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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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소설(200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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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상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식들은 부모님의 감사함을 잘 모른다. 심지어 뉴스에서는 자녀가 부모를 구타하고 욕하고 심지어 죽이는 것까지 나온다. 성서에서는 부모를 업신여기는 자녀는 쳐 죽이라는 법도 있었지만 현대 사회에는 부모에 대한 공경과 효심은 어디로 간지 사라지고 없는 듯 하다. 이 책은 과거의 어린시절의 추억들을 통해서 가장으로써 고생하시는 어머님의 감사함을 나타내는 글이다. 강인한 이라는 아이가 어린시절의 추억들을 통해 어머님의 감사함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글이다. 비록 힘들었던 시절이었고 늘 부족했던 시절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풋풋하고 즐거웠던 추억들이다. 그 추억들을 생각함으로써 다시 어머니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시련이 지나면 추억이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힘든 군대생활을 보낼 당시에는 지옥처럼 힘들지만 막상 제대하고 나서 과거를 회상하노라면 즐거운 웃음으로 친구들과 대화할 수 있다. 비록 나도 어린시절 힘들었고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추억과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홀로 3명의 아이를 키워주신 어머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어린시절의 추억이 있다. 독자들도 어린시절의 추억들을 생각하면서 부모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웠는가.. 얼마나 감사한분인지를 가슴 깊이 느꼈으면 하는 바이다. 현대의 사람들이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과거의 놀이와 추억들의 풋풋함이 독자들에게 상쾌한 활력소가 되었음 한다.
글에 앞서 모든 자녀들에게 보내는글..
그녀는.. 어려서부터.. 절 알았습니다..
그녀는.. 힘들어도.. 내색 한번 하지 않았지요..
게다가 그녀는 작고 가냘 펐지요..
그녀는.. 자기 자신보다.. 늘 절 더 위해 생활 했지요..
그런데.. 전 그것도 모르고.. 항상 투정만 부렸지요..
그리고.. 저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못했어요..
거기다가.. 심한말도 해서 그녀에게 상처까지 준적도 잊고요..
더군다나 전 그녀보다 많이 어린데 말입니다..
제가 까불어도.. 투정 부려도 다 받아주던 그녀..
지금까지도 한번도 변함없이 자기 목숨처럼 절 사랑하는 그녀..
그런데.. 슬픈 일은.. 절위해 너무 힘을 낭비한 나머지..
그녀는 이제 힘이 없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저를 위해.. 뭔가를
하려고..하는 것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변해버린 그녀의 모습들은.. 더욱 가슴이 아프지요..
이제부터라도 그녀에게 잘 해줘야 하겠습니다..
그녀는.. 바로 당신들의 어머니입니다
출생
의사: “흠.. 포기하세요. 낳으시면 산모의 목숨까지도 위험 합니다”
“제 생각에는 낙태를 해야 산모의 목숨이 안전해집니다.”
엄마: “안돼요. 이 아이는.. 이 아이는 꼭 낳아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 제발.. 낳게 해주세요.”
아빠: “여보, 당신 목숨이 위험하다잖아! 아이야 또 가질 수 있지만 당신은..당신은.. 죽으면 안돼!”
엄마: “안돼요. 여보. 우리아이가.. 우리아이가 왜 죽어요.. 수연이 경석이도 모두 잘 낳았으니까
우리 인한이도.. 우리 인한이도 잘 낳을 수 있어요.. 꼭 낳을 거에요. 꼭이요.”
이렇게 해서 내가 출생 시부터 어럽게 태어나게 되었다. 의사의 말과는 달리 산모와 나는 둘 다 살게 되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오른쪽 귀가 살과 붙어서 나왔다. 아주 작은 문제의 기영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오른쪽 귀가 왼쪽보다 1센티 가량 작은 것 같다. 하지만 귀를 제외하고는 여느 아이들처럼 건강했고 보통아이들처럼 이쁘고 귀여운 아이였다. 처음에는 귀가 붙어있지만 커가면서 어머니께서 붙은 것을 자꾸자꾸 띠려고 하니까 커가면서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제 서야 귀까지도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아이로서 성장하게 되었다. 다른 부모들과 같이 우리 어머니도 자식에 대한 모성애를 강력히 지니고 계셨기에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내가 간신히 세상에서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자식을 낳을 때 산모의 자궁이 50배가량 찢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칼에 베거나 찢어졌을 때 얼마나 아픈가? 하지만 우리의 어머니는 우리를 낳기 위해 그보다 몇 배나 힘든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어머님께 감사해야 한다.
나의 집안 환경
태어나기 전에 아기는 ‘우리 집이 아주 잘 살고 부자고 먹을 것, 입을 것 잘 먹고 잘 입는 좋은 환경에 태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무의식 적으로나 할까? 만약 지금의 내가 뱃속에 있다면 그런 생각을 기본적으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태어난 곳은 썩 좋지 않았다. 전에 공장으로 썼던 10평 남짓 하던 지하 단칸방이 내가 14년을 보내야 할 곳이었다. 그곳에는 나에게 아주 위험한 것들이 많았다. 아버지가 화학 연구가이자 발명가이기 때문에 어린 내가 살기엔 참으로 위험했다. 또한 습하고 곰팡이와 벌레들이 많았다. 심지어 지네까지도 본적이 많다. 돈벌레(그리마)나 집게벌레는 숫하게 많았다. 가끔 누워 있을 때 돈벌레의 다리개수를 세기도 할 정도였다. 돈벌레의 다리수는 26개일 것이다. 또한 공장이라서 수도 시설이 전혀 되지 않았다. 설거지와 빨래를 할 때 모두 1층 밖으로 나가서 펌프를 사용해야 했다. 예전에는 주로 펌프로 물을 퍼다 길러서 써야 했다. 화장실도 10미터 정도에 있었다. 꼭 화장실을 가야할 때는 어머니와 같이 가야만 했다.
인한: “으~ 엄마.. 나 똥 마려..”
엄마: “인석아! 그럼 어서 휴지 챙겨서 화장실 갔다 와야지!”
인한: “아~싫어 싫어~ 저녁이라 무섭단 말이야.. 엄마.. 같이 가자..”
그 당시 화장실 귀신이야기가 한창 유행이라서 저녁에 화장실 가는 것이 너무나 무섭고 힘든 일이었다.
엄마: “인한아. 엄마 바쁘단다. 정 무서우면 선반위에 후레쉬 가져가라.”
인한: (울먹울먹)“흐윽.. 무섭단 말이야! 내가 귀신한테 잡혀가면 어떻할꺼야! 아앙 나 안갈래.”
엄마: “경석아!!경석아!! 인한이랑 같이 화장실 같다 와라!
경석: “네.”
경석은 우리 형이다. 첫째 장녀는 수연이, 경석이형은 둘째 장남이다. 우리 가족은 다 3년차이다. 성격이 다 제각기 달랐다. 형은 나와는 달리 아주 얌전하고 순종적인 아이였다. 어머니께서 장보러 가실 때 방문을 잠그고 가도 결코 우는 법이 없었다. 한번은 장보고 왔는데 형이 똥을 싸서 신문지에 덮어 놓은 적도 있다. 그 사건 뒤로는 문을 잠가 놓고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디를 갈 때마다 어머니와 꼭 붙어 다녔다. 한번이라도 집에다 놓고 나가면 하루 종일 울어 댔다. 울다가 지치면 잠이 들곤 했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매우 머리가 좋으신 분이다. 할아버지가 평생을 발명에 매달려서인지 우리 아버지도 발명과 연구에만 매달리셨다. 그래서 가정환경이 나빠 진 것이다. 아버지는 서울대 화학과를 다니시다가 자퇴를 하셨다. 그 이유가 교수를 폭행해서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화가 나시면 공포 그 자체였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발자국 소리만 나도 나와 형은 자는 척을 할 정도였다.
경석・인한: “매칸더 브이~ 날라랄라~ 공격개시~ 매칸더 매칸더 매칸더 브이! 날라랄라 우리들의 매칸더!・・・”
항상 TV 만화 영화를 하면 주제가를 힘차게 따라 부르곤 했다.
경석: (티틱티틱)“아 이놈의 TV! 엄청 안 나오는구만!”
인한: “아~ 형아야~ 안테나좀 잘 만져봐라. 티비 다 끈나겠다.”
경석: 쾅! 치익.. “아악! 야야 인한아! 어쩔수 없다. 9번보자. 9번이 젤 잘 나온다”
인한: “아 싫어. 잘 맞쳐봐. 9번 재미없단 말이야.”
그 당시 TV는 손으로 돌려 보는 것이었다. 안테나를 잘 맞추어야만 겨우 잘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장 재미없는 9번은 안테나를 안 맞추어도 늘 잘 나왔다.
뚜벅뚜벅.. 지하계단으로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경석: “야야! 인한아! TV 빨랑 꺼라! 아버지 오시나 보다.”
툭!
경석・인한: “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셨습니까!”
아빠: “그래 인석들아! 아버지 오셨다. 인한아~ 이리 와서 아버지 다리 좀 주물러라.”
인한: “....네....”
그 당시 난 아버지나 어머니 다리 주무르는게 너무나 싫었다. 그래서 늘 아버지 들어오시면 잠자는척했다. 한번 주무르기 시작하면 한 두 시간은 기본이기 때문이다. 또 주무르다가 졸기만 하면 꾸중을 듣거나 맞기도 했다. 그래서 난 어려서 아버지를 너무 싫어했다. 그건 형도 마찬가지다.
인한: ‘아..지겨워 죽겠네. 언제 그만 하라고 할까.. 제발..제발.. 그만하라고 해라.. 제발..제발..’
아빠: ‘드르렁~ 쿨쿨’
인악: ‘아악! 잠들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아.. 졸려..’
그때 어머니가 조용히 다가와 속삭이며 말했다.
엄마: ‘예 인한아.. 그만 자.. 엄마가 할테니까.. 넌 그만해도 된다.’
인한: ‘엄마.. 괜찮겠어? 이러다 들키면 나 아빠한테 혼나는거 아니야?’
엄마: ‘괜찮대도. 낼 학교 가야 하는데 빨리 자거라.’
인하: ‘히히힛. 알았어. 그럼 나 잔다.’
이런 일이 너무 비번해서 난 아빠를 싫어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늘 내가 힘들까봐 날 챙겨주시곤 하셨다. 어머니도 아빠 어려워 하시는건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하지만 누나는 아니다. 그래도 누나는 그 당시 중학생이여서인지 형과 나와는 사고방식이 많이 틀렸다. 형과 나는 항상 붙어 다녔지만 누나는 아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성적에 관해서는 관대 하였다. 한번은 누나가 사회점수를 0점을 받아 왔다.
엄마: “야 수연아! 너 이게 모니!? 성적이 이게 모야! 빵점이잖아. 빵점! 너 공부를 하는 거니? 마는 거니?
응!? 대답 좀 해봐!”
수연: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아빠: “허허허. 잘했다. 잘했어! 어디 빵점 받는 것이 쉬운 일이니? 잘했다.”
엄마: “여보.. 그래도.. 빵점은..”
아빠: “괜찮아. 빵점 받는 것도 좋은 경험이야. 수연아. 괜찮으니까 그만 자거라.”
수연: “네.. 아빠”
인한: (속닥속닥) ‘아 만약 내가 저랬다면 아빠는 분명히 우리를 때릴 꺼야. 그치 형?’
경석: (속닥속닥) ‘맞아. 아빠는 누나만 좋아하나봐.’
형과 나는 어릴 적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많이 맞았지만 누나는 거의 맞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많이 맞을 때면 늘 어머니가 나서서 말려주시곤 하고 나중에 멍이 든 곳을 만져주고 불어주고 약까지 발라주셨다. 난 그 당시 어머니가 천사라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수호천사!
어린 친구들
우리 바로 맞은편 집에는 박종석 이라는 녀석이 있다. 그 녀석은 나보다 한살 나이가 많다. 그래도 그 당시 난 골목대장이었기 때문에 3살 위까지는 다 반말을 하고 친구처럼 대했다. 유난히 난 다른 아이들보다 덩치가 크고 뚱뚱해서 약한 아이들도 많이 괴롭혔다. 그리고 욕심은 어찌나 많은지 밥을 배가 터져라 먹어댔다. 한번은 밥을 솥째 먹다가 아버지한테 심하게 혼난 적도 있다.
인한: “아 맛있다. 우적우적.. 엄마.. 더줘요 그 솥째 줘봐.”
엄마: “인한아. 왜이리 욕심이 많아. 그럼 못쓴다. 그만 먹어. 배봐라. 그러다가 채할라면 어쪄려고? 저번에도 채해서 심하게 고생 했잖니?”
인한: “아아아아! 빨리줘!”
딱!! 가만히 지켜보시던 아빠가 수저로 나의 머리를 세게 쳤다.
인한:(울먹울먹) “으으..으..”
아빠: “이 녀석! 그만 먹으라잖아! 여보! 이 녀석 앞으로 한끼 이상 주지마! 저 손가락 마디도 보이질 않을 정 도잖아. 도대체 얘들 관리를 어떻게 하는거야! 특히 인한이 저 녀석은 매로 다스려야 한다구!”
그 뒤로는 난 밥을 내 욕심대로 못 먹었다. 그래서 덕분에 살은 빠지고 몸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여전히 식탐이 많았다. 그래서 앞집에 이준수라는 부자집 아이랑 늘 친하게 지냈다. 그 집에 가면 먹을 게 항상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 집에는 컴퓨터도 있어서 그집에 가면 정말로 나에게는 낙원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준수보다는 박세인 이라는 친구가 정말로 친한 친구였다. 우리는 같은반 이었고 성격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인한: “세인아! 오늘은 뭐하고 놀지?”
세인: “몰라! 니가 결정해! 흠.. 차라리 준수네가서 컴퓨터 할까? 그거 모냐? 페르시안 왕자 무지 재미있던데!”
인한: “싫어. 임마! 어제도 했어. 야! 애들 모아봐라! 오늘 아주 그냥 쭈욱 밤새도록 놀자! 첨엔 딱지치기 하다 가 날 저물면 꼼꼼이 하자! 오케이?”
세인: “알았다. 내가 아랫동네 부를께. 네가 윗동네 애들 불러라.”
인한: “싫어. 임마! 귀찮아. 네가 다 불러!”
세인: “흐음.. 알았어.”
늘 하루는 이런 식으로 보냈다. 어린시절에는 공부는 결코 하지 않았다. 맨날 딱지치기, 연탄싸움, 말둑박기, 다방구, 팽기치기, 구슬치기등 하루를 보내기엔 너무나 많은 놀이가 있었다. 나는 이런 놀이를 대부분 잘했다. 하지만 딱지지치랑 연탄싸움은 진짜 좋아했다. 집안에 딱지가 거의 10분의1이상일 정도였다. 연탄싸움은 다 먹은 우유팩에 연탄을 쪼개 넣어서 접어진 우유팩을 툭툭 치면 연탄연기가 나면서 상대 얼굴에 쏘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 해로운 연탄 연기가 너무 좋았다. 소독차만 나와도 아주 사족을 못 쓰고 쫒아 다니곤 했다. 또 구슬치기 하느라고 땅을 하도 많이 파놓아서 주인 아저씨께 꾸중을 듣기가 일쑤였다.
어린시절의 큰 슬픔!
종석: “야 인한이! 이게 뭔지 아냐? 이게 어른들만 사용하는 담배라는거다.”
인한: “미친놈. 그거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몸에 안 좋대! 버려라. 더럽게 남이 피다 버린거 줍고 지랄이냐.”
종석: “야! 이걸 피어야만 진정한 어른이다. 어때 너도 한번 펴봐.”
쓰읍..!! 종석은 담배를 한 목음 들이켰다.
종석: “쾍쾍! 아아악! 이거 무지 쓰다. 콜록콜록.”
인한: “카카카카! 거봐라! 내 쓰다고 하지 않았냐? 그나저나 오늘은 뭐하고 놀지.. 고양이 수염이나 뽑고 놀 까?”
그 당시 난 완전 악동이었다. 특히 동물을 너무나 심하게 괴롭혔다. 마당에서 키우던 개의 수염을 다 뽑아 버렸다. 그리고 한번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꼬리를 잡고 빙빙 돌리다가 벽에 던지곤 하였다. 그래서 그 녀석은 곧 도망을 쳐버렸다.
종석: “야! 인한아! 우리집 고양이 대리고 왔다. 이놈이랑 뭐하고 놀려고?”
인한: “흐음.. 좋아 저기 높은 난관에 매달리게 하자.. 크크.. 잼이 있겠다.”
바로 나는 고양이를 난관에 매달리게 했다.
야옹~ 고양이가 난관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턱!!
종석: “야! 인한아. 고양이 아프겠다. 고만 놓아주자.”
인한: “그래... 이 녀석 한번 떨어졌다고 일어나지도 않네.”
알고 보니 고양이는 뇌진탕으로 죽었던 것이다. 너무나 불길했다. 그래서 고양이는 바로 앞 뜰 흑에 묻어주고 다른 놀이를 찾았다.
인한: “야! 종석아. 그냥 애들 불러서 다방구나 하자! 내가 윗동네 부른다. 네가 아랫동네 불러라.”
종석: “어. 빨랑 불러 모으자! 곧 해지겠다.”
윗동네 아랫동네 속속들이 모였다. 그 당시 세인이는 중간동네 살았다. 나도 물론 중간 동네 살았다.
인한: “흠.. 야 종석아. 왜 세인이는 왜 안 불렀냐? 세인이가 없자나! 세인이 불러와라! 빨리.”
종석: “인한아. 그 집 이상해. 사람이 많아서 그냥 안 부르고 왔다.”
인한: “흐음.. 그래 .. 그럼 오늘은 우리끼리 놀자구!”
난 그날까지도 세인이가 죽은지도 몰랐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야 선생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나로써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죽은 것이다. 죽은 이유는 계단 난관에서 타고 놀다가 옆으로 떨어져 내진탕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전에 세인이랑 함께 그 난관에서 많이 놀았지만 그때까지는 그 난관이 위험한 것인지 인식하지 못하였다. 또한 세인이랑 나는 항상 위험한 놀이를 많이 했다. 일종의 자기 과시이다. 위험한 놀이를 함으로 자기의 용기를 보이는 것이었다. 한번은 누가 더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나 내기를 하다가 내가 먼저 뛰어내리다가 무릎에 턱이 부딪혀 크게 다친 적도 있었다. 아무튼 그 뒤로 나의 못된 성격은 더욱 못되어만 갔다. 친구들을 이유 없이 괴롭히기가 일쑤였다.
6살의 사고
우리집 식구는 아버지, 어머니를 포함해서 형과 누나 모두 머리가 좋았다. 모두 학구열이 풍부한 가족이었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형과 누나의 아이큐는 140남짓 되지만 나의 아이큐는 고작 100정도이다. 물론 이런 아이큐가 정확한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 3형제 중에서 내가 가장 머리가 나쁜 것만은 확실하다. 그게 아마 6살 때 크게 다쳤던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난 6살 때 마당 앞에 모레에서 놀곤 했다. 하지만 옥상에서 공사하시는 분이 아래에서 내가 놀고 있는 것을 확인 안하고 삽을 4층에서 던졌다. 그런데 하필 그 삽에 내가 찍힌 것이다.
인한: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수연아 빨리 나가봐라!”
수연: “꺄아아악! 아빠!아빠! 큰일났어요! 인한이가..인한이가..”
아빠:(후다닥) “인한아~인한아!~ 수연아! 엄마 불러라! 응급실에 연락 하라고해!”
그래서 나는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나는 삽에 찍히고 나서 삽이 서서히 머리에서 떨어지고 차가운 듯한 피가 내 온몸을 적시는 것까지 기억한다. 병원에서의 일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 병원에서 내 상처가 너무 커서 꼬맬려고 하면 출혈이 워낙 심해 손을 못 썼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다시 집으로 와서 당시 아버지가 개발했던 마니스라는 가루약을 머리에 마구 발라서 겨우 출혈이 멈췄다고 한다. 내가 사고 후 2틀 후에 깨어났다고 한다. 깨어나니까 나는 무슨 시험 대상물이 된 마냥 화학 연구하는 아버지의 선반위에 뉘어져 있었다. 그 후로 딱지도 지고 서서히 아물었지만 상처의 크기는 어마어마하게 컸고 그 상처는 계속 커가면서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워낙 악동이어서 대놓고 놀리는 아이들은 없었다. 지금은 거의 상처가 10센티 정도로 아물어서 잘 표시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범인은 잡지 못했다. 사고 후 곧바로 도망을 쳤다고 한다. 그 뒤 내가 다친 후 누나가 아버지한테 맞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짝!! 아버지는 수연이 누나의 뺨을 때렸다.
