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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단편소설(200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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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침대
김성기
“수빈이 엄마 아무래도 안되겠어”
아침부터 배가 아프다며 우거지상을 하고 있던 창수가 오후가 되자 더는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아내를 불렀다.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아!”
식은땀을 연신 흘리며 창수가 재촉을 했다
“빨리 차 좀 아파트 현관에 대 내려갈게”
수빈이 엄마가 옷을 갈아입고 대강 머리손질을 하는 동안 창수는 몸을 꼬며 참다못해 먼저 아파트현관으로 내려갔다.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현관에 쭈그리고 앉은 창수를 보자 허리띠가 길게 남도록 꼭 졸라맨 헐렁한 곤색 바지차림의 경비아저씨가 걱정스런 듯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디가 많이 아프신가봐요”
“네~~ 배가 뒤틀려서”
창수는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현관바닥에서 차라리 편하게 뒹굴고 싶었다. 몇몇 이웃 아줌마들이 시장 바구니를 들고 지나가다 말고 지켜보며 한마디씩 했다.
“왜 그런 대 ?”
“큰일이네 !”
“전에 12층 아저씨도 저렇게 가서 그 후로 영 집에 못 돌아 왔는데.........”
좀 수다가 심하고 아무 때고 아무 말이나 거리낌이 없는 2층 반장 아줌마와 남편이 모 병원 임상병리사 라는 키 작은 아줌마가 숙덕대는 소리를 창수는 들었다.
‘이거 정말 심각한 병 아닐까 ?’
창수가 타고 내려온 엘리베이터가 두 번째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수빈이 엄마도 함께 내려왔다.
“수빈이 엄마 왜 그래?”
“배가 아프대”
수빈이 엄마는 빈 대답을 여름 하늘에 날리며 지하 주창으로 갔다.
“어느 병원으로 가야지 ?”
차가 아파트입구를 막 나서면서 첫 사거리 신호등에 걸려 있을 때 수빈이 엄마가 창수를 돌아보며 물었다.
“가까운데 어디 ? 복원병원 ?”
“복원병원은 개인병원이라 바가지 씌운 다고 하던데, 필요 없는 검사를 이것저것 해 가지고.”
창수는 그 아픈 배를 움켜쥐고도 병원비 걱정을 했다. 지독하게 검소한 그 이지만 딱이 병원비 걱정 때문만은 아니다. 불필요한 검사를 이것저것 당하는 것도 고역이일 뿐만 아니라, 창수에게는 가기 싫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일요일이라 종합병원 응급실밖에 문을 연 곳이 없을 텐데”
피서가 한창이 한여름 오후 햇살은 어제 내렸던 소낙비로 깨끗하게 목욕한 탓인지 그 기세는 한층 더해 웬만한 부채 넓이 만한 플라타너스 잎사귀도 이슬 맞은 재처럼 처져 있었다.
베이지 색 반바지에 노랑바탕에 도라지꽃 무늬가 있는 배꼽티를 입은 아가씨와 무릎이 해진 청바지에 차양이 둥글고 넓은 모자를 쓴 아가씨가 거다란 비취백과 작은 멜빵 끈이 달린 가방을 둘러메고 경쾌하게 지나가는 뒤를 따라 장바구니인 듯 한 손에는 큰 쇼핑백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댓 살 되어 보이는 어린애 손을 잡고 건너가고, 그 앞을 롤러후레이드를 타고 가는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는 아마도 엄마 손에 이끌려 가는 사내아이의 누나인 듯 해 보였다. 그리고 그와 나란히 양복윗저고리를 벗어들고 한쪽 손에는 서류봉투를 들고 잰 거름으로 건너오는 남자는 바쁜 일이 있어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출근한 회사원인 듯 했다. 그 뒤를 다라 할머니 한 분이 힘겹게 길을 건너고 있었고 파란 불이 빨간 불로 바뀌기 위한 예비신호로 깜박거리기 시작할 때쯤에는 학원에 가는 길인지 도서관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지 고등학생 두 명이 바쁘게 뛰어 지나갔다. 앞차의 꽁무니에 붙은 라디오 안테나에 철 이른 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 있다가 차가 약간 앞으로 전진하자 이내 날아갔다. 잠자리의 꽁무니를 따라 가던 창수의 눈길은 허공에서 표적을 놓치고 휑하니 하늘을 처다 보았다. 차안에서 바라본 창 밖의 세게는 평화롭고 건강해 했지만 창수 에게는 이국 풍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성 종합병원으로 가야겠어”
수빈이 엄마소리를 들으며 창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병원까지 가는 길에는 창수가 다니는 성당이 있었다. 창수는 성당 앞을 오래도록 성당건물이 물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돌아보고 있었다. 창수는 사실 아파서 병원 가 본적이 사랑니가 아려서 빼고 다시 의치를 해 넣기 위해 병원을 다녀본 것말고는 거의 없었다. 감기 따위로 약국을 찾은 일도 없었다. 일도 잘하고, 술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고, 집에서는 아침에 온가족이 다 소변을 본 다음 한꺼번에 물을 내리자고 할 정도로 절약을 강조 하지만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나 후배들에게는 술도 잘 사고 용돈도 잘 쓰는 허우대 좋은 직장인이었다.
