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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상반기 신인발굴]_시_이수진_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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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성명: 이수진
연령: 1971년 5월 3일
주소: 울산광역시 남구 신정5동 132-10번지
연락처 : 010-4800-7205
그 여자네 옥상
빨래가 더디 마르는
꽃바위 종점에는
단단한 빨래 줄을 가진
그 여자네 옥상이 있다
말갛게 헹구어진 빨래를
탁 탁 탁,
팔이 아프도록 털어서
단단한 빨랫줄에 펼치면
정자바다까지
넘실대는 빨래줄
깃발처럼 펄럭이다
그 여자네 옥상에서
느리게 말라 간다
빨래가 마르는
온전한 시간이란
푸르디 푸른 동해바다를
제 몸 가득 품는 것임을
그 여자,
방파제를 넘어 오는
외로운 파도를 보고 알았다
새벽5시, 우기가 시작되었다
새벽5시,
우기가 시작되었다
하와이 방면으로 물러나 있던
북태평양 고기압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가 녹기 시작한
오츠크해의 냉습한 해양기단이
장마전선을 형성하였다
이제,
마음속 우울과 습도조절에 실패한다면
이 여름은 견디기 힘든 계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습도는 끝내 조절되지 않는다.
후두둑 비 떨어지는 소리에
70%의 물병같은 몸뚱이를 일으키는 본능은
이 우울한 우기가 지나고
찬란한 태양이 폐부로 들어오는 그 날을 위해
일부러 우울을 털어낼 수 없는 축축함이며
영화가 끝난 뒤 갑자기 만나는
저녁 거리처럼
낯설음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다
떨어지면서 깔리고
다시 떨어지는
직선의 여름이
날을 잡아서
대놓고 울고 있는
새벽5시,
미칠듯이 끈적한
우기(雨期)가 시작되었다.
시
시간당 천원의
정해진 주차장 구석으로
정렬된 호박 등
환하게 밤을 비추일 때
너는 내 늘어진 가슴을 만진다
차갑다
4월의 느닷없는 추위로
내 안의 온기는 남김없이 네 것이다
멀리 용연의 배 꽃
이리저리 흩날릴 때
내 귓가로 들어오는 뜨거워진 숨결
그렇게 봄인 줄 알았다
세상의 어떤 사랑들에 치여
숨어 있기 좋게 박혀버린 상처들
눈물을 타고
시리고 아픈 곳으로
자꾸만 번져갈 때
시간당 천원의
주차장 구석에서
너는 가늘게 떨고 있는
얇은 어깨를 보듬는다
전철
곳곳에 널린 소리들
시니피에가 되지 못한
시니피앙이
늦은 전철에 몰려들었다
누구누구의 소리를 들으며
동무 없는 길을 떠들썩하게 간다
내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네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인연 없는 이들의 마지막 인사
문이 열리면
황급히 일어서는
외로운 너의 공명통
남겨진 소리만이
뿌리를 내려 길게 나무가 된다
초경(初經)
척척 걸쳐라
그날
시큰거리는 왼손을 다잡으며
엄마는 그랬다
말갛게 헹구어 질 때마다
간지럼을 타던
묵은 남자와 여자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서로 섞여서 비비적거릴 때
나는 아직 열여섯 이었다
하얗고
검고
파랗고
붉은 빨래들이
하늘 가까이에서
바람같이 흔들리다
바지랑대위에서
처억하니 가랑이를 벌릴 때
내 뺨을 때리던 비릿한 냄새들
그날
엄마의 아픈 왼손은
더욱 욱신거렸고
나의 햇살은 아깝게 졌다
첫사랑
늦은 밤
이정표식당에서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추어탕 두어 그릇으로
누군가는 어린 시절을 배불리 먹고
묵은지 갈비찜 올려 진
파란 가스 불 위에선
이루지 못한 누군가의 첫사랑이 끓는다
아무개야~
더 이상 뜨거워지지 못하는 나이에도
김 오르는 국물가득
더운 이름 띄워 놓고
곰삭은 그 사람을 불러본다
늦은 밤
이정표식당에서는
순한 소주 몇 잔에도 뜨겁게 취한다
가을주차장
지난밤 가을비 지나더니
국화무더기 살 오르게 피어난다
담벼락 사이에 작은 소국마저
젖은 향기 털어낸다
몇 해 봄에 묻은 내 사랑은
부스럭거리는 가을을 피해
이른 겨울잠을 자는가
곳곳에 널린 가을들
눈시울 붉히며
주차장으로 향한다
흰꽃
일년생 낮은 가지 위로
피어오른 흰 꽃들
시멘트 섞인 흙조차도
기꺼이 제 것으로 만들었을
일 년을 생각하니
대견하고
또 대견하다
내 마음 붉게 울먹일 때마다
하이얀 제 꽃잎들 바라보라고
순수의 시대를 펼치고 있다
여름
도시의 비는
촉촉한 타이어의 미끄럼소리로 시작된다.
메마르고 건조한 아스팔트위에서
매캐한 고무의 탄성이
날카롭게 도시를 가로지르며
목적지없는 횡단과 종단을 거듭하다
멀미를 느낄 때 쯤
도시의 비는 추적추적 내린다.
슬픔같이,
아픔같이,
그리고 긴 그리움같이
누군가의 물기어린 기억을
고요하게 끄집어내며
도시의 비는 내린다.
주소를 가진 이들의 기억이
하수구로 밀려든다.
하나씨
미옥이네는
할아버지를 하나씨라고 했다
새터에서 하나씨가 등이 휠만큼
커다란 자루를 지고 오면
미옥이네는 밖에 솥을 걸었다
하나씨, 하나씨
부르는 미옥이가 미워
무쇠솥에서
분이 하얗게 쪄진 감자는
입에도 안대고
하나씨의
하얀 수염만 바라보았다
큰 깃발 같기도
큰 옥수수 같기도 한
그 단어를 들으면 부러웠다
아버지도 없던 나는
하나씨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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