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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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균-시(200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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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눈
참 이상하기도 하지!
왜 나 혼자서는 생각조차
제대로 못하는 걸까.
릴케의 눈을 안경처럼 써야만
세상이 환하게 열리는 걸까!
삶과 죽음의 안내서라는
<말테의 수기>가 깜깜한 어둠 너머
빛의 세계로 나를 유혹하는 것 같아.
내가 아끼는 은행나무도 그래
나는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거긴 은행나무 밭이 아니라
칡 밭이 되고 말았어.
내 그리움이 은행나무에
은행으로 익어가지 않고
칡넝쿨로 뻗어 나가는 것을
릴케가 바람으로 불어 와
살며시 말해주기 전까진 몰랐어.
그것도 모르고 살았던 거야.
당신이라는 나무
네가 그랬지.
“당신이란 나무는
어려서부터 다른 나무와
어울릴 줄도 모르고,
크게 기뻐하지도
크게 슬퍼하지도 않고,
크게 만족해하지도
크게 부족해하지도 않으면서
지금까지 서 있군요.”라고
그래 정말 그런 것 같다.
바람은 내게만 부는 것도 아닌 데
내게만 바람이 부는 줄 알고
그 바람이 너무나 아리다며
삼백 예순 다섯 날이
오십 번이나 지났는데도,
마음의 정처를 잃고
바람 앞에 서 있는 나무가
바로 나인가 보다.
외할머니의 옛날 얘기
오롯이 화롯가에 모여 앉아
밤 깊도록
외할머니의 옛날 얘기 듣던
그 때 그 외할머니의 목소리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립기만 한가!
<팔러 가는 당나귀>라든가
<나무꾼과 선녀>라든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던
어느 대신의 우물 안 이야기는
아직도 내 몸을 훈훈하게 젖어
내리는데……
외할머니도 없는
저무는 겨울 밤
애기 아버지 되어
닫혀진 창문 안 TV에만
눈을 주는 어린 것들을
바라다 보아야 하는 것은
왜 이렇게 춥기만 한가!
외할머니의
그 옛날 얘기들을
지금은 들을 수 없는 것이
지금은 들려 줄 수 없는 것이
마냥 섭섭할 뿐이다.
수건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여기 와 있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끝내고
갯장반에 나가
고무신 벗어 들고
맨발로 뛰어 다니며
물장구 치던
당신이 아들이
여기 와 있습니다.
철없이 냇가에 나가
물장구치던 개울을 건너
꿈과 소망을 하늘 높이
날려보내던
연날리기도 끝내고
어머니의 얼굴 주름살에 낀
땀방울을 닦아 드리려
하얀 수건을 하나 들고
이렇게 와 있습니다.
닦으려 해도
아무리 닦으려 해도
닦아지지 않는
어머니!
당신의 주름살을 지우려
이렇게 여기 와 있습니다.
지울 수 없는
어머니의 얼굴이기에
눈물 머금다
눈물에 얼룩진 수건을 들고
여기 이렇게 와서
여기 이렇게 서 있습니다.
어머니!
삶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용서하고 용서 받는다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오다 가다
막걸리 한 사발 받으면
막걸리 한 사발 건네기도
하는 거지
그 막걸리를
받아 마시고 안 받아 마시고가
또 무슨 시비거리 되는 걸까!
그저 그 막걸리 맛이란게
사람이 살다가 가는 것만큼이나
참 기가 막힐 따름이지.
반달
도시가 버린
도시의 하늘
실핏줄처럼 뻗어 있는
전기 줄, 전화 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하늘을 동여매고 있다.
검게 멍든 하늘
반달이 하나
은빛 나래를 펴고
담쟁이 넝쿨처럼 뻗어나는
사슬의 틈을 빠져
남으로 흘러가고 있다.
도시에 내리는 눈
눈은 어두운 도시의
하늘을 덮고
땅을 덮고
사람의 마음을 덮는다.
내일이면
녹아 없어질 눈을 밟으며
덕수궁 연못가에 서 있는
수양버들을 본다.
땅 끝을 떠나지 않으려
아래로, 아래로 늘어진
가지 끝엔
아직 눈송이가
목화송이처럼 피어 있고
거기
아내의 비단 치마
그 연두 빛이 묻는다.
그 위에 둥지 잃은
한 마리 비둘기
날개 퍼덕이며
나래에 묻은 눈을
털어 내고 있다.
버드나무
하늘이 그리워
하늘을 그린단다.
땅이 그리워
땅을 그린단다.
