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부
제6회 청소년온라인백일장 예심통과 작품입니다-이다현
페이지 정보

본문
화석
새 시대를 맞이하는 나의 방,
창고의 문 틈 사이로 그동안
쌓여온 퇴적층이 보인다
켜켜이 맺힌 습한 선반 위
뽀얀 먼지가 앉아있는 시간
내 손에 들려있던 유년시절이
유적지가 된 나의 창고에
화석이 되어 남아있다
나는 마치 고고학자같이
세월의 흔적 속에서 추억을
조심스레 꺼내어 살펴본다
발자국처럼 찍힌
나의 선명한 일대기를 읽는다
석회로 본을 떠내고
뼈를 다시 맞추는 작업이
반 세기동안 이루어지는 동안,
붓질을 따라 흩어지는
먼지가 유년기 저편으로 날아간다
언젠가 깊숙이 터를 잡아놓은
내 마음 속의 박물관
노끈으로 묶은 화석을 들고서
나는 추억을 진열하러 간다
오늘따라 기억이 사라진 창고가 넓다
지갑
만개한 조명의 온기 아래
진열되어있는 가방들 사이로
바이올린 소리가 유영한다
차가운 타일바닥 위로
얼마 전 걸친 가격이 달려있다
무거운 모피코트를 걸치고
매일 같은 자세로 서 있는 나,
사람들은 투명한 쇼윈도 너머로
창백한 플라스틱 몸을 바라보며
하나 둘 올라오는 욕망을 삼킨다
단순한 알파벳과 기호 몇 개로
하늘 높이 솟아오른 몸값들
그 숫자들을 이름표처럼 내걸고
걸어가는 여자의 손에는 쇼핑백만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연신 허리를 숙이는 점원들 사이에서
값비싼 이름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여자는 손바닥만 한 카드를 꺼내어
오늘을 결제해 나간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질투가
가격표처럼 눈꼬리에 달려 있다
저마다 자신의 지갑을 꼭 쥔 채.
전염
오늘도 새로운 단어가 잉태한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동그랗게 모여 앉은 아이들의
액정 속에선 자음이 흘러넘친다
틀 속에서 자라난 10대의 암호들,
발음마다 감염된 입에선
방금 건져 올린 말들이 펄떡인다
거품처럼 몸을 부풀리는 낯선 언어는
어느새 그들만의 상징이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신기록을 세우며
랜선 위를 달리는 단어들은
점점 자신의 정체를 퍼뜨린다
마치 바이러스가 퍼지듯 번져나간다
가지처럼 뻗어나가는 감염을 막으려
방호복을 입고 교실로 나서는 과학 선생님,
백신을 위해 스마트폰을 만져보지만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흩어지는
단어의 흔적만 지문 끝에 남는다
한 아이의 입술 사이로 흘러내린
말은 검푸른 잉크 방울이 되어
교실이라는 수조 안으로 뿌리내리고
전염되어가는 그들만의 신조어는
오늘도 학교 전체를 물들이고 있다
- 이전글제7회 온라인청소년백일장 예심통과자ㅡ서태란 17.06.21
- 다음글제6회 청소년온라인백일장 예심통과 작품입니다-이소윤 15.08.1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