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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란희-시(2004.9.22) 1차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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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289회 작성일 04-11-15 21:56

본문

첫눈 오는 날
김 란희

버들 강아지 같은 눈망울이
사르륵 사르륵 쌓이는 소리에 귀 모으면
하늘과 땅의 교신이 들린다

눈꽃 허리 잘라내어
쿵쿵 달아오르는 설레임 다독이면
첫사랑이 자꾸 불러내
나는 설기밭에서
꽃가마를 탄다

사방에 가득 넘친 꽃숲에서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는
꽃불

꽃불의 심지 돋우며
환한 날개 달고
포르륵
멀리 날아오른다



진달래

김란희

보름달빛으로
흥건히 젖는
숲의 능선

비탈진
산등성이가 출렁인다
짙은 숲이 독수리마냥
날개를 펼친다

능선을 오르내리며
밤을 삼키는 숨소리
하늘로 치솟는다

숲 굽이굽이
온갖 빛깔의 알갱이들이
성류굴(聖留窟)인 양 아득하다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잉걸 타오르는 깊은 밤

보름달빛으로
진달래 사태나듯,
하늘 한 가운데로 붉은 빛가루들이 꽃무리로 솟구치듯,
가슴 깊숙이 오래오래 잊히지 않을
진달래빛 가득 고인
가시버시 한 쌍




백목련의 피울음

김란희


꽃샘 잎샘에도 아랑곳없이
세상의 시끌와끌한 불안한 소리들에도 군소리없이
꽃부리 활짝 열고 로로록로로록 맴도는 햇발 받아 마시고
제 할 일 다한다
금방 날개짓하려는 새의 모습처럼 하얀 빛으로 우아하게 일어나고
은하성단 같은 빛으로
세상의 봄을 별빛처럼 밝히려 했다

2
태양빛 벌건 대낮에
공룡의 거대한 발바닥으로 마구 짓밟으며
태평양 저편의 머나먼 초록바다, 불의 분수를
철판 같은 양손으로 힘껏 움켜잡는다
수억 톤의 세라믹 불더미로
푸르른 지붕이 피를 쏟고 추락할 무렵
백목련 가슴 줄기엔 피멍이 맺히고 
시퍼렇게 질린 화관이 납덩이로 변한다
오로지 한번뿐인 생명이 복날의 누렁개들처럼 나둥그러질 때,
온 세계의 강산이 
그 힘의 칼로 마구 찔린 가슴 움켜쥐고 술렁이는데도,
공룡은 불의 분수를 주머니 주머니 가득 채우고
제 힘의 그물망으로 중동(中東)의 하늘을 덮어씌우고저
계속 포화에 불을 지피니,   
백목련은 
서서히
핏방울  
떨어뜨린다


한바탕의,포화의 불길로 세상의 별빛은 사라지고
거대한 폭력의 간과(干戈)로 갈가리 찢겨진 병화(兵禍)의 상처는,
바이러스균처럼 
온 세계를 휘휘 헤엄치고 다닌다

은하성단 같은 빛으로 세상 끌어안기엔
어깨 너무 버거워,
피울음
울컬울컥
한 항아리씩 쏟아놓는
백목련 한 그루 




축제

김란희

먼 길 가는
은행 잎이
씨앗 뿌리듯 꿈을 흩날리며
가슴에 불을 지른다

느린 걸음
옷자락에 묻어오는
불 냄새는
마음의 거리에
빛의 알갱이 뿜어 흘리는데

헤드라이트 가득 풀어헤친
도로는
세월의 열매 붉게 매달고
빛줄기로 길게 늘어섰다

이제
깊은 산 속 같은
밤이 깔리면
불빛 짙은 행엽이 달려와,
태풍 몰아치고
톡톡 씨앗 떨구던
지난 세월을,
참으로 먼 길 가기에
바람처럼 온전히 훌훌 날려버리고

별빛으로
매듭을 맺은
다비의 축제를
펼칠 게야





민들레

김란희
1
바람의 세기에 따라
눕혀지기도 하고 고개 쳐들기도 하는
부드러운 존재이나
그 뿌리만은
태풍에도 뽑히지 않을 만큼 힘있다

2
꽃샘 바람 부는 초저녁 밤의 시청 광장엔
가슴 저미는
수만, 우리의 꿈들이 뭉클뭉클 순두부처럼 고여 있다

3
우리가 선택한 대들보의 눈금이 구부능선에서 조금 빠진다 하더라도
그에게도
기릴 만한 점이 적지 않기에
석양빛 입에 가득 물고
숲에 덩굴 벋을 적 같은 나무들의 크나큰 외침은
사막에서 물고기를 낚는 모습이다

4
스스로를 낮추는 가슴밭이 넓지 못하면
두 눈 똑바로 뜬 풀피리 도장이 비껴갈 것임을…….

5
촛불 한 줄기로 땅 속의 노란 빛 끌어내어
세상을 환하게 비출 때
가녀린 노란 고개 힘껏 쳐들어 빛 밝힘으로
온 강산이 푸르게 움직일 때,

6
민들레의 목소리 한껏 커지고
대들보의 어깨죽지에 다소곳한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던 날,
민들레의 화관은 환히 빛나고
풀피리 도장 얻지 못한
지는 햇살 한 사발 받아 마시며 큰소리치던 나무들이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강물처럼
홀로 낮아지는 자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태풍의 갖은 횡포에도 끄떡않고 견디며
면면히 이어져온 그 당당한 뿌리의 힘으로
옹두리 박힌 세월의 매듭을 풀면서
모두가 떴떴하게, 정말, 함께 손잡고 멀리 앞을 바로보며,
하나로 살아가기 위한 믿음의 꽃을 가슴에 꽂는다





