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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상반기 신인발굴]_수필_박정아_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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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성명: 박정아
연령: 46세
주소: 서울 관악구 삼성동 1726 우정아파트 105동 503호
연락처: 010-3232-1836
공지영과 신경숙
공지영과 신경숙? 신경숙과 공지영?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내가 좋아했던 순서대로 쓰자다. 처음에는 공지영을 좋아했고 세월이 흘러 신경숙으로 갈아탔고 지금은 딱히 누구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글은 내가 좋아하는 두 여류소설가와 그들에 얽힌 나의 사연이다.
학력고사 점수 맞춰 들어간 대학에서 내가 제일 처음 접한 운동권 소설이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였다. 그 소설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젖혔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를 고민하는 나 같이 의식 있는 동시대 젊은이들의 일상과 마음을 이렇게나 잘 담았을까? 나는 공지영의 그 거칠 것 없는 문체와 다이내믹한 이야기전개에 빠져들었다. 그 이후로 공지영은 나의 워너비 작가로 등극, 그가 낸 소설은 무조건 사서 읽고 또 빠져들고를 반복했다. 그런 나에게 신경숙이 다가온 건 대학교 3학년 무렵이다. 친구와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도를 갔다. 제주도가 주는 이국적 풍경부터 생활터전인 밭 안에 무덤을 모셔두는 샤머니즘까지 그 사흘은 나로 하여금 수첩 빼곡히 뭔가를 긁적이게 하는 내 글쓰기의 시작점이 되었다. 여행 뒤 서점에서 발견한 책이 신경숙의 <딸기밭>이었다. 배경도 제주도로 피아노를 배우는 느릿한 일상을 엮은 그 작품은 나로 하여금 “누구는 제주도 다녀와서 책 한 편을 내는데, 나는 뭐했지? 뭐 딱히 잘 쓴 것 같지도 않고, 이 정도면 나도 쓰겠다”는 말도 안 되는 기고만장함을 선사했다. 글쓰기의 깊이를 모르는 나 같은 겁 없는 문하생에게 신경숙은 다른 측면의 도전과 용기를 제공한 셈이었다.
대학졸업 후 첫 직장으로 들어간 신문사에서 나는 또 다른 공지영과 신경숙을 만났다. 치열하게 마감시간에 쫓기다 겨우 기사를 넘기고 근처 술집에서 동기 문화부기자와 술 한 잔을 기울였고, 자연스레 공통관심사인 소설얘기로 옮겨가게 됐다. 나는 좋아하는 작가로 공지영을 꼽았고, 그녀는 신경숙을 말했다. 그리고 문예창작과 출신답게 “공지영? 너는 그 문장 하나하나 살펴봤어? 얼마나 허술하고 날림인데…….” 반면 신경숙에 대해서는 “문장을 음미하듯 살펴봐. 정말 흠잡을 데 없는 문체하며, 긴 호흡에…….” 간결하게 팩트만 전달하는 나의 사회부기사와 공지영이 한편에, “삶에서 길어 올린…….”같은 늘어짐이 있는 그녀의 문화부기사와 신경숙이 또 다른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문화부기자의 조언도 있었던 터라 그즈음 신경숙에 대한 나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그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영화 킹덤 시사회였다. 그 영화는 예술영화부류로 들어가 무려 280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에 병원응급실이 배경인 공포스릴러였다. 시사회장에서 화장실에 다녀오던 친구가 “야 나 신경숙이랑 영화평론가 정00 봤잖아” “뭐 신경숙? 근데 둘이 같이 왔어?” “그건 아니고” 칠흑처럼 긴 머리 늘어뜨리고 나만의 세계에 갇혀 살 줄만 알았던 그 신경숙이 이 영화를 마니아들만 본다는 이 공포호러물을 보러왔단 말인가? 내 안에 변화가 일었던 순간이었다.