‘주변에 속이 좀 안 좋다고 하며, 진찰이나 한번 해보겠다고 트레이닝복 바람으로 병원 가서 그대로 집에 못 돌아온 사람 참 많은데...........’
별 잡스러운 생각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운전하는 수빈이 엄마 옆모습을 흘끔 보고는 공연히 가슴이 철렁 했다. 집에서 병원까지 3km도 채 안 되는 거리가 이승에서 저승만큼이나 아득하다고 생각했다.
“배가 아파 죽겠어요 우선 진통제라도 좀 놔주세요”
접수수속을 하는 직원이 응급실 침대를 쓸 것인가를 물었다. 침대를 쓰면 3만원의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 간호사가 안내한 응급실 침대가 공교롭게도 3년전 돌아가신 창수 아버지가 마지막 입원하셨을 때 쓰셨던 그 침대였다.
90하고도 4년을 더 사시고도 이승에 미련을 두고 가신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창수는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100년을 살아도 죽음이란 두려운 것이구나 하는 것을 정말 가슴으로 알았었다. 그 침대에 누워서 창수는 아픔에 입술을 깨물면서도 삶과 죽음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동양의 사상가 공자도, 절대권력자 진나라 시황제도 극복하지 못했던 죽음이라는 것을, 오직 주님만이 부활하고 영원히 살고있다고 했다. 그러나 창수는 그 만큼 믿음이 깊지 못했다.
그날따라 바람 한 점 없어 응급실 침대에서 올려다 본 이름도 잘 모르는 커다란 나무가 맥없이 늘어져 있었다. 그 저쪽에는 뭉게구름이 솜사탕같이 부풀어 있고 그 사이사이로 강렬한 태양을 쏟아내는 푸른 하늘이 보였다.
종합병원에 가면은 기다리다 죽고, 검사하다 죽는다더니 정말 기다리다 죽을 것만 같았다.
“열이 아주 높네요”
간호사가 겨드랑이에 꽃아 놓았던 체온계를 처다 보며 말했다.
간호사는 다시 혈압을 재기 시작했다.
“평소혈압이 얼마였죠”
간호사가 물었다.
“정상 이였습니다.”
창수는 평소 혈압이 생각나지 안아서 정상이었다 라고 만 대답했다. 간호사가 고개를 갸웃 하며 차트에다 숫자를 기록하고는 가버렸다. 수빈이 엄마의 불안한 눈빛이 간호사의 뒷모습을 따라갔다. 창수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지 못하고 앉았다 누웠다. 업치락 뒤치락 했다.
‘정말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닐까 ? 암 말기가 참을 수 없이 아프다던데’
X선 검사, 소변검사, 혈액검사 등 몇 가지 검사가 더 끝난 다음 의사가 왔다.
“평소에 자주 배가 아팠습니까?”
젊고 잘생긴 의사가 목 카라에 때가 낀 가운차림으로 창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네 술 마신 다음날에는 하루종일 배탈 설사를 합니다. 평상시도 잘 체 하고요”
“공복에 속이 쓰립니까 ?”
“네 아침에 일어나면 속이 쓰리고 신트림이 납니다.”
“물을 마시면 임시적으로 가라 안지요 ?”
“네”
“그런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오래 되었습니다. 5년쯤”
“그동안 진찰 안 받아 보셨습니까?”
“받아 봤지요. 어퍼제이아이 검사도 받아보고요 그때 위염기가 있다고 해서 치료 한적 있습니다.”
“언제쯤인가요?”
“3년 전입니다.”
“그 뒤로는 아프지 않았던가요 ?”
“자주 속이 쓰리고 체하고 했습니다”
“왜 진료를 받아보시지 그랬습니까?”
“내시경 검사를 받아 보았는데 아무 이상 없다고 했습니다.”
“언제 입니까?
“1년쯤 되었습니다.”
의사가 고개를 갸웃 둥 했다.
창수는 가슴이 덜컹 했다.
짧은 순간 침묵이 흘렀다.
잠시 숨이 멎을 것 같은 무거움을 참지 못한 수빈이 엄마가 입을 연다.
“무순 심각한 병인가요”
“정확한 원인은 월요일에 정밀 검사를 해 봐야 알 수 있지만 , 위괴양 같으니 그런 쪽으로 치료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말꼬리를 흐리며 돌아서는 의사의 뒷모습을 불안하게 따라가던 창수와 수빈이 엄마의 눈길이 다시 허공에서 부디 친다.
