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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상반기 신인발굴]_시_이원하_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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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성명: 이원하
성별: 여
연령: 만 28세(1989년 09월 20일)
주소: 경기 군포시 고산로539번길 7-12 롯데묘향아파트 933동 803호 우)15822
연락처: 010-2082-0529
아무에게나 들릴 것이야
나는 입속에 시계인가 나침반인가를 넣었어요 초와 분이 흐르는 말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 방향을 작곡하는 중이었죠 입 속에 그런 것들을 전부 담을 수 있나 싶었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나는 넣었고 입술을 꾹 잡았어요
여행을 다녀왔어요 쿤밍, 포카라, 파리, 감성은 더 아름다워졌죠 알 수 없었던 미래를 위해 그동안 일들이 엇갈리고 꼬여서 하나의 리본을 만들었답니다 손바닥으로 지그시 리본의 가운데를 눌러서 예쁜 모양으로 완성시켰어요
닫혀 있던 입을 오랜만에 열었는데 입 속에 시력이 생겼어요, 시력은 물에 젖어있었어요
입 안에 시력이 생겨버렸으니 눈을 지워버렸죠 눈은 사랑에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입 속에 살고 있는 유리 조각이 매일 과하게 물기를 만들어냈어요 책가방 검사를 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을 때, 물기가 쏟아졌어요 마침 가방 속엔 담긴 것이 얼마 없었고, 쏟아진 것들이 담기는 중이었어요
시인을 닮은 소리, 이것이 바로 자극이며 이상한 음성
나는 소리를 나중에 듣기 위해 귀에 묻혀 놓았고, 묻은 것들이 섞이고 자극적인 세제 옆을 지나다가 일부가 사라져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집중해, 남겨진 소리라도 듣는 거야
숲을 걸으면서 그동안 묻혀놓았던 사물이 굴러가는 소리와 시인의 예언을 들었다
예언하는 음성에는 격이 있었고 먼지가 있었다
곁따라 묻은 내 숨소리에는 예술에 필요한 새로운 재주가 느껴졌다
나는 몸이 신선해지는 걸 느꼈다
예술의 가죽을 여우가 뜯어먹고 싶어 했고 먹기 위해 분주한 동작을 소리로, 들으면서 소리를 닦아내면서 장작이 마르는 시간만큼 얇고 완벽하게 썰린 사과를 말렸다
예전에는 소설가가 될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헛소리와 무음을 듣는 귀로서 시를 쓰게 되었다
선배처럼
계속해서 시인과 숲을 걷는 소리가 들렸다
시인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알기 위해 몸무게를 묻는 나의 목소리도 들렸다
온도와 시선 그리고 낱개
눈물쯤은 흘려줘도 괜찮을 때 문득 하늘이 궁금해졌습니다
올려다본 하늘의 자리에는 미세먼지
먼지 아래에서 커피를 내리다가 종이 필터를 코에 붙였습니다
먼지가 눈을 괴롭히는 줄은 모르고
코만 가렸고 코만 걱정했고 코에게만 음악같이 굴었습니다
눈물쯤은 흘려줘도 적당할 때 책을 다섯 권이나 속독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친구는 참기름을 떠먹었고,
어머니는 공기청정기를 구매하셨습니다
나는 여섯 번째 책이나 읽을까
하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먼지를 바라보다가 수분의 기운을 느꼈는데,
그건 내가 바다 근처에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섬에 살 수 없다면 배 위에서라도 살고 싶었던 때가 있었지요···
코에 붙여 놓은 종이필터는 수명을 다하였고
그동안 커피가 식어 아이스커피가 준비되었습니다
먼지도 쓸모가 있었습니다
사실 시원한 걸 마시고 싶었거든요
자 이제 다음 슬플 일 준비해주세요
당신이 고요한 건 어느 계절인가
그날 새벽 눈이 오고 갔다
당신도 다녀갔다
옆에 소외된 흰 나무가 추워서 흔들렸는데
당신은 그냥 갔다
나는 당신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당신이 의미하는 바가
수돗물에 씻기는 그릇보다 더 많은 물을 흘리게 했다
당신은 설의적이었다
당신은 발바닥도 없이 걸어 다녔다
당신은 표정도 없이 납작했고 납작납작
나도 알지만 당신이 나에게 베푸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영하 20도쯤 되는 당신 곁에서 동사자가 되어버려도
어찌 될 수 없을 것이다
차갑게 구는 당신의 성질은 고요했다
고요한 것은 나비인데, 그렇다면 당신은 봄인데,
아무래도
