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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근-희곡3(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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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17회 작성일 04-11-16 08:42

본문

  안 되면 되게 하라.  

  등장인물
  김 사장 : 40대 중반의 남자. 부동산 주인.  
  한 사장 : 40대 초반의 남자. 쌀집 주인.  
  영업사원 : 40대 초반의 남자. 풋내기 영업사원.
  이 양 : 20대 후반의 여자. 다방 종업원.
  한사장의 부인. 중년의 남자.

  때
  어느 무더운 여름철 낮.

  곳
  부동산 안.


  무대 중앙에 큰 이동식 자석 장기판이 세워져 있고 그 앞으로 긴 테이블과 네 개의 의자가 두 개씩 짝을 지어 있다. 테이블 위엔 화장지와 전화기, 서류철, 접이식 안테나가 놓여있다.  
  무대 왼쪽으로 하얀색 커튼이 쳐진 화장실이 있고 들어가는 사람은 실루엣으로 보일 수 있게 하며 무대 오른쪽을 출입문으로 한다.

  무대 밝아지면 말쑥한 정장 차림의 김사장과 평상복 차림의 한사장이 테이블 사이를 두고 앉아 장기에 열중하고 있다.

  김 사 장 : 장기 두는 사람 어디 갔나? 말이 안 움직이네? (한사장을 보며) 아무래도               나한테는 안 되겠지? 이쯤에서 그만 포기해. 자네도 장사해야 먹고 살 거               아닌가? 마지막 판이니 오천 원만 받을게.
  한 사 장 : 가만 좀 있어 봐요. 야구는 9회부터 시작인 거 몰라요?
  김 사 장 : 누차 얘기하는 거제만 자네는 그게 문제야. 똥하고 된장하고 구별을 못하               거든. 야구는 야구고 장기는 장기야, 이 사람아.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사람               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런 말도 모르나? 오늘은 아니구나 싶을               때 일보 후퇴하고 이보 전진의 기회를 만들어야지. 그러니까 맨날 그 모양               아니야.
  한 사 장 : (약간 언성을 높이며) 내 모양이 어때서 자꾸 그러는 거예요!
  김 사 장 : 내가 유니버시티를 다닐 때 말이지. 수많은 책들을 읽었는데 그 중 한 책               에 이런 말이 있어. 너 자신을 알라. 들어는 봤는가?  
  
  한사장이 지겨운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화장지를 대충 뜯고 일어선다.

  김 사 장 : 또 가나? 싸구려 소주를 마셔서 그래. 양주를 좀 마셔보라구.
  한 사 장 : (유심히 장기판을 쳐다보며) 양주 마시는 형님도 설사하긴 마찬가지잖아요.  
  
  한사장이 급히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다.

  김 사 장 : (혀를 차며) 그래, 맨날 소주나 마시면서 그 모양으로 살아라.

  화장실을 가린 커튼으로 앉아있는 한사장의 옆모습이 실루엣으로 보인다. 무언가를 적는 듯한 동작의 한사장.
  순간 뿌지직 하는 효과음이 들리고 의자에 앉아있는 김시장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잠시 후, 물 내리는 효과음이 들리면 한사장이 수첩을 들고 급히 나와서 의자에 앉는다.
  
  김 사 장 : 앉아있는 동안 뾰족한 수라도 생겼나? 아까도 뛰어 들어오더니.
  한 사 장 : (수첩과 장기판을 대조해 보며) 체, 어쩌다 이렇게 됐지?
  김 사 장 : 참 나...... 이봐, 이런 식으로 사람 모욕 주면 다시는 장기고 나발이고 없               어!
  
  한사장이 말없이 일어나서 장기판 앞으로 다가간다.
  이때, 한사장의 부인이 들어온다.

  부    인 : (쌀쌀맞게) 배달 주문 들어왔어요.
  한 사 장 : (장기판만 보며) 몇 갠데?
  부    인 : 이번에도 하나면 안 갈 거유?
  한 사 장 : (짜증스럽게) 몇 개냐니까?
  부    인 : 철원 한 포.
  한 사 장 : 이젠 배달도 이 모양이구만. 남철이 시켜. 이거만 끝내고 금방 갈 테니까.
  부    인 : 남들처럼 애 과외는 못 해줄망정 자꾸 불러재끼면 언제 공부해요!
  한 사 장 : (여전히 장기판에 눈을 떼지 못하며) 그럼 전엔 왜 공부 못 했는데? 전에               도 불러재꼈나? (부인 보며) 애비는 한 푼이라도 벌려고 뙤약볕에 쌀 푸대               를 들고 돌아다니는데 마빡에 피도 안 마른 것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꼬나               물고 다녀! 도대체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야!
  
