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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혁-단편소설1(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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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20회 작성일 04-11-16 10:05

본문


아직도 순수함이

나는 그립다.



십년 후의 재회
ꡐ당신은 사랑을 믿나요?ꡑ
-淸水-


2001년 12월 23일.
신영 아파트 앞.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온 동네를 시끄럽게 한다.동네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하나둘씩 모여들고 저마다 큰 사건 났다며 좋은 구경꺼리라 떠들어 댄다.
「이정우씨,당신을 청소년 성매매 혐의로 체포합니다.당신은 묵비권을 행사 할 수 있고...」
형사 두명이 정우의 손에 수갑을 채운다.옆에 있는 미나와 소민은 잡혀가는 아빠를 보고 엉엉 운다. 아내인 소영도 망연자실 한채 어찌댄 영문인지 의아해 한다.
「옆집 아저씨가 글쎄,새파란 어린애랑 그 뭐지? 어!성관계를 가졌다지 뭐야.망측하게 시리.」
「부인도 멀쩡히 있는데 왠 바람이라.그것도 코흘리개랑.저 아저씨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완전 변태네.으휴!!저런 사람을 이웃이라고..」
「누가 아니래.저런 사람과 한 동네 산다는 게 부끄럽네 그려.어디 할 짓이 없어 알라하고 그 짓을 해....」
이웃 사람들은 잡혀가는 정우를 보고 수근덕거린다.
정우는 무엇에 홀린 기분이다.그리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늘만 멍하니 바라본다.그의 귓가에는 오직 두 딸의 울부짓음과 아내의 보이지 않는 통곡이 들릴 뿐이다.
정우는 경찰차 뒷좌석에 두 명의 형사와 같이 탔다.마치 살인죄를 저지른 흉악범 같았다.주위 사람들은 정우를 향해 손가락질 하며 돌이라도 던질 시늉이였다.
「자,갑시다.」
형사의 출발 사인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경찰서로 향했다.좁은 엑셀의 뒷좌석이 건장한 두 사람으로 인해 숨막힐 것 같았다.
정우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한숨을 몰아셨다.멀어져 가는 아내의 얼굴이 창밖으로 비쳐져 나의 눈에 희미에게끔 다가왔다.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고 차 위를 바라 보았다. 경찰차 내부를 밝히는 전등 불빛이 나의 의식을 점점 몽롱하게끔 만들었다.그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서서히 무엇인가를 애타게 떠올렸다.


2000년 11월.
靑靑식품회사.

두 딸을 가진 가장으로 평범한 식품회사 대리인 정우.그는 집에 가면 귀여운 두 딸이 자신을 반기고 사랑하는 아내가 늘 곁에 있기에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집에 수시로 전화를 건 까닭으로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는 일명 애처가,공처가로 통했다.
「또,시작이군.어쩜 저렇게 좋을까.집에 금항아리라도 숨겨 놓았나.매일 저렇게 안부차 수도 없이 전화를 해대니.나원 참!!!」
「놔 두세요.요즘 저런 애처가 보기 힘들어요.어떤 남자가 저렇게 집에 지극 정성을 쏟겠어요.이대리님도 참 대한민국 국보감이얘요.」
회사 동료 인 대학 동창 민석과 대학 후배 은경은 집에 전화를 걸며 환하게 웃는 정우를 보고 신기해 했다.
잠시 후 과장이 들어오더니 잔뜩 찌푸린 인상으로 말했다.
「여러분들.지금 우리 회사 매상이 얼마인지 압니까.작년에 비해 무려 30%나 떨어졌다구.30%로.. 알겠어? 이러다가 회사가 망하게 생겼는데 당신들은 시간 날 때마다 컴퓨터 잡고 놀고, 수다 떨고, 전화질이니 회사 꼬라지가 이 모양아니야.좀 정신 차려 제대로 해보라구.알았나?」
「으휴,또 시작이네 부장님께 한따까리 당했는 가봐.완전히 머리에 뿔이 났군,났어!이거 이러다 우리한테  불똥 티겠는데...」
모두들 과장의 잔소리에 몸을 수그리며 시선을 피한다.
「이정우씨?잠깐 나 좀 보게.」
정우는 초조한 마음으로 과장실로 들어갔다.과장은 아까까지 찌푸렸던 인상을 펴고 언제 그랬냐는 듯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대리.자네는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어.자네가 맡은 것만 유일하게 매출이 신장했더군. 사장님께서도 많이 기뻐하셨어.이제 자네가 우리 회사의 희망이네.앞으로 더 열심히 해 주게...」
「고맙습니다.이렇게 격려해 주시니.」
「아닐세.나야말로 자네가 이렇게 열심히 해주니 고맙지.앞으로 좋은 일 있을테니 기다려 보게.그건 그렇구,자네 시간 있나?」
「시간은 왜요?」
「어, 내가 자네에게 한 턱 내고 싶어 그러지.그래 오늘 저녁 어때?」
「저야 괜찮습니다만...」
「그럼됐네.오늘 로즈 레스토랑에서 만나지.」
정우는 딸아이와의 약속이 마음에 걸렸다.오늘이 큰 아이 미나의 생일 아닌가.일찍 들어가 축하해 주려 했는데...
정우가 과장실에서 나오자 동료들은 고생했다며 혼자 얼마나 과장의 잔소리에 시달렸냐며 위로한다.정우는 피식 웃기만 했다.


저녁.로즈 레스토랑.


