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리토피아 신인상

신인상
수상자
투고작

이민선-희곡1(2003.8)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07회 작성일 04-11-16 08:38

본문

제목: 꽃

나오는 이
자스민: 28세 여자.
강사장: 50대 남자
Mr.Mr.유: 20대 초반 남자
하순님(아까시): 70대 여자. 강사장의 어머니. 치매

무대 중앙엔 화단이 있다. 갖은 꽃들이 피어있다.
자스민 무대에 있고 꽃을 돌보고 있다.(물을 주며 하나씩 살피고 있다)

자스민  (노래부른다-클라멘타인)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강사장  자스민 거기 있으면 어떡해.
자스민  (들은 척하지 않는다.)
강사장  어서 가서 일하지 못해. 한창 바쁠 때 뭐 하는 짓이야!
자스민  (계속 노래부른다.)
강사장  이봐. 내 말 안 들려? 어서 가지 않고 뭐해!
자스민  넓고 넓은 바닷가에?
강사장  바닷가 같은 소리하고 있네 씨발.
자스민  그럼 어디? 오막살이 집, 우리 집?
강사장  웬 잡소리야! 자꾸 그러면 확 처분해 버리는 수가 있어.
자스민  흥, 맘대로
강사장  이게 완전 미쳤나보군. 어디 해 보겠다는 거야?(때리려고 한다)
자스민  흥, 맘대로
강사장  이 년이…. 확 꽃밭을 엎어버리던가 해야지. 젠장.
자스민  뭐? 그러기만 해봐라.
강사장  (꽃을 꺾는다)
자스민  안돼, 이거나 먹어라 넌 많이 먹어야해(물을 붓는다)
강사장  뭐야! 이 년이 미쳤나 어휴.

Mr.유 훔쳐보고 있다가 서둘러 등장

Mr.유   사장님. 사람이 없어 죽겠는데 때리면 어쩝니까. 몸댕이 멍든 년 누가 좋아한다고.
강사장  하긴. 너 운 좋은 줄 알아. 어서 데리고 가.
Mr.유   네, 마침 찾는 사람도 있고 알겠습니다.

강사장 나가고,
Mr.유 눈치보더니 자스민 옆에 앉는다.

Mr.유   누나 가뜩이나 사장 기분 드러운 데 왜 그래요. 그러다 진짜 넘기면 어쩌려고.
자스민  그럼 그러라지.
Mr.유   누나 나이면 외딴 섬으로 갈지도 몰라요.
자스민  섬? 바다, 바다에 가고 싶어. 그래, 나 바다에 갈래.
Mr.유   죽고 싶어 그래요? 잡히면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 어딜 간다는 거예요?
자스민  내가 죽으면 바다에 뿌려 줘.
Mr.유   끔찍한 소리하지 말고 오늘은 좀 쉬어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자스민  내 고향이 어딘지 아니?
Mr.유   섬이라면 서요.
자스민  그래. 아주 작은 섬이야. 지도에 보일까 말까한 작은 섬.
Mr.유   그렇게 작은 섬에도 사람이 사나봐요.
자스민  그럼. 살고 말고. 가보고 싶다.
Mr.유   언제 사장님한테 말해서 저하고 같이 갔다와요. 잘 말하면 보내줄지도 모르잖아요.
자스민  싫어.
Mr.유   하긴, 저도 이런 꼴로 고향에 내려가는 건 좀 그래요. 돈을 많이 번것도 아니고.
자스민  아니, 난 이미 죽었기 때문에 갈 수 없을 뿐이야.
Mr.유   네?
자스민  열 일곱 살 때 이미 죽은 거야. 바다에서 따낸 해초처럼.
Mr.유   미역, 다시마 그런 거 처럼요?
자스민  해촌 육지에서 살지 못해. 바다가 없는 육지에선 나도 살 수가 없어.
Mr.유   하지만 누난 이렇게 살아있잖아요.
자스민  살아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야. 여기 피어있는 수많은 꽃 좀 봐.
        이 꽃들은 모두 살아있어. 내년에도 그 다음 년에도 또 이렇게 피겠지.
        하지만 나는 죽은 거야. 아니, 죽은 게 아니면 죽어가고 있는 거야.
Mr.유   많이 지쳐 보여요. 그러고 보니 얼굴빛도 안 좋고. 어디 아픈 건 아니죠?
자스민  (고개 끄덕인다)
Mr.유   그럼 쉬세요. 전 이만 일하러 가야겠어요
            