  전화기 벨소리 효과음이 들린다.

  김 사 장 : (수화기를 받으며) 네, 한탕 부동산입니다. (아부하는 목소리로 바뀌며)                  네, 사모님.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팔리는 대로 곧장 전화 드리겠                습니다...... 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수화기를 놓으며) 아, 이거 오 억짜                리가 안 나가네. 까딱하단 대풍 부동산에서 선수 치는데.
  부    인 : 정말 안 갈 거예요? 남철이 집에 없단 말이에요.
  한 사 장 : (장기판만 보며) 이번만 당신이 가.
  부    인 : 내가 가면 당신이 가게 지킬 거예요?
  한 사 장 : (한숨 쉬며) 미치겠군. 한 포 팔아봤자 얼마나 남는다고. 그냥 없다 그래!
  부   인 : (김사장을 노려보며 중얼거리듯) 노름이 사람 망치는 건 들어봤어도 부동                산이 사람 망치는 건 처음 보네, 정말. (나가면서) 귀신은 뭐하나 몰라.
  김 사 장 : (나가는 부인을 보고 중얼거리듯)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갈 수밖에.
  한 사 장 : 뭐라구요?
  김 사 장 : 포기해. 마냥 본다고 수가 생기나? 자네가 해병대 출신이야? 자네는 공익               이야, 공익. 대한민국 공익 출신이 안 되면 되게 하는 거 봤어? 걔네가 왜               안 되는 걸 내버려두는지 아나? 왜! 퇴근하니까. 다섯 시 딱 되면 안 되                 면 되게 하는 게 아니라 다섯 시면 칼이다야.
  한 사 장 : 자꾸 그러지 말아요. 그러는 형님은 해병대유? 방위잖아요.
  김 사 장 : (혀를 차며) 내가 해병대를 예로 든 건 국방부 출신이란 소리야. 해병대든               방위든 다 같은 국방부 소속이란 말이지. 그러나 공익은 행자부 소속이거               든.

  출입문으로 중년남자가 들어온다.

  중년남자 : 네 명 가족이 살만한 괜찮은 집 있습니까? 방 세 개 정도로요.
  김 사 장 : (일어서며) 어서 오세요.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아주 괜찮은 물건이 들               어 왔는데 한 번 보시죠.

  김사장이 테이블에 놓인 서류철을 집어 들고 중년부부와 무대 빈 공간으로 가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한 사 장 : 다섯 시면 칼이라니, 가끔 야근도 하는데. (장기판을 보며) 그나저나 생돈               이 또 나가게 생겼구만.

  김사장과 중년남자가 무대 중앙으로 나온다. 김사장이 장기판을 뒤로 돌리자 판 전체에 커다란 동네 지도가 붙어있다.

  김 사 장 : (안테나를 들어 쭉 빼내선 지도 어느 한 곳을 찍으며) 여깁니다. 아! 위치               좋고.
  중년남자 : 제가 전세를 사는데 몇 년 만에 집 한 채 장만하게 됐습니다. 사진 보니까               괜찮은 거 같은데 좀 더 싸게는 안 될까요?
  김 사 장 : (정색을 하며) 손님. 제가 아까 말씀 드렸죠? 이런 위치에 이만 한 집은                 길어야 일주일 안에 나갑니다. 없어서 매매가 안 되는 실정이에요. 다른                데 가 보세요. 이 가격에 이런 집 없습니다. 빨리 결정하시는 게 손님한                 테도 좋고 저도 좋아요. 집주인이 급매로 이 가격에 내놓은 겁니다.
  중년남자 : (망설이듯) 일단은 알겠습니다. 며칠 후 다시 오겠습니다.

  김사장이 나가는 중년남자를 보며 안테나를 접고 앉는다.