아래 마을까지 버스가 들어 온 것은 십 수년이 되었지만 그 마을에는 아직도 버스가 다니지 안았다. 오랜 엣날 조상 때부터 살다살다 밀려 그곳까지 온 사람들이 여덟 가구 모여 사는 그 동네 사람들은 자갈논 땅마지기를 가라먹기도 하고 지리산을 터전으로 산약 같은 것을 캐다 팔아 살림을 구려 가기도 하던 것이 10여 년 전부터 온천개발이 시작되면서 땅값이 올라 억대를 만져본 사람도 있고, 관광객을 상대로 음식장사를 해서 돈푼이나 만진 사람도 있었다
창수 아버지는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었다.
다랭이 논이나마 꽤 여러 마지기를 가지고 있던 창수 아버지는 자식들이 도회로 나가면서 거리가 멀거나 다랭이가 잘고 곡식이 잘 안 되는 논들은 팔아서 정리하고 몇 마지기 안 되는 논농사와 채소밭을 가구며 살아가고 있었다.
100세가 가까워도 몇 차례 가벼운 병환으로 병원 신세를 졌을 뿐 아직도 정정하여 채소 밭도 가꾸고, 꿀벌도 치고, 산수유라고 하는 한약재로 쓰이는 열매가 열리는 나무를 가꾸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 먼 서울에서 돌아온 아들의 방문에 깜짝 놀란 아버지는 잠시 창수 얼굴을 멀건히 처다 보았다.
“휴가 때도 아닌디 무신 일이다냐 ?”
아버지의 얼굴에 잠시 그늘이 스치다.
“그냥 왔어요 아버지”
“에미랑 아이들은 ........”
“혼자 왔어요”
주름진 얼굴에 또 한번 까닭 모를 어두운 그림자가 스친다.
창수는 사립문도 아닌 그냥 돌담과 돌담사이의 팔을 한껏 벌리면 조금 남을만한 빈 공간을 들어서며 남 이야기처럼 대답하고는, 두어평 남짓한 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멍석 몇 개 널면 꽉 찰 마당 한편에는 뽑다가 만 잡초가 옹기종기 모여 있고, 창수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핑경을 철렁거리며 구시짓 하는 황소를 기르던 마구간은 서울 아들네들이 명절이나 휴가 때 내려오면 늘 비좁아 불편해하는 것이 맘에 걸려하던 아버지가 화장실과 방 한 칸 그리고 세탁기를 들여놓고 샤워도 할 수 있는 비좁은 공간하나가 딸린 별채 하나를 짖느라 사라지고 없었다. 명절 때면 동생과 창수네 가족 중 먼저 도착한 가족이 차지하고 다소나마 깨끗하고 편리한 방을 쓰는 대신 음식준비며 청소며 먼저 시작해야 하는 그런 방이다. 마당 한켠 장독대에는 꽤나 많은 크고 작은 장독들이 있다. 여기서 50리도 넘는 남원장에서 저 장독들을 사서 짊어지고 여기 산꼴 까지 왔다는데 지금은 작은 간장독 하나 들기도 힘들어하는 아버지지만, 그래도 늘 쉬지 않고 산수유나무며 텃밭이며 뒷밭이며 돌보며 하루도 편히 쉴 날 없이 근심 걱정을 업보처럼 업고 사신다. 아무래도 비좁은 마당에 비하면 장독대가 기형적으로 큰 편이다.
‘저 좁은 곳에서 여름에는 보리타작을 어찌 했었을 까’
발동기에 연결한 타막기가 엄청난 굉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하면 10여명에 장정들과 아낙들이 갑자기 분주해 진다. 초가지붕 처마보다 더 높이 쌓아 올린 보릿가리에서 보릿단을 마당으로 집어 던져주면 그것을 받아서 타막기 까지 옮겨 주고, 옮겨온 보리 단을 타막기에 집어넣으면 쑤와 쑤와 하면서 보리알을 옆구리로 쏟아 낸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보릿대는 앞쪽으로 토해 낸다. 옆에서 보리 알을 챙겨 가마니에 담는 일은 아낙들이 하고 앞에서 보릿대를 걷어내는 일은 남자들이 했다. 보릿대를 토해내는 반대 방향으로 바람이라도 부는 날은 그야말로 온 천지가 보리 가시락 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시골아이들은 껄끄러운 줄도 모르고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보릿대에 파묻히며 즐거워했다. 창수는 공연히 목덜미를 움츠리고 등허리를 긁으며 호미하나를 뒷짐으로 들어 쥐고 텃밭으로 가는 아버지의 구부정한 어깨에다 물었다.
“어머니는 요”
“내가 그걸 웨쩨 알것냐 이”
예전 같으면 창수가 오면 어머니부터 찾아 먹을 것을 챙겨 주라며 성화시던 아버지의 대답이 덤덤했다.
