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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상반기 신인발굴]_수필_조혜경_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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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성명: 조혜경(황지성)
주소: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사임당로 19길 10, 서초현대@ 102동 101호
연락처: 010-2285-1320
양말 공장 공장장은 할매 공장장
‘막내딸 시집보내느니 차라리 내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속담의 역사가 유구한 것을 생각해 보면, 고금을 막론하고 막내딸들은 부모의 눈에 늘 어설펐던가 보다. 특히 형제자매가 많은 집의 막내딸은 더 하지 않을까! 5남매 중 막내딸인 나도 그래서 이 말을 쉼 없이 들으며 살고 있다. 덕분에 친정엄마의 방문은 내게 늘 반가움이자 동시에 부담이다. 계속 되는 ‘막내딸 시집보내느니......’에 가뜩이나 부실한 감정조절능력이 자꾸만 시험에 들기 때문이다.
친정엄마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막내딸 시집보내느니......’
신발장을 열고서
‘막내딸 시집보내느니......’
베란다를 휘 건너보고서도,
‘막내딸 시집보내느니......’
심지어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난 이웃 할머니들에게도
막내딸 시집보내느니......로 안면을 텄으니 나로서는 참 고역이었다. 듣기 좋은 육자배기도 장 들으면 싫다는데, 첨부터 듣기 싫었던 말을 장 듣고 있자니 욱 하는 성질이 부륵부륵 봉인을 뜯고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친정엄마가 그러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자라면서 한 번도 집안일을 해보지 않은 내가, 가만히 들어앉아 컴퓨터만 들여다보며 일 하던 처녀시절을 마감하고, 갑자기 세 아들의 엄마가 되면서 살림은 늘 숨이 찼고 육아는 절대 100점을 맞을 수 없는 시험지였다. 그러니 앉아서 3천리, 서서 9천리를 본다는 직관도사 친정엄마의 눈에는 막내딸의 삶이 이제 막 첫발을 떼는 돌쟁이 걸음마마냥 비실비실 위태롭고 아슬아슬해 보였으리라.
사실 나조차도 내 삶을 이해할 수 없었다. 냉장고의 배신이라 말하고 싶을 만큼, 우리 집 냉장고는 늘 꽉 차있었지만, 실재 먹을 거라곤 계란뿐이었다. 빨래도 마찬가지. 남들은 하얀 티셔츠도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하게 빨던데, 나의 빨래들은 비 오기 전 하늘처럼 왠지 우중충했고, 다리미는 내 손에만 오면 방전이 되는지 비실비실 주름을 펴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야무지게 다루는 것도 아니었다. 개구쟁이 삼형제가 매일 놀이터를 휘몰고 다니는 통에 소소한 분쟁부터, 굵직한 갈등까지 연일 사건사고가 이어져, 때론 읍소하고 때론 따지고 때론 눈 감아야할 일들이 많았다. 그 모든 것들에 나는 늘 어설픈 초보였고 매번 허덕였으며 기운을 빼앗겼다. 나의 눈동자 안에 가득했던 총기와 자신감은 어느새 수채구멍으로 물 빠지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급기야 살림도 육아도 일도 더는 못하겠다 싶은 순간이 찾아왔고, 그 때마다 살림도 육아도 일도 벌떡벌떡 일으켜 세워준 것이 친정엄마였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딸의 목소리를 통해 직관도사는 딸의 컨디션은 물론 딸네집의 돌아가는 사정까지 훤히 내다보았으며 안 되겠다 싶은 순간, 고속버스에 올랐다. 그리고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툭 던지고서 곧장 부엌으로 향한다. 모든 그릇을 씻고 모든 냄비를 씻고 모든 통을 씻고 모든 뚜껑을 맞춘 다음, 곧이어 이방 저방 다니며 휘적휘적 빨래감들을 찾아와, 사토 와키코의 ‘도깨비를 빨아버린 엄마’처럼 어제 빨았던 것이나 빨지 않았던 것이나 죄다 빨아서 널었다. 고로 친정엄마가 오면 집안의 습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모든 것들이 빨래가 되어 거실 베란다 방 부엌 할 것 없이 널려져 있으므로......! 이어 장난감을 수습하는 친정엄마는, 블록은 블록대로 자동차는 자동차대로, 재질과 종류별로 정리를 하고, 베란다로 나가 후련해질 때까지 물청소를 한다. 마지막으로 걸레를 빨아 널고 나면 비로소 ‘끙~’ 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참았던 문제의 그 욕을 뱉는다.
