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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근-희곡2(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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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란일까?
등장인물
상태 : 20대 후반의 남자. 계란 장수.
복주 : 20대 후반의 남자. 세탁소 직원.
조사장 : 40대 초반의 남자. 술집 주인.
이미자 : 20대 중반의 여자. 꽃뱀.
서경위. 소방요원. 파출소 소장 : 모두 50대 초반의 남자. 공무원들.
때
어느 겨울철 저녁.
곳.
주택 옥상과 술집 안.
무대 중앙 정면 앞으로 작고 이동 가능한 옥상 난간(팔을 걸칠 정도의 높이)이 설치되어 있고 중앙에 테이블과 양쪽으로 2인용 쇼파가 놓여 있다.
왼쪽에 카운터 바와 의자를, 오른쪽에 출입문을 설치한다.
무대 앞쪽 조명만 중간 밝기로 밝아오면 상태가 옥상 난간에 팔을 걸친 채 동전으로 즉석복권을 긁고 있다. 그런 후 힘없고 나직한 목소리로 '사노라면'을 부른다.
상 태 :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 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또 꽝이네. 어떻게 오 백 원도 안 걸리냐. (복권을 주머니에 넣고 여전히 힘없는 표정으로 관객들을 향 해) 여러분, 젊다는 게 한 밑천이란 소리가 맞는 말입니까? (잠시 관객을 둘러본 후) 아무도 말씀을 안 하시는 거 보니까 아닌가 보군요. 그러나 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뭐,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 종일 계란 팔러 다녀도 얼마 벌지는 못하지만 말입니다. 힘들기는 하죠. 요즘엔 말입니다. 마트니 뭐니 해서 죄다 거기서 사는 바람에 차에서 파는 계란은 거들떠도 안 본 답니다. 똑같은 계란이고 오히려 더 싼데 말이죠. 어떤 동네는 말입니다. 제가 틀어놓은 확성기가 시끄럽다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니까요. (한숨쉬 며) 세상인심이 점점 각박해지는 거 같아서 화도 나긴 하지만 (웃으며) 오 늘은 장사 좀 됐거든요. 그래서 친구랑 한 잔 마시려구 이렇게 기다리고 있답니다. (먼 곳을 보는 듯 몸을 난간 앞으로 움직이며) 어휴, 저 사람들 좀 봐. 전부 술집으로 들어가네? (히죽 웃으며) 여러분, 계란 좋아하십니 까? 전 지금이야 좀 물리지만 엄청 좋아하죠. 오죽했으면 계란 팔러 다니 겠어요. 하하하. 계란찜, 계란말이, 생으로 먹을 수도 있고 후라이 쳐서 먹을 수도 있고. 또...... 삶아서 먹을 수도 있고. 그러고 보니 계란만큼 인 생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도 없는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계란이 돈으로 보이네요? 하하하. (추운 듯이 겉옷을 움츠리며 출입문을 보고) 그나저나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이때, 복주가 웃으며 상태의 옆으로 다가온다.
상 태 : 웬일이냐? 웃으면서 들어오고. 오늘은 가게에서 열 받는 일 없었어?
복 주 : (웃으며) 나라구 맨날 우거지상만 쓰겠냐. 쨍 하고 해뜰 날도 있어야지.
상 태 : 나 오늘 장사 좀 됐거든. 소주나 한 잔 하자.
복 주 : 지겹지도 않냐, 소주에 계란? 아니면 계란찜?
상 태 : 아냐, 임마. 나가서 오랜만에 고기 좀 먹으려구 그런다. 왜 먹기 싫어?
복 주 : 싫어. 가끔씩 양주도 좀 먹어주고 그래야 삶의 락이 있는 거 아니겠냐?
상 태 : 락 좋아하네. 우리가 언제부터 양주 마셨다고 그래?
복 주 :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수표를 보이며) 사람은 오래 살고 봐야 한다니 까?
상 태 : (수표를 받아보고) 백만 원? 월급 올랐어? 수표로 받은 거야?
복 주 : (지갑에서 만 원 권 뭉치를 보여주며) 월급은 여기 있지.
상 태 : (불안한 표정으로) 너 또?
복 주 : 양복 저고리에 수표 넣고 세탁소에 갖다 주는 건 먼저 찾는 놈이 임자란 소리야.
상 태 : 저번에도 십만 원짜리 꿀꺽했다가 들통나서 짤릴 뻔했잖아. 이번에 걸리면 절도죄로 잡혀가는 거 아냐?
복 주 : 그때는 내가 띨띨해서 걸렸다만, 이제는 무조건 잡아떼는 거야. 난 때려 죽 여도 모른다.
상 태 : 그래서 이 돈을 쓰겠다구?
복 주 : (수표를 낚아채며) 그동안 열심히 일 했다구 하느님이 우리한테 내린 은혜 야. 우리 우정을 높이 평가한 선물이라구.
상 태 : 우리 아버지 말씀이 남의 돈 쓰면 언젠가 자기한테 되돌아 온다구 그랬어.
복 주 : 맨날 아버지 말씀! 우리도 한 번 여자 끼고 비싼 술 좀 마셔보자. 그게 뭐 그렇게 잘못한 짓이냐?
상 태 : 그게 아니라 남의 돈.
복 주 : 걱정 마. 그냥 공술 먹은 셈 치면 되는 거야.
상 태 : (혼잣말로) 세상에 공술이란 게 있을까?
무대가 완전히 밝아지면 상태와 복주가 옥상 난간을 무대 뒤쪽으로 옮겨놓은 후다. 두 사람이 쇼파에 앉아있다.
조사장이 출입문으로 들어와 다가온다.
조 사 장 : 오랜만에 왔네요. 소주에 제육볶음?
복 주 : (웃으며) 병맥주 세 병, 아니 다섯 병 대 자루 주시구요. 안주는 니가 시 켜.
상 태 : 과일...... 주세요.
조 사 장 : (웃으며) 요즘 장사 좀 되나 봐요? 잠깐만 기다려요.
조사장이 카운터에서 이것저것 준비한다.
복 주 : (지갑에서 수표 꺼내며) 이놈 참 잘 생겼다. 여기다가 공 하나만 더 붙여 놓으면 천만 원인데.
상 태 : 지금이라도 돌려주자.
복 주 : 너 갖고 다니는 샤프 지금 있냐?
상 태 : (주머니에서 샤프를 꺼내주며) 왜?
복주가 샤프로 수표 금액에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려 넣는다.
상 태 : (놀라며) 뭐 하는 거야?
복 주 : (스스로 감탄하며) 예술이다. 공 하나 더 그려놨는데 이렇게 달라지나? (상태에게 건네며) 너 옛날 광고 중에 이거 기억 나? 남자는 힘 아니겠습니 까! 그거 요즘엔 무식하다 그래요. 조폭들도 공부하는 세상인데 아무 때나 힘, 그러고 다니면 머슴 소리 듣는다니까. 나 결정했다. 내 좌우명 알지? 참 는 자에게 복이 온다. 이젠 아니야. 오브 더 머니, 바이 더 머니, 포 더 머니!
상 태 : 분실자가 수표 번호를 신고할 수도 있는 거 아냐?
