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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청소년온라인백일장 예심통과 작품입니다-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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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2,214회 작성일 15-08-1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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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요양원 문을 민다. 나는 안내 데스크로 가 엄마 이름을 대고 방 호수를 알아낸다. 올라가는 계단은 연신 삐걱거리는 소릴 내며 음산한 분위기에 공포감을 더한다. 이런 곳에 살고 있다니. 내심 그가 한심하게 여겨진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그렇지, 이런 데 엄마를 보내냐. 물론 그가 한 일을 탓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10년 후의 내가 저지를 짓이니까. 결국 탓하려면 나를 탓해야지.

나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두드린다. 안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다. 다시 한 번 두드리려고 하다가 방문이 열린다. 멍하니, 휠체어에 앉아있는 할아버지가 눈에 띈다. 엄마가 어디 있나, 살피는데 창가 쪽을 바라보고 의자 위에 앉아있는 엄마가 보인다. 눈은 약에 취한 것처럼 멍하니 풀려 있다. 내가 다가서자 엄마는 고개를 들더니 알 수 없는 말을 옹알거린다. 팍삭 늙어버린, 10년이라는 시간이 엄마를 80대 파파 할머니처럼 만들어놓았다. 나는 현재로 돌아가면 있을, 우울증 최면치료를 받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엄마를 떠올린다. 나는 지금 최면 치료 받고 있는 중이니까. 이곳은 최면 속이지만, 엄마는 똑같이 선명하고 또렷하다.

그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돌아가면 엄마 사진 많이 찍어 놔. 두뇌게임도 많이 시키고.

엄마는 애초에 핸드폰도 잘 못 다루는데, 뭐. 나는 조심스럽게 65살의 엄마와 마주 앉는다. 콧물이 코끝에 고드름처럼 대롱거리는 엄마다. 아무 말 없이 휴지를 찾아 건네니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받아 코를 킁킁 팽팽 풀어버린다. 엄마의 동공이 나를 담자 조금 커진다. 놀란 걸까? 10년 전의 고등학생 아들이 찾아와서 놀란 걸까.

하지만 엄마는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다.

공부해. 공부해. 넌 좆나 소설 못 써. 그러니까 공부해....... 배고파.

지금 나한테 하는 말 같아 뜨끔, 한다. 나는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 하나를 꺼낸다. 이걸 대신 엄마에게 읽어달라고 했던 그의 말이 기억난다. 그 다음에는 버리든지 찢든지 남한테 보여주든지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아직 어떻게 할지 결정하진 않았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종이를 펼친다. 나도 지금 처음 보는 것이다. 그는 어차피 엄마는 세 줄도 못 알아듣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읽어달라고 했다. 어차피 내가 쓴 마지막 글이야. 소설인지 아닌지는 각자 판단에 맡기고. 그건 꽤 긴, 두 쪽짜리 글이다. 이런 걸 유서라고 부르나. 이 정도 분량이면 대략 1200자 내외다. 대학 문예창작과 콩트 실기 분량. 나는 얼마 전에 기출 시제로 써봤던 콩트가 기억이 난다. 과외쌤은 그걸 읽어보고는 그냥 수능에 올인하라고 했다. 지는 얼마나 잘 쓴다고.

저기. 엄마. 내 말 좀 들어봐. 엄마는 소리에 자다가 홱 고개를 돌린 강아지처럼 내 쪽으로 목을 꺾는다. 그러고선 바싹 마른 입술 사이로 오빠야? 묻는다. 내가 세 살 때 죽었다는 아빠를 찾는 모양이다. 나는 종이를 쫙 펴들고, 입술을 오므렸다 핀다. 이거, 아들이 남긴 유서야. 잘 들어봐. 응? 아들이 쓴 유서니까.......

엄마는 들은 체 만 체, 코만 연신 문지르며 떡볶이, 떡볶이하며 중얼거린다.

“안녕, 엄마.”

목구멍에 뭐가 걸린 듯 말이 답답하고, 어색하다.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는지.

“내가 저번 주에 거기로 과일 바구니 보냈는데. 잘 먹고 있는 거 맞지? 그거 씻어서 먹어야 돼, 장사꾼들이 그걸 씻었을 리가 없잖아. 구두약으로 광냈을 게 틀림없어. 소진 씨가(엄마를 돌보는 간병인인 모양이다. 여자친구는 아니다) 잘 씻어서 거기 사람들한테 나눠주겠지. 골고루. 그래도 엄마가 제일 많이 먹어. 참외하고 포도 먼저 찜해놔. 그리고 냉장고에 넣고 시원하게 먹어. 알았지? 꼭 그래야 돼. 안 그러면 미지근해서 진짜 맛없거든. 그래서 엄마는 꼭 미리 씻어놓고 냉장고에 넣어놓잖아. 아니, 넣어놨었잖아.”

