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부
제7회 온라인청소년백일장 예심통과자ㅡ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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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아웃
아침은 간단하게 토스트.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잠옷차림으로 아침을 했다. 그녀의 하루는 간단하게 흘러갔다. 점심시간까지 허기지지 않을 아침상을 차리고, 남편 출근을 준비한다. 그 뒤 아들 등교 준비까지 마치면 청소를 시작한다. 햇빛에 이불을 말리고 집 안에 있는 먼지를 청소기로 빨아들이면 그녀만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무도 없는, 햇살 가득한 낮 동안 보지 못한 드라마 재방송을 챙겨보고 찰나의 달콤한 낮잠을 자면 다시 엄마로, 아내로 돌아갔다. 저녁은 한식. 그녀는 매일매일 반찬을 걱정하고, 무더위에도 후끈거리는 주방에 서있었다. 그렇다고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가 직업이었다면 제일 많은 월급을 받았을 거야. 이보다 더 사명감으로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엄마는 울면서 엄마라고 외칠 때 가장 위대한 거지. 그녀는 중얼거렸다. 엄마, 먹을 건. 금방 들어온 아들이 신발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그녀를 향해 외쳤다. 남편도 오자마자 배고프다는 말만 하고는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엄마 고기는 없어? 군것질을 하고 와서 밥을 깨작거리던 아들이 더 요구했다. 오늘은 대충 먹고, 내일 더 맛있는 거 해줄게. 그녀는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전날 한숨을 가득 집안에 불어넣으며 퇴근한 남편이 술을 진탕 먹고 잠에 들었다. 그녀도 같이 자는 1번방에 술을 먹은 진상투숙객이 대자로 뻗어있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을 차려야 하는 그녀가 알람소리대신 옆에서 코를 드렁드렁 구는 소리에 깼다. 그녀는 홧김에 발로 걷어차며 남편을 깨웠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말이를 그릇에 담았다. 남편은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채로 나와 속이 쓰려 아침을 못 먹겠다고 말하고 바로 세수를 하러 갔다. 그럼 빨리 좀 말하지. 그녀는 밥그릇에 있는 밥을 전기밥솥에 다시 넣고 반찬을 반찬통에 담아 냉장고에 두었다. 남편은 결국 아무것도 먹지 않고 출근했다. 뒤이어 아들을 깨우라는 알람이 울렸다. 그녀는 2번방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아들을 일으켜 세웠다. 좀만 더 잘래. 2번방도 진상손님들로 가득 차기는 마찬가지였다. 2번방 투숙객이 집을 나섰을 때 그녀는 청소기를 꺼내들었다. 침대에는 벗어놓고 간 허물이 늘어져 있고, 책상에는 지우개가루로 만들어진 지렁이가 꿈틀거렸다. 그녀는 옷을 개키고 책상 정리까지 끝내고 굽은 허리를 쭉 피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녀가 몸을 조금 움직일 때마다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라리 그냥 호텔에서 일하는 게 더 쉬웠을 것 같아. 그녀는 임신을 하기 전 호텔에서 일을 하는 호텔리어였다. 대부분 투숙객 편의를 제공하는 로비에서 일을 했다. 말끔한 정장을 입고 항상 밝은 목소리를 내며 인사를 하는 게 그녀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우스 키핑일 뿐이었다. 침대를 깨끗하게 정리하는, 바닥과 서랍장의 먼지를 깔끔하게 제거하는 일. 그녀는 가끔 자신이 일했던 호텔을 떠올렸다. 그녀는 늘 칭찬을 받는 직원이었고, 실수를 하는 일도 없었다. 투숙객들이 그녀의 태도에 만족했고, 남편 역시 이런 모습에 반해 청혼을 구했다. 그녀는 남편을 호텔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가 로비에서 일하고 있을 때 다른 지점 출장으로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하룻밤을 지냈다. 점점 출장이 잦아졌고 둘은 마주칠 때가 많았다. 손님과 직원이라는 단순한 관계임으로 얼마 가지 못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결혼까지 이르렀다. 프러포즈하면서 더 멋있게 살게 해준다고 약속했지만, 호텔 근처도 가본 지 오래였다.