복 주 : (수표를 낚아채며) 요즘에 누가 촌스럽게 백만 원짜리 수표번호를 적고 다 니냐. 세상 물정을 이렇게 몰라요. 어쨌거나 내일은 나이트 가서 놀아보자. 옷은 내가 세탁소에서 뽀대나는 걸로 가져올게. 기본적으로 양주 몇 병만 시키면 부킹이 한없이 들어온대요.
조사장이 다가와 맥주와 잔 등을 놓는다.
복 주 : (은근히 수표를 보이며) 수표 바꿔 줄 수 있죠? 백만 원짜린데.
조 사 장 : (정중하게) 물론입니다. (손을 입가에 가져가 속삭이듯) 원하시면 영계들 도 뽑아 드립니다.
복 주 : (놀라며) 아가씨가 있어요?
조 사 장 : (은밀히) 안쪽에 씨크릿 룸이 있거든요. 전화 한 통화면 삼 십분 내에 영 양 만점으로 대령하니 말씀만 하십시오.
상 태 : 저희는 괜찮습니다.
조 사 장 : (90도 각도로 허리 굽혀 인사)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조사장이 카운터로 가서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상 태 : 어쩐지. 전에도 아저씨들이 안쪽으로 가더니 그런 게 있었구나.
복 주 : 들었냐, 저 아저씨 말투? 수표 나오니까 바로 90도로 허리 휘어지는 거. 상태야.
상 태 : 뱁새가 황새 따라하다 가랑이 찢어진대. 난 불안하기만 하다.
복 주 : 나이트가 좀 더 싸겠지? 그나저나 이깟 종이 쪼가리 한 장 있으니까 되게 든든하다. (샤프의 꼭지를 열고 작은 지우개로 그린 걸 지우며) 아쉽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거라.
상 태 : (웃으며) 너 그러구 있으니까 꼭 복권 긁는 거 같다.
복 주 : (웃으며) 그래. 나 돈벼락 맞았다.
상태와 복주가 서로의 잔을 채울 때 서경위가 나온다.
서 경 위 :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조사장, 장사는 잘 돼?
조 사 장 : (억지웃음을 지으며 다가가) 서경위님 오셨습니까? 덕분에 그럭저럭요.
서 경 위 : 요즘 어때? 연말인데 돈 좀 긁어야지?
조 사 장 : 그래야 되는데 말이죠. 죽겠습니다. 미국 경기 안 좋은 거 아시죠? 미국이 강대국은 강대국이란 말이죠. 그 여파가 우리 동네까지 오니.
서 경 위 : 그럼. 미국이 강대국은 강대국이지. 거, 이라크랑 전쟁하는데 딴 나라에 돈 좀 내놓으쇼, 하니까 너도나도 내놓으려구 안달이잖아? 역시 나라구 사람이 구 힘이 있어야 돼요, 힘!
조 사 장 : (떨떠름한) 그렇죠, 힘.
서 경 위 : (품에서 청첩장을 꺼내 건네며) 우리 딸애 알지? 미국에서 유학하고 온 애. 좀 있으면 시집을 가거든. 품안에 있다가 보내려니 가슴이 아파. 그래 두 어떡하겠어? 혼수라도 넉넉히 보내야지.
조 사 장 : (청첩장을 받으며) 축하드립니다.
서 경 위 : 요즘 샐러리맨들, 젊은 거나 늙은 거나 어린 여자애들만 좋아해서 말이야. 조사장이야 그럴리 없겠지만서두. 하여튼, 곧 연말 특별 단속 있는 거 알 지? 소식 있으면 전화 줄게.
조 사 장 : (마지못해 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재빨리 서경위에게 넘겨주며) 잘 부탁 드립니다.
서경위가 봉투를 받아 품에 넣고 나간다.
상 태 : 아저씨. 누구예요?
조 사 장 :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 것도 아닙니다.
조사장이 카운터에서 과일 안주를 가져와 테이블에 놓고 카운터로 간다.
복 주 : (겉옷을 벗어서 옆에 놓으며) 눈치 없게 뭘 물어보냐?
이미자가 등장해서 카운터 바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상태와 복주의 시선이 이미자에게 머물면 조사장이 칵테일을 준다.
상 태 : (이미자를 보며) 예쁘다.
복 주 : 자식. 형이 꼬셔볼까?
복주가 손짓으로 조사장을 불러서 오면 귓속말로 중얼거리고 조사장이 이미자에게 다가간다.
상 태 : 뭐라구 한 거야?
복 주 : (자신만만하게) 넌 영화도 안 보냐? 좀 있으면 올 거야. (속삭이듯) 만약에 잘 되면 오늘 바로 새끼 쳐줄 테니까 나만 믿어라.
이미자가 상태와 복주를 잠시 바라보다 칵테일을 들고 다가온다.
이 미 자 : (복주의 옆에 앉으며) 한 잔 사신다구요?
복 주 : 물론입니다. 하하하.
이 미 자 : 무슨 일 하세요?
복 주 : 전 의상 일을 하고 저 친군 요식업을 하고 있죠. 공장을 좀 돌아보고 오느 라 꼴이 말이 아니네요. 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건배하죠.
세 사람이 잔을 마주친 후 마신다.
이때, 소방 점검이란 완장을 차고 소방 요원이 등장한다.
소방요원 : (웃으며) 조사장님. 소방 점검 나왔습니다. 장사는 잘 되시죠?
조 사 장 :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저야 그럭저럭. 요즘 바쁘시죠?
소방요원 :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죠.
조 사 장 : 연락이라도 해주시지 않고.
소방요원 : 지나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저번에 말씀드린 스프링클 러는 아직 설치 안 하셨네요?
조 사 장 : 그거...... 빨리 해야죠. 연말이라 공사하기도 좀 그렇구.
소방요원 : 이런. 벽도 방화벽으로 해야 되는데 말이죠. 화재 나면 사람 여럿 잡겠습 니다. 화재보험은 들으셨구요?
조 사 장 : 그거는 들었죠.
소방요원 : 아, 그거 믿고 그러시는구나. 가만 보자. 이 정도 평수면 소화기가 최소한 다섯 대는 있어야 되겠고 콘센트 정리랑 인테리어 이렇게 하시면 안 되는 데. 이거 화재가 바로 나겠는데요? (협박조로) 돈 좀 들여서 싸그리 공사 좀 해야겠습니다.
조 사 장 : (카운터로 달려가 하얀 봉투를 꺼내 재빨리 소방요원에게 건네주며) 잘 부 탁 드립니다.
소방요원이 봉투를 품에 넣고 나간다.
상 태 : (주인 보며) 정말 너무 하네요. 이래서 장사하겠어요?
조 사 장 : (체념한 듯) 세상이 이런 걸 어쩌겠습니까. 이렇게라도 먹고 살아야죠. 그 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이 미 자 : 맥주는 좀 약하지 않아요? (슬며시) 기분인데 폭탄으로.
복 주 : 폭탄이요? (과장된) 뭘 좀 아시네.
이 미 자 : (손짓으로 조사장을 불러서 오면) 여기 술 좀 더 갖다 주세요.
조 사 장 : 양주는 뭘로?
복 주 : (상태를 잠시 보다가) 썸씽...... 대 자. 스페샬로 주세요. 하하하.
