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산문부

제7회 온라인청소년백일장 예심통과자ㅡ지하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황
댓글 0건 조회 1,529회 작성일 17-06-21 10:14

본문

 

검은 자국

 


 

 

   급식을 받는 줄은 느리게 움직였다. 음식을 받으며 웅성거리는 아이들 사이로 국을 퍼주고 있는 새엄마가 보였다. 마스크와 위생모 사이로 새엄마의 피부와 밝은 갈색의 눈동자가 언뜻언뜻 비췄다. 아이들은 급식실에 올 때마다 새엄마의 국적에 대해 궁금해 하곤 했다. 한 눈에 봐도 우리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새엄마에 대해 아이들은 항상 관심이 많았다. 국을 담기 위해 식판을 잡는 새엄마의 부은 왼손 때문에 장갑이 빵빵했다. 나는 식판을 가지고 새엄마 앞에 섰다. 애써 새엄마를 보지 않기 위해 두 눈을 식판으로 내리깔았다. 새엄마는 변함없는 내 행동에도 나와 눈을 맞추기 위해 나를 자꾸만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국을 받자마자 그 자리를 피해 식탁으로 걸어갔다. 누군가 새엄마와 나의 관계를 알아보기라도 할까봐 급식실에 있을 때면 늘 긴장이 됐다.

   방과 후 수업이 끝난 뒤 학교를 나서자 집에 가고 있는 새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새엄마는 누가 자신을 보기라도 할까봐 몸을 쪼그린 채 걸었다. 누가 보면 추위에 떨고 있나 싶을 정도였다. 나는 새엄마와 조금 떨어져 걸었다. 가는 길이 같으니 항상 새엄마가 나를 발견하지 못하게 최대한 떨어져 걸어야 했다. 새엄마가 먼저 신호등을 건넌 후 나는 다음 신호등을 기다렸다. 새엄마는 집에 갈 때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마냥 우연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었다. 어느새 집이 보였다. 나는 새엄마가 집에 들어간 뒤 한참이 지나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집에서나 밖에서나 서로를 모르는 사이였다.

   집은 답답했다. 집에서 내가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내 방뿐이었다. 밥을 먹거나 화장실이 갈 때, 누군가 나를 부르지 않는 이상 방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 아빠와 새엄마, 동생 환이의 웃음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퍼질 때면 차라리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더 편하고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오늘 환이의 생일이니 외식을 하자며 학교가 끝나고 바로 집에 오라고 했다. 나는 시험공부 때문에 학교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꾸중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자 저녁을 차리고 있는 새엄마가 보였다. 새엄마는 외식보다는 집에서 저녁을 차려 소소하게 생일 축하를 하자고 했다. 그 말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함께 식당을 갔다가 학교 친구라도 만나면 큰일이었다. 아래층에 사는 중년 부부도 초대한 것인지 집안은 평소보다 더욱 시끄러웠다. 집안의 시끄러운 분위기가 어지러워 방으로 들어왔지만 저녁을 먹으라는 새엄마의 말 때문에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손님이 올 때만 사용하는 큰 상이 거실에 널찍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닭백숙부터 잡채, 불고기 등의 음식이 올라와 있었다. 모두 새엄마가 할머니에게 배운 음식들이었다. 처음에는 국물도 제대로 우리지 못했지만 이제는 할머니가 해준 것보다 더 맛있게 음식을 했다.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환이는 케이크의 생크림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었다. 환이는 아빠와 새엄마의 피부색을 섞어놓은 누르스름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아빠보다는 새엄마와 좀 더 닮은 환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환이와 나는 형제로 보이지 않았다. 새엄마가 상을 다 차리기 전부터 사람들은 이미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옆집 부부는 이미 술이 꽤 취한 것인지 볼이 빨개진 채 큰 목소리로 무어라 떠들어댔다.

   “요즘에 우리 집 물건이 자꾸 없어져요. 도둑이라도 든 건 아닌지 몰라.”