더 크게 말해. 순간 엄마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란다. 그러고 보니 내 말이 웅얼웅얼, 입 언저리에 달라붙어있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엄마가 듣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엄마는 죽은 게 아니야. 내가 속으로 생각한다. 살아있는 ‘엄마’지. 나는 알았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곤 주위를 한 번 둘러본다. 휠체어에 앉아있던 할아버지는 얼마 전에 스마트TV로 바꾼 텔레비전 앞에서 런닝맨을 보고 있다. 재미없다는 표정이다.

“그건 뭐 엄마가 더 잘 알겠지. 지금은 다 잊어버렸나.”

국어책 지문 읽듯 말 하나하나가 거슬거슬하게 입안 곳곳을 찌른다. 침을 삼킨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를 몰라서 다른 소설 좀 참고했어. 스티븐 킹 말이야, 엄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인 건 중학생 때부터 말해서 알잖아. 그 사람 보겠다고 미국 가고 싶다고 한 것도. 솔직히 내가 그 사람 한 번은 보고 죽어야지, 이런 생각은 들더라고. 근데 개꿈이지, 겨우 이번 달치 요양원비라도 벌어놨는데 무슨. <돌로레스 클레이본>이라는 그 사람 소설이 있는데 그 소설이 구어체로 되어있거든. 그렇다고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건 아니고.......(나는 말줄임표에서 얼마나 쉬어야 할지 고민한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소설 쓰고 있는 것 같아. 신춘문예 준비하는 것처럼.”

맞다, 돌아가면 스티븐 킹 새로 나온 신작을 마저 다 읽을 것이다. 처음으로 쓴 추리소설이라고 했다. 나는 엄마를 곁눈질한다. 엄마는 냉장고 앞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가고 있다. 나는 좀 더 잘 들리리라는 심산으로 다른 의자로 옮겨 앉았다.

“그래도 남의 거 또 표절한 건 아니야.”

켁켁, 헛기침을 한 뒤 나는 다시 읽는다. 엄마가 냉장고 문을 연다.

“그냥 형식만 참고한 거니까.”

일을 치르기 이틀 전, 그가 내게 김밥천국 스페셜 메뉴를 사주면서 말하길 대학교 3학년 때, 동기의 소설을 비스무리하게 베꼈다가 표절 신고 먹어서 1년 동안이나 휴학했다고 했다. 그때 내가 그런 짓을 왜 했느냐고 물으니, 그때 신춘문예 마감이 이주밖에 남지 않아서였다고 했다. 뭔 소리야, 난 절대 그런 짓 안 해. 그런 내 말에 그는 킥킥거리며 동의했다. 나도. 그런데 했다니까, 10년 뒤에 네가? 절박한 건지, 뭔지. 그는 술잔에 물을 따라 마셨다.

나는 다시 글을 읽는다. 싸구려 종이라 그런지 뒤에 오톨도톨한 볼펜자국이 만져진다.

“그런데 나 그때 엄마 되게 싫어했어. 내 편 들어주진 않고―들어줄만한 게 아니라는 건 내가 더 잘 알지만―걔들 따라서 나 욕했으니까. 지금이라도 전과해서 취직해라. 취직해라. 나는 아니라고 했잖아. 기억나지?(물음표가 심히 어색하다 음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1년만 쉬었다가 다시 복학할 거고, 그동안에 진짜 제대로 글을 써서 붙을 거라고. 알바를 할까 생각도 했는데 그러면 글도 잘 못 쓸 것 같더라고. 알바야 다니던 중에도 많이 했으니까. 그래서 1년 동안 푹 쉬면서 쓰기도 했는데....... 또 떨어졌지. 생각해보니까 나 그때 엄마랑 처음으로 술 먹었었다. 맞지?”

술이라면 질색하는 엄마랑 같이 술을 마셨다니. 나는 엄마를 곁눈질 한다. 변한 거라곤 늘어진 주름살과 터진 노른자 같은 눈동자뿐인 엄마가 무슨 노래리듬을 흥얼흥얼 댄다. 점점 소리가 커져간다. 휠체어에 앉은 할아버지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나는 괜히 주목받는 느낌으로 종이를 쳐들어 얼굴을 가린다. 다시 입을 연다. 여전히 국어책 읽는 기분이다.