아빠: “넌 어떻게 된 게 누나가 되서, 다 큰 누나가 되서 동생하나 못 관리하는 거니?”
수연: (흐윽..흐윽..)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빠.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누나는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날 보살펴줬다. 아기 때부터 내 똥 귀저기를 다 빨고 업고 다니고 했다고 한다. 아이가 아이를 돌본 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사고의 대한 책임을 아빠는 누나한테 물어서 누나의 뺨을 때린 것이다. 그 사건은 내게는 생소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누나한테 손을 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버지도 날 중요하게, 귀하게 생각했는데 난 그 당시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아마 그 사고 이유로 나의 머리는 더욱 나빠 진 것이 아닌가 싶다.
눈물의 초코파이
이제 1학년! 드디어 학교 갈 때가 된 것이다. 난 너무나 너무나 학교가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동네 밖의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를 매우 원해서였다. 근대 그것도 내 뜻대로 되질 않았다. 그 당시 돈이 없어서 친구들 다 가는 학교에 나는 갈 수가 없었다.
인한: “엄마~ 엄마~ 왜 내 친구들은 다 학교 들어갔는데 왜 나만 못가는 거야?”
엄마: “.......”
인한: “대답해봐! 대답해봐! 왜 나만 안가~~? 왜 안가냐구~!!”
엄마: “인한아.. 그건 너의 띠가 안 좋아서 그런 거야.. 내년엔 꼭 가자!!”
인한: “아아아 싫어! 올해 갈 거야! 내 친구들도 다 갔단 말이야!”
그래서 결국 남들보다 1년 늦게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물론 학교에 입학해서 공부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유치원도 안나왔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한글을 잘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굼뱅이도 구르는 제주가 있다고 미술과 글짓기 산수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아왔다.
선생님: “인한 어머니! 인한이가 그림에 아주 소질이 많아요? 혹시 어려서 어디 학원에 보내신 적이 계십니 까?”
엄마: “아니요. 그럴 형편이 못됩니다.”
선생님: “흠.. 그래요.. 인한이가 미술에 특별한 소질이 있기 때문에 아마 학원에 보내시면 나중에 훌륭하게 성 장 하리라 봅니다.”
엄마: “글쎄요. 인한이 아빠가 들어오면 한번 상의해보도록 하지요.”
선생님: “그러세요. 아! 그리고 이번에 인한이가 우리학교 대표로 서울어린이 대공원에서 하는 그림 그리기 대 회에 나갑니다. 어머니도 보호자로 같이 오셔야 하고요.”
엄마: “네. 잘 알겠습니다.”
저녁에 아버지가 들어오셨을 때 어머니는 미술학원에 대해서 상의를 하였다.
엄마: “여보. 인한이가 글쎄 미술에 소질이 있대요. 그래서 좀 무리해서라도 미술 학원에 보낼까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빠: “안돼! 절대 안돼! 미술 하는 사람들 다 나중에 배곪아. 그리고 우리가 그럴 형편도 안돼잖아.”
그렇게 해서 난 미술에 대한 교육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미술 쪽으로 노력하지 않고 항상 밖에서 뛰노는 대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며칠 뒤 난 학교 1학년 대표로 사생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당시 어머니의 지갑에는 오고갈 차비, 단 2개의 토큰뿐이었다. 엄마와 나는 공원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그림 그릴 준비를 갖추었다.
인한: “아.. 귀찮아.. 배고프고 더운데 왜 그림을 그리라고 하는 거야! 나 안 그릴래! 배고파 엄마. 나 맛있는거 사줘.”
엄마: “인한아. 엄마가 나중에.. 나중에 집에 가서 맛있는거 해줄께. 그러니까 지금은 그림 열심히 그려~ 알았 지?”
인한: “아 싫어! 지금 사줘! 우리 옆에 있는 애들은 김밥도 먹고 그러는데 왜 난 그런거 안사줘? 배고프단 말 이야. 나 맛있는거 사줄 때까지 그림 절대 안 그려!”
엄마: “인한아. 알았다. 그럼 그림 그리고 있어. 엄마가 매점 갔다 올께.”
인한: “아 신난다. 빨리 갔다 와야해!”
난 그 때 배가 고파서 그림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그림은 대충 성의 없이 그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빨리 맛있는 것을 사오기 만을 기다렸다.
엄마: “저..저기요.. 죄송한테 토큰 1개로 살 수 있는 것이 없을까요.. 죄송합니다.”
아저씨: "아니~ 아주머니, 현금을 내셔야지요.”
엄마: “예 죄송합니다. 깜빡하고 돈을 놓고 와서요. 이것도 어차피 돈인데 먹을 것과 좀 바꾸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아저씨: “에이~ 할 수 없죠. 저기 초코파이 하나면 될 거유. 가져 가슈!”
엄마: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곧 초코파이 하나를 들고 왔다.
인한: “에이~ 모야~? 겨우 초코파이 하나야. 음료수는? 쟤들은 음료수 먹는데. 음료수도 사줘야지!”
“그리고 엄만껀 왜 없어?”
엄마: "응~ 엄만 괜찮아. 너 많이 먹어.“
인한: “응~ 알았어. 근대 이거 먹으니까 목말라. 음료수도 사줘!”
엄마는 잠시 머뭇하다가 옆에 아주머니께 상냥히 부탁한다.
엄마: “저기요.. 죄송한데요. 물 한 컵만 마실 수 없나요?”
아줌마: “아! 마침 음료수가 하나 더 있는데 저기 귀여운 아이가 달라고 많이 보채죠? 이거 하나 주세요.”
엄마: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난 그때의 행동을 너무나 후회한다. 어려서 그랬지만서도 지금 생각하면 아직도 어머니께 너무 죄송하다. 그때 올 차비도 없어서 버스 기사님께 사정을 이야기해서 왔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 흔한 초코파이 하나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지만 그 때는 그것 하나 먹기도 힘들었다. 또한 나에게 무엇인가를 주려고 그런 수모라고 할까.. 그런 어려운 부탁까지도 마다하지 않은 어머니가 매우 존경스럽다. 어머니의 모성애를 우리 남자들은 아마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와의 작별
그 당시 나의 용돈은 50원, 그리고 형의 용돈은 100원 이었다. 매달 말일만 대면 그 적은 돈을 받았던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50원이면 겨우 둘리바, 새우깡정도 사먹을 정도다. 한번 사먹으면 그 뒤로 한달은 못 먹는 것이다. 또 당시 슈퍼에 외상을 많이 해서 슈퍼 아주머니도 왠지 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맨날 갈 때마다 물어 보는 게 외상값 언제 값느냐는 얘기였다. 항상 먹을 게 없어서 라면이나 밀가루를 많이 외상 했다. 밀가루로 아무 양념 없이 수제비를 물에 익혀서 먹곤 했는데 난 그때는 그것조차도 너무 맛있었다. 지금 먹으라면 맛있게는 못 먹을 것 같다.
인한: “형아! 오늘도 용돈 받았다. 뭐 먹지? 쫀득이 사서 연탄불에 꿔먹을까?”
경석: “싫타. 형아는 라면 사 먹을 거다. 안성탕면이 80원이니까 20원 남으니까 흰 과자(겉은 희고 속은 갈색 밥알 따위가 들어 있는 김밥 같은 과자)사먹으면 딱 맞겠다.”
그리고 하루 만에 용돈을 다 쓰면 담날부턴 친구들한테 얻어먹어야만 했다.
인한: “준수야! 둘리바 먹냐? 한입만 먹자!”
준수: “싫어! 네 돈 주고 사먹어라!”
인한: “이 자식아! 한 입만 먹자고!”
준수: “싫다니까!”
인한: “뭐 ! 이자식이!!” 퍽!! 퍽!!
준수: “으아아아아아아앙”
그 뒤 저녁에 난 어머니한테 호되게 맞았다. 준수어머니한테 전화가 온 것이다.
엄마: “이 녀석아! 너 누가 친구들 때리고 다니랬어! 엄마가 모라고 했니! 때리는 것보다 차라리 맞으라고
몇 번 말했니? 그깟 하드 하나 때문에 친구를 때려!? 벌로 손들고 있어!”
인한: “엄마!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팔 내릴래.”
엄마: “똑바로 들고 있어!”
그때 갑자기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속으로 난 죽었다고 겁을 질겁 먹었다.
아빠: “뭐야. 여보. 인한이 왜 그래? 무슨 잘못 했나?”
엄마: “글세 친구를 때렸대요.”
아빠: “허허허! 그럴수도 있지? 호오~ 우리 인한이가 싸움도 잘하고 힘도 쌘가? 어디 한번 아버지 팔둑에 매 달려서 턱걸이 좀 해봐. 그리고 당신 이따 나 좀 보고.”
생전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호랑이 같던 아버지가 나한테 너무나 상냥하고 잘 해주시는 것이었다. 너무나 이상했다. 그건 나뿐만 아니었다. 나 뒤에 형 누나 모두 상냥하게 놀아주고 안아주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까지.. 어머니에게 돈을 100만원을 주는 것이었다. 그 당시 100만원 이면 꽤 큰 돈이다. 생전 생활비를 안주시고 연구에만 매달리면서 엄마가 어렵게 장만한 돈을 까먹던 아버지가 글쎄 회사 과장급으로 취직 했다는 것이다. 자존심이 아주 강하시던 아버지에게 그런 일은 당시로써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하지만 어머니, 누나, 형, 나, 모두 너무나 좋았다. 그건 담달도 마찬가지였다. 다음달에는 아버지가 과자를 산더미처럼 사오셨다. 과자 선물 세트를 쫘악 풀어보니 10평 되는 방에 꽈악 찼다. 정말이지 식탐이 있던 나에겐 너무나 행복한 날이었다. 잠도 과자 속에 파 묻혀 잠들었다. 그 뿐 아니라 아버지는 피자도 사오시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오셨다. 3달까지 아버지는 꼬박 월급을 어머니께 드렸다. 난 그 3달간 너무나 행복했다. 그리고 그토록 싫었던 아버지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3달이 끝이었다. 아버지는 곧 쓰러지셨다. 간암말기 셨다. 몇 번이고 특허권을 친구에게 도둑맞아 술에 찌들고 담배를 입에 물고 사신 아버지는 간이 견디어 내질 못한 것이다. 결국 입원비로 300만원은 고스라니 다 없어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걱정에 오래 입원하시지도 않고 집에서 고통스럽게 지내시다가 돌아 가셨다. 철없는 형과 나는 제삿날에도 밖에 나가 놀았다. 형이랑 나는 아버지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았다. 그저 이제 무서운 아버지가 안계시니 좋을 뿐이었다. 이제는 저녁 늦게까지 놀아도 무서운 사람이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누나는 달랐다. 누나는 마구마구 울어댔다. 난 제삿날에도 밖에서 친구들과 팽이치기 하고 딱지치기 하던 게 생생하다. 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전에 한마디씩 우리에게 해주었지만 난 그 말이 무엇인지 잘 기억하지는 못한다. 다만 엄마한테 잘하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한테는 수연이와 경석이는 별 걱정이 없지만 나만은 꼭 매로 다스려야한다고 어머니께 말하시고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그 예상은 적중했다.
나쁜길로 접어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무서운 게 없었다. 그 뒤로 나쁜 것만 배우기 시작하였다. 첨에는 학교에 가는 게 너무 싫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 아이들 모두 동정의 눈길로 날 대하였다. 또 나 땜에 반에서 돈도 거두었다. 그리고 그 당시 담임선생님은 날 끔찍이 아들처럼 걱정해 주셨다. 난 그게 너무 부담스럽고 자존심 상하게 생각해서 학교에 가지를 않고 동네의 질 나쁜 형들과 어울렸다. 일명 학교는 안가고 짜장면 배달하는 질 안 좋은 형들이었다. 그 형들을 첨에 오락실에서 만났다. 내가 계속 구경만 하니까 불쌍해서 인지 오락을 시켜주었고 그 뒤로 그 형들을 따르게 되었다. 이제 정말 나쁜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의남: “인한아! 오락실 가서 오락 맘껏 하고 싶지? 형아 들이 시켜 줄 태니까 형들이 시키는 대로만 해라!”
용한: “그러니까! 의남아! 넌 무조건 아저씨한테 이거 모냐고 하면서 아저씨 이리 좀 와보세요. 하면서 계속
질문을 해서 신경을 끌어! 그럼 내가 금고에서 돈을 훔치고 나올게. 그리고 인한이 넌 밖에서 망만 보 면돼!“
이렇게 해서 결정할 여유도 없이 도둑질에 동참하게 되었다. 물론 성공 적이었다. 만원짜리 여러 장 5천원짜리 여럿, 천원짜리 여럿, 꽤 큰 돈이었다. 나의 몫은 만원짜리 한 장이었다. 그 돈이면 그 당시 못하는 것이 없었다. 군것질도 실컷 하고 오락도 실컷 했다. 그때 나에겐 군것질과 오락이 인생의 전부였다. 난 오락도 잘해서 거의 했다하면 끝판 왕을 깨고는 했다. 50원이면 2시간은 버텼다. 나쁜 짓은 거기서 끝나질 않았다.
의남: “용한아! 너 혹시 그거 들었냐? 가스 랜인지에 있는 똑딱이만 있으면 오락실에서 오락 실컷 하는거!”
용한: “아.. 그거 들어봤어.. 오늘 한번 해볼까?”
의남: “인한아! 공터에 가서 가스랜인지에 똑딱이좀 띠어 와라!”
가스랜인지의 똑딱이 전선을 코인구멍에 넣어 팅길때마다 오락을 공짜로 할 수 있었다. 결국 그렇게 해서 오락실에서 돈을 내지 않고 불법으로 오락을 즐겼다. 물론 걸려서 오락실 주인에게 호되게 혼난 적도 있었다. 그럼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오락실에 가서 불법으로 오락을 했다. 그 당시 3학년 이었지만 성격도 많이 나빠지고 점점 어린이의 순수함을 잃어만 갔다.
어머니의 고생
이제 어머니는 가장이 되셨다. 더욱 바빠지셨고 우리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개발해놓으신 깔창을 모래네 시장에 가서 팔곤 하셨다. 난 심심할 때면 엄마 곁에 가서 엄마가 장사하는 것을 구경하곤 하였다. 그런데 한번은 어떤 아저씨들이 장사를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저씨들이 물건을 치우라고 했을 때 어머니는 강하게 저항을 하자 엄마의 머리를 잡고 끌고 갔다. 난 너무 무서웠다. 그때 남자들이 어머니가 그곳에서 장사를 못하게 하자 어머니는 그들에게 침을 뱉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어머니는 그들에게 뺨을 맞고 그 곳에서 쫓겨 났다. 난 너무나 서러워 그날 하루 종일 울었다.
엄마: “너 뚝 끗이지 못해! 너 요세 학교 왜 안나가니! 선생님한테 전화 왔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빠 없다고 엄마를 무시하는 거야? 너 아비 없는 호로새끼라는 말 듣고 싶어서 그러니?
어서 종아리 걷어! 넌 좀 혼나야해!“
그때 난 대꾸 한마디 못하고 서럽게 울면서 매를 맞았다. 그 뒤로 다시 학교에 가고 그 짜장면 배달하는 형들과는 더 이상 놀지 않았다. 근대 그 도둑질의 버릇은 고치지 못했다. 어머니는 우리를 먹이고 교육시키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는 아주머니를 통해서 페인트 일을 시작하였다. 페인트일은 여자가 하기에는 힘든 일이었지만 바로 돈이 나오고 다른 일보다 일당이 세서 그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난 자기 전에 어머니가 아버지가 입던 양복 주머니에 돈을 숨겨 놓는 것을 보곤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일을 나가고 없을 때면 또 학교를 안가고 몰래 그 돈에서 만원씩 꺼내서 군것질을 하고 오락실에 다니곤 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결국 걸리게 되었다. 누나 형 나는 결국 저녁에 모두 어머니께 불려갔다.
엄마: “혹시 너희들 중에서 엄마 돈에 손댄 사람 없니?”
우리 셋은 모두다 침묵을 지켰다. 그날은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거기서 손을 떼어야만 했는데 며칠 후 난 또 돈에 손을 대었다. 난 아무 걱정 없이 오락실로 향했다. 어머니가 뒤에서 미행하는지도 모른체.. 난 오락실에 도착해서 재미있게 아무 생각 없이 오락을 하고 있었다. 근대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집는 것이다.
짝!!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난 어머니에게 뺨을 맞았다.
엄마: “너 학교 안가고 여기는 왜 왔니? 또 돈은 어디서 난 거야? 이리 따라와!”
난 어머니한테 끌려와 집에서 호수로 엄청나게 맞았다.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그 뒤로 난 어머니 양복 주머니에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 자주 빠지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나가셔서 날 돌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줄곧 혼나 집에서 책을 쌓으며 놀기도 하고 안나오는 TV를 켜놓고 보기도 하였다. 어쩔 땐 미국 방송도 보기도 했다.
가출
아버지가 계실 때의 일이었다. 늦은 저녁 목이 말라 부엌에서 물을 따라 먹을려고 하는데 실수로 컵을 깨뜨 렸다. 그래서 난 틀림없이 아버지에게 혼난다는 생각에 휩싸여 집에서 무작정 도망 나왔다. 그만큼 아버지가 무서웠다. 결국 늦은 저녁에 어린 나이에 미아가 되었다. 그래서 파출소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하루 집에 없어보니까 너무 좋았다. 경찰 아저씨들이 맛있는 것도 많이 주고 과일도 주고 친철하게 대해 주셨다. 무서운 아빠와는 매우 달랐다. 그때 밖에서의 생활이 멋지다고 내 마음에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유분방한 나는 조금씩 가출에 대한 생각이 깊어만 갔다. 어느 날 무작정 형이랑 이불을 들고 밖에서 자자고 하면서 나갔다. 잘만한 곳을 물색해 본 결과 앞 동네의 공터의 언덕이 딱 좋았다. 누워서 이불을 덮고 하늘을 바라보면 반짝반짝 총총한 별들이 우수수 쏫아질 것만 같았다.
인한: “형아야~! 밖에서 자니까 너무 좋다. 그지?”
경석: “그래~! 캡이다! 야야! 인한아~ 자주 와서 여기서 별도 보고 그러자!”
인한: “그래그래~! 오예! 배고프면 고구마도 구워먹자~!”
경석: “이제 여기는 우리들의 아지트다! 자주 이 공터에 모이자!”
형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일어나보니 집에 누워있고 어머니는 일가시고 안계셨다. 밤새도록 걱정대서 찾다가 공터에서 자는 것을 발견하고 옮겨 놓으신 것이다. 그때 얼마나 걱정 하셨을까? 그런데도 그런 외박은 자자 졌다. 그런데 어느덧 형은 더 이상 밖에서 자는 걸 거부 했다. 그래서 결국 나 혼자 밤늦게 밖을 배회하고 돌아 다녔다. 어느덧 해는 지고 아주 컴컴해졌다.
엄마: “인한아~ 인한아~! 어딨냐?”
경석: “야! 인한이! 어딨어! 엄마 걱정 하신다! 빨랑 나와라.”
난 어머니와 형이 날 찾는 것을 보고 얼른 자동차 뒤로 숨었다. 그 시절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이유 없는 반항이랄까.. 괜히 찾으니까 더 숨고 싶어지고 더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결국 그때 첫 가출을 했다. 밤새도록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까 아침이 대었다. 아침이 되니까 배도 고프고 지쳐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근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멀리 와서 돌아갈 길을 잃어 버렸다.
인한: (훌쩍훌쩍) ‘엄마...’
아저씨: “애야.. 왜 울고 있니?”
인한: (흑흑) “집에 가는 길을 모르겠어요.”
아저씨: “그래 사는 곳이 어딘데?”
인한: “잘 모르겠어요. 배고파요.”