   별 것도 아닌 장난스러운 이야기에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대화를 나누었다.

   “나랑 남편이랑 결혼할 때 맞췄던 예물이 몇 개나 사라졌어요. 첫째가 가져다준 타블릿인가 태블릿인가 뭔가 하는 것도 사라지고, 오늘은 저번에 우리 언니가 시골에서 보내준 닭 한 마리도 사라졌다니까?”

   “그 옥상에서 키우던 닭 말이여?”

   “. 남편이 아직 새끼니까 좀 더 키워서 먹자고 그랬는데. 고놈이 오늘 감쪽같이 사라졌다니까요?”

   “누가 잡아갔다고? 도망간 거 아니고?”

   “아니라니까요. 남편이 못 도망가게 발목에 줄을 꽉 묶어놔서 도망갈 수가 없어요. 크기도 저기 있는 백숙이랑 비슷한데…….”

   옆집 아주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백숙을 가리켰다. 막 음식을 가져와 앉던 새엄마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거는 오늘 학교 급식에 나온 닭 남은 거 가져온 거예요.”

   새엄마는 해명이라도 하듯 어눌한 말투로 재빨리 대답했다. 당황한 듯한 새엄마의 표정에 아주머니는 장난한 것을 가지고 뭐 그리 진지하게 구냐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오늘 학교 급식에 닭이 나왔는지 물어보았다. 닭볶음탕이 나왔다는 내 말에 아주머니는 머쓱한 듯 대화를 멈추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새엄마는 그제야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빨개진 볼은 가라앉을 줄 몰랐다. 한국말을 아직까지 잘 하지 못하는 새엄마였지만 한 번도 자기 나라 언어를 사용한 적은 없었다. 느리고 자주 틀렸지만 무조건 한국말만을 고집했다. 그런 새엄마를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아주머니가 뜬금없이 새엄마를 의심했을 때도, 이상한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 감정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거나 새엄마에게 표출한 적은 없었다.

   새엄마의 살은 까무잡잡하고 노르스름했다. 하지만 왼손만은 흑인처럼 어두웠다. 새엄마는 가끔씩 부어오르는 까만 왼손을 늘 숨기고 다녔다. 그것이 마치 자신의 약점이라도 되는 듯이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을 싫어했다. 새엄마의 손은 불시에 부어오르곤 했는데 그 이유는 의사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새엄마만 알고 있는 비밀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새엄마는 손이 부어 가라앉지 않을 때면 병원에 가곤 했다. 병원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병이라고 했는데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쉽게 부어오른다고 했다. 완치를 할 수는 없지만 약을 먹으면 부어오른 손을 잠잠하게 할 수는 있다고 했다.

   주말에 친구들과 만나 축구를 했다. 중학교 때부터 친해진 친구들이었지만 한 번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가끔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고 싶다는 말을 할 때면 집이 좁거나 더럽다며 변명을 했다. 우리 가족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담임 선생님이나 이웃집 중년 부부, 집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다행히 우리 동네에 사는 친구들이 없어 아직까지 한 번도 들킨 적이 없었다. 축구를 한 뒤 학교를 나오는데 멀리서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보니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부르는 환이와 환이의 손을 잡고 있는 새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땀이 솟구쳐 오를 정도로 당황한 나는 다시 앞을 보며 마치 몰랐던 사람인양 태연하게 걸어갔다. 누구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의 말에 모른다고 얘기했다. 한참을 걸어가니 더 이상 나를 부르는 환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새엄마와 나는 밥상에서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환이에게 아까 눈이 안 좋아서 못 알아봤다는 얘기를 했다. 새엄마는 내게 눈길 한 번을 주지 않은 채 밥을 먹는 중이었다. 평소보다 더 어색한 분위기에 괜히 눈치가 보였다. 차라리 왜 모르는 척을 했냐며 화를 내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았다. 새엄마와 아빠, 할머니는 태연한 듯 대화를 나눴지만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밥만 먹을 뿐이었다. 내가 이 식탁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만 같았다.