“지금까지 뭐 하나 된 게 아무 것도 없어. 신춘문예나 무슨 공모전에 붙길 해, 뭘 해. 복학하려고 했는데 온전히 글만 쓴답시고 알바도 안 해서 등록금 때문에 또 휴학 했고. 그때 무슨 출판사 인턴? 그런 걸 하긴 했었는데 그것도 얼마 안 가 잘리고. 계속 딴 짓하고 공상만 한다면서. 지가 무슨 학교 담임도 아니고 별 지랄을 다 했지(엄마가 두 팔을 허공에 뻗더니 콘서트 장에라도 온 양 두 팔로 천천히 파도를 친다. 뭐하는 걸까). 엄마는 나더러 그거 하나 버틸 끈기도 없으면서 소설을 써? 차라리 가서 J.K.롤링한테 청혼이나 해라, 이 미친놈아. 이랬지. 근데 지금 생각해봐도 엄마가 내 평생 했던 말 중에 가장 웃겼어. 지금도 웃기고. 그 전에 난 영국으로 갈 비행기 값이나 달라고 했나.”

나도 모르게 킥킥, 웃음이 새어나온다. 엄마는 다시 멍하니, 빗방울이 타투를 새기는 창문을 응시한다. 그 얼굴에는 슬픔도 있고 웃음도 있고 어딘지 모를 화도 있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 중 얼마나 들었을까, 엄마는. 오히려 이쪽을 기웃거리는 할아버지가 더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어디선가 환청처럼 배나온 의사가 엄마를 만났냐고 묻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왜 이걸 엄마한테 읽어줘야 하는지 그에게(10년 후의 나에게) 따졌다.

자기가 쓴 글 자기가 소리 내서 읽어봐, 얼마나 쪽팔리는데. 그가 대꾸했다.

나는 엄마의 눈에서 뜬금없이 떨어진 눈물방울을 본다. 순간 퍼뜩 드는 생각.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건 러브레터도, 어버이날에 부모에게 보내는 감사편지도 아니다. 유서다. 지금은 죽고 없는 사람의 유서. 나는 다시 쓰디쓴 글자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세 살 때 죽은 아빠는 기억도 안 나지만―대신 아빠가 사줬던 그 무소 자동차 장난감은 생각나. 바닥에 하도 떨어뜨려서 문이 흔들흔들 고장 난 자동차―그때부터 엄마가 일을 나가기 시작한 건 알아. 아마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했던 일을 꼽아보면 완전 커리어넷이야. 엄마는 당연히 내가 고생하는 게 싫었겠지. 돈 걱정 없이 잘 살면서 번듯한 가정도 꾸리길 바랐잖아. 그래서 내가 초등학생때 담임이 글 잘 쓴다고, 작가하면 되겠다고 했을 때도 안 웃었어. 솔직히 엄마들 대부분 그런 말 들으면 좋아하지 않아? 아 정말요? 이러면서. 그게 지금도 기억나는 게 나도 좀 신기하네.”

종이 위 글자들이 내 연속된 기억의 고리들을 하나하나 연결해서 꿰맞추기 시작한다.

어제도 국어 선생님한테 칭찬받았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그게 밥 먹여주느냐고 했다. 수학시간에 졸지나 마라. 나는 혀에 침을 적신다.

“중학교 때 교내 백일장에서 장려상 은상 금상을 타도 엄마는 수학영어 경시대회 상이나 교과우수상은 왜 없냐고 했지. 공부를 못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아니어서 엄마하고 나하고 사이도 나쁜 것도, 친한 것도 아니었잖아. 내가 특성화고에 갔을 때 즈음 엄마 만날 운 거, 기억나지?(이제는 물음표가 익숙하다) 내가 문예창작과 간다고 했을 때는 엄마는 돈 없다고, 안 된다고 했잖아. 그거 거짓말인 거 다 알아. 다른 학과 보낼 돈은 있으면서, 그쪽은 절대 안 된다고, 나와서 대체 뭘 해먹고 살거냐면서 반대했잖아. 내가 그런 고민 수만휘 같은 데 올리기도 했었어. 처음에 엄마가 외고 준비시킬 때 알려준 사이트 말이야. 제목은 ‘문창과 나와서 뭐하고 사나요.’ 댓글이 엄청 많이 달렸었는데, 대부분이 다 ‘돈 벌러 문예창작과 가나요.’, ‘예술은 말 그대로 즐기는 거죠.’,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세요.’. 내가 그 댓글들 보여주면서 봐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데 왜 엄마 혼자서 그러냐고 따졌지. 무슨 보증인들도 내세우는 것처럼.”

