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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온라인청소년백일장 예심통과자ㅡ배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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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황
댓글 0건 조회 1,741회 작성일 17-06-2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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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위한 여행

 


 

   보통 여행 후 남는 것이 뭐가 있는지 물으면 대부분은 사진이라고 답하기 마련이다. 내가 느낀 감정과 기분은 금방 잊혀지기 때문에, 사진을 남겨 최대한 그 때의 기분과 느낌을 간직하려는 것이다.

   얼마전에 나는 수학여행으로 34일동안 제주도에 갔다. 제주도는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한번에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사진을 찍고 돌아와야 한다. 우리는 장소가 바뀔 때마다 의무적으로 사진을 찍었고, 어쩔 때는 정말 사진만 찍고 관광을 마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사진을 찍지 않아도 다른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한시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을 수 없었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수학여행 내내 무엇인지 모를 이상함을 느꼈다. 우리가 제주도에 온 것은 분명히 제주만의 것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학여행의 목표는 마치 더 예쁘고 더 예쁜 배경이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 수학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소가 바뀔 때마다 친구들은 제주도의 풍경을 감상하기 보다는 사진이 더 잘 나올 수 있는 장소를 먼저 탐색했다. 사진을 찍지 않는 나로서는 굉장히 피곤한 여행인 것이다.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사진이라는 것의 중요성은 나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사진을 위한 여행이 되어 버리는 것은 조금 아깝지 않을까?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남는 것은 사진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사진이 우선시 되는 여행이라면 찍은 사진 속에 정말 의미가 담겨 있을지 의문이 든다. 액정 속의 제주 풍경은 우리는 클릭 몇 번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런데도 그 풍경을 눈이 아닌 액정으로 가둔다면, 굳이 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얼마전에 김영선 작가님의 열흘간의 낯선 바람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그곳의 주인공은 자신의 얼굴 사진을 포토샵을 이용해 보정한 뒤, SNS에 올려 엄청난 미인으로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사진 속 사람은 자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달랐고, 이런 점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성형수술까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이 몽골로 여행을 떠나면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주위 사람들과 주변 환경들, 내 자신을 다시 보게 되는 그런 내용이었다. 이번 수학여행을 겪으면서 이 소설의 내용이 문득 생각이 났다. 사진이 실제를 담지 않으면 그것은 더 이상 사진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된다. 우리는 정말로 진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만에 여행이라는 것의 목표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여행의 목표는 원래 다들 제각각이지만 모두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일상을 탈출해서 다른 어디론가로 떠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인위적인 자세를 취해서 기계적으로 사진을 찍는 행동으로 인해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향하는 여행에서의 사진은 그저 내가 여행을 추억할만한 부수적인 어떤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 수학여행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음식을 먹기전이나, 특이한 장소에 가게되면 자동반사적으로 휴대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는다. 더 예쁜사진을 찍기 위해서 지금 현재를 포기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아닌가. 맛있는 음식을 가장 맛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금방 조리된 음식을 먹는 것이 제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맛있음을 직접 느끼기 보다는 그 맛있음을 담기 위해서노력한다. 모든 일의 목적이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된다면 그것은 곧 집착이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스럽게 만든다.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무척이나 의미있는 일이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글이나 사진 한 장으로 다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록이 우선시 되는 여행을 한다면 나는 나중에 그 사진을 봤을 때 무엇인가 느낄 수 있을까? 기껏해야 여기 바람이 많이 불어서 사진찍기 힘들었어.’ 정도밖에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많은 곳을 여행하고 사진도 찍을 것이다. 그것이 문화를 체험하러 갈 수도 있고, 일상을 탈출해서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갈 수도 있고, 혹은 무엇인가를 배우려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그 때 사진을 찍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사진과 더불어 그곳에서 의미있는 경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경험이 깃들어져 있는 사진을 찍었을 때, 우리는 진정한 기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의 권리

 


   얼마 전, 나는 실시간으로 화제가 되는 키워드를 보여주는 SNS에서 흥미로운 화제를 보았다. 바로 혐오할 권리라는 키워드 였다. 개인의 자유가 강조되는 요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권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꼭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에 대해 한 사람이 SNS에서 주장하길, ‘다른 사람이 나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을 혐오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라며 SNS를 뜨겁게 달구었다. (한참 동성애에 관해 떠들썩했던 순간에 나온 말이다) 우리는 정말 혐오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사람인 이상, 무엇인가를 혐오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무엇이든 있기 마련이다. 어떻게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있을까? 실제로 나는 오이를 싫어해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개인의 취향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상이 사람에게 간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자유권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에게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인권이라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혐오할 권리가 과연 다른 사람의 인권을 넘어서는 권리일까?

   만약 혐오할 권리가 정말로 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혐오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남에게 상처 줄 권리와 비난할 권리 등을 인정하게 된다. 한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 폭력 문제도 더 이상 처벌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인종차별 문제도 더 이상 문제가 아닌 혐오할 권리에 의한 당연한 권리 행사일 뿐이다. 내가 혐오할 권리를 가지게 되면 다른 사람도 혐오할 권리를 가지게 되고,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날아올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욕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동이다. 인권 그 이상의 권리가 있다고 하면 우리는 모두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혐오할 권리 이전에 혐오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혐오할 권리는 사회적으로 강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억지에 불과하다. 혐오 받는 대상이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혐오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처 받고 비난 받는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인권을 지킴으로써 서로를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혐오할 권리라는 것을 지켜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있을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모두의 인권을 위해 혐오할 권리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해야 하는 걸까? 그것은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특정한 이유로 싫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사람을 싫어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당연한 것처럼 혐오하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 그럴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테두리 속에서 자신의 인권도 지켜진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항상 다른 사람이랑 어울려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기본적인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점차 사회가 삭막해지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은커녕 서로 비난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에게 대하는 행동이 결국 나에게 그대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인권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다른 사람의 인권도 존중해주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인권이 지켜져야 나의 인권도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혐오할 권리를 주장하는 사태까지 나온 것에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누군가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다른 사람으로부터 혐오를 받지만, 누군가는 혐오를 받아본 적이 없이 혐오할 권리까지 주장한다. 사회 계층간의 소통이 그만큼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배려와 이해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신도 언제나 사회적으로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혐오가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더 이상의 혐오는 그만두고 모두가 다 같은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성이라서, 동성애자라서, 장애인이라서와 같은 말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도록 사회 구성원 전체가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모두의 권리가 지켜질 수 있는 나라, 그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좋은 나라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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