정우는 늦게 업무가 끝난 탓에 약속한 7시보다 조금 늦게 레스토랑에 도착했다.안으로 들어가니 과장이 담배를 피며 앉아 있었다.
「어서 오게.자네 지금 상사를 기다리게 한건가? 허허!!이거 간이 부었군 그래...허허허...」
과장은 일부러 심각한 척 했다가 다시금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꾸었다.
「자네말이야?믿음직스럽고 매사에 꼼꼼해 다 촣은데 말이야.너무 꼬장꼬장해.잘 놀 줄도 알아야 승진도 잘 된다구.나야 만년 과장이지만 자넨 앞길이 창창하지 않은가.」
둘은 식사를 하고 근처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한잔하게...사람이 사는데 있어 술이 최고야 최고... 술 없는 세상이란 상상할 수도 없다구 암.」
정우는 약간 취한 과장의 객설을 듣고는 있었지만 내심 딸 미나가 마음에 걸렸다.
「저,과장님?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과장은 정색을 하며,
「뭐?벌써.안돼.우린 삼차까지 가야 한다구.삼차,알겠어? 그리고 내 자네에게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지.」
그리고는 과장은 휴대폰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하였다.통화 시작부터 목소리가 간드러지더니, 히죽히죽 웃으며 과관이 아니였다.정우는 딸아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 할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잠시 후 어설프게 화장한 여자가 들어왔다.과장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 듯 반기며 맞았다.
「그래,그동안 잘 지냈니?내 귀염둥이...그건 그렇구 내가 부탁한 네 친구는..」
그 여자는 과장을 씩 꼬라보더니,
「오빠두 참!급하긴...알았어요.얘 희수야?어서와. 부끄러워 하지 말구.」
나이 많은 과장에게 오빠하는 것이 닭살 돋듯 느끼 했다.얼마 뒤 문 옆에서 올까말까 망설이던 한 여자가 들어왔다.
「오빠,얘는 희수라고 해.애가 대개 이쁘지.내 친구 중에 제일 짱이야.」
「호호,듣던대로 상당한 미인인데.살결도 희고... 그건 그렇고 이쪽은 이정우라고 우리 회사 대리야.」
과장은 침을 질질 흘리며, 정우를 두 여자에게 소개했다.
「호호,미남이시군요.저는 김미영이라고 해요.오빠와 안지는 꽤 됐어요.그리고 제 친구는 희수라고 해요.애가 원체 말이 없고 순해요.그래서 더 이뻐 보인다니까요.」
정우는 희수에게 고개를 돌렸다.처음엔 박과장때문에 인사만 하고 갈려고 했으나 희수를 보자 그만 넋을 잃었다.화장기 하나 없는 수수한 얼굴에 흰 피부, 조막만한 입, 불그스레한 볼과 앵두를 살짝 머금은 것 같은 입술, 그리고 긴 검은 생머리.마치 자신의 어릴적 이상향을 만난듯한 기분이였다.
「이대리, 그만 입 좀 다물게...허허.내가 미영이 친구 소개시켜달라고 부탁했는데 잘못하다 이대리 한테 완전히 빼앗기게 생겼군 그래.허허허!」
희수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고 정우또한 어색해했다.
「그럼.이대리 이만 우린 각자 헤어짐세.애기 하나 잘 구워 삶아 보게...보들보들한게 맛있겠구만.딱 내 취향인데 말이야,안타까워!!」
과장은 미영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애기란 말애 약간 의아해진 정우.이십대 초반의 여대생인 줄 았는데 가만히 보아하니 어린 티가 많이 보였다.
정우는 일단 희수를 맞은편에 앉히고 샴페인을 시켰다.
희수는 어색한지 아직도 고개를 바로 들지 못했다.
「저,희수씨.어느 대학 다니세요?애때 보여서 직장인은 아닐테고.」
정우의 갑작스런 질문에 희수는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T..T여대 다녀요.」
희수는 멈칫거리며 얘기했다.
「사실 제가 희수씨를 처음 본 순간,희수씨는 어릴 적 내가 꿈꿔오던 나의 이상향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어찌나 가슴 떨리던지.이런 기분은 아마 처음일 겁니다.정말 아름다워요!희수씨는...」
희수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는 사이 둘은 어느새 처음의 어색함은 풀린 듯 했다.호프집을 나오는데 희수는 무엇인가 무척 망설이는 눈빛이였다.
정우는 그런 희수의 행동을 의아해하면서도,
「오늘 만남 즐거웠습니다.기회가 있으면 다시 만나기를...」
둘은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희수는 자꾸 뒤를 돌아봤다.뭔가 말을 꺼내려는 듯.
집으로 오면서 정우는 깜빡 잊고 있던 미나의 생일을 떠올렸다.그리고 문닫긴 완구점을 두드리며,
「내가 제 정신이 아닌가봐.애 둘씩이나 둔 유부남이 이 무슨 짓거리야.으휴!!미쳤지 미쳤어.그건 그렇구,미나 생일 어떡하지.선물로 해결될란가?」
정우는 힘없이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집에 들어가자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든 듯 미나와 소민은 케잌 옆에 누워 자고 있고, 아내 소영은 정우에게 아이들이 아빠를 기다리다 지쳐 생일파티도 못 했다고 했다.정우는 잠든 미나에게 다가가 볼에 뽀뽀하고 미안하다며 푸 인형을 머리맡에 두었다.소영은 회식있었냐며 전화라도 하지라고 했다.
정우는 중요한 회식이라 그럴 짬이 없었다고 둘러댔다.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딸아이와 아내에게 거짓말을...
옆에 곤히 잠든 아내를 보며 가슴이 뜨끔했다.


다음날 아침. 과장실.


