. 많이 기다리셨나요? 대화방에서 잠시 뵙죠.”

## 투명인간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투명인간 : 아.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죠?
거미     : 아니요. 뭘..... 그런데 표정이 왜 그렇게 어둡죠?
투명인간 : 당신은 언제나 저의 곁에서 저를 도와 줄 수 있나요?
거미     : 물론이죠. 당신이 고민에 있을 때는 언제나 옆에 있고 싶어요.
투명인간 : 이유가 무엇이죠?
거미     : 이유...... 라니요?
투명인간 : 당신이 저와 같이 있어서 저에게 어떠한 위로가 되지요?
거미     :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투명인간 : 당신의 위로 뒤에 저에게 남는 허전함을 묻고 싶어요.
거미     : 저와 함께 한 시간이 즐겁지 않았나요? 당신이 우울해서 해서 같이 영화를 보았고요. 당신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가 저와 함께 게임을 하고 웃음을 찾지 않았나요? 그 허전함들은 다시 우리의 만남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나요?
투명인간 : 아니. 더 쌓여만 가는 외로움. 허전함.
거미     : 이제 와서 저를 버리실 건가요?
투명인간 : 아니. 당신을 잃고 싶진 않아. 그저 당분간 저 혼자 있고 싶네요.
거미     : 이미 늦었어. 거미가 이미 이 집을 둘러싸고 있지.
투명인간 : 당신. 당신 누구야? 살...... 살려줘.
거미     : 나는 그저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웠는데. 넌 그렇게 나를 마음대로 버릴 수 있을 것 같아?
투명인간 : 도대체 너. 너의 정체가 뭐지?
거미     : 아직도 모르고 있나? 자기 자신을?
투명인간 : 무슨 말이야.
거미     : 이미 늦었어. 잠시 후면 거미가 들어올 꺼야.
투명인간 : 제발 살려줘. 제발...... 제발 사라지란 말이야.

-8-
컴퓨터의 화면을 꺼버렸다. 팔은 움직이지 않고, 손끝은 고정되지 않는다. 이내 컴퓨터 전원을 꺼뜨리고, 옆에 있는 노트북도 펴 있기에 ‘딱’하는 큰 소리와 함께 덮어버린다. 조심히 방을 훑어 내린다. 천장부터 서서히......
방안으로 거미가 들어온 것일까? 서서히....... 구석구석까지 눈길을 훑어 내렸다.
‘아직까지는 들어오지 않았구나.’
창문을 무심코 보니 밖깥 창문이 조금 벌어진 듯 하다. 그 사이에 눈길을 집어넣어 살펴보았다. 거미줄 사이로 곧 거미가 지나간다. 뒤로 넘어질 뻔한 것을 창문 난간으로 버티었다. 천천히..... 거미에게 틈을 보이지 않았다. 창문이 다 닫힌걸 확인하고 재빨리 잠금장치를 잠가버린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다. 이젠 어떻게 하지? 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다. 분명 문밖으로도 거미가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살고 싶다. 이 한마디가 오늘 이렇게 간절하다.
그 때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다. 전화.......
전화기는 이미 선이 망가진 상태이다. 또 다시 손톱으로 긁어내린다. 손톱이 망가져 피가 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뚜우’하는 신호음이 들린다. 안도의 한숨으로 내장을 쓸어 내린다.
“네. 119 민원실입니다.”
급하다 보니 아무 번호나 누르게 되었나 보다. 119라니.....
“......”
“말씀하세요. 무슨 일이죠?”
“거미가 있어요.”
“거미라니요? 어떤 사람의 별명인가요? 천천히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그럴 시간이 없어요. 살려주세요. 거미가 창 밖에서 거미줄을 쳐 놓고 있어요. 문 밖에도 있을 꺼예요.”
“그냥 집안에 거미뿐인가요? 이봐요. 여기는 장난전화 하는 곳이 아닙니다.”
“무서워 죽겠어. 살려주세요.”
“그럼 물을 한번 쫘악 뿌려서 거미줄을 제거하시던 지요.”
“그런 게 아니야. 나 무서워.”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투명인간”
“이런...... 다음부터 이러한 새벽에 장난전화 하지 마세요. 불이익이 갈 수 있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
신호음을 듣고서도 바보같이 계속 외쳐 댔구나. 정말 이젠 어떻게 하지? 밖에서는 내가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것일까? 그냥 여기서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겠지. 누군가 아마 도와주러 올지도 몰라. 언제가는......
인섭. 그가 말한 인섭. 그는 나를 도와줄 것만 같다. 그런데 인섭은 누구지?
덥다. 날씨가 무척 더웠다. 그러고 보니 여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여름조차 잊고 있었다니...... 하지만 창문은 열 수가 없다. 여름 중에서도 오늘은 더 더운 듯 하다. 겉옷을 한 겹 벗어내도 여름을 이길 수 없다. 한 겹, 한 겹, 이제 벗겨낼 옷이 없다. 하나도 없다.
그래도 덥구나
선풍기를 가까이 끌어 당겼다. 선풍기는 최고의 빠르기로 맞추어 놓고 더움을 달랬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은 몸 속에서 계속 나오는 듯 했다. 공포와 더위를 잊고 싶다. 잠시 잠이 들면 아침이겠지....... 아침이면 어떤가가 해결되어 있지 않겠는가...... 위로가 된다.
누워서 눈을 감으려 해도 감기지 않는다. 어떠한 공포심일 것이다. 몸은 허전하고 손을 더듬어 무언가를 집어들었다. 전화기인 것 같다. 품에 안으니 이젠 잠이 들려 한다.

-9-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것일까?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숨이 매우 가뿐 것이 느껴진다. 손을 움직이려 해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온 몸 어디도 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이런. 이미 거미가 여기까지 거미줄을 쳐 놓았구나. 누군가가 저좀 살려주세요. 저좀......’
누군가에게 외치고 있었지만,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내 자신에게 메아리로 허전하게 돌아올 뿐......죽는 거구나. 고통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감각을 잃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 남아있는 힘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눈앞에 어렴풋이 선풍기가 보인다. 다시 한번 자세히 보니 그것은 공기를 잡아먹고 있는 거미였다. 거미가......
나를 주시하고 있는 저 거미를 보는 순간 나는 완벽한 투명인간이 됨을 느낀다.
그리고 무의식 속에서도 어떤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전화벨 소리인가?


성명 : 이신근
나이 : 25
주소 : 서울시 관악구 봉천9동 635-75 7/6
e메일 : smallship@hanmai.net
직업 : 무직
학력 : 2002 성결대학교 국문과 졸업
연락처 : 016-777-5506, 02)882-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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