  한 사 장 : 그 집은 안 나간 지 삼 개월이 넘은 거잖아요? 며칠 전엔 일 억 부르더니               오늘은 일 억 이천을 불렀어요?
  김 사 장 : 그게 장사라는 거야, 이 사람아. 까놓고 말해서 말이야. 작년에 자네 과로               로 쓰러지면서도 적자 났지? 자넨 신문도 안 보나? 요즘 젊은 것들은 벤처               다 주식이다 해서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는데 뼈 빠지게 땀 흘리곤 적자라               니, 그게 장사야?
  한 사 장 : 벤처나 주식해서 망한 사람도 많다고 하던대요, 뭘. (한숨쉬며) 이번 판 오               천 원만 받는다고 했죠?
  
  한사장이 주머니에서 꼬깃한 돈을 꺼내 테이블에 놓는다.

  김 사 장 : (돈을 펴며) 돈을 이렇게 간수하니 돈이 붙을 리가 있나. 돈이 돈을 먹는               거야, 이 사람아. (중얼거리듯) 이런 돈 보면 돈이 들어오다가도 내빼는데.                 (한사장 보며 약 올리듯) 자네는 나한테 안 돼. 이젠 장사하러 가 봐야지?
  한 사 장 : (무대를 왔다갔다 하다가) 따악 한 판만 더 해요, 네?
  김 사 장 : 쓰리고도 모자라서 피박까지 당하려고 그래? 여기서 끝내. 자네의 얇은 주               머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한 사 장 : (기분이 상한 듯) 내가 언제 내기 돈 안 준 적 있어요!
  김 사 장 : (달래듯) 미안해서 그러지. 자네, 오늘 버드데인 거 같은데, 괜찮겠어?
  한 사 장 : 버드...... 데이요?
  김 사 장 : 버드. 아메리카에선 새를 버드라고 불러. 즉 새 되는 날이다 그거지.
  한 사 장 : 새도 새 나름이죠. 독수리가 될지 달구새끼가 될지 누가 알아요?
  김 사 장 : 아, 아메리칸 드림. 아니지, 코리안 드림! (정색하며) 이번 판은 안 깎아줘.    
  김사장과 한사장이 장기판 배치를 정렬하고 있을 때 출입문으로 정장을 입은 남자가 건강보조식품을 들고 들어온다.

  영업사원 : 더운데 수고 많으십니다.
  김 사 장 : 어떻게 오셨습니까?
  영업사원 : 안 사셔도 됩니다. 일단 제 얘기나 한 번 들어보십시오.
  김 사 장 : (건강보조식품을 보고 귀찮다는 듯) 얼마 전에 보신탕 먹어서 그런 거 안               먹어도 됩니다. 딴 데나 가 보세요.
  영업사원 : 안 사셔도 됩니다. 일단 제 얘기나 한 번 들어보시고.
  김 사 장 : 이보슈. 딱 보면 살 사람인지 안 살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되슈?
  영업사원 : 제가 이 일 시작한지 얼마 안 돼나서.
  한 사 장 : (한숨쉬며) 지금 그거 얘기 들을 때가 아니니까 다른 데 가 보십시오.
  영업사원 : 장기 두시는 거 같은 데, 그럼 잠깐만 구경 좀 하다 가면 안 될까요? 계속               돌아다녔더니...... 날씨도 푹푹 찌는 게.
  김 사 장 : (선심 쓰듯) 그렇게 하슈. 대신 훈수 두면 안 돼요.
  영업사원 : (한씨 옆에 있는 빈 의자에 앉으며) 당연하죠.

  장기판이 정렬되면 김사장과 한사장이 일어나서 장기를 진행시킨다. 몇 번의 장기 말이 빠르게 오간다.

