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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례-단편소설1(20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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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13회 작성일 04-11-15 22:25

본문

                       초혼제
                                        
  외딴집은 하오의 나른한 기운에 잠겨있었다.  서녘으로 난 흙벽에 검정교복을 입은 오빠가 기대 있었다. 석양에 비끼는 희미한 햇살로 오빠의 그림자가  바람인 듯 일렁였다.
  “잘 있어. 내 주면 다시 온 단다. 어서가. ”
  오빠의 소리가 나지막이 건너왔다. 나는 숫기 없이 눈을 한번 끔벅이고는 등을 보였다.  추웠다. 등이 추웠다. 등 뒤에서만  바람이 부는 듯.  무엇이 내 발짝을 따라왔다. 끈끈한 무엇이 목에 걸려왔다.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처럼 다리가 팍팍했다. 뒤를 돌아 봤다. 오빠의 눈과 마주쳤다. 물기가 어려 있었다.  오빤, 외로운가? 정말은 나를 보내기 싫은가? 아니 도시가 싫은 거야. 그곳으로 떠나기 싫은 거야. 거기가면 혼자니까. 눈이 커서 외로움도 잘 타고 무섬증도 남다르다고 언젠가 할머니는 퉁박했다. 한 방울의 이슬로 툭 떨어져 내릴 것만 같은 오빠 눈 속의 그것이 가슴을 끈끈하게 했다. 목을 컥컥거리게 했다.
  “어서 가라 늦어.”
  오빠의 손이 실루엣을 그었다.  나는 또 등을 보이고 집으로 가는 동구길을 걸었다.
  간밤에  나는 닭장 안에 들어갔다. 닭들이 꾸꾸 소리를 내며 파닥였다. 따뜻한 숨소리를 내며 닭의 볼록한 가슴에 손을 넣고 깃을  쓰다듬어 주었다. 하나 둘 일일이 그렇게 더듬어갔다. 그러자 그것들은 연쇄적으로 아주 얌전히 깃을 내렸다. 이제  둥우리에서 닭 알들을 하나  둘 꺼내 소쿠리에 담았다.  한가득  채워졌다. 허리를 폈다. 문득  불빛이 들었다. 나는 흐득 고개를 돌렸다. 오빠였다. 오빠가 등을 들고 있었다. 굵은 철사줄로  얼기설기 엮어 숭숭 구멍이 난 닭장 울 벽에 가스등을 들이대고 바투 서 있었다.  닭들이 일제히 파득거렸다. 깃을 털었다. 꼬꼬댁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깼다. 앞섶에 안았던 소쿠리를 놓쳤다. 닭 알들이 우수수 깨지며 끈끈한 내용물이  발등이며 발목을 적셨다. 그러자  오빠가 썰물처럼 밀려났다. 어둠에 가려져  사라져갔다.
  ‘오빠 안돼! 가지마!’
  나는 놀라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오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오빠를  찾아  앞만 보고 달렸다.   달려가다 어느 순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눈을 들자 시커먼 강물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강 쪽에서  밤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괴기스러웠다. 나는 흐득 놀라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앉은걸음으로 뒷걸음질쳤다. 그때 강 저쪽 한켠이 환등처럼 밝아지며 하얀 조각배 한척이 떠가는 것이었다. 오빠였다. 오빠가  고즈녘히 떠가고 있었다.
  ‘오빠, 가지마아!’
  그러나 입술은 열리지 않았다. 목이 콱 잠겨서 우우 소리만 나왔다. 나는 몸을 비틀었다. 꼼짝할 수가 없었다. 몹시 괴로웠다. 눈을 떴을 때는  봉창에 붉은 해가 피고 있었다. 목이 뻣뻣했다. 누군가 뒤에서 머리칼을 잡아당기는 듯한  서늘함에  뒷목이 뻣뻣했다.
