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부
제6회 청소년온라인백일장 예심통과 작품입니다-김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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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기억
냉동고 한구석
까치살모사 한 마리 눈 뜬 채로 죽어 있다
찬기가 배어든 듯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늪 같은 뱀의 동공
낙엽 위를 쏘다니던 기억은
뱀의 동공 속에 냉각되었다
눈동자에 낀 성에에는
뱀을 덮쳤던 그물망이 담겨 있다
구불거리는 몸뚱어리가
숲 속에 새겨진 과거의 궤적과 닮았다
밀렵꾼의 더운 숨결이 숲 속을 물들이던 날
뱀의 화살촉 머리는 그물망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독을 머금은 꼬리가 새겨놓은 곡선들
장설이 내리던 겨울쯤에는
숲 속을 수놓은 살모사의 문장들도 지워졌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짙갈색 입아귀에는 점자 같은 줄무늬가 박혀 있다
살갗이 튼 뱀의 일생
해독되지 못한 뱀의 기억들이
허연 서리를 내뿜고 있다
동전 한 닢
저녁 열한시
삭혀지는 봄바람 속별들은 하나 둘 사위어 간다
밤의 냄새 물씬 풍겨오는 늘푸레 슈퍼
사내들은 컵라면을 후후 불며 설움을 건져 먹고
저 멀리 24시 순대 국밥집에선 족발을 찾는
술 취한 소리가 들린다
주인 아저씨의 속눈썹에는
보름달 같은 눈곱이 무겁게 걸려 있다
진득진득한 땀이 밴 손으로
여기 잔돈, 내 손바닥만 바라보신다
힐끔, 아저씨 이마에 패인 주름이 깊다
동백도서관 열람실의 불이 꺼지려면 아직 멀었다
밤거리를 움실거리는 색바람은
지친 듯 내 어깨에서 머물렀다
한 겹 한 겹 밤의 페이지를 넘기다가
쨍그랑, 하고 주머니에서 떨어진 동전 한 닢
나는 달무리 진 잡목들 아래서 걸음을 멈춘다
검푸른 물결 속에 빠진 동전
나는 그저 내버려 두었다
반짝이는 동전 한 닢, 내일 아침 누군가의 등대가 되길 바라면서
나는 탐조등 같은 달빛을 따라 걸었다
홍삼
1
방 천장 한 구석이 석양으로 얼룩질 때면
스탠드의 창백한 빛이 이지러졌다
먼지가 부유하는 방
할머니는 책장을 더듬거렸다
귓가에 바늘처럼 꽂히는 기침소리
할머니의 둥근 설움이 들썩인다
책장에 처박힌 홍삼농축액이 8년째 농익어 가고 있다
할머니 손등에 핀 검버섯처럼 검게 썩어간다
2
치료시기를 놓친 기침들이 밤공기에 희석된다
차가운 수돗물에 부은 홍삼액이
물 위에 둥둥 떠올랐다
소매 속으로 스며드는 샛바람이 쓰다
나는 옷을 여미고 다시 펜을 든다
3
오늘도 백지 한 움큼이 검은 잉크에 뒤덮였다
창문가로 새어들어온 달빛
내뱉지 못한 말들이 컵 속으로 수몰되면
건조한 먼지들만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할머니는 컵 밑바닥에서 찰랑거리는 홍삼을 확인하고는
비로소 잠에 들었다
나는 또 한번 쓰디쓴 한숨을 고아냈다
공기마저 쌉싸름한 밤
나는 설움을 마시며 또 한번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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