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리토피아 신인상

신인상
수상자
투고작

김지애-단편소설2(2004.6.9)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16회 작성일 04-11-15 21:24

본문

<단편소설>   원고지: 200×71

달빛 그림자

                                                                             -  김지애

  그 날 아침, 나를 깨운 건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 소리였다. 신경질적인 그 소리는 집안 가득 고인 고요한 적막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선뜻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주춤거리는데, 아버지의 웅얼거림이 들릴 듯 말 듯 귓가에 맴 돌았다. 아버지가 집을 비운 지 한 달이 넘은 시점이었다. 일간지의 ‘이 사람을 찾습니다’에 광고까지 냈는데도 아버지와 비슷한 인상 착의를 가진 사람을 봤다는 전화 한 통 없었다. 파출소에 실종 신고를 하고, 저녁이면 역전이나 공원을 다니며 아버지를 찾아보았지만 매번 헛수고였다. 집 주변의 개 짖는 소리, 이웃 사람의 발소리 하나 하나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잠이 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어머, 웬일이니, 웬일이야! 얘가 대체 여긴 왜 들어왔대?”
  호들갑스러운 연주의 목소리가 나를 안방으로 이끌었다. 어머니 곁에 영구가 뒤집혀진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네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바로 서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영구의 몸부림은 어딘지 모르게 필사적이었다.  
  “잠결에 사타구니 있는 데가 축축하면서 물컹한 느낌이 들잖니. 그래서 화들짝 놀라 보니깐 이 녀석이 내 가랑이 사이에서 다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거야, 망측하게시리.”
  몸을 바로 세우기 위해 목에 잔뜩 힘을 주는 영구를 보며 어머니는 발끈 했다. 연주도 기가 차다는 듯 핏대를 세우고 떠들어댔다.
  “글세, 어젠 내가 남자 친구랑 전화 통화를 하는데 저 녀석이 방으로 미적미적 들어오더라. 귀찮기도 하고 해서 내버려뒀더니 통화 내용을 엿듣기라도 하려는 듯이 머리를 쭈욱 내리 빼곤 멀뚱멀뚱 보잖아. 괜히 기분이 다 나쁘더라구. 개도 사람하고 오래 살면 자기가 사람인 줄 착각한다던데, 쟤도 그런 거 아냐?”
  “방생을 하던가 해야지. 이거야 원!”
  어머니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버지가 우리 자매보다 더 애지중지 여기던 영구는 이미 천덕꾸러기 그 이상이었다. 처음에 들여올 적만 해도 영구는 성냥갑만한 게 작고 귀여웠다. 당시에는 거북이 지금처럼 흔한 애완 동물이 아니었기에 신기하기도 했다. 한 쌍이 아니라 한 마리만 덜렁 있어서 여느 동물처럼 외로워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영구는 아버지의 정성으로 잘 자랐다. 손바닥 두 개만큼 커 버린 영구를 위해 아버지가 베란다를 트는 공사를 했을 땐, 어머니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베란다를 터서 소파를 안쪽으로 넣기만 해도 거실이 한결 넓어 보일 거라며 좋아하던 어머니였다. 납득하기 어려운 건 연주나 나도 마찬가지였다. 비좁은 어항에서 하루 종일 눈만 끔벅거리는 영구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 평 남짓한 베란다 전체를 내 주는 게 달가울 리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정성껏 영구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빛깔 좋은 자갈을 깔고 수초를 심고 작은 물레방아와 분수대까지 설치하니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영구가 일광욕과 물 속을 자유로이 헤엄칠 수 있는 새 보금자리를 만나 눈을 끔벅이며 좋아할 무렵, 아버지는 더 이상 출퇴근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먹는 게 신통치 않더니 영구는 여전히 몸을 뒤집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엎어놓기가 무섭게 목의 혈관이 팽팽해지면서 그 힘으로 몸을 뒤집던 왕년의 녀석이 아니었다. 나는 영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베란다의 수족관으로 갔다. 수족관의 물은 잔뜩 오염되어 개천에 흐르는 폐수와 진배없는 악취를 내뿜었다. 수챗구멍에 걸러진 음식 찌꺼기의 퀴퀴한 냄새에 속이 트적지근했다. 냄새가 구리고 독해 콧속이 시큰하고 아렸다.