  한 사 장 : (영업사원을 보며) 그런데 선생님은 언제부터 저거 팔러 다녔어요?
  영업사원 : 저요? (한숨 쉬며) 이제 한 달 조금 넘었죠.
  한 사 장 : (일어나서 장기판 말을 옮긴 후) 선생님도 사연이 많은 사람 같네요.
  영업사원 :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나 자기 얘기 쓰면 책 두세 권은               나올 분량이죠.
  김 사 장 :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영업 뛸 사람처럼은 안 보이는데 혹시 요즘 유행하                는 명퇴?
  영업사원 : (허탈한) 말이 명퇴지 권고사직이죠. 토사구팽이나 다름없습니다. 대학 졸               업하고 사 년 만에 취직이 됐죠. 정말 청춘 다 바쳐 일했는데 이제 와서                그러면 어떡하라는 건지.
  김 사 장 : (훈계하듯) 뭐, 이런 말 선생에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희망을 갖고               삽시다. 혹시 군대는 어디 갖다 왔는지?
  영업사원 : 군대요? 칠사단 나왔는데요?
  김 사 장 : 아! 국방부 소속.
  영업사원 : 네? 그렇죠. 육군이 당연히 국방부 소속이죠.
  김 사 장 : 나도 국방부 소속이오. 희망을 갖고 삽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뭐 그런                말도 있지 않소.
  영업사원 : 네...... 혹시 해병대 나오.
  김 사 장 : 거기까지. 그냥 국방부 소속이란 것만.
  한 사 장 : 그만 국방부 국방부 해요. 방.
  김 사 장 : 자네 차례야. 장기 안 두나?
  
  김사장과 한사장의 말이 빠르게 몇 번 움직인다.

  김 사 장 : 그런데 선생 전 직장은 어디?
  영업사원 : 네. 대박 생명보험에 있다가 얼마 전에.
  한 사 장 : 대박 생명이면 얼마 전에 워크 아웃 된 데잖아요?
  김 사 장 : (거만한 말투로) 아, 대박 생명에 계시다가 지금은 영업을 뛰는군요. 그 정               도 회사면 퇴직금이 만만치 않을 텐데.
  영업사원 :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이야 나왔죠. 근데, 믿었던 친구가 이민을 가니까                       자기 주식을 사라는 겁니다. 한창 주가도 오르고 해서 전부 쏟아 부었는데                 알고 보니 부도나기 직전이지 뭡니까. 주가조작한 놈들이야 처벌됐지만 제                 돈은 누가 돌려주냐구요. 퇴직금 날려 믿었던 친구 잃어, 이렇게 나와 있                  습니다.  
  김 사 장 : 이런. 어떻게 빼도 박도 못하게 됐수?
  영업사원 : 그렇죠. 이 나이에 아는 거라곤 책상머리에서 펜대 굴리는 거밖엔 없                   는데 가진 것까지 다 날렸으니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돈이 돈을 먹는다                 고 어떤 놈들은 이 구멍 저 구멍으로 잘도 먹는 데 어떤 놈은 구멍이란 구               멍으로 다 세나 가고. 세상에 정공법이 안 통한다는 걸 이 나이 돼서야 알               았습니다.
  김 사 장 : 정공법이란 게 말이오, 다 만들기 나름이란 말이지. 막말로 오성 그룹 김               재영이 봐봐. 계열사 돈 돌리면서 차익 빼먹는 거. (자신의 무릎을 탁 치                며) 야! 나, 그거 보고 난 놈은 난 놈이다 싶더라니까.  
  한 사 장 : 그거 지금 불법이라고 여기저기서 막 때리던데요? 시민연대고 방송이고.
  김 사 장 : (혀를 차며) 언제 철들래? 걔네가 때린다고 KO 당하나? 그래봤자 헛빵이               야. 계란 백 개 천 개를 바위에 던져봐라. 바위가 깨지나. (거만하게 한쪽               다리를 넓게 다른 다리에 걸치고) 시민연대고 나발이고 긁어모으는 게 장               땡이야. 그게 세상 살아가는 정공법이란 거지. 불법이면 어떡할 건데? 무               조건 되게 하면 되는 거야. (영업사원 보며) 안 그렇수?
  
  영업사원이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몇 번의 장기 말이 움직인다.

  한 사 장 : 나야 못 배워서 그렇다지만 선생은 배운 사람이 그렇게 됐네요. 그나저나                그건 효과 좀 있는 거예요?
  영업사원 : (활기찬 목소리로) 이거요? 장어와 녹용을 섞은 증탕인데 아침이 틀려집니               다. 더도 말고 딱 한 달만 드셔 보세요. 마누라 아침 반찬이 틀려진다니까               요.
  김 사 장 : 내 전에 그거 비슷한 거 먹어 봤는데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아침 반찬이 틀               려 본 역사가 없다니까.
  영업사원 : 저도 대박 다닐 때 이거저거 먹어 봤는데 효과를 못 봤거든요. 근데, 제가               파는 이상 일단은 제가 먹어봐야 하잖습니까? 지금 한 달 조금 넘었는데                정말로, 진짜로 효과 있습니다. 괜히 장어랑 녹용 얘기하는 거 아니잖아요.               서비스로 알로에 비타민도 두 개 드립니다.