  아침에 나는 오빠 방을 한번 들여다보고  책보를 허리에 매고 학교로 갔다. 전주에서 유학중인 오빠는 토요일이면 내려와 일요일에 다시 올라가야할 일정을 가끔 무시했다. 월요일 해질녘에나 전주로 떠나는 것이었다. 그런다고 할머니가 다그치면  집 떠나 있기 싫다고, 외롭다고, 하숙집 방에서 혼자 잠들기가  무섭다고,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아이고 내 손주가 이래 여려서 큰일이다.  사내란 말이다.  큰물에 나가서 놀아야돼,  그래야  인물이 되는 게야. 알겠지아? 다 니 앞길을 위해서여.”
할머니는 오빠를 어루었다. 토닥토닥 등을 토닥여주고 질척한 눈자위를 당신 옷고름으로 국꾹 눌러 주곤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는 간밤의 꿈을 까맣게 잊어갔다. 오빠도 잊었었다. 전주행 버스가 왔을까 안 왔을까? 오빤 붕 떠났을까 안 떠날을까?  아직 외딴집의 흙벽에 기대 내 등을  바라보고 있을까? 꼭뒤가 간지러웠지만 나는 냅다 앞만 보고 달려갔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식은 토장국에 밥 한 덩어리를  말아  후다닥 해치우고 노을로 물든 구식이네 집 흙벽에서 구식이와 구슬치기를 했다.
  “ 너는 왜 가시내가 돼 같고 이런 거만 하냐? 이 말똥 같은 가시내야?”
  내 주머니에 구슬이 가득 차오르자 구식이가 오기를 부렸다.
  “ 나도 울 오빠처럼 전주가고 싶어서 그런다 왜? 사내가 되면 큰물에 나가 놀 수 있는 거래. 난 사내가 될 거야?”
  까르르 웃음소리가 났다. 옆에서 핀 따먹기를 하던 계집애들이  배꼽을 잡았다. 주머니에서 구슬 한 개가  뚝 떨어져 또르르 굴렀다. 구식이가 후다닥 주워 멀리 던져 버린다. 나는 눈을 치떠 깊게 쏘아보고는 침을 탁! 뱉고 집으로 왔다. 대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이장아저씨가   뒷짐을 지고 헛기침을 킁킁하며 서성이고 있었다.
  “저어, 이일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 ”
  이장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정지간 앞에서   할머니가  빤히 이장을 쳐다보았다.
  “예 저, 못할 말입니다만, 예 저...... 댁의 손주가 탄 전주행 버스가 말이요...... 고마제강에 추락했다는 구 먼이요. 어서 김제의 동산 병원으로 가봐야 쓰겄어요.”
  쿵! 무엇이 가슴을 치면서 내려앉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주머니 속의 구슬을 집어내어  마당에  흘리었다. 자꾸 흘리었다. 주머니가 다 비워졌을 때  간밤의 꿈자리가 깃을 털며 파닥였다. 봉창에서 피어나는 붉은 해처럼 그렇게 붉게 피어올랐다.
  ‘안돼, 오빠. 그러면 안돼. 가지마!’
  나는 한기 이는  작은 어깨를 가위모양으로 싸안고 훌쩍이기 시작했다. 동산병원 정문 앞에서 할머니는 아예 주저 앉아버렸다. 쉴새 없이 절망적인 탄식이 새어나왔다. 이장아저씨가 부축해오지 않았으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거였다.
  “제 등에 업히세요.”
착잡한 시선으로 할머니를 내려다보던  이장아저씨가 할머니 앞에 등을 대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훠이훠이 손사래를 치더니 허깨비처럼 일어났다. 이장아저씨가 부축하자 할머니는 그의 손에 콱 매달렸다. 아 그런데, 그런데 이장 아저씨가 들어서는 곳은 영안실이었다.   중환자실이기만 했어도 다행일 수도 있었다. 십년감수는 피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미 사태 짐작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안 한 건 아니었지만
“오오! 어머니!”
나는 하필 어머니를 부르고 말았다. 그러나 그건  하느님하고 부르는 비명소리 같은 거다.
‘오빠 안돼, 오빠!’