  영구의 눈은 부레 옥잠의 잎자루처럼 벌겋게 부풀어 있었다. 딴에는 자주 청소를 한다 하는데도 수족관의 고인 물은 금방 더러워졌고, 혼자 물을 갈아 주는 것도 힘에 부치고 번거로웠다. 물 밖에서 먹이를 잘 먹지 못해 깨끗이 물을 갈아 주고, 먹이를 줘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녀석의 반항심에 약도 올랐다. 영구는 신선한 육식성 먹이가 아니면 좀처럼 먹지 않았다. 시중에 파는 ‘맛기차’나 ‘감마루스’같은 사료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그랬듯 살아 있는 생명체를 녀석에게 공급하자니 영 께름칙했다. 방바닥을 질주하는 등이 석탄처럼 까만 바퀴를 날름 손으로 잡아 던져 줄 정도로 녀석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지 않았다.
  잡식성이긴 하나 영구는 육식을 더 즐겼다. 피가 적당히 스며들은 돼지고기 조각이나 살아 있는 바퀴, 귀뚜라미, 냇가에서 잡아온 피라미는 녀석의 입맛을 돋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이다. 때때로 성묘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논두렁에서 새끼 붕어와 메두사의 머리를 연상시키는 한 뭉텅이의 미꾸라지를 잡아다 물에 넣어 주면 한바탕 아수라장이 되었다. 돌멩이 위에서 일광욕을 하던 영구가 물 속으로 뛰어들어 미꾸라지를 물어뜯고 앞발로 할퀴며 생채기를 내자 멀그스름한 핏물이 배어 나왔다. 미꾸라지의 살점을 걸신들인 양 물어뜯은 탓에, 미꾸라지의 미끈한 몸체는 오래 입어 너덜너덜해진 잠옷의 레이스마냥 흐물흐물 거렸다. 그렇게 영구가 포식을 한 날이면 하루에도 두서너 번 물을 갈아 줘도 수족관에서는 코가 얼얼할 만큼 역겨운 하수 냄새가 진동을 했다.

  주일인데도 텔레비전은 재방송만 방영하고, 속이 비치는 누드 전화기는 울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연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서 휴일도 없이 바쁘다며 서둘러 출근하고, 어머니는 잠을 설쳐 부스스한 얼굴로 아버지를 찾아 등산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집안 가득 눅진한 공기가 엄습해 왔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곰국을 끓이는 날이면 집안 곳곳에 누린내가 배어들곤 했는데 그런 후텁지근하고 눅눅한 냄새가 코끝에 확 풍겼다. 나는 방마다 다니며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켰다. 거실의 이중창과 안방의 창문을 여니 마파람이 불어 기분이 상쾌했다. 바람이 거실 중앙에 확대해 걸어 놓은 가족 사진을 훑고 지나가며 나를 멍청히 세워 놓았다. 많지도 않은 네 식구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순간을 자랑이라도 하듯 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다.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잡힌 채 미소를 머금은 어머니는 선명한 오렌지색 투피스 차림이고 어머니 뒤로 연주가 한창 유행하던 주황색 유니섹스 점퍼를 걸친 채 장난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화사한 색상의 옷을 입어야 한다며 연주가 손수 디자인한 오렌지색 투피스가 유독 튀게 느껴졌다. 거무스름한 피부에 하얗게 물들기 시작하는 숱이 적은 눈썹, 이마가 훤히 드러나다 못해 홍수가 쓸고 간 산등성이처럼 황량한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불거진 광대뼈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연주는 친가에 가면 아버지를 닮았다 하고, 외가에 가면 어머니를 쏙 빼 닮았다 했는데, 나는 친가에 가나 외가에 가나 아버지랑 붕어빵이라고 했다. 첫딸은 아버지와 판박이란 말이 있듯이 나 역시 아버지처럼 각진 얼굴에 피부가 까무잡잡했다. 그런 아버지와 내게 연주는 어머니의 옷과 비슷한 색상의 옷을 추천했다. 오히려 잘 어울릴 수도 있다는 연주의 말엔 자신감이 넘쳤다.  