「이대리,그래 이쁜 영계하고 재미 잘 봤나?얼굴이 꽤나 헬쓱해졌는데...」
영계란 말에 정우는 의아해 하며,
「영계라니요?그 무슨 말인지...」
「자네 아직 모르는가?허허,그럼 그짓을 안했구만 그래.허면 몰라도 되네!기껏 자리를 마련해 주었는데,어쩔 수 없군.역시 자네는 샌님이야!」
과장은 히히거리며 웃었다.정우는 그런 과장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하지만 정우는 오늘 만나기로 한 중국 바이어와의 협상 때문에 오후내내 눈 코 뜰새가 없었다.약속한 시간인 여섯시가 되자 정우는 깔끔한 정장으로 갈아입고 그동안 협상을 위해 익힌 중국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중국 바이어들도 열심히 제품을 설명하는 정우의 모습에 호감을 가졌는지 협상은 순조롭게 이루어 졌다.과장도 역시 이대리라며 칭찬하고, 오늘은 특별히 바이어에게 술대접을 해야 한다며 부장님도 같이 참석하니 잘하라고 했다.아마도 이번이 정우가 승진 할 좋은 기회라며 과장은 절대로 놓치지 말라고 자신의 일인양 신신 당부했다.
「자네,평소같이 술자리에서 너무 꼬장꼬장히 있지만 말고 바이어들을 즐겁게 해주게.그리고 이번에 부장님께도 환심을 사는 것이 자네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걸세.아무튼 건투를 비네...」
자기일처럼 걱정해 주는 이런 박과장이 고맙기도 했지만 사실 큰 부담이 되었다.한마디로 부장님과 바이어들에게 돈을 써라 이말 아닌가.정우는 고민했다.이제까지 윗사람에게 뇌물성 아부의 ꡐ아ꡑ자도 모르고 살아 온 자신 아닌가.어떡하지...



비너스 호프집.