자스민  클라멘타인 노래부르고 Mr.유 들어간다.
하순님 등장

하순님  안녕 아까시. 노래 소리 듣기 좋은데. 무슨 노래야?
자스민  훗, 순님이 그 동안 잘 있었지?
하순님  아니
자스민  왜?
하순님  누룽지 훔쳐먹다 걸려서 싸리비로 먼지 나게 맞았어. 배가 고파 죽겠는데 그럼 어떡           해. 뱃속에 애는 자꾸 달라구 달라구 하는 걸.
자스민  (배 만지며)아직 산달이 멀었나봐.
하순님  아냐, 3개월만 있으면 낳을걸. 이거 봐 막 발로 차지. 그치?
자스민  어머, 아들일까 딸일까?
하순님  아들이야. 아들이어야 해.
자스민  왜, 딸은 싫어?
하순님  아까시, 너는 쪽발이 놈들 아랫도리나 붙들고 있는 게 좋아? 너같이 될까봐 무서워.
자스민  나두 무서워.
하순님  화났어? 화난 거야? 내 동무 화 안 났지?
자스민  그래. 화 안 났어. 우리 꽃구경이나 하자.
하순님  오뉴월엔 아까시가 최곤데. 그 향이 얼마나 짙은지 몰라.
        아까시, 근데 왜 네 이름은 아까시야?
자스민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하순님  바보. 어떤 쪽빠리가 너한테 아까시 내음이 난다며 붙여줬잖아.
자스민  그랬나.
하순님  근데, 너 입덧은 괜찮아? 오늘은 뭐 좀 먹었니? 조심해 임신한 년은 총살시킨다더라.
자스민  임신, 내가 임신을 했어?
하순님  바보, 어떤 놈 씬지 모른다며 울먹일 때는 언제고. 암튼 조심해.

강사장 등장

강사장  어머니, 거기서 뭐하고 있어요! 나 참. 그리고 너 진짜 죽고 싶냐!
하순님  뭐야. 이 쪽빠리 놈, 이 잡아죽일 놈!
강사장  제발 이러지 좀 말아요. 내가 무슨 쪽빠리라는 거야. 이렇게 우리 나라 말 잘하는             쪽빠리 봤어요?
하순님  뭐! 이놈. 그럼 니 놈이 쪽빠리 앞잡이 놈이구나. 이 쪽빠리 밑닦개나 할 놈아.
강사장  (자스민 손목잡고)야, 어서 들어가기나 해. 늙은이 노망 소리 지겨워.
하순님  (때리며)이 놈! 내 동무 놓아라. 어딜 끌고 가려는 게야. 동무야, 그 놈 따라가지 말아          라. 등 따시고 배부르게 해준다는 거 다 거짓부렁이다. 가지 말아라 동무야. 그 놈 따          라가면 니 신세 조지고 엄니 가슴 피멍든다. 동무야 가지 말아라
자스민  (하순님 안는다)그래그래 나 안 간다.
강사장  너까지 미쳤냐? 아휴 노친네 힘은 장사야. 오늘은 그럼 도장 못 찍는 줄 알아!
자스민  (노려본다)

강사장 들어가고.