  오토바이가 서는 효과음이 들리고 출입문으로 이양이 보자기를 들고 들어온다.

  이    양 : 어휴, 더워. 한사장님 요즘 자주 계시네요?
  한 사 장 : 이양이 왠일이야?
  김 사 장 : 내가 시켰어. 좀 땄는데 커피는 내가 살게. 그나저나 이양아. 시킨 지가 언               젠데 지금 오냐? 단골은 신경 좀 써야 되는 거 아니냐?
  이    양 : (김사장 옆에 앉으며) 단골이면 뭐해요? 이깟 커피 몇 잔 더 팔아봤자 얼               마나 남는다구.
  김 사 장 : (이양 보며) 요 앞에 다방 하나 생겼든데 그쪽 애들이 예쁘다며?
  이    양 : 왜 이러실까. 김사장님이니까 좀 더 오래 있다 가는 거 몰라서 그러세요?               근데, 두 잔 시켰잖아요. 저 분은?
  영업사원 : 전 괜찮습니다.
  이    양 : (건강보조식품을 보고 알았다는 듯) 아!

  이양이 보자기를 풀고 냉커피를 세 잔 타서 김사장과 한사장, 자기 앞에 놓는다.

  한 사 장 : (중얼거리듯) 돈 좀 있으면 사서 먹겠는데.

  일어나서 장기 말을 집고 놓으려할 때 영업사원의 헛기침 소리가 난다. 그제야 한사장이 아차한 듯 다른 곳에 놓는다.

  김 사 장 : (영업사원을 노려보며) 그거 얼마요?
  영업사원 : 네? 한 박스에 칠만 원입니다. 정말 효과 있으니까 믿으시고 드십시오.
  김 사 장 : 괜찮은 거 같은데 일단은 이거 끝내고 얘기 합시다. 이겨야 사든지 말든지               할 거 아뇨.
  
  김사장의 말에 영업사원의 의자가 한사장 옆에서 김사장 쪽으로 약간 옮겨 앉는다.
  
  이    양 : (냉커피를 홀짝거리며 아무렇지 않게) 김사장님 말이 더 많네? 김사장님이               이기고 있어요?
  한 사 장 : (약간 언성을 높이며) 이봐, 이양! 말이 많다고 이기고 있는 게 아니고 중               요한 것도 아니야. 대세를 봐야지.
  김 사 장 : 그럼. 높이 나는 새가 많이 본다고 대세를 읽을 줄 알아야지. 사회의 대세               도 그렇고 장기판이 대세도 그렇고.

  김사장의 말에 영업사원의 의자가 슬며시 조금 더 옮겨간다.
  한눈에 장기판을 봐도 한사장이 수세에 몰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 사 장 : (점점 멀어진 영업사원의 의자를 보고 굳은 표정과 목소리로) 그렇게 좋은               거면 나랑 마누라랑 두 박스는 있어야겠구만.

  영업사원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이양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김 사 장 : (깔보는 듯) 자네가 돈이 있는가? 대세도 기울어진 마당에. 내기 돈은 외               상이 안 되는 거 알지?
  한 사 장 : 게임은 끝나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요? 누가 장어녹욕증탕 먹는지 나중에                보자구요.
  김 사 장 : (일어나서 장기 말을 놓고 앉으며) 아침반찬 바뀌면 좀 갖다 줄게.
  한 사 장 : (기다렸다는 듯) 올커니!

  한사장이 재빨리 일어나서 김사장의 말을 집어먹는다.