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숨을 고른다. 왠지 모르게, 호흡이 가빠온다. 종이를 내리자 빤히 날 쳐다보고 있는 엄마가 보인다. 눈물 자국이 뺨 군데군데 움푹 패여 있다. 할아버지는 TV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처럼 휠체어에 등을 기댄 채 우리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다. 나는 잠시 동안 종이를 무릎 위에 내려놓고 바깥으로 시선을 돌린다. 눈물이 나려는 걸 깨문 혀의 통증이 가로막고 있다. 중3때 엄마하고 예고 때문에 싸운 기억이 난다. 한 달 동안, 거의 매일을 싸웠다. 나는 언젠가 성공할 거야. 하나를 파다보면 성공하게 돼있어. 내 말에,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어. 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재능은 아니야. 있는 지 없는 지도 모르고. 그런 위험한 거에 왜 인생을 걸어? 네가 무슨 J.K.롤링인 줄 알아? 그런 신화는 있지. 있는데, 그 신화의 주인공이 너는 아니야.

그는, 내게 이 유서를 건네준 그 나쁜 놈(그런데 그게 나다)은 자살을 했다. 그가 나한테 보여준 내 서른 살의 삶이란, 종일 알바하고 난 뒤 집에 와선 수전증 걸린 사람처럼 손 떨면서 빈 문서 1 띄워놓고 몇 시간씩 새벽 4시까지 시간 보내는, 폐인이 주인공인 배드엔딩 드라마였다. 마치 엄마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내게 그것을, 나의 30대를 보여주었다. 아니, 아니야. 이건 그냥 40대 배나온 의사가 하는 최면술 꿈속일 뿐이고, 나는 아직 18살 고3일 뿐이야. 인생의 육분의 일도 다 안 산 사람이라고. 그렇게 자위하며 나는 그의 삶을 계속 지켜보았었다.

아침 6시부터 야쿠르트 차를 끌면서 학교, 회사, 아파트에 배달을 하러 다니고 종일 노숙자처럼 이 아파트 저 아파트 옮겨 다니며 손님을 기다리는 그를 보았다. 손님이 오지 않을 때면 핸드폰으로 ‘신춘문예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카페에서 문학과 소설에 관해 키배(키보드 배틀)를 뜨느라 정신없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는 소재를, 영감을 얻는답시고 인터넷 서핑이나 게임만 하는 그를 보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똥오줌을 싸고 밥을 먹듯 당연한 기본 생리 중 하나인 것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빈 문서 10을 띄워놓고 손만 벌벌 떨고 있는 그를 보았다. 엄마에게, 그러니까 간호사가 도와주어 전화를 건 엄마의 하루 한 번 안부전화에 대고 나 지금 소설 쓰니까 이따 해, 라고 말하고는 야동이나 찾아다니는 그를 보았다. 줄거리 땡땡 해놓곤 몇 자 적다가 졸려서 ‘내일 이어서 해야겠다.’며 잠자는 그를, 나를 보았다.

그건 엄마가 입버릇처럼 해오던 예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글을 쓰는 중간중간에, 일상생활 곳곳에서 막연하게 느끼는 공포기이도 하다. 나는 슬퍼하며, 두려워하며 다시 종이를 든다. 10년 후의 엄마에게 눈물을 보이긴 싫다. 왠지 그러면, 진짜로 최면에서 깨어나서 나는 그런 삶을 살 것 같으니까. 엄마가 휠체어 할아버지에게 말한다.

나 똥 싸고 싶어. 나는 간호사를 부를까 하다가, 내버려두고 다시 종이를 집는다.