나는 다시 한번 허깨비처럼 몽롱해져갔다. 걸을 때마다 허방을 짚는 듯한 깊은 수렁이 느껴졌다.
이장 아저씨가 영안실 창구에 대고 오빠 이름을 말하자 직원이 나왔다. 어디선가 차가운 금속성의  소리가 윙윙거리며 날아와 가슴을 긁었다. 영안실 문을 나가 바람벽을 끼고 돌자 예의 그 소리가 가까워졌다. 시퍼렇게 선명해졌다. 직원이 냉동고 서랍을 묵묵히 여는 등 뒤에서 나는 숨을 죽였다. 할머니의 숨소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장아저씨의 헛기침소리만 이명처럼  울려왔다.
“남혁아 ! 남혁아! 어여 일어나! ”
할머니의 울부짖음이 땅 끝으로부터 울려나오는 듯했다.
“세상에 다시없는 내 새끼가 여기 누워있다니...... 어여 일어나라! 어여 일어나!”
오빤 창백하게 누워있었다. 내려 감고 있는 눈의 긴속눈썹이 미치도록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것이 미치도록 슬퍼서 나는  우우하며 내달리고 싶다. 어디로든 이대로 직선의 방향으로  내달리고 싶다. 문득  아랫도리가 따뜻했다.  사타구니를 타고 뜨뜻한 무엇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자  쾌감이 괴어올라왔다.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오는 나른한 쾌감이 추적추적 아랫도리를 적셨다.  봄기운에 대지의 나른한 기운이 괴어 올라와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지랑이로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듯한 환시로 의식이 나른하게 풀어진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잠잔다. 잠꾸러기!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세수한다! 멋쟁이!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 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죽었니? 살았니? 살았다!
나는 부르트도록 꾹 감았던 눈을 뜬다. 반짝, 오빠를 들여다본다.   살았다! 오빠가 벌떡 일어날 것만 같다. 그러나 오빤 미동조차 않는다. 어쩜 그렇게 차렷 자세로 얌전히 누워만 있는지. 누가 오빠 아니랄까봐. 얌전한 우리 오빠 누가 아니랄까봐.

푸른 저고리, 붉은 치마, 남색해자에 검은 전립을 쓰고 방울과 부채를 든 여자가 폴싹폴싹 하늘로 솟구치듯 춤을 추고 있었다. 지노귀가락이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곰국의 수증기처럼 축축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방울 소리가 요란했다. 여자의 날카로운 외침이 비명처럼 들려왔다.
“네끼! 이사람, 물귀신이 되었구먼!”
방울소리가 더 요란해졌다.
“내 자네를 외롭지않게 해줌세. 구중수중에서 나와  극락왕생하도록 해줄라네. 이보소! 남혁도령! 이보소! 남혁도령!”
여자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넋대를 잡고 물가로 들어선다. 여자의 붉은 치마가 반쯤 물속에 잠겼다. 남색 해자의 깃이  물살에 밀려 뒤쪽으로 쓸렸다. 징징징......  당골 아비의 징소리가 무겁게  오렌지 빛  하늘을 울렸다.
에그머니 요것 보게
도령의 넋이 로고
에그에그, 불쌍한 남혁 도령
부모 없이 외롭다가,
저승서도 홀로이니
측은지심 한없어라
애간장 녹아내리는 지노귀가락이 붉은 저녁노을로 피어올랐다. 애기(아기)무당이 넋 대를 따라 초혼 그릇을 던진다. 물속에서 나온 초혼 그릇은 비어있다. 서너 번 되풀이  끝에 초혼 그릇에  한 올의 머리카락이 들어 있었다. 오빠의 넋이란다. 까까머리였던 오빠의 머리가 물속에서 한 매듭 자란 거라고   누군가  소곤댔다. 강가와  다리목엔  구경꾼들이 노을처럼 번져 있었다. 당골 아비의  징소리가 이제 타는 저녁 놀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 저 무녀 말일세, 어디가 낯이 익지 않은가?”
  “나도  어째 고개를 갸웃갸웃하던 참이었다네.”