하순님  하두 힘을 뺐더니 배가 고프네 그래. 어디 뭣 좀 먹을 거 없어?
자스민  아, 초코릿이 있는데 이거라도
하순님  쪼꼬렛트. 기브 미 쪼꼬렛트 히히
자스민  어, 영어가 기억나요? 할머니.
하순님  그럼, 내가 미군부대 앞에서 밥 벌어먹고 산지가 몇 년인데.
자스민  저 혹시 누군지 알겠어요?
하순님  너야 내 알지. 요만할 때 여기 들어왔지 않니. 벌써 그때가 언제야. 네 이름은….
자스민  네, 제 이름은요
하순님  향기 좋은 이름인걸. 내 모를 리 없지. 자…
자스민  네, 자…    
하순님  자연적인 냄새가 나는 아까시.
자스민  할머니!
하순님  깜짝이야, 애 떨어질 뻔했잖아.
자스민  죄송해요.
하순님  근데, 동무야 할매가 어디 있다는 거야? 네 소식 듣던 날, 집안이 온통 통곡바다였단          다. 할매도 앓아 눕고 그 뒤로 영. 얼마나 날 귀여워 해줬는데….
자스민  그랬군요. 전 할머니 얼굴도 몰라요. 저도 할머니가 있었겠죠? 갑자기 그리워 지내요.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가 그립다니. 참.
하순님  너에겐 내가 있잖아.
자스민  네.
하순님  또, 또 그런다. ‘네’가 뭐야? 동무끼리. 응, 이라고 말해야지.
자스민  응.
하순님  그럼그럼. 아이, 나 배고프다. 순님이 배고파서 죽겠어. 망할 놈의 세상 맨날 죽어라죽          어라 하네
자스민  배가 그렇게 고파? 조금 전에 점심 먹은 거 같은데. 초콜릿이라도 더 줄까?
                                                                    (초콜릿 내밀며)
하순님  쉿, 조용히. 너 이런 거 팔다 걸리면 순사가 잡아간다.
자스민  괜찮아. 파는 거 아니니까 안 잡아 갈 거야.
하순님  공짜로 준다고? 나한테? 왜?
자스민  그냥 주고 싶어서 주는 거지.
하순님  세상엔 공짠 없어. 나 안 먹을 거야.
자스민  그럼 나 혼자 먹어야겠다.
하순님  얘이, 나쁜 년. 이 나쁜 년. 너 혼자 살겠다고!(초콜릿을 뺏아 발로 밟는다)
자스민  할머니 진정하세요. 그래, 내가 나쁜 년이예요.
하순님  아니야, 이 놈의 세상이 나빠. 넌 나쁜 년 아니야. 이 놈의 세상, 이 놈의 세상이 더러          워라.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그럴려고 그런 게 아니야. 믿지?
자스민  네. 믿어요.
하순님  얘이, 거짓말. 얼굴은 그게 아닌 걸. 날 욕하고 잡아죽이고 싶지? 내가 싫지?
자스민  왜 싫겠어요. 아니예요.
하순님  아까시? 갑자기 왜 존대어를 쓰고 그래 근데? 아, 너 삐졌구나 아까시라고 해서.
        니 이름 이젠 아까시 아니랬지. 아! 넌 이제 미스하라구? 미스라….
        히히히히히(웃음)
자스민  뭐가 그리 웃긴데?
하순님  웃기잖아. 넌 안 웃기니? 미스란 말은 양키 말로 아가씨란 말이야.
        혼인 안 한 아가씨 말야. 근데 넌 히히히히(웃음)
자스민  내가 뭐?
하순님  애 딸린 처녀라…. 웃기지 않아? 혼인두 않고 어찌 애가 있어?
        걔네들 나라에선 환갑쟁이 늙은 년도 남편없는 과부년도 모두 미스라고
        부른다고는 하지만. 히히히히(웃음)
자스민  할머니도 나처럼 아직 미스네(웃음)
하순님  할머니? 내가 너보다 그렇게 늙어 보여? 치.
        나도 크림 바르고 분칠하면 너 못지 않다고. 지금 촌년이라고 놀리는 거지?
자스민  아냐. 순님인 지금도 너무 고와. 꼭 저기 핀 분꽃 같아.
하순님  분꽃이라. 너 그거 기억나니? 우리 어릴 적 말이야 분꽃씨 빻아서
        얼굴에 바르곤 했잖아.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깜둥이년 낯짝에 밀가루
        칠한 꼴 같았겠다 그치?
자스민  그래.
하순님  너 그거 알아? 예전에 깜둥이가 흰둥이들 종이었단다.
        그런 깜둥이 놈들도 여기선 누런 년들 끼고 별 짓 다하더라. 그러고 보면 말야
        세상에서 제일 하빠리가 우리 같은 누런 것들 인 거 같아.
        누런 것들 중에서도 특히 계집년들.
자스민  뭐 나름이겠지.
하순님  이 동네 사는 계집들이 다 그렇지 뭐. 나만 빼고 말야. 히히히히
자스민  너만 빼고?
하순님  그럼. 난 아직 남정네가 뭔지도 몰라. 그러니까 촌년이지. 촌년이 좋아.
자스민  나는 뭐지.
하순님  너야 양키 상대하는 미스하지 뭐긴 뭐야. 양키 놈들 비위나 살살살
자스민  이제 그만 해요.
하순님  화났어? 미안해. 너도 어쩔 수 없었던 거 다 알아.
        그래도 자식 있다고 몸댕이 막 굴리지 않은 것도 알고.
        지 에미 싫다고 그 놈의 새끼 엄청 말 안 들었지. 창피하다고.
        정작 창피한 짓 한 것도 없는데. 그 소리 들으면 괜히 눈물이 나곤 했어.
        (운다)

자스민 함께 흐느껴 울고 Mr.유 허겁지겁 등장.