“아버지 창순이가 아들을 낳았어요”
늦게둔 외 손주 이야기에도 관심이 없으신 듯, 들으셨는지 마셨는지 아버지는 그냥 빈터로 갔다. 장독대에 서있는 큰 감나무에서 덜 익은 감하나가 몇 개의 파란 잎사귀와 함께 뚝 떨어졌다. 남쪽의 여름 날씨는 먼길을 걸어온 창수의 등허리에 연신 땀을 흘려 보냈다. 창수는 어디 가서 등 목이라도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로 갈까 ?’
서울로 취직시험에 합격되어 떠나기 전 20여 년을 살았던 마을인데 오늘따라 낮이 설기만 했다. 돌담너머 문전 옥답은 시퍼럿게 자라야할 벼대신 토란이며 콩이며 밭작물만 잡초와 함께 무성했다. 이 마을에서는 그래도 부자라고 논마지기나 짖던 윗집도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이제는 논농사를 포기하고 문전 옥답에다 밭작물이 가꿔먹고 있었으며, 사립문 건너 논 다랑지는 음식장사를 한다며 주차장으로 쓰고 있었다. 서울에서 이사와서 토종닭 백숙 장사를 시장한 옆집 본을 따서 장사라고 하지만 원래 성격이 무뚝뚝하고 붙일성이 없어 다시 찾는 손님이 없었다. 20여 년 전 서울에서 사업하다 망하여 보퉁이하나 않고 이 마을로 이사온 옆집은 남편이 살았을 때까지만 해도 남에 논이나 붙여먹고 근근히 살더니 남편 죽자 여자가 팔 걷어붙이고 술장사 시작하였는데, 복이 있을 여고 아래 고을이 온천지역으로 지정되고 대형 온천탕과 콘도, 숙박시설, 위락시설이 들어서면서 조그만 골짜기도 부동산바람이 불어 땅값이 몇 십 배 뛰고 휴식겸 찾는 이도 많아 이제는 동네서 돈푼이나 많지는 집으로 소문이 났다. 그리고는 또 어디서 혼자된 홀아비 하나도 쾌차고 며느리와 외손자를 본 나이에도 알콩 달콩 잘 살고 있었다. 이 집이 돈 잘 번다는 소리에 너도나도 음식 집을 시작하여 지금은 10호가 채 못되는 집중 창수네만 제외하고는 모두가 외지인이거나 본래부터 동네 살던 사람들이라도 음식 집을 하느라 일요일이면 여기저기서 몰려든 차량들로 골목에 주차하기가 불편하고 밤이면 술 취해 배회하는 사람들도 많아 자그마한 골짜기 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생각에 잠겨있던 창수는 벌떡 일어섰다.
‘아버지가 변하셨어 ! 말수가 왜 저리 없으실까?’
‘궁금한 것도 많고 참견할 일도 많았던 아버지가 아니셨던가 !’
창수는 아버지를 따라 텃밭으로 갔다. 아버지는 산에서 캐다 큰 뿌리는 반찬해 먹고 잔뿌리는 심어둔 산 더덕 덩굴아래서 풀을 뽑고 있었다.
“아버지”
“왜냐”
“제가 왔는데 반갑지 않으세요?”
“……”
“여기는 우리가 살던 고향 같은데 아닌가보네요 ?”
“금매 말이다”
“천국인가요?”
“……”
“그럼 지옥인가요?”
“……”
“그럼 어딘가요?”
“천당도 지옥도 그런 것은 없는 갑드라 !”
“그럼 여기는 어딘가요? 연옥 같은 덴가요?”
“연옥 뭐시다냐 ?”
“천주교요. 하느님 믿는데서 말하는 것인데 지옥이나 천국으로 가기 전에 머무르는 곳을 말하는 것이거든 요”
“글씨다. 그냥 이승에서 살았던 그 모양 그 꼴로 또 사는 것 인갑드라. 좋은 일 험서 산사람은 좋은 일 험서 살고, 못된 짓 험서 산사람은 또 못된 짓 험서로 살드라”
“……”
창수는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
창수가 다시 아버지를 불렀다.
“왜 ?”
“큰집 형님은 만나 보셨나요”
창수는 15년 전 40대 중반의 나이에 요절한 큰집 형님 안부를 물었다.
“여그서 좋은 일 험서로 살고 있드라. 곳 좋은 데로 간다는 말도 들리고”
아버지가 대답했다.
“작년에 그 형수님이 돌아가셨는데 아셔요?”
“알고 있제.”
“그 형수하고 큰형님은 만나셨나요”
“만나지 않고? 부부가 다시 안만나면 누가 만난 다냐.”
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서산마루에 걸린 해를 바라보는 누런 아버지의 뒤로 길게 이어저야할 그림자가 없었다..
“주사한대 더 맞으세요”
간호원의 목소리에 창수 는 잠이 깼다.
3년 전 아버지가 누워 있던 병상에는 창수의 식은땀이 흥건했다. 끝.