  연주는 아버지가 노란빛을 지독히 싫어하는 것을 잊고 있는 듯 했다. 아니면 연주 역시 어머니가 그러하듯 아버지가 나이 들어 보이는 게 싫었는지도 모른다. 피부가 백옥같이 희고 얼굴이 갸름한 어머니는 미인은 아니어도 꽤 동안이었다. 그에 비해 어머니보다 열 살 연상인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머리가 듬성듬성 벗겨져 손자 댓 명은 본 할아버지 같았다. 나는 마지못해 연주가 권한 옷을 입었지만 아버지는 끝내 쥐색 양복을 입었다. 우리 모녀가 이를 드러내며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데 반해 사진 속 아버지는 어색한 미소 하나 짓지 않고 표정 없이 앉아 있다. 그 무표정 속에 무언의 침묵이 내려앉아 아찔한 현기증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을 깨뜨리기 위해 청소기의 전원을 눌렀다. 청소기의 진공대가 제멋대로 윙윙거리며 집안의 공기를 빨아들일 양 울어댔다.
  여기저기 색색의 옷가지가 잔뜩 널린 연주의 방은 절로 무당집을 연상시켰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연주의 옷가지를 정리하고 책들을 제자리에 꽂는데 화장대 위에 펼쳐진 다이어리가 눈에 띄었다. 밖에서는 부담스러울 만치 깔끔을 떨더니 화장대 위에 뽀얀 먼지가 묻어 났다. 나는 연주의 다이어리를 들고 침대 맡에 걸터앉아 땀이 촉촉이 배어 있는 손으로 다이어리를 들춰보았다. 덜렁대는 성격인지라 꼼꼼히 메모를 하지 않아 호기심 가는 글귀 하나 없었다. 그럼 그렇지 싶어서 다이어리를 덮는데 발등 위로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연주의 명함, 최영순이 아닌 채연주의 명함이었다. 왠지 아버지의 음울한 미소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연주가 졸업 후 바로 취직이 되자 아버지의 지극히 무표정한 얼굴에 화색이 돌며 대견스러워 하는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연주가 제 명함을 자랑스레 내밀자 아버지의 얼굴이 삽시간에 납빛으로 변하며 불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이 뉘, 명함이냐? 영순이 네 명함이 맞는 게야?”
  “네, 제 명함 맞아요.”
  “이게…… 우째 니 명함이냐? 최씨가 어째 채가가 되냐, 엉?”
  아버지의 격앙된 목소리에 연주의 얼굴이 석고처럼 창백해지더니 볼멘소리를 해 댔다.
  “아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해? 어차피 제사 모실 아들도 아니라며? 말이 허울 좋은 명예 퇴직이지, 자식 공부시킬 능력도 없어 어렵게 간 유학두 도중 하차시키믄서…… 그러면서 체면이나 따지고…….”
  뺨이라도 한 대 후려칠 기세였던 아버지는 묵묵히 듣기만 했고, 연주의 취업을 축하하기 위해 시장에 갔던 어머니가 들어오면서 자연 일방적인 연주의 공격은 제 딴에 수그러들었다.
  “채연주? 영순이란 이름이 맘에 안 든다고 그리 성화더니……. 그래도 이름이 직업처럼 세련돼 보이긴 한다, 얘.”
  어머니는 연주의 명함을 받아들고, 아버지의 눈치를 살짝 보며 사회에 첫 발을 디딘 딸의 기분을 맞춰 주었다. 하지만 냉랭한 분위기는 결코 예사롭지 않았고, 어머니는 내게 자세한 내막을 물었다. 연주의 명함이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살짝 귀뜸을 하자 어머니는,
  “시종 못마땅한 기색 보일 거유? 이름이야 그저 부르자고 있는 거 이왕이면 본인이 들어서 좋아하면 됐지. 뭐, 그리 대단 타고 성을 내요, 성을 내긴……. 사람이 인생의 흐름에 따라 사는 거지, 어떻게 기계 찍듯 딱딱 맞아떨어지게 인생을 살아가겠우? 나두 당신하고 이리 세대 차이가 나는데 젊은 애들이야 오죽할까. 그렇게 뭐든 정석대로 살려고 드니 매번 삐거덕거리지.”