Mr.유   누나, 아직도 여기서 뭐해요? 무슨 일 있어요?
        그만 울어요. 사장 오면 또 한 소리 들을라.

강사장  등장

강사장  뭐야, 또 지랄 떨고 자빠졌네. 가뜩이나 장사도 안돼 죽겠구만.
        재수 없게 짜고 그래!
        원래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지집년들이 울고 짜면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알아!
자스민  뭐? 그게 어머니 앞에서 할 소리예요!
강사장  쳇, 어머니 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 늙은이가 너 에미지 내 에미냐!
        남들한테 물어봐 지금 이 꼴을. 안 그래 Mr.유?
Mr.유   하지만 할머니가 사장님 어머닌 건 맞잖아요.
강사장  이 자식, 남이 보기엔 아니다 그거지.
Mr.유   하긴 그래요. 이렇게 싸가지 없는 자식이 어딨겠어요.
강사장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싸가지? 이 자식이 죽고 싶나.
Mr.유   아니, 그게….
자스민  틀린 말 한 건 없잖아요.
        하다 못해 길거리에 쓰러져있는 노인도 한번쯤 다시 돌아봐야 하고
        걱정되는 게 사람 아닌가요?
강사장  남까지 걱정할 시간 있음 일이나 해!
Mr.유   어휴, 저 악질 인간도 아냐
강사장  뭐라고 자꾸 궁시렁대.
Mr.유   아, 네 아주 좋은 말이라고요. 하하하
하순님  히히히히. 덕이 너 나 마중 나왔구나!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니? 부끄럽게.
Mr.유   할머니 왜 이러세요. 저 Mr.유예요.
하순님  다 알아. 나 좋아한다는 거. 우리….(Mr.유에게 붙는다)
Mr.유   하‥할머니
강사장  노친네 망령 좀 그만 떨고 들어가.(하순님 붙잡고)
하순님  놔, 놔란 말야. 넌 누군데 말 데려가려는 거야!
강사장  누구긴 누구야. 노친네 아들이지.
하순님  어머, 시집도 안간 처녀보고 뭐라는 거야?
        이 소도둑 같은 놈아! 손치지 못해! 저리가!

강사장, 하순님 끌고 간다.
소리치는 하순님.
Mr.유   허유, 하마터면 할머니하고 사귄다고 소문날 뻔했네.
자스민  왜? 어때서 (웃음)
Mr.유   누난.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무리 노망난 할머니라도 너무 한 거 아닌가?
        덕이라고? 이름도 참 촌티나네.
자스민  할머니 옛날 애인 이었나보다.
Mr.유   그 시절에도 연애라는 게 있었나. 히
자스민  그럼 그때라고 연애도 안하고 그랬겠니.
Mr.유   하긴. 근데 사장 아무리 봐도 쳇. 이 클럽도 할머니가 모은 돈으로 낸 거라면서.
자스민  그러니.
Mr.유   왜, 전에 할머니가 양키 물건 팔던 거 기억나?
        나이 먹어서도 그 짓 한다고 사장이 말 많았지. 참 이상해 그렇게 돈 좋아하는 사장도          자기 엄마가 그런 일 하는 건 싫은가봐.
        뭐 양공주 원조 격이었는데 후에 돈벌어서 대모가 됐다는 말도 있고.
자스민  그런 소린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Mr.유   그냥 나도 들은 소리야. 그런데 저 할머니가 돈을 좀 벌긴 벌었나봐.
자스민  돈만 많이 벌면 뭘 하겠니.
Mr.유   그래도 돈 많으면 좋지. 없어서 탈이지 쳇.
자스민  할머니가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
Mr.유   맞아. 젊어서 힘들게 번 돈 다 자식이 빼앗아가고
자스민  그래서가 아니라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안타깝고 그래
Mr.유   누난 너무 정이 많아서 탈이야 그러니까 사기도 당하고 그렇지.
        요즘 세상에 자기 살기도 바쁜데.
자스민  사장하고 같은 소릴 하는구나.
Mr.유   아휴, 나도 모르겠다. 그냥 누나가 진짜 친누나 같아서 얘기하는 거야.
        누나같이 세상 살다가는 남는 것도 하나 없다고. 맨날 남들한테 이용만 당하고.
자스민  훗
Mr.유   전 이만 들어 가보겠습니다. 누님께선 좀더 있다 들어오실 건가요?
자스민  어, 먼저 들어가.
Mr.유   적당히 바람 쐬고 들어와. 진짜 청승맞아 보일라.
자스민  그래.