아저씨: “그래. 일단 아저씨가 슈퍼 가서 빵 좀 사올게.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거라.”
그 아저씨는 부지런한 쌀집 아저씨였다. 매우 친절한 분이셨다. 이른 새벽에 훌쩍대는 날 보고 걱정하시고 빵하고 우유까지 사다 주셨다. 그리고 가까운 파출소에 2번째 방문하게 되었다. 그날 저녁 어머니가 파출소로 찾아와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 갈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다시는 가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어머니께서는 밤새도록 날 찾으러 돌아다니시고 다시 새벽에 일을 가셨다고 한다. 정말 나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얼마나 어머니께서 힘드셨는지.. 하지만 어머니는 꾸중 한번 안하시고 그날 저녁 오히려 맛있는 것을 사주셨다. 그런 어머니의 모성애에 참으로 감사한다.
오락 중독
왜 나는 나쁜 버릇을 쉽게쉽게 배우는지 모르겠다. 저번에는 준수네만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조금씩 흐리면서 이집 저집 컴퓨터에 비디오까지 사게 되었다. 물론 우리 집은 예외였다. 아주 낡고 거의 나오지 않고 9번만 잘 나오는 TV 한대가 고작이었다. 그래서 난 이제 매일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쉽게 컴퓨터 오락에 중독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오락이 좋아져서 다시 오락실에 발을 붙이게 되었다. 이제는 예전보다 훨씬 심해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갔다. 어느새 용돈도 100원으로 올랐다. 예전 갔으면 바로 매일슈퍼로 달려가 군것질을 했건만 이제는 바로 오락실에 동전을 투입했다. 그때 한창 유행하던 오락이 스트리트 파이터였다. 물론 그 오락 역시 최고로 잘했다. 형도 곧 나와함께 매일 같이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물론 하루 종일 구경하고 가끔 아는 형이나 오락실 주인이 한판씩 시켜주곤 하였다. 한판하면 거의 조이스틱을 놓질 않았다. 거의 승리하였다. 한번은 너무 계속 이겨 어느 형한테 호되게 맞은 적도 있다.
양아치: “너 이 새끼야! 밖으로 따라와!”
인한: “왜요?”
양아치: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
그 형은 나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갔다. 그래서 그 형 친구들과 같이 날 때렸다. 난 그렇게 맞고도 담날 또 다시 오락실에 갔다. 정말이지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엄마: “인한이, 경석이 이리 좀 와봐라! 요새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니 예전에는 밖에서 뛰놀기만 하더니 이젠
통 보이지가 않는구나. 내가 아는 아주머니 말로는 너희들을 오락실에서 자주 봤다고 하는데 사실이 니?”
인한: “....”
경석: “네. 담부터는 안 갈게요. 약속해요.”
(툭툭치면서) ‘야.. 인한아.. 너도 안간 다고해.. 맞고 싶어?’
인한: (자신 없는 목소리로) “네...저도..안..갈..께..요..!”
엄마: “그래! 엄마가 너희들 믿는다. 다음부터 오락실 가지마! 거기에 나쁜 얘들이 얼마나 많은데.. 차라리 예전처럼 집 앞에서 얘들이랑 놀아.”
그 약속은 일주일도 못 갔다. 다시 오락실에 다녔다. 그날은 운 좋게 오락실 주인아저씨가 공짜로 한판 시켜주셨다. 그날은 게임월드라는 오락을 하고 있었다. 시간제 오락인데 시간제를 깨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돈이 없을 때에는 그 오락이 최고였다. 그런데 저번과 같은 일이 또 벌어졌다. 어머니한테 발각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형도 같이 있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어깨로 툭툭 치더니 어머니는 형의 뺨을 때렸다.
엄마: “이 녀석들! 경석이! 너 형이 대가지고 동생한테 좋은 거 가르쳐준다! 둘 다 따라와!”
어머니는 매우 화난 표정으로 먼저 집으로 향하고 나와 형은 불안한 마음으로 어머니 뒤를 슬금슬금 따라갔다.
경석: ‘인한아.. 우리 죽었다.. 차라리 도망가자..’
인한: ‘형.. 안돼.. 나중에 잡히면 더 맞을 거야.. 이번에 그냥 들어가자..”
그렇게 해서 방앗간을 통과해서 집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형과 나는 종아리를 걷고 가죽혁대로 엄청 맞았다. 하지만 그렇게 맞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 첨엔 88오락실만 가다가 하도 어머니한테 많이 걸려서 태양 오락실로 옮겼다. 하지만 어머니는 귀신이었다. 역시 발견 되었다. 온몸에 멍이 가시질 않았다. 그렇게 걸리고 맞는 게 수십 차례였다. 태양 오락실에서 또 계속 걸리니까 다시 88오락실로 갔다.
경석: “인한아! 빨리 의자 밑으로 숨어! 엄마 친구들이다!”
인한: ‘휴우.. 형 큰일 날 뻔했다.’
이렇게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 즐겁게 오락을 하고 있는데.. 엄마한테 또 발각됐다. 늘 예전처럼 그 자리에서 호통을 치거나 꿀밤을 주거나 뺨이나 어깨를 때렸어야 하는데 엄마는 가만히 계시다가 조용히 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그것이 오히려 더욱 불안했다. 나와 형도 서로 말없이 조용히 따라갔다. 평소 갔으면 ‘우린 죽었다.’ ‘오늘은 뭘로 맞을까’ ‘혁대, 호수, 단소.. 차라리 호수가 젤 안 아프지.’ 이런 대화를 하고 어머니의 뒤를 따랐지만 그날만은 아무 말 없이 엄마의 뒤를 따랐다.
엄마: “인한아...경석아... 앉아봐라...”
“.....”
“.....”
인한・경석: “.....”
몇 초의 적막이 흐른 뒤 조용히 어머니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어머니에 한마디에 우리는 그 뒤로 오락실을 가지 않았다.
엄마: (흐윽흐윽) “엄마가..엄마가.. 너무 힘들다.”
그날 우리는 같이 울면서 마음속으로 다시는 오락실을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마 형도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런 나쁜 습관을 고치게 되었다.
나의 약함
이제 3학년이 되니까 다른 친구들과 덩치가 대등해졌다. 2학년까지는 내가 전교에서 거의 가장 큰 편이었다. 물론 힘도 셌다. 하지만 난 하도 군것질만 하고 밥을 잘 안 먹어 잘 자라지 않았다. 그 사이에 친구들이 나의 키를 따라잡았다. 또한 내가 맘먹던 형들은 갑자기 크고 목소리도 변하기 시작했다. 난 어려서는 3살 위까지 친구처럼 대했다.
경하: “너 인한이! 이제 나는 초등학교에서 최고참 이니까 나보고 형이라고 해라! 이제 반말하면 죽을 줄 알 아!”
인한: “머 이새끼! 죽고 싶냐? 어디서 명령 질이야!”
퍽!! 퍽!! 경하라는 형의 주먹이 나의 얼굴을 쳤다. 경하 형은 울 형 친구다. 근대 예전에는 나한테 기도 못 폈는데 6학년이 되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키도 머리통 하나는 나보다 커졌다. 단 두 방에 펀치에 나의 코에서 쌍코피가 터졌다.
인한: “으..으.. 죽인다.”
힘에서 밀린 나는 바로 얼굴을 할퀴어 버렸다. 경하형의 얼굴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 내렸다. 그리고 얼굴에 아주 선명한 5개의 깊은 손톱자국이 새겨졌다. 바로 구경하던 친구들이 말렸다. 나와 경하 형은 서로 죽일듯한 기세로 친구들이 말리는 것을 뿌리치려고 버둥거리며 욕을 해댔다. 그것을 듣고 경하의 어머니가 나오셨다. 물론 그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나와 경하 형을 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경하 어머니: “너 이 녀석! 내 새끼.. 내 새끼..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다니.. 못된 녀석! 버릇없는 녀석!
아버지 없으면 착하게 살아야지!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웠어.! 경하야 왜 싸운 거니?”
경하: “아 저자식이 나보다 한참 동생인데 자꾸 반말하고 지랄이잖아.”
쫙! 쫙! 쫙!
경하 어머니: “에이! 죽어! 죽어! 이 못된 놈아!”
그날 난 너무 많이 맞아 얼굴이 퉁퉁 부웠다. 집에 들어와서도 내가 너무 약해진 것에, 아니 다른 사람들이 강해진 것에 너무 분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경하 형에게 복수할 기회를 생각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울 형의 졸업 앨범을 보고 그 마음도 사라졌다. 졸업앨범에 경하 형의 얼굴을 봤는데 손톱자국이 선명한 것이 영 보기가 흉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이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하면서도 약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 사건 뒤로 2살 많은 형들까지 반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물론 싸움이 났고, 싸움은 내가 불리했고 난 치사한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돌을 던지기도 했고, 막대기를 들고 싸우기도 했다. 결국에 난 1살 차이만 빼고 다 형이라 불렀다. 현재는 어려서부터 친한 사람 아니면 1살 위도 웬만하면 다 형이라고 부른다.
골목대장의 자리를 뺏기다
이제 내 친구들 마져도 나와 힘과 키가 비슷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나랑 동갑내기 녀석이 이사를 왔다. 그 녀석은 권투를 배운단다. 그리고 그 녀석 아버지는 권투 선수였고 형까지도 권투 선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녀석은 겉보기에도 강해 보였다. 얼굴은 시커멓고 인상은 드러웠으며 얼굴에 손톱자국이 많은 게 과거에 쌈 꽤나 한 녀석 같았다. 게다가 몸도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땅땅해 보였다. 웬만하면 잘 안 쪼는 나는 그 녀석은 왠지 부담스러웠다. 권투했다는 말에 은근히 겁을 먹고 있었는데 얼굴까지 날 겁먹게 만들었다. 난 그 녀석과 웬만하면 싸우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맘대로 되질 않았다.
경석: “인한아! 너 새로 이사 온 대팔이 라고 아냐? 그 녀석이 너랑 싸우면 지가 이긴데?”
인한: “미친놈! 누가 그래! 내가 이겨! 그놈 대리고 오라고해!”
경석: “히히.. 이 형이 누구냐? 그래서 이따 오후에 오라고 했지! 그리고 동네 애들도 다 모이라고 했다.
이따 점심 먹고 이제 정식으로 너희 둘이 싸우기만 하면 되고 먼저 코피 터지거나 우는 놈이 지는 것이 다. 캬캬! 이길 라면 밥 많이 먹어라.”
이모: “이 녀석들 너희들 싸우니!? 경석이 너 못 됐구나! 애들 싸움질이나 시키고! 근대 이모도 구경하면 안 될까? 히히히”
난 속으로 이모가 말려 줄줄 알았지만 형이랑 맞장구 치는게 너무나 미웠다. 오랜만에 와서 첨엔 반가웠는데
그때는 정말 형이랑 이모가 적으로 보였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서 애들이 많이 모였고 심판은 울 형이 보았다.
경석: “에헴! 이제 울 동네 3학년 짱을 뽑을 것이다. 1분씩 10라운드로 싸울 것이며, 먼저 울거나 코피 터지 는 녀석이 지는 것이다. 자아~ 서로 긴장 풀고 시작 하면 싸워라! 자아~ 시작!”
우리 둘은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서로 달겨들어 주먹을 마구마구 주고받았다.
경석: “자자! 1라운드 땡땡!! 그만그만!! 야 말려라!!”
생각보다 녀석은 강했다. 맞은 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경석: “자 1분후에 다시 2라운드 시작이다! 자.. 다시 준비하시고 시작!”
이번에는 서로 약간 뜸을 들였다. 왜냐하면 서로 아파서 약간 싸우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주의에 야휴에 다시 서로 엉켜 넘어지고 구르다가 2라운드가 끝났다.
경석: “이런 겁쟁이 녀석들! 쫌 재미있게 좀 싸워봐라!”
2라운드가 끝나고 왠지 자신이 없어졌다. 생각보다 녀석의 주먹이 강했다. 그리고 여기서 관두자니 자존심도 상하고 미칠 노릇 이였다.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3라운드가 시작됐다. 3라운드에서 경기의 승패가 갈렸다.
대팔이형: “그렇지! 대팔아! 계속 밀어 부쳐! 그래그래~ 잘 한다. 역시 내 동생 대팔이다!”
경석: “야! 인한이! 제대로 못 싸워! 왜 막기만 하냐! 너도 쳐라!”
퓨쓕!! 코에 쌍코피가 터지고 피가 덩어리째 나왔다.
이모: “애들아! 그만해라!! 그만해! 정말 큰일 나겠다. 경석이 너도 그만해! 얼른 둘 다 집으로 들어와.”
이렇게 해서 난 패자가 되고 골목 대장자리 마져 뺏겼다. 들어가서 이모는 나의 피를 손수건으로 잘 닦아 주었다.
이모: “인한아! 잘 했어! 그래도 잘 싸우네. 그리고 다음부터는 절대 싸우지마~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그래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대면 대팔이도 이길 수 있는 거야!?”
경석: “케케! 약한 녀석! 졌대요~ 얼레리~꼴레리~!”
난 그 소리에 울컥해서 형에게 주먹을 날렸다. 물론 한대 때리고 엄청 맞았다. 그날 저녁에 형은 잠자리 이불속에서, 컴컴한 어둠 속에서 나에게 사과를 했다.
경석: “인한이! 삐졌냐? 이리 이불속으로 와바!~ 손으로 이불 비벼봐라! 불꽃 튀긴다.”
인한: (스윽스윽스윽) “와 신기하다! 신기해!”
경석: “무식한 녀석아! 이게 다 마찰이라는 것 땜에 그런 것이다. 잘 기억하도록!”
인한: (스윽스윽스윽스윽스윽스윽) “캬캬! 잼있다.”
경석: “야야! 고만해라! 정신 사납다. 이래서 애들 앞에서 뭘 못해요. 야 인한아! 아까는 많이 아팠냐?
자식아~ 원래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 너도 많이 약해졌다. 형이 그냥 심심해서 장난 쳐 본거다.
너무 맘 쓰지 말고.. 어차피 우리 좀 있으면 이사 간데.. 그러니까 쪽팔린 것도 잠시야. 그럼 잘자라.”
짝사랑
이제 곧 우리 집은 이사를 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난 이사 가는 게 싫었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2학년 때 여자반장 이던 선아라는 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선아: “인한아~ 오늘 네가 청소니까 남아서 청소해야해! 저번처럼 도망가지 말고 오늘은 꼭 남아!”
인한: “켁! 네가 내 엄마냐!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확 그냥 혼날 라고! 그럼 난 간다! 수고해라!”
선아: (내 손을 잡으며) “야~ 너! 거기 멈춰! 오늘 청소하고 가란 말이야!”
인한; “이게! 맞을 라고! 안 놔? 안 노면 때린다.”
선아; “못 놔! 청소하고가!”
퍽!! 나에 마음과는 다르게 선아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선아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청소하고 싶었지만 괜한 자존심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는 잘 기억이 안난다. 그 당시 사정이 어려워 소풍도 가지 못했고 선아와의 추억도 거의 없었다. 그냥 멀리서 보고 좋아했을뿐이다. 그래도 3학년에 올라가서도 계속 좋아하고 있었는데 이사를 간다니.. 너무나 싫었다. 하지만 내가 가기 싫다고 해서 안 가는 것도 아니고 결국 3학년 늦가을에 좋아하던 마음을 가슴에 묻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날 친 자식처럼 꼬옥 안아주고 아이들과 같이 사진도 찍어주고 지금 생각하면 참 어머니 같은 고마운 선생님이셨다. 1학년 2학년 담임선생님은 내가 말썽꾸러기라 그다지 잘 챙겨주지 않았지만 3학년 담임선생님은 너무나도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그건 선생님도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이란다. 김녕서 선생님.. 아직도 그 이름이 생생하고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즐거웠던 추억을 남긴 채..
3학년 늦가을 우린 생활보호 대상자로 노원구에 있는 12평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이곳은 한마디로 낙원이었다. 낙원.. 과거에 멀리 있고 냄새나던 화장실 대신 수세식 화장실이 바로 집안에 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물도 나왔다. 더는 물을 데워서 목욕하는 번거로움은 없었다. 그리고 싱크대도 있고 따뜻한 물로 설거지를 할 수 있고 물을 길러 올 필요도, 물을 버리러 갈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13층이어서 물을 퍼내는 일도 없었다. 예전에 지하라서 장마철만 되면 늘 바자기와 대아로 물을 퍼야만 했다. 한번은 자다가 물에 잠겨 스폰지 위에 둥둥 뜨면서 잠을 자다가 깬 적도 있다. 그리고 물을 다 빼고 물품을 말리려면 최소한 몇 주나 젖은 집에서 보내야했고 시멘트위에서 돗자리를 깔고 자야만 했다. 그리고 습한 냄새가 말도 못했다. 여름은 아주 지옥이었다. 근대 이제는 겨울에는 따뜻한 물에 여름엔 찬물에.. 너무나도 편리했다. 그 뿐인가! 우리는 세탁기까지 선물로 받았다. 예전에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에서 사주신 것이다. 그 회사에서 이사비용으로 300만원도 지원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와서 청소도 해주고 참 고마운 분들이었다. 이제 빨래도 밖에서 안 해도 되고 밖에서 안 널어도, 안 걷어 들여도 댄다. 비만 오면 “인한아! 빨리 빨래 걷어라”라는 말이 너무 싫었는데 이제 베란다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형이랑 양쪽 옷깃을 잡고 바둥거리며 옷을 짜곤 했는데.. 이제는 간편한 스위치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 됐다.
엄마: “애들아! 이곳이 이제 우리 가족이 살아야할 새집이란다. 아직은 텅텅 비였지만 천천히 하나하나 채우도 록 하자.”
수연: “히히히, 정말 편하다. 설겆이도 빨래도.. 이제 제가 설거지 다 할게요.”
경석: “아냐아냐! 내가 할 거야!”
인한: “싫어! 내가 할 거야!”
우린 서로 하겠다고 난리였다. 어머니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그때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모든 게 다 잘 풀리는 듯 했다. 하지만 우리야 철이 없어서 즐거웠지만 어머니는 이제 먼 곳으로 이사 와서 먹고 살게 걱정이셨다. 결국 다시 동네에 페인트 업자를 만나서 다시 페인트를 시작해서 생활을 꾸리셨다. 이제 누나도 고등학생이 되고 형은 중학생이어서 학비가 너무 부담이 되었다. 형과 누나는 학교에서 지원을 받아 수업료는 해결 했지만 교복비 책값 급식값등 부담이 이만 저만이 아니셨다.
나쁜 친구들
태어나서 첨으로 전학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선생님 모든 것이 설레임 자체였다. 첨 하루만 어머니와 함께 학교를 가고 그 후론 혼자 학교에 다니곤 하였다.
엄마: “인한아. 엄마는 바쁘니까 이제 혼자 학교 다녀야한다.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잘할 수 있겠지?
인한: “그럼 엄마! 내가 무슨 얘도 아니고.. 나도 클 만큼 컷다고! 걱정 하지마!”
첨에 전학 와서 학교에 다니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주위에는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마음이 통한 다는 게 좋은 쪽으로 통하는 것만은 아니다. 다들 가정환경이 좋지 못해 안 좋은 버릇들을 가진 녀석들이 많았다. 4학년 때의 일이었다.
진호: “인한아~ 너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아냐?”
인한; “아 그거! 그거야 남자랑 여자랑 둘이서 잠만 자면 생기는 거야~ ”
진호: “그래? 내가 알기로는 남자랑 여자랑 뽀뽀만 하면 생긴다던데? 아닌가?”
창규: “후후후. 어린 녀석들~ 오늘 학교 끝나고 우리 집에 와라. 그 해답을 알려 줄테니까!”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새로 사귄 창규네 집으로 향했다. 녀석은 서랍에서 뒤적뒤적 거리더니 이상한 검정 비디오를 꺼내었다. 그 비디오는 포르노 테잎이었다. 만화나 보던 나에겐 그 비디오는 평생 잊을수 없는 큰 충격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엮겨 워서 비디오를 끄라고 했지만 창규 녀석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비디오에 열중했다. 그 날 이후로 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첨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 엄마를 보는 눈길도 이상해졌다. 그리고 모든 어른들을 보는 눈도 이상해졌다. 창규 녀석은 이 후로도 또 다른 새로운 테잎이 있다며 나를 초대하곤 했다. 물론 거절했지만 창규 녀석은 지독한 녀석이었다. 포르노 잡지를 학교에까지 가져오곤 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곤 하였다. 그런데 그런걸 보고 좋아하는 녀석들이 더 이상했다. 이곳에 녀석들은 예전에 살던 동네 아이들과는 어디인가 잘못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좀 잘살고 부잣집 녀석들은 우리들과는 잘 사귀지 못했다. 걔들은 나와 내 친구들을 왠지 부담스러워 했다. 자연스럽게 파가 갈라져 끼리끼리 놀게 되었다.