초승달

김란희

너울의 출렁거림이 가없이 펼쳐진
바다 끝자락 끌어안고  
가시로 꾹꾹 긁힌 가슴벽 옥죄며
빗줄기를 쏟는다

파도로 몸닦달하는
바다 한가운데 세워놓은
푸른 등대의 사다리를
가뿐히 오르려 했다가
추르륵,
청산의 한 모서리가 모래알 되는 소리에
가위 눌린다

징글징글 하얗게 탄 근심의 나팔이
가슴 바닥을 순간순간 흔들어놓고
깊은 한숨의 빚 턱 괴고 올라앉은,
텅 빈 수레를 무겁게 끌고 있으나
이승의 한 뿌리
비껴갈 수 없기에,
초록 불씨를 머리에 심고
힘껏 노저으니
푸른 등대의 계단을
차곡차곡 쌓고자 하는
초승달의 날개를
하늘이 번쩍 들어 올려놓는다

  


마술사

김란희

페인트 바다에서 건져올린 물감으로
붓을 마음껏 놀리면 
그의 팔뚝엔 활활 신바람이 돋는다
높은 사다리 위에서
자목련 꽃잎 입에 문  
마술사 같은
채색의 솜씨는, 
거미줄이 엉겨붙고
수많은 세월의 얼룩,먼지로 그림자졌던 집이
오르페우스의 음률로 룰루랄라,
천상으로 날아오를 듯 이카로스인 양 날개 펼친다
실로폰 음향으로 콧노래 부르는 
그의 어깨가 들썩이며
붓자루 끝에서
힘줄 돋은 푸른 근력이 당차게 색칠을 하고
손끝의 힘에서
노동의 혼이 가속도로 솟아나면, 
집은 금세
노랑 나비,흰 나비 내려앉은 자리처럼 환하다
자목련 한 그루로 우뚝 선다
흠뻑 땀 밴 수건으로
페인트 묻은 얼굴 쓰윽 닦으며
흥겨운 노동 가락으로 마지막 색깔의 갈무리를 하는
신들린 듯한 그의 손놀림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빼어난 마술사!




방을 만들면서

김란희

남겨진 이들의 눈물이
가볍게 날아간 홀씨의
그 빈 몸에
뚝뚝 떨어지면
시어머니는
그 방에서
평안한 휴식을…….

입었던 옷 서서히 사그라지면
황토빛 속살로 포근히 감싸리

분해된 육신은
이승과 끊임없이 고리 맺어
초록 잎 치솟게 할 것이다

남은 자와
파랗게 만나는
대왕암처럼
언제나 살아 있을 것임을

자궁 같은 흙 속에서.

너무나 오래 불안불안 속 태우며
돌덩이가 짓누르는 명치끝 쓸고 쓸었지만
공들여 살았기에,
그 많은 세월에 미련두지 않고
초록빛 엮음이 이어지는
가슴에
푸른 잠 둥지 틀고저




꽃밭
김 란희
1
산고(産苦)로부터 오랫동안
지독한
설사로 허우적거렸다

한 조각의 빵도 독버섯인 것을…….
냉수박 한쪽마저 전자레인지에 데워야 했다
절인 상추가 되어
방바닥에서
애벌레 같이 꿈틀거린
수많은 날들…….

모든 약은 하숫물처럼 쏟아지고
헬스톤실의 귀동냥이
약탕기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2
대보탕으로
위장은 가마솥이 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근육강화 운동을 온힘으로 하니
세상이 아침 태양처럼 다가온다

빙판 위를 걷듯이
마음의 밭을 경작하며
누질러버린 파란 떡잎을 무궁화처럼 피우고 싶어
무지개, 등에 업으니  
춤추는
꽃밭이 일구어진다




사라져버린 샘물

김란희

1
어느 날 일행과 뒤쳐져 사막에서 길을 잃고
낙타를 타고 여기저기 헤매던 그는
무지개처럼 아무도 모르는 오아시스를 발견했다
유리알 같은 물 한 바가지 마시고
물건 팔기 위해 산 너머 먼 마을에 도착했다

2
일행은 아직도 다다르지 않아 물건 값을 서너 배로 받고
공중으로 솟구칠 것 같은 기분으로  
그 오아시스로 남 모르게 되돌아와, 청량 음료 같은 휴식을 마신다
활개 펼친 야자수를 보면서 번개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철근 콘크리트로 울타리를 치고 속가슴 문에 열쇠 채운 후
남 몰래 고가(高價)로 재빨리 물건 팔기 위해 지름길이 되는,
그 둘레의 웃자란 야자수가,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모조리 베어버리기로 결심하고 탁탁탁 도끼질하는데
중동(中東) 지나 멀리 이 땅에까지 들려오는 그 둔(鈍)한 소리
그 우둔(愚鈍)의 소리결을 그는 놓쳐버린다
적막한 사막에서 제 곳간만 한껏 채우고저 하는
그 도끼질 소리만이
황량하게 푸른 하늘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3
얼마 뒤 그 오아시스를 다시 찾아간 그는
사막이 가라앉는 통곡으로 울부짖는데
그 통곡의 소리
동쪽의 맨 끝 땅, 여기에선 천둥 소리로 곤두박질 친다

잘려진 야자수 밑둥엔 불덩이처럼 타오르는 열기로
숨이 컥컥 막히고
울부짖는 공기만이 하늘 향해 오열한다

물을 품을 수 있는 나무를 죄다 잘라버렸으니
나와 너를 위한 샘물은 어디로…….


1967년: 서울 여상 졸업




1972년: 성균관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전 서대문 중학교 국어 교사




주민번호: 480425-2235016




전화번호: (02)812-1100

          019-648-3358




주    소: 서울 종로구 명륜동 2가 129-2,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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