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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상반기 신인발굴]_시_유상욱_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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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성명: 유상욱
성별: 남
연령: 33세
주소 : 경기도 부천시 수도로18 두산 위브 트레지움 1단지 105동 1004호
연락처 : 010 - 7279 - 6365
직립 보행
톱니 발판이 시동을 건다
뻑뻑한 흰자위들이 차례차례
마주치며 파드닥거린다
모두가 두 발로 걷게 된 까닭을 고민해본다
미처 떠오르기도 전에 질척해진 발바닥
뒤꿈치 잰걸음으로 도움닫기를 해보지만
모퉁이를 지키는 볼록 거울에
번번이 날갯죽지를 잡히고 만다
좀처럼 씻기질 않는 깃털은
수돗물에 문질러도 떡 진 가시만 돋치지
코를 찌르지 않는 거리라면 잘 안다
모자를 얼굴까지 눌러 쓰면 괜찮거든
낮은 가르랑거림 사이로
지난밤 꾼 빈칸이 깜빡이며 재촉한다
손끝을 더듬어 눈꺼풀을 닫고
오늘도 바람직한 숙면에서 깨어난다
매일같이 갈아엎는 보도블록을 잘도 걷지만
어느 때부턴가 발이 커서 늘 곤란했지
칸 맞춰 내딛는 몽당발
튀어나온 만큼 붙들려 저며지거든
둘러멘 끈이 박자에 맞춰 어깨를 당기고
오늘 산 값비싼 깡통이 달랑거린다
허파에 차오르는 찌꺼기가 구룩대면
가래똥 한 방 시원하게 갈겨버려
뭉개진 발가락 통증을 비우는 법은 쉽거든
가까스로 떠오른 날갯짓
네 발로 불시착하는 너를 일으켜 세운다
이야기별 이야기
따분하지는 않을걸
붙박이별 612호가 사라진 날에도
이야기들은 잊지 않고 피었으니까
스포트라이트 사이는 새까맣게 멀지만
가로등에 묻은 발자국을 거꾸로 쫓는다
엮어낸 별다발 가짓수만큼
책장은 하늘로 솟고 땅으로 넘어간다
구부정히 인사를 하는 첫 이야기
막다른 앞표지를 덮는다
대부분 깎아 들어가던 일이지
바닥까지 뚫어버린 오목새김으로
미지근한 별빛이 차오른다
구멍 밖으로 쌓이는 쓰레기봉투
애당초 모든 이야기는 줄거리였으니까
감긴 눈이 빠르게 흔들린다
고장 내놓은 초인종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현관을 지킨다
두꺼운 진공을 비집는 고동
잠기지 않은 현관문으로 날숨이 역류한다
쏟아지는 무게에 붙들린 떠돌이별은
붙박이별 613호와 나란히
함께 구부려놓은 구덩이로 미끄러진다
그러나 반짝이는 극야(極夜)는 다시 돌아올 테지
멎어가던 시곗바늘이 뱅글팽글 빨라지고
소매 잡아끄는 힘마저 느껴지지 않게 될 거야
딱, 이야기별 하나까지로 남아줄래?