새로운 놀이
새로 이사 오면서 당연히 우리 형도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형 친구들은 자주 우리집에 놀러와 우리형의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형 친구들은 내 친구들과는 달리 어려운 환경인대도 불구하고 좋은 형들이었다. 그 형들의 놀이 문화는 순수했고 멋졌다. 주로 모여서 게임을 하고 밖에서 농구를 하는 것이었다. 난 형들을 통해 그 때 농구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성남: “경석아! 너 농구 할줄 아냐?”
경석: “농구? 농구가 뭐지? 몰라 못해!”
성남: “야 정범이 너는 할 줄 아냐?”
정범: “못해! 자식아! 이상한 것만 배워가지고!”
성남: “그럼 오늘 해보자! 농구 하면 엄청 재미있다.”
처음에 다들 안한다고 거부 했다. 그런데 정범이 형이 먼저 농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명 하기 시작하니까 하나 둘 모두 농구를 했다. 이제 농구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형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가서 농구를 하고 방과 후에 모여서 농구를 하였다. 물론 나도 오후에는 항상 형들을 쫓아 다니면서 어깨너머로 농구를 배웠다. 50점 내기를 하면 47점 남겨놓고 나에게 농구를 할 권리를 주었다. 그 전까지는 몇 시간이고 기달려야 했다. 물론 추운 겨울에도 뜨것운 여름에도 난 미련하게 그 3점을 위해 기다렸다. 그렇게라도 한 것이 도움이 되어 결국에 난 친구들 중에서 농구를 가장 잘하게 되었다. 그리고 녀석들도 덩달아 농구에 집착하게 되었다. 덕분에 이제 창규도 진호도 포르노 같은 것에서 관심이 멀어지게 되었다.
깡패
난 이사 오기 전까지도 깡패라는 게 뭔지 잘 몰랐다. 하지만 이 동네에 와서 깡패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다. 어느 늦은 저녁 난 슈퍼에 라면을 사러 갔었다.
경석: “야 인한이! 형아가 천원 줄 테니까 슈퍼 가서 라면 좀 사와라! 잔돈 남은 거 먹지 말고 잘 가져 오고!”
인한: “싫어! 내가 무슨 형 꼬봉이야! 형이 갔다와.”
경석: “이게 죽을 라고 때를 쓰네! 좋은 말 할 때 갔다 와라!”
인한: “싫다고! 안간 다고!”
그러더니 형은 압력기를 집어 들더니 나에게 던졌다. 째쟁!! 내가 압력기를 피하는 바람에 뒤에 있는 창잔 유리가 다 깨져버렸다.
경석: “이 자식이 성질 건들고 있어! 갔다 와라!”
인한: “으....”
억울하지만 난 조용히 슈퍼로 향했다. 나이를 조금 더 먹으니까 형의 무서움도 알게 되었다. 힘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나보다 강해졌다. 어렸을 때 비등비등했던 형과 나의 힘의 차이는 커져만 갔다. 이제 나는 형한테 잡혀 살게 되었다. 그때 시간이 꽤 늦어서 거리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어떤 고등학교도 넘어 보이는 형이 날 부르는 것이다.
양아치: “야! 꼬마야! 이리 와봐라!”
인한: “잉? 왜요? 누구세요?”
그러더니 그 양아치 형은 상스러운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양아치: “이런 어린놈의 새끼가 죽을 라고! 야 너 돈 있는 거 다 꺼내봐라!”
인한: “어..없어요.”
양아치: “없어. 이게 구라치네. 아 새끼야! 너 뒤져서 나오면 10원당 한대씩이다.”
인한:(울먹울먹)“저 이거 천원 형꺼에요. 이거 없으면 형한테 맞아 죽어요.”
갑자기 내 멱살을 잡으면서 천원을 뺏아갔다.
양아치: “이게 어디서 뻥을 쳐! 야! 오늘은 조용히 보내주는데 담부턴 조심해라. 그리고 누구한테 꼰지 르면 그땐 알지?”
내가 예전에 알던 그러게 얕잡아 볼 수 있는 형들이 아니었다. 진짜 질이 안 좋았다. 결국 돈을 뺏기고 형한테 뭐라 변명할지 걱정이었다.
인한: “아.. 형 나가다가 돈을 잃어버렸나봐.”
경석: “미친놈! 이게 거짓말 하네. 여기서 슈퍼까지 엎지면 코닿는데 어디서 뻥을쳐! 빨랑 라면 안 사올 래.”
인한: “고만해! 그래서 내가 안 간다고 했잖아! 한번만 더 모라고 해봐라!”
경석: “허~ 이 녀석 봐라!”
형은 나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인한: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치지 말라고오오오오오오오!!”
갑자기 한대 맞고 난 흥분해서 벌컥 대들었다. 그러더니 형은 나의 멱살을 잡더니 나의 뺨을 치기 시작했다.
경석: “야! 미쳤냐?”
짝!! 짝!! 짝!! 난 한대 한대 맞을 때마가 속으로 수를 세었다. 20대까지만 참고 가치 싸울 생각을 품고 있었다. 17대.. 18대.. 19..20.. 퍽!!!!!!!! 난 형의 코를 정확히 갈겼다. 형의 코에서는 피가 심하게 났다.
갑자기 형은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난 무서웠다. 틀림없이 나오면 가만히 있질 않을 것을 예상했다. 예상은 맞았다. 형은 코피를 수습하고 나와서 나를 눕히고 신나게 후들겨 팼다. 상황은 늦게 엄마가 일마치고 오신 담에 해결되었다. 물론 같이 꾸중을 들었지만 형은 매를 맞게 되었다.
엄마: “인석아! 형이 되가지고 동생을 보살펴야지. 이렇게 개패듯 패면 어쩌니? 도대체 형이 되어 동생 이 뭘 배우겠니? 얼굴 좀 봐라. 얼마나 때렸길래.. 아버지가 안 계실수록 너희둘이 사이좋게 지내 야지! 도대체가 엄마가 힘들게 일하고 들어오니까 방도 엉망이고 찬장유리도 깨지고 아주 개판이 야! 너희들 담부턴 엄마 들어오기 전에 방 깨끗이 정리 안 해 놓으면 혼날 줄 알아! 그리고 경석 하고 인한이 담에 또 싸우면 이 정도에서 끈나지 않을 거야!”
경석: “엄마 죄송해요. 앞으로 잘할게요.”
인한: “저도요. 다신 안 싸울게요.”
물론 이 이후로 치고 박고 많이 싸웠지만 전처럼 그리 심하게 싸우지는 않았다. 만약 그때 엄마가 매를 들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면 형과 나는 계속 싸웠을 것이다. 문제가 있을 때 마다 늦게 들어오시고 피곤하신대도 늘 우리들을 챙겨 주셨다. 여자로써 새벽에 일어나서 힘든 노동일을 하고 저녁 늦게 들어와서 밥하고 청소하고 또 담날 일가고.. 그것은 남자도 힘든 일이다. 나도 고등학교 졸업해서 1년 정도 별보고 나가서 별보고 들어오는 생활을 했었는데 결국 1년 후 직장을 관둔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30년 정도 그 힘든 일을 참고 해오셨다. 참으로 감사한다.
이성
초등학교의 마지막 6학년까지는 나에겐 성이 한 가지였다. 남자나 여자나 그냥 구분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구분이 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내 맘속엔 그때부터 나에겐 여성과 남성이 존재하게 된 것 같다. 그때부터 난 여자친구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한 것 같다. 내가 잘하는 것이라곤 농구 밖에 없어서 농구를 멋지게 해서 여자아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때 이상하게 이쁜 여자애들보다 공부를 잘하는 여자가 더 좋았다. 그래서인지 난 반장이나 부반장을 많이 좋아했다. 아마 그때부터 사춘기가 조금씩 시작한 것 같다.
창규: “야 인한아! 6학년 8반에 효희라는 애 봤냐? 진짜 이쁘다. 어떻하냐? 나 반했나봐? 근대 넌 좋 아하는 여자애 없냐?”
인한: “어..어 난 그냥 다 좋아. 공부 잘하고 그러면 다 좋고 누구 특별히 좋아하는 애는 없는데.”
창규: “그러냐~ 아 난 미치겠다. 근대 너 그거 아냐 나 몽정 했다. 고추에서 이상한 흰 덩어리가 막 나 와~ 근대 그게 기분이 되게 좋아~ 그래서 일부러 나오게 한다니까! 혹시 넌 안 그러냐?”
인한: “아니? 흰 덩어리? 아 그거 예전에 너네 집에서 비디오 볼 때 그런 거 나왔잖아. 아 추잡한 자 식! 이제 너랑 놀면 안 되겠다.”
창규 녀석은 나와 또래들보다 성장이 빨랐다. 녀석은 털도 나기 시작했고 몽정까지 했다. 아마 어려서부터 성적인 매체들을 많이 접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이제 나도 6학년부터 조금씩 남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느끼지 못했다.
중학생
무사히 전학 와서 그다지 큰 사고 없이 달 보냈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어머니의 꾸지람의 기억은 거의 생각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나는 사춘기가 접어 들었다. 그러면서 나의 본질성이 삐딱성이 발동 되었다. 중학교 때 우리 학교는 머리를 짧게 밀어야 했다. 하지만 난 머리에 상처가 있다는 이유로 중학교에 가서도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덕분에 학생부장 선생님과 선배 형들한테 보기 좋게 찍혀 버렸다.
학생부장: “너 이 새끼! 이리 와봐! 너 이 녀석 중학교 입학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머리를 안 잘랐 어! 이게 아주 아직도 초등학생인줄 아나보네! 너 몇 학년 몇 반이냐? 내일까지 꼭 자르고 오도록!”
인한: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크게 잘 했지만 물론 머리는 자르지 않았다. 담날 학교 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학생부장이 또 나와 있었다.
인한: “아~ 저 자식은 또 나와 있네. 아 일부러 일찍 왔는데 소용없네. 담 넘어야겠다.”
학생부장 때문에 담을 넘는데 귀신같은 학생부작은 날 딱 발견했다.
학생부장: “야! 이 녀석아! 거기 너 어느 반 번호가 뭐냐? 이리와라!”
인한: “헉, 도망가자!”
학생부장: “야 임마! 거기서!”
나는 무작정 교실 쪽으로 도망갔다. 다행이 붙잡히지는 않았다. 큰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데 학생부장은 쉬는 시간에도 날 찾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날은 무사히 넘어갔다. 남달에 난 계속 쪽 구멍으로 다녔다. 왜냐하면 학생부장이 거의 맨날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하루는 학생부장이 안나와 있었다. 왠 떡이냐 생각하고 교문을 들어서는데 누가 나의 귀를 잡더니 귓 방망이를 주먹으로 쳤다. 학생부장 이었다. 아주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학생부장은 거기에 분이 안차서 나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살갖이 벗겨져 피가 나고 나중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생은 젊었을 때 팬싱 선수였다. 그래서인지 성질이 불같은 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한테 찍혀 나와 중학생활은 그리 편치만은 못했다.
괴롭힘
중학생이 되서 성격이 더욱 못되게 변했다. 약자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 이었다. 난 중학교 때 뚱뚱한 애들을 너무너무 싫어했다. 그래서 이유 없이 뚱뚱한 애들을 괴롭혔다. 쉬는 시간에 성훈이라는 녀석의 뒤통수를 이유 없이 때렸다.
인한: “야! 이 돼지 새끼야! 머리 좀 감아라! 아유.. 애들아 이 비듬 좀 봐라! 아주 드러워 죽겠네.”
성훈: “왜..왜 때려!”
인한: “어쭈! 이 녀석 봐라! 뭘 꼬라 보냐?”
성재라는 녀석은 나랑 친한 친구인데 덩달아 거들었다.
성재: “으흐흐 인한아! 고만해라~ 나도 비듬 많아! 돼지야! 봐라 나도 너처럼 비듬 많지?”
그러면서 성재는 비듬을 성훈이 책상에 털어 되기 시작했다. 금세 성훈이는 고개를 떨구고 울먹 거렸다. 나 그 당시 아주 비겁한 놈이었다. 그때 3년 꿀은 녀석이 나와 같은 학년 이었다. 일명 학교짱이었다. 걔랑 같이 다니는 패거리한테 난 꼼짝 못했다. 한번은 체육시간에 그 녀석들하고 마주친적이 있었다.
인한: “뭘 봐. 이 새끼들아!”
헌재: “야 저새끼 우리가 정호랑 친한지 모르나봐?”
성재: “인한아. 저놈들 정호친구들이야. 넌 죽었다. 정호형이 번개파 깡패라는데 그리고 친구들도 전부 다 깡패래. 너 인제 어떻할래? 난 안도와준다.”
헌재: “이 새끼! 너 이리 따라와!”
난 옆반으로 따라 들어갔다. 물론 거기엔 정호 패거리들이 있었다. 난 발길질로 몇 대 맞았다. 정호라는 뒷 그늘에 난 헌재에게 발길질을 당하는 수욕을 겪었다. 난 말 그대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그런 쓰레기 같은 중학생 이였다. 하지만 성격이 나쁜 탓에 헌재 놈에게는 늘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정호랑 사이가 나쁘거나 언제 조용히 둘이 있을 때 복수할 생각을 늘 품고 다녔다. 헌재는 정호 빽으로 자꾸만 날 못살게 굴었다. 말 그대로 심은 대로 거둔 꼴이다. 나도 괴롭힌 만큼 당한 것이다. 그래도 걔들은 말로만 갈구 워서 그 점은 나보다 오히려 신사적 이였다. 하지만 나의 분함은 늘 마음속에 있었다. 그래서 더욱 얘들을 괴롭혔다.
소풍
이제 복수할 기회가 내게 왔다. 소풍 때를 노렸다. 일부러 나는 헌재 주의를 기웃거리면서 그 녀석이 혼자 있길 기다렸다. 어느새 그 녀석 패거리는 뿔뿔히 흩어지고 헌재랑 그 옆에 비실비실한놈 한명 뿐이였다. 그래서 스윽 녀석 앞에 접근했다.
헌재: “뭐냐? 이 자식아! 왜 앞을 막구 지랄이야? 죽고 싶냐?”
인한; “죽고싶다!”
그러면서 녀석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 순간 비실비실한 친구 놈은 사라지더니 잠시 후에 패거리를 불러왔다. 난 그것도 모르고 신나게 싸우고 있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누가 발길질을 하더니 순식간에 패거리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맞았다. 성재 녀석은 도와주기는커녕 멀리 도망쳐 있었다. 신나게 맞고 나서 성재랑 나만 남았다.
성재: “야~ 많이 아팠냐?”
인한: “아 맞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무지 아프다. 젠장. 승질난다.”
성재: “참아라. 네가 뭘 어쩌겠냐?”
인한: “두고봐라. 딴 놈은 몰라도 헌재만은 가만 안둔다.”
그 뒤로 더욱 더 헌재에 대한 분노는 심했다. 헌재는 정호만 믿고 나대기 시작했다.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 친구들과 녀석을 흠씬 패줄 계흭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계흭은 실패했다. 어머니 때문이었다.
사생대회
중학교 사생대회였다. 그림 그리기와 글짓기를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글짓기와 그림 그리는 것에 소질이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 타락한 중학생이여서 그런 곳에는 조금도 관심이 가질 않았다. 형식상으로 난 붓을 휘익 휘익 그어 그림을 그리고 글짓기도 그냥 대충 대충 적어 냈다. 하지만 운 좋게 그 때 글짓기 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그 뒤로 선생님은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예전에는 공부를 원체 안해서 신경을 안 쓰셨지만 그 뒤로 나에게 약간의 관심을 보이셨다. 시간이 지나고 또 사생대회가 돌아 왔다. 선생님은 날 부르셨다.
선생님: “인한아! 이번 사생대회에는 그림 좀 잘 그리고 글짓기에 신경을 쫌 써서 내봐라.”
인한: “네.”
물론 대답은 잘 했지만 난 시간이 다 되어 가도록 얘들하고 노는 것에만 정신이 팔렸다. 시간이 대서 난 선생님께 끌려갔다.
선생님: “너 이 자식! 선생님이 이번에 잘 좀 그리랬는데. 백지를 제출해! 당장 대가리 박아!”
그날 난 사생대회까지 와서 기압을 받았다. 정말이지 그 때는 아주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그런 사고방식 뿐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드디어 어머니의 개입으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지는 게 강한 것이다.
이제 어느덧 중3이 되어 버렸다. 고등학교 진학도 좋은 대는 포기하고 그냥 공고나 가야지 맘먹고 있었다. 수업에는 잠만 자고 아직도 얘들 괴롭히는 버릇은 남아 있었다. 방과 후에 친구들끼리 남아서 야구를 하게 되었다.
인한: “야! 좀 잘 좀 던져봐라!”
성호: “잘 치기나 해라! 나의 초 강력 도깨비구를 받아 봐라!”
준기: “야 천천히 던져 너무 빨라서 받기 힘들다.”
인한: “이런 빙신! 어떻게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 봤냐? 장애인이냐?”
“어쭈 째려봐? 이게 아주 미쳤구나! ”
준기: “왜..내가 뭘 잘못 했다고.”
인한: “허어~ 그래! 그래! 알았다. 성호야 자알 던져봐라! 흐흐흐.”
난 일부러 방망이로 공을 치는척하면서 준기 팔을 쳤다.
인하: “하하하! 미안하다! 왜 꼽냐? 꼬우면 쳐봐! 새끼야!”
그 때 준기는 거의 참을성에 한계에 도달했다. 준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야구를 맞추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런데 갑자기 준기 녀석이 나의 얼굴을 가격했다. 코에 정통으로 몇 대 맞더니 나는 쌍코피가 터졌다. 애들이 순식간에 말려들었다. 나는 잠시 코피를 닦은 후 숨을 가다듬고 준기에게 달려들었다. 벽 쪽으로 몰아부쳐 아주 흠씬 두들겨 패주었다. 어찌나 팼는지 얼굴이 거의 벌집이고 기스도 많이 나게 되었다. 근대 준기 어머니가 교사셨다. 그 날 저녁 바로 집으로 준기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준기어머니: “어떻게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요. 아주 애가 엉망이에요. 너무 속상해요. 도대체 애를 어떻게 교육 시키신 거예요! 어쩌실 거에요!?”
엄마: “죄송합니다. 할말이 없습니다. 제가 자식을 잘 못 교육시켰습니다. 한번만 봐주십시오. 정말 죄 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교육 시키겠습니다.”
첨에 준기어머니는 굉장히 흥분하셨지만 교사라서 그러신지 다시 신사적으로 잘 말씀 하셨다. 통화를 마치고 말없이 어머니는 베란다에서 빗자루를 가져오셨다. 그리고 오랜만에 어머니께 매를 맞았다. 이사 와서 어머니가 바쁘셔서 예전만큼 우리와 함께 하신 적이 적었기 때문이다.
엄마: “인한아!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약자나 하는 짓이란다. 저번에도 어머니가 늘 말했지만 지는 것 이 이기는 것이다. 엄마는 진정한 강한 자는 이길 줄 알면서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예전에 엄 마가 시장에서 장사할 때 엄마 장사 못하게 하던 남자들 생각나지? 그 남자들이 멋있어 보이니? 너도 그 사람이랑 똑같애. 다시는 다시는 싸우지 마라. 강해져라.”
그 뒤로 난 싸움을 한번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는 애들도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약한 애들을 괴롭히면 말렸다. 그리고 속으로 다시는 싸움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만약 그 때 어머니의 충고가 없었다면 난 지금도 싸움질을 하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진심에서 우러나와 충고를 해주신 어머니 덕분에 나의 못된 버릇을 조금씩 없애 나갈 수 있었다.