Mr.유 들어가고. 혼자 남겨진 자스민. 꽃에 물을 주며
꽃들을 바라보고 있다.

자스민  장미, 나리, 봉숭아, 분꽃, 나팔꽃….
자스민  (나팔꽃 보며)너는 왜 다른 나무를 타고 자라야만 하니?
        그러면 숨이 막히잖아. 너 때문에 그 나무는…나쁜 꽃.
        아냐, 너가 나쁜 건 아니지. 넌 그렇게 자라났을 뿐인데
자스민  (나팔꽃 하나를 집는다)
        내 안에도 너가 들어있잖아(배를 만지며 웃는다)
        생긴 게 비슷할까? 그럴까? 하하하하

무대 어두워지고.
자스민 퇴장. 아무도 없는 무대. 하순님 웃으며 등장
자스민의 웃음이 하순님의 울음으로 대체된다.

하순님  흑흑흑흑
        근데 여기가 어디지? 이봐요! 여기 아무도 없어요? 이봐요!

Mr.유 등장

Mr.유   할머니 무슨 일이세요. 여긴 또 왜 오셨어요?
하순님  저기, 여기가 어디지? 아저씬 누구죠?
Mr.유   할머니, 저 Mr.유잖아요. 어서 들어가세요 사장님 아시면 또 야단맞으세요.
하순님  누가 날 혼낸다고? 맞기 싫어. 악, 잘못했어요 때리지 마세요.
        시키는 일 뭐든지 다 할테니 제발 때리지 마세요.
Mr.유   누가 할머닐 때려요. 할머니 정신차리세요. 어서요.
하순님  가까이 오지 마세요. 무서워요. 무서워. 제발
Mr.유   내가 설마 무슨 짓을 할거란 생각은 마세요. 어휴(더 가까이 간다)
하순님  악! 싫어

자스민 등장

자스민  무슨 일이예요?
Mr.유   아니, 그냥 할머니께서.
자스민  괜찮아요 제가 왔잖아요. 이젠 염려 말아요.
하순님  무서워. 날 버리지 말아. 늘 내 옆에 있어야해.
자스민  그럼.
Mr.유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어휴
자스민  조용히 해. 근데, 무슨 일 있었던 거야?
Mr.유   누나,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예요? 설마 내가 저 할머니를….
        진짜 헉, 말이 다 안나온다.
자스민  후훗, 알아. 나야 널 믿지.
Mr.유   그게 더 기분 나빠요. 나참.
자스민  미안해. 후훗, 찬물 좀 갖다 줄래.
Mr.유   알았어요.  
자스민  할머니 괜찮으세요?
하순님  아까시 나 고향에 가고싶어.
자스민  고향? 고향이 어딘데.
하순님  내 고향은 말야. 봄이면 보리가 넘실넘실 풋내가 가득하고 여름이면 온갖 꽃향기 소올          솔 가득하고 가을이면 울긋불긋한 낙엽 내음 가득하고 겨울이면 하얀 눈 속에 깊어           가는 밤 공기가 가득한.
자스민  정말 아름다운 곳이네.
하순님  어, 향내만 맡고 있어도 한 나절이 훌쩍 가버릴 만큼.
자스민  그리워요.
하순님  너도 고향이 그립겠지? 돌아가고 싶니?
자스민  이제 돌아가고 싶어. 차라리 고향에서 파도만 바라보고 살지라도 말야.
하순님  그때가 좋았었지.
자스민  그래, 그때가 좋았었지.
하순님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그 시절만큼 행복했던 때도 없었던 거 같아.
        근데, 왜 그땐 그걸 몰랐을까?
자스민  그걸 알았다면 여기 이러고 있지 않겠지.
하순님  히히히히 고향에 갈거야. (일어서서 꽃밭으로 들어간다)
자스민  거기 왜 들어가요?
하순님  꽃향기가 가득한 게 내 고향 맞아. 여긴 내 고향이야 고향.
자스민  아니에요 아니야. 여긴 내 꽃밭이라고요 나와요. 꽃이 다 죽잖아요.
하순님  뭐? 이렇게 꽃향기가 가득한데 내 고향이 아니라고! 거짓말.
자스민  아니라고, 아니야. Mr.유 할머니 좀 모시고 가줘!
Mr.유   어, 알았어요. 나가요 할머니
하순님  덕이 왔네. 덕이 손잡고 꽃동산에 가요. 어서 들어와
Mr.유   알았어요.
자스민  너까지 들어가면 어떡하니! 할머니 데리고 나가라니까. 어서!
Mr.유   아, 네. 할머니 어서 나와요. 우리 집에 들어가요 예?
하순님  집? 그래그래 덕이 손잡고 집에 들어가요.