  어머니가 뭐라 하든 아버지는 완강했다. 나쁜 일 아니면 매번 우리가 좋다는 대로 우리가 하고 싶다는 대로 따라 주던 아버지였는데,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연주를 연주라 부르지 않았다.
          
  영구가 느른하게 네 다리를 뻗더니 곰실곰실 기면서 흑갈색의 배설물을 소파에 남겼다. 거북의 배설물은 냄새만 고약한 것이 아니라 독성도 강해 물을 자주 갈아 주지 않으면 거북이 갑연화증이나 눈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휴지로 배설물을 닦아 내고 물걸레로 빡빡 문질러 보지만 좀처럼 소파에 남은 얼룩은 지지 않았다. 한참 잘 먹을 계절인데도 좀처럼 먹이를 먹지 않아 안타까워했는데 그 마음이 싹 가셨다. 영구에게 눈길은 가도, 애정을 가지고 보살피기란 실로 어렵다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영구는 아버지가 그랬듯이 제게 사랑을 베풀어 달라 하소연하는 듯 했다. 다 죽어가던 녀석을 살려낸 아버지의 사랑이었으니 그 손길이 무척 그리울 만도 했다.    
  수족관으로 영구의 보금자리를 옮기기 얼마 전, 죽은 보라빛을 띠는 젤리같이 엉긴 피가 영구의 입가에 잔뜩 고여 다들 녀석이 곧 죽을 거라 생각했다. 장이라도 파열된 것인지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피를 토하는 모습이 징그럽고, 소름 끼쳤다. 무엇보다 집에서 기르던 거북이 죽으면 집안에 우환이 낀다는 말이 떠올라 영 께름칙했다.
  “사람두 혼자 있음 외로워 병이 나는데 동물이라고 다르겠어요? 차라리 이참에 방생을 하는 건 어때요?”
  어머니도 꽤나 찜찜했든지 속이 훤히 들여다뵈는 말을 했고,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영구의 등갑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수분이 말라 버린 나무껍질 같은 영구의 다리며 머리를 쓰다듬는 아버지의 손마디가 까칠했다.  
  “이 사람아, 이 모양을 해서 방생은 무슨 방생이야? 이대로 방생을 하면 하루 빨리 죽으라는 거지 살라는 거야? 사람이건 동물이건 나이 들어 고장나고 쓸모 없어진다 해서 매몰차게 버리면 안 되는 게야, 암 안 되는 것이구말구. 사람 사는 인정이 그래서야 못 쓰지, 못 써.”
  병든 영구를 치료하는 아버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피로하고 달떠 있었다. 입가에 고인 피를 식염수로 닦아 내고, 붕산액으로 눈병이 걸린 눈을 소독해 주는 손길이 가늘게 떨렸다. 때때로 영구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소리 낮은 괴성이 아버지의 나지막한 흐느낌으로 착각되기도 했다. 영구의 입가에 더 이상 피가 고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아버지의 극진한 정성보다는 거북이 십장생 중의 하나여서 생명력이 질긴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가 한바탕 앓고 난 영구를 위해 베란다를 수족관으로 개조하지만 않았더라면 아마도 아버지를 최고의 수의사로 받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 아팠냐는 듯 영구는 점차 기운을 차려 갔다. 아버지는 퇴직 이후 거의 집밖에 나가지 않았다. 영구에게 신선하고 색다른 먹이를 공급하기 위해 외출을 하기는 했지만 어쩌다 가끔이었고, 낮이면 삼인용 소파에 누워 광합성하는 식물처럼 햇빛을 받으며 낮잠을 자고, 밤이면 노곤한 눈으로 텔레비전을 보다 또다시 깊이 잠들었다. 반면, 자기만의 공간을 가진 영구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수시로 수족관을 기어 나와 스스럼없이 집안 곳곳을 엉기적 엉기적 기어다녔다. 등갑 속에 머리와 다리를 집어넣고 얌전하게 있길 바랐지만 영구는 뱀가죽처럼 흉물스런 머리를 쭈욱 빼고 관찰하듯 주위를 살폈다. 어머니나 연주가 소스라치게 놀라든 말든 아버지는 삼인용 소파에 누워 몽롱한 표정으로 방관적 태도를 취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안방에서 잠을 자지도 않았다. 잠자리 준비를 위해 이불을 펴듯 영구를 수족관에서 꺼내와 품에 안고 소파에 누웠다. 영구는 아버지의 발 냄새가 좋았던 것인지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 발치로 기어갔다. 씻지도 않고 소파에 누워 자는 아버지의 발치에 머리를 길게 빼고 잠든 영구를 나는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영구가 제 발톱으로 아버지의 발을 건드려서 잠을 잘 수가 없다며 다리를 모으고 새우잠을 잤다. 어딘지 모르게 정다움보다는 스산함에 더 가까운 풍경이었다.  