세상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식들은 부모님의 감사함을 잘 모른다. 심지어 뉴스에서는 자녀가 부모를 구타하고 욕하고 심지어 죽이는 것까지 나온다. 성서에서는 부모를 업신여기는 자녀는 쳐 죽이라는 법도 있었지만 현대 사회에는 부모에 대한 공경과 효심은 어디로 간지 사라지고 없는 듯 하다. 이 책은 과거의 어린시절의 추억들을 통해서 가장으로써 고생하시는 어머님의 감사함을 나타내는 글이다. 강인한 이라는 아이가 어린시절의 추억들을 통해 어머님의 감사함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글이다. 비록 힘들었던 시절이었고 늘 부족했던 시절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풋풋하고 즐거웠던 추억들이다. 그 추억들을 생각함으로써 다시 어머니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시련이 지나면 추억이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힘든 군대생활을 보낼 당시에는 지옥처럼 힘들지만 막상 제대하고 나서 과거를 회상하노라면 즐거운 웃음으로 친구들과 대화할 수 있다. 비록 나도 어린시절 힘들었고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추억과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홀로 3명의 아이를 키워주신 어머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어린시절의 추억이 있다. 독자들도 어린시절의 추억들을 생각하면서 부모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웠는가.. 얼마나 감사한분인지를 가슴 깊이 느꼈으면 하는 바이다. 현대의 사람들이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과거의 놀이와 추억들의 풋풋함이 독자들에게 상쾌한 활력소가 되었음 한다.
글에 앞서 모든 자녀들에게 보내는글..
그녀는.. 어려서부터.. 절 알았습니다..
그녀는.. 힘들어도.. 내색 한번 하지 않았지요..
게다가 그녀는 작고 가냘 펐지요..
그녀는.. 자기 자신보다.. 늘 절 더 위해 생활 했지요..
그런데.. 전 그것도 모르고.. 항상 투정만 부렸지요..
그리고.. 저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못했어요..
거기다가.. 심한말도 해서 그녀에게 상처까지 준적도 잊고요..
더군다나 전 그녀보다 많이 어린데 말입니다..
제가 까불어도.. 투정 부려도 다 받아주던 그녀..
지금까지도 한번도 변함없이 자기 목숨처럼 절 사랑하는 그녀..
그런데.. 슬픈 일은.. 절위해 너무 힘을 낭비한 나머지..
그녀는 이제 힘이 없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저를 위해.. 뭔가를
하려고..하는 것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변해버린 그녀의 모습들은.. 더욱 가슴이 아프지요..
이제부터라도 그녀에게 잘 해줘야 하겠습니다..
그녀는.. 바로 당신들의 어머니입니다
출생
의사: “흠.. 포기하세요. 낳으시면 산모의 목숨까지도 위험 합니다”
“제 생각에는 낙태를 해야 산모의 목숨이 안전해집니다.”
엄마: “안돼요. 이 아이는.. 이 아이는 꼭 낳아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 제발.. 낳게 해주세요.”
아빠: “여보, 당신 목숨이 위험하다잖아! 아이야 또 가질 수 있지만 당신은..당신은.. 죽으면 안돼!”
엄마: “안돼요. 여보. 우리아이가.. 우리아이가 왜 죽어요.. 수연이 경석이도 모두 잘 낳았으니까
우리 인한이도.. 우리 인한이도 잘 낳을 수 있어요.. 꼭 낳을 거에요. 꼭이요.”
이렇게 해서 내가 출생 시부터 어럽게 태어나게 되었다. 의사의 말과는 달리 산모와 나는 둘 다 살게 되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오른쪽 귀가 살과 붙어서 나왔다. 아주 작은 문제의 기영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오른쪽 귀가 왼쪽보다 1센티 가량 작은 것 같다. 하지만 귀를 제외하고는 여느 아이들처럼 건강했고 보통아이들처럼 이쁘고 귀여운 아이였다. 처음에는 귀가 붙어있지만 커가면서 어머니께서 붙은 것을 자꾸자꾸 띠려고 하니까 커가면서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제 서야 귀까지도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아이로서 성장하게 되었다. 다른 부모들과 같이 우리 어머니도 자식에 대한 모성애를 강력히 지니고 계셨기에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내가 간신히 세상에서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자식을 낳을 때 산모의 자궁이 50배가량 찢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칼에 베거나 찢어졌을 때 얼마나 아픈가? 하지만 우리의 어머니는 우리를 낳기 위해 그보다 몇 배나 힘든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어머님께 감사해야 한다.
나의 집안 환경
태어나기 전에 아기는 ‘우리 집이 아주 잘 살고 부자고 먹을 것, 입을 것 잘 먹고 잘 입는 좋은 환경에 태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무의식 적으로나 할까? 만약 지금의 내가 뱃속에 있다면 그런 생각을 기본적으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태어난 곳은 썩 좋지 않았다. 전에 공장으로 썼던 10평 남짓 하던 지하 단칸방이 내가 14년을 보내야 할 곳이었다. 그곳에는 나에게 아주 위험한 것들이 많았다. 아버지가 화학 연구가이자 발명가이기 때문에 어린 내가 살기엔 참으로 위험했다. 또한 습하고 곰팡이와 벌레들이 많았다. 심지어 지네까지도 본적이 많다. 돈벌레(그리마)나 집게벌레는 숫하게 많았다. 가끔 누워 있을 때 돈벌레의 다리개수를 세기도 할 정도였다. 돈벌레의 다리수는 26개일 것이다. 또한 공장이라서 수도 시설이 전혀 되지 않았다. 설거지와 빨래를 할 때 모두 1층 밖으로 나가서 펌프를 사용해야 했다. 예전에는 주로 펌프로 물을 퍼다 길러서 써야 했다. 화장실도 10미터 정도에 있었다. 꼭 화장실을 가야할 때는 어머니와 같이 가야만 했다.
인한: “으~ 엄마.. 나 똥 마려..”
엄마: “인석아! 그럼 어서 휴지 챙겨서 화장실 갔다 와야지!”
인한: “아~싫어 싫어~ 저녁이라 무섭단 말이야.. 엄마.. 같이 가자..”
그 당시 화장실 귀신이야기가 한창 유행이라서 저녁에 화장실 가는 것이 너무나 무섭고 힘든 일이었다.
엄마: “인한아. 엄마 바쁘단다. 정 무서우면 선반위에 후레쉬 가져가라.”
인한: (울먹울먹)“흐윽.. 무섭단 말이야! 내가 귀신한테 잡혀가면 어떻할꺼야! 아앙 나 안갈래.”
엄마: “경석아!!경석아!! 인한이랑 같이 화장실 같다 와라!
경석: “네.”
경석은 우리 형이다. 첫째 장녀는 수연이, 경석이형은 둘째 장남이다. 우리 가족은 다 3년차이다. 성격이 다 제각기 달랐다. 형은 나와는 달리 아주 얌전하고 순종적인 아이였다. 어머니께서 장보러 가실 때 방문을 잠그고 가도 결코 우는 법이 없었다. 한번은 장보고 왔는데 형이 똥을 싸서 신문지에 덮어 놓은 적도 있다. 그 사건 뒤로는 문을 잠가 놓고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디를 갈 때마다 어머니와 꼭 붙어 다녔다. 한번이라도 집에다 놓고 나가면 하루 종일 울어 댔다. 울다가 지치면 잠이 들곤 했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매우 머리가 좋으신 분이다. 할아버지가 평생을 발명에 매달려서인지 우리 아버지도 발명과 연구에만 매달리셨다. 그래서 가정환경이 나빠 진 것이다. 아버지는 서울대 화학과를 다니시다가 자퇴를 하셨다. 그 이유가 교수를 폭행해서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화가 나시면 공포 그 자체였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발자국 소리만 나도 나와 형은 자는 척을 할 정도였다.
경석・인한: “매칸더 브이~ 날라랄라~ 공격개시~ 매칸더 매칸더 매칸더 브이! 날라랄라 우리들의 매칸더!・・・”
항상 TV 만화 영화를 하면 주제가를 힘차게 따라 부르곤 했다.
경석: (티틱티틱)“아 이놈의 TV! 엄청 안 나오는구만!”
인한: “아~ 형아야~ 안테나좀 잘 만져봐라. 티비 다 끈나겠다.”
경석: 쾅! 치익.. “아악! 야야 인한아! 어쩔수 없다. 9번보자. 9번이 젤 잘 나온다”
인한: “아 싫어. 잘 맞쳐봐. 9번 재미없단 말이야.”
그 당시 TV는 손으로 돌려 보는 것이었다. 안테나를 잘 맞추어야만 겨우 잘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장 재미없는 9번은 안테나를 안 맞추어도 늘 잘 나왔다.
뚜벅뚜벅.. 지하계단으로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경석: “야야! 인한아! TV 빨랑 꺼라! 아버지 오시나 보다.”
툭!
경석・인한: “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셨습니까!”
아빠: “그래 인석들아! 아버지 오셨다. 인한아~ 이리 와서 아버지 다리 좀 주물러라.”
인한: “....네....”
그 당시 난 아버지나 어머니 다리 주무르는게 너무나 싫었다. 그래서 늘 아버지 들어오시면 잠자는척했다. 한번 주무르기 시작하면 한 두 시간은 기본이기 때문이다. 또 주무르다가 졸기만 하면 꾸중을 듣거나 맞기도 했다. 그래서 난 어려서 아버지를 너무 싫어했다. 그건 형도 마찬가지다.
인한: ‘아..지겨워 죽겠네. 언제 그만 하라고 할까.. 제발..제발.. 그만하라고 해라.. 제발..제발..’
아빠: ‘드르렁~ 쿨쿨’
인악: ‘아악! 잠들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아.. 졸려..’
그때 어머니가 조용히 다가와 속삭이며 말했다.
엄마: ‘예 인한아.. 그만 자.. 엄마가 할테니까.. 넌 그만해도 된다.’
인한: ‘엄마.. 괜찮겠어? 이러다 들키면 나 아빠한테 혼나는거 아니야?’
엄마: ‘괜찮대도. 낼 학교 가야 하는데 빨리 자거라.’
인하: ‘히히힛. 알았어. 그럼 나 잔다.’
이런 일이 너무 비번해서 난 아빠를 싫어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늘 내가 힘들까봐 날 챙겨주시곤 하셨다. 어머니도 아빠 어려워 하시는건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하지만 누나는 아니다. 그래도 누나는 그 당시 중학생이여서인지 형과 나와는 사고방식이 많이 틀렸다. 형과 나는 항상 붙어 다녔지만 누나는 아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성적에 관해서는 관대 하였다. 한번은 누나가 사회점수를 0점을 받아 왔다.
엄마: “야 수연아! 너 이게 모니!? 성적이 이게 모야! 빵점이잖아. 빵점! 너 공부를 하는 거니? 마는 거니?
응!? 대답 좀 해봐!”
수연: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아빠: “허허허. 잘했다. 잘했어! 어디 빵점 받는 것이 쉬운 일이니? 잘했다.”
엄마: “여보.. 그래도.. 빵점은..”
아빠: “괜찮아. 빵점 받는 것도 좋은 경험이야. 수연아. 괜찮으니까 그만 자거라.”
수연: “네.. 아빠”
인한: (속닥속닥) ‘아 만약 내가 저랬다면 아빠는 분명히 우리를 때릴 꺼야. 그치 형?’
경석: (속닥속닥) ‘맞아. 아빠는 누나만 좋아하나봐.’
형과 나는 어릴 적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많이 맞았지만 누나는 거의 맞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많이 맞을 때면 늘 어머니가 나서서 말려주시곤 하고 나중에 멍이 든 곳을 만져주고 불어주고 약까지 발라주셨다. 난 그 당시 어머니가 천사라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수호천사!
어린 친구들
우리 바로 맞은편 집에는 박종석 이라는 녀석이 있다. 그 녀석은 나보다 한살 나이가 많다. 그래도 그 당시 난 골목대장이었기 때문에 3살 위까지는 다 반말을 하고 친구처럼 대했다. 유난히 난 다른 아이들보다 덩치가 크고 뚱뚱해서 약한 아이들도 많이 괴롭혔다. 그리고 욕심은 어찌나 많은지 밥을 배가 터져라 먹어댔다. 한번은 밥을 솥째 먹다가 아버지한테 심하게 혼난 적도 있다.
인한: “아 맛있다. 우적우적.. 엄마.. 더줘요 그 솥째 줘봐.”
엄마: “인한아. 왜이리 욕심이 많아. 그럼 못쓴다. 그만 먹어. 배봐라. 그러다가 채할라면 어쪄려고? 저번에도 채해서 심하게 고생 했잖니?”
인한: “아아아아! 빨리줘!”
딱!! 가만히 지켜보시던 아빠가 수저로 나의 머리를 세게 쳤다.
인한:(울먹울먹) “으으..으..”
아빠: “이 녀석! 그만 먹으라잖아! 여보! 이 녀석 앞으로 한끼 이상 주지마! 저 손가락 마디도 보이질 않을 정 도잖아. 도대체 얘들 관리를 어떻게 하는거야! 특히 인한이 저 녀석은 매로 다스려야 한다구!”
그 뒤로는 난 밥을 내 욕심대로 못 먹었다. 그래서 덕분에 살은 빠지고 몸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여전히 식탐이 많았다. 그래서 앞집에 이준수라는 부자집 아이랑 늘 친하게 지냈다. 그 집에 가면 먹을 게 항상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 집에는 컴퓨터도 있어서 그집에 가면 정말로 나에게는 낙원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준수보다는 박세인 이라는 친구가 정말로 친한 친구였다. 우리는 같은반 이었고 성격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인한: “세인아! 오늘은 뭐하고 놀지?”
세인: “몰라! 니가 결정해! 흠.. 차라리 준수네가서 컴퓨터 할까? 그거 모냐? 페르시안 왕자 무지 재미있던데!”
인한: “싫어. 임마! 어제도 했어. 야! 애들 모아봐라! 오늘 아주 그냥 쭈욱 밤새도록 놀자! 첨엔 딱지치기 하다 가 날 저물면 꼼꼼이 하자! 오케이?”
세인: “알았다. 내가 아랫동네 부를께. 네가 윗동네 애들 불러라.”
인한: “싫어. 임마! 귀찮아. 네가 다 불러!”
세인: “흐음.. 알았어.”
늘 하루는 이런 식으로 보냈다. 어린시절에는 공부는 결코 하지 않았다. 맨날 딱지치기, 연탄싸움, 말둑박기, 다방구, 팽기치기, 구슬치기등 하루를 보내기엔 너무나 많은 놀이가 있었다. 나는 이런 놀이를 대부분 잘했다. 하지만 딱지지치랑 연탄싸움은 진짜 좋아했다. 집안에 딱지가 거의 10분의1이상일 정도였다. 연탄싸움은 다 먹은 우유팩에 연탄을 쪼개 넣어서 접어진 우유팩을 툭툭 치면 연탄연기가 나면서 상대 얼굴에 쏘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 해로운 연탄 연기가 너무 좋았다. 소독차만 나와도 아주 사족을 못 쓰고 쫒아 다니곤 했다. 또 구슬치기 하느라고 땅을 하도 많이 파놓아서 주인 아저씨께 꾸중을 듣기가 일쑤였다.
어린시절의 큰 슬픔!
종석: “야 인한이! 이게 뭔지 아냐? 이게 어른들만 사용하는 담배라는거다.”
인한: “미친놈. 그거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몸에 안 좋대! 버려라. 더럽게 남이 피다 버린거 줍고 지랄이냐.”
종석: “야! 이걸 피어야만 진정한 어른이다. 어때 너도 한번 펴봐.”
쓰읍..!! 종석은 담배를 한 목음 들이켰다.
종석: “쾍쾍! 아아악! 이거 무지 쓰다. 콜록콜록.”
인한: “카카카카! 거봐라! 내 쓰다고 하지 않았냐? 그나저나 오늘은 뭐하고 놀지.. 고양이 수염이나 뽑고 놀 까?”
그 당시 난 완전 악동이었다. 특히 동물을 너무나 심하게 괴롭혔다. 마당에서 키우던 개의 수염을 다 뽑아 버렸다. 그리고 한번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꼬리를 잡고 빙빙 돌리다가 벽에 던지곤 하였다. 그래서 그 녀석은 곧 도망을 쳐버렸다.
종석: “야! 인한아! 우리집 고양이 대리고 왔다. 이놈이랑 뭐하고 놀려고?”
인한: “흐음.. 좋아 저기 높은 난관에 매달리게 하자.. 크크.. 잼이 있겠다.”
바로 나는 고양이를 난관에 매달리게 했다.
야옹~ 고양이가 난관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턱!!
종석: “야! 인한아. 고양이 아프겠다. 고만 놓아주자.”
인한: “그래... 이 녀석 한번 떨어졌다고 일어나지도 않네.”
알고 보니 고양이는 뇌진탕으로 죽었던 것이다. 너무나 불길했다. 그래서 고양이는 바로 앞 뜰 흑에 묻어주고 다른 놀이를 찾았다.
인한: “야! 종석아. 그냥 애들 불러서 다방구나 하자! 내가 윗동네 부른다. 네가 아랫동네 불러라.”
종석: “어. 빨랑 불러 모으자! 곧 해지겠다.”
윗동네 아랫동네 속속들이 모였다. 그 당시 세인이는 중간동네 살았다. 나도 물론 중간 동네 살았다.
인한: “흠.. 야 종석아. 왜 세인이는 왜 안 불렀냐? 세인이가 없자나! 세인이 불러와라! 빨리.”
종석: “인한아. 그 집 이상해. 사람이 많아서 그냥 안 부르고 왔다.”
인한: “흐음.. 그래 .. 그럼 오늘은 우리끼리 놀자구!”
난 그날까지도 세인이가 죽은지도 몰랐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야 선생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나로써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죽은 것이다. 죽은 이유는 계단 난관에서 타고 놀다가 옆으로 떨어져 내진탕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전에 세인이랑 함께 그 난관에서 많이 놀았지만 그때까지는 그 난관이 위험한 것인지 인식하지 못하였다. 또한 세인이랑 나는 항상 위험한 놀이를 많이 했다. 일종의 자기 과시이다. 위험한 놀이를 함으로 자기의 용기를 보이는 것이었다. 한번은 누가 더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나 내기를 하다가 내가 먼저 뛰어내리다가 무릎에 턱이 부딪혀 크게 다친 적도 있었다. 아무튼 그 뒤로 나의 못된 성격은 더욱 못되어만 갔다. 친구들을 이유 없이 괴롭히기가 일쑤였다.
6살의 사고
우리집 식구는 아버지, 어머니를 포함해서 형과 누나 모두 머리가 좋았다. 모두 학구열이 풍부한 가족이었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형과 누나의 아이큐는 140남짓 되지만 나의 아이큐는 고작 100정도이다. 물론 이런 아이큐가 정확한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 3형제 중에서 내가 가장 머리가 나쁜 것만은 확실하다. 그게 아마 6살 때 크게 다쳤던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난 6살 때 마당 앞에 모레에서 놀곤 했다. 하지만 옥상에서 공사하시는 분이 아래에서 내가 놀고 있는 것을 확인 안하고 삽을 4층에서 던졌다. 그런데 하필 그 삽에 내가 찍힌 것이다.
인한: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수연아 빨리 나가봐라!”
수연: “꺄아아악! 아빠!아빠! 큰일났어요! 인한이가..인한이가..”
아빠:(후다닥) “인한아~인한아!~ 수연아! 엄마 불러라! 응급실에 연락 하라고해!”
그래서 나는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나는 삽에 찍히고 나서 삽이 서서히 머리에서 떨어지고 차가운 듯한 피가 내 온몸을 적시는 것까지 기억한다. 병원에서의 일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 병원에서 내 상처가 너무 커서 꼬맬려고 하면 출혈이 워낙 심해 손을 못 썼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다시 집으로 와서 당시 아버지가 개발했던 마니스라는 가루약을 머리에 마구 발라서 겨우 출혈이 멈췄다고 한다. 내가 사고 후 2틀 후에 깨어났다고 한다. 깨어나니까 나는 무슨 시험 대상물이 된 마냥 화학 연구하는 아버지의 선반위에 뉘어져 있었다. 그 후로 딱지도 지고 서서히 아물었지만 상처의 크기는 어마어마하게 컸고 그 상처는 계속 커가면서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워낙 악동이어서 대놓고 놀리는 아이들은 없었다. 지금은 거의 상처가 10센티 정도로 아물어서 잘 표시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범인은 잡지 못했다. 사고 후 곧바로 도망을 쳤다고 한다. 그 뒤 내가 다친 후 누나가 아버지한테 맞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짝!! 아버지는 수연이 누나의 뺨을 때렸다.
