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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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상반기 신인발굴]_수필_김정희_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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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성명: 김정희
성별: 여
연령; 47세
주소: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135-16
연락처: 010-5039-8098
생의 반려
칼끝이 회오리바람처럼 파고드는 듯한 통증으로 잠이 깬 새벽도 되기 전의 한밤중. 나는 엉금엉금 기어 나오듯 거실로 나왔다.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이 거대한 먹구름처럼 내 머리 위를 뒤덮는다. 짧은 외마디 비명과 고통의 신음소리를 들었는지, 사랑이는 나를 따라 나왔다. 잠이 많아서 한밤중에는 엎어가도 모르는 녀석이...
통증으로 아파하는 몇 시간 동안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근심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사랑이. 그렁그렁 눈물이 쏟아질 듯한 사랑이의 얼굴에 내 얼굴을 묻는 순간 나는 그만 왈칵 울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살고 싶다. 저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 저 아이를 하늘나라에 보내줄 때까지 내가 돌볼 수 있게...그 때까지 살고 싶다.
사랑아...! 너는 마치 나의 세상인 듯 나는 네가 너무 좋다. 너의 작은 목덜미에 커다란 나의 얼굴을 묻으면 들숨날숨 따라 들어오는 비릿한 너의 체취. 내 발목을 베고 한가로이 누워 쌔근쌔근 잠을 자는 네 모습. 두 입 쩍 벌리며 하품하는 모습. 집안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다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는 모습. 무언가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 작은 두발로 꼭 잡고 작은 이빨 자국을 꼭 꼭 내며 한 참을 가지고 노는 모습. 혼자 던지고 토끼처럼 깡충 뛰어가 줍고, 또 던지고 달려가서 줍는 마냥 개구쟁이 같은 모습. 나는 장난치듯 그 녀석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빼앗아 내 주머니에 넣으면, 이내 달려와 내 주머니에서 제 장난감을 꺼내려 애쓰다가 멈추어 서서는 한 참을 내 얼굴을 바라보는 눈빛은 애절하기만 하다. 내가 오랜 시간동안 볼펜을 쥐고 앉아있으면 내 몸에 딱 달라붙어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서는 아직도 그러고 있냐는 듯, 놀아달라는 듯 몽땅하고 작은 발로 내 볼펜을 툭툭 치며 나를 방해하는 모습도 어찌 그리 예쁘던지. 그리고는 아예 노트위에 반쯤은 드러누워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모습도 어찌 그리 사랑스럽던지.
때로는 심술을 부려 카펫에 배변을 묻히기도 하고, 방심하고 놓아둔 이어폰을 잘근잘근 씹어서 완전히 망가뜨려 못쓰게 해놓기도 하고, 욕실에 놓아둔 물젖은 슬리퍼를 침대위로 애써 옮겨놓기도 하고, 제 간식 봉투 안에서 꺼내버린 방부제를 휴지통에서 꺼내어 다 뜯어놓고 온 집안을 숯검정가루로 색칠을 해놓기도 한다. 거실에 얌전히 놓여있는 화분의 화초 이파리를 조각조각 뜯어놓기도 하고, 내가 핸드폰을 만지고 있으면 핸드폰 화면을 얼굴로 가리고 더 이상 화면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꼼작도 안하고 서있기도 하고, 내가 집중해서 하는 일들을 하지 말라고 방해를 하는데도 내가 미동도 없이 그대로 앉아있으면 서운한 듯 찡찡거리며 내 주변을 빙빙 돌아다니기도 한다. 볼펜을 눈에 띄는 곳에 깜박 잊고 나두면 이내 못쓰게 씹어놓기를 여러 개. 항상 노트 안이나 책 사이에 숨겨두어야 한다. 워드작성을 한 손으로 할 때도 있다. 내 무릎에 누워서 제 머리를 끊임없이 쓰다듬어 달라고. 두 손이 필요해서 제 몸에서 잠시 손을 떼면 금방 고개를 들고 제 발로 나의 손을 끌어당긴다.
