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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청소년온라인백일장 예심통과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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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1건 조회 2,660회 작성일 15-08-1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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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시인의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제목이 가끔 생각이 난다. 일을 그르쳤을 때, 믿었던 친구가 등을 돌렸을 때, 부모님의 진심을 미처 알지 못했을 때, 그토록 매달렸던 일이 허사라는 것을 알았을 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일들이 나중에 큰 화로 다가왔을 때, 그 막막함과 지푸라기 한 올 붙잡았던 마음마저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의 그 심정, 그때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 어리석음에 발등을 찍고 싶은 것이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앞만 보고 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길, 걸어온 길은 돌아보면 환히 보인다. 곧은길이라 믿었던 길이 구불구불 휘어져 있고 똑바로 걷고자 했던 걸음이 어지럽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속고 또 속고 믿고 또 믿으면서 길을 간다. 지금 알고 있는 반이라도 알았더라면, 그 상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미나리를 다듬던 어머니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내 손가락 마디만한 달팽이가 개수대 안에 몸을 늘어뜨린 채 있었다. 달팽이는 낯선 환경에 처음에는 죽은 척 하고 있더니 차츰 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뾰쪽한 촉수를 이리저리 움직여 희미하게 감지되는 소리의 느낌으로 주위의 위험을 타진하는 듯 몇 번을 확인하고 나서야 천천히 기어갔다. 기어가면서도 더듬이를 자꾸 흔들어댔다. 그리고 한참 만에 싱크대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이것을 바라보다 손끝으로 툭 건드렸더니 주르르 미끄러진 달팽이는 잠시 당황한 듯 주춤해 있다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타일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을 했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는 달팽이는 이전보다 더 많이 더듬이를 흔들어댔다.

쉼 없이 길을 가는 달팽이는 아무리 험한 길일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몸 하나 붙일 데 없는 가파른 벽을 오르면서도 커다란 눈만 껌뻑일 뿐,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묵묵히 길을 간다. 그 굽힐 줄 모르는 삶의 희망과 원동력은 그의 등에 짊어지고 있는 집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모든 것을 담은 우주와 같은 집, 그 집을 평생 짊어지고 사는 달팽이, 돌아보니 이제 달팽이는 싱크대 벽을 거슬러 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내 삶이 쉬워도 힘들어도 운명을 제 등에 매달고 묵묵히 살아가는 달팽이, 그를 바라보다 저녁이면 축 처진 어깨로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나무에도 길이 있다. 참나무는 밑동을 하늘로 향하게 해서 태운다. 나무의 길대로 태워야 좋은 숯이 되는데 참나무의 길은 하늘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뿌리 쪽으로 나 있는 것이다. 땅속에 뿌리 내리고 살아있는 동안 나무는 순순히 갈 수 있는 길, 가고 싶은 그 길을 땅속에 꼭꼭 숨겨두고 길 아닌 길을 무성하게 피워 올린 셈이다. 무언가 거역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반대의 길을 강요받은 것은 아닐까? 나뭇가지와 잎과 열매들은 나무의 아픔 혹은 상처가 아니었을까? 가끔 누군가의 아픔이나 상처가 이 세상을 푸르게 한다. 잎을 달고 꽃을 피우고 새를 품고 가지를 뻗어 하늘을 더듬어 나가는 동안 뻗어나갈 듯 자꾸 막히는 캄캄한 나무의 길은 얼마나 많은 갈등을 했을까. 아무에게도 내색 않은 갈등을 몸속 깊이 숨겼다가 죽어서 숯가마에 들면 섭씨 6,000도의 불꽃에 활활 몸을 맡기고 엿새 밤낮을 타오르며 거꾸로 피워 올렸던 힘들고 고단했던 길을 비로소 뜨겁게 밝히는 참나무, 그리고 숯, 또 하나의 길로 완성되었을 그 순도 높은 인내.

내가 세상 밖으로 나갈 때 그렇게 뜨겁고 깨끗한 길 하나 낼 수 있을까.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 잃어버린 우리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양한 삶의 단면들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수많은 질문들을 허공에 던지다가 불현듯 복잡한 수학문제를 풀어낸 것처럼 그 미묘한 희열 속에 전율하면서 축복 어린 마음으로 가거나 울면서 가거나 푸념으로 가거나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길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앞에 놓인 길에는 굴곡도 많고 곡절도 많지만 서로를 생각해 보고 타인을 이해 해 가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간다는 것, 그것은 우리 자신 앞에 놓인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거룩하고 숙명적인 사색의 본능의 길인 것이다.

 

 

 

 

 

 

우리 집은 3층 집이다.

내 친구는 이번에 혁신도시에 넓은 마당이 딸린 새 집으로 이사를 간다네, 초전동 단층집으로 이사를 간다네, 하지만 양 옆 상가건물에 둘러싸여 있는 3층 건물의 우리 집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찬 냉기가 우글거린다. 남들은 한 집에서 온 식구가 정답게 살며 자식들이 성장해감에 따라 점점 가족 수를 늘여 집을 늘려오거나 남의 가족이 들어와서 옹기종기 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집은 2층과 3층은 모두 사무실로 되어 있고 한낮에도 햇볕이 잘 들지 않는 1층에 세 식구만 달랑 살고 있다.