아빠: “넌 어떻게 된 게 누나가 되서, 다 큰 누나가 되서 동생하나 못 관리하는 거니?”
수연: (흐윽..흐윽..)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빠.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누나는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날 보살펴줬다. 아기 때부터 내 똥 귀저기를 다 빨고 업고 다니고 했다고 한다. 아이가 아이를 돌본 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사고의 대한 책임을 아빠는 누나한테 물어서 누나의 뺨을 때린 것이다. 그 사건은 내게는 생소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누나한테 손을 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버지도 날 중요하게, 귀하게 생각했는데 난 그 당시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아마 그 사고 이유로 나의 머리는 더욱 나빠 진 것이 아닌가 싶다.
눈물의 초코파이
이제 1학년! 드디어 학교 갈 때가 된 것이다. 난 너무나 너무나 학교가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동네 밖의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를 매우 원해서였다. 근대 그것도 내 뜻대로 되질 않았다. 그 당시 돈이 없어서 친구들 다 가는 학교에 나는 갈 수가 없었다.
인한: “엄마~ 엄마~ 왜 내 친구들은 다 학교 들어갔는데 왜 나만 못가는 거야?”
엄마: “.......”
인한: “대답해봐! 대답해봐! 왜 나만 안가~~? 왜 안가냐구~!!”
엄마: “인한아.. 그건 너의 띠가 안 좋아서 그런 거야.. 내년엔 꼭 가자!!”
인한: “아아아 싫어! 올해 갈 거야! 내 친구들도 다 갔단 말이야!”
그래서 결국 남들보다 1년 늦게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물론 학교에 입학해서 공부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유치원도 안나왔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한글을 잘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굼뱅이도 구르는 제주가 있다고 미술과 글짓기 산수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아왔다.
선생님: “인한 어머니! 인한이가 그림에 아주 소질이 많아요? 혹시 어려서 어디 학원에 보내신 적이 계십니 까?”
엄마: “아니요. 그럴 형편이 못됩니다.”
선생님: “흠.. 그래요.. 인한이가 미술에 특별한 소질이 있기 때문에 아마 학원에 보내시면 나중에 훌륭하게 성 장 하리라 봅니다.”
엄마: “글쎄요. 인한이 아빠가 들어오면 한번 상의해보도록 하지요.”
선생님: “그러세요. 아! 그리고 이번에 인한이가 우리학교 대표로 서울어린이 대공원에서 하는 그림 그리기 대 회에 나갑니다. 어머니도 보호자로 같이 오셔야 하고요.”
엄마: “네. 잘 알겠습니다.”
저녁에 아버지가 들어오셨을 때 어머니는 미술학원에 대해서 상의를 하였다.
엄마: “여보. 인한이가 글쎄 미술에 소질이 있대요. 그래서 좀 무리해서라도 미술 학원에 보낼까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빠: “안돼! 절대 안돼! 미술 하는 사람들 다 나중에 배곪아. 그리고 우리가 그럴 형편도 안돼잖아.”
그렇게 해서 난 미술에 대한 교육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미술 쪽으로 노력하지 않고 항상 밖에서 뛰노는 대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며칠 뒤 난 학교 1학년 대표로 사생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당시 어머니의 지갑에는 오고갈 차비, 단 2개의 토큰뿐이었다. 엄마와 나는 공원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그림 그릴 준비를 갖추었다.
인한: “아.. 귀찮아.. 배고프고 더운데 왜 그림을 그리라고 하는 거야! 나 안 그릴래! 배고파 엄마. 나 맛있는거 사줘.”
엄마: “인한아. 엄마가 나중에.. 나중에 집에 가서 맛있는거 해줄께. 그러니까 지금은 그림 열심히 그려~ 알았 지?”
인한: “아 싫어! 지금 사줘! 우리 옆에 있는 애들은 김밥도 먹고 그러는데 왜 난 그런거 안사줘? 배고프단 말 이야. 나 맛있는거 사줄 때까지 그림 절대 안 그려!”
엄마: “인한아. 알았다. 그럼 그림 그리고 있어. 엄마가 매점 갔다 올께.”
인한: “아 신난다. 빨리 갔다 와야해!”
난 그 때 배가 고파서 그림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그림은 대충 성의 없이 그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빨리 맛있는 것을 사오기 만을 기다렸다.
엄마: “저..저기요.. 죄송한테 토큰 1개로 살 수 있는 것이 없을까요.. 죄송합니다.”
아저씨: "아니~ 아주머니, 현금을 내셔야지요.”
엄마: “예 죄송합니다. 깜빡하고 돈을 놓고 와서요. 이것도 어차피 돈인데 먹을 것과 좀 바꾸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아저씨: “에이~ 할 수 없죠. 저기 초코파이 하나면 될 거유. 가져 가슈!”
엄마: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곧 초코파이 하나를 들고 왔다.
인한: “에이~ 모야~? 겨우 초코파이 하나야. 음료수는? 쟤들은 음료수 먹는데. 음료수도 사줘야지!”
“그리고 엄만껀 왜 없어?”
엄마: "응~ 엄만 괜찮아. 너 많이 먹어.“
인한: “응~ 알았어. 근대 이거 먹으니까 목말라. 음료수도 사줘!”
엄마는 잠시 머뭇하다가 옆에 아주머니께 상냥히 부탁한다.
엄마: “저기요.. 죄송한데요. 물 한 컵만 마실 수 없나요?”
아줌마: “아! 마침 음료수가 하나 더 있는데 저기 귀여운 아이가 달라고 많이 보채죠? 이거 하나 주세요.”
엄마: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난 그때의 행동을 너무나 후회한다. 어려서 그랬지만서도 지금 생각하면 아직도 어머니께 너무 죄송하다. 그때 올 차비도 없어서 버스 기사님께 사정을 이야기해서 왔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 흔한 초코파이 하나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지만 그 때는 그것 하나 먹기도 힘들었다. 또한 나에게 무엇인가를 주려고 그런 수모라고 할까.. 그런 어려운 부탁까지도 마다하지 않은 어머니가 매우 존경스럽다. 어머니의 모성애를 우리 남자들은 아마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와의 작별
그 당시 나의 용돈은 50원, 그리고 형의 용돈은 100원 이었다. 매달 말일만 대면 그 적은 돈을 받았던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50원이면 겨우 둘리바, 새우깡정도 사먹을 정도다. 한번 사먹으면 그 뒤로 한달은 못 먹는 것이다. 또 당시 슈퍼에 외상을 많이 해서 슈퍼 아주머니도 왠지 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맨날 갈 때마다 물어 보는 게 외상값 언제 값느냐는 얘기였다. 항상 먹을 게 없어서 라면이나 밀가루를 많이 외상 했다. 밀가루로 아무 양념 없이 수제비를 물에 익혀서 먹곤 했는데 난 그때는 그것조차도 너무 맛있었다. 지금 먹으라면 맛있게는 못 먹을 것 같다.
인한: “형아! 오늘도 용돈 받았다. 뭐 먹지? 쫀득이 사서 연탄불에 꿔먹을까?”
경석: “싫타. 형아는 라면 사 먹을 거다. 안성탕면이 80원이니까 20원 남으니까 흰 과자(겉은 희고 속은 갈색 밥알 따위가 들어 있는 김밥 같은 과자)사먹으면 딱 맞겠다.”
그리고 하루 만에 용돈을 다 쓰면 담날부턴 친구들한테 얻어먹어야만 했다.
인한: “준수야! 둘리바 먹냐? 한입만 먹자!”
준수: “싫어! 네 돈 주고 사먹어라!”
인한: “이 자식아! 한 입만 먹자고!”
준수: “싫다니까!”
인한: “뭐 ! 이자식이!!” 퍽!! 퍽!!
준수: “으아아아아아아앙”
그 뒤 저녁에 난 어머니한테 호되게 맞았다. 준수어머니한테 전화가 온 것이다.
엄마: “이 녀석아! 너 누가 친구들 때리고 다니랬어! 엄마가 모라고 했니! 때리는 것보다 차라리 맞으라고
몇 번 말했니? 그깟 하드 하나 때문에 친구를 때려!? 벌로 손들고 있어!”
인한: “엄마!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팔 내릴래.”
엄마: “똑바로 들고 있어!”
그때 갑자기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속으로 난 죽었다고 겁을 질겁 먹었다.
아빠: “뭐야. 여보. 인한이 왜 그래? 무슨 잘못 했나?”
엄마: “글세 친구를 때렸대요.”
아빠: “허허허! 그럴수도 있지? 호오~ 우리 인한이가 싸움도 잘하고 힘도 쌘가? 어디 한번 아버지 팔둑에 매 달려서 턱걸이 좀 해봐. 그리고 당신 이따 나 좀 보고.”
생전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호랑이 같던 아버지가 나한테 너무나 상냥하고 잘 해주시는 것이었다. 너무나 이상했다. 그건 나뿐만 아니었다. 나 뒤에 형 누나 모두 상냥하게 놀아주고 안아주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까지.. 어머니에게 돈을 100만원을 주는 것이었다. 그 당시 100만원 이면 꽤 큰 돈이다. 생전 생활비를 안주시고 연구에만 매달리면서 엄마가 어렵게 장만한 돈을 까먹던 아버지가 글쎄 회사 과장급으로 취직 했다는 것이다. 자존심이 아주 강하시던 아버지에게 그런 일은 당시로써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하지만 어머니, 누나, 형, 나, 모두 너무나 좋았다. 그건 담달도 마찬가지였다. 다음달에는 아버지가 과자를 산더미처럼 사오셨다. 과자 선물 세트를 쫘악 풀어보니 10평 되는 방에 꽈악 찼다. 정말이지 식탐이 있던 나에겐 너무나 행복한 날이었다. 잠도 과자 속에 파 묻혀 잠들었다. 그 뿐 아니라 아버지는 피자도 사오시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오셨다. 3달까지 아버지는 꼬박 월급을 어머니께 드렸다. 난 그 3달간 너무나 행복했다. 그리고 그토록 싫었던 아버지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3달이 끝이었다. 아버지는 곧 쓰러지셨다. 간암말기 셨다. 몇 번이고 특허권을 친구에게 도둑맞아 술에 찌들고 담배를 입에 물고 사신 아버지는 간이 견디어 내질 못한 것이다. 결국 입원비로 300만원은 고스라니 다 없어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걱정에 오래 입원하시지도 않고 집에서 고통스럽게 지내시다가 돌아 가셨다. 철없는 형과 나는 제삿날에도 밖에 나가 놀았다. 형이랑 나는 아버지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았다. 그저 이제 무서운 아버지가 안계시니 좋을 뿐이었다. 이제는 저녁 늦게까지 놀아도 무서운 사람이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누나는 달랐다. 누나는 마구마구 울어댔다. 난 제삿날에도 밖에서 친구들과 팽이치기 하고 딱지치기 하던 게 생생하다. 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전에 한마디씩 우리에게 해주었지만 난 그 말이 무엇인지 잘 기억하지는 못한다. 다만 엄마한테 잘하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한테는 수연이와 경석이는 별 걱정이 없지만 나만은 꼭 매로 다스려야한다고 어머니께 말하시고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그 예상은 적중했다.
나쁜길로 접어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무서운 게 없었다. 그 뒤로 나쁜 것만 배우기 시작하였다. 첨에는 학교에 가는 게 너무 싫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 아이들 모두 동정의 눈길로 날 대하였다. 또 나 땜에 반에서 돈도 거두었다. 그리고 그 당시 담임선생님은 날 끔찍이 아들처럼 걱정해 주셨다. 난 그게 너무 부담스럽고 자존심 상하게 생각해서 학교에 가지를 않고 동네의 질 나쁜 형들과 어울렸다. 일명 학교는 안가고 짜장면 배달하는 질 안 좋은 형들이었다. 그 형들을 첨에 오락실에서 만났다. 내가 계속 구경만 하니까 불쌍해서 인지 오락을 시켜주었고 그 뒤로 그 형들을 따르게 되었다. 이제 정말 나쁜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의남: “인한아! 오락실 가서 오락 맘껏 하고 싶지? 형아 들이 시켜 줄 태니까 형들이 시키는 대로만 해라!”
용한: “그러니까! 의남아! 넌 무조건 아저씨한테 이거 모냐고 하면서 아저씨 이리 좀 와보세요. 하면서 계속
질문을 해서 신경을 끌어! 그럼 내가 금고에서 돈을 훔치고 나올게. 그리고 인한이 넌 밖에서 망만 보 면돼!“
이렇게 해서 결정할 여유도 없이 도둑질에 동참하게 되었다. 물론 성공 적이었다. 만원짜리 여러 장 5천원짜리 여럿, 천원짜리 여럿, 꽤 큰 돈이었다. 나의 몫은 만원짜리 한 장이었다. 그 돈이면 그 당시 못하는 것이 없었다. 군것질도 실컷 하고 오락도 실컷 했다. 그때 나에겐 군것질과 오락이 인생의 전부였다. 난 오락도 잘해서 거의 했다하면 끝판 왕을 깨고는 했다. 50원이면 2시간은 버텼다. 나쁜 짓은 거기서 끝나질 않았다.
의남: “용한아! 너 혹시 그거 들었냐? 가스 랜인지에 있는 똑딱이만 있으면 오락실에서 오락 실컷 하는거!”
용한: “아.. 그거 들어봤어.. 오늘 한번 해볼까?”
의남: “인한아! 공터에 가서 가스랜인지에 똑딱이좀 띠어 와라!”
가스랜인지의 똑딱이 전선을 코인구멍에 넣어 팅길때마다 오락을 공짜로 할 수 있었다. 결국 그렇게 해서 오락실에서 돈을 내지 않고 불법으로 오락을 즐겼다. 물론 걸려서 오락실 주인에게 호되게 혼난 적도 있었다. 그럼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오락실에 가서 불법으로 오락을 했다. 그 당시 3학년 이었지만 성격도 많이 나빠지고 점점 어린이의 순수함을 잃어만 갔다.
어머니의 고생
이제 어머니는 가장이 되셨다. 더욱 바빠지셨고 우리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개발해놓으신 깔창을 모래네 시장에 가서 팔곤 하셨다. 난 심심할 때면 엄마 곁에 가서 엄마가 장사하는 것을 구경하곤 하였다. 그런데 한번은 어떤 아저씨들이 장사를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저씨들이 물건을 치우라고 했을 때 어머니는 강하게 저항을 하자 엄마의 머리를 잡고 끌고 갔다. 난 너무 무서웠다. 그때 남자들이 어머니가 그곳에서 장사를 못하게 하자 어머니는 그들에게 침을 뱉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어머니는 그들에게 뺨을 맞고 그 곳에서 쫓겨 났다. 난 너무나 서러워 그날 하루 종일 울었다.
엄마: “너 뚝 끗이지 못해! 너 요세 학교 왜 안나가니! 선생님한테 전화 왔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빠 없다고 엄마를 무시하는 거야? 너 아비 없는 호로새끼라는 말 듣고 싶어서 그러니?
어서 종아리 걷어! 넌 좀 혼나야해!“
그때 난 대꾸 한마디 못하고 서럽게 울면서 매를 맞았다. 그 뒤로 다시 학교에 가고 그 짜장면 배달하는 형들과는 더 이상 놀지 않았다. 근대 그 도둑질의 버릇은 고치지 못했다. 어머니는 우리를 먹이고 교육시키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는 아주머니를 통해서 페인트 일을 시작하였다. 페인트일은 여자가 하기에는 힘든 일이었지만 바로 돈이 나오고 다른 일보다 일당이 세서 그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난 자기 전에 어머니가 아버지가 입던 양복 주머니에 돈을 숨겨 놓는 것을 보곤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일을 나가고 없을 때면 또 학교를 안가고 몰래 그 돈에서 만원씩 꺼내서 군것질을 하고 오락실에 다니곤 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결국 걸리게 되었다. 누나 형 나는 결국 저녁에 모두 어머니께 불려갔다.
엄마: “혹시 너희들 중에서 엄마 돈에 손댄 사람 없니?”
우리 셋은 모두다 침묵을 지켰다. 그날은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거기서 손을 떼어야만 했는데 며칠 후 난 또 돈에 손을 대었다. 난 아무 걱정 없이 오락실로 향했다. 어머니가 뒤에서 미행하는지도 모른체.. 난 오락실에 도착해서 재미있게 아무 생각 없이 오락을 하고 있었다. 근대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집는 것이다.
짝!!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난 어머니에게 뺨을 맞았다.
엄마: “너 학교 안가고 여기는 왜 왔니? 또 돈은 어디서 난 거야? 이리 따라와!”
난 어머니한테 끌려와 집에서 호수로 엄청나게 맞았다.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그 뒤로 난 어머니 양복 주머니에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 자주 빠지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나가셔서 날 돌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줄곧 혼나 집에서 책을 쌓으며 놀기도 하고 안나오는 TV를 켜놓고 보기도 하였다. 어쩔 땐 미국 방송도 보기도 했다.
가출
아버지가 계실 때의 일이었다. 늦은 저녁 목이 말라 부엌에서 물을 따라 먹을려고 하는데 실수로 컵을 깨뜨 렸다. 그래서 난 틀림없이 아버지에게 혼난다는 생각에 휩싸여 집에서 무작정 도망 나왔다. 그만큼 아버지가 무서웠다. 결국 늦은 저녁에 어린 나이에 미아가 되었다. 그래서 파출소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하루 집에 없어보니까 너무 좋았다. 경찰 아저씨들이 맛있는 것도 많이 주고 과일도 주고 친철하게 대해 주셨다. 무서운 아빠와는 매우 달랐다. 그때 밖에서의 생활이 멋지다고 내 마음에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유분방한 나는 조금씩 가출에 대한 생각이 깊어만 갔다. 어느 날 무작정 형이랑 이불을 들고 밖에서 자자고 하면서 나갔다. 잘만한 곳을 물색해 본 결과 앞 동네의 공터의 언덕이 딱 좋았다. 누워서 이불을 덮고 하늘을 바라보면 반짝반짝 총총한 별들이 우수수 쏫아질 것만 같았다.
인한: “형아야~! 밖에서 자니까 너무 좋다. 그지?”
경석: “그래~! 캡이다! 야야! 인한아~ 자주 와서 여기서 별도 보고 그러자!”
인한: “그래그래~! 오예! 배고프면 고구마도 구워먹자~!”
경석: “이제 여기는 우리들의 아지트다! 자주 이 공터에 모이자!”
형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일어나보니 집에 누워있고 어머니는 일가시고 안계셨다. 밤새도록 걱정대서 찾다가 공터에서 자는 것을 발견하고 옮겨 놓으신 것이다. 그때 얼마나 걱정 하셨을까? 그런데도 그런 외박은 자자 졌다. 그런데 어느덧 형은 더 이상 밖에서 자는 걸 거부 했다. 그래서 결국 나 혼자 밤늦게 밖을 배회하고 돌아 다녔다. 어느덧 해는 지고 아주 컴컴해졌다.
엄마: “인한아~ 인한아~! 어딨냐?”
경석: “야! 인한이! 어딨어! 엄마 걱정 하신다! 빨랑 나와라.”
난 어머니와 형이 날 찾는 것을 보고 얼른 자동차 뒤로 숨었다. 그 시절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이유 없는 반항이랄까.. 괜히 찾으니까 더 숨고 싶어지고 더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결국 그때 첫 가출을 했다. 밤새도록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까 아침이 대었다. 아침이 되니까 배도 고프고 지쳐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근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멀리 와서 돌아갈 길을 잃어 버렸다.
인한: (훌쩍훌쩍) ‘엄마...’
아저씨: “애야.. 왜 울고 있니?”
인한: (흑흑) “집에 가는 길을 모르겠어요.”
아저씨: “그래 사는 곳이 어딘데?”
인한: “잘 모르겠어요. 배고파요.”