아빠와 새엄마는 꽤나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얼핏 들으니 새엄마의 친정에 대한 얘기 같았다. 친정집에 홍수가 나서 사정이 안 좋다며 걱정스런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을 들어보니 새엄마의 친정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집 식구들은 한 번도 한국에 온 적이 없었는데, 그것이 아마 다리가 아픈 새엄마의 아버지 때문이라고만 들었던 것 같다. 대신 새엄마와 아빠, 환이만 딱 한 번 친정댁에 갔다. 몇 년 전의 일이라 환이는 친정 식구들에 대해 전혀 알 리가 없었다. 걱정 가득한 여자의 표정이 보였다. 얼핏 보니 왼손의 검은 자국이 부어오른 것만 같았다.

   새엄마에게 한 번도 호의적인 적은 없었다. 아빠는 십년 넘게 함께 살아온 나보다 새엄마와 훨씬 더 친했다. 꼭 새엄마와 아빠 사이에 내가 낀 기분이 들었다. 새엄마에게 정식으로 엄마라고 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되도록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고 필요할 때만 새엄마라고 불렀다. 새엄마는 그것도 고마운 것인지 내가 새엄마라고 할 때마다 기쁜 표정을 지었다. 새엄마는 내게 늘 아들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새엄마가 온 곳은 동남아시아의 한 가난한 나라였는데, 나라의 이름이 어려워 들어가 항상 잊어버리곤 했다. 나는 항상 새엄마와 나의 공통분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잊어버리고 새엄마를 데려온 아빠보다 새엄마가 훨씬 더 미웠다.

   아빠는 새엄마를 데리고 함께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붓기가 더 심해진 왼손 때문이었다. 병원을 갈 땐 항상 아빠나 할머니가 함께 갔지만 아빠는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고 할머니는 모임에서 간 여행 때문에 내가 대신 갈 수밖에 없었다. 새엄마는 혼자 가도 괜찮다고 했지만 한국말이 서툴러 보호자가 필요하다며 아빠는 나의 등을 억지로 떠밀었다. 병원에 가는 동안 우리는 서로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길을 걷다 새엄마가 붕어빵이나 호떡을 보며 저것 좀 먹을래?’라고 말했지만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저었다. 나는 새엄마의 걸음보다 조금 더 앞장서서 거리를 걸었다.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봐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바닥만 볼 뿐이었다.

   진료실에서 나온 새엄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려 했지만 혼자 들어가도 괜찮다는 새엄마의 말 때문에 대기실 앞에서 기다렸다. 새엄마와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갔다. 약사는 새엄마에게 3주치의 약을 처방해줬는데, 근래 들어 가장 기간이 긴 처방약이었다. 그만큼 새엄마의 왼손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새엄마는 약사가 하는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새겨들으려는 듯 수첩을 펴고 약사가 하는 말을 적었다. 약을 챙긴 후 집에 오는 길 내내 새엄마는 주머니 속에 넣은 왼손을 빼지 않았다.

    한참 밥을 먹고 있던 도중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보자 달려온 듯 숨을 헐떡이는 옆집 아주머니가 보였다.

   “우리 집에 또 도둑이 들었어요!”

   아주머니는 앙칼지고 높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황당하고 놀란 얼굴로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할머니는 숨을 고르느라 바쁜 아주머니에게 얘기를 해달라며 보챘다.

   “어제까지 있었던 예물이 또 사라졌지 뭐예요.”

   “또 없어졌다고? 다른 곳에 둔 거 아니야?”

   “혹시나 하고 집안을 다 찾아봤는데도 없다니까요. 그게 얼마짜린데……

   할머니는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주머니를 달랬다. 아주머니가 하필 우리 집에 찾아온 이유가 궁금했다.