.................200*55
성 명 : 김성기
성 별 : 남
연 령 : 48세(1956년생)
주 소 : 서대문구 연희3동 168-6 서대문구청 기획예산과
이메일주소 : k560610@hanmail. net
전화번호 : 017-318-1679
김성기
“수빈이 엄마 아무래도 안되겠어”
아침부터 배가 아프다며 우거지상을 하고 있던 창수가 오후가 되자 더는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아내를 불렀다.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아!”
식은땀을 연신 흘리며 창수가 재촉을 했다
“빨리 차 좀 아파트 현관에 대 내려갈게”
수빈이 엄마가 옷을 갈아입고 대강 머리손질을 하는 동안 창수는 몸을 꼬며 참다못해 먼저 아파트현관으로 내려갔다.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현관에 쭈그리고 앉은 창수를 보자 허리띠가 길게 남도록 꼭 졸라맨 헐렁한 곤색 바지차림의 경비아저씨가 걱정스런 듯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디가 많이 아프신가봐요”
“네~~ 배가 뒤틀려서”
창수는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현관바닥에서 차라리 편하게 뒹굴고 싶었다. 몇몇 이웃 아줌마들이 시장 바구니를 들고 지나가다 말고 지켜보며 한마디씩 했다.
“왜 그런 대 ?”
“큰일이네 !”
“전에 12층 아저씨도 저렇게 가서 그 후로 영 집에 못 돌아 왔는데.........”
좀 수다가 심하고 아무 때고 아무 말이나 거리낌이 없는 2층 반장 아줌마와 남편이 모 병원 임상병리사 라는 키 작은 아줌마가 숙덕대는 소리를 창수는 들었다.
‘이거 정말 심각한 병 아닐까 ?’
창수가 타고 내려온 엘리베이터가 두 번째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수빈이 엄마도 함께 내려왔다.
“수빈이 엄마 왜 그래?”
“배가 아프대”
수빈이 엄마는 빈 대답을 여름 하늘에 날리며 지하 주창으로 갔다.
“어느 병원으로 가야지 ?”
차가 아파트입구를 막 나서면서 첫 사거리 신호등에 걸려 있을 때 수빈이 엄마가 창수를 돌아보며 물었다.
“가까운데 어디 ? 복원병원 ?”
“복원병원은 개인병원이라 바가지 씌운 다고 하던데, 필요 없는 검사를 이것저것 해 가지고.”
창수는 그 아픈 배를 움켜쥐고도 병원비 걱정을 했다. 지독하게 검소한 그 이지만 딱이 병원비 걱정 때문만은 아니다. 불필요한 검사를 이것저것 당하는 것도 고역이일 뿐만 아니라, 창수에게는 가기 싫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일요일이라 종합병원 응급실밖에 문을 연 곳이 없을 텐데”
피서가 한창이 한여름 오후 햇살은 어제 내렸던 소낙비로 깨끗하게 목욕한 탓인지 그 기세는 한층 더해 웬만한 부채 넓이 만한 플라타너스 잎사귀도 이슬 맞은 재처럼 처져 있었다.
베이지 색 반바지에 노랑바탕에 도라지꽃 무늬가 있는 배꼽티를 입은 아가씨와 무릎이 해진 청바지에 차양이 둥글고 넓은 모자를 쓴 아가씨가 거다란 비취백과 작은 멜빵 끈이 달린 가방을 둘러메고 경쾌하게 지나가는 뒤를 따라 장바구니인 듯 한 손에는 큰 쇼핑백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댓 살 되어 보이는 어린애 손을 잡고 건너가고, 그 앞을 롤러후레이드를 타고 가는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는 아마도 엄마 손에 이끌려 가는 사내아이의 누나인 듯 해 보였다. 그리고 그와 나란히 양복윗저고리를 벗어들고 한쪽 손에는 서류봉투를 들고 잰 거름으로 건너오는 남자는 바쁜 일이 있어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출근한 회사원인 듯 했다. 그 뒤를 다라 할머니 한 분이 힘겹게 길을 건너고 있었고 파란 불이 빨간 불로 바뀌기 위한 예비신호로 깜박거리기 시작할 때쯤에는 학원에 가는 길인지 도서관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지 고등학생 두 명이 바쁘게 뛰어 지나갔다. 앞차의 꽁무니에 붙은 라디오 안테나에 철 이른 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 있다가 차가 약간 앞으로 전진하자 이내 날아갔다. 잠자리의 꽁무니를 따라 가던 창수의 눈길은 허공에서 표적을 놓치고 휑하니 하늘을 처다 보았다. 차안에서 바라본 창 밖의 세게는 평화롭고 건강해 했지만 창수 에게는 이국 풍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성 종합병원으로 가야겠어”
수빈이 엄마소리를 들으며 창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병원까지 가는 길에는 창수가 다니는 성당이 있었다. 창수는 성당 앞을 오래도록 성당건물이 물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돌아보고 있었다. 창수는 사실 아파서 병원 가 본적이 사랑니가 아려서 빼고 다시 의치를 해 넣기 위해 병원을 다녀본 것말고는 거의 없었다. 감기 따위로 약국을 찾은 일도 없었다. 일도 잘하고, 술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고, 집에서는 아침에 온가족이 다 소변을 본 다음 한꺼번에 물을 내리자고 할 정도로 절약을 강조 하지만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나 후배들에게는 술도 잘 사고 용돈도 잘 쓰는 허우대 좋은 직장인이었다.