아저씨: “그래. 일단 아저씨가 슈퍼 가서 빵 좀 사올게.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거라.”
그 아저씨는 부지런한 쌀집 아저씨였다. 매우 친절한 분이셨다. 이른 새벽에 훌쩍대는 날 보고 걱정하시고 빵하고 우유까지 사다 주셨다. 그리고 가까운 파출소에 2번째 방문하게 되었다. 그날 저녁 어머니가 파출소로 찾아와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 갈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다시는 가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어머니께서는 밤새도록 날 찾으러 돌아다니시고 다시 새벽에 일을 가셨다고 한다. 정말 나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얼마나 어머니께서 힘드셨는지.. 하지만 어머니는 꾸중 한번 안하시고 그날 저녁 오히려 맛있는 것을 사주셨다. 그런 어머니의 모성애에 참으로 감사한다.
오락 중독
왜 나는 나쁜 버릇을 쉽게쉽게 배우는지 모르겠다. 저번에는 준수네만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조금씩 흐리면서 이집 저집 컴퓨터에 비디오까지 사게 되었다. 물론 우리 집은 예외였다. 아주 낡고 거의 나오지 않고 9번만 잘 나오는 TV 한대가 고작이었다. 그래서 난 이제 매일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쉽게 컴퓨터 오락에 중독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오락이 좋아져서 다시 오락실에 발을 붙이게 되었다. 이제는 예전보다 훨씬 심해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갔다. 어느새 용돈도 100원으로 올랐다. 예전 갔으면 바로 매일슈퍼로 달려가 군것질을 했건만 이제는 바로 오락실에 동전을 투입했다. 그때 한창 유행하던 오락이 스트리트 파이터였다. 물론 그 오락 역시 최고로 잘했다. 형도 곧 나와함께 매일 같이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물론 하루 종일 구경하고 가끔 아는 형이나 오락실 주인이 한판씩 시켜주곤 하였다. 한판하면 거의 조이스틱을 놓질 않았다. 거의 승리하였다. 한번은 너무 계속 이겨 어느 형한테 호되게 맞은 적도 있다.
양아치: “너 이 새끼야! 밖으로 따라와!”
인한: “왜요?”
양아치: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
그 형은 나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갔다. 그래서 그 형 친구들과 같이 날 때렸다. 난 그렇게 맞고도 담날 또 다시 오락실에 갔다. 정말이지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엄마: “인한이, 경석이 이리 좀 와봐라! 요새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니 예전에는 밖에서 뛰놀기만 하더니 이젠
통 보이지가 않는구나. 내가 아는 아주머니 말로는 너희들을 오락실에서 자주 봤다고 하는데 사실이 니?”
인한: “....”
경석: “네. 담부터는 안 갈게요. 약속해요.”
(툭툭치면서) ‘야.. 인한아.. 너도 안간 다고해.. 맞고 싶어?’
인한: (자신 없는 목소리로) “네...저도..안..갈..께..요..!”
엄마: “그래! 엄마가 너희들 믿는다. 다음부터 오락실 가지마! 거기에 나쁜 얘들이 얼마나 많은데.. 차라리 예전처럼 집 앞에서 얘들이랑 놀아.”
그 약속은 일주일도 못 갔다. 다시 오락실에 다녔다. 그날은 운 좋게 오락실 주인아저씨가 공짜로 한판 시켜주셨다. 그날은 게임월드라는 오락을 하고 있었다. 시간제 오락인데 시간제를 깨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돈이 없을 때에는 그 오락이 최고였다. 그런데 저번과 같은 일이 또 벌어졌다. 어머니한테 발각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형도 같이 있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어깨로 툭툭 치더니 어머니는 형의 뺨을 때렸다.
엄마: “이 녀석들! 경석이! 너 형이 대가지고 동생한테 좋은 거 가르쳐준다! 둘 다 따라와!”
어머니는 매우 화난 표정으로 먼저 집으로 향하고 나와 형은 불안한 마음으로 어머니 뒤를 슬금슬금 따라갔다.
경석: ‘인한아.. 우리 죽었다.. 차라리 도망가자..’
인한: ‘형.. 안돼.. 나중에 잡히면 더 맞을 거야.. 이번에 그냥 들어가자..”
그렇게 해서 방앗간을 통과해서 집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형과 나는 종아리를 걷고 가죽혁대로 엄청 맞았다. 하지만 그렇게 맞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 첨엔 88오락실만 가다가 하도 어머니한테 많이 걸려서 태양 오락실로 옮겼다. 하지만 어머니는 귀신이었다. 역시 발견 되었다. 온몸에 멍이 가시질 않았다. 그렇게 걸리고 맞는 게 수십 차례였다. 태양 오락실에서 또 계속 걸리니까 다시 88오락실로 갔다.
경석: “인한아! 빨리 의자 밑으로 숨어! 엄마 친구들이다!”
인한: ‘휴우.. 형 큰일 날 뻔했다.’
이렇게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 즐겁게 오락을 하고 있는데.. 엄마한테 또 발각됐다. 늘 예전처럼 그 자리에서 호통을 치거나 꿀밤을 주거나 뺨이나 어깨를 때렸어야 하는데 엄마는 가만히 계시다가 조용히 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그것이 오히려 더욱 불안했다. 나와 형도 서로 말없이 조용히 따라갔다. 평소 갔으면 ‘우린 죽었다.’ ‘오늘은 뭘로 맞을까’ ‘혁대, 호수, 단소.. 차라리 호수가 젤 안 아프지.’ 이런 대화를 하고 어머니의 뒤를 따랐지만 그날만은 아무 말 없이 엄마의 뒤를 따랐다.
엄마: “인한아...경석아... 앉아봐라...”
“.....”
“.....”
인한・경석: “.....”
몇 초의 적막이 흐른 뒤 조용히 어머니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어머니에 한마디에 우리는 그 뒤로 오락실을 가지 않았다.
엄마: (흐윽흐윽) “엄마가..엄마가.. 너무 힘들다.”
그날 우리는 같이 울면서 마음속으로 다시는 오락실을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마 형도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런 나쁜 습관을 고치게 되었다.
나의 약함
이제 3학년이 되니까 다른 친구들과 덩치가 대등해졌다. 2학년까지는 내가 전교에서 거의 가장 큰 편이었다. 물론 힘도 셌다. 하지만 난 하도 군것질만 하고 밥을 잘 안 먹어 잘 자라지 않았다. 그 사이에 친구들이 나의 키를 따라잡았다. 또한 내가 맘먹던 형들은 갑자기 크고 목소리도 변하기 시작했다. 난 어려서는 3살 위까지 친구처럼 대했다.
경하: “너 인한이! 이제 나는 초등학교에서 최고참 이니까 나보고 형이라고 해라! 이제 반말하면 죽을 줄 알 아!”
인한: “머 이새끼! 죽고 싶냐? 어디서 명령 질이야!”
퍽!! 퍽!! 경하라는 형의 주먹이 나의 얼굴을 쳤다. 경하 형은 울 형 친구다. 근대 예전에는 나한테 기도 못 폈는데 6학년이 되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키도 머리통 하나는 나보다 커졌다. 단 두 방에 펀치에 나의 코에서 쌍코피가 터졌다.
인한: “으..으.. 죽인다.”
힘에서 밀린 나는 바로 얼굴을 할퀴어 버렸다. 경하형의 얼굴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 내렸다. 그리고 얼굴에 아주 선명한 5개의 깊은 손톱자국이 새겨졌다. 바로 구경하던 친구들이 말렸다. 나와 경하 형은 서로 죽일듯한 기세로 친구들이 말리는 것을 뿌리치려고 버둥거리며 욕을 해댔다. 그것을 듣고 경하의 어머니가 나오셨다. 물론 그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나와 경하 형을 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경하 어머니: “너 이 녀석! 내 새끼.. 내 새끼..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다니.. 못된 녀석! 버릇없는 녀석!
아버지 없으면 착하게 살아야지!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웠어.! 경하야 왜 싸운 거니?”
경하: “아 저자식이 나보다 한참 동생인데 자꾸 반말하고 지랄이잖아.”
쫙! 쫙! 쫙!
경하 어머니: “에이! 죽어! 죽어! 이 못된 놈아!”
그날 난 너무 많이 맞아 얼굴이 퉁퉁 부웠다. 집에 들어와서도 내가 너무 약해진 것에, 아니 다른 사람들이 강해진 것에 너무 분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경하 형에게 복수할 기회를 생각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울 형의 졸업 앨범을 보고 그 마음도 사라졌다. 졸업앨범에 경하 형의 얼굴을 봤는데 손톱자국이 선명한 것이 영 보기가 흉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이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하면서도 약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 사건 뒤로 2살 많은 형들까지 반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물론 싸움이 났고, 싸움은 내가 불리했고 난 치사한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돌을 던지기도 했고, 막대기를 들고 싸우기도 했다. 결국에 난 1살 차이만 빼고 다 형이라 불렀다. 현재는 어려서부터 친한 사람 아니면 1살 위도 웬만하면 다 형이라고 부른다.
골목대장의 자리를 뺏기다
이제 내 친구들 마져도 나와 힘과 키가 비슷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나랑 동갑내기 녀석이 이사를 왔다. 그 녀석은 권투를 배운단다. 그리고 그 녀석 아버지는 권투 선수였고 형까지도 권투 선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녀석은 겉보기에도 강해 보였다. 얼굴은 시커멓고 인상은 드러웠으며 얼굴에 손톱자국이 많은 게 과거에 쌈 꽤나 한 녀석 같았다. 게다가 몸도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땅땅해 보였다. 웬만하면 잘 안 쪼는 나는 그 녀석은 왠지 부담스러웠다. 권투했다는 말에 은근히 겁을 먹고 있었는데 얼굴까지 날 겁먹게 만들었다. 난 그 녀석과 웬만하면 싸우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맘대로 되질 않았다.
경석: “인한아! 너 새로 이사 온 대팔이 라고 아냐? 그 녀석이 너랑 싸우면 지가 이긴데?”
인한: “미친놈! 누가 그래! 내가 이겨! 그놈 대리고 오라고해!”
경석: “히히.. 이 형이 누구냐? 그래서 이따 오후에 오라고 했지! 그리고 동네 애들도 다 모이라고 했다.
이따 점심 먹고 이제 정식으로 너희 둘이 싸우기만 하면 되고 먼저 코피 터지거나 우는 놈이 지는 것이 다. 캬캬! 이길 라면 밥 많이 먹어라.”
이모: “이 녀석들 너희들 싸우니!? 경석이 너 못 됐구나! 애들 싸움질이나 시키고! 근대 이모도 구경하면 안 될까? 히히히”
난 속으로 이모가 말려 줄줄 알았지만 형이랑 맞장구 치는게 너무나 미웠다. 오랜만에 와서 첨엔 반가웠는데
그때는 정말 형이랑 이모가 적으로 보였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서 애들이 많이 모였고 심판은 울 형이 보았다.
경석: “에헴! 이제 울 동네 3학년 짱을 뽑을 것이다. 1분씩 10라운드로 싸울 것이며, 먼저 울거나 코피 터지 는 녀석이 지는 것이다. 자아~ 서로 긴장 풀고 시작 하면 싸워라! 자아~ 시작!”
우리 둘은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서로 달겨들어 주먹을 마구마구 주고받았다.
경석: “자자! 1라운드 땡땡!! 그만그만!! 야 말려라!!”
생각보다 녀석은 강했다. 맞은 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경석: “자 1분후에 다시 2라운드 시작이다! 자.. 다시 준비하시고 시작!”
이번에는 서로 약간 뜸을 들였다. 왜냐하면 서로 아파서 약간 싸우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주의에 야휴에 다시 서로 엉켜 넘어지고 구르다가 2라운드가 끝났다.
경석: “이런 겁쟁이 녀석들! 쫌 재미있게 좀 싸워봐라!”
2라운드가 끝나고 왠지 자신이 없어졌다. 생각보다 녀석의 주먹이 강했다. 그리고 여기서 관두자니 자존심도 상하고 미칠 노릇 이였다.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3라운드가 시작됐다. 3라운드에서 경기의 승패가 갈렸다.
대팔이형: “그렇지! 대팔아! 계속 밀어 부쳐! 그래그래~ 잘 한다. 역시 내 동생 대팔이다!”
경석: “야! 인한이! 제대로 못 싸워! 왜 막기만 하냐! 너도 쳐라!”
퓨쓕!! 코에 쌍코피가 터지고 피가 덩어리째 나왔다.
이모: “애들아! 그만해라!! 그만해! 정말 큰일 나겠다. 경석이 너도 그만해! 얼른 둘 다 집으로 들어와.”
이렇게 해서 난 패자가 되고 골목 대장자리 마져 뺏겼다. 들어가서 이모는 나의 피를 손수건으로 잘 닦아 주었다.
이모: “인한아! 잘 했어! 그래도 잘 싸우네. 그리고 다음부터는 절대 싸우지마~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그래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대면 대팔이도 이길 수 있는 거야!?”
경석: “케케! 약한 녀석! 졌대요~ 얼레리~꼴레리~!”
난 그 소리에 울컥해서 형에게 주먹을 날렸다. 물론 한대 때리고 엄청 맞았다. 그날 저녁에 형은 잠자리 이불속에서, 컴컴한 어둠 속에서 나에게 사과를 했다.
경석: “인한이! 삐졌냐? 이리 이불속으로 와바!~ 손으로 이불 비벼봐라! 불꽃 튀긴다.”
인한: (스윽스윽스윽) “와 신기하다! 신기해!”
경석: “무식한 녀석아! 이게 다 마찰이라는 것 땜에 그런 것이다. 잘 기억하도록!”
인한: (스윽스윽스윽스윽스윽스윽) “캬캬! 잼있다.”
경석: “야야! 고만해라! 정신 사납다. 이래서 애들 앞에서 뭘 못해요. 야 인한아! 아까는 많이 아팠냐?
자식아~ 원래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 너도 많이 약해졌다. 형이 그냥 심심해서 장난 쳐 본거다.
너무 맘 쓰지 말고.. 어차피 우리 좀 있으면 이사 간데.. 그러니까 쪽팔린 것도 잠시야. 그럼 잘자라.”
짝사랑
이제 곧 우리 집은 이사를 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난 이사 가는 게 싫었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2학년 때 여자반장 이던 선아라는 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선아: “인한아~ 오늘 네가 청소니까 남아서 청소해야해! 저번처럼 도망가지 말고 오늘은 꼭 남아!”
인한: “켁! 네가 내 엄마냐!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확 그냥 혼날 라고! 그럼 난 간다! 수고해라!”
선아: (내 손을 잡으며) “야~ 너! 거기 멈춰! 오늘 청소하고 가란 말이야!”
인한; “이게! 맞을 라고! 안 놔? 안 노면 때린다.”
선아; “못 놔! 청소하고가!”
퍽!! 나에 마음과는 다르게 선아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선아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청소하고 싶었지만 괜한 자존심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는 잘 기억이 안난다. 그 당시 사정이 어려워 소풍도 가지 못했고 선아와의 추억도 거의 없었다. 그냥 멀리서 보고 좋아했을뿐이다. 그래도 3학년에 올라가서도 계속 좋아하고 있었는데 이사를 간다니.. 너무나 싫었다. 하지만 내가 가기 싫다고 해서 안 가는 것도 아니고 결국 3학년 늦가을에 좋아하던 마음을 가슴에 묻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날 친 자식처럼 꼬옥 안아주고 아이들과 같이 사진도 찍어주고 지금 생각하면 참 어머니 같은 고마운 선생님이셨다. 1학년 2학년 담임선생님은 내가 말썽꾸러기라 그다지 잘 챙겨주지 않았지만 3학년 담임선생님은 너무나도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그건 선생님도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이란다. 김녕서 선생님.. 아직도 그 이름이 생생하고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즐거웠던 추억을 남긴 채..
3학년 늦가을 우린 생활보호 대상자로 노원구에 있는 12평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이곳은 한마디로 낙원이었다. 낙원.. 과거에 멀리 있고 냄새나던 화장실 대신 수세식 화장실이 바로 집안에 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물도 나왔다. 더는 물을 데워서 목욕하는 번거로움은 없었다. 그리고 싱크대도 있고 따뜻한 물로 설거지를 할 수 있고 물을 길러 올 필요도, 물을 버리러 갈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13층이어서 물을 퍼내는 일도 없었다. 예전에 지하라서 장마철만 되면 늘 바자기와 대아로 물을 퍼야만 했다. 한번은 자다가 물에 잠겨 스폰지 위에 둥둥 뜨면서 잠을 자다가 깬 적도 있다. 그리고 물을 다 빼고 물품을 말리려면 최소한 몇 주나 젖은 집에서 보내야했고 시멘트위에서 돗자리를 깔고 자야만 했다. 그리고 습한 냄새가 말도 못했다. 여름은 아주 지옥이었다. 근대 이제는 겨울에는 따뜻한 물에 여름엔 찬물에.. 너무나도 편리했다. 그 뿐인가! 우리는 세탁기까지 선물로 받았다. 예전에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에서 사주신 것이다. 그 회사에서 이사비용으로 300만원도 지원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와서 청소도 해주고 참 고마운 분들이었다. 이제 빨래도 밖에서 안 해도 되고 밖에서 안 널어도, 안 걷어 들여도 댄다. 비만 오면 “인한아! 빨리 빨래 걷어라”라는 말이 너무 싫었는데 이제 베란다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형이랑 양쪽 옷깃을 잡고 바둥거리며 옷을 짜곤 했는데.. 이제는 간편한 스위치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 됐다.
엄마: “애들아! 이곳이 이제 우리 가족이 살아야할 새집이란다. 아직은 텅텅 비였지만 천천히 하나하나 채우도 록 하자.”
수연: “히히히, 정말 편하다. 설겆이도 빨래도.. 이제 제가 설거지 다 할게요.”
경석: “아냐아냐! 내가 할 거야!”
인한: “싫어! 내가 할 거야!”
우린 서로 하겠다고 난리였다. 어머니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그때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모든 게 다 잘 풀리는 듯 했다. 하지만 우리야 철이 없어서 즐거웠지만 어머니는 이제 먼 곳으로 이사 와서 먹고 살게 걱정이셨다. 결국 다시 동네에 페인트 업자를 만나서 다시 페인트를 시작해서 생활을 꾸리셨다. 이제 누나도 고등학생이 되고 형은 중학생이어서 학비가 너무 부담이 되었다. 형과 누나는 학교에서 지원을 받아 수업료는 해결 했지만 교복비 책값 급식값등 부담이 이만 저만이 아니셨다.
나쁜 친구들
태어나서 첨으로 전학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선생님 모든 것이 설레임 자체였다. 첨 하루만 어머니와 함께 학교를 가고 그 후론 혼자 학교에 다니곤 하였다.
엄마: “인한아. 엄마는 바쁘니까 이제 혼자 학교 다녀야한다.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잘할 수 있겠지?
인한: “그럼 엄마! 내가 무슨 얘도 아니고.. 나도 클 만큼 컷다고! 걱정 하지마!”
첨에 전학 와서 학교에 다니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주위에는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마음이 통한 다는 게 좋은 쪽으로 통하는 것만은 아니다. 다들 가정환경이 좋지 못해 안 좋은 버릇들을 가진 녀석들이 많았다. 4학년 때의 일이었다.
진호: “인한아~ 너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아냐?”
인한; “아 그거! 그거야 남자랑 여자랑 둘이서 잠만 자면 생기는 거야~ ”
진호: “그래? 내가 알기로는 남자랑 여자랑 뽀뽀만 하면 생긴다던데? 아닌가?”
창규: “후후후. 어린 녀석들~ 오늘 학교 끝나고 우리 집에 와라. 그 해답을 알려 줄테니까!”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새로 사귄 창규네 집으로 향했다. 녀석은 서랍에서 뒤적뒤적 거리더니 이상한 검정 비디오를 꺼내었다. 그 비디오는 포르노 테잎이었다. 만화나 보던 나에겐 그 비디오는 평생 잊을수 없는 큰 충격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엮겨 워서 비디오를 끄라고 했지만 창규 녀석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비디오에 열중했다. 그 날 이후로 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첨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 엄마를 보는 눈길도 이상해졌다. 그리고 모든 어른들을 보는 눈도 이상해졌다. 창규 녀석은 이 후로도 또 다른 새로운 테잎이 있다며 나를 초대하곤 했다. 물론 거절했지만 창규 녀석은 지독한 녀석이었다. 포르노 잡지를 학교에까지 가져오곤 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곤 하였다. 그런데 그런걸 보고 좋아하는 녀석들이 더 이상했다. 이곳에 녀석들은 예전에 살던 동네 아이들과는 어디인가 잘못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좀 잘살고 부잣집 녀석들은 우리들과는 잘 사귀지 못했다. 걔들은 나와 내 친구들을 왠지 부담스러워 했다. 자연스럽게 파가 갈라져 끼리끼리 놀게 되었다.