   “여러 번 도둑맞은 걸 보면 분명히 아는 사람이 한 짓이에요. 아니 돈이 없으면 빌려달라고 하면 되지 왜 예물이랑 값비싼 것들을 훔쳐가서는!”

아주머니는 확실치도 않은 범인을 꼭 알고 있다는 듯이 얘기했다. 환이 엄마. 아주머니는 대뜸 새엄마를 불렀다.

   “이번에 친정댁에 홍수 나서 사정 안 좋다며. 혹시 환이 엄마가 가져간 거 아니지?”

   새엄마는 당황한 듯 금세 볼이 빨개졌다. 자꾸만 새엄마를 의심하는 아주머니에게 화가 난 것인지 아빠는 아니라며 새엄마 대신 아주머니에게 소리를 질렀다.

   “환이 엄마 내가 다 이해할 수 있어요. 집안 사정이 안 좋아서 돈 못 구하면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돈 빌려줄 테니까 예물 어디 있는지 말 좀 해봐요.”

   아주머니는 이미 새엄마를 범인으로 단정 짓고 있었다. 새엄마는 두 손까지 휘저으며 아니라고 했다. 꽤 당황을 했는지 평소보다 말을 더욱 더듬었다. 아주머니는 새엄마의 말이 답답했던 것인지 갑자기 자기에서 일어나 집안을 좀 둘러본다고 했다. 아빠는 방에 들어가 서랍을 열어보는 아주머니를 말리기 바빴다. 큰 소리가 들리자 환이가 놀란 것인지 울기 시작했다. 주위를 살펴볼 겨냥이 없는 새엄마 대신 내가 환이를 안고 달래기 바빴다. 휴지로 눈물을 닦는 새엄마에게 할머니가 자꾸 진짜냐며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평소 옆집 아주머니와 친하게 지내는 할머니였지만 지금만큼은 할머니를 말리고 싶었다. 새엄마는 할머니의 말에 더욱 서럽게 울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어눌한 한국말음 울음이 섞여 더욱 이상한 발음으로 들렸다. 환이의 울음소리가 더욱 거세지자 아주머니는 그제야 현관문으로 갔다. 아마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주머니는 뭐가 그리 분한 것인지 몸을 씩씩거렸다. 아직도 새엄마가 범인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었다.

   “이미 금은방에 가서 돈으로 바꿨을 수도 있잖아. 내가 내일 다시 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있어!”

   아주머니는 아빠의 고함에 못 이겨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빨간 얼굴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환이를 진정시키느라 바빴고 새엄마는 여전히 휴지로 눈을 가리며 우는 중이었다. 얼굴을 가린 새엄마의 왼손이 퉁퉁 부어올라있었다.

   웅성거리는 급식실에 들어오자마자 새엄마를 찾았다. 새엄마는 오늘 아침에 팔이 아프다며 밥상을 차리지도 못하고 방안에만 누워 있었다. 급식실에서도 새엄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오늘 일을 나오지 못한 것이다. 항상 새엄마가 국을 퍼주던 곳에는 새엄마 대신 한 여학생이 대신하고 있었다. 급식을 먹는 도중 친구 한 명이 새엄마에 대해 얘기했다.

   “차라리 없는 게 더 위생적일 지도 몰라.”

   주위에서 웃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껏 친구들이 새엄마에 대해 얘기해도 한 번도 기분이 나쁜 적이 없었다. 나는 급식을 먹다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친구들이 나를 불렀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식을 버렸다. 문 앞에 서있는 영양사 선생님에게 새엄마에 대해 물어보자 새엄마가 오늘 갑자기 일을 관둔다고 연락이 왔다고 했다. 이유에 대해서는 영양사 선생님도 잘 알지 못했다.