당시 공지영은 정말 잘나갔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해서 출판하는 족족 베스트셀러였다.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책표지를 넘기면 왼쪽 편 위쪽에 공지영사진과 밑에 연세대학교라는 학력이 딱 찍혀져 있었다. 당시 그는 서울대출신의 여류시인 최 모 씨와 함께 외모와 학벌로 책장사를 한다는 비난을 여기저기서 받을 때이기도 했다. 거기에 대해서 “예쁜 게 죄야? 좋은 대학 나온 게 문제야?” 다들 부러워서 그러는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공지영에서 워너비작가로 신경숙으로 갈아타게 된 계기는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시댁 조카의 책꽂이에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발견하고 빌려왔다. 그런데 내가 그 소설을 신경숙의 소설을 중간에 덮지도 쉬지도 않고 한 자리에서 다 읽어버린 것이다. 신경숙이 변했나? 아니 내가 변했나? <엄마를 부탁해>에서 나는 기존의 답답했던 신경숙의 문체가 날아갈 듯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 가벼워짐이 경박함이 아닌 성숙함으로의 비행인 것 같아서 좋았다. 그 즈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공지영의 소설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행진 중이었는데, 어디선가 본 그녀의 인터뷰가 잊히지 않았다. 소설이 생계를 위한 작업이 되었고 그러다보니 마음에 드는 한 문장을 쓰기 위해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는 내용이었다. 천하의 공지영도 변한 것이다. 진중함의 필체로 거듭난 것이다. 그 시기에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뭐야 내가 이런 거칠고 유치한 문장에 빠졌단 말이야? 어법도 안 맞고 엉망이잖아.’ 왜 문화부기자가 그렇게 별로라고 했는지를 뒤늦게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얼마 전 우연히 헌 책방에 갔다가 <작가의 서재>라는 책을 사왔다. 공지영과 신경숙이 함께 실려 있었다. 공지영의 경우, 화려한 외모만큼 집필실도 유럽의 왕실에서나 있을법한 화려한 소파에 분위기 또한 밝고 화사해서 작가의 모습을 잘 대변한다고 생각됐다. 신경숙은 서재 소개 전에 보일러 고치는 아저씨와 비용문제로 실랑이를 벌였다는 얘기가 나와서 ‘엥? 소심한 신경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신경숙에 대해 잘 모르고 있나 보다……. 최근 신경숙은 표절문제로 문단에서 은퇴압력이 있는 걸로 안다. 작가로서는 치명타인 표절문제에도 불구하고 난 이상하리만치 관대하게 ‘아, 신경숙이 계속 글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걸까?
스무 살 이후 내 독서이력에서 공지영과 신경숙은 큰 가지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공지영과 신경숙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고, 함께 흘러온 시간 속에서 그 둘의 소설은 서로 자리바꿈한 느낌이고, 생명체인양 변화성장해가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나는 그들이 계속 궁금하다. 그게 그들의 사생활이든 글이든 간에…….
기묘(猫)한 이야기
1940년생 김정봉 씨는 김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쭉 자란 토박이다. 정봉 씨에게는 슬하의 자식은 물론 손자손녀에게 들려줘도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보따리가 두 개나 있다. 한 보따리는 동네어르신이 장터 갔다 오는 길에 대나무 숲에서 도깨비와 씨름한 이야기이고,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가 또 다른 보따리다. 재미의 경중을 가늠할 수는 없으나, 다들 신기해하며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이야기가 바로 고양이이야기다.
이야기의 무대는 김해평야를 끼고 김해 김씨들이 모여살기 시작한 집성촌인 안동네로 마을 이름도 내동이다. 정확한 연도는 정봉 씨도 기억할 수 없으나 한국전쟁이 났던 1950년 그 이후 10여년 사이로 보면 좋을 듯하다. 다들 먹고 살기 녹록치 않은 시절이나 이 동네는 사정이 달라 정봉 씨네도 머슴을 둘이나 거느렸으며, 당시 정봉 씨의 주된 일이 감나무에 올라 감 따먹기였다고 하니 그 태평성대가 가늠이 될 것이다. 그런 마을에도 사건사고는 있기 마련으로, 가장 흔하면서 잡기 힘든 것이 좀도둑이었다. 한 집 건너 사촌이라 대문도 닫지 않고 지내던 터여서 한 번은 웃어넘기지만 반복되고 잦아지면 문제가 되었다.
여기서 오늘의 고양이이야기가 출발한다. “자꾸 물건이 없어지는 기라……. 순사도 드물고 우짜겠노…….” 마을 사람들이 서너 명 냇가에 모이면 이 도둑얘기를 하게 되었고 급기야 지금으로 치면 동네 이장이 도둑과의 전쟁을 선포할 지경이 됐다.
어느 날, 이장은 동네가 떠나가라 “낼모레 괭이 삶슴니더 지금이라도 내라꼬 나오면 용서할 테니 퍼뜩 나오소……. 사흘 안에 안 나오면 할 수 없슴니더. 낼모레 괭이 삶슴니더…….” 어린 정봉 씨도 그때를 잊지 못했다. “뭐할라꼬 괭이를 삶나? 도둑 잡는데……. 참말로 신기하기다” 이장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간 큰 도둑은 그 날 밤 이장 옆집에 들어 결혼패물이며 돈 되는 것을 털어갔다. 그 사이 자수하는 사람도 없고 대망의 고양이 삶는 날이 닥쳐왔다.