중국 바이어들은 이런 곳이 처음이라며 매우 흡족해 했다.부장님이 마련한 비싼 양주와 고급 안주,예쁜 일급 아가씨들...잠시 후 분위기는 고조되어 노래판, 춤판이 벌어졌다.바이어들도 신이나 넥타이를 입에 불고 춤추며 난리였다.부장은 연신 옆의 아가씨들을 찝적거리며 그 추태가 과간이 아니였다.정우는 회의감이 들었다.이렇게까지 해 가며 살아야 하는건가.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가란 생각이 들었다.회사를 들어오기 전 대학생때만 하더라도 젊은 혈기로 똘똘 뭉쳐 부정부패,비리 이런 것을 사회적 쓰레기라 여기며 그런걸 밥 먹 듯 하는 더러운 자들을 곱씹지 않았는가.이정우가 이렇게 변했단 말인가...아무리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나까지도...
정우는 준비해 온 흰 봉투를 꺼낼까 말까 망설였다.저쪽 머리 한구석에선 과장이 어서 주라며 보채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선 대학 은사님이 사회를 깨끗하게 이끌어 갈 주역은 바로 자네들이라며 우리나라의 희망이라고 나에게 강의하고 있었다.결국 아직도 살아 숨쉬는 일말의 양심이 승리를 거두었다.부장은 술김에도 무언갈 찾고 있는 눈치였다.그리고 정우를 쳐다보며,
「 끅...자네 말이야.과..관행은 들어서 알고 있겠지.그래 주운..비는 했나?」
「준비라뇨?그런거 모릅니다,전.지금 부장님이 무슨 말 하시는지?」
부장은 진짜 모르나라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거 박과장 ,아직 새내기 사원 교육이 엉망이구만.완전히 허탕아냐.나는 괜찮지만 저 바이어들은... 이거 잘못하다간 계약을 날리겠는 거얼.」
그러고는 자신의 지갑에서 두둑한 수표 뭉태기를 꺼냈다.그리고 바이어들에게 건넸다.바이어들은 처음엔 안 받는 척 하더니 좋아라 넙죽 손에 쥐었다.부장은 헛기침하며 옆의 정우를 계속 흘겨 보았다.정우는 이런식이냐는 표정으로 허탈해 했다.세상이 이렇구나,우리 사는 세상이...
그렇게 술자리가 파해갈 무렵 옆 테이블에서 한 남자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이년이 돌았나? 돈을 받았으면 응당 대가를 치뤄야 할 거 아니야...얼른 가자,얼른...」
그 남자는 여자에게 다그치며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가려 했다.여자가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자 남자는 술을 여자 머리 위에 엎으며 계속 욕을 해댔다.
술기운 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아뿔사 그 여잔 바로 희수였다.
정우는 그 여자가 희수임에 놀랐지만 그 꼴을 그냥 지켜 볼 수 없었다.그리고는 그 남자에게로 다가가,
「형씨? 그만 그 여자 놔 주는게 어때?싫다잖아...」
술 취한 그 남자는 정우를 한번 씩 바라보더니 무시하고 계속 희수를 끌고 나가려 했다.
「형씨?내 말 아들려.놔주랬잖아.」
「넌 뭐야?어디써 굴러 먹던 개뼈다구야.신경끄고 니 일이나 봐.왠 참견이야,씨발...」
남자는 희수가 저항하자 뺨을 때리려 했다.정우는 이를 막으며,
「어 말로는 안되겠군.당신...」
남자는 가잖다는 듯,
「후,웃기네 말로 안되면.뭐 패갰다.그래 패봐라...하나도 겁안난다.」
정우는 남자에게 주먹을 날렸다.남자는 한 대 맞고 그 자리에 쓰러지며,
「임마,진짜 때리네.니 뭔데 돈 주고 산 아 내맘대로 하겠다는데 지랄이고 지랄이...」
「내, 야 오빠다 어쩔래.어,내 여동생 희롱하면 우째 되는지 보여줄까?」
남자는 여동생이란 말에 질겁을 하고 달아났다.정우는 희수에게 괜찮냐고 하자, 희수는 정우에게 이런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해 훌쩍거리며 울었다.정우는 우는 희수를 달래며 돈을 주고 샀다는 그 남자의 말이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았다.희수는 잠시 후 울음을 그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이런 모습 보여 드려서.사실 저...저 원..원조교제 해요.」
원조교제란 말에 정우는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며 어리둥절하였다.그럼 희수가 미성년자란 말인가.
「아저씨껜 뭐라 할말이 없네요.속여서 정말 죄송해요.하지만 저는 돈을 벌어야만 했어요.IMF로 아버지 직장이 문을 닫고 빚쟁이들 독촉 속에서 하루하루 시름시름 앓다가 아버진 이듬해 돌아가시고 어머니또한 홧김에 몸져 누웠어요.초등학생인 동생들도 둘이나 돼는데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벅찼어요.」
희수는 전 보다 더 울먹이는 것 같았다.정우는 희수의 말을 들으며 동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일 저일 찾아 나섰죠.처음엔 편의점 같은 곳에 아르바이트 자리 마련해 보려고도 했어요.한 며칠 했지만 밤새 일해야 하는 탓에 어머니와 동생들 돌볼 시간이 없었어요.
또 밤새 일 하고 나니 다음 날 학교도 문제구요.그래서 그만두었지요.하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어요.그리고 나날이 엄마의 병은 심해지지 병원 갈 돈은 없고 해서 친구의 소개로 그만...」
희수는 서러운 듯 정우의 품에서 엉엉 울었다.정우도 그런 희수를 등스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제가 낯을 잘가리고 수줍음이 많은 탓에 머뭇거리고 있는데, 친구가 돈은 꽤 된다며 잘만 하면 병원비는 금방 채울 수 있다고 하더군요.그래서 눈 딱 감고 만난 사람이 아저씨였어요.」
정우는 왜 그때 희수가 자신을 보며 한참을 망설였는지 알 것 같았다.
「희수씨 얘기를 들어보니까 참 안됐네요.제가 힘이 된다면 정말이지 돕고 싶네요.그리고 희수씨.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이런 일은 옳지 못해요.결국은 희수씨 혼자만 상처받고 쉽게 돈버는데 익숙해 버린 나머지 일생을 망칠 위험이 있어요.희수씨,용기를 잃지 마세요.제가 당신을 도울게요.」
희수는 정우의 말에 눈물을 흘렸다.그리고 말이지만 정말로 고맙다며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했다.
호프집을 나와 희수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집은 철거 직전인 달동네였다.한참을 올라간 뒤에 쪼맨한 남자 아이 둘이  막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가까이서 보니 몇 달을 씻지 않았는지 때가 꼬질꼬질 했다.
「누나,이제 오면 어떡해.엄마가 엄마가....」
「엄마가 왜? 엄마또 아프니.어..엄마 지금 어디 있어?」
희수는 꽤 놀랐는지 얼굴이 새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리고 곧장 방으로 달려갔다.
다떨여져 가는 방문을 열자 피골이 상접한 한 여자가 이불을 반쯤덮고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간혹 헛소리를 하는 것이 거의 죽기 일부 직전처럼 보였다.
「엄마,정신 좀 차려 보세요.네? 엄마.제발 눈 좀 뜨세요 네.오...하느님! 엄마를 부디....」
정우는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얼른 희수의 엄마를 업었다.그리고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도 희수는 계속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응급실에 어머니를 옮긴 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희수는 두손모아 눈을 감고 기도했다.잠시후 나이 지긋한 의사 한 분이 나오더니,
「일단 한 고비는 넘겼습니다.심한 폐결핵에 영양실조까지 겹쳤더군요.앞으로 경과를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며칠 푹 쉬고 나면 기력을 회복하실 겁니다.」
회복 가능하다는 의사의 말에 희수는 좋아 어쩔 줄 몰라했다.연신 고맙습니다 외치며 고개를 숙였다.정우는 앞으로 다시 기력을 회복하도록 어머니께 맛난 것 많이 해드려라고 얼마의 돈을 주었다.그리고 무슨 일 있거든 반드시 연락하라고 했다.
희수는 처음엔 돈을 사양하다 정우가 아픈 어머니와 동생을 위한 거라 하자 희수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아저씨,정말 고맙습니다.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정우는 마지막으로 희수에게 힘내라고 두 손 꼭 잡고 격려 하며 병원을 나왔다.왠지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뭉클 하였다.좋은 일을 해서 그런지 다시 태어 난 기분이였다.오늘따라 하늘도 더욱 푸르게 보였다.티 없이 맑은 세상을 산다는 행복에 겨워 갑자기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그런데 갑자기 이 생각이 떠올랐다.아뿔사 집에 또 연락 안했군...

아내는 남편의 이유없는 외박에 몹시 화가나 있었다.하지만 소영은 원래 인자한 성격 탓에 밖에서 고생하고 온 정우를 남들처럼 바가지 긁지는 않았다.다만 다시는 이유없이 외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달콤한 키스를 해 주었다.정우는 무척이지 기뻤다.아내의 이러한 너그러움.그리고 아내의 이 향긋한 향내가...
다시 아내의 사랑을 확인한 정우는 아직 자고 있는 두 딸의 뺨에 뽀뽀하고 신이 난 마음으로 출근했다.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과장이 정우를 찾았다.정우는 알 것 샅았다.자기를 찾는 이유를...
과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과장은 굉장히 화난 표정을 지으며 나보고 앉으라고 했다.
「자네,내가 그렇게 당부했건만 결국은...그러게 자네 그 꽉막힌 생각 좀 바꾸라구.내가 보기엔 자네 승진 하기엔 걸른 사람 같군.이토록 기회를 줘도 그러니 말이야.내가 아들 같아서 내 일처럼 도와줬다니, 휴! 할 수 없구만 사람이 이러니...그만 나가 보게.그리고 부장님의 눈엔 되도록 안 뛰도록 하게.자기 돈 썼다고 굉장히 화나 있걸랑...」
과장은 좀 전의 심각한 표정은 버리고 씩 웃었다.
정우는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설사 불이익이 돌아 오더라도 떳떳하다고 생각했다.