‘주변에 속이 좀 안 좋다고 하며, 진찰이나 한번 해보겠다고 트레이닝복 바람으로 병원 가서 그대로 집에 못 돌아온 사람 참 많은데...........’
별 잡스러운 생각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운전하는 수빈이 엄마 옆모습을 흘끔 보고는 공연히 가슴이 철렁 했다. 집에서 병원까지 3km도 채 안 되는 거리가 이승에서 저승만큼이나 아득하다고 생각했다.
“배가 아파 죽겠어요 우선 진통제라도 좀 놔주세요”
접수수속을 하는 직원이 응급실 침대를 쓸 것인가를 물었다. 침대를 쓰면 3만원의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 간호사가 안내한 응급실 침대가 공교롭게도 3년전 돌아가신 창수 아버지가 마지막 입원하셨을 때 쓰셨던 그 침대였다.
90하고도 4년을 더 사시고도 이승에 미련을 두고 가신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창수는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100년을 살아도 죽음이란 두려운 것이구나 하는 것을 정말 가슴으로 알았었다. 그 침대에 누워서 창수는 아픔에 입술을 깨물면서도 삶과 죽음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동양의 사상가 공자도, 절대권력자 진나라 시황제도 극복하지 못했던 죽음이라는 것을, 오직 주님만이 부활하고 영원히 살고있다고 했다. 그러나 창수는 그 만큼 믿음이 깊지 못했다.
그날따라 바람 한 점 없어 응급실 침대에서 올려다 본 이름도 잘 모르는 커다란 나무가 맥없이 늘어져 있었다. 그 저쪽에는 뭉게구름이 솜사탕같이 부풀어 있고 그 사이사이로 강렬한 태양을 쏟아내는 푸른 하늘이 보였다.
종합병원에 가면은 기다리다 죽고, 검사하다 죽는다더니 정말 기다리다 죽을 것만 같았다.
“열이 아주 높네요”
간호사가 겨드랑이에 꽃아 놓았던 체온계를 처다 보며 말했다.
간호사는 다시 혈압을 재기 시작했다.
“평소혈압이 얼마였죠”
간호사가 물었다.
“정상 이였습니다.”
창수는 평소 혈압이 생각나지 안아서 정상이었다 라고 만 대답했다. 간호사가 고개를 갸웃 하며 차트에다 숫자를 기록하고는 가버렸다. 수빈이 엄마의 불안한 눈빛이 간호사의 뒷모습을 따라갔다. 창수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지 못하고 앉았다 누웠다. 업치락 뒤치락 했다.
‘정말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닐까 ? 암 말기가 참을 수 없이 아프다던데’
X선 검사, 소변검사, 혈액검사 등 몇 가지 검사가 더 끝난 다음 의사가 왔다.
“평소에 자주 배가 아팠습니까?”
젊고 잘생긴 의사가 목 카라에 때가 낀 가운차림으로 창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네 술 마신 다음날에는 하루종일 배탈 설사를 합니다. 평상시도 잘 체 하고요”
“공복에 속이 쓰립니까 ?”
“네 아침에 일어나면 속이 쓰리고 신트림이 납니다.”
“물을 마시면 임시적으로 가라 안지요 ?”
“네”
“그런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오래 되었습니다. 5년쯤”
“그동안 진찰 안 받아 보셨습니까?”
“받아 봤지요. 어퍼제이아이 검사도 받아보고요 그때 위염기가 있다고 해서 치료 한적 있습니다.”
“언제쯤인가요?”
“3년 전입니다.”
“그 뒤로는 아프지 않았던가요 ?”
“자주 속이 쓰리고 체하고 했습니다”
“왜 진료를 받아보시지 그랬습니까?”
“내시경 검사를 받아 보았는데 아무 이상 없다고 했습니다.”
“언제 입니까?
“1년쯤 되었습니다.”
의사가 고개를 갸웃 둥 했다.
창수는 가슴이 덜컹 했다.
짧은 순간 침묵이 흘렀다.
잠시 숨이 멎을 것 같은 무거움을 참지 못한 수빈이 엄마가 입을 연다.
“무순 심각한 병인가요”
“정확한 원인은 월요일에 정밀 검사를 해 봐야 알 수 있지만 , 위괴양 같으니 그런 쪽으로 치료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말꼬리를 흐리며 돌아서는 의사의 뒷모습을 불안하게 따라가던 창수와 수빈이 엄마의 눈길이 다시 허공에서 부디 친다.