“드디어 괭이 삶는 날이 온기라…….” 마을에서 가장 마당이 넓은 이장 집에서 괭이를 삶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이장은 아침부터 마을 전체를 논을 중심으로 한 바퀴 빙 돌면서 “점심 먹고 미시(未時)에 다들 모이소. 괭이 삶는다 아인교.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찾아와서 내라꼬 실토하고 훔친 물건 내놓으면 조용히 넘어간다 아이요…….” 이장의 발품 덕인지 시간도 되기 전에 마을사람들은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고, 어린 정봉 씨도 또래들과 함께 이장 집으로 향했다.
큰 마당 한가운데는 가마솥이 떡하니 걸려있고 반경 1미터를 빼고는 사람들이 빼곡히 마당을 차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범인을 색출하는 이 자리에 혹시라도 빠진다면 제일 먼저 도둑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기에 다들 농사일 급한 것만 서둘러 마무리 짓고 모여들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기라. 평소에 낯짝구경하기 힘들다는 안동네 꼽추영감탱이까지 다 온기라…….”
본격적인 의식을 치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장은 경고했다. “바쁘신 와중에 다들 이리 자리해주셔서 고맙심더. 이게 다 우리 내동이 잘살기 위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꺼. 그래서 말 인데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줄라꼬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심더. 마을 어르신들 이하 동네 젖먹이까지 다 나와 있는데, 여기서 무릎 꿇고 사죄하면 우짜겠습니꺼, 사람인데……. 용서 안하겠습니꺼…….” 유하지만 강단 있는 말투로 이장은 마지막 경고를 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자, 이장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그럼 지금부터 열을 세겄심더. 이 안에도 안 나오면 우리는 할 때까지 한 겁니더. 이리 봐주는데도 안 나오면 할 수 없지예…….”하면서 뒤쪽에 시선을 한 번 준다. 거기에는 건장한 이장의 큰 아들이 노랑 얼룩무늬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괭이를 삶는 수밖에는 없심니더…….” 마당 한가운데서는 가마솥이 달궈지고 있고, 뒤에는 오늘의 제물이자 주인공인 고양이가 바짝 약이 올라 있었다. “여를 아홉 여덟 일곱…….” 이장의 숫자 세는 소리에 아무 죄 없는 정봉 씨와 친구들 그리고 순진한 마을사람들의 속까지 타들어갔다.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이제 마지막 하나 남았심더” “영” 그 외침소리와 함께 순간 주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괭이 이리 갖고 온나” 이장은 족히 5키로는 넘어 보이는 고양이 뒷목덜미를 들어 좌중에게 보여줬다. “이제 이 괭이가 가마솥에 들어가면 끝임니더. 지금이라도 나오면 없던 일은 아니지만 최대한 정상참작을 하겠심더” 장날 장돌뱅이가 쇼하듯이 이장이 고양이 목덜미를 움켜잡은 채 한 바퀴 순회를 했다.
드디어 클라이맥스! 이장 아들이 가마솥 뚜껑을 열자 달아오를 대로 달아 오른 가마솥은 열기로 빨갛게 이글거렸다. 아이와 부녀자들은 차마 못 보겠다는 듯이 눈을 가리고, 이장은 과장되게 큰 동작으로 가마솥 안에 고양이를 집어넣었다. 뚜껑을 누른 채 다섯을 속으로 세고 손을 뗐더니 어느새 털 일부가 그을린 고양이가 가마솥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독이 오를 대로 올라 발톱까지 세운 고양이는 앞줄도 아닌 중간으로 점프를 해서, 사람들 사이에 콕 처박혀 있던 얼마 전 이웃마을에서 머슴 살러 왔다는 박 씨를 콱 깨무는 것이 아닌가? “참말 신기하제……. 괭이가 도둑놈을 확 문기라…….” 정말 신기하게도 박 씨가 범인이었다. 다시는 안 그렇겠다고 두 손을 싹싹 빌며 용서를 구했지만 괭이까지 삶은 마당이라 마을사람들은 냉랭했다. 그 뒤 박 씨가 어찌됐는지는 정봉 씨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고양이는 범인을 알았을까? 정봉 씨는 이에 대해 “그러니 요물이라 안하겠노…….”
1940년생 김정봉 씨는 우리 엄마다. 엄마의 고양이이야기는 마흔이 넘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요물이라는데 내 생전 고양이를 키울 일이 있나 싶었지만 어쩌다 길고양이를 데려와 8개월째 동거중이다. 한 번씩 우리 고양이의 눈을 들여다 볼 때마다 이 기묘한 이야기가 생각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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