조 사 장 : (어이없지만 정중히) 썸씽 스페셜 대 자요?
복 주 : (이미자를 보며) 네. 오늘 술은 제가 쏩니다.
상 태 : 저기, 복주야.
이 미 자 : 정말요? (복주에게 살며시 기대어 웃으며) 너무 멋지시다. 난 양주 마시는 사람이 제일 멋있더라.
복주와 이미자의 과장된 웃음이 울리며 암전.
무대 밝아지면 테이블엔 양주병과 맥주병, 안주 등이 어지러이 놓여있고 복주와 상태, 이미자가 취한 자세로 앉아있다.
복 주 : (겉옷에서 지갑을 꺼내 상태에게 주며) 상태야, 나 취하면 지갑 잘 잃어버 리잖아. 니가 좀 챙겨라.
상 태 : (받아서 벗어놓은 겉옷에 넣어두며) 그래.
이 미 자 : 벌써 취하신 거예요?
복 주 : (과장되게 웃으며) 취하긴요. 잠시 화장실 좀.
복주가 출입문으로 나가자 이미자가 상태 옆으로 가 슬며시 기댄다.
이 미 자 : 과묵하신 게 너무 남자다우시다.
상 태 : (어색하게 웃으며) 제가요?
이 미 자 : (더욱 몸을 밀착시킨 채 한 손은 벗어놓은 상태의 겉옷을 만지작거리며 지 갑을 찾고) 사귀는 여자 없으세요?
상 태 : 네. 바쁘다 보니까.
조사장이 맥주 세 병을 가져와 내려놓는다.
조 사 장 : 서비씁니다. (오프너를 슬쩍 떨어트리고) 오프너가 떨어졌네?
조사장이 몸을 숙이자 이미자가 복주의 지갑을 떨어트린다.
조사장이 재빨리 지갑에서 수표만 꺼내고 다시 이미자에게 건넨다.
이 미 자 : 전 자기 일에 열심인 남자가 좋더라구요. 저도 아직 사귀는 남자가 없거든 요.
조사장이 카운터로 돌아가자 이미자가 더욱 몸을 밀착시키면서 지갑을 능숙하게 주머니에 넣는다.
이때 출입문으로 복주와 무전기를 든 경찰복의 파출소장이 들어온다.
복주를 본 이미자가 일어서려하자 상태가 손목을 잡고 다시 앉힌다.
복 주 : (상태를 보고 인상이 약간 구겨지지만)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상 태 : (취한 웃음으로) 그냥. 근데, 웬 경찰이야?
이 미 자 : (불안한 듯) 아시는 분이세요?
복 주 : 알기는 알죠. 얼굴만.
조 사 장 : (파출소장에게 다가가며) 수고하십니다. 제가 주인인데 무슨 일로.
파출소장 : (웃으며) 얼마 전에 새로 부임한 파출소 소장입니다. 장사는 잘 되시죠? 인사차 들렀습니다.
이 미 자 :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잔이 비었네요.
이미자가 양주와 맥주를 섞어 폭탄주를 만들기 시작한다.
조 사 장 : 먼저 찾아뵈어야 하는데 늦었습니다.
파출소장 : (테이블을 보고 웃으며) 어휴, 여긴 벌써 망년 분위기네요.
조 사 장 :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죽을 맛입니다. 아직 근무 시간이신 거 같은데 그 럼, 음료수라도 한 잔 하시죠.
파출소장 : 아닙니다. 다른 데도 인사 가야죠. 아, 요 앞에 비디오방 아시죠? 그 몇 푼 벌자고 미성년자 들였다가 순찰 중인 제 부하한테 걸렸잖습니까. 이걸 어 떡해요? 우리나라는 엄연히 법이 존재하는 법치국간데 봐 드릴 수도 없고. 백 일 영업정지에 벌금이 한 육백 나왔나? (주변을 둘러보며) 곧 연말 특 별 단속 있는 거 아시죠? 여기야 걸릴 게 없겠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있습니까? 안 나오면 사람이 아니죠. 하하하. 소식 있으면 전화 드리 겠습니다.
조 사 장 : (방백) 씨팔, 이젠 동네 파출소까지 오네.
파출소장 : (약간 협박조로) 제가 시간이 없는데.
조사장이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복주와 상태, 이미자가 일어선다.
복 주 : (이미자에게 다가가 어깨에 팔을 걸치며) 2차 가시죠. 오늘 제가 화끈하게 쏩니다. 아저씨, 계산이오.
상태가 주머니에서 복주의 지갑을 건네준다.
조 사 장 :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31만 원 나왔는데...... (슬며시 파출소장을 보며) 경기도 안 좋은데 서로 돕고 살아야죠. 30만 원만 주세요.
복 주 : (이미자를 보며 멋쩍은) 얼마 안 나왔네.
복주가 지갑에서 만원 짜리를 빼다가 수표를 찾으나 없다.
복 주 : (지갑을 뒤지며) 상태야, 수표가 없어?
상 태 : (놀라며) 뭐? 수표가 없다구?
복 주 : (상태를 미심쩍게 보며) 혹시 너?
상 태 : 야!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복 주 : 이상하잖아. 아까 지갑에 넣어서 널 준거, 너도 봤잖아. 너 같으면 의심 안 하겠냐?
이 미 자 : (다급히) 지갑 어딘가에 있겠죠. 일단 계산 먼저 하고 2차로 노래방 가요. 거긴 제가 낼게요.
복주를 밀어보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복 주 : 혹시 너 계란차 손 봐야 한다더니 그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상 태 : (이미자를 보며 창피한 듯) 그러는 넌? 세탁소에서 일하는 주제에.
복 주 : (상태의 멱살을 잡으며) 뭐야!
파출소장 : (다가오며) 무슨 일이죠?
복주와 상태, 이미자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 미 자 : 아니예요. 친구분들인데 술김에 그냥 말다툼하는 거예요.
복 주 : (사정조로) 제 지갑에 백만 원권 수표가 있었는데 없어졌거든요. 좀 전에 지갑 채로 저 자식한테 맡겼을 땐 분명히 있었다구요. 근데, 지금 돌려받 아서 보니까 없다 이 얘깁니다. 그럼 (상태를 보며) 누가 훔쳐간 겁니까?
상 태 : 상태, 너! 십 년 우정 이렇게 버리는 거냐? 니가 날 의심하고도 우리가 친 구야? 만약 뒤져서 안 나오면 어떻게 할래?
복 주 : 우정은 니가 먼저 깨고 있잖아. 왜, 이 여자가 내 옆에 붙으니까 샘 나서 가져갔냐? 넌 항상 바른 생활하는 척 하는데 웃기지 마. 너나 나나 똑같 아.
상 태 : (복주의 멱살을 잡으며) 말 다했어!
복 주 : (같이 멱살을 잡으며) 이럴 땐 너희 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든?
파출소장 : (말리며) 이봐요. 친구끼리 이러면 안 되죠. 차근히 얘기해 봅시다.
이미자가 슬며시 핸드백을 들고 나가려고 한다.
파출소장 : (이미자 보며) 어딜 가요? 같이 있었으니까 같이 얘기 좀 합시다.
이 미 자 : 전 상관없어요.
상 태 : 혹시 이 여자?