2001년 3월.


추운 겨울이 지나고 또 새로운 한해가 시작 되었다.정우는 그동안 회사 매출 신장 프로젝트를 맡느라 쉴 틈이 없었다.한참 바쁜 가운데 희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 희수인데요.그동안 잘 지내셨어요?저어기 한번 만나고 싶은데요.」
정우는 회사 앞  쾌걸조로 까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회사가 끝나고 정우가 부리나케 웃옷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서자 동료들은 숨겨 논 애인 만나냐며 비아냥 거렸다.애인 피식 아직 어린데 뭐...무슨 소리...
까페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보니 저 쪽에 참아게 단정히 차려 입은 한 숙녀가 앉아 있었다.희수였다.어리다고 하기엔 그 성숙함이 눈이 부시도록 고왔다.
「안녕하세요?아저씨.고맙다는 말씀드릴려고 이렇게 뵙자고 하였어요.어머니는 병원에서 퇴원하신 이후 꽤 몸이 좋아졌어요.예전엔 죽도 잘 드시지 못 했는데 이젠 밥 한공기는 거뜬히 해치워요.그리고 동생들도 아저씨 덕택에 그동안 가지 못했던 목욕탕도 갔구요.그리고 이젠 지들도 컸다며 신문배달이라도 하겠다지 뭐예요.아저씨가 매달 보내준 돈만 의존해 살 수 없다나 뭐라나.하여튼 집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어요.다 아저씨 덕분이예요.저도 학교에서 사서자리 하나 얻어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그래요.힘은 좀들지만 마음이 예전 보다 훨씬 편안해요.덕분에 책도 많이 읽게 되었구.」
말하는 동안 희수의 얼굴은 연신 방긋 웃음 짓고 있었다.정우는 다시 찾은 희수의 밝은 미소를 보자 뿌듯하였다.그리고 너무나 맑은 희수의 눈동자가 정말이지 해맑아 보여 호수라는 말이 딱 여기에 맞는 표현이라 생각했다.마치 넋이 나간 양 그렇게 몇 분동안 쭉 희수를 지켜 보았다.
희수는 한참을 그렇게 떠들다가 정우가 계속해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정우는 미안해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저기, 제가 아저씨께 데이트 신청해도 될까요?」
정우는 들고 있던 커피를 저도 모르게 탁 놓고 말았다.그리고 손은 사정없이 떨렸다.희수는 뜨거운데 다치지 않았냐고 하였다.희수씨가 나에게 데이트를...
정우는 자신이 유부남이란 것도 잊고 희수의 이런 말에 황홀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다시 말하지만 희수는 나의 어릴적 이상형이 아니던가.그 순수하고 정초함의 극체인...
정우는 아내 소영을 생각하니 마음에 걸렸지만 뭐 어때.잠시 데이트인 걸...그리고 우리가 무슨 애인관계도 아니구...
정우는 희수와 공원을 거닐었다.정우는 자신이 어렸을 적에 꼭 예쁜 여자친구와 걷고 싶었던 길이라 하며 이게 꿈인지 생신인지 모르겠다하며 농담 삼아 말하였다.희수는 정우에게 그럼 어릴 적 추억의 솜사탕 맛은 어떠냐하며 상인에게서 솜사탕 하나를 샀다.우린 하나를 가지고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며 한입씩 한입씩 먹어가며 함박 웃음꽃을 피웠다.
이렇게 희수와 있으니 정말이지 이십년전 고등학생 시절로 되돌아 온 기분이였다.그때는 이른바 모범생이라 불리며 공부 밖에 몰라 이러한 데이트는 상상 속의 낭만일 뿐이였는데, 막상 그 꿈을 이제야 실현 한 것 같았다.
희수는 다리가 아프다며 벤치에 잠시 앉자 쉬자고 했다.주위의 진달래 꽃에서 향긋한 봄내가 물씬 풍겼다.정우는 문득 벤치 옆의 클로버를 보았다.정우는 희수에게 네잎 클로버 찾기 게임을 하자고 했다.그들은 서로 찾으려고 엉키고 설키다 보니 마치 어릴 적 동심의 세계에 빠진 듯한 모습이였다.희수는 네잎 클로버는 없다며 이 많은 것 중에 어떻게 찾느냐고 투덜거렸다.그런 희수의 모습이 너무나도 깜찍해 보였다.
그들은 길 건너 서점으로 들어 갔다.정우는 어릴 적 자신이 여자 친구가 생기면 꼭 선물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바로 시집.그리고 그것을 그녀에게 직접 낭송해 주는게 늘 꿈이였다고 했다.정우는 희수에게 눈을 감으라고 했다.그리고...


그대를 처음 보았을 때
                        -淸水-
그대를 처음 보았을 때 우리의 인연이
이것이 처음이 아니란 걸 느꼈지요.
당신과의 이 가까운 느낌도 운명이란 걸 전 믿어요.

당신의 이 달콤한 향기또한 내가 늘 꿈꾸어 온것
당신의 이 예쁜 생김생김 또한 나의 황홀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비단 이것이 처음이라 말할 수 있겠어요?

아니예요.당신과의 만남을 위해 저는 기다렸답니다.
오랜 세월 그대와의 운명적 만남을 기다리며 이제 당신을 품에 안게 되었지요.
너무나 기쁘답니다,나의 마음은. 그리고 하늘을 날 것 같은 이 기분도 당신이 있기에
가능한 거지요.