  창문으로 잘게 부서진 햇빛이 멀쑥이 들어오는가 싶더니 구름이라도 드리워졌는지 거무스름한 어둠이 밀려 들어왔다. 어슴푸레한 빛 때문인가. 영구만 덩그러니 올라앉은 그 삼인용 소파에 아버지가 누운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나는 손을 뻗어 영구의 등갑을 살며시 눌러보았다. 조금만 건드려도 ‘쉬익’ 소리를 내며 갑옷 속으로 머리와 다리를 집어 넣던 녀석이 내 기척에 놀란 척도 하지 않았다. 영구는 여전히 네 다리를 쭉 뻗은 채 눈만 끔벅거렸다. 뿌연 각막이 낀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영구가 벽 쪽으로 밍기적밍기적 기어갔다. 동작이 원체 굼뜬 탓에 그리 느껴졌겠지만 삼인용 소파가 무척이나 넓게 느껴졌다. 벽면엔 누렇게 탈색된 벽지를 커버하려는 듯 커다란 액자가 턱 하니 걸려 있다. 눈꺼풀이 유착된 채 돌출된 눈으로 액자를 올려다보는 영구의 모습에 사뭇 진지함이 배어 있다.  
  작은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버지는 뜬금없이 컴퓨터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내가 살풋 웃어 보이자 아버지의 허망한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다. 상을 치르고 난 뒤라 피곤할텐데 아버지는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우를 먼저 보낸 마음이 오죽할까 싶어 싫은 기색 않고 전원을 켜서 윈도우로 들어가는 법부터 하나하나 나긋나긋한 말씨로 설명했다. 아버지는 파워를 누르고 마우스만 몇 번 클릭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을 꽤나 진지하게 바라보더니 천천히 설명하라고만 했다.
  연주는 곁눈질로 아버지와 나를 훑어보더니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간단한 워드프로세서의 기본적인 사용법을 배운 아버지는 오전에는 누런 표지의 책과 옥편을 뒤적이고 밤에는 수시로 컴퓨터 앞에 앉아 돋보기 너머로 키보드의 자모음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서투른 손놀림으로 타자를 쳤다.
  그렇게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자 타자를 치는 아버지의 손엔 점차 가속도가 붙었고 가장 애를 먹인다는 도표도 어느 정도 자유자재로 수정 가능한 경지까지 오르게 되었다. 아버지는 정갈하게 정리된 A4용지를 보며 간만에 아물어질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여러 장 확대 복사해 하나는 액자에 끼워 벽에 걸고, 다른 것들은 코팅을 했다. 아버지의 밤낮없는 작업 끝에 일곱 권 분량의 족보를 도표화한 계보가 거실에 걸리게 되었고, 아버지는 아침마다 그 액자를 보며 설이 며칠이나 남았나 셈을 했다. 아버지의 작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던 그 며칠이었다.