이 미 자 : 이봐요. 같이 놀아줬더니 도둑으로 몰아요?
복 주 : 그래. 아까 나 화장실 갈 때 니 옆에 있었잖아.
이 미 자 : (언성을 높이며) 뭐, 이런 자식들이 다 있어? 재수 없으려니까. 뒤지고 싶 으면 뒤져요. 대신 없으면 (상태와 복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당신들 고소 할 거야. 법대로 할 거라구!
파출소장 : 일단, 신원확인부터 하겠습니다. 세 분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복주와 상태가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지만 이미자는 머뭇거린다.
이 미 자 : 신분증을 놓고 왔는데요?
파출소장 : 확인할 수 있으니까 불러봐요. (들고 있던 무전기를 입가에 대고) 소장이 다. 신원확인 바란다.
복 주 : 빨리 말해요! 거 봐. 뭔가 수상한 여자라니까?
파출소장 : 아가씨. 파출소 가서 얘기 할래요?
이 미 자 : 770203... 2345678. 이미자.
복 주 : 아까는 이바다라고 했다니까요.
파출소장 : (짜증내며) 조용 좀 해요. 770203, 2345678. 이미자.
조사장이 슬며시 파출소장의 옷깃을 잡아끌고 뒤쪽으로 간다.
조 사 장 :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솔직히 이런 일이 생기면 저희 가게 이미지도 안 좋고 저 아가씨도 뒤져보라는 걸 보면 아닌 거 같거든요. (주머니에서 백 만 원권 수표를 꺼내 파출소장 주머니에 넣으며) 시끄럽지 않게 해주십시 오.
파출소장 : 혹시 당신이?
조 사 장 : (놀란 척 하며) 아닙니다. 전 모르는 일입니다.
무전기 호출음이 들린다.
무전기 소리 : (경찰에게만 들린다) 번호는 맞습니다. 소매치기 전과 3범이구요, 주소 는.
조 사 장 : (무전기를 든 경찰의 손을 슬며시 내리며) 진작 찾아 뵈려구 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파출소장 : (망설이듯) 난 무조건 현찰 박치리라서.
조 사 장 : 죄송합니다. 이번만 봐 주십시오.
파출소장 : 깨끗한 거죠? 경기도 안 좋은데 서로 돕고 살아야죠.
파출소장과 조사장이 세 사람에게 다가온다.
파출소장 : 이미자씨, 신원확인 됐어요. (복주 보며) 여기 술값은 일단 계산하고 저 아 가씨 몸수색은 내가 할 수 없으니까 세 사람 모두 파출소로 갑시다.
파출소장이 먼저 출입문으로 퇴장하면 이미자가 조사장을 잠시 보다가 나간다.
복주가 계산을 한다.
조 사 장 : (미안한 척)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게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 죄송합 니다. 진실은 꼭 밝혀지는 법이니까 힘 내십시오!
복주와 상태가 힘없이 퇴장한다.
조 사 장 : 씨팔, 먹고 살기 힘드네.
암전.
무대 밝아지면 조사장은 카운터에 앉아있고 복주와 상태가 쇼파에 앉아있다.
테이블엔 빈 소주 병, 몇 개 안 남은 오징어 조각이 접시에 놓여있다.
상 태 : 벌써 며칠 째야. 이제 그만 잊어버리자. 우리 돈 내고 기분 냈다고 치면 되 지, 뭐. 하마터면 우리 우정도 상할 뻔했잖아.
복 주 : 분명 그 여자 짓이야. 너도 하는 짓 봤지? 실실 웃으며 꼬리치는 거. 수표 만 빼 가지고 어딘가에 짱 박아 놓은 걸 거야.
상 태 : 안창따기가 전문이라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알아채겠어? 나이트간 셈 치 자.
복 주 : (조사장을 흘겨보며) 저 아저씨도 의심스러워.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잖 아. 젠장, 이젠 모든 인간들이 다 도둑놈으로 보인다니까!
상 태 : 너, 설마 아직도 날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복 주 : (쓴웃음 지으며) 너만 빼고. 그나저나 의심해서 미안하다. 공과금도 다 니 돈으로 내고.
상 태 : 나도 그 여자한테 홀려서 널 의심했었어. 미안하다.
이때, 평상복 차림의 파출소장이 급히 등장한다.
파출소장 : (주인에게 소리치며) 너, 이 자식! 누구 말아먹을 일 있어? 사정 봐주니까 은혜를 이딴 식으로 갚아? (주인 멱살을 잡으며) 책임져. 책임지라구!
조 사 장 : (황당해하며) 왜, 왜 그러세요, 소장님?
파출소장 : 왜 그래? 내 모가지 잘라놓고 왜 그래? 어디다가 위조 수표를 내밀어? 난 혼자 못 죽어. 당신도 콩밥 먹을 각오해야 할 거야!
파출소장이 조사장의 멱살을 잡아끌고 나간다.
조사장이 복주와 상태를 노려보며 끌려나간다.
복 주 : 위조 수표? 혹시 그 수표도?
상 태 : 글쎄. 어쨌거나 이미 손 떠난 거 그만 생각하자.
복 주 : 젠장, 그나저나 며칠 째 계속 술이라 그런가 속이 쓰리다. 계란탕 끓여 줄 래?
상 태 : (웃으며) 뭐니뭐니해두 계란탕이 최고지?
상태가 지갑에서 만 원을 꺼내 놓는 동안, 복주가 무대 뒤쪽에서 옥상 난간을 가져와 무대 앞쪽에 놓는다.
전체적인 조명이 꺼지며 무대 앞쪽만 중간 밝기로 켜진다.
복 주 : 아, 시원하다!
상 태 : 계란탕이?
복 주 : 아니, 바람이. (웃으며) 오랜만에 먹으니까 정말 맛있다.
상 태 : (객석을 보며) 여전히 사람들은 술집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는구나. (웃으며) 언젠가 우리도 나이트 가서 양주 시킬 때가 오겠지?
복 주 : 상태야. 차라리 그 돈 있으면 말이지. 백만 원이면 천 원짜리로, 천만 원이 면 만 원짜리로 바꾸는 거야. 그리고 시내 빌딩 옥상에 올라가 뭉탱이로 뿌리는 거지. 그럼, 그 돈 주으려고 사람들이 개떼같이 몰려들겠지? 이놈 저놈 할 거 없이 서로 갖겠다고 아웅대는 꼬라지를 보면 속이 다 후련하겠 다.
상 태 : (웃으며) 그래. 정말 볼만 할 거야. 그래도 어쩌겠어? 돈이 필요하니까 다 들 그러는 거지, 뭐.
복 주 : 넌 좋겠다. 돈 많아서?
상 태 : 내가 무슨 돈이 많아?
복 주 : 너 계란 많잖아. 그거 돈 받고 파는 건데 언젠가 다 돈으로 바뀔 거 아냐.
상 태 : 그 전에 니 술안주로 없어지지 않을까?
복 주 : 야, 술 얘기 하지 마라. 징글징글하다. (관객을 향해) 여러분, 연말인데 술 적당히 드십시오. 특히, 양주요. 하하하.
암전.
200 x 84
안 대 근
29세.