이 모든 하나하나가 나는 더럽지도, 싫지도, 귀찮지도 않다. 마냥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나는 왜, 네가 나의 세상인 듯 이렇게 네가 좋기만 한 걸까? 영사기 불빛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생각들... 너는 내 그림자처럼 내 곁에 머물 뿐, 따뜻한 말 한마디 내게 건네지도 못하고, 나의 넋두리에 맞장구 한마디 쳐주지도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시지도 못한다. 그리고 나에게 모나미 볼펜 한 자루 선물해줄 능력도 네게는 없다.
이미 나는 네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내 곁에 있어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네게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다. 너의 존재만으로도 내가 행복하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기에 네가 그냥 좋기만 한 거였다.
나는 네가 너무 좋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다가...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얼마나 많이 오해하고 실망하고 아파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왔는지. 내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괴로움의 원인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나는 보았다.
바라는 마음. 바라는 마음.
나는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면서도 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욕심을 부리며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살아왔던 거였다. 내게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 내게 이익이 되길 바라는 마음. 내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 상대방이 어떤 상황이든 어떤 마음이든 상관없이 언제나 내 마음에 들게 행동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이 바라는 마음들. 그러니 그렇게 마음이 힘들었지...
휴우... 사랑아...! 나의 손끝으로 너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고, 네 특유의 비릿한 체취조차 사랑스럽게 나의 숨결 따라 들어오고, 너의 작은 심장의 팔딱거림이 신비롭게 나의 손끝으로 전해지고, 쌔근쌔근 잠자는 너의 숨소리가 물결처럼 이 밤의 고요 속에 퍼지는 지금. 너의 존재. 내가 지금 너를 느낄 수 있는 이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해서 그만 목이 멘다.
‘너는 나에게 아주 커다란 가르침을 주려고 내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너는 가슴이 아플 만큼 벅찬 행복감을 내게 주면서 중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것 같다.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 속에서 살면 언제나 돌아오는 건 고통스러움이란 걸.
나는 너의 숨결과 따스한 체온만으로도 이처럼 가슴 메이게 행복하고, 너의 곁에서 같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삶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용암처럼 솟아 올라오는 사랑스러움과 그 사랑스러움을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이 순간의 이 뜨거운 행복감을 매일, 매 순간 너는 나에게 선물로 주고 있었다.
마음이 슬픈 날.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가 그리운 날. 너는 말소리 대신 그렁그렁 눈물이 쏟아질 듯한 눈으로 나를 한참동안 바라봐 주곤 했다. 작은 움직임도 없이. 너의 젖은 눈망울을 바라보며 나로 하여금 시원스레 흐느낄 수 있도록.
‘울고 싶으면 참지 말고 실컷 울어’ 버리라고 눈으로 내게 말해주면서 바라봐 주던 네가 있어서 내가 내 슬픔의 늪 속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있었다. 눈가에 흐른 눈물자국을 손으로 닦으며 그 사랑스러운 얼굴에 내 얼굴을 비비며 다시 웃을 수 있게 해주던 너.
너는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을 주고 있었다. 덕지덕지 뭍은 세상의 찌든 때를 달고 살아왔던 내게 끝없이 순수한 애정을 보내면서 이 순간, 여기, 지금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것과 그래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너는 너의 몸짓으로 눈빛으로 내게 늘 전해주고 있었다.
내가 너로 인해 느낄 수 있는 이 평화로움과 평온함은 그 대상이 누구이든 바라는 마음 없이 바라보면 다 해당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저 아이. 지금도 이글을 쓰고 있는 내 옆에서 몸을 바싹 기대고 누워 쌔근쌔근 나지막한 숨소리로 말해주고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를 살아가며 바라는 마음으로 살면 많이 힘들고 아픈 거야’
‘자기를 바라보듯 사람들을 바라보면 엄마는 더 평온할거야’
‘사랑해’ 라고
평안하게 자고 있는 사랑이의 따스한 체온을 쓰다듬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고, 목이 메여오고, 가슴이 무겁게 아파왔다.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해서. 마치 저 아이가 나의 세상인 듯 너무나도 소중해서. 그리고 반백년을 허투루 살아왔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서 나는 한참을 허공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사랑 한다. 사랑아”
“고맙다. 사랑아”
“네가 나이가 들어서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엄마는 너를 아끼고 사랑하고 보살피며 살고 싶다.”