Mr.유, 하순님과 함께 들어간다.
Mr.유 계속 자스민 눈치 살피고 하순님 행복하다는 듯 Mr.유 품에 살포시 안겼다.
자스민 꽃들을 어루만진다.

자스민  이를 어째.
        내 꽃들. 내 꽃들이 죽어간다. 내 꽃들이.
조명 어두워졌다 점점 밝아진다.
아직까지 화단을 보고 있는 자스민.
강사장과 Mr.유 등장해 있다.

Mr.유   저기, 사장님 이상하지 않아요?
강사장  난, 전부터 쟤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Mr.유   아닌데. 아무튼 요새 들어 일도 안하고 계속 화단에만 있어요.
강사장  어휴, 저런 걸 아직까지 데리고 있다니 미쳤지 미쳤어.  
Mr.유   화단에 뭘 숨겨놨나?
강사장  개뿔 숨겨놓긴 노망 든 노친네하고 놀다보니 저것도 미친게야.
Mr.유   설마요.
강사장  그럼 사람이 미치지 않고선 저럴 수 있냐?
        너 같음 몇 날 며칠을 저러고 있을 수 있어?
Mr.유   아뇨. 하지만 어휴.
강사장  이젠 일도 못시킬 거 같고 어쩜 좋냐. 처치 곤란이네 진짜.
Mr.유   누나 정신 좀 차려봐요.
자스민  어, 꽃이 죽어가 내 꽃이 말야.
        장미, 나리, 봉숭아, 분꽃, 나팔꽃….
강사장  어차피 겨울이면 다 죽을 꽃들인데 뭐가 저리 좋은게야. 미친 년
Mr.유   그러게요. 얼마 뒤면 꽃두 다 질텐데.
강사장  그나저나 노망 든 노친네는 집에 얌전히 있는지 모르겠네

강사장 퇴장.
Mr.유도 혀를 차며 퇴장.
하순님 조심스레 등장 자스민을 놀래켜준다.