“막내딸 시집보내느니 내가 어찐다등마. ㅇ/ㅂ/ㅎ/ㄴ ”
곧이어, 들어올 때 던져두었던 자신의 가방을 끌어당겨 풀어헤친다. 그 안에는 정말 소중한 것이 들어있다.
...... 밥!
부끄럽게도, 친정엄마는 딸내미 집에 올 때 항상 밥과 반찬을 싸오신다. 왜냐! 차라리 내가 가야할 것을 시원찮은 막내딸을 보냈으므로.
“니기 집에는 항~시 먹을 것이 없응게로.’
엄마의 도시락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되어, 우리 집 삼형제는 물론 나와 남편까지도 배가 부르고 기분이 좋아진다. 고기도 아닌 그저 시시한 무생채, 파래무침, 고추 삭힌 것, 취나물, 감 장아찌 같은 반찬들이 전부인데, 내 육체의 허기는 물론이요 영혼까지도 금세 배 부르게 만들어준다. 할매의 음식이 부리는 재주가 신통할 따름이다.
식사가 끝나면 딸네 집 방문의 하이라이트! 양말 짝 맞추기에 들어간다. 이건 정말 영국 BBC 방송국에서 특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주었으면 하는 인류 최고의 미스터리다.
제목 : 증발해버린 양말들!
분명히 두 짝이 같은 양말을 구입했고, 두 짝을 나란히 신었고 벗었고 빨았는데, 빨래를 개키다 보면, 늘! 항상! 에브리데이! 짝 없는 양말이 나오는 게 아닌가. 진정 불가사의다.
가설 1 – 양말 한짝이 디즈니사의 차기 애니메이션
‘론리 싹쓰’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오디션 참석 차 가출했거나
가설 2 – 양말과 세제가 연금술에 버금가는
화학반응을 일으켜 한 짝만
완전히 용해되어 버렸거나,
가설 3 – 지구인의 양말을 수집하는
어느 외계 양말덕후가
몰래 한 짝만 가져가는 것은 아닌지...
여러 가설을 세워 생각해보았으나, 아직 양말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양말탐정이 있다면 고용하고 싶을 정도. 단! 수고비가 양말 값 보다는 저렴해야한다. 여하튼, 매번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이 나오고, 그 때마다 다음 빨래를 기약하며 모아 둔 외짝 양말들이 책보자기로 한 가득이다. 친정엄마는 오실 때마다 그 보따리를 꺼내어 새로 빤 양말들과 일일이 맞춰가며 문제의 그 말을 무한 반복 재생하신다.
“막내딸 시집보내느니 차라리 내가 간다등마...이노므 양말까지 속을 썩잉마. ”
“긍께 니기 집은 양말을 죄다 똑같은 걸로 사브러야써. 멋헌다고 이놈저놈 틀린 걸 사갖고, 신도 못허게 해브냐잉.”
“아따 이 양말은 쩌 번에 왔을 때도 짝이 없등마 오늘도 짝이 안나오네잉. 노처녀여? 노총각이여?”
답답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올 때마다 보물단지 싸두듯 한 짝만 남은 양말을 책보자기에 고이 싸서 자기만 아는 어딘가에 모셔놓고 가는 통에 내가 평소에 짝을 맞출래도 맞출 기회가 없건만 친정엄마는 올 때마다 짝 없는 양말들을 펼쳐놓고 나의 살림 솜씨를 폄하는 거다. 그 뿐 아니다. 어쩌다 어렵사리 짝을 찾아내면
“오메, 찾았네! 찾았어~~. 크헐헐헐 .. 결국 나왔구만잉. 아따 안버리길 잘했네잉. 버렸더라믄 큰 일 날뻔 했다잉. 크헐헐.. 오지다. 오져.”