엄마, 내 옷 빨았어? 그거 내일 입고 가려고 꺼낸 옷이란 말이야. 왜 물어보지도 않고 맘대로 하는 거야. 매번 빨래하기도 힘들게 하루에도 여러 벌씩 갈아입는 아들이 그녀에게 짜증을 냈다. 네가 그럼 다 알아서 해. 그녀가 속으로 백번이고 외친 말이었다. 아들은 침대에 걸터앉아 꿈쩍도 하지 않고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청소기가 작동을 멈추자 남편의 크디큰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문 앞에 가방을 받아들려고 나온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방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야간 근무는 계속되었다. 사실 출근과 퇴근은 없었고, 쉬고 싶다고 해서 쉴 수 있는 날이 없었다. 2번방에서는 예약한 서비스보다 더 많은 서비스를 요구했다. 잘 밤에 무슨 디저트야.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제일 편해야 할 집이 불편해졌다. 편히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일을 해야 하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장기투숙중인 1번방 투숙객은 점점 말이 줄고 애정표현이 줄었고, 간단한 말만 오갈 정도로 무뚝뚝해졌다. 그녀는 이러한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에 깊이 빠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뜨는 달이 유난히 어스름하게 빛났다.
그녀가 투숙객들을 위해 밥을 차리고 떠난 곳은 전에 일하던 호텔이었다. 말끔한 정장과는 달리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은 그녀는 호텔 앞에서 잠시 주춤거렸다. 어서 오십시오. 머리를 한껏 쪼아 올린 여자직원이 그녀 앞에서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했다. 그녀는 여자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고, 고개만 살짝 숙였다. 그녀는 혹시나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기대하며 자동문을 통과했지만, 그녀가 아는 얼굴이 한 명도 없었다. 동료 중 제일 먼저 결혼을 한 그녀 뒤로 다 떠난 것인가. 한 명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녀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들키는 것보다 나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705호 방으로 주세요. 그녀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직원은 당황한 듯 했지만 마침 그 방이 비어있어 네, 라고 대답했다. 705호는 그녀가 호텔 일을 그만 둔지 10년이 지났음에도 결코 잊지 않는 방이다. 남편이 그 방에서 청혼을 구했던, 까마득한 기억이 새겨진 곳. 신혼 초 가끔 남편에게 방 호수를 물어보고 못 맞추면 삐지기도 했다. 내가 지금 당신의 예쁜 모습 평생 간직하게 해줄게. 남편의 프러포즈 멘트였다. 개뿔이나, 프러포즈에 대한 기억을 차츰 떠올린 그녀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떻게 보면 남편은 그 약속을 지킨 것일지도 몰랐다. 늘 집에서 일 하는 모습을 지켜주니까. 그녀는 지금 일어난 모든 문제가 이 방에서 시작되었다고, 이 방 때문에 이렇게 된거라고 생각하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어, 이게 누구야. 룸 키를 받고 축 처져 걷던 그녀의 어깨를 누군가 잡았다. 옆에서 같이 손님의 방문을 반기던 양씨였다. 얼굴에 주름살이 생긴 것 말고는 달라진 점은 딱히 없었다. 이름 옆 써져 있던 ‘직원’이라는 말이 ‘지배인’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달라진 양씨의 위치에 자신이 더 초라해져 숨어들려고 했다.
“어, 오랜만이야. 여기서 다시 만날 줄 몰랐네.”
“그러게. 언니, 잘 지냈어?”
같이 입사했지만 그녀보다 나이가 많았다. 호텔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가끔 술 한 잔 나누며 연락하던 사이였다. 애는 잘 컸는지, 호텔에 왜 왔는지, 혼자 왔는지. 그녀에 대해 궁금한 게 수두룩했다. 우리 어디 앉아서 이야기할까. 방으로 가려던 그녀를 붙잡고 양씨는 직원 휴게실에 그녀를 데리고 갔다.
“언니는 변한 게 없네. 내가 연락한다는 게 이렇게 돼버렸네.”
“그러니까. 연락 좀 하고 살지. 하하. 장난이고, 나도 호텔 일로 바빠서 연락을 못 했어. 먼저 해야 하는 건데.”
“결혼은 했어?”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는 어색함에 말도 잘 하지 못했지만 예전과 같이 대하는 양씨의 태도에 금방 편해졌다. 밝은 양씨의 미소도 잠시 그녀의 질문에 양씨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승진하고 나서 결혼하려고 했는데, 아직도 짝이 없네. 나는 언제 가려나. 승진 준비로 바쁠 때는 외롭다는 생각조차 안 들었는데 요즘 혼자 자는 게 너무 싫더라고.”
그녀는 지배인이 된 양씨가 부럽던 것도 잠시 홀로 산다는 말에 질투심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그래도 언니는 원하던 지배인도 되었고, 잘 살고 있잖아요. 그녀는 진심이 덜 담긴 말을 꺼냈다.