외로움을 알지만
외로워 할 줄 몰라
그렇게 산단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산단다.
출렁거리지 않으려 해도
출렁거리는 물들 때문에
출렁거려야 하는 물처럼
사랑을 알지만
사랑할 줄 몰라
그렇게 산단다.
구름
1
모가 나 있더구나.
모가 나 있어.
네모 난 창,
네모 난 하늘,
그 하늘에 떠가는
구름에도
모가 나 있더구나.
2
숨바꼭질이다.
사람의 마음만큼이나
변덕스런 구름이
하늘에 숨고,
난,
술래가 된다.
술래가 되어, 너를 찾는다.
구름아, 구름아.
너를 찾는다.
3
종일을 울부짖어도
한 방울
눈물 자욱으로밖엔
그릴 수 없는
슬픔이
한 줄기 빗물이 되어
차창에 와 부딪친다.
4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그리고 내 마음은
어느 하늘 한 자락을
스쳐 지나가는
구름이런가!
철새
날 줄을 알되
날아 갈 줄 모르는
새였답니다.
그리움은 알지만
그리운 곳에 머무를 수 없는
새였답니다.
너무나 맑은 하늘이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지구였습니다.
너무나 많은 그리움이 거기 있었습니다.
날개 있어도
해와 달이 데려 온
바람,
지탱할 수 없는 난
한 마리 작은 철새였습니다.
비는 그리운
사람들의 발을 묶어 놓는다.
비는 그리운 사람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도 하고
비는 그리운 사람들을
묶어 놓는 끈이기도 하다.
비 오는 날이면
사랑방에 모여
새끼 꼬고
가마니 짜고 하던
추억들이 빗줄기 사이로 다가 온다.
빗 줄기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멀어
때로는 소나기처럼
때로는 바람처럼
왔다가 가는 것인데
아플 것도 아파할 것도 없는데
아파오는 것이
또 삶인가 본데
너는 할 말이 많아
바람으로 불어와
하루종일 내주위를 맴돌다 가고
너는 소나기처럼
찾아와
하루 종일 내 발길을 묵어 놓곤 하는데
나는 할말을 찾아
두리번 거리며
세월만 보내고
오늘도 강가에 나와
먼 하늘만
먼 하늘만 바라보다 가는구나.
대원외고
유동균" <dejwji@hanmail.net>
참 이상하기도 하지!
왜 나 혼자서는 생각조차
제대로 못하는 걸까.
릴케의 눈을 안경처럼 써야만
세상이 환하게 열리는 걸까!
삶과 죽음의 안내서라는
<말테의 수기>가 깜깜한 어둠 너머
빛의 세계로 나를 유혹하는 것 같아.
내가 아끼는 은행나무도 그래
나는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거긴 은행나무 밭이 아니라
칡 밭이 되고 말았어.
내 그리움이 은행나무에
은행으로 익어가지 않고
칡넝쿨로 뻗어 나가는 것을
릴케가 바람으로 불어 와
살며시 말해주기 전까진 몰랐어.
그것도 모르고 살았던 거야.
당신이라는 나무
네가 그랬지.
“당신이란 나무는
어려서부터 다른 나무와
어울릴 줄도 모르고,
크게 기뻐하지도
크게 슬퍼하지도 않고,
크게 만족해하지도
크게 부족해하지도 않으면서
지금까지 서 있군요.”라고
그래 정말 그런 것 같다.
바람은 내게만 부는 것도 아닌 데
내게만 바람이 부는 줄 알고
그 바람이 너무나 아리다며
삼백 예순 다섯 날이
오십 번이나 지났는데도,
마음의 정처를 잃고
바람 앞에 서 있는 나무가
바로 나인가 보다.
외할머니의 옛날 얘기
오롯이 화롯가에 모여 앉아
밤 깊도록
외할머니의 옛날 얘기 듣던
그 때 그 외할머니의 목소리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립기만 한가!
<팔러 가는 당나귀>라든가
<나무꾼과 선녀>라든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던
어느 대신의 우물 안 이야기는
아직도 내 몸을 훈훈하게 젖어
내리는데……
외할머니도 없는
저무는 겨울 밤
애기 아버지 되어
닫혀진 창문 안 TV에만
눈을 주는 어린 것들을
바라다 보아야 하는 것은
왜 이렇게 춥기만 한가!
외할머니의
그 옛날 얘기들을
지금은 들을 수 없는 것이
지금은 들려 줄 수 없는 것이
마냥 섭섭할 뿐이다.