서울시 송파구 가락 2동
신한 에스 빌 101동 502호.
faust715@hanmail.net
02-404-7887
017-720-0005
1975. 09. 10.
등장인물
상태 : 20대 후반의 남자. 계란 장수.
복주 : 20대 후반의 남자. 세탁소 직원.
조사장 : 40대 초반의 남자. 술집 주인.
이미자 : 20대 중반의 여자. 꽃뱀.
서경위. 소방요원. 파출소 소장 : 모두 50대 초반의 남자. 공무원들.
때
어느 겨울철 저녁.
곳.
주택 옥상과 술집 안.
무대 중앙 정면 앞으로 작고 이동 가능한 옥상 난간(팔을 걸칠 정도의 높이)이 설치되어 있고 중앙에 테이블과 양쪽으로 2인용 쇼파가 놓여 있다.
왼쪽에 카운터 바와 의자를, 오른쪽에 출입문을 설치한다.
무대 앞쪽 조명만 중간 밝기로 밝아오면 상태가 옥상 난간에 팔을 걸친 채 동전으로 즉석복권을 긁고 있다. 그런 후 힘없고 나직한 목소리로 '사노라면'을 부른다.
상 태 :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 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또 꽝이네. 어떻게 오 백 원도 안 걸리냐. (복권을 주머니에 넣고 여전히 힘없는 표정으로 관객들을 향 해) 여러분, 젊다는 게 한 밑천이란 소리가 맞는 말입니까? (잠시 관객을 둘러본 후) 아무도 말씀을 안 하시는 거 보니까 아닌가 보군요. 그러나 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뭐,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 종일 계란 팔러 다녀도 얼마 벌지는 못하지만 말입니다. 힘들기는 하죠. 요즘엔 말입니다. 마트니 뭐니 해서 죄다 거기서 사는 바람에 차에서 파는 계란은 거들떠도 안 본 답니다. 똑같은 계란이고 오히려 더 싼데 말이죠. 어떤 동네는 말입니다. 제가 틀어놓은 확성기가 시끄럽다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니까요. (한숨쉬 며) 세상인심이 점점 각박해지는 거 같아서 화도 나긴 하지만 (웃으며) 오 늘은 장사 좀 됐거든요. 그래서 친구랑 한 잔 마시려구 이렇게 기다리고 있답니다. (먼 곳을 보는 듯 몸을 난간 앞으로 움직이며) 어휴, 저 사람들 좀 봐. 전부 술집으로 들어가네? (히죽 웃으며) 여러분, 계란 좋아하십니 까? 전 지금이야 좀 물리지만 엄청 좋아하죠. 오죽했으면 계란 팔러 다니 겠어요. 하하하. 계란찜, 계란말이, 생으로 먹을 수도 있고 후라이 쳐서 먹을 수도 있고. 또...... 삶아서 먹을 수도 있고. 그러고 보니 계란만큼 인 생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도 없는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계란이 돈으로 보이네요? 하하하. (추운 듯이 겉옷을 움츠리며 출입문을 보고) 그나저나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이때, 복주가 웃으며 상태의 옆으로 다가온다.
상 태 : 웬일이냐? 웃으면서 들어오고. 오늘은 가게에서 열 받는 일 없었어?
복 주 : (웃으며) 나라구 맨날 우거지상만 쓰겠냐. 쨍 하고 해뜰 날도 있어야지.
상 태 : 나 오늘 장사 좀 됐거든. 소주나 한 잔 하자.
복 주 : 지겹지도 않냐, 소주에 계란? 아니면 계란찜?
상 태 : 아냐, 임마. 나가서 오랜만에 고기 좀 먹으려구 그런다. 왜 먹기 싫어?
복 주 : 싫어. 가끔씩 양주도 좀 먹어주고 그래야 삶의 락이 있는 거 아니겠냐?
상 태 : 락 좋아하네. 우리가 언제부터 양주 마셨다고 그래?
복 주 :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수표를 보이며) 사람은 오래 살고 봐야 한다니 까?
상 태 : (수표를 받아보고) 백만 원? 월급 올랐어? 수표로 받은 거야?
복 주 : (지갑에서 만 원 권 뭉치를 보여주며) 월급은 여기 있지.
상 태 : (불안한 표정으로) 너 또?
복 주 : 양복 저고리에 수표 넣고 세탁소에 갖다 주는 건 먼저 찾는 놈이 임자란 소리야.
상 태 : 저번에도 십만 원짜리 꿀꺽했다가 들통나서 짤릴 뻔했잖아. 이번에 걸리면 절도죄로 잡혀가는 거 아냐?
복 주 : 그때는 내가 띨띨해서 걸렸다만, 이제는 무조건 잡아떼는 거야. 난 때려 죽 여도 모른다.
상 태 : 그래서 이 돈을 쓰겠다구?
복 주 : (수표를 낚아채며) 그동안 열심히 일 했다구 하느님이 우리한테 내린 은혜 야. 우리 우정을 높이 평가한 선물이라구.
상 태 : 우리 아버지 말씀이 남의 돈 쓰면 언젠가 자기한테 되돌아 온다구 그랬어.
복 주 : 맨날 아버지 말씀! 우리도 한 번 여자 끼고 비싼 술 좀 마셔보자. 그게 뭐 그렇게 잘못한 짓이냐?
상 태 : 그게 아니라 남의 돈.
복 주 : 걱정 마. 그냥 공술 먹은 셈 치면 되는 거야.
상 태 : (혼잣말로) 세상에 공술이란 게 있을까?
무대가 완전히 밝아지면 상태와 복주가 옥상 난간을 무대 뒤쪽으로 옮겨놓은 후다. 두 사람이 쇼파에 앉아있다.
조사장이 출입문으로 들어와 다가온다.
조 사 장 : 오랜만에 왔네요. 소주에 제육볶음?
복 주 : (웃으며) 병맥주 세 병, 아니 다섯 병 대 자루 주시구요. 안주는 니가 시 켜.
상 태 : 과일...... 주세요.
조 사 장 : (웃으며) 요즘 장사 좀 되나 봐요? 잠깐만 기다려요.
조사장이 카운터에서 이것저것 준비한다.
복 주 : (지갑에서 수표 꺼내며) 이놈 참 잘 생겼다. 여기다가 공 하나만 더 붙여 놓으면 천만 원인데.
상 태 : 지금이라도 돌려주자.
복 주 : 너 갖고 다니는 샤프 지금 있냐?
상 태 : (주머니에서 샤프를 꺼내주며) 왜?
복주가 샤프로 수표 금액에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려 넣는다.
상 태 : (놀라며) 뭐 하는 거야?
복 주 : (스스로 감탄하며) 예술이다. 공 하나 더 그려놨는데 이렇게 달라지나? (상태에게 건네며) 너 옛날 광고 중에 이거 기억 나? 남자는 힘 아니겠습니 까! 그거 요즘엔 무식하다 그래요. 조폭들도 공부하는 세상인데 아무 때나 힘, 그러고 다니면 머슴 소리 듣는다니까. 나 결정했다. 내 좌우명 알지? 참 는 자에게 복이 온다. 이젠 아니야. 오브 더 머니, 바이 더 머니, 포 더 머니!
상 태 : 분실자가 수표 번호를 신고할 수도 있는 거 아냐?