후에 헤어져 다시 만나게 될 때
당신이 나에게 사랑을 믿느냐고 한다면
예! 믿어요.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라 당신이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겠어요.
네! 그래요.아직도 변치 않은 사랑이라고.
영원토록 변치않을 우리의 사랑을 당신 앞에 맹세하는 바입니다.


정우는 이렇게 시를 외고 난 다음 자신이 희수 몰래 찾은 네잎 클로버를 시집 속에 끼워 넣고 주었다.희수는 너무나 좋아했다.그리고 그 시에 뭔가 감명받은 것 같아 보였다.
서점을 나와 집에 데려다 주는 길에 희수는 정우에게 잠깐 서보라고 했다.그리고 눈을 감아라고 했다.자신에게 뭐 줄것이 있다며... 희수는 정우가 눈을 감자 볼에 가벼운 입맛춤을 하고 수줍은 듯 집으로 서둘러 달려갔다.정우는 꼼짝 없이 얼어 붙었다.이런 기분 아마 처음 일것이다.내가 아직 사춘기적 소년의 순수함이 남아 있었냐는 의아심마져 들 정도였다.
정우는 집에 있는 아내와 두 딸을 생각하자 못내 미안하다는 마음과 내가 미쳤나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다시금, 당시 누리지 못했던 청춘으로 돌아 간 것에 기분이 좋았다.
아내와의 잠자리에서도 이러면 안되는 데라는 미안함 뒤에 항상 희수가 자리 하고 있었다.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그리고 너무나 보고싶었다.매일매일...

그 후로도 정우는 희수 집안을 돕는 문제로 희수와 자주 만났고 둘은 매우 가까워졌다.남들이 봐도 완전한 연인 같은 사이가 되었다.희수는 둘이 다닐 적마다 정우의 팔짱을 꼈으며 춥다며 안아 달라고 애교까지 떨었다.정우는 그런 희수가 너무나 귀여워 보였다.

정우는 이제 다시 이팔 청춘으로 돌아 간 기분이였다.회사에서도 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한 탓에 주위 동료들은 아내가 애를 또 가졌냐며 놀리고 보약이라도 먹었냐고 했다.그런데 갑자기 박과장이 정우를 찾았다.그동안 뜸했던 박과장이 왠일인가 싶어 과장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과장은 담배를 입에 문채 뭔가 심각한 고민 거리가 있는 눈치였다.
「어,이대리 어서오게.이렇게 자네와 대화 하는 것도 오랜 만이구먼.그건 그렇고 자네에게 긴히 할 말이 있네.」
정우는 진지한 과장의 말투에 사뭇 긴장하였다.
「내 자네가 내 아들 같아서 하는 얘기니,다른 사람들에겐 비밀로 해주게.그게 말이야...
자네도 그때 본 미영이란 애 알지.내가 호프집에서 소개시켜 주었던...」
정우는 희수의 친구라 했던 미영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근데 그 쪼금한 년이 말이야.돈에 환장을 했는지.나에게 돈 더 안주면 집하고 직장에 꼰질러 버린다고 하더군.내 원 기가 막혀서.그래서 난 배째라 했지.」
「그래서요?」
「그래서 그년은 자신에게도 생각이 있다며 만일 이번달 말까지 송금하지 않으면 가만히 안 있겠다고 하더군.내 원 참 별 엿같은게 다 설치니.짜증나서 원...」
과장은 툴툴거리며 담배를 길게 빨아들였다.
「과장님은 그애가 미성년자 인 걸 알고 계셨어요?」
「당연하지.내가 영계 아니면 취급을 안하 걸랑.여러 뽀송뽀송한 솜털 들과도 해 봤지만 이 년이 가장 맛이 좋았어.그런데 이게 영악해서 싸게 안 먹히더군.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다 그만 생까버렸지.뭐...」
정우는 박과장이 걱정되었다.분명 뭔가 일어 날 것 같은 불길한 조짐이 들었다.
박과장은 별일 아니라며 당분간은 정우 혼자만 알고 있어라고 신신당부 했다.회사에 이같은 말이 떠돌면 좋지 않다고...

오늘 희수와 데이트가 있는 날이다.정우는 힘든 일과 가운데에서도 희수와의 만남을 생각하면 아무리 복잡하고 힘든 일도 어설프게 묶인 실타래처럼 쉽게 풀렸다.예전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애틋함으로 그녀와의 만남을 늘 가슴두근거리며 기다렸다.
저기 희수가 보인다.저녁 노을에 살짝 비추어진 그녀의 모습은 피오오르는 한 송이 수선화처럼 맑아 보였다.이젠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그녀가 정우의 마음 속을 가득 채웠다.
영화를 보기 위해 시내 한 가운데에 위치한 시네마 타워로 갔다.저녁이라 사람들이 꽤나 북쩍 거렸다.표를 사기 위해 긴줄을 서 있었음에도 지루한 지 모를만큼, 그녀를 가까이서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희수가 좋아 한다는 멜로 영화를 보았다.러브레터였다.
영화 러브레터 속의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이 정우의 가슴 속 깊이 시려왔다.나중에 알게된 그 남자의 마음.이젠 불러도 대답 없을 너.하지만 천국에 있을 그에게 편지 한 장을 띄워 보낸다.오갱끼 데스까?와따시와 갱끼데쓰... 하얀 설원 위에서 펼쳐지는 순백의 사랑.잠시 희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눈처럼 맑은 두 눈에서 눈물이 쉴새없이 흘렀다.희수는 꽤나 감동 받은 가보다.정우는 영화를 잘 선택했다고 생각했다.희수도 정말 좋은 영화고 너무나 아름다운 로맨스다며 자신도 그런 사랑 한 번 해봤으면 좋겟다고 했다.정우는 순간적으로,
「왜 안돼?나랑...」
「아저씨랑요? 」
희수는 놀란 듯 정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 보았다.둘은 잠시금 눈이 마주쳤다.그녀의 두 눈 속에 빨려 들어 갈 것만 같은 느낌이다.순간 어색해 졌다.정우는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였다.그리고 천천히 희수의 입에다 입을 가져갔다.희수도 두 눈을 꼭 감았다.자신도 주체 할 수 없는 그런 뜨거운 기운이 가슴 속에서 솟아 올랐다.머릿 속이 새하해지는 걸 느꼈다.