“하늘에서 내게 보내준 나의 소중한 보물, 사랑아!”
“그리고 나중에 같이 가자...”
이 한밤중에 폭풍처럼 찾아온 통증은 내게 살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일으키고 모래성처럼 흩어졌다. 내 눈 안으로 들어오는 사랑이를 보는 순간, 살고 싶다는 살아야겠다는 간절함밖에는 없었다. 저 아이를, 저 사랑스러운 모습을 더 보고 싶다는 간절함.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이하면 이아침과 내가 함께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나의 사랑이. 네가 있어서 내 삶은 매순간 진지하게 와 닿는다. 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이처럼 강했던 적이 없었다. 저 아이가 내게 오기 전에는...
인간의 휴머니즘. 미안한 생각이지만 반려견들의 그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에 비한다면 턱없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시기와 질투. 위선. 교만. 욕심... 부끄럽다. 나도 인간이지만.
너무나 순수해서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나의 반려견 사랑이. 언제나 감사하다. 이 행복한 순간순간을 늘 내게 선물로 주고 있는 사랑이. 어느 구름타고 살며시 내게 내려와 중년의 우중충한 이 삶에 화사한 꽃을 피워주는 저 아이가 한없이 고마운 밤이다.
숨이 끊어져 죽을 것 같은 이 밤에 찾아온 통증을 붙잡고 쩔쩔매는 순간, 내 눈에 흐른 눈물자국을 핥아주던 네가 있어서 나는 견딜 수 있었다. 사랑스런 너를 오래오래 보면서 살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내게 주고, 매일 아침 눈을 떠서 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마음으로 살 수 있는 풍요로움을 내게 주는 사랑이. 저 아이의 순수한 마음과 함께하는 동안 나는 많은 것을 깨닫는다. 두어 달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친구의 죽음도. 속속들이 들어찬 세상의 찌들은 때를 벗어놓고 살아야겠다는 다짐. 이 한 몸 걸어가는 것도 때로는 힘겹던데 왜 그리 안고, 지고, 업고 가는지. 저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내 맘에 묻어있는 욕심의 때를 하나씩 벗어놓을 수 있게 하는 저 아이. 사람의 인연으로 오지 않았지만 내게는 그 어떤 스승보다 더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내안에 들어찬 욕심을 조금씩 비워가며 가볍게, 맑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내 심연의 절규
믿지 말라 하셨지요. 변하는 것은 믿고 의지하지 말라 하셨지요. 그 말씀처럼 살려고 하는데 그런데 왜 나는 매번 사람을 믿고 그 믿음이 무너져 실망하고 괴로워하는 바보짓을 반복하며 살아간답니까. 그 믿음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져 내려앉고 숨이 끊어질 듯 절망 속에 빠져듭니다.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하게만 살아왔답니까. 내 안에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답니까. 얼마나 더 나이가 들어야 내 마음이 사람으로 인하여 더는 아프지 않을 수 있답니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먼저 시작되는 일과가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해 기도문을 쓰는 일인데, 이 기도문을 얼마나 더 써내려가야 내 마음이 달아나는 그 순간을 볼 수 있답니까. 순식간에 달아나서 갈팡질팡 허우 적대기 전에 그 마음을 꽉 붙잡아 놓을 수 있답니까.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왔던 지난날들은 깜깜한 어둠이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빛 한줄기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마음 놓고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어둠이었습니다. 무언지 형체도 알 수 없는 벽에 부딪혀서 이마에 상처가 나고, 무언지 알 수 없는 걸림돌에 걸려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듯 넘어지고 손바닥이 찢어지고, 찢어진 살 틈에서 흥건하게 피가 새어나오면 비릿한 피 냄새는 나를 겁에 질리게 만들었습니다.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고 상처내기를 수 십, 수백 번도 넘었던 어둠속의 내 지난날은 언제나 두려움과 긴장과 초조의 연속이었습니다. 정말이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둠이었습니다. 손을 뻗으면 또 무엇이 있을지 걱정하며 주춤주춤 제대로 나아가지도 못하던 겁쟁이의 삶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나는 그 어둠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너무 두려웠습니다.