복 주 : (수표를 낚아채며) 요즘에 누가 촌스럽게 백만 원짜리 수표번호를 적고 다 니냐. 세상 물정을 이렇게 몰라요. 어쨌거나 내일은 나이트 가서 놀아보자. 옷은 내가 세탁소에서 뽀대나는 걸로 가져올게. 기본적으로 양주 몇 병만 시키면 부킹이 한없이 들어온대요.
조사장이 다가와 맥주와 잔 등을 놓는다.
복 주 : (은근히 수표를 보이며) 수표 바꿔 줄 수 있죠? 백만 원짜린데.
조 사 장 : (정중하게) 물론입니다. (손을 입가에 가져가 속삭이듯) 원하시면 영계들 도 뽑아 드립니다.
복 주 : (놀라며) 아가씨가 있어요?
조 사 장 : (은밀히) 안쪽에 씨크릿 룸이 있거든요. 전화 한 통화면 삼 십분 내에 영 양 만점으로 대령하니 말씀만 하십시오.
상 태 : 저희는 괜찮습니다.
조 사 장 : (90도 각도로 허리 굽혀 인사)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조사장이 카운터로 가서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상 태 : 어쩐지. 전에도 아저씨들이 안쪽으로 가더니 그런 게 있었구나.
복 주 : 들었냐, 저 아저씨 말투? 수표 나오니까 바로 90도로 허리 휘어지는 거. 상태야.
상 태 : 뱁새가 황새 따라하다 가랑이 찢어진대. 난 불안하기만 하다.
복 주 : 나이트가 좀 더 싸겠지? 그나저나 이깟 종이 쪼가리 한 장 있으니까 되게 든든하다. (샤프의 꼭지를 열고 작은 지우개로 그린 걸 지우며) 아쉽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거라.
상 태 : (웃으며) 너 그러구 있으니까 꼭 복권 긁는 거 같다.
복 주 : (웃으며) 그래. 나 돈벼락 맞았다.
상태와 복주가 서로의 잔을 채울 때 서경위가 나온다.
서 경 위 :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조사장, 장사는 잘 돼?
조 사 장 : (억지웃음을 지으며 다가가) 서경위님 오셨습니까? 덕분에 그럭저럭요.
서 경 위 : 요즘 어때? 연말인데 돈 좀 긁어야지?
조 사 장 : 그래야 되는데 말이죠. 죽겠습니다. 미국 경기 안 좋은 거 아시죠? 미국이 강대국은 강대국이란 말이죠. 그 여파가 우리 동네까지 오니.
서 경 위 : 그럼. 미국이 강대국은 강대국이지. 거, 이라크랑 전쟁하는데 딴 나라에 돈 좀 내놓으쇼, 하니까 너도나도 내놓으려구 안달이잖아? 역시 나라구 사람이 구 힘이 있어야 돼요, 힘!
조 사 장 : (떨떠름한) 그렇죠, 힘.
서 경 위 : (품에서 청첩장을 꺼내 건네며) 우리 딸애 알지? 미국에서 유학하고 온 애. 좀 있으면 시집을 가거든. 품안에 있다가 보내려니 가슴이 아파. 그래 두 어떡하겠어? 혼수라도 넉넉히 보내야지.
조 사 장 : (청첩장을 받으며) 축하드립니다.
서 경 위 : 요즘 샐러리맨들, 젊은 거나 늙은 거나 어린 여자애들만 좋아해서 말이야. 조사장이야 그럴리 없겠지만서두. 하여튼, 곧 연말 특별 단속 있는 거 알 지? 소식 있으면 전화 줄게.
조 사 장 : (마지못해 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재빨리 서경위에게 넘겨주며) 잘 부탁 드립니다.
서경위가 봉투를 받아 품에 넣고 나간다.
상 태 : 아저씨. 누구예요?
조 사 장 :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 것도 아닙니다.
조사장이 카운터에서 과일 안주를 가져와 테이블에 놓고 카운터로 간다.
복 주 : (겉옷을 벗어서 옆에 놓으며) 눈치 없게 뭘 물어보냐?
이미자가 등장해서 카운터 바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상태와 복주의 시선이 이미자에게 머물면 조사장이 칵테일을 준다.
상 태 : (이미자를 보며) 예쁘다.
복 주 : 자식. 형이 꼬셔볼까?
복주가 손짓으로 조사장을 불러서 오면 귓속말로 중얼거리고 조사장이 이미자에게 다가간다.
상 태 : 뭐라구 한 거야?
복 주 : (자신만만하게) 넌 영화도 안 보냐? 좀 있으면 올 거야. (속삭이듯) 만약에 잘 되면 오늘 바로 새끼 쳐줄 테니까 나만 믿어라.
이미자가 상태와 복주를 잠시 바라보다 칵테일을 들고 다가온다.
이 미 자 : (복주의 옆에 앉으며) 한 잔 사신다구요?
복 주 : 물론입니다. 하하하.
이 미 자 : 무슨 일 하세요?
복 주 : 전 의상 일을 하고 저 친군 요식업을 하고 있죠. 공장을 좀 돌아보고 오느 라 꼴이 말이 아니네요. 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건배하죠.
세 사람이 잔을 마주친 후 마신다.
이때, 소방 점검이란 완장을 차고 소방 요원이 등장한다.
소방요원 : (웃으며) 조사장님. 소방 점검 나왔습니다. 장사는 잘 되시죠?
조 사 장 :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저야 그럭저럭. 요즘 바쁘시죠?
소방요원 :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죠.
조 사 장 : 연락이라도 해주시지 않고.
소방요원 : 지나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저번에 말씀드린 스프링클 러는 아직 설치 안 하셨네요?
조 사 장 : 그거...... 빨리 해야죠. 연말이라 공사하기도 좀 그렇구.
소방요원 : 이런. 벽도 방화벽으로 해야 되는데 말이죠. 화재 나면 사람 여럿 잡겠습 니다. 화재보험은 들으셨구요?
조 사 장 : 그거는 들었죠.
소방요원 : 아, 그거 믿고 그러시는구나. 가만 보자. 이 정도 평수면 소화기가 최소한 다섯 대는 있어야 되겠고 콘센트 정리랑 인테리어 이렇게 하시면 안 되는 데. 이거 화재가 바로 나겠는데요? (협박조로) 돈 좀 들여서 싸그리 공사 좀 해야겠습니다.
조 사 장 : (카운터로 달려가 하얀 봉투를 꺼내 재빨리 소방요원에게 건네주며) 잘 부 탁 드립니다.
소방요원이 봉투를 품에 넣고 나간다.
상 태 : (주인 보며) 정말 너무 하네요. 이래서 장사하겠어요?
조 사 장 : (체념한 듯) 세상이 이런 걸 어쩌겠습니까. 이렇게라도 먹고 살아야죠. 그 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이 미 자 : 맥주는 좀 약하지 않아요? (슬며시) 기분인데 폭탄으로.
복 주 : 폭탄이요? (과장된) 뭘 좀 아시네.
이 미 자 : (손짓으로 조사장을 불러서 오면) 여기 술 좀 더 갖다 주세요.
조 사 장 : 양주는 뭘로?