   학교를 마칠 때까지 수업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집에 들어오자 평소보다 조용한 분위기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방에서 텔레비전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얼른 방에 들어갔을 테지만 괜히 안방이 궁금해졌다. 조심스레 안방 문을 열어보자 마침 밖으로 나오려던 아빠와 마주쳤다. 언제 왔냐고 묻는 아빠의 표정이 왠지 어두워 보였다. 아빠에게 옆집 아주머니에 대해 묻자 화가 난 얼굴로 대답했다.

   “어제 그렇게 난리를 쳐댔으니 오늘 찾아오기 민망한 거지. 괜히 생사람을 잡아서…….”

새엄마가 일을 관둔 것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안방에서 누워있는 새엄마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새엄마는 하루 사이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평소와 똑같이 행동했다. 할머니는 아침밥을 먹으며 새엄마의 왼손에 대해 물었다. 새엄마는 머뭇거리다 증상이 더 심각해졌다고 얘기했다. 앞으로 더 심해지면 입원과 수술을 할 수도 있다는 말에 할머니가 놀란 표정과 함께 인상을 찌푸렸다.

   “어떡하면 좋니. 우리 집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알 수 없는 할머니의 말에 새엄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밥만 넘길 뿐이었다. 할머니는 일부러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밥을 먹는 내내 새엄마는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그릇을 잡은 검은 왼손이 전보다 더 부어오른 것 같았다.

   오후가 되자 옆집 아주머니가 다시 집에 찾아왔다. 아빠는 이번에 옆집 아주머니가 다시는 못 오도록 한소리를 하겠다며 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웬일로 쭈뼛거리며 집안으로 조심히 발을 내딛었다. 표정도 전처럼 화난 표정이 아니라 어딘가 민망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서있었다. 뭐하러 왔냐며 화를 내는 아빠에게 아주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전과는 상반되는 목소릴 입을 열었다.

   “저번에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던 거 말이에요……. 그게 우리 아들이 그런 거지 뭐예요. 그놈이 우리 몰래 여자 친구랑 데이트 한다고 가져갔대요…….”

   아주머니의 말에 아빠는 그동안의 일에 대해 화를 냈다. 아주머니는 할 말이 없는 듯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정작 새엄마가 아닌 화를 내는 아빠에게 사과했지만 새엄마는 오해가 풀려서 다행인 것인지 다행이라는 표정과 함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간 잠시 뒤 환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왔다. 환이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환이와 함께 온 유치원 선생님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아빠와 새엄마에게 무슨 얘기를 했다. 친구들이 환이에게 피부가 까맣다고 놀렸다는 것이었다. 새엄마는 그 말을 듣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곧 유치원 선생님이 집을 나가자 새엄마가 환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환이의 울음이 그칠 무렵, 오히려 새엄마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채 앉아있었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것들이 한 번에 터질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갑자기 새엄마는 팔이 아프다고 했다. 울 것처럼 팔이 너무 아프다는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늘도 하루 종일 누워있는 새엄마가 보였다. 아빠도, 할머니도 모두 집에 없던 탓에 내가 대신 환이를 돌봐야 했다. 환이는 오랜만에 나와 논다며 신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환이와 제대로 놀아준 적이 없었다. 어떻게든 환이와 새엄마에 대한 존재를 숨기는 게 우선이었다. 항상 내 생각만 하느라 두 사람에 대한 생각은 늘 뒷전이었다. 엄마를 의심하는 옆집 아주머니와 할머니에게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친엄마는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항상 나를 챙겨주던 사람이었다. 나는 냉동실에 있던 얼음을 꺼내 마사지 팩을 만들었다. 조심히 안방 문을 열자 팔을 잡고 있는 새엄마가 보였다. 새엄마에게 팩을 건네자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찜질하시라고요…….”

   내 말에 조금 벙 찐 표정을 짓던 새엄마가 갑자기 환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새엄마는 항상 나에게 웃는 표정이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늘 웃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새엄마. 새엄마는 팩으로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곧 부어오른 왼손도 다시 예전처럼 가라앉을 것이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