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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시(2004.11.4) 1차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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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289회 작성일 04-11-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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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보라

수묵으로 하늘을 칠하자
누군가 쏴-하고 샤워기를 튼다
가려운 나무의 겨드랑이와 까칠한 이마를 씻고
꼬마들은 아예 목까지 치켜든다
빗속으로의 초대
더딘 실로폰과 몰아치는 드럼 변주곡
팽팽히 긴장한 우산을 쓰다듬는 비의 퍼포먼스
차들은 이미 물살을 가르며 제트 스키를 탄다
톡 톡 콧등에 터지는 빗방울은 사이다 맛
다 젖으면 시큼한 레몬 맛인데
(집은 여기서 얼마나 멀까)
잠시 시간이 멈추자
처마 밑에서 하나 둘 고공 점프를 한다
팍.팍. 펴지는 빨강 파랑 검정 낙하산의 어울림
제마다 한 송이씩 꺾어 든 꽃 무리의 행진
꽃잎에 비누 스킨 커피 진한 땀 냄새가 묻었나
비를 보라
재잘거리며 죄다 깨어나는 오후
창은 환하게 번지는 빛의 수채화
눈을 감고 비를 보라
나의 실크로드 내면의 오아시스다






고물 차 팔던 날

몇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가망 없다고
누군가 고개를 설례설례 흔들자
나는 차가운 본넷트에 종말을 서명했다
강철 심장으로도 못 견디는 게 있었구나
낯선 이에게 키를 주고 돌아오는 버스 칸
끝내 참았던 아내 눈이 햇살에 빛났다
어깨를 툭 툭 쳐봤으나
그럴수록 우물 속 깊은 두레박 소리가 난다
한 때 늠름한 어깨로 활보하던 기억 때문일까
이제 우리도 낡아 간다는 사실 때문인가
결국 헐값에 합의 한 건
늙고 병든 그 무엇을 버리자는 것인데
아내는 지금도 고물만 보면
입에서 허기진 바람소리를 낸다
창 밖으로 쫓아가는 가련한 시선
구식으로 물긷는 미련한 낭만주의자
그 옆자리가 따뜻하다






상상

이도 저도 안되고, 되는 일 하나 없을 때
가끔 딴 생각을 한다

꼼짝없이 갇혀버린 버스 창 밖으로 투명한 입체영화가 상영된다던가. 특수버튼을 누르면 제트기로 변신하여 뭉게구름 위를 날고 있다는, 하느님께 드릴 짤막한 질문이 너무 쉬운 것은 아닌지, 외딴 마을에서 사루비아 꽃대를 뽑아 물고 유년의 오류코드를 수정할 수 있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이 진정한 해피엔딩이 아닐까, 라는. 때로는 비틀거리는 선수 대신 링에 올라 역전의 카운터블로를 날린다거나, 뮤지컬 무대 위로 수 만개의 눈동자를 모아 놓고 자지러지게 노래하고 있다는, 사람들은 모두 패션모델처럼 걸어가고 마이크를 들고서 잠시 인터뷰를 한다면, 그 언어 그대로 시가 되어 입에서 입으로 열병처럼 번져 나간다는, 막연하고 어설픈 공상이 아니라 선명한 구성의 논픽션 같은

이것저것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
이런 상상을 하면 박하사탕 한 입 깨문 듯 머리가 환해진다






베란다 꽃 키우기

준비물
우뚝 솟을만한 빈 영역
영혼을 떠낼 작은 꽃삽
툭. 툭. 껍질을 깨고 나오는 몸부림
삶과 죽음에 관한 사소한 실랑이와
지금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몇 가지 증거들

재배법
과거보다 신선하다는 증명을 위하여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실없이 웃지 않음
묵은 기억이 해독되어 라디오에서 나올 때
적당한 주파수에 체온을 맞추고
종말보다 더 깊은 어둠을 건너야 함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실낱같은 그 무엇을
베란다 양지에 내려놓고 무작정 기다리는 한 나절
굽이굽이 흘러가도 고개 숙인 채 말이 없는데
신화에나 나왔을 어떤 피치 못할 사유로
우리는 오늘도 바람처럼 산다
무심한 듯 길가에 묻었으면 더 좋았을