하순님  야! 히히히 놀랐지?
자스민  할머니군요
하순님  뭐야. 재미없게 놀래지두 않고. 아, 내 고향 꽃내음이다(화단으로 들어가려한다)
자스민  안돼요. 할머니, 여긴 할머니 고향이 아니라 내 꽃밭이라고요.
        이것 봐요 할머니 때문에 꽃들이 죽었잖아요.
        꺾이고 짓밟히고….
하순님  꺾이고 짓밟혀. 그래 아까시는 그랬어. 꽃 같은 아까시는.
        아까시, 너 많이 아프니?
자스민  이제 그만해요. 난 아까시가 아니야. 아까시는 할머니라고요. 알았어요!
하순님  무슨 소리야. 난, 난….
자스민  잘 봐요. 할머니가 바로 아까시고 미스하고 사장 어머니고 하순님이라고요.
        알겠어요!
하순님  그럼 넌?
자스민  난. 나는, 그래요 지금의 난 자스민이라고요. 아시겠어요?
하순님  내 동무는 어디 갔지? 내 동무 말야. 여기 있었는데 이상하다. 동무야!
자스민  나예요. 과거엔 그랬죠. 하지만 이젠 싫어요. 안 할래. 더 이상은.
하순님  왜? 내가 싫어졌니? 너도 날 버릴거니?
자스민  그래요. 싫어졌어요. 아니 전부터 싫었지만 말을 못했을 뿐이야.
하순님  갑자기 나한테 왜 그러는거야 무섭잖아. 무서워
자스민  꽃을 보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저 같은 존재일거라는.
        어쩜 할머니처럼 될까봐 두려웠는지도 모르죠.
        아니, 난 지금 할머니처럼 되가는 거예요. 더 못할 수도 있죠.
        그보다 더 못한 존재. 이렇게 쉽게 꺾여버려서 더 이상 일어설 수 없는.
하순님  어?
자스민  작은 섬 마을에 한 소녀가 살았어요.
        그 소녀는 어느 날 자기가 살고 있는 섬이 매우 작다는 걸 알았어요.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알게 된 거죠.
        하지만 하지만….
하순님  개구리는 바닷물에 들어가면 죽는다. 죽어.
자스민  나도 지금 죽어 가는 거 같아.
하순님  죽어? 죽이지마 난 죽기 싫어. 안돼 악착같이 살 거야. 죽기 싫어.
자스민  왜죠? 왜 살아야하지?
하순님  무서워 혼자 버려진다는 게 무서워.
        몸댕이가 차이고 굴려지고 또 모르지 승냥이의 밥이 될지도.
        누구하나 거둬줄 사람도 없는데 차라리 사는 게 낫지. 암. 사는 게 나아
자스민  그런 건 두려울 게 없어. 어차피 죽으면 아무 것도 모를텐데.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어.
하순님  죽은 사람은 무서워 그래 저 꽃들처럼 축 처져서 더 이상 일어나질 못해.
        (꽃을 들고)향내도 없고 힘도 없고 썩기만 하지
        시체가 하나 둘 쌓여 가고 흙을 뿌리고 또 쌓이고 또 뿌리고 그 위에서
        꽃이 자란다. 꽃이.
자스민  꽃?
하순님  그래. 꽃이 자란다. 시체를 먹고 꽃이 자라고 있어. 내 고향 꽃동산엔.
자스민  나도 죽으면 여기에 묻어줘요.
        꽃이 되어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하순님  송장 냄새 (꽃을 뭉개며)에이, 송장 냄새가 난다.

하순님 손을 털며 들어가고.
자스민 노래를 흥얼거리며 꽃을 돌본다.
강사장 등장

강사장  아직까지 이러고 있는 거야? 진짜 미친년이 되기라도 한거야?
        왜 말이 없어? 사람이 물으면 대꾸를 해야지
자스민  꽃향기를 맡아봐요 할머닌 여기서 송장 냄새가 난대요.
        이렇게 아름답고 향기로운데.
강사장  송장냄새? 닭똥거름 냄새겠지.
자스민  그럴까요?
강사장  젠장, 먹지도 못하는 꽃을 여자들은 왜 그리 좋아하는 건지.
자스민  남자들은 먹을 수 있는걸 좋아하나요? 보는 것보다. 먹을 수 있는.
강사장  당연한 거 아냐? 이런 건 아무 쓰잘대기 없는 거라고.
자스민  자스민, 아까시 그러고 보니 다 먹을 수 있는 꽃이네요.
        난 어떤 맛이었죠? 궁금해요.
강사장  갑자기 왜 이래?
자스민  사람들마다 제각각 입맛은 다를텐데. 그럼 그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이 나를 다르게 표현할까요? 나는 하난데 새콤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하고
        맵기도 하고 짜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달짝지근하기도 하고.
강사장  뭔 말이야? 사람한테 뭔 맛이 있어!
자스민  지금도 날 먹길 바라나요? 먹고 싶어요?
자스민  꽃잎이 하나둘 지고 나면 열매를 맺는데, 그래야 다음해에도 태어날 수 있는데.
        강제로 뜯긴 꽃잎은 열매를 맺을 수 없어.
        열매를 맺을 수가.
무대 어두워지고
화단에 꽃을 심는 자스민. 지켜보는 강사장과 Mr.유

강사장  올해는 먹을 것 좀 심지 그래
Mr.유   사장님은 참. 벌써 잊으셨어요? 찜찜하게 어떻게 먹어요.
강사장  아, 생각해보니까 좀 그렇긴 하네.
Mr.유   하필이면 왜 찔레꽃이예요? 할머님이 생전에 찔레꽃을 좋아했나?
        난 가시가 많아 싫던데.
자스민  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고 열매를 맺고….


이민선(李旻宣) 1980년 서울출생
주소:서울시 강서구 화곡6동
min0602@dreamwiz.com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