아래 마을까지 버스가 들어 온 것은 십 수년이 되었지만 그 마을에는 아직도 버스가 다니지 안았다. 오랜 엣날 조상 때부터 살다살다 밀려 그곳까지 온 사람들이 여덟 가구 모여 사는 그 동네 사람들은 자갈논 땅마지기를 가라먹기도 하고 지리산을 터전으로 산약 같은 것을 캐다 팔아 살림을 구려 가기도 하던 것이 10여 년 전부터 온천개발이 시작되면서 땅값이 올라 억대를 만져본 사람도 있고, 관광객을 상대로 음식장사를 해서 돈푼이나 만진 사람도 있었다
창수 아버지는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었다.
다랭이 논이나마 꽤 여러 마지기를 가지고 있던 창수 아버지는 자식들이 도회로 나가면서 거리가 멀거나 다랭이가 잘고 곡식이 잘 안 되는 논들은 팔아서 정리하고 몇 마지기 안 되는 논농사와 채소밭을 가구며 살아가고 있었다.
100세가 가까워도 몇 차례 가벼운 병환으로 병원 신세를 졌을 뿐 아직도 정정하여 채소 밭도 가꾸고, 꿀벌도 치고, 산수유라고 하는 한약재로 쓰이는 열매가 열리는 나무를 가꾸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 먼 서울에서 돌아온 아들의 방문에 깜짝 놀란 아버지는 잠시 창수 얼굴을 멀건히 처다 보았다.
“휴가 때도 아닌디 무신 일이다냐 ?”
아버지의 얼굴에 잠시 그늘이 스치다.
“그냥 왔어요 아버지”
“에미랑 아이들은 ........”
“혼자 왔어요”
주름진 얼굴에 또 한번 까닭 모를 어두운 그림자가 스친다.
창수는 사립문도 아닌 그냥 돌담과 돌담사이의 팔을 한껏 벌리면 조금 남을만한 빈 공간을 들어서며 남 이야기처럼 대답하고는, 두어평 남짓한 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멍석 몇 개 널면 꽉 찰 마당 한편에는 뽑다가 만 잡초가 옹기종기 모여 있고, 창수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핑경을 철렁거리며 구시짓 하는 황소를 기르던 마구간은 서울 아들네들이 명절이나 휴가 때 내려오면 늘 비좁아 불편해하는 것이 맘에 걸려하던 아버지가 화장실과 방 한 칸 그리고 세탁기를 들여놓고 샤워도 할 수 있는 비좁은 공간하나가 딸린 별채 하나를 짖느라 사라지고 없었다. 명절 때면 동생과 창수네 가족 중 먼저 도착한 가족이 차지하고 다소나마 깨끗하고 편리한 방을 쓰는 대신 음식준비며 청소며 먼저 시작해야 하는 그런 방이다. 마당 한켠 장독대에는 꽤나 많은 크고 작은 장독들이 있다. 여기서 50리도 넘는 남원장에서 저 장독들을 사서 짊어지고 여기 산꼴 까지 왔다는데 지금은 작은 간장독 하나 들기도 힘들어하는 아버지지만, 그래도 늘 쉬지 않고 산수유나무며 텃밭이며 뒷밭이며 돌보며 하루도 편히 쉴 날 없이 근심 걱정을 업보처럼 업고 사신다. 아무래도 비좁은 마당에 비하면 장독대가 기형적으로 큰 편이다.
‘저 좁은 곳에서 여름에는 보리타작을 어찌 했었을 까’
발동기에 연결한 타막기가 엄청난 굉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하면 10여명에 장정들과 아낙들이 갑자기 분주해 진다. 초가지붕 처마보다 더 높이 쌓아 올린 보릿가리에서 보릿단을 마당으로 집어 던져주면 그것을 받아서 타막기 까지 옮겨 주고, 옮겨온 보리 단을 타막기에 집어넣으면 쑤와 쑤와 하면서 보리알을 옆구리로 쏟아 낸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보릿대는 앞쪽으로 토해 낸다. 옆에서 보리 알을 챙겨 가마니에 담는 일은 아낙들이 하고 앞에서 보릿대를 걷어내는 일은 남자들이 했다. 보릿대를 토해내는 반대 방향으로 바람이라도 부는 날은 그야말로 온 천지가 보리 가시락 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시골아이들은 껄끄러운 줄도 모르고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보릿대에 파묻히며 즐거워했다. 창수는 공연히 목덜미를 움츠리고 등허리를 긁으며 호미하나를 뒷짐으로 들어 쥐고 텃밭으로 가는 아버지의 구부정한 어깨에다 물었다.
“어머니는 요”
“내가 그걸 웨쩨 알것냐 이”
예전 같으면 창수가 오면 어머니부터 찾아 먹을 것을 챙겨 주라며 성화시던 아버지의 대답이 덤덤했다.