  “에그머니나! 세상에......  남혁 어미 아녀?  곰곰 뜯어보게나. ”
  마을 아낙들이었다.
  나는 홀연 여자를 건너다보았다. 화사한  화장 때문인지  분분히 지는 복사꽃마냥 아름답다. 마을 공터에 가끔씩 들어오는 약장수굿판의 창극배우들의 얼굴도 저랬다. 김치냄새나 행주 냄새 따윈 묻어있지도 않다.  딴 세상사람 같다. 낯설게만 보인다. 그런데...... 저 여자가  내 어머니라니. 아버지가 죽자 핏덩이인 나와 걸음마중인 오빠를 버리고 사내와 눈이 맞아  달아난 내  어머니라고?  날카로운 비수가 가슴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듯한 통증이 왔다. 가슴은 격하게 아픈데 입가에선 싸늘한 미소가 흘러나온다. 어떻게 오늘의  굿판에  나타나게 되었다지? 어머니가 무녀였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 얘기는 금기 사항이었다. 할머니는 딱히 그것을  드러내놓고 종용하지도 않았지만 할머니의  얼음장 같은, 어머니에 대한 내면의 정서를  오빠와 난 감지할  수가 있었던 거였다. 애초부터 무녀를 며느리로 맞이할 할머니는 아니였을 거였다. 할머닌 그 연세답지 않게 언문도 깨쳤을 뿐더러 세상을 보는 눈이 진보되어있었다.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우리 할머니를 신식 할머니라고 불렀다. 대가 세고 자존심이 강한  어른이라고 말했다. 그런 할머니에게 무녀 며느리는 보나마나 남부끄러운 일이다마다. 결론은  어머닌 처음부터 무녀는 아니었을 가라는 추측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불쑥 여자에게 한 발짝 들어가 있는가?  왜 여자 속에 들어가 서성이는가. 여자는 내게 어떤 의미란 말인가? 이제 어머니를 만난다면 없던 정이 어디서 솟구치기라도 할 건가. 처음부터 없던 어머니여서, 기억 속에 실루엣으로라도 남아있지 않은  어머니여서 그런지 난 어머니를 한 번도 그리워한 적이 없었다. 다만 내 어머니 대한 그리움으로가 아닌 객관적인 의미에서의 어머니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하여 곰곰 생각해 본적이 있기는 하다.   텔레비전에서 6,25때 헤어진 가족 상봉의 장면을 본적이 있다. 다섯 살 때 잃어버린 딸과 어머니와의 40년만의 해후 장면이었다. 부둥켜않고 서로 엉엉 울더라니. 그리움에 사무쳐서. 그때 나는 그 장면에서  어떠한 감정 이입도 되지 않아 곤혹스러웠다. 아나운서도 마구 눈물을 흘리고 할머니도 청승스럽게 울고  오빠도 눈자위가 붉어지는데 나만 그러지 못했다. 맹숭맹숭 텔레비전의 화면을 보면서  할머니와 오빠의 표정을 흘깃거리기만 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따윈 가당치도 않은 차디찬 정서가 내 안에서 자리하고 있는 것이리라. 아니면 인간적애적인 정서가 결핍됐던지.
오빠가 떠난 지 사흘이 지났다. 할머닌 아직 자리에 누워 계신다. 때문에 오늘의 지노귀굿은  고모가 주선한 것이다.
시집가 이웃동네에 살고 있는 고모는  오빠의 비보에 처음엔 까무라쳤다고 한다. 휑한 친정 분위기가 서러울 때마다  오빠를 보면 슬그머니 힘이 솟는다던 고모였다. 할머니 넋도 달아났고 고모의 넋도 달아났고 내 넋도 달아난 거 같다.