기념촬영
웃어보라는 권유에
마음은 아예 꽃집으로 시집간다
제비둥지 그 허기짐으로 입 벌리는 붉은 뺨에
어찌 다 입맞출 수 있을까
결국 우리가 먼저 시든다해도






불만을 긁다

삶은 간단한 몇 가지를 요구한다
나는 가난의 조건조차 벅차
뭔가 다른 꿈을 꾸지만
소화 안 되는 알갱이들이 몰려나와
늘 등이 가렵다
나 하나쯤 내 마음대로인 줄 알았으나
내게서 가장 먼 곳이 나에게 있었음을
제아무리 해가 중천이라도
불만은 몹시 꿈틀대고
손쓸 수 없는 오지
타협할 수 없는 한 뼘 뒤
손톱을 세워 빡 빡 긁고 싶다
검은 피. 용암처럼 터지도록






사내의 손

눈물보다 따뜻해지자고
불꺼진 방에 누워서 말했다
상처를 쓰다듬는
묵묵한 영혼의 실루엣이여
몇 개의 굳은살이 이력을 증명하듯
본능으로 춤추는 천진한 벙어리
멀뚱멀뚱 눈치만 살피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수줍게 웃는
그 어떤 지배도 거부하는 決死의 프리랜서
때로는 나를 버리고 멀리 도망 가
나를 향해 기도하는
수배자의 몸처럼 지쳐 보인다






엽서

바스락거리는 종이에
네 이름을 쓰고 안부를 묻고
몇 줄 더 넣어 보낸다
우물쭈물 못 다한 이야기도 아니고
회상보다 더 멀지도 않을
거리를 쏘다니는 갈바람에
우뚝 선 나무들의 휘파람소리
수줍어 붉어진 산하처럼
우리도 저리 익어 가는데
나지막한 노래 한 소절
따사로운 햇살 한 조각
지지 않을 잎새에 담았다
종종 걸음도 가볍게






망치

가택연금 중인 비전향 장기수
저돌적인 급진주! 의자
꽉 마른 체구에 그을린 얼굴로
어딘가 잠적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돌보지 않는 사나이 로망처럼
말로만 살지 않을
참지 못할 금단의 벽
도도하게 침묵한 껍질들의
그 정적을 깨는 탕.탕.한 울림
한번에 한대씩. 안되면 될 때까지
아예 끝장 보는
상당히 무식해 보이나
실은 좀 더 대책 없는
그렇다고 지래 떨지마
망치이기 때문이지
혹시, 너도 부서지고 싶니?






보물섬으로

해적들은 찾지 못할
나침반이 향하는 마음의 극점
스스로 옷 벗는 비무장지대
방전된 영혼도 쉬어 가는
꿈의 발전소
아침이면 다시 깨어날
저기 따사로운 6층 1호실

나는 지금 보물섬으로 간다






봄을 찍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경쾌한 셔터소리가 난다
나풀거리는 셔츠에 하얀 비누냄새
렌즈를 사로잡는 상긋한 손짓
민들레보다 가벼운 음표를 내뿜으며
수줍게 햇살을 밟는다
까만 머리의 나비핀은 풀어줄 건가
양철통을 두드리며 실로폰을 치려나
쏴한 빛으로 번져 가는 한나절
기억 속에 봄을 찍고

나는 그저 행복하였다


성 명 : 최 윤 희 (崔 允 熙)
성 별 : 男
연 령 : 38세(67년생)
주 소 : 부산시 해운대구 좌동 1302 동신아파트 109동 601호
E - Mail : coreapq@hanmail.net
전화번호 : (051)701 - 8034 (016-385-2750)
응모편수 : 시 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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