2001년 12월 24일. 경찰서.

「이정우씨,그만 눈떠요.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자고 있는 거요.」
한 경관이 정우를 흔들어 깨웠다.얼마가 흐른 걸까.마치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주위를 두리번 살펴보니 흐린 시야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바로 박과장.박과장은 어제 한 숨도 못잤는지 초췌한 모습으로 경관에게 심문 받고 있었다.박과장은 언성을 높여가며 그런 일 없다고 한사코 부인했다.그 경관은 증거가 있다며 빨리 사실대로 토설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반협박조로 말했다.그래도 박과장이 말하지 않자 경관은 화를 내며 정우를 불러 오라고 했다.정우는 그렇게 박과장과 대면 했다.
「이 사람 아는 사람입니까?」경관의 말에 정우는 한참동안 대답이 없다.
경관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정우를 노려봤다.
「이 사람 처음 봅니까라고 묻습니다.귀먹었나요?」
정우는 또 대답이 없었다.
경관은 이래선 안 되겠다며 다음 증인을 불러라고 했다.전화를 걸더니 잠시 후 한 여자가 들어 왔다.그 여잔 바로 미영이였다.
짧은 스커트에 짙은 화장만 하고 다녔던 미영을 보다가 갑자기 화장기 없는 애띤 얼굴의 미영을 보자 박과장도 아주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애써 모른 척 하려는 기미가 역력했다.
「그래,이 어린애를 꼬셔서 돈주고 성관계를 갖다니, 당신 그래 제 정신이요?이 애띤 아이를 어떻게 보고 함부로 이 아이 인생을 망쳐 놓는거요.그러고도 당신이 사람이요?」
경관의 호통에 박과장은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미영은 그 요염했던 자태는 다 숨긴채 본래 나이의 순진함으로 내숭을 떨고 있었다.그 당시 일을 얘기하며 울먹이는 미영을 보고 저런게 여자 여우의 가식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일은 미영을 왜곡된 진술로 성폭행까지 확대되어가고 있는 판국이었다.박과장은 답답한 표정이 역력했으나 어쨌든 미영은 미성년자이므로 할말이 없었다.고개만 푹 숙인채 하염없이 괴로워 할 뿐이였다.어느정도 박과장 사건을 매듭짓고 난 다음 다시금 화살은 정우에게로 돌아왔다.정우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미영은 정우도 박과장과 같은 한패라고 순진한 자기와 친구를 꼬셔서 돈을 주고 가지고 놀았다고 했다.경관은 이것이 사실이냐며 거듭 물었다.이제 더 이상 대답하기를 꺼린다며 사실로 인정하겠다고 했다.그때 갑자기 한 여인이 취조실로 들어왔다.
그건 바로 희수였다.그동안 정적을 감추었던 희수 .연락해도 통 소식이 없던 희수...희수는 꽤나 수척해 보였다.그런데 희수는 다급해 보였다.그리고 경관에게 매달리며,
「경찰 아저씨,이 아저씨는 아무 잘못없어요.이 아저씨는 너무도 순수한 사람이예요.정말이예요.믿어주세요...」
희수가 울먹이며 경관에게 말하자 미영은 무슨 소리 하느냐며 희수를 노려보았다.하지만 희수는 미영을 무시한채 정우가 결백하다며 자신에겐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관은 희수의 말을 듣고 난 뒤,정우에게 이 말이 사실이냐고 물었다.그러나 정우는 또 대답하지 않았다.

며칠 후 정우는 무혐의로 풀려났다.경찰서 밖에는 가족들이 나와 있었다.아내 소영은 고생했다며 다신 이런 일 없도록 해라며 두부를 먹였다.정우는 목구멍에서 피같은 울음이 나왔다.지금 희수는 어디로 간 걸까?다시 내게서 떠나 간 걸까?희수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금 정우의 머릿속 깊숙히 가득 들어찼다.막 차를 타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경관 한 명이 정우에게 달려왔다.그리고 어떤 여자가 맡겼다며 편지를 주었다.정우는 재빨리 뜯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아저씨.저 희수예요.

아마 지금쯤이면 경찰서에서 나오셨겠군요.괜히 저 때문에 고생만 하시구.정말이지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그리고 저번 어머니 문상 도와 주신 거 정말로 감사해요.아저씨가 없었다면 우리 세 남매는 어머니 잃은 충격에다 지금 사는 보금자리마져 잃어 버릴 뻔 했어요.늘 제게 용기어린 말로 격려 해 주시던 아저씨 모습이 생각납니다.항상 바른 길로 가길 바라는 아저씨의 진심어린 따뜻한 한마디 한마디가 힘들어 지쳐버린 저를 다시금 일으켜 주었어요.아저씨가 없었다면 저는 어떻게 됐을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겠죠.가까이서라도 아저씨를 바라보고 싶어요.하지만 아저씨는 한 가정을...그리고 제가 어리다는 걸 잘 압니다.하지만 아저씨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은 저도 더 이상 숨기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정말로 보고싶을 거예요.하지만 아저씨를 위해서.아저씨의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저는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아요.다행히 시골 친척 집에서 우리 가족 소식을 듣고 자기네로 오라고 하였어요.잘 된일 인 것 같아요.언제 다시 아저씨를 볼 수 있을지.하지만 저 열심히 살게요.그리고 보란 듯이 성공할게요.저 이제 무엇이든 잘 할 자신 있어요.아저씨가 늘 옆에 있을 때 보다 못하겠지만 용기를 내려 합니다.행복하세요.그리고 아저씨?이 말만은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어요.