  나는 천근의 무게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핏빛놀이 내 가슴으로 내려와 앉는다. 오빠와 바깥마당에서  바라보던 저녁 하늘은 오렌지 빛으로 부드럽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무뚝뚝하지만 유순한 성격의 오빤 늘 말없이 내게 따스하게 굴었었다. 할머니가 감춰뒀다가 오빠에게만 내미는 꿀단지의 꿀을 할머니 몰래 먼저 내게 시식을 시키고야 먹는 오빠였다. 내가 실수하여 그릇이라도 깨는 일을 저지르면 언제나 그가  뒤집어쓰곤 했다.  그러면 유독 오빠에게 자애로운 할머니였던지라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빠의 그 마음 씀씀이가 지난 그 저녁하늘의 오렌지 빛 노을이 되어  내 가슴을 물들이고 있다.
“잘 있어. 내주면 다시 온단다. 어서가.”
오빠의 그 마지막 말이, 외딴집의 흙벽에 기대 서 있던 오빠의 물기어린 눈빛이 쏴쏴 대숲의  바람소리처럼 밀려든다. 청대의  토막을 자르면 진주 빛 속이 열렸다. 그것을 입에 대고 불면 빈 울림이 땅속에서처럼  울려나왔다. 울고 싶었다. 그때 그  정서적 격한  느낌이  아리게 되살아난다. 가슴에 무엇이 뭉클 잡히는 것 같다. 이제 지노귀가락도 들리지 않는다. 굿판은 끝났다.  여자와 당골 아비가 노을 속으로 걸어간다. 애기무당이 뒤따른다.  남색 해자자락과 붉은 치맛자락이 소슬한 저녁바람에 나부낀다. 나는 여자가 사라진 쪽을 향해 깜박 두어 걸음 디밀다가 소스라친다. 계면쩍다. 그걸 상쇄하려는 듯 나는   탁탁 발꼬리 쪽으로  두서너 번  땅차기를 하고는  돌아선다. 울고 싶다. 낮 꿈에서 깨어났을 때처럼 어딘가 몹시 허전하다.  뭔가 사그리 잃어버린 것 같아  빈손을 올려 들여다본다.
고모와  마을 아낙들의 무리를  저만큼 앞에 두고 뒤쳐져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자주 빈손을 들여다보며 쥐었다 폈다 한다. 오줌이 마렵다. 아랫도리가 무질근하다. 나는 오줌보를 부여잡고 허둥댄다. 저만큼 길게 서 있는 볏가리가 눈에 띈다. 나는 그쪽으로 간다. 볏가리 뒤에서 나는 오줌보를 연다.  이제  아래쪽이 편안해 진다. 그러나 돌아서자마자  또 오줌이 마렵다. 나는 다시 엉덩이를 깐다. 오줌은 나오지 않는다. 꾹꾹 힘을 줘도 오줌은  나오지 않는다.  아래쪽이 무질근한 것 같다. 나는 그걸 잊기 위해 쏜살같이 달린다. 고모와 마을 아낙들을 앞지른다. 저만큼 박야 속을 까마귀 떼가  까악 까악 거리며 검은 선을 긋는다. 오빠의 영정이 떠오른다.   오빠 얼굴이, 푸르스름한 기가 도는  창백한 안색이 눈에 밟힌다. 우우,아아, 나는 도리질을 한다. 꿈에서 깨어나고 싶다. 꿈이었으면 싶다. 지난 사흘 동안이 한바탕 꿈이었으면 싶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할머니 방에 먼저 들어가 본다. 흰 띠를 질끈 동여매고 누워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빈 껍질 같다. 애벌레가 되어 날아간 나비의 허물 같다. 천리 만길 푹 꺼진 눈두덩은  어둡고 깊은 빈 동굴을 떠올리게 한다. 동백기름을 발라 가지런히 밀어올려 붙이던 반백의  낭자머리는 그새 기품을 다 잃고 있었다.  추레한 백발로 변해있다. 할머니의 동아줄은  이제 끊어진 것이다.  할머니의 미래라는 것은 이제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가슴이  미어진다. 나는 어금니를 지그시 누른다.  허벅지에 가지런히 손을 올리고  반쯤 꿇어 앉아있던 나는 그대로 일어난다. 창호지 문을  열고 나온다. 문틈에 괴었던 파리한 달빛이 내 뒤를 따른다. 어디에든 쓰러져 눕고 싶다. 나는 마루를 길게 질러서 내 방 쪽으로 간다. 가는 길에 오빠 방 쪽으로 눈길을 주다가   눈을 꾹 감는다. 어금니도 꽉 문다. 나는 숨도 쉬지 않고 그 앞을 지나버린다. 내 방 문고리를 잡으면서야  눈꺼풀을 연다. 방으로 들어와서 나는 곧장 이불 속으로 몸을 웅크려 넣는다. 빨간 깃의 초록 명주이불은 언제나처럼 아늑하다.  나는 보드라운  밤안개 속 같은 명주 이불 속으로 나른하게  빨려 들어간다.