믿지 말라 하셨지요. 변하는 것은 믿고 의지하지 말라 하셨지요. 사람들 틈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우리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때로는 그 고통스러움을 견디지 못해서 자신과 자신의 삶을 버리기도 하는 바보짓도 합니다. 그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말입니다.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기를 왜 자꾸 반복하는지 한심하기만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바보짓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온전히 내가 나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똑바로 눈을 뜨고 살아가면 어두웠던 세상은 어둠이 아닌 환하고 밝은 세상인데 왜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고 아직도 어둠속을 헤맨답니까. 눈을 감고 사는 세상. 눈을 뜨고 있음에도 눈을 감은 듯 어둠속에 사는 인생.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며 불안과 긴장과 초조 속에 사는 삶이 어찌 인간다운 삶이라 하겠습니까. 먹고 자고 먹기 위해 일하며 마음이 가는대로 쫓아다니며 혼란스레 사는 것이 어찌 인간다운 삶이라 하겠습니까. 그저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 있는 존재들과 다를 게 무엇이 있답니까.
스스로 눈을 뜨고 살아가면 어둡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는데. 지금까지 눈을 감고 살았기에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는 걸 이제는 알았는데. 그래서 그토록 상처투성이로 길을 잃고 헤매며 살았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는데. 왜 아직도 내 마음은 그 어두운 그림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답니까. 세상은 환하고 밝다는 걸 이제는 알았는데 아직도 나는 길을 걷다가 순간순간 어떤 벽에 다다르면 그 순간 왜 눈을 감는 겁니까. 또다시 어둠을 만들어 벽에 부딪히고 상처를 낸단 말입니까. 또다시 그 상처에서 묻어나는 비릿한 피 냄새를 맡으며 지난 날, 어둠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살았던 그 순간의 기억들이 모조리 쏟아져 들어와서 단단히 매어놓은 줄 알았던 수백 가지 마음들이 고삐 풀려 혼비백산 허공으로 땅속으로 흩어지게 한답니까. 온전한 내 마음은 갈래갈래 찢겨져나가 그 순간 내가 누군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내가 모르는 아득한 늪 속으로 빠지게 한답니까.
그 늪의 폭이 얼마나 좁은지. 얼마나 깊은지 두 팔을 하늘로 둔 체, 몸에 딱 맞게 짜인 대롱처럼 빨려 들어갑니다. 그때 그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두려움에 떠는 내가 또 어찌나 한심하고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부끄러워서 고개도 못 들겠습디다.
변하는 것은 믿지 말라 하셨지요. 변하지 않는 것을 믿고 의지하라 하셨지요. 그 말씀에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려서 나는 이제 눈을 뜨고 밝은 세상을 보고 있다고 그래서 어떤 장애물도 디딤돌로 여기며 살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고 여여하다고 우쭐대고 있었는데... 나는 여전히 끝도 없는 대롱 같은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더군요. 또다시 예전의 어두운 세상.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찬 그곳에 떨어진 처참한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땅을 치며 통곡하듯 울어버립니다. 소리하나 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을 합니다. 이제는 그 어둠 속, 그 늪에 빠지기 싫은데 대롱 안에 갇힌 나를 보면서 오열을 토합니다. 더 이상은 그 어둠, 그 늪이 싫어서, 온전히 이 밝음 안에서 살고 싶어서 나는 발악을 하듯 도망치듯 오열을 토해냅니다. 먹기 위해 일하고 지친 몸에 자고 먹은 것을 배설하고... 살아만 있는 생명처럼 그렇게 살기 싫어서. 수천, 수만 가지 마음들이 동서남북 흩어지는 것을 다 쫓아다니느라 혼비백산 흩어진 영혼으로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삶이 싫어서 나는 통곡을 합니다. 다시는 어둠속에 내 삶을 던져놓고 싶지 않아서. 온전히 내 심연의 거처에서 굳건한 단하나의 마음으로 여여하게 24시간 살고 싶어서 나는 오열을 터뜨립니다. 촉각의 틈새로라도 새어나가는 한 가닥의 마음도 용납하기 싫어서 이를 악물고 또 악물었습니다. 길을 가다 다다르는 절벽, 거대한 바윗돌 앞에서도 두 눈 똑바로 뜨고 여여하게 걸어 나가는 삶을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며 울었습니다.