정우씨,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정우는 두 눈가에 눈물이 주렁주렁 맺혔다.떨어진 눈물로 글씨는 하염없이 번져나갔다.그리고 그녀의 말 맞다라 이제 가슴 속 깊이 그녀를 간직해야 한다.그녀와의 사랑을.이 향긋한 풋사랑을...

집에 돌아 오는 길에 정우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이대로 자신의 마음을 숨긴채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를 속이며 살아가야 하는가.또한 불쌍한 아내에게 그러한 보이지 않는 고통을 안기며 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무엇보다도 희수를 잊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아내에게 죄스럽고 그로인한 죄책감이 그를 더욱더 힘들게 하였다.그 일이 있은 후 이웃 사람들은 물론 회사 동료들과 친척들까지 그를 보는 시선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비록 무혐의로 풀려 났지만, 아내의 친구들이 정우와 희수가 데이트 하는 장면을 여러번 목격한 모양이다.그동안 아내는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체 했다.그리고 남편이 다시금 가정의 품으로 돌아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아내의 어머니는 집안 망신이라며 저런 놈 하고 더 이상 살 필요 없다고 당장 이혼해라고 난리다.하지만 아내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훈훈한 인정을 가진 자애로운 아내로써 이혼같은 건 생각 할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정우는 이제 두 아이를 똑바로 쳐다 보는 것 또한 힘들었다.경찰서로 연행 된 후 아이들도 큰 충격을 받아서인지 정우를 볼때마다 가지마라고 자꾸 매달리며 울부 짖었다.정우는 너무도 괴로웠다.자신도 행복한 가정을 포기 하고 싶지 않았다.정우는 한 가족의 가장이라며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내이고 되내였지만 희수에 대한 그리움과 아내에 대한 죄책감만 쌓일 뿐이였다.빨리 이 혼란에서 정우는 벗어나고 싶었다.




2011년 12월 24일(십년 후).

오늘 마침 첫눈이 내렸다.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첫눈이라며 즐거워 했다.소민도 친구들과 신나게 눈싸움하고 옷이 눈에 흠뻑  젖은채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베이커리에는 갓 구어낸 빵들이 먹음직스럽게 진열되어 있었다.정우도 점원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축제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민아,이게 무슨 꼴이니?감기 걸리겠다.얼른 옷 갈아 입고 방안에 들어가 쉬어라.내 금방 따뜻한 우유 갖다 주마.」
소민은 옷 갈아 입기 귀찮다고 때를 쓰고 트리 장식하는데 자기도 해 보겠다고 야단이다.정우도 소민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아침에 전아내 소영에게서 전화가 왔다.내일 미나 중학교 졸업식이니 참석해 달라고 말이다.정우는 미나의 졸업식이라는 말에 벌써 이만큼 세월이 지난나란 생각이 들었다.어느덧 자기도 귓가에 흰 머리카락이 조금씩 보였다.소민은 오늘 특별한 날인데 좀 젊어 보일 수 없냐며 염색하라고 난리다.정우는 어쩔 수 없이 알았다하고 빵굽는 오븐에 가서 크리스마스 케잌이 다 완성 되었는지 확인하였다.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온 첫 손님이라며 박수치며 야단법썩을 떨고 있었다.정우는 아직 개장 할려면 멀었는데 하는 생각에 서둘러 무슨 일인가 하며 나갔다.소민과 점원들은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그 손님에게 폭축을 터뜨리며 크리스마스 캐롤을 불렀다.정우는 그 손님이 누군지 트리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자세히 보기 위해 트리 옆을 살짝 비켜서자 정우는 그만 들고 있던 크리스마스 케잌을 탁 놓고 말았다.
그 손님은 바로 희수였다.아니 이제 완전히 성숙한 한 여인이였다.정우는 떨리는 마음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그동안 얼마나 기다려 온 사람인가!그리고 한시라도 잊지 못했던 그 모습이 아닌가!!
「사장님,왜 그러세요?어디 아프세요?」
정우는 그 자리에 꼼짝없이 얼어 붙고 말았다.희수는 정우를 보고 살며시 가벼운 인사를 하였다.그리고 케잌을 사가지고 밖으로 나갔다.그동안에도 정우는 계속 멍하니 그 자리에만 서서 희수가 나간 문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사장님.저 여자 손님이 나가면서 이 시집을 사장님께 전해 주라고 하던데.혹시 그분 전에 아시던 분이세요?」
정우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그 시집을 열어 보았다.시집 앞장에는 자신이 준 네잎클로버가 코팅되어 있었다.아마도 영원히 간직하려고 했나보다.시집에는 십년전을 그녀의 향기가 아직도 변하지 않고 물씬 풍겼다.향긋한 그녀만의 향기...몇장을 넘기다가 진하게 표시되어 있는 곳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정우가 그녀에게 처음 낭독했던 그 시였다.그 시 맨끝에는 그녀의 사랑스런 예쁜 글씨가 보였다.

정우씨! 아직 사랑을 믿나요?그리고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요?


정우는 거리로 뛰어 나왔다.눈 내리는 모습이 그녀와 보았던 러브레터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그리고 그는 외쳤다.이미 보이지 않는 그녀를 향해서...

「예! 믿어요...우린 정말 사랑했어요!!!」
「이제 제가 한 맹세 지켜 갈래요.영원히!!!」


전성혁

대구광역시 북구 복현2동 청구아파트 105동 1102호
(TEL)053-381-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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