새로운 놀이
새로 이사 오면서 당연히 우리 형도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형 친구들은 자주 우리집에 놀러와 우리형의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형 친구들은 내 친구들과는 달리 어려운 환경인대도 불구하고 좋은 형들이었다. 그 형들의 놀이 문화는 순수했고 멋졌다. 주로 모여서 게임을 하고 밖에서 농구를 하는 것이었다. 난 형들을 통해 그 때 농구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성남: “경석아! 너 농구 할줄 아냐?”
경석: “농구? 농구가 뭐지? 몰라 못해!”
성남: “야 정범이 너는 할 줄 아냐?”
정범: “못해! 자식아! 이상한 것만 배워가지고!”
성남: “그럼 오늘 해보자! 농구 하면 엄청 재미있다.”
처음에 다들 안한다고 거부 했다. 그런데 정범이 형이 먼저 농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명 하기 시작하니까 하나 둘 모두 농구를 했다. 이제 농구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형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가서 농구를 하고 방과 후에 모여서 농구를 하였다. 물론 나도 오후에는 항상 형들을 쫓아 다니면서 어깨너머로 농구를 배웠다. 50점 내기를 하면 47점 남겨놓고 나에게 농구를 할 권리를 주었다. 그 전까지는 몇 시간이고 기달려야 했다. 물론 추운 겨울에도 뜨것운 여름에도 난 미련하게 그 3점을 위해 기다렸다. 그렇게라도 한 것이 도움이 되어 결국에 난 친구들 중에서 농구를 가장 잘하게 되었다. 그리고 녀석들도 덩달아 농구에 집착하게 되었다. 덕분에 이제 창규도 진호도 포르노 같은 것에서 관심이 멀어지게 되었다.
깡패
난 이사 오기 전까지도 깡패라는 게 뭔지 잘 몰랐다. 하지만 이 동네에 와서 깡패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다. 어느 늦은 저녁 난 슈퍼에 라면을 사러 갔었다.
경석: “야 인한이! 형아가 천원 줄 테니까 슈퍼 가서 라면 좀 사와라! 잔돈 남은 거 먹지 말고 잘 가져 오고!”
인한: “싫어! 내가 무슨 형 꼬봉이야! 형이 갔다와.”
경석: “이게 죽을 라고 때를 쓰네! 좋은 말 할 때 갔다 와라!”
인한: “싫다고! 안간 다고!”
그러더니 형은 압력기를 집어 들더니 나에게 던졌다. 째쟁!! 내가 압력기를 피하는 바람에 뒤에 있는 창잔 유리가 다 깨져버렸다.
경석: “이 자식이 성질 건들고 있어! 갔다 와라!”
인한: “으....”
억울하지만 난 조용히 슈퍼로 향했다. 나이를 조금 더 먹으니까 형의 무서움도 알게 되었다. 힘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나보다 강해졌다. 어렸을 때 비등비등했던 형과 나의 힘의 차이는 커져만 갔다. 이제 나는 형한테 잡혀 살게 되었다. 그때 시간이 꽤 늦어서 거리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어떤 고등학교도 넘어 보이는 형이 날 부르는 것이다.
양아치: “야! 꼬마야! 이리 와봐라!”
인한: “잉? 왜요? 누구세요?”
그러더니 그 양아치 형은 상스러운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양아치: “이런 어린놈의 새끼가 죽을 라고! 야 너 돈 있는 거 다 꺼내봐라!”
인한: “어..없어요.”
양아치: “없어. 이게 구라치네. 아 새끼야! 너 뒤져서 나오면 10원당 한대씩이다.”
인한:(울먹울먹)“저 이거 천원 형꺼에요. 이거 없으면 형한테 맞아 죽어요.”
갑자기 내 멱살을 잡으면서 천원을 뺏아갔다.
양아치: “이게 어디서 뻥을 쳐! 야! 오늘은 조용히 보내주는데 담부턴 조심해라. 그리고 누구한테 꼰지 르면 그땐 알지?”
내가 예전에 알던 그러게 얕잡아 볼 수 있는 형들이 아니었다. 진짜 질이 안 좋았다. 결국 돈을 뺏기고 형한테 뭐라 변명할지 걱정이었다.
인한: “아.. 형 나가다가 돈을 잃어버렸나봐.”
경석: “미친놈! 이게 거짓말 하네. 여기서 슈퍼까지 엎지면 코닿는데 어디서 뻥을쳐! 빨랑 라면 안 사올 래.”
인한: “고만해! 그래서 내가 안 간다고 했잖아! 한번만 더 모라고 해봐라!”
경석: “허~ 이 녀석 봐라!”
형은 나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인한: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치지 말라고오오오오오오오!!”
갑자기 한대 맞고 난 흥분해서 벌컥 대들었다. 그러더니 형은 나의 멱살을 잡더니 나의 뺨을 치기 시작했다.
경석: “야! 미쳤냐?”
짝!! 짝!! 짝!! 난 한대 한대 맞을 때마가 속으로 수를 세었다. 20대까지만 참고 가치 싸울 생각을 품고 있었다. 17대.. 18대.. 19..20.. 퍽!!!!!!!! 난 형의 코를 정확히 갈겼다. 형의 코에서는 피가 심하게 났다.
갑자기 형은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난 무서웠다. 틀림없이 나오면 가만히 있질 않을 것을 예상했다. 예상은 맞았다. 형은 코피를 수습하고 나와서 나를 눕히고 신나게 후들겨 팼다. 상황은 늦게 엄마가 일마치고 오신 담에 해결되었다. 물론 같이 꾸중을 들었지만 형은 매를 맞게 되었다.
엄마: “인석아! 형이 되가지고 동생을 보살펴야지. 이렇게 개패듯 패면 어쩌니? 도대체 형이 되어 동생 이 뭘 배우겠니? 얼굴 좀 봐라. 얼마나 때렸길래.. 아버지가 안 계실수록 너희둘이 사이좋게 지내 야지! 도대체가 엄마가 힘들게 일하고 들어오니까 방도 엉망이고 찬장유리도 깨지고 아주 개판이 야! 너희들 담부턴 엄마 들어오기 전에 방 깨끗이 정리 안 해 놓으면 혼날 줄 알아! 그리고 경석 하고 인한이 담에 또 싸우면 이 정도에서 끈나지 않을 거야!”
경석: “엄마 죄송해요. 앞으로 잘할게요.”
인한: “저도요. 다신 안 싸울게요.”
물론 이 이후로 치고 박고 많이 싸웠지만 전처럼 그리 심하게 싸우지는 않았다. 만약 그때 엄마가 매를 들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면 형과 나는 계속 싸웠을 것이다. 문제가 있을 때 마다 늦게 들어오시고 피곤하신대도 늘 우리들을 챙겨 주셨다. 여자로써 새벽에 일어나서 힘든 노동일을 하고 저녁 늦게 들어와서 밥하고 청소하고 또 담날 일가고.. 그것은 남자도 힘든 일이다. 나도 고등학교 졸업해서 1년 정도 별보고 나가서 별보고 들어오는 생활을 했었는데 결국 1년 후 직장을 관둔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30년 정도 그 힘든 일을 참고 해오셨다. 참으로 감사한다.
이성
초등학교의 마지막 6학년까지는 나에겐 성이 한 가지였다. 남자나 여자나 그냥 구분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구분이 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내 맘속엔 그때부터 나에겐 여성과 남성이 존재하게 된 것 같다. 그때부터 난 여자친구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한 것 같다. 내가 잘하는 것이라곤 농구 밖에 없어서 농구를 멋지게 해서 여자아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때 이상하게 이쁜 여자애들보다 공부를 잘하는 여자가 더 좋았다. 그래서인지 난 반장이나 부반장을 많이 좋아했다. 아마 그때부터 사춘기가 조금씩 시작한 것 같다.
창규: “야 인한아! 6학년 8반에 효희라는 애 봤냐? 진짜 이쁘다. 어떻하냐? 나 반했나봐? 근대 넌 좋 아하는 여자애 없냐?”
인한: “어..어 난 그냥 다 좋아. 공부 잘하고 그러면 다 좋고 누구 특별히 좋아하는 애는 없는데.”
창규: “그러냐~ 아 난 미치겠다. 근대 너 그거 아냐 나 몽정 했다. 고추에서 이상한 흰 덩어리가 막 나 와~ 근대 그게 기분이 되게 좋아~ 그래서 일부러 나오게 한다니까! 혹시 넌 안 그러냐?”
인한: “아니? 흰 덩어리? 아 그거 예전에 너네 집에서 비디오 볼 때 그런 거 나왔잖아. 아 추잡한 자 식! 이제 너랑 놀면 안 되겠다.”
창규 녀석은 나와 또래들보다 성장이 빨랐다. 녀석은 털도 나기 시작했고 몽정까지 했다. 아마 어려서부터 성적인 매체들을 많이 접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이제 나도 6학년부터 조금씩 남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느끼지 못했다.
중학생
무사히 전학 와서 그다지 큰 사고 없이 달 보냈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어머니의 꾸지람의 기억은 거의 생각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나는 사춘기가 접어 들었다. 그러면서 나의 본질성이 삐딱성이 발동 되었다. 중학교 때 우리 학교는 머리를 짧게 밀어야 했다. 하지만 난 머리에 상처가 있다는 이유로 중학교에 가서도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덕분에 학생부장 선생님과 선배 형들한테 보기 좋게 찍혀 버렸다.
학생부장: “너 이 새끼! 이리 와봐! 너 이 녀석 중학교 입학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머리를 안 잘랐 어! 이게 아주 아직도 초등학생인줄 아나보네! 너 몇 학년 몇 반이냐? 내일까지 꼭 자르고 오도록!”
인한: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크게 잘 했지만 물론 머리는 자르지 않았다. 담날 학교 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학생부장이 또 나와 있었다.
인한: “아~ 저 자식은 또 나와 있네. 아 일부러 일찍 왔는데 소용없네. 담 넘어야겠다.”
학생부장 때문에 담을 넘는데 귀신같은 학생부작은 날 딱 발견했다.
학생부장: “야! 이 녀석아! 거기 너 어느 반 번호가 뭐냐? 이리와라!”
인한: “헉, 도망가자!”
학생부장: “야 임마! 거기서!”
나는 무작정 교실 쪽으로 도망갔다. 다행이 붙잡히지는 않았다. 큰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데 학생부장은 쉬는 시간에도 날 찾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날은 무사히 넘어갔다. 남달에 난 계속 쪽 구멍으로 다녔다. 왜냐하면 학생부장이 거의 맨날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하루는 학생부장이 안나와 있었다. 왠 떡이냐 생각하고 교문을 들어서는데 누가 나의 귀를 잡더니 귓 방망이를 주먹으로 쳤다. 학생부장 이었다. 아주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학생부장은 거기에 분이 안차서 나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살갖이 벗겨져 피가 나고 나중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생은 젊었을 때 팬싱 선수였다. 그래서인지 성질이 불같은 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한테 찍혀 나와 중학생활은 그리 편치만은 못했다.
괴롭힘
중학생이 되서 성격이 더욱 못되게 변했다. 약자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 이었다. 난 중학교 때 뚱뚱한 애들을 너무너무 싫어했다. 그래서 이유 없이 뚱뚱한 애들을 괴롭혔다. 쉬는 시간에 성훈이라는 녀석의 뒤통수를 이유 없이 때렸다.
인한: “야! 이 돼지 새끼야! 머리 좀 감아라! 아유.. 애들아 이 비듬 좀 봐라! 아주 드러워 죽겠네.”
성훈: “왜..왜 때려!”
인한: “어쭈! 이 녀석 봐라! 뭘 꼬라 보냐?”
성재라는 녀석은 나랑 친한 친구인데 덩달아 거들었다.
성재: “으흐흐 인한아! 고만해라~ 나도 비듬 많아! 돼지야! 봐라 나도 너처럼 비듬 많지?”
그러면서 성재는 비듬을 성훈이 책상에 털어 되기 시작했다. 금세 성훈이는 고개를 떨구고 울먹 거렸다. 나 그 당시 아주 비겁한 놈이었다. 그때 3년 꿀은 녀석이 나와 같은 학년 이었다. 일명 학교짱이었다. 걔랑 같이 다니는 패거리한테 난 꼼짝 못했다. 한번은 체육시간에 그 녀석들하고 마주친적이 있었다.
인한: “뭘 봐. 이 새끼들아!”
헌재: “야 저새끼 우리가 정호랑 친한지 모르나봐?”
성재: “인한아. 저놈들 정호친구들이야. 넌 죽었다. 정호형이 번개파 깡패라는데 그리고 친구들도 전부 다 깡패래. 너 인제 어떻할래? 난 안도와준다.”
헌재: “이 새끼! 너 이리 따라와!”
난 옆반으로 따라 들어갔다. 물론 거기엔 정호 패거리들이 있었다. 난 발길질로 몇 대 맞았다. 정호라는 뒷 그늘에 난 헌재에게 발길질을 당하는 수욕을 겪었다. 난 말 그대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그런 쓰레기 같은 중학생 이였다. 하지만 성격이 나쁜 탓에 헌재 놈에게는 늘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정호랑 사이가 나쁘거나 언제 조용히 둘이 있을 때 복수할 생각을 늘 품고 다녔다. 헌재는 정호 빽으로 자꾸만 날 못살게 굴었다. 말 그대로 심은 대로 거둔 꼴이다. 나도 괴롭힌 만큼 당한 것이다. 그래도 걔들은 말로만 갈구 워서 그 점은 나보다 오히려 신사적 이였다. 하지만 나의 분함은 늘 마음속에 있었다. 그래서 더욱 얘들을 괴롭혔다.
소풍
이제 복수할 기회가 내게 왔다. 소풍 때를 노렸다. 일부러 나는 헌재 주의를 기웃거리면서 그 녀석이 혼자 있길 기다렸다. 어느새 그 녀석 패거리는 뿔뿔히 흩어지고 헌재랑 그 옆에 비실비실한놈 한명 뿐이였다. 그래서 스윽 녀석 앞에 접근했다.
헌재: “뭐냐? 이 자식아! 왜 앞을 막구 지랄이야? 죽고 싶냐?”
인한; “죽고싶다!”
그러면서 녀석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 순간 비실비실한 친구 놈은 사라지더니 잠시 후에 패거리를 불러왔다. 난 그것도 모르고 신나게 싸우고 있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누가 발길질을 하더니 순식간에 패거리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맞았다. 성재 녀석은 도와주기는커녕 멀리 도망쳐 있었다. 신나게 맞고 나서 성재랑 나만 남았다.
성재: “야~ 많이 아팠냐?”
인한: “아 맞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무지 아프다. 젠장. 승질난다.”
성재: “참아라. 네가 뭘 어쩌겠냐?”
인한: “두고봐라. 딴 놈은 몰라도 헌재만은 가만 안둔다.”
그 뒤로 더욱 더 헌재에 대한 분노는 심했다. 헌재는 정호만 믿고 나대기 시작했다.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 친구들과 녀석을 흠씬 패줄 계흭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계흭은 실패했다. 어머니 때문이었다.
사생대회
중학교 사생대회였다. 그림 그리기와 글짓기를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글짓기와 그림 그리는 것에 소질이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 타락한 중학생이여서 그런 곳에는 조금도 관심이 가질 않았다. 형식상으로 난 붓을 휘익 휘익 그어 그림을 그리고 글짓기도 그냥 대충 대충 적어 냈다. 하지만 운 좋게 그 때 글짓기 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그 뒤로 선생님은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예전에는 공부를 원체 안해서 신경을 안 쓰셨지만 그 뒤로 나에게 약간의 관심을 보이셨다. 시간이 지나고 또 사생대회가 돌아 왔다. 선생님은 날 부르셨다.
선생님: “인한아! 이번 사생대회에는 그림 좀 잘 그리고 글짓기에 신경을 쫌 써서 내봐라.”
인한: “네.”
물론 대답은 잘 했지만 난 시간이 다 되어 가도록 얘들하고 노는 것에만 정신이 팔렸다. 시간이 대서 난 선생님께 끌려갔다.
선생님: “너 이 자식! 선생님이 이번에 잘 좀 그리랬는데. 백지를 제출해! 당장 대가리 박아!”
그날 난 사생대회까지 와서 기압을 받았다. 정말이지 그 때는 아주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그런 사고방식 뿐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드디어 어머니의 개입으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지는 게 강한 것이다.
이제 어느덧 중3이 되어 버렸다. 고등학교 진학도 좋은 대는 포기하고 그냥 공고나 가야지 맘먹고 있었다. 수업에는 잠만 자고 아직도 얘들 괴롭히는 버릇은 남아 있었다. 방과 후에 친구들끼리 남아서 야구를 하게 되었다.
인한: “야! 좀 잘 좀 던져봐라!”
성호: “잘 치기나 해라! 나의 초 강력 도깨비구를 받아 봐라!”
준기: “야 천천히 던져 너무 빨라서 받기 힘들다.”
인한: “이런 빙신! 어떻게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 봤냐? 장애인이냐?”
“어쭈 째려봐? 이게 아주 미쳤구나! ”
준기: “왜..내가 뭘 잘못 했다고.”
인한: “허어~ 그래! 그래! 알았다. 성호야 자알 던져봐라! 흐흐흐.”
난 일부러 방망이로 공을 치는척하면서 준기 팔을 쳤다.
인하: “하하하! 미안하다! 왜 꼽냐? 꼬우면 쳐봐! 새끼야!”
그 때 준기는 거의 참을성에 한계에 도달했다. 준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야구를 맞추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런데 갑자기 준기 녀석이 나의 얼굴을 가격했다. 코에 정통으로 몇 대 맞더니 나는 쌍코피가 터졌다. 애들이 순식간에 말려들었다. 나는 잠시 코피를 닦은 후 숨을 가다듬고 준기에게 달려들었다. 벽 쪽으로 몰아부쳐 아주 흠씬 두들겨 패주었다. 어찌나 팼는지 얼굴이 거의 벌집이고 기스도 많이 나게 되었다. 근대 준기 어머니가 교사셨다. 그 날 저녁 바로 집으로 준기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준기어머니: “어떻게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요. 아주 애가 엉망이에요. 너무 속상해요. 도대체 애를 어떻게 교육 시키신 거예요! 어쩌실 거에요!?”
엄마: “죄송합니다. 할말이 없습니다. 제가 자식을 잘 못 교육시켰습니다. 한번만 봐주십시오. 정말 죄 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교육 시키겠습니다.”
첨에 준기어머니는 굉장히 흥분하셨지만 교사라서 그러신지 다시 신사적으로 잘 말씀 하셨다. 통화를 마치고 말없이 어머니는 베란다에서 빗자루를 가져오셨다. 그리고 오랜만에 어머니께 매를 맞았다. 이사 와서 어머니가 바쁘셔서 예전만큼 우리와 함께 하신 적이 적었기 때문이다.
엄마: “인한아!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약자나 하는 짓이란다. 저번에도 어머니가 늘 말했지만 지는 것 이 이기는 것이다. 엄마는 진정한 강한 자는 이길 줄 알면서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예전에 엄 마가 시장에서 장사할 때 엄마 장사 못하게 하던 남자들 생각나지? 그 남자들이 멋있어 보이니? 너도 그 사람이랑 똑같애. 다시는 다시는 싸우지 마라. 강해져라.”
그 뒤로 난 싸움을 한번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는 애들도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약한 애들을 괴롭히면 말렸다. 그리고 속으로 다시는 싸움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만약 그 때 어머니의 충고가 없었다면 난 지금도 싸움질을 하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진심에서 우러나와 충고를 해주신 어머니 덕분에 나의 못된 버릇을 조금씩 없애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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