환호성을 질렀다가, 매우 비스무리한 짝들 사이에서 한참을 눈을 비비며 이것저것 맞춰보다 결국 짝이 아니면, 잔뜩 약이 올라서는 톡 쏘는 것이다.
“에라 이노무 것, 싹 갖다 버려뿌려라잉.”
“양말이 아니라 짝말이네 짝말.”
친정엄마의 애증이 담긴 짝말 보따리! 정말 갖다 버릴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왜? 짝말들이 하나 같이 너무 새 거여서. 계속 보관만 했으니 어디 닳은 부분 하나 없이 톱톱하고 깨끗해서, 오히려 꼭 짝을 찾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부추길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짝없는 양말들은 보따리 속에 오랫동안 보관되었고 그 숫자는 점점 더 늘어만 갔다.
그런데 양말 짝 맞추기에 중독된 분이 한 분 더 계셨다. 넷째를 낳은 뒤, 구청에서 파견되어 오신 아이돌보미 선생님. 그 분 역시 우리 집 짝말 보따리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셨다. 아기가 잠들고 시간이 나면, 그냥 쉬다가 가시라고 말씀드렸는데도, 매번 나를 도와주시겠다며 팔을 걷어 부치고는 꼭 짝말 보따리를 꺼내 오시는 게 아닌가. 이 분의 열정은 친정엄마보다 더 해서, 아직 마르지 않은 빨래줄의 양말들까지 죄다 걷어다가 양말 짝 맞추기를 시작하신다.
화투도 아니고, 마작도 아니고, 새로운 두뇌 스포츠의 등장일까? 허긴 양말 짝 맞추기는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화투 패를 맞추며 짝짝 소리를 일으켜, 마음 속 묵은 감정의 떼를 털어내듯, 짝 없는 양말의 짝을 어렵사리 찾아냄으로써, 아직 녹슬지 않은 자신의 눈썰미에 흡족해하며 묘한 희열을 느끼시는 게 분명했다. 돌보미 선생님은 그 날 자신이 새로 맞춘 양말의 켤레 수를, 내 앞에서 몇 번이고 헤아려보이며 우쭐한 미소를 짓곤 하셨다.
그러고 보니 돌보미 선생님도 아들만 셋을 낳아 키운 분이시다. 짝 없는 양말은 어쩌면 아들 많은 집에선 피해가기 힘든 숙제인 듯 하다. 예전에 집앞에 있다가 지방으로 이사를 간 태권도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사범님이 도장 문이 닫히기 전에 숙제를 해결해야겠다며 마대자루로 한 가득 남자아이들이 벗어놓고 간 양말을 담아놓고 이렇게 써붙이셨다.
‘세탁완료. 양말 주인 찾아가시오.’
물론 사범님의 이사차가 떠날 때까지 양말을 찾아간 아이는 없었다고 전해진다. 인공을 벗어나 원시 그대로의 맨발로 보행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Y염색체가 가진 야생에 대한 향수인지도 모를 일이다.
부끄럽게도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우리 집에는 짝말 보따리가 고이 모셔져있다. 친정엄마는 요즘도 집에 오면, 동그마니 앉아 중얼중얼 양말의 짝을 맞춘다. 얼마 전에는 짝이 없어진 아이들의 장갑까지 그 안에 넣어두었다가, 예의 그 욕을 또 듣고 말았다.
“오메오메, 막내딸 시집보내느니 내가 어찐다등마. 인자 장갑까정? ㅇ / ㅂ / ㅎ / ㄴ ”
친정엄마의 노기가 왠지 귀여워 나도 흥얼거렸다.