  김 사 장 : (다급한) 자, 잠깐만! 아직 안 했다니까.
  한 사 장 : 안 하긴 뭘 안 해요. 저기다 옮기고 앉아놓고선. (영업사원과 이양 보며)                이봐요, 이양. 봤지? 저기다 옮기는 거?
  김 사 장 : 자네도 저번에 잘못 둔 거 내가 봐 줬잖아. 이봐, 한사장. 나도 한 번 봐                줄 테니까 한 수만 물리자구.
  한 사 장 : (여유롭게) 내기장기에서 물리는 게 어딨어요? 일단 손놓으면 그걸로 땡인               데. 그리고 지금 대세가 그런 대센가?

  김사장이 화난 상태에서 두 사람이 빠르게 장기 말을 움직인다.
  잠시 후, 상황은 점점 한사장에게 유리하게 되어간다.
  꼬르륵거리는 효과음이 들리자 여유롭던 표정의 한사장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    양 : (한사장의 얼굴 보며) 한사장님. 어디 아프세요?

  모두들 한사장의 얼굴을 본다

  한 사 장 : (일어나서 무대 중앙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큰 소리로 김사장에게) 고               대로, 고대로 놔둬요!

  테이블에 놓인 화장지를 통째로 가지고 재빨리 왼쪽 화장실로 뛰어간다.
  커튼으로 앉아있는 한사장의 실루엣이 보이고 뿌지직하는 효과음이 더욱 크게 들린다.

  김 사 장 : (손가락 세 개를 펴 영업사원을 본 후, 이양을 보며) 날도 더운데 일하기               힘들지? (일어나서 장기판으로 다가가며) 한 삼일 여기로 티켓 끊고 놀러               와.  

  김사장이 자신의 말에 손을 대자 영업사원과 이양의 고개가 다른 곳으로 향하고 김사장이 말의 위치를 바꾼 후 의자에 앉는다.
  곧이어 한사장이 급히 나와서 의자에 앉는다.
  물 내리는 효과음은 들리지 않는다.

  한 사 장 : (장기판을 뚫어지게 보더니 큰 소리로) 뭐야? 어떻게 된 거예요? 왜 졸이               저기 있어요. 네?
  김 사 장 : 뭔 소리야? 졸이 자네한테 뭐라고 했나? 가만히 있는 졸 가지고 왜 그래?
  한 사 장 : (언성 높이며) 사람이 그러면 안 되죠. (테이블에서 안테나를 쭉 뽑고 장기               판의 위치변화를 지적하며) 옮겨놨잖아요. (영업사원과 이양을 보며) 이봐               요, 이양. 옮겨논 거 봤잖아. (두 사람의 시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을                보고) 셋이서 짰어요?
  김 사 장 : 자네 화장실에서 더위 먹었나? 멀쩡한 장기판 가지고 왜 그래? 이 사람들               이 뭘 어쨌다고 그러냐구.
  한 사 장 : (언성 높인 채) 사람들이 말이야. 양심들이 없어. 그깟 돈 몇 푼 받고 양심               을 팔아!
  이    양 : (멋적은 목소리로) 무, 무슨 소리예요? 돈을 받긴 누가 돈을 받았다고 그               러는 거예요? 한사장님, 너무 하신다.
  한 사 장 :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보슈, 장어녹용양반. 내가 이기면 두 박스 산               다고 했잖소. 솔직히 말해 봐요. 저 양반이 옮기는 거 봤죠?

  영업사원이 시선을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김 사 장 : 이 사람이 실성을 했나. 자네가 나한테 이 양반 저 양반 할 위친가? 사람                  이 예의가 있어야지.
  한 사 장 : 지금 이 상황이 예의 찾을 상황이에요? 그리고 형님 대접 해줄 때 제대로                  하란 말입니다! 그래봤자 두 살 차 밖에 안 나면서.
  김 사 장 : 이 사람이 못 배운 거 티내나, 두 살 차면 밥그릇이 몇 갠데. (중얼거리듯)               대세를 볼 줄 알아야지.  
  한 사 장 : (굳은 얼굴로) 대세가 그렇단 말이죠? (주머니에서 꼬깃한 만 원짜리 두                 장을 테이블에 ‘탁’ 놓고) 자, 됐죠? (허벅지로 안테나를 ᄀ자로 구부려                    뜨린다)
  김 사 장 : (달래듯) 아직 게임 안 끝났어. 게임이란 건 끝나봐야 아는 것이라니까?  