그래 봐야 글쓴이는 영영 빛냄별이 될 수 없는걸
책상이 기운다
항성들도 어쩔 도리가 없었던
꽉 찬 여백을 한 겹씩 말아 삼킨다
점점 빠르게 회전하던 행성이 갑자기 무너졌고
수만 년 전, 어린 빛살이 별바다를 집어삼켰다
적자마자 사라져버린 들숨과
몹시 단단한 낱말들이 함께 관측됐다
몰드
사랑에 실패했음을 인정했어
이런 생각이 드는 건 꼭
이불은 대충 왼팔에 뉘어두고
축축한 바닥을 피해 삐딱하게 누워있는 때야
깍지낀 무늬는 두 갈래로 또 하나로
전등은 부풀어 오르는데
내가 바른 방향으로 놓아주던
새빨간 구두가 점점 또렷해져
매일 끄적이는 흑백소설 컷마다
빗질이 아플 정도로 엉켜버린 거야
움켜쥔 머리칼을 꺼당기면
함께 이름 지어준 짝꿍 인형이 사이좋게
엉덩방아를 찧었고
( )은/는 실패했음을 눈치챘어
튀어나온 까치집을 멋쩍게 쓸어내려
이불을 끌어안고 다시 잠들어 볼게
구겨지는 몸이 지워져
함께 앉은 버스는 한참 전에 오른쪽 골목을 돌았는데
넌 아직도 내 어깨로 넘어지네
각기병
부엌에 들어찬 뿌연 반찬을
반쯤 뜬 입 냄새에 말아 넘긴다
물찬 뺨을 꾸욱 누르면 보조개
절그럭대는 도시락통에 엉덩이를 끼운다
칸막이 너머로 뒤섞이는 찝찔한 국물
오늘도 내일까지를 주워 삼킨다
싹싹 긁어낸 혓바닥이 다시 시커메진다
심술궂은 의심이 들지만
빈틈마다 끼어대는 치석은 모두 참말
건강한 식단은 미리 짜놓았다
하지만 균형 잡힌 식사를 해야 하니까
집에 돌아오면 옷을 벗고
밥 먹기 전에 꼭 이를 닦자
비릿한 침을 헹궈낸다
저녁 식탁 위에는 흰 쌀밥만 올려놓는다
미끈하게 알몸으로 앉아
채 도려내지 못한 씨눈을 긁적
오늘도 어제까지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입김 불면서 달큼하도록 씹자
뽀얗게 짓이겨지는 거짓말
보살님을 만났다
나는 법당에 가본 적이 없는데
오늘 보살님을 만났다
시큼한 정거장 벤치에
관세음보살님과 사이좋게 앉아있다
체취가 쏟아지고 담긴다
인기 많은 겨드랑이를 흥정할 때는
상반신 마비가 오히려 편했다
하얀 지팡이를 짚고 몸을 기울여 본다
처음으로 맡아보는 살 냄새가 아찔
솔직히 말하긴 영 쑥스러워
들고 계신 연꽃이 향기가 참 좋네요
막차가 온다는 소식이다
작대기는 두고 갈게요
무취가 쏟아지고 담긴다
입을 벌린 채 마지막으로 오른다
차창 비스듬으로 보이는 옆모습이 주춤
무지근한 기침과 함께
내음은 벽화처럼 멀어진다
넘어지지 않도록 다리에 힘을 준다
아픔도 뒤통수에 백점짜리 성분표가 붙지
약국 가장 인기 있는 자리에 꽂혀있는
알록달록 진통제를 한 권 사드시오
주머니 속 처방전은 조용히 구겨버렸다
잠김
오전에는 때때로 흐리고 봄비가 내렸습니다
신발장 그늘에서 낯선 우산이 나왔다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아.’하고
두 손바닥 너비 어깨를 반겼다
잠시 들고 서서 먼지를 쓸어내고
하늘색으로 옅어진 옷고름도 고쳐 여며서
다시 제자리에 꽂아주었다
부러진 손목을 잡고 들렀던 수선집
윗입술에 묻은 새파란 빗물을 닦아준 날부터
아침저녁 꼭 세수를 했는데
출근길 겉옷 소매에 비친 모습은
어둑한 우산을 끌어안고 집을 나선다
두꺼운 등뼈가 옆구리를 누른다
오후부터는 전국이 태풍 영향권에 들겠습니다
하얀 모래거품에 언제쯤 닿을지는 모르지
손 집게로 코를 막는다
갈라지는 햇빛이 멀어진다
짙은 바다라고 겁먹지 말고 꼭 붙잡아
꺼끌꺼끌한 굳은살이 마주 닫는다
꿈틀대며 물살을 가르는
등 푸른 우산
수목원
두툼한 껍질 냄새가 코에 스민다
나무를 백 그루인가 산 적이 있다