“양말공장 공장장은 할매공장장. 짝 하나도 잘 못 찾는 할매 공장장...... 어이! 할매, 그래갖고 밥이나 먹고 살겠나! 할매 신랑이 누군지 몰라도, 마누라 덕보긴 걸렀데이~’
약오른 친정엄마가 내 등을 후린다.
‘찰싹’
‘......’
할매의 손이 날아올 때, 움짤했던 몸의 반응이 무색하게도 전혀 아프지 않다. 쇠잔해진 기력이 할매의 손 끝에서 역력히 느껴졌다. 큰 아이의 어깨가 굵어지는 사이 친정엄마는 말린 호박나물처럼 오그라들었다. 삼대가 아웅다웅 공존하는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까. 공장장은 요즘 서울 상경이 뜸하다. *
꽃을 오해한 날들
눈이 좋은 사람을 정시안이라 한다. 안경 없이도 6미터 이상 떨어진 물체를 정확히 볼 수 있어야 정시안이다. 그런 정시안이 볼록렌즈를 끼면 사물이 크게 보이고, 오목렌즈를 끼면 작게 보인다. 그런데 크기뿐만 아니라, 모양과 성분까지 왜곡되게 비춰주는 렌즈가 있다. 의심..이라는 이름의 렌즈다. 전혀 조각이 맞을 리 없는 조각들도 의심렌즈를 통해 보면, 직소퍼즐처럼 정확히 들어맞는 마법이 시작된다. 나도 그 렌즈를 낀 일이 있다.
셋째가 막 기기 시작할 무렵 나의 삶도 기어가고 있었다. 끼니때마다 둘째를 등에 업은 채, 한 팔로 셋째를 안고 다른 팔로 볶음밥을 저으며, 발가락으로 첫째의 동화책장을 넘기며 동화구연을 했다. 이렇게 만든 초간단 요리로, 소란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물놀이겸 목욕을 하고나면 대망의 시간이 찾아왔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 이제 삼형제만 재우면 나는 잠깐이지만 오랑우탄에서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다. 교교한 달빛 아래서만 깃털을 벗고 아름다운 아가씨로 돌아오는 오데뜨 공주처럼.
그러나 이 과정이 순탄치는 않다. 자울자울 졸던 녀석들이 이불만 보면 다시 팔팔해지는 건 왜인지... 이불의 네 귀퉁이가 방바닥이 착 붙는 순간, 멍석만 깔리면 끼가 발동하는 남사당패처럼 신이 나서 구르고 뛰고 샅바를 잡았다. 초간단 레시피의 저녁식사가 믿기지 않을만큼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쳐났다. 데구르 구르다 쿡쿡 찌르고 큭큭 웃었다가 부르르 흥분하고... 서로의 잠투정을 주거니 받거니 한바탕 소란을 피우다, 결국 나의 사천왕 같은 표정을 보고서야 눈꺼풀에서 힘을 뺐다. 그렇게 야단을 맞고 잠든 아이들의 얼굴은 자면서도 찌푸려진 게, 들여다보고 있자면 마음이 짠해지면서 좋은 말로 재울 걸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그러나 그도 잠시...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과 함께 곧 남편의 부재에 생각이 미쳤고 거칠게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때마다 남편은
‘곧 갈게...... 먼저 자.’
라고 대답했고, 전화기 너머로는 늘 같은 분위기의 재즈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처음 몇 번은 ‘무슨 고민이 있나?’싶었으나 점차 ‘이 사람이 혹시...?’하는 의심으로 발전했다. 하긴 요즘 들어 남편은 아무것도 아닌 일에 쉽게 짜증을 냈고, 낮에 문자를 보내면 답장이 없었으며, 주말에도 약속이 있다며 집을 나갔고, 방에서 혼자 누군가와 통화하다 내가 들어가면 황급히 전화를 끊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그랬다! 남편에게는 뭔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남편의 전화기 너머에 있는 그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몇 살이고 뭐 하는 사람일까? 허긴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다. 나이는 유부남과 만날 나이고, 하는 일은 유부남과 만나는 일일 터이지. 일단 의심렌즈를 끼고 남편을 보니, 모든 상황이 아귀가 딱딱 맞는 것이, 외도가 마치 기정 사실인양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숙제는 현장을 덮쳐서 진위를 확인하는 일 뿐이라는 결심이 서던 날, 나는 함께 출동해 줄 동지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국에 근무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큰오빠..”