큰 도로에 접해 있는 우리 집은 인도에서 스무 계단만 내려오면 집으로 들어올 수 있다. 길 위에서 보면 우리 집은 2층이 1층으로 보이고 3층이 2층으로 보이는, 집전체가 2층집으로 보이지만 언덕 아래에서 보면 3층집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주요관공서 앞에 있던 우리 집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 옛날, 관공서를 찾는 민원인들로 점차 교통량이 많아지자 2차선이었던 길이 왕복 4차선으로 넓혀지고 강위로 놓인 다리도 넓혀지면서 대로가 덩달아 1층 높이로 돋워져 집 한 면이 길 위에서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요즘도 종종 택배기사가 집 위치를 묻곤, ‘아, 그 반 지하 말이지요. 한다.

양 옆으로 상가 건물이 붙어있는 우리 집은 옆 건물과 1미터 50남짓 공간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마당 한 뼘조차 없어 내가 좋아하는 채송화나 봉숭아를 키울 공간이 없다.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 큰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세 가구가 아옹다옹 살면서 누구 집에 경사가 있다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축하와 위로를 해주며 한 가족처럼 살았는데, 내가 중학에 들어가자마자 부모님이 하던 식당이 망하면서 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전 보다 더 넓어진 내 방에 좋아했지만 그것도 잠시, 주위에 또래 친구 하나 없고 학교도 멀어 불만만 높아 갔다.

내가 나고 자란 집은 대문 옆 마당에 겨울엔 붉은 동백꽃이 피어나고 달 밝은 밤이면 내 누이의 속살 같은 하얀 목련이 피어나 온 마당이 향기가 가득했다. 장독대 옆 수줍은 소녀의 볼 같은 백일홍이 흐드러졌고 담장 아래 해마다 노란 민들레와 나팔꽃, 봉숭아도 피어나 매일같이 마당에서 꽃밭에 물을 주고 땅강아지처럼 흙에 뒹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흙을 만지며 보냈던 유년시절과 달리 지금은 발에 흙 한 톨 묻힐 수 없는 집에 살다보니 피부 가려움증과 알레르기 비염에 재채기를 달고 다닌다.

우리 집은 아침에 비를 들고 쓸 몇 평의 마당도 없고 물뿌리개를 들고 나설 손바닥만 한 화단도 없어 내가 나고 자란 고향집 앞마당의 흙을 항상 그리워하고 있다. 모처럼 식목일 같은 휴일이라도 맞이하면 극락에 핀다는 부처 손 화분에 물을 뿌려주며 햇볕을 쬐이지 못해 시름시름 죽어버린 화초를 아쉬워하다 집 앞 근처 강둑으로 나가 수영버들 그늘 아래에서 우울한 마음을 푼다. 간혹 어떤 때는 계단 틈새를 뚫고 쑥쑥 자라 올라오는 민들레꽃 홀씨처럼 훨훨 날아가는 꿈을 꾸지만 먼 이국땅으로 유학 간 누이만 돌아오면 큰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자는 어머니 말에 벙어리처럼 책만 읽다가 방으로 들어간다.

옛 법원 앞에 있는 우리 집은 작년에 법원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주위에 빈 상가가 늘어나고 밤이 되면 사람 왕래가 뚝 끊겨 마치 유령 도시처럼 적막하기만 하다. 해가지면 사무실들이 서서히 문을 닫은 후에 허리 굽은 관리인 할아버지가 계단수를 세듯이 천천히 내려와 큰 현관문을 닫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건물 앞뒤를 한 바퀴 휘둘러보시고 각자 방에 있던 우리 모두도 마음의 문을 닫고 하루를 정리하게 된다.

저 멀리 동쪽 하늘 붉은 햇귀 열릴 때 쯤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새벽 조간신문보다 먼저 강 안개가 우리 삼층집을 포위하면 아침이 시작된다.

대궐 같은 집을 나선다. 버스를 탄 사람 모두 외박을 한 사람처럼 피로에 지쳐 버스 손잡이에 가을나무 입새처럼 매달려 있다. 집 없는 노숙자, 도시에 방 한 칸 세 들 수 없어 고시원을 전전하는 사람들, 내가 자랑할 수 있는 집은 멋지고 근사한 높은 집이 아닌 온 가족이 아옹다옹 모여 사는 집이다. 할머니 옛날이야기 속의 집, 꿈속의 집, 바닷가 언덕 위의 집, 하루 종일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지친 몸을 편히 쉴 수 있는 농부의 집,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하루의 이야기꽃을 피우는 그런 집이다.

언덕 위의 푸른 풍경이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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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탄님의 댓글

백탄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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