  그러나 그리 손꼽아 기다렸던 설은 서릿발처럼 차고 냉랭한 분위기만 감돌았다. 작은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의 유일한 어른이 된 아버지는, 파별로 계보가 도표화된 액자를 벽면에서 떼어 내 사촌들에게 내밀었다. 액자가 걸려 있던 벽면에는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다시 액자를 걸면 감춰지겠지만 괜스레 추레해 보여 나는 걸레를 들고 곰팡이를 닦아 냈다.
  두런두런 정담이 오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무 조용해 안방을 힐끗 들여다보니 액자를 가운데 놓고 아버지가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는 눈치였다. 사촌들의 얼굴을 살피니 어느 하나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얼굴들을 하고 아버지의 설명에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액자를 안방으로 가지고 들어갈 때만해도 얼굴 하나 가득 흐뭇한 미소로 번지던 아버지의 얼굴은 자조에 찬 모습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아버지는 사촌들에게 코팅지를 하나씩 나눠 주고 액자는 한쪽 벽으로 밀쳐 둔 채 제삿상이 아직도 멀었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아버지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싶어 얼른 연주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어질머리가 나서 잠시 침대맡에 앉아 있는데 영식이 오빠의 세 살배기 사내 아이가 고막이 찢어져라 울어 대는 소리가 들렸다. 방으로 들어서는 연주에게 내막을 물으니 아이가 코팅지에 낙서를 했다는 것이다.
  “설마 그렇다고 아빠가 애를 때렸을까? 애가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데…….”
  “내 말도 그 말이야. 가만히 혼자 잘 노는 애를 그리 노엽게 화를 내며 때릴 건 또 뭐람.”
  연주는 안방 쪽을 힐끔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웬만해서는 화를 잘 내지 않는 아버지려니와 자랄 때 우리도 때리지 않던 아버지가 귀히 여기던 하나뿐인 조카 손자를 때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애한테 역정을 내고 그래요, 그러긴? 애 놀라게.”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이의 울음소리만큼 우렁찼다.
  교자상 위 색색의 반찬들이 명절을 실감나게 했지만 어느 하나 맛있게 숟가락을 뜨지 못했다. 어머니는 애써 분위기를 노글노글 완화시키기 위해 아이에게 노래를 시켰다. 아이는 할아버지한테 야단맞은 일을 금세 잊고 폴짝폴짝 뛰며 귀염성 있게 노래를 불렀다. 아이의 재롱에 싸늘한 분위기가 걷히자 영식이 오빠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 명절부터는 아버지 제사부터 지내고 큰아버님께 인사드리러 오겠습니다. 회사 일이 바빠서 일찍 일어서야겠습니다.”
  아버지는 영식이 오빠의 말엔 대꾸도 하지 않고 액자에서 종이를 꺼내 곁에 있던 연주에게 내밀었다.
  “가서 서너 장 더 코팅해 와라.”
  연주는 왜 하필이면 자긴가 하는 눈으로 나를 째려보더니 꾸물거리며 문방구에 갔다. 영식이 오빠가 사온 때아닌 수박이 달고 맛있었다. 아이가 쩌금거리며 맛있게 수박을 먹었다. 문방구마다 문이 닫혔던 것인지 상을 다 접었는데도 연주가 오지 않았다. 영식이 오빠는, 다음에 올 때 받아 간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갈 채비를 서둘렀다. 아버지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조용히 문밖을 나섰다. 그네들이 각자의 차에 올라타자 아버지는 슬그머니 집안으로 들어가 담배를 물었다.
  “곰팡스러운 양반 같으니라구. 저리 고리타분하니 어디 젊은 사람들이 축에 껴 주기나 하겠어?”
  어머니는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앉아 담배를 피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의 말을 흘려들으며 대문을 닫으려는데 연주가 코팅한 종이를 들고 뛰어들어왔다. 아버지는 연주의 손에 들려진 코팅지를 바라보며 입안 가득 배어 문 연기를 뿜어 냈다. 담배 연기가 아버지의 깊게 패인 이마의 주름 사이로 아물어질듯 했다.