복 주 : (상태를 잠시 보다가) 썸씽...... 대 자. 스페샬로 주세요. 하하하.
조 사 장 : (어이없지만 정중히) 썸씽 스페셜 대 자요?
복 주 : (이미자를 보며) 네. 오늘 술은 제가 쏩니다.
상 태 : 저기, 복주야.
이 미 자 : 정말요? (복주에게 살며시 기대어 웃으며) 너무 멋지시다. 난 양주 마시는 사람이 제일 멋있더라.
복주와 이미자의 과장된 웃음이 울리며 암전.
무대 밝아지면 테이블엔 양주병과 맥주병, 안주 등이 어지러이 놓여있고 복주와 상태, 이미자가 취한 자세로 앉아있다.
복 주 : (겉옷에서 지갑을 꺼내 상태에게 주며) 상태야, 나 취하면 지갑 잘 잃어버 리잖아. 니가 좀 챙겨라.
상 태 : (받아서 벗어놓은 겉옷에 넣어두며) 그래.
이 미 자 : 벌써 취하신 거예요?
복 주 : (과장되게 웃으며) 취하긴요. 잠시 화장실 좀.
복주가 출입문으로 나가자 이미자가 상태 옆으로 가 슬며시 기댄다.
이 미 자 : 과묵하신 게 너무 남자다우시다.
상 태 : (어색하게 웃으며) 제가요?
이 미 자 : (더욱 몸을 밀착시킨 채 한 손은 벗어놓은 상태의 겉옷을 만지작거리며 지 갑을 찾고) 사귀는 여자 없으세요?
상 태 : 네. 바쁘다 보니까.
조사장이 맥주 세 병을 가져와 내려놓는다.
조 사 장 : 서비씁니다. (오프너를 슬쩍 떨어트리고) 오프너가 떨어졌네?
조사장이 몸을 숙이자 이미자가 복주의 지갑을 떨어트린다.
조사장이 재빨리 지갑에서 수표만 꺼내고 다시 이미자에게 건넨다.
이 미 자 : 전 자기 일에 열심인 남자가 좋더라구요. 저도 아직 사귀는 남자가 없거든 요.
조사장이 카운터로 돌아가자 이미자가 더욱 몸을 밀착시키면서 지갑을 능숙하게 주머니에 넣는다.
이때 출입문으로 복주와 무전기를 든 경찰복의 파출소장이 들어온다.
복주를 본 이미자가 일어서려하자 상태가 손목을 잡고 다시 앉힌다.
복 주 : (상태를 보고 인상이 약간 구겨지지만)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상 태 : (취한 웃음으로) 그냥. 근데, 웬 경찰이야?
이 미 자 : (불안한 듯) 아시는 분이세요?
복 주 : 알기는 알죠. 얼굴만.
조 사 장 : (파출소장에게 다가가며) 수고하십니다. 제가 주인인데 무슨 일로.
파출소장 : (웃으며) 얼마 전에 새로 부임한 파출소 소장입니다. 장사는 잘 되시죠? 인사차 들렀습니다.
이 미 자 :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잔이 비었네요.
이미자가 양주와 맥주를 섞어 폭탄주를 만들기 시작한다.
조 사 장 : 먼저 찾아뵈어야 하는데 늦었습니다.
파출소장 : (테이블을 보고 웃으며) 어휴, 여긴 벌써 망년 분위기네요.
조 사 장 :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죽을 맛입니다. 아직 근무 시간이신 거 같은데 그 럼, 음료수라도 한 잔 하시죠.
파출소장 : 아닙니다. 다른 데도 인사 가야죠. 아, 요 앞에 비디오방 아시죠? 그 몇 푼 벌자고 미성년자 들였다가 순찰 중인 제 부하한테 걸렸잖습니까. 이걸 어 떡해요? 우리나라는 엄연히 법이 존재하는 법치국간데 봐 드릴 수도 없고. 백 일 영업정지에 벌금이 한 육백 나왔나? (주변을 둘러보며) 곧 연말 특 별 단속 있는 거 아시죠? 여기야 걸릴 게 없겠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있습니까? 안 나오면 사람이 아니죠. 하하하. 소식 있으면 전화 드리 겠습니다.
조 사 장 : (방백) 씨팔, 이젠 동네 파출소까지 오네.
파출소장 : (약간 협박조로) 제가 시간이 없는데.
조사장이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복주와 상태, 이미자가 일어선다.
복 주 : (이미자에게 다가가 어깨에 팔을 걸치며) 2차 가시죠. 오늘 제가 화끈하게 쏩니다. 아저씨, 계산이오.
상태가 주머니에서 복주의 지갑을 건네준다.
조 사 장 :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31만 원 나왔는데...... (슬며시 파출소장을 보며) 경기도 안 좋은데 서로 돕고 살아야죠. 30만 원만 주세요.
복 주 : (이미자를 보며 멋쩍은) 얼마 안 나왔네.
복주가 지갑에서 만원 짜리를 빼다가 수표를 찾으나 없다.
복 주 : (지갑을 뒤지며) 상태야, 수표가 없어?
상 태 : (놀라며) 뭐? 수표가 없다구?
복 주 : (상태를 미심쩍게 보며) 혹시 너?
상 태 : 야!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복 주 : 이상하잖아. 아까 지갑에 넣어서 널 준거, 너도 봤잖아. 너 같으면 의심 안 하겠냐?
이 미 자 : (다급히) 지갑 어딘가에 있겠죠. 일단 계산 먼저 하고 2차로 노래방 가요. 거긴 제가 낼게요.
복주를 밀어보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복 주 : 혹시 너 계란차 손 봐야 한다더니 그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상 태 : (이미자를 보며 창피한 듯) 그러는 넌? 세탁소에서 일하는 주제에.
복 주 : (상태의 멱살을 잡으며) 뭐야!
파출소장 : (다가오며) 무슨 일이죠?
복주와 상태, 이미자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 미 자 : 아니예요. 친구분들인데 술김에 그냥 말다툼하는 거예요.
복 주 : (사정조로) 제 지갑에 백만 원권 수표가 있었는데 없어졌거든요. 좀 전에 지갑 채로 저 자식한테 맡겼을 땐 분명히 있었다구요. 근데, 지금 돌려받 아서 보니까 없다 이 얘깁니다. 그럼 (상태를 보며) 누가 훔쳐간 겁니까?
상 태 : 상태, 너! 십 년 우정 이렇게 버리는 거냐? 니가 날 의심하고도 우리가 친 구야? 만약 뒤져서 안 나오면 어떻게 할래?
복 주 : 우정은 니가 먼저 깨고 있잖아. 왜, 이 여자가 내 옆에 붙으니까 샘 나서 가져갔냐? 넌 항상 바른 생활하는 척 하는데 웃기지 마. 너나 나나 똑같 아.
상 태 : (복주의 멱살을 잡으며) 말 다했어!
복 주 : (같이 멱살을 잡으며) 이럴 땐 너희 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든?
파출소장 : (말리며) 이봐요. 친구끼리 이러면 안 되죠. 차근히 얘기해 봅시다.
이미자가 슬며시 핸드백을 들고 나가려고 한다.
파출소장 : (이미자 보며) 어딜 가요? 같이 있었으니까 같이 얘기 좀 합시다.