수건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여기 와 있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끝내고
갯장반에 나가
고무신 벗어 들고
맨발로 뛰어 다니며
물장구 치던
당신이 아들이
여기 와 있습니다.
철없이 냇가에 나가
물장구치던 개울을 건너
꿈과 소망을 하늘 높이
날려보내던
연날리기도 끝내고
어머니의 얼굴 주름살에 낀
땀방울을 닦아 드리려
하얀 수건을 하나 들고
이렇게 와 있습니다.
닦으려 해도
아무리 닦으려 해도
닦아지지 않는
어머니!
당신의 주름살을 지우려
이렇게 여기 와 있습니다.
지울 수 없는
어머니의 얼굴이기에
눈물 머금다
눈물에 얼룩진 수건을 들고
여기 이렇게 와서
여기 이렇게 서 있습니다.
어머니!
삶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용서하고 용서 받는다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오다 가다
막걸리 한 사발 받으면
막걸리 한 사발 건네기도
하는 거지
그 막걸리를
받아 마시고 안 받아 마시고가
또 무슨 시비거리 되는 걸까!
그저 그 막걸리 맛이란게
사람이 살다가 가는 것만큼이나
참 기가 막힐 따름이지.
반달
도시가 버린
도시의 하늘
실핏줄처럼 뻗어 있는
전기 줄, 전화 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하늘을 동여매고 있다.
검게 멍든 하늘
반달이 하나
은빛 나래를 펴고
담쟁이 넝쿨처럼 뻗어나는
사슬의 틈을 빠져
남으로 흘러가고 있다.
도시에 내리는 눈
눈은 어두운 도시의
하늘을 덮고
땅을 덮고
사람의 마음을 덮는다.
내일이면
녹아 없어질 눈을 밟으며
덕수궁 연못가에 서 있는
수양버들을 본다.
땅 끝을 떠나지 않으려
아래로, 아래로 늘어진
가지 끝엔
아직 눈송이가
목화송이처럼 피어 있고
거기
아내의 비단 치마
그 연두 빛이 묻는다.
그 위에 둥지 잃은
한 마리 비둘기
날개 퍼덕이며
나래에 묻은 눈을
털어 내고 있다.
버드나무
하늘이 그리워
하늘을 그린단다.
땅이 그리워
땅을 그린단다.
외로움을 알지만
외로워 할 줄 몰라
그렇게 산단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산단다.
출렁거리지 않으려 해도
출렁거리는 물들 때문에
출렁거려야 하는 물처럼
사랑을 알지만
사랑할 줄 몰라
그렇게 산단다.
구름
1
모가 나 있더구나.
모가 나 있어.
네모 난 창,
네모 난 하늘,
그 하늘에 떠가는
구름에도
모가 나 있더구나.
2
숨바꼭질이다.
사람의 마음만큼이나
변덕스런 구름이
하늘에 숨고,
난,
술래가 된다.
술래가 되어, 너를 찾는다.
구름아, 구름아.
너를 찾는다.
3
종일을 울부짖어도
한 방울
눈물 자욱으로밖엔
그릴 수 없는
슬픔이
한 줄기 빗물이 되어
차창에 와 부딪친다.
4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그리고 내 마음은
어느 하늘 한 자락을
스쳐 지나가는
구름이런가!
철새
날 줄을 알되
날아 갈 줄 모르는
새였답니다.
그리움은 알지만
그리운 곳에 머무를 수 없는
새였답니다.
너무나 맑은 하늘이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지구였습니다.
너무나 많은 그리움이 거기 있었습니다.
날개 있어도
해와 달이 데려 온
바람,
지탱할 수 없는 난
한 마리 작은 철새였습니다.
비는 그리운
사람들의 발을 묶어 놓는다.
비는 그리운 사람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도 하고
비는 그리운 사람들을
묶어 놓는 끈이기도 하다.
비 오는 날이면
사랑방에 모여
새끼 꼬고
가마니 짜고 하던
추억들이 빗줄기 사이로 다가 온다.
빗 줄기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멀어
때로는 소나기처럼
때로는 바람처럼
왔다가 가는 것인데
아플 것도 아파할 것도 없는데
아파오는 것이
또 삶인가 본데
너는 할 말이 많아
바람으로 불어와
하루종일 내주위를 맴돌다 가고
너는 소나기처럼
찾아와
하루 종일 내 발길을 묵어 놓곤 하는데
나는 할말을 찾아
두리번 거리며
세월만 보내고
오늘도 강가에 나와
먼 하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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