“진짜 대학 다니면서는 하루 종일 걱정만 한 것 같아. 신춘문예 붙고 문학상 뽑히고 하는 동기들은 늘어나지, 나는 합평시간에도 계속 까이기만 하지. 와, 진짜 빔프로젝트로 작품 하나 띄워서 돌아가면서 까는데 걔네들은 아무렇지도 않나봐? 교수님들 계속 따라다니면서 친해지려고 했는데도 반응은 없고. 언제는 동기들 회식 자리에서 나한테 물어보더라고. 너 성적으로 들어왔냐, 실기로 들어왔냐고. 실기로 들어왔다고 하니까 막 놀라면서 대체 그때 뽑은 교수가 누군진 몰라도 지금은 이 학교에 없을 거라고, 막 지랄을 떠는 거야. 엄만 지금 처음 듣는 얘기지. 그때 엄마랑 내가 거의 한 두 마디 하고 살았나? 동기들도 다 웃고. 그러면서 성적으로 들어온 애 가리키면서 얘가 너보다 100배는 더 잘 쓴다. 이래서, 예술도 공부 잘하는 애들이 해야 한다고 계속 개지랄을 한 거지. 물론 거기선 그냥 웃고 말았어. 그때가 신춘문예 얼마 안 남았을 때거든. 그런 데 붙으려면 교수들하고도 인맥관리 잘 다져놓아야 한다고 해서. 어쨌거나 표절로 내 무덤 내가 더 팠고......(잠시 엄마를 보니 꾸벅꾸벅 졸고 있다) 인맥은 개뿔, 자퇴해서 대학 등록금만 아낀 거지.”

콧물이 입안으로 들어가 짜디짠 소금기가 느껴진다. 나는 휴지 한 장을 더 뽑는다.

목이 말라온다. 입술에 침을 잔뜩 묻힌 뒤 다시 움직인다.

“내가 만약에 소설을 안 쓰고 공부를 해서 무조건 좋은 대학 취업 잘 되는 과 갔더라면, 하는 생각이 요새 많이 들었어. 그런데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이런 상황에서 그런 생각, 그러니까 만약 이랬더라면 하는 생각은 사람이면 다 하니까. 후회는 잘 모르겠어. 어쨌거나 그렇게 시간은 이미 지나갔잖아. 뭐 더 어쩔 수도 없는 거고. 솔직히 말해서, 재밌는 소설 하나라도 썼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 말고 내가 재밌는 거. 엄만 내가 소설 쓰는 거 자체를 싫어했잖아. 나라도 재밌어야지.”

엄마가 내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는지를 떠올려본다. 있을 것 같은데, 있을 것 같은데, 하다가 없다. 블로그에서 사람들이 달아준 댓글밖에 생각이 안 난다. 완전 잘 쓰시네요! 엄마는 아래로 질질 흘리면서 물을 먹는다. 내가 얼른 입에서 컵을 떼고 휴지로 닦아준다. 엄마는 그동안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더니, 갑자기 묻는다. 너 누구야?

나는 대답 대신 다시 읽기 시작한다. 거의 끝나간다.

“그리고 엄마. 내가 엄마보다 정신이 이상해진 건진 모르겠지만―엄만 치매니까―나 일주일 전에 나 만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 말이야! 가덕고등학교 18살 이성진! 처음에 내가 진짜 미친 게 아닐까 생각했어. 그런데 보다 보니까 맞더라고. 얼굴도 목소리도 뭐도 다 난데, 뭘. 거기다 웃긴 게 뭔지 알아? 백일장 낼 단편소설 가져와서는 나한테 어떤지 봐달라고 했어ㅋㅋㅋㅋㅋㅋ(이 부분은 그냥 건너뛴다. 전혀 웃기지도 않다) 아니 지가 쓴 게 내가 쓴 거고 내가 쓴 게 지가 쓴 건데, 참 나. 그래도 봐주긴 했어. 근데 더 큰 문제는 고치긴 고쳐야겠는데 어떻게 고쳐야 할 지 잘 모른다는 거. 그래서 그냥 비문이나 그런 것만 집어주고 끝났지. 남들 거는 어디가 잘못됐고 이상하고 내가 참 잘 까는데....... 내건 도통 모르겠더라. 그래도 재밌었어. 아마 이 글도 걔가―이렇게 말하니까 어색한데―읽어주고 있을 걸? 그나저나 걔, 다시 돌아가면 그거 상 탔으면 좋겠다. 내가 꼭 타고 싶었던 대회였거든. 그땐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지, 문제점을.”

마지막 두 줄이 남아있다.

“그래도 이번엔 찾아서 다행이지. 해결책도....... 찾았고.”