“어... 무슨 일이야?”
“이 서방이 이상해.”
“원래 이상했잖아.”
“더 이상해! 요즘 수상하다구.”
“뭐가?”
“뭐겠어! 오빠가 이 서방 전화기 위치 추적 좀 해줘. 어디 있는지 알아야 기습을 하잖아.”
“그야 그렇지. 하지만 전화기 위치 추적은 본인 동의가 필요한데.”
...추적과 본인의 동의? ‘담배인삼공사’나 ‘자기주도학습학원’ 만큼이나 지극히 모순된 단어의 조합 아닐까?
“본인이 동의하면 그게 무슨 추적이야? 몰래 해줘.”
“법이 그렇게 안 된다니까... 미안.”
전화가 끊겼다. 나는 이 밤에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법은 결코 약자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고 강자의 편도 아니었다. 법은 그저 바람난 자들의 편이었다! 억울했으나 참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았으므로. 다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는 수사기관에 근무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작은오빠..”
“오우~ 우리 막둥이, 왜?”
“오빠, 이 서방이 이상해.”
“원래 이상했잖아.”
“더! 더라구. 밤마다 술에 취해서 늦게 오는데, 전화를 해보면 음악이 깔리고 분위기가 영 있잖아? 영 알지? 영...”
“어려?”
“아니! 수상해 많이.”
“진짜? 오빠가 혼내줄까?”
둘째들은 역시 눈치가 빠르다. 혁명가와 탐험가는 그래서 거의 둘째들이고 세계가 지금껏 굴러온 것도 차남들 덕분이라는 주장에 나는 강력한 지지를 보낸다.
“고마워, 오빠가 이 서방 수갑 채워줄 수 있지?”
“그럼 있지.”
‘뿍...뚜뚜뚜...’
전화가 끊겼다. 대화의 도입부에서 전화가 끊기다니 오빠가 버튼을 잘못 누른 것일까? 아니면 우리 집 전화기가 고장인가? 정답을 확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전화를 다시 걸어보는 거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음성 사서함으로 ....’
차남은 귀찮은 일을 하지 않는다, 장남은 가족을 중시하지만 소심하다...옛부터 전해오는 이야기가 괜한 게 아니었다. 오빠가 한 명 더 있었다면 내 기분은 달라졌을까? 세상에 혼자 버려진 듯 외롭고 서글펐다. 어쩌면 남편이 지금 만나고 있는 그 누구가, 우리 오빠들이 소개해 준 누구는 아닌가 하는 가당찮은 생각마저 들었다. 불온한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점멸하고 분함은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누구의 심리적 지원도 받지 못한 채 확인되지 않은 불안에 떤다는 것은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었다. 그날 밤 남편은 새벽 두 시께에 들어왔고 역시 또 술 냄새가 났다.
다음 날 남편은 전에 없이 일찍 귀가했다. 나는 생각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고. 오늘쯤은 일찍 들어와 줘야 꼬리를 밟히지 않는다는 치밀한 계산을 한 것이 분명하다고. 내 등에 와 매달리고 발에 휘감기는 삼형제가 전에 없이 귀찮게 느껴졌다. 음식의 간이 맞지 않았으며 초인종을 누르는 이웃사람에게 집에 없는 체 했다. 다음 날도 남편은 일찍 귀가했으나 다시 외출을 했고 예의 그 음악을 뒤에 깔며 나의 전화를 받았다.
“곧 갈게, 먼저 자.”
