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부
제6회 청소년온라인백일장 예심통과 작품입니다-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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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
단추가 풀려나간 자리에
옅은 그늘이 졌다
남은 단추들을 잠글 때면
삐져나온 실밥이
내 손가락을 간질였다
두 눈을 감고도 단추를
쉽게 풀고 잠그던 날들
어느새 빛이 바랬다
나는 지난날 잔뜩 늘어진 채
덜렁거리던 단추를 보고도
모른척하곤 했다
단추의 말로는 아슬아슬했다
허공에서 버둥거리던 몸짓,
내 머릿속에 흐릿하게 남아 있다
나는 여백을 채워 넣는 법을 몰라
궂은 단추들만 만지작거렸다
백색 단추에 새겨진
자잘한 균열들,
내 손 끝에 와 닿았다
늘어난 단추 구멍만이
내 가슴께에 머물고 있다
지붕 위의 늙은 고양이
모호했던 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간
잠들었던 고양이의 귀소본능이
서서히 깨어났다
좁은 그늘 아래에서
간결하고도 끈질긴 하루가 시작되었다
한낮의 그늘은 깊었다
보라색 나팔꽃이 고개를 든 지 오래
드문드문 털이 빠진 꼬리는
더 이상 허공을 행갈이하지 않았다
늘어진 전깃줄에는 어린 참새
몇 마리만 다녀갔다
눈부신 아침 햇살 때문일까
고양이는 마른세수가 낯설었다
목적 없는 호흡은 다감함을 잃어갔다
웅크린 몸만 일정하게 오르내렸다
고양이는 담장을 뛰어내리는 법을 잊은 채
날이 선 시선으로 흐릿한 초점을 갈무리했다
낮은 보폭을 내딛을 때면
무딘 발톱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긴 하품이 아닌 잦은 기침을 내뱉었다
갸르릉 울음 섞인 비명만 허공에 쌓이고 있었다
내 안의 문
내 안의 문은 키가 컸다
문에는 손잡이가 없었고
문은 꽤 오랫동안 잠겨 있었다
문의 테두리에서는 밝은 빛이 새어나왔다
희미하게 스며든 빛을 보며
나는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를 가늠했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내게 또렷하게 닿지 못했다ㅣ
문에 귀를 가까이 대고 들어봐도
어물어물 형체 없는 낱말뿐이었다
나는 가끔씩 옅은 불빛아래
내 그림자를 바라보다
조각 난 언어들을 머릿속에 쌓아올리곤 했다
잊고 있을 때 즈음 낮게
울려 퍼지던 노크소리
문 너머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날마다 바뀌었다
나는 문을 쓰다듬으며 노크소리에 답하지 않았고
엷은 나무결만 손끝에 와 닿았다
간혹 닫힌 문은 열렸고
문은 항상 안에서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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