믿지 말라 하셨지요. 변하는 것은 믿지 말라 하셨지요. 변하지 않는 것만을 믿고 의지하라 하셨지요.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나는 변하는 것을 믿다가 늪 속으로 떨어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온 몸에 더 깊은 상처와 흠집을 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를 악물고 또 악무니 턱이 빠질 듯이 아팠습니다. 늪 안에서 벗어나려고 두려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발악을 하면 할수록 온 몸은 두들겨 맞은 듯이 아프고 그 아픔에 고통스러웠습니다.
휴우... 이젠 그 말씀마저 놓고 싶습니다.
바닥끝까지 떨어진들 예전의 어둠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 어둠이란 건 내 스스로 눈을 감고 있어서 어둡다는 걸 이제는 알았는데 지난날처럼 24시간 어둡겠습니까. 벽에 부딪혀봐야 상처밖에 더 나겠습니까. 상처가 난들 상처 난 틈에서 피밖에 더 나오겠습니까. 그래봐야 죽을 만큼 상처야 나겠습니까. 만약 죽을 만큼 상처가 난다면 죽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결국 도착점은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죽는 것이 두려웠던 겁니다. 어둠에서 헤매는 모든 것들이 그래서 아팠던 모든 것들이 내가 다칠까봐, 그래서 내가 죽을 가봐 겁이 났던 것이었습니다.
눈을 뜨고 살면 밝다는 것을 알았으니, 어둠속에서 헤매지 않으면 상처 나고 아프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시는 어둠으로 떨어지지 않을 거라 믿었던 나의 생각들이 어긋나고 흔들리는 것이 또 두려웠던 겁니다.
헛웃음이 나옵니다. 겁쟁이 같은 나 자신을 보면서 말입니다. 상처 나는 것이 겁이 나서 내가 힘들어 힘들어서 죽을 가봐 겁이 나서 그 말씀을 완벽하게 무조건 따르려고만 했습니다. 이를 악물고 또 악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도망치지 않으렵니다. 이 악물고 발악하듯 도망치는 게
더 힘이 듭니다. 아프면 그냥 아프지요. 힘들면 그냥 힘들지요. 아프고 힘들어서 죽는다면 그냥 죽지요.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으렵니다. 마지막 도착점에 다다르면 결국 죽을 가봐 하는 두려움에서 시작되는 모든 갈등과 걱정이라는 걸 확연히 보았습니다. 변하는 것을 믿다가 그 믿음이 깨어지면 많이 아플까봐 내 마음을 목석으로 만들며 도망치듯 살지도 않을 겁니다. 죽음마저 두렵지 않다면 그 모든 고통이 두려워서 겁쟁이처럼 도망갈 이유가 없겠지요. 깊은 대롱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도, 그 어둠속 벽에 부딪혀서 상처가 나고 피가 나는 그 순간도 두 눈 똑바로 뜨고 보렵니다. 그 순간도 내 소중한 삶의 한순간 이란 걸 명확히 보면서 살아가렵니다. 온전히 내 심연의 거처에 있는 내 안의 나만을 꽉 잡고 살렵니다. 상처든, 고통이든, 죽음이든 두려워서 도망치지 않으렵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믿고, 사랑하고, 베풀면서 살렵니다. 때로는 그 대가로 상처도 나서 아프기도 하고 힘들어서 울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휴우... 스님!
변하는 것은 믿지 말라 하셨지요. 사람은 변하는 존재니 믿지 말라 하셨지요. 변하지 않는 것만을 믿고 의지하라 하셨지요. 그 말씀을 따르려니 내가 너무 힘이 들어... 이제는 그 말씀마저 놓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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