나는 전등에 줄을 묶는 그에게 물었다. 그럼 나는 서른 살에 죽는 거냐고. 그러자 그는 태연하게, 이건 현실이 아니라 네 최면 속이라며. 꿈 속 같은 거 아니야? 그런데 뭔 걱정을 해. 그럼에도 나는 입이 바싹 말라서 안마의자에 앉아있는 양 몸을 떨었다. 그는 의자 좀 갖다달라고 했다. 나는 야쿠르트 차에 끼고 다니는 술집 접이식 의자를 가져왔다. 그는 거기에 올라섰다. 의자에 올라서서 허리벨트를 말아 만든 구멍으로 목을 집어넣으려 했으나, 키 170센티미터에 그 의자는 너무 낮았다. 할 수 없이 뭘 더 쌓아야 했다. 그는 베란다에 가면 폐지가 많이 쌓여있으니 대충 가져오라 했다. 가져오면서 얼핏 본 바로는 그 폐지들은 모두 그의 소설들이었다. 그는 폐지를 의자 위에 쌓고, 다시 올라갔다. 누렇게 변색한 종이 위에서 발가락 열 개가 꿈틀거렸다.

하나만 묻고 싶어. 내가 말을 꺼냈다. 그는 금방이라도 5센티미터 위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처럼 서있었다. 그럼 나는 어떡해야 돼?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28개 이가 제방 역할을 하며 막고 있었다. 나는....... 나는 돌아가면, 돌아가면 공부해야 되나? 어차피 서른 살에 그쪽, 아니....... 나처럼 자살할 거니까? 경영학과나 경제학과로 가야 하나? 재수?

.......이 씨발놈아. 눈앞이 부옇게 흐려졌다. 내가 30살에 죽으려고 지금 개고생하는 줄 알아? 나는 코를 연신 들이키며 소리쳤다. 그는 턱밑으로 허리벨트를 갖다 대며 별일이라는 듯 대꾸했다. 나는 네가 계속 글 썼으면 좋겠는데. 대학도 네가 원하는 데 가. 계속 소설 써. 내가 지금 죽는다고 해서 10년 전부터 소설 쓰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 내가 소리쳤다. 그럼 왜 죽는 건데? 왜 죽으려고 하는 거야? 글 쓰려고. 그는 킥킥댔다. 자살하려면 유서 있어야 되잖아. 그리고 네가 하는 게 무슨 개고생이냐.

나는 그에게서 허리벨트를 뺏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미 그의 발뒤꿈치는 들려있었다. 그저 발끝만 들면 되는 상태였다. 발끝에 밀려 떨어진 종이 몇 장이 허공에 흩날렸다.

나는 마지막을 읽는다. 또박또박, 기계가 말하는 것 같이.

“프린터로 뽑은 내 소설들은 그, 폐지 줍는 할아버지 있지? 그 할아버지한테 좀 줘. 그 할아버지 내 야쿠르트 엄청 많이 드셨거든. 그 돈으로 또 딴 데서 사 드실 수 있겠지.”

엄마는 아무 말이 없다. 나는 다 읽었다고 말한다. 엄마는 계속 자고 있을 뿐이다. 할아버지는 어느 새 TV쪽으로 몸을 고정시키고 런닝맨을 보며 흑흑 숨넘어가는 소리로 웃고 있다. 아까 듣고 있던 것 같았는데. 재미없었나 보지.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마지막 글인데.

어느 새 눈을 뜨고 있는 엄마다. 엄마의 환갑 넘은 주름살이 조금씩 당겨지고 멍하던 눈도 다시 빛을 띤다. 엄마는 두 손을 꼭 쥔 채 울먹이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 글이 통한 건가? 진심이? 하지만 이내 엄마는 뿌직, 하는 소리로 똥 쌌다는 걸 알린다. 그 할아버지는 얼른 문을 열고 간호사를 불러댄다. 또 똥 쌌어, 똥! 에으, 아들은 일주일째 찾아오지도 않고, 쯧.

나는 냄새가 빠져나가도록 창문을 열어둔 뒤 종이를 다시 집는다. 엄마는 술 취한 사람처럼 헤벌쭉, 혀를 내밀며 침을 뚝뚝 흘린다. 그러면서 밖으로 걸음을 딛는 나를 보곤 말한다.

어디 가.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요양원을 나온다. 갑작스레 짜증이 치민다. 나도 모르게 손아귀에 들어간 힘에 종이가 찌그러진다. 자, 이제 일어나세요. 배나온 의사의 말이 허공에서 울려 퍼진다. 나는 네, 라고 대답도 못하고 깨어나지도 못한다. 의사는 계속해서 내가 깨어나도록 유도한다. 몸이 가볍게 둥실 떠오르는 기분이다. 손 안 구겨진 종이의 각진 모서리가 손바닥을 찌르는 게 느껴진다. 나는 그 종이를 꽉 쥐고 가져가려고 하지만, 그것은 물에 젖은 휴지처럼 흐물흐물 손가락 사이사이로 흘러 빠진다.

손이 축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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