“아버지 창순이가 아들을 낳았어요”
늦게둔 외 손주 이야기에도 관심이 없으신 듯, 들으셨는지 마셨는지 아버지는 그냥 빈터로 갔다. 장독대에 서있는 큰 감나무에서 덜 익은 감하나가 몇 개의 파란 잎사귀와 함께 뚝 떨어졌다. 남쪽의 여름 날씨는 먼길을 걸어온 창수의 등허리에 연신 땀을 흘려 보냈다. 창수는 어디 가서 등 목이라도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로 갈까 ?’
서울로 취직시험에 합격되어 떠나기 전 20여 년을 살았던 마을인데 오늘따라 낮이 설기만 했다. 돌담너머 문전 옥답은 시퍼럿게 자라야할 벼대신 토란이며 콩이며 밭작물만 잡초와 함께 무성했다. 이 마을에서는 그래도 부자라고 논마지기나 짖던 윗집도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이제는 논농사를 포기하고 문전 옥답에다 밭작물이 가꿔먹고 있었으며, 사립문 건너 논 다랑지는 음식장사를 한다며 주차장으로 쓰고 있었다. 서울에서 이사와서 토종닭 백숙 장사를 시장한 옆집 본을 따서 장사라고 하지만 원래 성격이 무뚝뚝하고 붙일성이 없어 다시 찾는 손님이 없었다. 20여 년 전 서울에서 사업하다 망하여 보퉁이하나 않고 이 마을로 이사온 옆집은 남편이 살았을 때까지만 해도 남에 논이나 붙여먹고 근근히 살더니 남편 죽자 여자가 팔 걷어붙이고 술장사 시작하였는데, 복이 있을 여고 아래 고을이 온천지역으로 지정되고 대형 온천탕과 콘도, 숙박시설, 위락시설이 들어서면서 조그만 골짜기도 부동산바람이 불어 땅값이 몇 십 배 뛰고 휴식겸 찾는 이도 많아 이제는 동네서 돈푼이나 많지는 집으로 소문이 났다. 그리고는 또 어디서 혼자된 홀아비 하나도 쾌차고 며느리와 외손자를 본 나이에도 알콩 달콩 잘 살고 있었다. 이 집이 돈 잘 번다는 소리에 너도나도 음식 집을 시작하여 지금은 10호가 채 못되는 집중 창수네만 제외하고는 모두가 외지인이거나 본래부터 동네 살던 사람들이라도 음식 집을 하느라 일요일이면 여기저기서 몰려든 차량들로 골목에 주차하기가 불편하고 밤이면 술 취해 배회하는 사람들도 많아 자그마한 골짜기 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생각에 잠겨있던 창수는 벌떡 일어섰다.
‘아버지가 변하셨어 ! 말수가 왜 저리 없으실까?’
‘궁금한 것도 많고 참견할 일도 많았던 아버지가 아니셨던가 !’
창수는 아버지를 따라 텃밭으로 갔다. 아버지는 산에서 캐다 큰 뿌리는 반찬해 먹고 잔뿌리는 심어둔 산 더덕 덩굴아래서 풀을 뽑고 있었다.
“아버지”
“왜냐”
“제가 왔는데 반갑지 않으세요?”
“……”
“여기는 우리가 살던 고향 같은데 아닌가보네요 ?”
“금매 말이다”
“천국인가요?”
“……”
“그럼 지옥인가요?”
“……”
“그럼 어딘가요?”
“천당도 지옥도 그런 것은 없는 갑드라 !”
“그럼 여기는 어딘가요? 연옥 같은 덴가요?”
“연옥 뭐시다냐 ?”
“천주교요. 하느님 믿는데서 말하는 것인데 지옥이나 천국으로 가기 전에 머무르는 곳을 말하는 것이거든 요”
“글씨다. 그냥 이승에서 살았던 그 모양 그 꼴로 또 사는 것 인갑드라. 좋은 일 험서 산사람은 좋은 일 험서 살고, 못된 짓 험서 산사람은 또 못된 짓 험서로 살드라”
“……”
창수는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
창수가 다시 아버지를 불렀다.
“왜 ?”
“큰집 형님은 만나 보셨나요”
창수는 15년 전 40대 중반의 나이에 요절한 큰집 형님 안부를 물었다.
“여그서 좋은 일 험서로 살고 있드라. 곳 좋은 데로 간다는 말도 들리고”
아버지가 대답했다.
“작년에 그 형수님이 돌아가셨는데 아셔요?”
“알고 있제.”
“그 형수하고 큰형님은 만나셨나요”
“만나지 않고? 부부가 다시 안만나면 누가 만난 다냐.”
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서산마루에 걸린 해를 바라보는 누런 아버지의 뒤로 길게 이어저야할 그림자가 없었다..
“주사한대 더 맞으세요”
간호원의 목소리에 창수 는 잠이 깼다.
3년 전 아버지가 누워 있던 병상에는 창수의 식은땀이 흥건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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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 김성기
성 별 : 남
연 령 : 48세(1956년생)
주 소 : 서대문구 연희3동 168-6 서대문구청 기획예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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