  길이 하나 하얗게 떠 있다.  자갈 깔린 하얀 신작로다. 오빠가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그 뒤에 내가 있다. 나는 오색 풍선을 묶은 무명실을  한 손에 꼭 쥐고 있다. 하늘은 온통 푸른 물이 들어있다. 베보자기에서 짜낸   녹즙 물 같은 싱싱한 기운이  신작로가의 이태리 포플러 이파리에서도 묻어난다. 나는 푸르게 호흡한다. 오빠도 푸르게 호흡한다.
“참  아름다운 세상이지, 정희야? ”
나는 가만 오빠의 등에 한쪽 볼을 대고  오빠가 말한 세상을 바라다본다.
“그러나 영원하지가 않아 이 세상은......”
“알아, 아버지가 안 계신 것도 그것 때문이라는 것을 .”
  나는 조금 신경질 적으로 말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아주 끝나는 건 아니래. 다음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거래. 그때 넌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니?”
  “무녀, 무녀로 태어나고 싶어......  ”
  “하필이면... ”
  “굿판은  벌이면서 무당을 싫어하는  건 어른들이 만든 모순이야. ”
  나는 교활하게도 내 마음 속 모순을 어른들에게 전가하려든다. 징징징 징소리가 들려온다.  무복자락을 너울너울  날리며 지노귀 춤을 추던 여자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른다. 나는  자전거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내린다.   어디서 났는지 검은 전립을  쓰고 푸른 저고리와 붉은 치마를 입고 애기무당이 된 내가  해살스럽게 춤을 춘다. 둥둥둥 징소리가 한층 깊게 울려온다. 그럴 수록 나의 춤사위도 깊어진다.  지노귀가락도 뽑는다. 여자의 지노귀가락을 빼다 닮았다. 징징징  징소리가 저 아래 방죽에서 들려온다.
오빠가 자전거를 달려  방죽 쪽으로 간다. 까마귀 떼가 시커멓게 그 뒤를 좇는다. 나도 그 뒤를 좇는다. 아버지가 홀연 신작로가 방죽 가운데서 솟아오른다. 오빠가 자전거를 타고 그 방죽으로 들어간다. 아버지가 손을 내민다. 오빠의 손이 그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들은 사라진다. 연기처럼. 가지마! 나는 방죽가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러다가  방죽 속을 들여다본다. 방죽 속은 투명하다. 엷은 초록 물빛 위로 새끼무당이 된 내가 떠 있다. 봄날에 분분히 지는 복사꽃마냥 아름답다. 여자의 모습도 그랬다. 봄볕이 하도 고와 시선을 든 곳에 내리는 꽃비인 듯   여자의 모습은 내 속 어디가 간지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무당이 되면 오빠를 만날 수 있을 거야. 여자는 오빠의 머리칼도 찾아 냈는 걸. 나는 오빠를  온전히 찾아내고 말테야.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방죽 속으로 걸어간다. 나는  물속  따윈 겁내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애기무당이므로.