줄기마다 작은 이름표를 걸어주던
숲지기는 가을이 와도 늘 푸르다는데
엉거주춤 자판기들은 통 대답이 없다
녹슨 정강이를 걷어차니
미지근한 음료수가 요란하게 굴러 나온다
쓰러진 표지판을 세워 읽고
인적이 드문 길목으로 들어선다
산새 몇이 호기심에 한쪽 눈으로 쫓아오지만
헝클어진 그늘까지 따라오는 녀석은 없다
뻣뻣하게 오르는 풀독이 간지럽다
장발이 되었네요 숲은 이렇게 죄다 부러졌는데
뎅그러니 뜯겨나간 나이테 하나를 골라 앉는다
도와줄게요
마른 손으로 불을 피운다
환호성을 지르며 조각나는 새떼
수 없는 이름이 왈칵 쏟아진다
펄떡이며 죄여오는 뿌리들이
두 발을 끊어진 그루터기 속으로 구겨 넣는다
종아리를 타고 혀 밑으로 솟는 신물
쭈그러드는 몸통을 곧게 편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새까만 등뼈를 그러쥔
오른 주먹을 풀어서는 안 된다
나비네 사진관
마지막 폭우로 결국 산사태가 났다
더는 이곳을 지나는 사람이 없어
흙더미는 천연덕스럽게 길바닥에 눌러앉았다
낡은 얼굴 가죽이 한 겹씩 떨어져 내린다
왜 울먹였는지
시간이 흘러 완벽에 가까워진 분석
체에 밭친 삼원색이 살갗을 타고 흐른다
부서진 액자에 깔린 생채기가 화끈거린다
조금씩 시들해지는 물줄기가 휘청
마침내 떠오를 정도로 가벼워지면
두엄 안에는 한 조각씩 불이 꺼진다
들이켠 계절을 겨우내 게워 삼키며
고치는 갈색으로 말려 들어간다
모두 새겨 잊은 후
암실 문틈으로 젖은 땅 냄새가 녹아 나온다
연둣빛 거웃도 채 돋기 전
나무 가지가지마다 빨래집게에 매달린
아직 덜 마른 날개들이 톡톡 기지개를 켠다
낙오
달음질하는 골짜기에 귀가 먹먹하다
지하수 박동마다 뿜어져 나오는
빛 방울들이 개찰구 사이로 넘쳐 오른다
고꾸라지는 물살 때문에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만 겨우 들릴 뿐이다
편지가 왔다
날 선 턱이 둥그레지고
느릿한 수염이 가득 자랄 때쯤에야
겨우 정신이 든다고 한다
그거 아니
꺼칠한 볼에 입 맞추면
그렇게 보드라울 수가 없단다
그는 뭉게구름이 되었을지 모른다
여긴 아직 산골짜기
모서리진 돌멩이로 담벼락을 쌓는다
빗나간 물길이 멈춘 골목이다
빙글빙글 맴도는 꽃잎
다음에 다시 만나요
눈짓
활짝 고개를 내민 소녀
어느 때보다도 가깝게 찾아온 보름날이었다
사람들은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지만
소년은 숲속을 뛰어올랐다
뺨 위를 어지럽게 밟고 가는 얼룩은
그저 구부러진 나무 그늘일 뿐이야
걱정하지 마
젖은 등에 기대는 조그만 어깨뼈
산마루에 걸터앉은 둘은 작은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았다
멋지게 미끄러지는 눈꺼풀
아슬아슬한 눈웃음은 사실
눈물만 겨우 막아내고 있었는걸
그믐날
소년은 몸이 썩둑 잘려 굴러떨어졌고
소녀는 달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둘은 함께 놀던 시간만큼을 외로이 울고서야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또다시 차고 기울 달에는 금세 시시해졌다만
소년에겐 너무도 짧았던 삼십일
소녀가 짓던 윙크를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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