  한사장이 세 사람을 노려보더니 안테나를 바닥에 내팽겨 치며 소리나게 출입문으로 걸어 나간다.
  김사장의 득의의 찬 표정과 영업사원, 이양의 죄진 표정이 대조를 이룬다.

  김 사 장 : 두 박스에 얼마라구?
  영업사원 : 세 박스에. 네? 두...... 박스요?
  김 사 장 : (품에서 지갑을 꺼내며) 싦음 관두고.
  영업사원 : 아, 아닙니다. 한 박스에 칠만 원이니까 십사 만 원입니다.
  김 사 장 : 좀 비싼 거 아닌가? 십만 원만 하지?
  영업사원 : 아니, 십사만 원짜리를 십만 원에 어떡합니까? (애원하듯) 그러지 마시                     고 두 박스만이라도 그냥 드십시오. 네?
  김 사 장 : 하긴 당신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이양아, 알아서 삼일 티켓 끊어. 하루 두               시간씩만이야.
  이    양 : 에게. 겨우 두 시간?
  김씨 : 싫어?

  암전

  무대 밝아오면 김사장과 한사장이 장기판을 사이에 두고 장기를 두고 있다. 장기판의 상황은 한사장이 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 사 장 : 이봐. 나도 사람인데 자네가 이렇게 지기만 하니까 미안하잖아.
  한 사 장 : (한숨을 쉬며) 자, 여기 있어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빳빳한 만 원 권               지폐 두 장을 꺼내서 테이블에 놓으며) 부탁이 있어요. 나도 사람인데 맨               날 지기만 해선 잠이 안 와요. 딱 한 판! 이 한 판지더라도 다시는 형님과               내기 장기 안 할 테니까 큰 거 한판만 해요.

  한사장의 벌어진 지갑으로 많은 지폐가 김사장에게 보인다.

  김 사 장 : 얼마나 큰 거? 다섯?
  
  한사장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인다.

  김 사 장 : 이 만?...... (갑자기 놀라며) 이, 이 십?
  한 사 장 : 정말 마지막이에요. 이 한 판에 목숨 거는 게 아니라 끊어 볼려구 하는 거               예요. 크게 잃어야 정신 차릴 거 아녜요.
  김 사 장 : (난감한 듯)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이십은 좀.
  한 사 장 : (진지한 목소리로) 형님 원망 안 해요. 한두 번인가요. 남철이 엄마 찾아오               는 것도 짜증나구요. 나두 이젠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서 비지땀 흘리며 살               랍니다.
  김 사 장 : (미심쩍은 듯) 그래두 이 십은 좀.
  한 사 장 : 인생은 도박의 연속이라잖아요. 국방부가 이기나 행자부가 이기나, 한 번                    해봐요. 나라 지키는 국방부가 간이 콩알 만해서 나라 지키겠어요?
  김 사 장 : (마지못한 척) 자네가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도 자네랑 내기 장기               두는 거 속 편하진 않았다구.

  김사장과 한사장이 장기판을 정렬하고 몇 번의 장기 말들을 움직인다.
  이때 오토바이가 서는 효과음 들린 후, 이양이 보자기를 들고 들어선다.

  김 사 장 : (이양 보며 놀라는) 티켓은 그저께 끊났는데?

  이양이 웃으며 한사장의 빈 의자 옆에 앉으며 보자기를 푼다.

  한 사 장 : (무심하게) 목이 컬컬해서 제가 시켰어요.
  김 사 장 : 언제?
  한 사 장 : 아까 첫 번째 판 끝나구 형님 화장실 갈 때요. (웃으며) 제가 살게요. 아,               참 이양아. 형님 어제 양주 많이 먹어서 설사약 사오라구 했는데 사 왔냐?
  이    양 : 깜박했네요. (보자기를 풀며 슬쩍 미소 짓고) 어떡하죠?

  출입문으로 영업사원이 겸연쩍은 모습으로 건강보조식품을 들고 들어온다.

  영업사원 : (쓴 웃음을 지으며) 안녕들 하십니까?
  김 사 장 : (놀라며) 당신은!
  한 사 장 : (관객들 앞으로 다가가 웃으며) 여러분, 저 어때요?
  
  암전.

200 X 81
안 대 근
29세.
서울시 송파구 가락 2동
신한 에스 빌 101동 5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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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04-7887
017-720-0005
1975. 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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