“그런 거지? 그래도 혼자 쇼핑도 하고 잘 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호텔 일을 그만 두면 나는 뭐하고 살아. 옆에 내 사람 하나 없을 텐데. 그건 너무 슬프잖아.
양씨의 말도 완전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양지배인님, 확인해주실 게 있습니다. 양씨 앞에 놓여 있던 무전기에서 소리가 나왔고, 양씨는 다음에 또 만나면 많이 이야기하자며 자리를 떠났다. 그녀 역시 양씨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다시 향했다. 많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위로가 되었다. 호텔 안은 익숙한 구조였지만 걸을 때마다 어색하게 느껴졌다. 한걸음, 그녀가 투숙객의 콜을 받고 구두소리를 내며 뛰어가던 702호. 또 한 걸음,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신고접수를 받아 다녀간 704호. 방을 다 스쳐가 705호 문을 열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와 바로 침대에 누웠다. 호텔에서 할 수 있는 것도, 할 것도 딱히 없었다. 옷도 안 챙겨와 입고 온 옷 그대로 이불 속으로 꿈틀대며 들어갔다. 한낮이라 아무런 소리도 없이 고요한 적막에 휩싸였다. 그녀는 침묵을 깨고 텔레비전을 틀었다. 마침 코미디 프로그램 재방송 중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광대가 아프도록 웃어본 지가 언제인지 떠올렸고, 떠올리기도 힘들 정도로 희미해 코미디를 보고 마음껏 웃고 가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하나둘 코너가 바뀌는데도 감동 다큐멘터리를 보는 거라고 할 정도로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방청객들이 광대뼈가 부러지도록 웃을 동안 그녀의 눈꺼풀은 차츰 가라앉았다.
“이게 그렇게 웃기나.”
자신이 안 웃는 게 더 이상한 건가, 이렇게 웃음이 사라져버려 헛웃음도 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쳐다봐도 웃음을 찾기는커녕 축 처지는 눈꺼풀을 올리기도 힘들었다. 방 안에는 개그맨들의 우스꽝스러운 말들과 웃음을 보이는 방청객들의 소리 말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여행을 가는 예능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전화도 잘 오지 않는 그녀의 핸드폰이 진동에 서랍장 위에서 팽이처럼 흔들거렸다. 아들의 전화였다. 엄마, 나 찰흙 사가야 돼. 아빠한테 사달라고 해. 엄마 오늘 집에 안 가.아들의 전화를 받고 그녀는 다시 엄마로 돌아가야 하나 흔들렸지만 끝내 마음을 붙잡았다. 아들은 집에 안 들어온다는 말에 왜, 라고 계속 물었지만 그녀는 엄마라는 게 너무 힘들어서, 라고 대답하지 않고 어디 좀 왔어, 라고 답했다. 아들은 알려주지 않자 포기했는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아들, 미안. 엄마 좀 쉬어야 해.
전화를 끊고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그 때, 벨을 누가 눌렀고 문을 열고 나가자 복도에 있던 직원이 스테이크를 식탁에 올려다 주었다. 양지배인님이 전해달라고 하십니다. 직원은 그녀에게 메모지 한 장도 같이 건넸다. 요즘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많이 지쳐 보여. 이거는 특별선물. 잘 쉬다 가고 또 만나자. 그녀는 얼떨결에 받은 저녁식사에 기쁘기보다 망설여졌다. 애들은 밥을 어떻게 먹으려나. 해놓은 밥도 없을 텐데. 그녀는 집을 나서서도 온통 가족 생각이었다. 일부러 가족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스테이크만 썰었다. 고깃결을 따라 썰려고 칼을 들었을 때 또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남편의 전화였다. 아, 어디야. 애 준비물도 나보고 사라했다며. 당신은 뭐 하고 나한테 시키는 거야. 조금 언성이 높아진 남편의 말에 그녀 역시 언성을 높였다. 나는 몰라, 당신이 애들 밥 좀 챙겨. 준비물도 잊지 말고. 나 오늘 집에 안 들어가니까 알아서 청소도 하고 그러란 말이야. 뭐 준비물은 꼭 내가 사야 되는 거야? 됐으니까 끊어. 그녀는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졌고, 다시 칼질을 했다. 고기를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넘겨 속이 더부룩해졌다. 그녀가 있는 호텔 주변 호텔 룸 불빛이 베란다 창문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텔레비전 대신 베란다를 쳐다보았다. 젊은 남녀가 서로 안으며 불빛보다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고, 하우스 키핑이 침대 위 이불 주름 하나 남기지 않으려 손으로 탁탁 털었다.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며 입에 넣은 고기를 우물거렸다. 서비스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녀는 음식물을 다 넘기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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