기다림은 충분했다. 인내심은 잔고가 없다. 이 밤 안으로 남편이 있는 곳을 급습하고 그 상대도 아작을 내놓으리라. 그래야만 등에 둘째를 업고 왼팔엔 셋째를 안고 오른팔로 후라이를 부치며 발가락으로 첫째의 동화책장을 넘기는 내가, 이 지긋지긋한 오랑우탄 생활을 보상받고 만물의 영장으로 찬연히 진화할 수 있으리라.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큰오빠....흑흑흑... 이 서방 진짜루 흑흑흑...진짜루.”
“휴......”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큰오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때를 놓칠세라 나는 더 격한 흐느낌으로 큰오빠의 혈육애를 끌어올렸다.
“흑흑흑...흑흑흑.... 나 이제 어떻게 살아?”
“있잖아... 네 남편 말인데...한 달에”
“몇 번 늦냐구?”
“얼마나 쓰니?”
“뭘?”
“용돈”
이 시점에 그걸 왜 묻나 싶었으나, 왠지 친절해야 할 것 같아 머릿속 계산기를 바삐 돌렸다.
“밥값하고 교통비하고 합쳐서 20만원 왔다갔다.”
“휴...... 그럼 니네 남편, 차 있어?”
“차가 어딨냐? 우리가.”
“휴......”
폐부 깊숙이 숨을 길게 끌어다 쉬는 소리가 들렸다. 피하고 싶은 순간과 직면해야하는 용기를 내는 중이었으리라.
“너라면... ”
“응...”
“차도 없고, 한 달에 20만원 왔다갔다 쓰는 남자랑...... 바람나고 싶을까?”
“미쳤냐아아아아아아아아...... 아? 아?? 아!!! ”
빛이 태어나기 이전 태초의 세상을 가득 메웠을 법한 육중한 침묵이 큰오빠와 나 사이에 와 흘렀다. 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이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랜 오랑우탄 생활로 인해 궤도를 심하게 이탈해버린 여동생의 이성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오기까지의 꽤나 민망한 시간을.
‘뿍’ 전화를 끊었다. 인사도 다른 어떤 말도 못하고서...친정식구가 좋은 것은 바로 이럴 때다. 무례를 범해도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것. 차남들은 하지 못하는 말을 장남들은 한다. 형제에 대한 맏이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러나 우리 큰오빠는 책임감은 있지만, 상태는 바보이다. 오빠는 이 서방이 용돈이 겨우 20만원 왔다 갔다이고 차가 없어서 별로라고 생각하는 바보이다. 아니면 용돈이 20만원 왔다 갔다 하든 말든, 차가 없든 말든 그와는 무관하게 원래부터 별로라고 생각해온 오래 된 바보이다.
우리 이 서방이 얼마나 멋진데... 잘 다린 와이셔츠를 입으면 목선이 간지 나는 남자며, 삶은 밤을 반으로 갈라 작은 수저로 파먹는 모습이 어찌나 복스러운지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남자며, 택시를 탈 때 내가 정전기에 놀랄까봐 꼭 손끝으로 톡톡 친 다음 문을 열어주는 매너남이고, 자다 일어난 나의 얼굴을 보고도 예쁘다고 말해주는 긍정적인 남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이 서방은 알 / 뜰 / 하 / 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의 꽃이 남의 꽃이 될까봐 조바심 났던 날들은 결국 내 꽃이 너무 소중했기 때문 아닐까.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은 건 분명해 보이지만, 그래도 앞으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왜? 멋지므로! ‘품 안에 꽃’이라는 진리를 잊지 말고 내 꽃을 더 소중히 돌봐야겠다. 날이 밝으면, 요즘 남편을 붙잡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 찬찬히 알아봐야겠다.
그 날 큰오빠는 이 일을 새언니에게 당장 일러바쳤을 것이다. 처음엔 무겁던 오빠의 마음이 새언니의 포복절도로 금세 가벼워졌을 것을 생각하니 공연히 분했다. 당분간 친정 출입을 자제해야겠다. 오랑우탄은 이제 친정에 갈 수 없다. 꽃을 오해한 날들에 대한 보속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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