  영구의 배설물로 얼룩진 수족관을 철수세미로 빡빡 문지르고 호수를 잡아당겨 오물을 씻어냈다. 물이 이내 젓갈빛으로 변하며 심한 악취가 났다. 고무 장갑을 끼고 배수구를 찾아보지만 좀처럼 감이 오지 않았다. 한참동안 바닥을 더듬거린 끝에 배수구를 찾아 그 고약한 냄새가 나는 물을 흘려 버렸다.  
  물을 갈아 주고 보니 어느덧 묽은 먹물이 화선지에 스며들듯 열려진 창문 사이로 뉘엿뉘엿 어둠이 밀려들어왔다. 감실감실 어두워지는 주변의 공기가 끈적끈적한 게 불쾌감을 절로 자아냈다. 영구는 쭈뼛이 고개를 빼곤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고무 장갑을 벗어들고 화장실에 들어가 땀으로 흥건히 젖은 옷을 벗었다. 양치를 하고 칫솔을 칫솔꽂이에 거는데 이가 빠진 컵에 꽂혀진 아버지의 면도기와 칫솔이 눈에 들어왔다. 물기 하나 없이 뻣뻣하게 말라 버린 칫솔은 보기에도 까칠했다. 갑자기 가슴에서 웃음이 치밀었다.
  회사에 갓 입사한 연주가 받아온 선물은 생활용품 종합세트 제 1호였다. 우리 세 모녀가 그 선물세트를 식탁 위에 올려 놓고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아버지였다. 내가 달려가 현관문을 열자 어머니는,
  “열쇠 놔 두고 매번 초인종을 누르는 건 대체 무슨 고집이래요? 그냥 열쇠로 열고 들어오면 서로 편하고 얼마나 좋아요.”
  하며 아버지를 나무랐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손에 들린 것을 발 밑에 내려 놓고는 삼인용 소파에 누워 담배를 물었다.
  “내꺼랑 똑같은 거잖어? 근데 4호라 그런지 별루 종류가 많지 않네.”
  확성기에 대고 말을 하는 것처럼 크고 우렁차 사람을 절로 집중시키는 연주의 목소리에 뭔가 싶어 다가가 보니 아까 식탁에서 본 선물 세트와 크기만 다를 뿐 같은 종류의 선물 세트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 안의 세면 도구들은 연주의 선물 세트에도 들어 있는 것이었으나 크기가 작은 만큼 바디 클렌저나 고급 비누 같은 것은 생략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한 손에 담배를 든 채 다가와 칫솔 하나를 뽑으며,
  “내가 받아온 건 내가 다 쓸 거다.”
  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연주는 시큰둥하게 어깨를 한 번 들썩이더니 입을 삐쭉 내밀었고, 어머니는 선물 세트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장난섞인 으름장인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꽤나 진지했던 모양이었다. 듬성듬성 치모가 빠지고 뻐드러진 아버지의 칫솔을 제 딴에 신경 쓴다고 연주가 아무말 없이 새 칫솔로 바꿔 놓았더니 그 날로 바로 역정이 떨어졌다.
  “몇 달은 멀쩡히 쓸 수 있는 걸 누가 허락도 없이 버렸니, 응? 누가 버렸어?”
  아버지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칫솔을 끓는 물에 소독해 다시 칫솔통에 꽂았다.
  “별난 양반 다 보겠네. 당신 생각해서 새 칫솔 꺼내 놓은 걸 같구 왜 그리 소릴 높이시우? 나이 들면 별 게 다 서운하다더니……. 그렇게 쓰고 싶으면 따로 놓고 쓰시구려. 지저분하니.”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이가 빠져 버리려고 내 놓은 컵 하나를 가져다 그 속에 칫솔을 꽂아 두고 사용했다.
  수돗물을 틀어 아버지의 칫솔에 물을 묻혔다. 뻣뻣하게 굳은 치모는 군데군데 빠지고 뻐드러진 게 마치 아버지의 듬성듬성 벗겨진 머리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빗질하듯 손끝으로 칫솔을 가지런히 쓸어보았다. 그리고는 헛헛한 기분을 누르며 칫솔꽂이에서 어머니와 연주의 칫솔을 한 칸씩 뒤로 물리고 제일 첫 칸에 아버지의 칫솔을 꽂았다. 샤워기에서 연신 쏟아지는 따뜻한 온수로 인해 거울에 멀건 수증기가 서렸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어느새 창문으로 달빛이 어슴푸레하게 비춰 들어왔다. 어머니와 연주는 전화 한 통 없이 늦을 모양이었다. 영구는 달빛이 들어오는 창가를 향해 수련하는 수도승처럼 천천히 어기적거리며 발을 뗐다. 해를 거듭날수록 보일 듯 말 듯 등갑이 넓어지는 영구를 보며 흐뭇해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아련히 떠올랐다.