이 미 자 : 전 상관없어요.
상 태 : 혹시 이 여자?
이 미 자 : 이봐요. 같이 놀아줬더니 도둑으로 몰아요?
복 주 : 그래. 아까 나 화장실 갈 때 니 옆에 있었잖아.
이 미 자 : (언성을 높이며) 뭐, 이런 자식들이 다 있어? 재수 없으려니까. 뒤지고 싶 으면 뒤져요. 대신 없으면 (상태와 복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당신들 고소 할 거야. 법대로 할 거라구!
파출소장 : 일단, 신원확인부터 하겠습니다. 세 분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복주와 상태가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지만 이미자는 머뭇거린다.
이 미 자 : 신분증을 놓고 왔는데요?
파출소장 : 확인할 수 있으니까 불러봐요. (들고 있던 무전기를 입가에 대고) 소장이 다. 신원확인 바란다.
복 주 : 빨리 말해요! 거 봐. 뭔가 수상한 여자라니까?
파출소장 : 아가씨. 파출소 가서 얘기 할래요?
이 미 자 : 770203... 2345678. 이미자.
복 주 : 아까는 이바다라고 했다니까요.
파출소장 : (짜증내며) 조용 좀 해요. 770203, 2345678. 이미자.
조사장이 슬며시 파출소장의 옷깃을 잡아끌고 뒤쪽으로 간다.
조 사 장 :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솔직히 이런 일이 생기면 저희 가게 이미지도 안 좋고 저 아가씨도 뒤져보라는 걸 보면 아닌 거 같거든요. (주머니에서 백 만 원권 수표를 꺼내 파출소장 주머니에 넣으며) 시끄럽지 않게 해주십시 오.
파출소장 : 혹시 당신이?
조 사 장 : (놀란 척 하며) 아닙니다. 전 모르는 일입니다.
무전기 호출음이 들린다.
무전기 소리 : (경찰에게만 들린다) 번호는 맞습니다. 소매치기 전과 3범이구요, 주소 는.
조 사 장 : (무전기를 든 경찰의 손을 슬며시 내리며) 진작 찾아 뵈려구 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파출소장 : (망설이듯) 난 무조건 현찰 박치리라서.
조 사 장 : 죄송합니다. 이번만 봐 주십시오.
파출소장 : 깨끗한 거죠? 경기도 안 좋은데 서로 돕고 살아야죠.
파출소장과 조사장이 세 사람에게 다가온다.
파출소장 : 이미자씨, 신원확인 됐어요. (복주 보며) 여기 술값은 일단 계산하고 저 아 가씨 몸수색은 내가 할 수 없으니까 세 사람 모두 파출소로 갑시다.
파출소장이 먼저 출입문으로 퇴장하면 이미자가 조사장을 잠시 보다가 나간다.
복주가 계산을 한다.
조 사 장 : (미안한 척)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게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 죄송합 니다. 진실은 꼭 밝혀지는 법이니까 힘 내십시오!
복주와 상태가 힘없이 퇴장한다.
조 사 장 : 씨팔, 먹고 살기 힘드네.
암전.
무대 밝아지면 조사장은 카운터에 앉아있고 복주와 상태가 쇼파에 앉아있다.
테이블엔 빈 소주 병, 몇 개 안 남은 오징어 조각이 접시에 놓여있다.
상 태 : 벌써 며칠 째야. 이제 그만 잊어버리자. 우리 돈 내고 기분 냈다고 치면 되 지, 뭐. 하마터면 우리 우정도 상할 뻔했잖아.
복 주 : 분명 그 여자 짓이야. 너도 하는 짓 봤지? 실실 웃으며 꼬리치는 거. 수표 만 빼 가지고 어딘가에 짱 박아 놓은 걸 거야.
상 태 : 안창따기가 전문이라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알아채겠어? 나이트간 셈 치 자.
복 주 : (조사장을 흘겨보며) 저 아저씨도 의심스러워.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잖 아. 젠장, 이젠 모든 인간들이 다 도둑놈으로 보인다니까!
상 태 : 너, 설마 아직도 날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복 주 : (쓴웃음 지으며) 너만 빼고. 그나저나 의심해서 미안하다. 공과금도 다 니 돈으로 내고.
상 태 : 나도 그 여자한테 홀려서 널 의심했었어. 미안하다.
이때, 평상복 차림의 파출소장이 급히 등장한다.
파출소장 : (주인에게 소리치며) 너, 이 자식! 누구 말아먹을 일 있어? 사정 봐주니까 은혜를 이딴 식으로 갚아? (주인 멱살을 잡으며) 책임져. 책임지라구!
조 사 장 : (황당해하며) 왜, 왜 그러세요, 소장님?
파출소장 : 왜 그래? 내 모가지 잘라놓고 왜 그래? 어디다가 위조 수표를 내밀어? 난 혼자 못 죽어. 당신도 콩밥 먹을 각오해야 할 거야!
파출소장이 조사장의 멱살을 잡아끌고 나간다.
조사장이 복주와 상태를 노려보며 끌려나간다.
복 주 : 위조 수표? 혹시 그 수표도?
상 태 : 글쎄. 어쨌거나 이미 손 떠난 거 그만 생각하자.
복 주 : 젠장, 그나저나 며칠 째 계속 술이라 그런가 속이 쓰리다. 계란탕 끓여 줄 래?
상 태 : (웃으며) 뭐니뭐니해두 계란탕이 최고지?
상태가 지갑에서 만 원을 꺼내 놓는 동안, 복주가 무대 뒤쪽에서 옥상 난간을 가져와 무대 앞쪽에 놓는다.
전체적인 조명이 꺼지며 무대 앞쪽만 중간 밝기로 켜진다.
복 주 : 아, 시원하다!
상 태 : 계란탕이?
복 주 : 아니, 바람이. (웃으며) 오랜만에 먹으니까 정말 맛있다.
상 태 : (객석을 보며) 여전히 사람들은 술집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는구나. (웃으며) 언젠가 우리도 나이트 가서 양주 시킬 때가 오겠지?
복 주 : 상태야. 차라리 그 돈 있으면 말이지. 백만 원이면 천 원짜리로, 천만 원이 면 만 원짜리로 바꾸는 거야. 그리고 시내 빌딩 옥상에 올라가 뭉탱이로 뿌리는 거지. 그럼, 그 돈 주으려고 사람들이 개떼같이 몰려들겠지? 이놈 저놈 할 거 없이 서로 갖겠다고 아웅대는 꼬라지를 보면 속이 다 후련하겠 다.
상 태 : (웃으며) 그래. 정말 볼만 할 거야. 그래도 어쩌겠어? 돈이 필요하니까 다 들 그러는 거지, 뭐.
복 주 : 넌 좋겠다. 돈 많아서?
상 태 : 내가 무슨 돈이 많아?
복 주 : 너 계란 많잖아. 그거 돈 받고 파는 건데 언젠가 다 돈으로 바뀔 거 아냐.
상 태 : 그 전에 니 술안주로 없어지지 않을까?
복 주 : 야, 술 얘기 하지 마라. 징글징글하다. (관객을 향해) 여러분, 연말인데 술 적당히 드십시오. 특히, 양주요. 하하하.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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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대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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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 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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