방죽의 수면으로는  물풀들이 너붓너붓 떠 있다. 다 익은 마름 열매 가시가 가끔씩 콕콕 내 허벅지를 찌른다.  물풀 밑에서 둥지를 틀던 붕어와 송사리 떼가 내 기습에 놀라 이리저리 흩어진다. 짧은 순간 연민이 스쳤지만 나는  그대로 키들키들 웃으면서 하던 동작을 계속한다. 그러다가 문득 커다란 은빛 물고기를 발견한다. 잉어다.  나는 가만 걸음을 멈춘다. 조용히 그것의 움직임을 들여다본다. 오빠의 말을 상기한다. 물밑에서 백일을 견딘 잉어는 용으로 승천한단다. 100일이 되는 날 은빛비닐을 허물처럼 벗어내고 연기처럼 흰 자국을 남기며 하늘로 승천하는 거야. 용이 승천하는 날은 꼭 비가 오기 마련이래 . 그런 날, 비가 오는 건,  승천하는 용을  사람의 눈으로부터 가리기 위함이래. 사람의 눈에 띄면 승천하던 용이 그만 떨어져 죽고 만다는 거야. 나는 가만 물밑 속으로 들어간다. 가라앉아 있던 모래무지들이  달아난다. 황갈색 얼룩무늬로 출렁이다가 어느 순간 은빛을 발하며 사라지는 그것들을 느끼며  물밑에 쪼그리고 앉는다.  
  오빤 비 오는 날이면 연못가이고 방죽가이고 개울가이고를 가리지 않고 서성였다.  오빤 거기에서 무엇을 기다렸던 것일까? 무엇을 갈망했던 것일까?  또한 나는 그런 오빠 옆에 붙어서  서성댔다. 은빛 비늘을 털어내고 용으로 승천하는 잉어를 보고자 했던 것일까? 그렇담 오빠에게 잉어는 무엇이었을까? 승천하는 잉어는 또 무엇이었을까? 둥둥둥둥 징이 울린다. 고마제 방죽에서   건져 올린 오빠 머리카락이 떠오른다.  나는 반짝 한줄기 빛살을 본다. 어쩜  오빤,  환생할 수 있을 지도 몰라. 물밑에서 100일을 견딘 잉어는 용으로 승천한다, 라던 오빠의 말이 이명처럼 귓전을 울린다. 징소리처럼 낮고 둔하게 내 주위를 떠돈다. 춤을 추고 싶다. 신들린 듯 춤사위를  펼치고 싶다. 희망인 듯도 싶고 절망인 듯도 싶은 어쩌지 못하는  감정이 나를 쥐고 흔든다.  웃고도 싶고 울고도 싶은 어쩌지 못하는 감정이 나를 지배한다.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속에서 명료해지는 건,  오빨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거다. 나는  오빠를 만날 것이다. 새끼무당이 되어 이 세상 모든 것에 주술을 걸어놓고 그 속에서만 살 것이다. 내 세계를 구축할 것이다. 거기엔 절대로 죽지 않는 오빠가 있고 엄하지만 다정다감한 건강한 할머니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대로 행복할 것이고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사내로 태어나고 싶다. 오빠와 함께 전주에 가고 싶어서 그럴 것이다. 나는 구슬치기도 잘하고 꼴도 구식이보다 두 배는 더 잘 베곤 한다. 팔뚝에 가끔씩 푸른 힘줄도 솟을 때가 있다. 내가 사내가 되면 우리 집에 흐르는 애잔한 공기도 사라질 것이다. 아침마다 힘찬 행진곡  같은 상쾌한 공기가 흐를  것이다. 오빠와 함께 외딴집의 흙벽에 기대 전주행 버스를 기다릴 것이다. 나는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띤다. 패자의 자조 같은.
  얼씨구씨구 좋다!  절씨구씨구 좋다!