  실내에 갇힌 적요가 야릇한 냄새를 타고 올라왔다. 달빛에 비친 영구에게서 야릇한 비린내가 났다. 수족관의 물을 갈면서도 영구를 깨끗하게 씻긴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거실에 형광등도 켜지 않은 채, 세숫대야에 미온수를 받아 왔다. 손길이 닿으면 등갑 속으로 머리와 네 다리부터 본능적으로 집어 넣던 영구가 제 고향 바닷가라도 만난 듯 등갑 속의 몸을 최대한 내밀었다. 등갑 속에 아무 것도 없이 비우기라도 하는 듯. 영구는 머리를 있는 힘껏 빼고 거실 전체를 휘감은 캄캄한 어둠 속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마치 돋보기 너머로 신문을 보던 아버지처럼 영구의 하얗게 부풀어 오른 눈이 집안을 하나둘 훑고 지나갔다. 새삼 그런 영구가 친숙하게 느껴졌다.
  수족관의 물은 갈아줬어도 영구를 씻기는 것은 처음이어서 왠지 낯설었다. 그러나 좀 멋쩍어서 그렇지 거북만큼 씻기기 쉬운 동물도 없다 싶었다. 물이 친숙한 동물이어서 그런지 영구는 느른하게 머리와 네 다리를 등갑 밖으로 내밀고 뒤척임도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그랬듯이 붕산을 몇 방울 영구의 눈에 떨어뜨려 주고, 등갑 밖으로 나온 영구의 몸을 식염수로 말갛게 헹구었다. 영구는 눈이 불편한지 작디작은 눈을 끔벅거릴 뿐, 등갑 속으로 머리를 넣지는 않았다.
  “불도 안 켜고, 어두운 데서 뭐 하는 거야? 얘가, 점점 하는 짓이 제 아버지를 닮아 가네. 그 놈의 영구가 머시기인가는 제발 좀 갖다 버리던가 그래.”
  현관문 여닫는 기척도 못 느꼈는데, 어머니가 컴컴한 실내를 더듬어 거실의 조명을 켰다. 어머니의 화장은 아침에 나갈 때보다 더 짙어 보였다. 불빛에 보니 영구는 씻겨도 깨끗이 씻긴 티 하나 나지 않은 채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붕산으로 소독을 해서 그런지 영구의 눈에 촉촉한 물기가 가득했다. 뽀송뽀송하게 마른 수건으로 정성껏 물기를 닦으니 영구가 입을 쩍쩍 벌렸다 다물었다. 나는 가만히 영구의 등갑을 어루만졌다. 따뜻한 체온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물청소를 한 뒤라 수족관은 더할 나위 없이 정갈했다. 냉동실에서 먹다 남긴 삼겹살을 꺼내 살점만 잘 발라 영구의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손이 미끄덩거리고 비위가 상했다. 물을 갈아 놓은 수족관이 또 더러워질 것을 생각하니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수족관에 영구를 넣고, 정성껏 발라낸 살점을 물에 띄웠다. 돼지기름이 하나 둘 물 위로 떠올랐다. 느릿느릿 헤엄을 치는 영구의 등갑 위로 달빛이 그림자로 내려앉았다. ☺
  
                                              
                                                                  ( 원고지: 200×71 )


      



                            *성    명 : 김지애
                            *응모부문 : 단편소설
                            *작 품 명 : 달빛 그림자
                            *연 락 처 : 016 - 890 - 1035  /  02 - 304 - 3161
                                       서울시 은평구 응암 4동 733-31 / ae-kuk@hanmail.net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