당신에게 함박눈이 되어 걸어가야겠다
그렇게 봄 앞에서 한 번 더 녹겠다
밝아서 빛이라면 내 표정은 빛이겠다
너에게 불쑥 어느 세상이 튀어나왔지
나는 그때 움푹
하나의 세상이 패었어
그날부터 웃기만 했어
잘 살펴보지 않으면 속을 알 수 없지
원래 어둠 속에 있는 건 잘 보이질 않지
불빛을 비추면 나를 잘 알아주지 않을까 싶어서
웃기만 했어
얼마나 오래 이럴 수 있을까 싶다
처음으로 내 밑이 젖었을 때,
움푹 팬 자리의 결핍을 보았어
결핍에게 슬쩍 전화를 걸었는데 받았어
받았어
결핍이 맞았던 거지
나는 십 년 뒤에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아질 거야
그날은
시장에서 사과를 고를 때보다
더 아무 날이 아닐 것이고
감동 없는 시집을 만지작거리는 순간보다
감정도
별다른 일도 없겠지
허공의 색을 아느냐고 물감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아직 여름이 낯설어
냉장고 문을 열고 김치 위에 눕는다
날카롭게 차가운 김치에 놀라서
술 사러 간다
계산대 위 거울 속에서 색감이 느껴진다
빨간 물이 든 철쭉꽃이 거울 속에서 움직인다
허공을 사이에 두고 철쭉꽃이 그새 진다
거울 속에서 소리가 들린다
고등어가 인사할 때 결이지는
물결 소리다
아름답지만 그것은 눈물 말하는 소리다
귀 기울이게 만드는 차갑고 느린 소리가
허공으로 떨어진다
허공으로 떨어져서 아무 소리도 없다
떨어진 걸 주워다가 다시 놓쳐도 소리는 없다
그 투명한 소리의 온도는 바람과 같다
물이 스미고 지나간 소금 한 포대의 허무함으로
오늘도 써놓은 시를 빗질하려 한다
바닥은 벽으로 토양은 가슴으로
두꺼운 무가 가슴으로 와서 박혔다
처음 만난 표정을 얼굴에 쥐고 여대 앞에 서 있었을 뿐인데, 누가 가슴에 무를 박아놓고 가버린 것이다
고개를 숙여보니
연두색 부분만 남기고 하얀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연두색 부분을 바라보았다
봄이었다
허구라고 생각하려 해도 이것은 현실이었다 봄이 오리털이 우는 소리를 갉아먹어버리는 동안 생각했다
봄에 무가 자랐던가, 봄에 사람들이 무를 먹었던가
난 태어나지 않아서 봄에 살아본 적 없지만,
고개를 숙이니 가슴에 봄이
생애에 없을만한 풍경으로 와있었다
향기의 소화를 돕는 물기
향기를 원망하면서 화장을 하기 시작했고 흡족할 때까지 화장을 했다 하얗고 분홍색이 잘 어울려서 내친김에 구두를 신고 속눈썹이 방황하도록 걸었다
나는 꽃, 꿀이 흐를 분가루
향기를 원하고 원망하면서 화장을 했지만 향기가 없었다
기다렸더니 향기가 오긴 왔다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냥 스쳐 지나갔다
멈추지 않는 이상한 향이었다. 몸에 나쁜 걸 싫어할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분가루 때문에 흰머리가 되어버렸다는 향기는 나를 노려봤습니다 나는 죄가 없는데 말입니다
분가루가 죄가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덧 발랐습니다
더 하얗게 말입니다
화장을 해본 적 없는 향기가 가진 것
나는 칠한 것
물기 머금은 도마 위에 붙은 비닐이나 될 걸 그랬습니다 무향으로 투명하게 말입니다
풍경의 침묵이 신성 너머에서도 자고 있나요
백약이 오름
그 위에 소와 초록과 고요
오름의 고요함 때문에 마치 실내에 있는 기분
고요는 고요했고 나는 서성서성
초록은 풀
갈색은 소
고요는 수분
수분의 결이 흐르다가 멈춰버린 것은
얼어버려서인가
그렇다면 만지면 차가운가 그렇게 실망이 오나
오름으로 오름으로 인해 목가적인 풍경을 접하고
달력의 검은 숫자들을 다른 색으로 칠해버린다
낯선 길들이 얼굴을 만진다 감성을 꺼내는데 도움이 된다
외친다
수분을 살리기 위해 모두 이곳으로 모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퍼지지 않는다
내 목소리를 내가 다시 훔친 것이다
실패해버린 하루는 꿈속에 버리기로 하자
이 밤,
오늘 밤도 버릴 것들이 많아서 입을 벌리고 잠이 들 것이다
입이 없었던 날
혼자 있어서 편했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면 친해질 마음, 있었다
바람을 가방에 넣었다
파도에 묶어있는 비양도처럼
모래에 발목 잡혀 해변에 서 있었다
낯선 사람들을 기다렸다
세상 모든 기척
그 가느다란 입술들이 스쳐갔고 나는 바다에 빠진 우유가 되었다
그때 귀에 뭔가가 닿았다
"혼자 오셨나 봐요."
속으로, "말 걸지 마세요. 저는 이상한 사람입니다."
얼른 귀에 묻은 소리를 닦아냈다
저 멀리 바다의 승객들이 의자를 찾았고
더러운 의자라도 차지하려 했다
세상 편하게만 살려하는 승객들을 바라봤다
내가 왜 갑자기 저들을 승객이라 불렀는가
귀에는 왜 거울이 달려있었으며
몸은 왜 딱딱했는가
성수기 때만
사람을 만나는 버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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