  물가로 나온 나는  각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세상은 적당히 내박친 듯 즐기면서 사는 게 상책인 듯도 싶다.  절망도 불행도  극에 달하면 도리어 거기에서 쾌감을 얻을 수도 있듯이. 나는 내 안에서 내게 주어진  산더미 같은 과제들을 풀어 나갈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안의 그곳으로 다다를 것이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 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반찬. 죽었니? 살았니? 살았다!  봐, 봐.  오빠가 일어났어. 나는 건강한  오빠를 느낀다. 검정교복을 입고 외딴집에서 전주행 버스를 기다리는 오빠를 느낀다. 오빠! 언제 또 와? 다음주  토요일. 나도 전주에 가고 싶어,  나도 사내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이 말을 하고 싶다. 꿀떡같이 하고 싶다. 그러나 내 혀는 굳어있다. 꼼짝 하지 않는다. 제풀에 내 속 어디가 못 견디도록 간지럽다. 누가 바늘로라도 콕콕 찔러주었으면. 나는 그만 오줌을 눕고 만다. 절퍼덕 눕고 만다. 짜릿한 쾌감이 느껴진다. 오빠가 돌연 저만큼 물러간다. 꽃상여를 타고  굽이치며 흘러간다. 풍경처럼. 나는 한걸음 물러서서 남의 일인 듯 보고 서 있다.  어디선가 징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점점 커진다. 음폭이 넓은  둔중한 저음이  마을 건너 산 너머 절간에서 들려오던 저음의  종소리처럼 내 넋을 깨운다. 나는 홀연히 그쪽으로 향한다. 그곳엔 마셔도 마셔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을  것이다.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생명의 근원이 숨쉬고 있을 것이다.
징소리의 근원지는 신당이었다. 울긋불긋한 색색의 휘장이 만장처럼 쳐진 그곳은 신당이었다. 당나귀 귀 같은 커다란 귀를 세운 금빛 보살상이 칼을 입에 물고 흐흐흐 서 있는 그곳은 신당이었다. 내가 들어서자 금빛 보살상이 움직인다. 보살상은 껄껄껄  찰 지게 웃으며 나를 맞이한다.
“ 타고난 운명은 바꾸지 못하는 기라.”
“ 보세요. 난 당신의 딸인가요?”
나는 자세를 갸웃 수그리고 무복 자락을 사뿐히 잡는다.
“ 기특도 해라. 신내림 굿만 하면  넌 영험해질 거다.”
“ 영험해지면  행복을 얻을 수 있나요?”
“ 팔자는 바꾸지 못하는 기라, 다만 어떤  경지에 이르면 환시를  보는 게야. 그게 바로 미래라는 거거든. 영험이라는 건 바로 그런 거야. 미리 알고 피해가는 것,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언제나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아. 그렇게 되면  영험이라는  것도 결국 무의미하긴 마찬가지야. 하지만 신딸은 그것을 극복해야할 의무가 있어.  극복의 의지를 태워야 되는 기라. 어렵겠지만  그 경지에 이르면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느니. 영험이라는 것도 결국은 자기 최면인 게야. ”
나는 내 꿈이 무참히 깨지는 소리를 듣는다. 팔의 힘이 쑤욱 빠진다. 무릎이 맥없이 꺽인다. 나는 건들건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 인다. 나는 나를 바라본다. 몸에 걸친  아름다운 무복이 덧없어 보인다. 갑자기 무력해진다. 걷는 것, 입는 것, 생각하는 것 등등. 이 모두가 물 건너 가버린  남의 이야기 같다. 나는 덜퍼덕 주저앉아 머리를 무릎 사이에 처박고 그 위에 깍지를 낀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깜박 잠이 들었던가? 어디선가  징이 울린다. 나는 고개를 든다. 징소리가 신당의 천장에서 벽에서 바닥에서 온통 울리고 있다. 나는 홀연히 일어나 어깻짓을 한다. 율동을 한다. 녹의 적삼 소매 품을 늘어뜨리고 남색해자 자락을 펄럭이며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를 타고 춤사위에 몰입해간다.
“잘있어 내 주면 다시 온단다.”
나는 그 와중에서도 다음주 토요일을 머릿속으로 헤아려본다.
  
                                        메일주소: ko7721@hanmail.net
                                        부천시 원미구 원미동 풍림아파트 106동                                              1305호 011-778-7721 고선례 (리토피아 신인상                                       소설부분 응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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