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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청소년온라인백일장 예심통과 작품입니다-김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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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015회 작성일 14-10-1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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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별

전봇대에 박힌 옹이

 

 

먹구름이 가린 반달을 눌러쓰고

아버지는 전봇대에 옹이처럼 박혀있었다

밤의 기나긴 복도에서

수맥을 빨아먹는 그들의 입을 향해

붉은 전선을 쑤셔 넣었다

어금니 사이에 낀 구리는

고물상에 도로 팔려가 공돈을 받아냈다

십자가 모양의 드라이버를 들고

아버지는 전봇대에 올랐다

오늘도 성경 외는 소리에

찌릿한 장맛비가 감염되지 않길,

몸통을 단단히 굳혔다

덕분에, 경사가 높은 우리 집엔

아버지의 흉몽처럼 장마전선이 덮쳐도 날아가지 않았다

하루 삯을 받고 집에 돌아오는 아버지는

종종 붉은 눈동자를 굴렸다

나는 그것이 전봇대의 잔뿌리가

아버지의 동공을 파먹은 것 때문이라고 믿곤 했다

비바람에 허우적대는 비닐봉지처럼 축 처진 나는

그을린 재떨이에 쇳물을 받아 마시는 아버지를 바라만 봤고

아버지는 잿물이 쌓였다

우리 집은 더욱 무거워지고, 날아가지 못한다

전봇대의 우듬지에 선 아버지는

장맛비의 꼬리를 잡고, 무겁게 날아간다

 

 

 

 

나의 생일

 

 

탯줄로 걸어잠근 나의 탄생은

열쇠 수리공 같은 청소부들에게도 풀릴 수 없지

우리만의 대화법으로 이루어진 암호

암호의 역사는 진월역 4번출구 앞,

화장실에서 시작되었다는데

왜 엄마는 매번 자신이 암호의 기원이라고 말할까

 

양수가 아닌 검붉은 하혈로 물들여진 나는

7달 동안 엄마의 미숙한 자궁에서 살았어

화장실 벽면을 기어오르던 진통들이

교복 치마에 포대기처럼 감싸진 나를 노려봐

내 나팔관엔 모든 악령이 깃들어 있을 거야,

변기 위에 쭈그려 앉은 엄마가 축하노래를 불러

생일파티에는 타일에 짓눌린 초코파이가 최고라며

막힌 변기에 꾸역꾸역 쑤셔대던 엄마

 

중국집 배달 오빠에게 훔쳐낸 커터칼로 자른 탯줄

변기통 속에 툭툭, 비밀을 알려줘

비익문처럼 토해낸 엄마의 비밀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해

휘우둠한 전등이 훔쳐본 암호를

자물쇠로 걸어 잠그는 엄마

젖은 두루마리 휴지들이 붉게 떠내려가고

쓰레기통엔 비밀스레 꽃이 피어오르지

 

오늘은 아름다운 내 생일이야,

엄마는 우리만의 대화법으로 나를 축하하는 중이지

 

 

 

 

잘 꿰매어진 골목

 

 

오토바이 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행복하다는 동네

단춧구멍 공장 김씨가

100원에 3.5초 독백의 시간을 팔아요

19인치 텔레비전으로 보는 세상은

반지하 방 환풍기 사이로 바라보는 묵상의 길거리와 달라요

골목길 사이사이 실타래처럼 엉킨 봄을 공유하는

창신동 봉제 골목은

대한민국에서 맨 처음으로 봄을 맞이하죠

이곳에선 오토바이가 하나의 공장취급을 받아요

인타를 잘한다는 김 씨네에

칩거하는 24시간을 배달하고 가죠

헬멧에 노란 테이프를 붙인 사내도

하루 사이 재봉틀이 난만한 봄옷을 입고 있어요

시간을 타고 노는 아들이 잘못 뱉어낸 쵸크는

김 씨의 손에 피어난 붉은 바늘꽃으로

다시 설계하면 그만이래요

몸이 도구라는 김씨는 두 무릎에 조끼를 끼우곤

1년이 드르륵, 돌아가는 시간을 들어요

김 씨의 발은 매일 재봉틀 위에서

윤색한 제자리걸음 중이지만

창신동 봉제 골목엔 오토바이 소리가 끊이지 않아요

스팀다리미가 불콰한 사내들의 다리를

하얀 어둠 속에서 휘감을 때에도

보름달은 재봉틀에 꿰매어져 멀어지지 않죠

무수한 새벽 별빛이

담뱃불처럼 안갯속으로 흩어지는 시각에도

생의 증표에 구근한 하루가

새벽과 함께 흘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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